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43 to 12-150: 공적인 의분심에 불타라

공적인 의분심에 불타라
1963.02.05 (화), 한국 전본부교회

12-143
공적인 의분심에 불타라
[말씀 요지]

여기 모인 여러분의 대다수는 30세 미만의 젊은 사람들입니다. 젊은 사람들은 항상 씩씩하고 용맹하여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의분심이 많은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특성을 잘 쓰면 나라를 살릴 수 있고 더 잘 쓰면 세계를 살릴 수 있습니다.

12-143
수련에 임하는 마음 자세
여러분은 앞으로 수련을 받는 동안 다소간의 생활적인 고통이 있다 하더라도, 공동생활을 하는 만큼 잘 참고 그 환경과 분위기에 잘 적응해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공적인 의분심에 불탈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한 사람으로 만들자는 것이 수련을 시키는 목적입니다. 여기는 그런 사람들을 만드는 곳입니다. 물론 각자 출신 지방도 다르고 그 밖의 여러 가지고 다를 것입니다. 그렇더라도 여기에서 지도하는 대로 모든 일에 잘 응해 주기를 바랍니다. 처음 3일 기간을 넘기가 힘들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 본부를 찾아올 때에는 본부에 대한 기대와 포부가 컸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막상 와서 볼 때 자기가 생각했던 것과 다른 데 대해 다소 실망되거나 상충되는 점이 있다 하더라도 꾹 참고 지내 주기 바랍니다. 또 어떤 때는 손자 같은 사람이 할아버지 같은 분에게 부득이 반말을 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꾹 참고 나가야 합니다. 자기를 잊고 전체를 위하여 사는 공적인 심정을 갖고 나가야 합니다. 어떤 충고를 해야 할 때에도 하는 사람은 아버지를 대신해서 해야 하고 받는 사람은 아버지가 하시는 것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항상 공적인 기준을 중심삼고 사는 내가 되어야 합니다. 아직까지 이 대우주에는 공적인 기준이 없었습니다. 과거, 현재가 공인하고 미래에서까지도 공인받을 수 있는, 삼세(三世)가 공인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없었습니다. 최고의 공적인 기준이 나타나면 우주가 꽉찹니다. 공적이라는 것에는 모든 것이 다 들어갑니다. 개인과 가정과 국가의 모든 것도 공적으로 해야 합니다. 공적 기준을 찾지 못한 사람은 `나’를 찾을 수 없습니다. 인간은 공적인 기준 앞에 흡수되어야 합니다.

처음 6일 기간을 넘기고 일주일째쯤에는 수련회의 맛을 느낄 것입니다. 그리고 2주일이 지나고 3주일쯤, 그러니까 20일쯤 지나야 비로소 본 궤도에 오르게 됩니다.

이제 여러분은 혼연일체가 되어 이번 40일 기간을 잘 지내 주기를 부탁합니다. 특히나 지금은 물이 나오지 않습니다. 배가 고프고 물이 없으면 사람은 당장 곤란을 당합니다. 몹시 갈증이 나고 배가 고플 때에 물이 있다면 얼마나 감사하겠습니까? 물이 있으면 우리는 배고픈 가운데에서도 감사함을 느끼게 됩니다. 더 나아가서 먹을 것도 없고 마실 물도 없을 때에 공기를 마셔보십시오. 그러면 그 공기가 얼마나 맛이 있는가 하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밥도 조금 주고, 물도 조금 주고, 공기도 조금 씩 주어 겨우 살 수 있게끔 하여 훈련을 시켰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거기서 감사함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을 만들고 싶습니다. 그뿐 아니라 태양 빛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제일 귀한 것이 항상 싸구려 취급을 받고 있습니다. 제일 귀한 것을 무가치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악한 사람입니다. 태양, 공기, 물, 쌀과 같은 것들이 동맹파업을 하면 사람들은 꼼짝없이 죽습니다. 그래서 이런 것들에 대하여 귀함을 느끼기 위해서도 수련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여러분에게 하고 싶은 말씀을 몇 마디 하고자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똑같이 사지백체와 이목구비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몸이 갖고 있는 내용에 있어서는 천태만상입니다. 그러면 이와 같은 천태만상의 내용을 갖고 있는 수많은 인간 가운데서 `나’라는 사람은 어디에다 기준을 두고 보아야 할 것인가? 아담 해와 이후의 우리 조상들 누구도 기준이 되지 못합니다. 우리가 복잡한 이 세상에서 관계맺고 있는 모든 것에서 잠시 떠나서 혼자 조용히 자신을 성찰해 보게 되면, 나라는 사람은 절대적인 존재가 아니라 상대적인 존재인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손, 눈, 코, 입, 팔, 다리 등 모두가 상대적인 목적 때문에 움직입니다. 이것들이 하나의 목적을 놓고 합해질 때에는 상대적인 어떤 대상체를 필요로 합니다. 이렇게 하여 움직이게 될 때에 거기에 좋으니 나쁘니 하는 무엇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12-145
종교의 길
나라는 자체는 이 천지의 어디에서 비롯된 것이냐? 인간은 이 근원을 모릅니다. 미지의 존재로부터 내가 나왔어요?

