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60 to 12-170: 선을 세우는 자가 되자

선을 세우는 자가 되자
1963.03.16 (토), 한국 전본부교회

12-160
선을 세우는 자가 되자
[말씀 요지]

벌써 40일 수련기간이 다 지나갔습니다. 여러분이 처음 이곳에 올 때의 마음과 지금 돌아갈 때의 마음이 많이 달라진 것을 느낄 것입니다. 마음이 달라졌다 하더라도 이제부터의 움직임에 따라 과거의 여러분과 현재의 여러분이 달라지고 열매 맺히는 것입니다.

이 수료식이 끝난 다음부터 여러분의 걸음은 엄숙해야 합니다. 이 시간 이후부터는 엄숙한 걸음을 걷겠다는 결심을 해야 합니다.

그동안 15회 수련생들을 위하여 수고한 책임자들과 모든 식구들에게 수련생을 대신하여 고마움을 전합니다.

12-160
역사적인 운명의 길을 개척해야 할 우리
그러면 이제 돌아가는 여러분은 어떠한 자체인가? 여러분은 그동안 산에 많이 올라가 봤는지 모르겠습니다. 산에 올라갈 때에는 힘이 들지만 일단 올라간 후에는 말할 수 없는 쾌감을 맛보게 됩니다. 실제로 올라가 보지 않은 사람은 그 맛을 모르는 것입니다.

이제 가야 할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을 판단해야 할 위치에 서 있습니다. 그것은 실천에 의해서만 기준이 세워집니다. 과거의 모든 역사적인 사실들 중 끊을 것은 끊고 수습할 것은 수습해야 합니다. 그런 책임이 여러분에게 있습니다. 그냥 어영부영해서는 안 됩니다.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입장에 서야 합니다. 가치적인 평판을 남기려면 치밀하게 계획하고 실천해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반대의 평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역사의 핸들을 잡고 있습니다. 이것을 잘 돌리면 살고, 잘못 돌리면 죽는다는 것을 여러분은 말 안해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통일의 이념을 싣고 달리는 버스나 자동차와 같다면 여러분은 운전수와 같습니다. 어차피 가야 할 운명의 길이요, 또 북귀의 수리상(數理上) 제한된 시간내에 달려가야 한다면 비장한 각오를 가지고 핸들을 잡아야 합니다.

만신창이가 된 국가의 현실을 바라볼 때 바로 우리가 이 나라 이 민족의 정신적인 핸들을 잡고 있는 사람들임을 더욱 절감할 것입니다. 이 길은 미국의 `브로드웨이’와 같이 호화롭고 안락한 길이 아니라 험하고 위험한 길입니다. 오늘 이 시간은 그냥 지나가고 있지만 앞으로 닥칠 험한 길을 어떻게 수습하고 어떻게 돌파할 것이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우리의 길은 개척된 길이 아니라 개척하며 가야 하는 길입니다.

선생님은 지방 순회를 많이 합니다. 이번에도 강원도의 험로를 자동차로 달리면서 느낀 것은 길을 조금만, 한 자만 더 넓혔더라면 하는 아쉬움이었습니다. 그것은 운전수와 승객이 공통적으로 느낀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개인이나 가정이 겨우 갈 수 있는 좁은 길을 닦아서는 안되겠습니다. 닦을 적에 조금 더 고생하고 희생하더라도 조금 더 넓고 크게 닦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역사적인 운명의 길을 개척하는 통일교회 식구들은 어떠한 길을 닦아야 할 것인가? 우리들은 삼천만 민족과 30억 인류를 위한 개척자입니다. 여러분에게는 눈에 보이지 않는 곡괭이와 쇠스랑이 들려져 있습니다. 그러면 그것을 어떻게 해야 되느냐? 후손들로부터 이것은 조금 더 이렇게 해주었더라면 하는 평을 받아서는 안 됩니다. `우리 선조들이 어떻게 이러한 길을 걸었을까’ 하고 머리를 들고 돌아보게 할 수 있는 길을 닦아야 됩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길을 닦아야 할 개척자입니다.

