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55 to 12-158: 단 하나의 존재가 되라

단 하나의 존재가 되라
1963.03.15 (금), 한국 전본부교회

12-155
단 하나의 존재가 되라
[말씀 요지]

오늘 성화학생회의 제3회 수료증 수여식과 제7회 수료예정자 수료식이 겹친 것이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겠으나 이 3수와 7수는 둘 다 복귀섭리역사에 있어서 귀중한 수들입니다.

12-155
언제나 단 하나의 사람이 문제다
오늘 여러분이 참석한 이 자리가 복되다고 한다면 지극히 복된 자리입니다. 이 가운데는 학교를 졸업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일선에서 싸우다가 온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생활 내용은 좋을 때나 슬플 때나 단 하나 뜻을 위한 것이었고, 가는 목표도 단 하나 뜻을 위하는 것이었을뿐입니다.

`나’라고 하는 존재는 전체를 대표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사람입니다. 그`나’가 민족을 대표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민족을 지배할 수 있고, 세계를 대표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세계를 지배할 수 있습니다. 또 천주적인 존재라면 천주의 주관자가 될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는 지금 여러분 한 개인의 움직임을 세계와 천주에까지 연결시켜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또한 전후, 좌우, 상하를 연결시켜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땅 위의 인간들은 더 좋은 인연과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살아가고 있습니다. 더 좋은 개인과 가정과 사회단체가 있다 할지라도 한 사람이 문제입니다. 여러분 7회 수료생과 3회 졸업생들 중에서도 단 한 사람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복귀역사에 있어서는 항상 단 한 사람이 문제였습니다. 야곱 때는 수많은 사람 가운데서도 단 한 사람 야곱이 문제였습니다. 야곱을 세워서 비로소 이스라엘이라고 축복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까지의 모든 역사가 단 하나의 개인을 찾아 나오는 역사였음을 우리는 부인할 수 없습니다. 단 하나의 개인, 단 하나의 가정, 단 하나의 민족, 단 하나의 세계를 찾기 위해 역사가 엮어져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야곱 한 사람을 찾아 세워 가정을 축복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가정을 기반으로 하여 민족을 세워 나오기 위해서였습니다. 민족적인 시대에 있어서 단 하나의 사람으로 찾아 세운 존재가 모세였습니다. 그런데 그 모세는 야곱 가정의 기반을 그대로 이어받았느냐? 아닙니다. 단 하나의 존재로서 80년을 걸어 나온 후에 비로소 민족적인 존재로서 40년 노정을 출발하였던 것입니다. 모세는 불쌍했습니다. 지극히 어려운 시련 도상에서도 단 하나의 인격적인 기준을 세워 가지고 민족적인 단 하나의 존재로서 40년 노정을 출발하였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마음속으로 그리셨던 창조이념은 온 천주와 더불어 아담 해와를 사랑하고 싶은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심정으로 넘쳐 있었으나 인류 조상의 뜻하지 않은 타락으로 말미암아 인간은 창조의 유업을 상속받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숱한 곡절을 겪으며 개인의 기대를 세우고, 가정의 기대를 세우고, 민족의 기대를 세운 후 4천년만에 비로소 메시아를 보냈던 것입니다.

역사상 수많은 사람과 수많은 민족이 있었지만 하늘을 대신하여 하늘의 뜻을 세운 자가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단 하나의 존재로서 하늘을 대신하여 하늘의 뜻을 세워 세계를 구원하는 분이 되셨던 것입니다. 개인적인 대표자와 가정적인 대표자와 민족적인 대표자와 국가적인 대표자와 세계적인 대표자가 나오지 않으면 안 됩니다. 지금 때는 종적인 대표자를 횡적으로 세우는 때입니다.

누군가가 `너는 누구냐?’고 물을 때 `나는 가정적인 단 하나의 존재다’ 아니면 `민족적인 단 하나의 존재다’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이나 목적이 아무리 귀해도 여러분이 그것을 나타내 보이지 못하면 그 뜻이나 목적은 여러분과 아무런 상관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12-157
단 하나의 사람이란
이제 여러분은 각자 돌아가게 되면 젊은이의 기백과 용맹을 가지고 활동하되 그럴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고 또 내적인 인격을 갖추어야 됩니다. 내 자신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는데 누가 나를 인정해 주겠습니까? 이렇다 할 인격을 갖추지 못했을진대 하늘땅 앞에 부끄러운 일입니다.

산을 바라보나 들을 바라보나 벌어지는 일로 보나 지금 때는 하늘 뜻이 이루어져 오는 때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때에 우리는 단 하나의 개인, 가정, 사회, 민족, 국가, 세계가 되어야 합니다. 단 하나의 민족과 단 하나의 사회와 단 하나의 가정은 못 된다 하더라도 단 하나의 내 자신은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민족이 우러러보고 모든 사람들이 흠모할 것입니다.

