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19: 승리적 주관자가 되자

승리적 주관자가 되자
1963.01.01 (화), 한국 전본부교회

12-119
승리적 주관자가 되자
[말씀 요지]

금년, 1963년도의 표어는 `승리적 주관자가 되자’이다. 지난 3년간은 인간으로서 상속받을 수 있는 모든 조건을 갖추어야 할 기간이었다. 그러나 금년부터는 그 단계를 넘어서 만물복귀를 하는 해로 들어가니 앞으로는 계속적으로 같은 표어를 쓴다.

그래서 성지복귀도 필요한 것인데 어떻게 해서든지 성지를 사야 하고, 일단 사게 되면 절대로 팔지 못한다. 살아도 성지 가까이에 가서 살고, 죽더라도 성지 가까이에 가서 묻히려고 해야 된다.

성지는 핏값을 모아서 사야 한다. 즉, 인류의 부모로 오셨던 예수님을 판 핏값을 내서 사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부터는 장사해서 모은 돈은 거룩한 돈이다. 장사를 하더라도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되고 또 폭리를 남겨서도 안 된다. 얼마를 주고 산 것인데 얼마를 받는 것이라고 솔직히 말해야 한다. 이익을 3할 이상 남겨서는 안 된다.

만물의 주관주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승리해야만 된다. 그러면 승리는 누구를 중심한 승리냐? 하나님을 중심한 승리다. 그것이 최고의 승리이다. 우리의 표준은 그것이다.

현재 우리는 어떤 기준의 승리를 거두었는가? 우리의 울타리권내에서, 하늘땅 앞에 있어서 우리를 공격하던 싸움이 끝났을 뿐이다.

지금은 정지상태와 같다. 즉, 후방에 와 있는 입장이다.

그동안 우리에 대해 좋은 소문도 났고 나쁜 소문도 났다.

이제부터는 준비를 해서 공세를 취해야 한다. 지금은 그럴 때다. 승리를 위하여 나갈 기간이 앞으로의 4년 기간이다. 지금까지는 방어적인 투쟁을 해 왔지만 앞으로 4년간은 공세적인 투쟁을 해야 한다.

지금까지 영계와 육계가 우리를 향하여 공세를 취해 오던 모든 것은 스러지고, 우리는 밤과 같은 기간을 지나 아침을 바라보고 나아간다.

모든 것이 사탄세계보다 나아야 한다. 그래야 승리한다. 전체적인 승리를 항하여 공세를 취하고 투쟁해야 한다.

지금까지의 싸움은 사탄이 쳐도 깨지지 않을 가정적이고 종족적인 기준을 세우기 위한 것이었다.

사람을 복귀했으니 이제는 경제적인 발판을 세우고, 격심한 시련에서도 남아질 수 있는 사람을 만들어야 한다.

열 번을 싸운다고 할 때 반은 진다 하더라도 내용적으로 보면 지는 것이 아니다.

이제부터 도처에서 악질분자의 뿌리를 뽑는 사건을 많이 만들려고 한다. 내놓고 육친의 부모에게 불효를 해도 사탄이 참소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보다 높고 큰 뜻을 위한다는 기준이 있기 때문이다.

야곱과 같은 지혜를 가지고 환경을 주관해야 한다. 광야에서 처량한 꼴을 하고서도 `아직 40년이라도 나는 또 간다’ 하는 늠름한 신념을 가져야 하고, 본향 땅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간절해야 한다.

가나안 땅이 어디냐? 교회는 법궤가 있는 곳이다. 법궤가 있는 곳에 먼저 가야 한다. 그곳은 아버지께서 모든 승리를 완결지어 주관하시고 기뻐하시는 곳이다.

가야 할 곳은 모르지만 마음은 하나님과 일치해야 한다. 찾아 주고 싶어하시는 하나님의 마음과 찾아가는 우리의 마음이 일치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가다가 쓰러진다. 목표는 오직 하나뿐이다. 즉, 원수를 향하여 함께 공세를 취하는 것뿐이다.

정복해야겠다는 마음은 변함이 없다. 이 땅의 사상을 가진 어느 단체보다도 강한 신념과 목표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 목표를 위하여 돈을 써야 한다. 이것을 위한 기간이 경제적 기반을 닦는 4년간이다.

앞으로는 공밥을 안 먹인다. 하나님께 신세를 져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예수님의 핏값을 내야 하는 동시에, 선생님이 걸은 모든 고난의 노정에 대한 탕감기금도 바치는 것이 원칙이다.

앞으로는 말부터 조심하고 고쳐야 한다. `아이구 죽겠다’는 말을 써서는 안 된다. 말도 행동도 심정도 사탄세계와 달라야 한다. 또한 관(觀)도 달라야 한다.

우리는 항상 생활적인 면에서 사탄세계와 달라야 하고, 사탄세계를 주관해야 한다. 그런 정신으로 살아야 한다. 조금이라도 사탄세계보다 앞서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주관자가 되지 못한다. 주관자가 되려면 조금이라도 나아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