여러분 한 사람의 힘은 비록 미미하나 전체의 힘을 합하여 뜻을 이루게 될 때에 여러분 개체는 전체와 맞먹는 가치적인 입장에 놓이게 되는 것입니다.

3년 전 21일간 지방을 순회할 당시에 생각했던 것은 이 길이 지금은 험한 산골길이지만 장차 수많은 사람들이 차로 달리게 될 때 `최고의 길이다’라고 할 수 있는 길을 우리 통일교회 식구들의 손으로 만들었으면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길은 나 한 개인만의 길이 아닙니다. 계속적이고 연속적인 길입니다. 여러분 중에는 이 길이 일시적인 길인 줄 알고 활보하며 가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나 선생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 길은 일시적인 길이 아닙니다. 이 길은 민족과 인류와 영인들과 아버지가 걸어가야 하는 길입니다.

개인과 가정과 사회와 국가, 그리고 영인들과 대주재되시는 하나님께서 행차할 때에 그 길을 보고서 `아들딸이 가기에 편하겠구나’라고 느끼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책임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12-162
복귀의 길은 쉬지 않고 가야 할 길
누가 가려고 하지 않는 개척의 길에도 하나님의 섭리의 손길이 있고 하나님의 소망의 심정이 있습니다. 우리는 후세에 비평받는 것을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 길은 내 한 사람에게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연속적으로 가야 되는 것이니 내 대신자로서 믿음의 아들딸을 세우고 가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의 마음은 모두 한가지입니다. 그러나 문을 나선 후 각자가 걷는 걸음은 다 다릅니다. 사정이 천태만상입니다. 그 사정에 좌우되어 사방으로 흐트러지기 쉬우니 단단히 결심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지나가고 난 후에 좋은 평을 받으면 괜찮지만 옳지 못하다고 뜯어고치게 되면 가지 않은 것만 못합니다. 지금까지 젊은 남녀의 길이 그랬던 것을 볼 때 나는 전체 앞에 어떤 치명상을 입히지 않았는가를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이 길은 내가 간 다음에 수많은 인류가 따라와야 하니 선생님은 삼천리를 편답할 때에도 가고 오는 것을 그날에 그치지 않고 연속적인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땀을 흘려도 남보다 더 흘리고, 손길 하나도 남보다 더 움직이고, 일도 남보다 더 하겠다고 하는 마음을 가지고 연속적으로 행해야 합니다.

선생님은 세상의 평을 받는 조건을 남기고 싶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디를 가더라도 통일성도로서 위신을 세우고 원리인으로서의 위신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심정을 가지고 승리의 깃발을 표방하고 나서서 위신을 세워야 합니다. 그 위신은 선진국가의 위신이나 강한 군대의 위신 따위가 아닙니다. 역사와 시대를 반영하는 위신과 영원을 향하는 위신입니다. 내가 못 가면 후계자라도 세워 놓고 가겠다고 하는 결심을 하여야 합니다.

오늘 여러분에게 말씀 드리려 하는 제목은 `선을 세우는 자가 되자’입니다.

12-163
목적 완성과 수습
`네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하고 물어 보면, 어떤 사람은 돈이라고 하고 다른 어떤 사람은 다른 무엇이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또 `너는 어떠한 사람이 되겠느냐?’고 물으면 실업가가 되겠다는 사람, 정치가가 되겠다는 사람 등 여러 가지 대답이 나올 것입니다.

세상에는 위대한 사업가도 있고 정치가도 있고 사상가도 있습니다. 그러나 역사는 부자(富者)에 대해서 대서특필하지 않습니다. 정치가에 대해서는 기록합니다. 혁명을 일으켜 역사적인 전환점을 세운 사람이나 어떠한 주의 사상을 세워 하늘땅을 위한 역사적인 일을 한 사람에 대해서는 대서특필하는 것입니다. 돈을 많이 벌어서 부자가 되거나 당대에 명성을 떨치는 정치가, 혹은 한 시대에 무엇을 터치고 나서는 혁명가도 좋겠지만 위대한 이념을 주장하는 위대한 사상가가 있다면 그 사상가를 사람들은 더 원할 것입니다.