그러한 자리에서 일하고 싸우게 될 때 믿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말씀이라는 것은 실천에 옮겨야 하는 것입니다. 이 자리에 모인 여러분은 모두 성화학생회 출신으로 7회 혹은 3회와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인연은 끊고 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도 모르게 이 인연의 보따리를 걸머지고 가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이 자리를 떠나게 되면 사방으로 헤어지게 됩니다. 경기도 혹은 충청도 혹은 전라도 혹은 경상도로 흩어져 갈 것입니다. 멀리 가면 멀리 갈수록 우리들에게 인연의 중심에 대한 그리움은 더 할 것입니다. 사람이란 조국을 떠나 봐야 조국에 대한 애착을 더욱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멀리 간다고 해서 인연이 멀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먼 곳으로 가면 갈수록 심정의 인연은 더욱 깊어지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 땅에 선을 세우기 위하여 자기가 바친 것이 있다면 그것과 조금이라도 더 인연을 맺기 위해 노력합니다. 자기의 조국을 떠날 때에도 자기와 관계된 내용과 재료를 수집합니다. 이 땅을 떠나갈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엇을 갖고 갈 것이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단 하나의 존재가 되는 것은 바로 가지고 갈 것을 마련하는 것입니다. 가정에서 단 하나의 존재가 되면 가정의 복을 받고, 민족에서 단 하나의 존재가 되면 민족의 복을 받고, 세계에서 단 하나의 존재가 되면 세계의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가되 혼자 가는 것이 아닙니다. 지방에서 홀로 싸우는 식구를 대할 때 같이 싸우고 싶은 의분심이 동하는 것은 우리가 끊을 수 없는 인연으로 맺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통일교회는 지금 단 하나의 개인과 단 하나의 가정과 단 하나의 창조적인 실체의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싸우고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슬픔이 있다면 그것은 개인적인 슬픔이 아닙니다. 가정에 있어서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가정의 슬픔은 가정만의 슬픔이 아닙니다. 통일교회도 하나의 교회로서가 아니라 대우주적인 목적과 심정의 인연을 중심삼고 슬퍼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축복해 주려고 했던 단 하나의 존재를 인간의 배반으로 말미암아 슬픔과 고통과 십자가의 죽음의 고비로 몰아넣었던 역사를 가지고 계십니다.

여러분은 단 한 사람으로서의 가치를 전체에 대하여 세울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슬픔의 자리와 죽음의 자리에서도 살아 남아질 수 있는 여러분이 된다면 하나님은 믿어 줄 수 있는 자로 인정하여 축복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개인의 자격을 무조건 인정하여 민족적인 승리의 기준 위에 세우려 하시는데 아직 그것이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12-158
단 하나의 존재가 되려면
때는 세계적인 운세가 닥쳐왔는데 그 기준이 안 되면 누가 고충을 받느냐? 통일교회가 그 기준을 못 갖추면 삼천만 민족이 그 고충을 받게 됩니다. 사탄세계를 정복하겠다는 신념이 있어야 합니다. 이 민족이 그 책임을 못하면 그것이 어디로 넘어가느냐? 통일교회로 넘어오게 됩니다.

기쁜 자리에서는 누구나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죽음의 자리와 고통의 자리에서 싸우고 이겨서 단 하나의 존재로 서야 합니다. 어떤 부락에서 일인자가 되면 그 부락 사람들이 믿어 주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슬픈 일이나 기쁜 일이나 어떠한 사정이라도 가지고 와서 의논하게 되니 자연 그들을 주관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천주의 대주재이십니다. 어찌하여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을 부르고 자기의 사연을 전부 토로하느냐? 그것은 그분이 단 하나의 존재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시대가 변하고 환경이 변해도 그 목적을 변치 않고 오시기 때문에, 인간들은 기쁜 일도 슬픈 일도 그분과 의논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는 이제 수료식을 끝내고 각자 처소에 가게 되면 핍박을 받을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거기서 단 하나의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때로는 굶주리는 일도 있을 것입니다. 거기에서도 멋지게 이겨 일인자가 되어야 합니다. 치욕적인 일을 당하더라도 거기에서 단 하나의 존재가 되면 됩니다. 여러분과 같은 입장에 있는 사람은 세상에 많지 않을 것입니다.

뜻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그러한 환경에서 단 하나의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이것을 위하여 받는 모든 시련은 결코 혼자서 받는 것이 아닙니다. 전체가 그 고통과 슬픔을 같이하게 되는 것입니다.

선지선열들은 개인을 위해서 슬픔을 겪은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전체의 뜻과 목적을 위해서 슬픔을 겪으면 그것은 여러분 개인의 슬픔인 동시에 전체의 슬픔입니다. 즉, 선생님의 슬픔이요, 삼천만의 슬픔이요, 인류의 슬픔인 동시에 천주의 슬픔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삼천만이 믿어 줄 수 있고 세계의 전인류가 믿어 줄 수 있는 단 하나의 사람으로서의 통일교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심정을 중심삼은 단 하나의 사람을 세우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단 하나의 사람, 믿어 줄 수 있는 단 한 사람이 되어 하늘의 유업을 상속받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