그러면 나는 왜 나왔느냐? 무엇인가 목적하는 것이 있어서 나온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내 자신이 어떤 상대의 주체가 되고 또는 상대가 된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여기에 필요한 조건적인 내용이 있을 것이니 그것은 어떠한 것이냐? 이것은 중대한 문제입니다. 오늘의 내가 있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내 주위에는 전후, 좌우, 상하가 있습니다.

그러면 내 주위에 있는 것 중 내가 있게 된 동기, 주체는 무엇이냐? 그것은 하나님입니다. 이를 신이니 God이니 가미사마(神樣)니 하고 불러 온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목적관은 인간 위주의 관뿐만 아니라 신과 인간의 관계에 의한 관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한편은 신이 있다. 다른 한편은 신이 없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인간에게는 `나’라는 현재의 실체를 중심삼고 미래에 이루어야 할 목적하는 실체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배경으로 목적하고 있는 제일 기준은 몸이 아니라 마음입니다. 사람에게 변치않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이겠는가? 양심입니다.

다리를 놓아서라도 나아가야 할 뜻이 있다면 그것은 신의 목적입니다. 그것이 뜻입니다. 일초의 몇백 분의 일의 시간에서도 뜻을 세우지 않으면 목적의 세계로 갈 수 없습니다. 부모가 나를 때릴 때에도 나를 위해서, 나를 훌륭하게 만들기 위해서, 나에게 천 배 만 배의 복을 주기 위해서라는 것을 알면 고마움을 느낄 것입니다. 속담에도 `미운 자식에게 떡 한 개 더 주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빨리 미움의 결실을 맺으라는 것입니다. 반대로 `고운 자식에게 매 한 대 더 때리라’는 것에는 빨리 소망에 합당한 실체가 되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가정과 사회의 모든 신의가 다 깨어져 나가는 것은 어떠한 동기가 반영되어 나타나는 결과입니다. 살인, 강도 등 불의의 행위를 하여 생긴 것을 먹는 것은 먹고 나서도 스스로 분한 것이 됩니다.

12-146
불행한 현실
오늘날 사회를 볼 때 어떤 것이 참인지 알 수 없습니다. `어머니! 할머니!’ 하는 명사는 같은데 내용은 모두 다릅니다. 또 탄식이 파동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조금만 잘못하면 죽게 되는 것이 오늘날 세계적인 현상입니다. 우리는 그러한 입장을 피하여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여야 하느냐? 참답게 사는 데 지장이 되는 것들은 모두 끊어 버려야 합니다. 팔, 머리, 가정이라도 지장이 되는 것은 모두 끊어 버려야 합니다. 악의 주조(主潮)에 휩쓸리지 말고, 다리를 놓아 딴 길로 들어서야 합니다. 용단을 내려 딴 길로 가십시오. 그러한 가운데서 하나님을 중심삼고 의지하며 나아가는 것이 종교인입니다. 사회에서도 뜻있는 길을 가기 위해서는 어머니, 아버지까지도 버리는 것입니다. 예수가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마 19:29) 하신 것은 이러한 천적인 뜻을 놓고 말씀한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어디로 갈 것인가? 마음이 편안할 수 있는 길을 택해야 합니다. 시대시대에 따라 후퇴하고 도피하는 작전이 있는데 도(道)도 그러한 것입니다. 여기에는 반드시 인간 이상, 즉 나 이상의 주체가 있어야 합니다. 시대시대마다 반드시 지도자가 있었고 혁명이 있었습니다. 여기에서 한 차원 높은 세계를 추구하여 나온 것이 종교의 이념입니다. 이와 같이 혁명을 일으키는 데는 지도자도 있어야 하지만 이념이 있어야 합니다.

하늘땅의 목적을 이룰 수 있는 실체가 필요합니다. 이는 종교적인 지도자로서, 곧 메시아 사상에 의거한 중심존재입니다. 그런 중심존재가 있어야 신의 실존을 부정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존재는 인간 전체의 중심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분만 만나면 전후, 좌우, 상하를 알 수 있습니다. 그분은 하늘의 이념을 가지고 오는 동시에 동기의 세계와 결과의 세계를 제시할 수 있는 열쇠를 가지고 옵니다.