그러면 위대한 사상가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좋은 것이 있으면 그것을 가지고 자기만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민족이 기뻐하고 세계 인류가 기뻐하고 하늘땅이 기뻐할 수 있는 일을 하여야 합니다. 여러분도 그러한 이상과 욕망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역사는 그러한 사조를 거쳐 흘러 나왔습니다.

하늘땅을 무대로 삼고 하나님을 모시고 살 수 있는 세계로 이끌어 가야 하는 것이 위대한 사상을 가진 자들의 사명이요 의무가 아니겠는가! 그 기쁨은 개인, 가정, 민족, 인류의 기쁨만이 아니라 천주의 기쁨도 들어가고, 나아가 창조주의 기쁨까지도 포함되는 기쁨이어야 합니다. 이렇게 되는 것이 이상이 아니겠습니까?

석가나 예수나 공자와 같은 분들도 누가 내적 외적으로 그러한 가치를 더 가졌느냐 하는 데서 그 가치가 좌우됩니다. 평면적인 것뿐만 아니라 내적인 사정과 소원과 심정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념이 있다 할진대 그 이념에 외적 내적으로 사정과 심정이 있어야 하는 것이니 이것을 가지고 승리해야 그때부터 사회와 인류의 평화가 오는 것입니다.

구세주의 목적도 마찬가지입니다. 산맥이 뻗쳐 있으면 거기에는 많은 봉우리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배후에 있는 봉우리를 보지 못하면 자기가 보는 봉우리가 최고봉인 줄 압니다. 사상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쁘게 되면 그 산봉우리만 기쁜 것이 아니라 산맥 전체가 기쁜 것입니다.

산을 가는 데는 어디를 향하여 가느냐? 정상입니다. 그 정상을 향하여 가기 위하여 모인 무리가 통일신도들입니다. 제일 알맞은 길은 많지 않습니다. 하나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과거에 가던 길을 포기하고 전부 이 길로 가게 해야 합니다. 다른 무엇보다 더 좋은 길로 인정되면 어느 누구나 자동적으로 그 길로 가게 됩니다. 그러나 꼬불꼬불한 산길은 힘이 드니 빨리빨리 제거해야 합니다. 한번 해봐서 좋은 것이면 빨리빨리 세우고, 힘든 것이면 빨리빨리 제거해야 한다는 것은 삼척동자라도 알 것입니다.

전체의 목적지를 가기 위해서는 더 많은 수고를 하고 더 많은 책임을 지고 가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런 사람이 아니면 우리가 따라가야 할 지도자라고 받들 필요가 없습니다.

목적은 대번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수많은 산맥을 한꺼번에 오를 수는 없습니다. 우선 횡적으로 길을 닦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늘은 이 산상봉을 가기 위하여 수고하십니다.

어느 지점에 가면 하나님은 사방에 그런 사람을 찾아 세웁니다. 그 기준을 세우면 그 기준을 전체에, 온 세계에 적용하는 것입니다. 전체를 대신하여 세운 분이 바로 메시아입니다. 그분은 하늘땅의 대표자입니다.

이 길은 참길이어야 합니다. 하늘은 메시아 한 분을 세우기 위하여 이스라엘 민족을 세워 시련을 받게 하셨던 것입니다. 그 시련과정을 거친 다음에는 반드시 투쟁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목적을 이룬 다음엔 수습대책이 있어야 됩니다.

예수님은 목적하는 바의 가치를 추구하셨습니다. 그러니 그 다음에는 수습해야 되는 것입니다. 전쟁에 있어서도 수습이 문제이고 혁명에 있어서도 수습이 문제입니다.

