12-182: 봉헌식의 목적

봉헌식의 목적
1963.05.01 (수), 한국 전본부교회

12-182
봉헌식의 목적
[말씀 요지]

하나되는 것, 이것이 하나님의 소망이다. 나와 상대가 또, 전세계가 하나되어야 한다.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과 하나되어야 하고, 하나님의 내적 심정이 외적으로 실현되어야 한다.

문제는 개인, 가정, 종족, 민족이다. 우리는 개인으로부터 천주까지 7단계를 거쳐 넘어야 한다. 우리는 항상 내 마음이 하나님과 하나되었는가, 내 몸이 하나님과 하나되었는가, 내 가정이 하나님을 중심하고 하나되었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축복가정은 마음이 하나님과 일체가 되어야 하고, 몸이 하나님과 일체가 되어야 하고, 뜻이 하나님과 일체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창조이념을 대신해 나가는 가정이 되는 것이다. 가정이 없이는 `나’라는 가치를 결정지을 수 없다.

우리들 개체에는 하나님의 심정과 소망이 깃들어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심정의 실체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대표한 입장이다.

우리는 개인의 기쁨을 천주의 기쁨으로 연결시켜야 한다. 내 뜻이 우리의 뜻이요 전체의 뜻이 되어야 한다. 나를 중심하고, 우리를 중심하고 하나되어야 한다. 우리는 타락의 혈통을 물려받았으므로 이 세계에는 타락의 인연이 남이 있다. 여기서 승리의 기대를 조성해야 한다.

가정은 전체를 대신한 최소 단위이다. 이것의 잘못은 전체의 잘못으로 연결되므로 개인의 잘못은 용납할 수 있지만 가정의 잘못은 용납할 수 없다. 개체의 기쁨을 전체의 기쁨이 되게 하려는 심정이 충만해야 한다.

개인적인 사정과 주관과 소망을 빼버리고 전체의 사정과 주관과 소망을 세워야 더 큰 것에 융합할 수 있다. 가정은 전체를 살리기 위한 것이다. 고로 가정은 송전선과 같다. 가정을 통하여 전체에 화하여 나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고로 삼위기대는 한집에서 살아야 한다. 지금은 가정을 재정비해야 할 때이다.

선생님 앞에는 하나님의 주권,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땅을 찾아야 할 세계적인 투쟁노정이 남아 있다. 이것이 이 땅에 온 선생님의 사명이다. 이것을 중심하고 충신이 되고 효자가 되는 것이 제2의 사명이요, 성별하지 않고도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제3의 사명이다.

이 세 가지의 사명을 놓고 봉헌식을 해야 한다. 이를 위하여 성지를 만들어야 한다. 그리하여 이를 중심삼고 하나되어 하늘과 연결지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하여 선생님은 하나님을 대신하고 예수와 성신을 대신하는 기준을 찾아 이루어야 한다. 그런 후에야 봉헌식을 할 수 있다.

지금까지 하나님께서는 만물을 놓고, 다음으로는 자녀를 놓고, 그 다음으로 부모를 놓고 역사해 오셨다. 이렇게 거꾸로 이루어 나온 행렬이 `뒤로 돌아!’ 하면 일시에 평면적 기준에서 참부모를 중심하고 직접 하늘과 연결되는 것이다. 최소한 국가적인 기준 위에서 돌아서야 한다.

이제는 돌아설 때가 되었다. 그러나 삼위적인 조건, 즉 참부모의 이름없이는 돌아설 수 없다. 또한 효자와 충신의 이름을 갖지 않고는 가정이 돌아설 수 없다. 내적인 혁신을 해야 한다.

앞으로는 이 식에 참여할래야 참여할 수 없는 때가 온다. 생애에 있어서 가정과 개체의 생활을 중심삼고 맹세한 것은 천주 때문이니, 천주가 기뻐할 수 있는 기준을 세우지 않고는 돌아설 수 없다.