오늘날 존재하고 있는 모든 것이 기쁨을 누리고 있습니까? 기쁨의 개인, 가정, 사회, 국가, 세계가 되었습니까? 못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세계는 하나님의 창조의 동기에 의해서 되어진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봅시다. 팔은 곰배팔이요, 입도 코도 찌그러지고 거기에다 소경이어서 아주 볼품없으나 아기를 갖고 있는 부인과 남편이 있다고 합시다. 그 부부에게 복중에 있는 아기에 대하여 물어 보십시오. 다 좋다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복중에 있을 때는 좋다고 하지만 낳아 놓고 보면 슬픈 세상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지으실 때 `아이고, 슬프다’ 하는 마음으로 지으셨겠습니까? 아닙니다. 아주 맛있는 음식을 대할 때와 같은 마음을 가지고 창조를 하셨습니다.

만약에 창조 당시부터 슬픔이 있었다면 하나님은 아버지가 아니라 원수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어디까지나 선하신 분이십니다. 동기가 선이면 과정도 결과도 선해야 됩니다. 그런데 창조의 동기와 출발은 선인데도 불구하고 인간 생활의 출발은 악이었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슬픔의 날이 계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은 세계성을 지니고 창조되었기 때문에 개인의 슬픔은 가정적, 민족적, 국가적 또 세계적인 슬픔으로 연결되는 것입니다. 개인적인 고통과 슬픔과 죄는 모두, 가정, 사회, 민족, 국가를 넘어 세계적인 것이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에게 최대로 기쁠 수 있는 하나의 조건이 있어야 하나님이 기쁘실 수 있습니다.

우리의 몸뚱이는 슬픔과 접하려고 하고 마음은 기쁨과 접하려고 합니다. 마음은 몸뚱이를 반대하고 몸뚱이는 마음을 반대하는 입장에 있습니다. 마음은 내적인 동시에 정신을 대신하고 몸은 외적인 동시에 물질을 대신합니다. 이렇게 마음과 몸이 상반되어 있는 나처럼 세계가 벌어져 있습니다. 이렇게 아직 하나의 중심기준이 완전히 서지 않았으니 갈라내야 합니다.

유심론도 유물론도 완전한 참은 아닙니다. 때문에 이것을 예상하시고 섭리해 나오신 하나님은 구세주를 보내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구세주 사상입니다. 완성한 인간을 지배해 보아야 하나님이 하나님 노릇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전세계와 어떤 주권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사람입니다. 그분이 나타나게 될 때에 비로소 우주의 중심이 나타납니다. 구세주는 소망의 대상이요 실체입니다. 그는 세계적인 고통을 피할 수 있는 실체입니다. 소망의 실체가 되니 승리의 실체로 나타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수많은 선한 사람들을 희생시켜 나오셨습니다. 구상하셨던 선의 실체가 악의 실체가 되어 버렸으니, 이것을 다시 본연의 실체로 만들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최고의 수고의 왕자가 되신 것입니다. 선은 승리한다고 하며 하늘을 믿고 나온 것이 종교인들입니다.

12-148
천주주의의 주체로 오시는 주님
그분이 오시면 그분을 닮아야 합니다. 그러면 그분은 어디로부터 오시는 것인가? 하나님의 심상으로부터 오십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창조이상의 실체이십니다. 사방을 활기있게 만들고자 오시는 주체요 실체입니다.

지금까지의 사람은 모두 가짜입니다. 여러분은 모두 `가짜의 나’입니다. `거짓의 나’요, `악의 창고’입니다. 마음에서부터 이것을 청산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배워야 합니다. 사지백체라도 합당치 않다면 잘라 버려야 합니다. 손이 합당치 않으면 손을 잘라 버려야 살 수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 줄 아십니까? 개는 주인을 위해 밤잠을 자지 않고 지켜 줍니다. 그런데 사람은 그렇게 했습니까? 여러분의 눈, 귀가 귀합니까? 그것들을 귀하게 여기는 것만큼 하나님을 생각해 보았습니까?사탄의 물결을 다 차단해야 합니다. 선을 위하다 쓰러지는 자리에 서야 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천지의 만유가 악의 권내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천주주의를 중심삼고 선의 세계를 세우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이루어 드려야 할 하나님을 중심한 천주주의 세계입니다. `천주주의를 가지고 내가 하늘땅 앞에 섰다’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주체가 홀로 찾아오시니 그분이 기독교에서 말하는 구세주입니다. 이러한 뜻을 알고 여러분은 그분과 동고동락해야 합니다.