전체 역사와 하늘땅의 중심이 되시는 메시아 한 분을 보내기 위해서 하늘은 무한한 수고와 시련과정을 주셨습니다. 튼튼한 기대를 닦기 위해서는 온 세계가 바라던 최고의 기반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쓰러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스라엘을 세워 무수한 시련과정을 거치게 했던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탑을 세워야 됩니다. 이것이 만민이 가야 할 참된 길인 것입니다.

12-165
통일식구들을 고생시키는 이유
그러면 우리들이 뜻하는 선은 무엇이뇨?

더 큰 선을 세우기 위한 필연적인 조건은 시련입니다. 공적인 시련과 연단의 기반 위에 세워진 선이라면, 그 선이 사정상 일시적으로 침해를 받는 다 할지라도 그 선의 기대만은 남아지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오늘날까지 간직해 온 것은 어느 민족보다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선은 그러한 기반을 중심삼고 그 방향을 향하여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러한 방향으로 나가기 위한 첫째 조건은 신념입니다. 대하는 뜻이 최고이면 그것에 대비하는 시련을 어떻게 이기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우리 통일교회에서 세운 3년이 중요한 시련 조건이라 할진대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그 시련이 세계적인 것이라면 세계를 판단할 수 있고, 그 시련이 하늘땅을 대신하고 역사상에 왔다 간 모든 선지선열을 대신한 것이라면 세계의 복을 다 받을 것입니다.

아버지는 메시아를 보내시기 위해서 여러분을 동원하여 각 방면에서 최고의 시련을 당하게 할 것입니다. 최고에서 최하까지 인간이 받을 수 있는 모든 시련을 받게 하는 목적은 세계적인 상을 주시려는 데 있습니다. 택한 백성을 시련도상에 놓고 이끌어 온 것과 그들을 이끌어 오기 위하여 수고하신 하늘이라는 것을 알고 이 모든 역사적인 심정을 상속받아야 하겠습니다.

이스라엘 민족 앞에 민족적인 기준을 세우기 위한 애급고역 4백년이 있었던 것과 같이 오늘날 우리에게도 한때 그런 고생이 있을 것을 알고 삼천만을 대신하여 힘껏 싸워야 되겠습니다.

지금까지 말할 수 없는 고충도 많았고, 분한 마음을 하늘 앞에 호소한 적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내 나라, 내 민족, 내 땅, 내 아버지의 이념만을 위하여 전략을 다해 싸우는 가운데 그 생활 환경이 쪼들리고 급박해진다 할지라도 내적으로는 더욱 강해져야 되겠습니다. 아버지께서 아직 그러한 때를 갖지 못했기에 시련과 고통을 당한다는 것을 명심하고 우리도 아버지의 길에 함께 참여해야 되겠습니다. 편안한 자리를 피하고 고통의 자리에 서야 합니다. 울면서도 전체를 위하여 이 길을 가야 합니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고통스러운 복귀의 길을 걸어 나가고 있습니다.

내 40여 평생의 울분심이 아직 죽지 않았습니다. 여러분도 아버지의 6천년간 쌓인 울분이 아직 풀리지 않았으니 어려운 환경에 부딪치면 부딪칠수록 이 어려움이 한때 악을 처단할 수 있는 재료로 나타나게 해야 됩니다.

역사적으로 미래적으로 세워질 것은 무엇이뇨? 세상의 모든 찬란한 것은 지나가지만 선을 위해 고생하면, 결국은 자기들이 악하였고 당신들은 선하였다고 직고하는 때가 오는 것입니다. 그때 오늘 여러분이 흘리는 눈물과 피와 땀이 이것을 입증하는 절대적인 재료가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은 `10년 후에 이 땅에 찾아올 터이니 두고 보자. 내가 못 하면 내 후손을 통해서 백년 후에라도 다시 찾아올 터이니 두고 보자’ 하는 결심이 있어야 됩니다. 그저 무턱대고 고생만 해서는 안 됩니다. 억울함을 당하면서도 선을 세운다는 결심이 있어야 됩니다. 하늘이 그렇게 나왔습니다.