돌아설 때 하나님의 것이라고 할 수 있는 땅이 있는가? 배가 있는가? 비행기가 있는가? 이 행사는 이것을 상징하는 것이다.

역사를 돌려야 할 책임을 선생님 혼자서 했다. 이런 책임을 하려면 하고 싶은 간절한 심정을 가져야 한다. 주권을 잃고 토굴 생활을 하는 군왕과 하나되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군왕이 왕권을 되찾는 날 만민이 그 사람에게 머리 숙일 것이다.

내 것은 없다. 몸도 무엇도 내 것이 아니다. 내가 설 수 있는 가정적, 세계적인 기반을 세워야 한다. 이 모든 것이 하나되어 봉헌식을 해야 한다. 심정의 종적인 기준을 횡적으로 세워 놓아야 한다.

우리는 누구의 대신이어야 하는가? 이 길을 누가 먼저 갔는가? 지금 까지는 사업에 실패해도 무관했지만 이제부터는 그렇게 되어서는 안 된다. 제물을 농락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만물복귀시대이기 때문에 봉헌식을 하고 돌아서야 한다. 내 것, 내 가정이라는 생각을 버리고 아버지 것이라는 사상을 가져야 한다.

이번 기간에 축복받은 자로서 죽는 자는 없을 것이다. 자녀들이 잘못되지 않나 염려하며 기도하였다. 지금까지는 교회를 위하여 복을 빌 수 없었다. 또, `아버지여, 여기로 오시옵소서’라고 할 수 없었다. 그것은 오신 아버지를 예수처럼 돌려보내지 않을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내려가야 한다. 벌거숭이가 되자. 억울한 입장에서 통곡할 때 하나님은 찾아오신다. 무슨 일을 해도 사탄이 참소할 수 없는 입장에 서야 한다. 내가 죽더라도 영적인 파수꾼을 세웠으니 이 자리는 사탄이 참소하지 못한다고 할 수 있어야 한다. 축복받은 사람들이 이 기준을 세워 놓아야 세계의 군왕들이 나라를 바쳐 올 것이다.

옛날에는 여자는 성전에 못 들어갔다. 개인적인 시험을 지난 입장에서 가정축복을 했기 때문에 개인적인 탕감시대는 지나갔다.

오늘날은 모두 심판의 날들이다. 자식을 놓고 부모의 좋은 점을 닮게 해달라고 기도하기 위해서는 그만한 실적을 쌓아야 한다. 지금까지는 복을 달라고 할 수 있는 지상의 조건을 세우지 못했으나 이제부터는 그런 때가 온다.

여러분이 김삿갓과 같이 되지 않으면 내가 그렇게 될 것이다. 앞으로 3년은 또 고생해야 한다. 책임을 못 하면 머리를 들 수 없는 기간이 3년기간이다. 죄인같이 머리를 숙이는 생활을 해야 한다.

세계가 통곡할 수 있는 기준을 세워 놓고 넘어가야 한다. 여러분들이 그 기준을 세우지 않으면 선생님이 참소를 받는다. 눈물을 흘리며 만류하는 사람 셋 이상을 세운 후에야 사탄의 참소를 받지 않는다.

선생님은 지금까지 머리를 들지 못했다. 앞으로 축복받은 사람들은 본부에 있지 못하게 할 것이다. 대신 다른 사람들을 있게 해야 한다. 예수님은 2천년간 머리를 들지 못하셨다. 축복받은 사람은 상을 주지 않았다. 왜냐하면 가정적인 상을 주기 위해서다.

이런 봉헌식을 하여 선생님 것이 있어야 식구들 것이 생겨난다. 모든 것을 다 바칠 수는 없으니 십분의 일이라도 세우고 넘어가야 한다. 여러분은 모두 이 대열에 동참해야 한다.

교회 전체가 청산하고 넘어가야 한다. 선생님이 알고 있는 가치를 느낄 수 있는 실체 인간들이 나타날 때까지 선생님은 일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