인간이 자기 스스로 책임을 못하니 자연 다리를 놓아 줄 매개체가 필요한 것입니다. 책임을 하는 데 있어 아브라함은 개인형, 야곱은 가정형, 모세는 민족형, 예수는 세계형의 매개체입니다. 이렇게 차례로 내려온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 가정, 민족, 세계를 통하는 종교라야 역사적인 종교입니다.

앞으로 오실 그분은 개인적, 가정적, 민족적, 국가적인 기준 위에 세계적인 사명을 가지고 하나님을 대신한 실체로 나타납니다. 또한 그분은 섭리의 완결적 실체로 오시며, 동시에 역사상에 왔다 간 모든 사명자의 역할을 대신하러 오시는 분입니다. 일을 성취하면 성취한 만큼 한이 풀립니다. 이제는 메시아가 와서 이상세계를 건설하여야 합니다.

인간은 누구나 이상적이며 세계적입니다. 모두 잘되려고 합니다. 여러분은 얼마만큼 잘되고 싶습니까? 얼마만큼의 욕심이 채워지면 만족하겠습니까? 하나님의 종? 사위? 그것도 불만일 것입니다. 하나님의 유산까지 가지고, 하나님의 귀를 잡고 춤출 수 있기를 바랄 것입니다. 사람의 욕심은 다 그렇습니다.

그러면 종놈이 그렇게 할 수 있습니까? 절대로 할 수 없습니다. 그건 누가 할 수 있느냐? 아들딸입니다. 아들딸이라야 하나님께서 `허허’ 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명사를 가지고 있으면 만사에 통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그런 입장이라면 하나님도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소망입니다. 하나님의 종과 백성, 그 누구도 할 수 없지만 오직 아들딸만은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참다운 선을 세워 하나님과 뗄래야 뗄 수 없는 하나의 실체가 되어서 `내 아버지!’하고 부를 수 있어야 합니다.

아들딸만이 승리의 영광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아들딸을 찾아 나오신 것입니다. 이것을 찾기 위한 종교가 기독교입니다. 그런 이유에서 우리 통일교회도 기독교를 중심으로 하여 나온 것입니다. 하늘이 좋고 내가 좋을 수 있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여러분이 여기에 온 것은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기 위해서입니다. 수련을 받는 목적은 단시일내에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상투 끝에 올라가 춤만 추면 되느냐? 하나님께서도 춤을 추실 수 있게 해드려야 합니다. 그것은 완성한 미의 실체인 아들딸로 인하여서만이 가능합니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아들딸에게 재롱감으로 준 것이 만물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만물 창조는 아들딸을 위한 것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12-150
아버지를 기쁘게 해드리는 아들딸이 되라
우리와 하나님이 소원과 사정이 일치되어 심정이 통하게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무엇을 하시려는 것이냐? 만물을 상속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실체가 되어 만물을 거느리고, 그러한 입장에서 아들딸을 낳아 그 아들딸에게 모든 것을 상속해 주기를 바라셨던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되어야 아까 말한 전후, 좌우, 상하를 찾아 세운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부모가 없고, 부부를 못 이루고, 자녀가 없으면 슬픈 것입니다. 이것을 모두 갖추어야 하는데 이것이 바로 3대상입니다. 이것을 중심삼고 천하를 품어야 합니다. `아버지는 나의 아버지다. 그러니 아버지께서 지으신 천주는 나의 것이다’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역사적인 소망의 심정도 나의 것이요, 현실적인 사정도 나의 것이요, 이루시려는 미래의 세계도 나의 것이다’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신랑 신부의 이념과 자녀의 명분을 남겨 놓았기 때문에 만왕의 왕은 다시 찾아 나오시는 것이며, 이 왕의 아들딸이 되는 것이 인간의 소망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정과 사정과 뜻을 통하기 전에는 이 소망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인간세계에서는 통할지 몰라도 하나님을 중심한 천상에서는 통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들딸이요, 부부요, 형제라고 할 것이 못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도 `누가 내 어머니며 형제냐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라고 하셨고, `너희 집안 식구가 원수다’ 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아버지를 모시고 있는 맏아들을 맞아야 아버지의 소식을 알 수 있는데, 맏아들의 입장에 있는 분이 메시아입니다. 그래서 인간들이 그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분을 맞이해서 `축복을 해주시옵소서’ 하여 축복을 받아야 비로소 인간으로서 제 일보를 내디딜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모든 만물이 나로부터 떠날 수 없게 할 수 있는 자격인 것입니다.

과거의 역사는 피와 눈물로 얼룩진 고통의 역사였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주시기 위해 고통을 당하셨고, 조상들은 받기 위해 고통을 당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심정과 인연을 맺어 가지고 하나의 주권과 국토와 백성을 갖추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부모와 부부와 자녀라는 인간의 공식적인 법도를 찾기 위해 있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