하나님은 처참한 것 같지만 결국은 완전 정복하십니다. 시련을 주시는 것도 우리가 미워서가 아닙니다. 세상의 부모도 그러한 부모가 없거늘 하물며 하나님이 그러시겠습니까? 사탄이 천지 창조의 영광의 기준을 파괴하였기에 복수하고 그것을 다시 찾자니 시련이 불가피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어찌하여 고생을 시켜야만 하느냐? 이것을 재료로 삼아 사탄으로 하여금 말없이 항복하게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을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12-167
죽이든 살리든 뜻대로 하시옵소서
우리 통일의 이념이 천국의 이념이라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이뇨? 최고의 이상주의일수록 이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반대의 길로 내모는 것입니다. 그것은 뜻하시는 바 전체를 정복하기 위해서입니다. 혁명정부도 이렇게 했더라면 되었을 것입니다. 누구든지 이 땅을 사랑했다면, 사랑했다는 증거를 대라고 할 적에 증거를 댈 수 있어야 됩니다. 증거를 못 대면 안 됩니다. 시련은 역사를 통하여 연속적으로 연결되어 왔습니다.

오늘날 통일의 이념은 이방에도 번져 일본 미국 등 전세계로 뻗치고 있습니다. 어저께 고생하는 사람을 만났는데 그가 하늘의 뜻을 위하여 고생하는 우리 통일식구였더라면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한국에 있는 통일식구들 얼마나 불쌍합니까?

여러분을 고생시키지 않으면 안 되는 하나님의 고충이 있습니다. 이제부터는 세계 전도를 서로 앞장서서 하려고 할 것입니다. 일본에서도 미국에서도 그럴 것입니다. 우리 한국 사람이 안 해도 그 나라 사람들 이제 나라 제 민족을 맡아 하려고 자원하고 있습니다. 벌써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 나라의 복귀를 위해 고통의 길을 자처해서 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민족, 국가를 넘어 세계를 위했다는 기준을 세워야 됩니다. 그래야 앞으로 그 사람들이 우리 앞에 머리를 숙이고 이 나라가 세계의 조국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한 두 사람을 대상으로 말씀을 전하더라도 개인이나 국가를 대하는 것으로 가 아니라 세계적인 사명을 띠고 전해야 됩니다. 우리 식구들은 자나 깨나, 먹으나, 길을 가나, 쉬거나, 언제 어디서나 이 일념에 사무쳐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결혼을 앞에 둔 처녀 총각들에게 외국 사람과도 결혼하라고 강조하는 것입니다. 좋아서가 아닙니다. 미국 사람, 일본 사람 그 밖의 어떤 외국 사람과도 결혼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전체적인 하늘의 뜻을 위해서라면 그 이상의 어떠한 일이라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나 하나를 세워 전체가 살 수 있다면 누구나 그 길을 취할 줄 알아야 그 사람을 식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련의 무대를 맞아 쓰러지지 말고 내적으로 강해져야 되겠습니다.

주권과 국토와 국민이 없는 민족이 얼마나 불안하다는 것을 알고 그 시련 무대를 늠름히 넘을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시련 가운데서도 오히려 성장하게 됩니다. 시련을 주는 것은 악을 심판하는 조건을 세우기 위해서지 망하게 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이러한 것을 알진대 통곡하고 머리 숙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죽이든 살리든 뜻대로 하시옵소서’라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그 방식대로 심판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여 사탄을 쳐도 할 말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예수님도 자신이 당한 대로 심판을 할 수 있습니다. 하늘의 아들딸은 언제나 시련의 길, 비참한 길을 걸어 나왔습니다. 그래서 하늘을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고생하라! 이것이 여러분들이 가져야 할 첫째 조건입니다. 고생을 하되 자기 목적으로 고생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과 땅과 하나님을 위해서 고생해야 됩니다. 뼈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지금 아버지의 한을 풀어 드리지 못하면 죽어서라도 풀어 드리겠다’ 하는 정신으로 싸워야 합니다.

12-168
심판의 의의
그러면 기반을 닦은 후에는 무엇을 할 것이냐? 끝날에는 심판을 합니다. 심판이라는 글자의 뜻을 따져 보면 살펴서 판단한다는 뜻입니다. 옳지 않은 것을 치는 것입니다. 나무도 태풍을 받으면 뿌리를 깊이 박습니다. `사탄의 바람아, 불어와라!’ 해야 합니다. 정체가 드러난 다음에는 싸워야 됩니다. 야곱도 얍복강가에서 투쟁하였습니다. 때로는 동족과도 싸웠고 친척 모두에게 배신자로 배척받았지만 신념이 있었기에 야곱은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뼈살에 사무친 신념이 있었기에 수십년간 지치지 않고 싸웠던 것입니다.

여러분을 연단시키고 시련을 주는 것은 싸우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민족만을 위해서 싸우는 것이 아니고 세계를 위해서 싸워야 됩니다. 그러나 지금은 민족을 위해서 싸우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까지 공격만 받았습니다. 최고에서 최하까지 모든 공격을 다 받았지만 하나님은 후퇴하지 않았고 실패하지 않았습니다. 백년에 한 발짝이라도 전진했습니다. 그리하여 악한 무리를 수습하고 악을 심판해 오셨습니다.

인류를 구원하기 위하여 오시는 분이 재림주입니다. 하늘은 기준만 세워지면 때립니다. 공세를 취합니다. 그렇다고 스탈린 모양으로 목을 잘라 죽이는 것이 아니라 일시에 항복시키는 것입니다. 첫째는 이념, 둘째는 백성, 세째는 주권, 네째는 영토로 사탄을 항복시켜야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돈과 친구와 권세와 이상이 함께 있기를 바라는데 그 네가지는 바로 이것을 대표한 것입니다.

우리의 이때는 이스라엘 민족이 애급을 나와 홍해를 건너고 광야를 지나는 기간과 같습니다. 이 때는 역사적인 모든 비참사가 재현되는 기간입니다. 그래서 이때는 이스라엘 민족이 받았던 최후의 시련을 받는 때입니다. 만일 이스라엘 민족이 최후의 시련을 고이 받았다면 다시는 고통을 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굶주림이 극도에 달하면 자기의 새끼를 잡아먹게 까지 되는 경우도 있다는데, 자기 자식을 죽이는 한이 있더라도 주권과 영토와 백성만은 찾아야겠다는 마음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우리는 민족적인 고통을 대신 받읍시다. 비참하고 처참한 길을 피하지 맙시다. 역사적인 시련과 고통의 길을 걸읍시다. 이것은 잘되고 영광스럽게 되는 길입니다. 좀 춥고, 떨어진 옷을 입고, 좀 굶주리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가 이렇게 귀한 때에 태어나서 살아서 이러한 길을 걷는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사실입니까? 나를 통하여 이 민족이 살 수 있다면 내 등이라도 타고 가라고 해야 하 때입니다. 모세 때 이스라엘 백성들도 광야에서 그래야 했었습니다.

풀무질하는 가운데에서 남는 것은 순금, 즉 진짜입니다. 그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이냐? 하나님이 바라는 우리의 주권과 우리의 백성과 우리의 영토와 우리의 아들딸입니다. 그것만은 절대적입니다. 그러한 기준에 못 선다면 여러분은 도리어 방해꾼입니다.

오늘 이때는 6천년 역사 속에 있었던 싸움의 실태를 재현시키는 때입니다. 우리는 `아브라함 때에 괴롭히던 사람도, 모세 때에 역사하던 사람도, 예수 때에 방해하던 사람도, 그밖에 수많은 선지선열을 괴롭히던 사탄도 물러가라!’ 해야 됩니다.

선생님은 싸우는 자의 심정을 잘 압니다. 우리는 1초도 안심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시대적인 사명을 알아서 잘 싸워야 되겠습니다. 우리의 뜻과 시대적인 사조가 잘 맞아 돌아가고 있는 것을 보십시오. 잘 돌려야 됩니다. 유도탄도 발판이 넓어야 됩니다. 멀지 않아 악한 사회와 공개적으로 싸울 날이 올 것입니다. 싸우려면 먼저 자신이 있어야 하고 거기에 대비하는 만반의 준비가 있어야 합니다.

과거에는 모두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자신이 있습니다. 우리 앞에 있는 여리고성이 다 들여다보입니다. 세계적인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에 들어가야 하니 죽더라도 그 땅에 들어가서 죽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죽어 사탄세계에 묻힐 게 아닙니까? 그러니 어떻게 해서라도 그 땅에 들어가야 합니다.

12-170
자신 의분심 용맹
적을 대하여 싸우자면 자신이 있어야 하고, 의분심이 있어야 하고, 용맹이 있어야 합니다.

용맹이란 순탄해서는 안 됩니다. 비장하고 비상해야 됩니다. 그것은 평상시에 필요한 것이 아니라 비상시에 필요한 것입니다. `너는 어느 지방을 책임져라’ 할 때에 `아니오’라고 대답해서는 안 됩니다. `아무데 원수가 있으니 가서 소탕하라’ 하면 `예’ 할 수 있는 용맹심이 있어야 합니다. 싸우는 데는 첫째 자신, 둘째 의분, 세째 용맹, 이 세 지 요건이 꼭 필요합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에게 강하고 담대하라고 말씀하신 것은 용맹하게 싸워 정복하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이념 앞에는 천하에 적이 없습니다. 용감하게 싸우십시오. 일대에 용감하게 싸우다 쓰러진 자는 그 뜻이 이루어지게 되면 그 나라와 그 시대의 영웅이 됩니다. 위인이 됩니다. 알아듣겠습니까? 여러분은 이제부터 자신과 용맹심과 의분심을 가지고 통일된 행동을 해야 합니다. 이번에 강원도와 경상도에 가 보았는데 선생님을 중심삼고 모두 하나로 움직였습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요, 말단 식구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면 투쟁해서 승리한 다음에는 무엇을 하는가? 수습을 합니다. 수습은 어떻게 하는 것인가? 원수 사탄세계의 각 분야에서 최고와 최하의 선을 긋고, 또 선한 세계의 최고와 최하의 선을 그어 대각선, 즉 X자를 그어서 수습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람이 합니다. 혁명을 하기는 쉬우나 그것을 수습하기가 어렵습니다. 사람이 수습하기 위해서는 인격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민족을 사랑하고 세계를 사랑하는 심정이 있어야 합니다. 즉 수습하는 데는 인격과 말씀과 심정이 있어야 됩니다.

그 기준은 창조주, 곧 절대자의 인격과 심정이 기준입니다. 이것이 세워졌다고 할 수 있는 내적인 보증은 무엇으로 할 것인가? 이 이념을 위하여 생명을 바쳐 싸웠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있어야 그 앞에 온 세계가 머리를 숙이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말씀을 종합해 보면 하늘은 사람으로 하여금 만우주의 주인공으로 세우기 위하여 역사하신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말은 이념을 대신하고, 생활은 인격을 대신하고, 내용은 심정을 대신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든 것을 갖춘 자가 나타나게 되면 모두가 그 사람을 좋아하고 존경할 것입니다.

통일식구들은 만민을 수습하기 위하여 남이 알지 못하는 자리의 선봉에서야 합니다. 그래야 소망했던 선의 주권, 선의 국토, 선의 백성, 선의 이념을 세울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삼천리 강토를 향해 일제히 나아가서 힘차게 싸워 주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