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5 to 12-100: 양심을 스승삼고 나가서 싸우라

양심을 스승삼고 나가서 싸우라
1962.12.10 (월), 한국 전본부교회

12-95
양심을 스승삼고 나가서 싸우라
[말씀 요지]

오늘은 40일 수련회가 끝나는 날입니다. 이제 수련생 여러분은 고향으로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차피 고향으로 돌아가야겠지만 돌아가기 전에 여기 올 때와 갈 때의 자신이 어떻게 달라졌는가를 비교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 뜻을 알기 전과 알고 난 후의 차이를 스스로 정리하고 인식해야 되겠습니다.

12-95
출발하는 여러분이 세워야 할 것-양심의 기준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 올 때의 나와 갈 때의 나는 달라져야 합니다. 과거에 스스로 설 수 없었던 내가 설 수 있게 되었고, 믿을 수 없었던 내가 믿을 수 있게 되었는가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여러분은 당당히 스스로를 보여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깨달음의 도수에 의해서 가는 길이 좌우됩니다.

여러분은 과거에 자기 마음대로 살았습니다. 뜻을 몰랐을 때는 자기 마음대로 살아도 자신이 불쌍하다는 것을 몰랐을 것입니다. 그 생활 속에서 여러분은 남이 믿지 못하는 것을 나는 믿는다고, 남이 가지지 못한 것을 나는 가졌다며 보여 주고 자랑하고 싶어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문제는 여러분들이 이 뜻을 얼마만큼 깨달았느냐 하는 것입니다.

과거에 믿을 수 있었고 보여 주고 자랑할 수 있었던 것도 시대가 변함에 따라, 영원한 것이 못 되고 변했던 것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생각하면 불쌍한 세상이요, 불쌍한 자신임을 느꼈을 것입니다.

사람이란 자기가 앉아 있는 자리보다 더 높은 자리, 더 좋은 곳을 바라게 되어 있습니다. 말단 부락에 있는 사람은 부락보다 큰 면을 대신한 자체가 되고 싶어 하고, 그 다음엔 군을 대신하고 싶어하고, 그 다음에는 도를, 더 나아가 나라를 대신하고, 세계를 대신하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이 뜻과 소망을 잃지 않는 기준을 세워야 합니다. 더욱 양심을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이 양심을 중심삼고 세계를 사랑하면 세계의 친구가 되는 것이요, 나라를 사랑하면 애국자가 되는 것이요,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께서 움직일 수 있는 입장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러한 양심을 중심삼고 얼마나 살아 보았습니까? 여러분의 과거의 삶은 어떠했습니까? 양심 앞에 반역자였습니다. 그러니 오늘 떠나는 여러분에게는 바로 이 양심의 기준이 확고히 서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이제부터 가는 곳은 천국이 아닙니다. 동서남북이 터 있는 개방된 자유의 곳이나 나를 때려잡기 위한 원수의 올가미가 널려 있는 곳입니다.

사람들이 오리를 잡을 때는 오리가 잘먹는 미끼를 갖다 놓습니다. 여러분은 그러한 사탄의 올가미에 까딱 잘못하면 걸립니다.

여러분들이 가야 할 무대는 원수의 세계입니다. 거친 광야와 같은 곳이어서 이리와 늑대와 사자가 노리고 있는 곳입니다. 여러분은 그러한 곳으로 가야 합니다.

여러분은 그러한 환경을 제압하고 설 수 있는 자신이 되어야 합니다. 가는 그 순간부터 `마음아! 내 가는 길에 친구가 되어 다오’ 하며 결코 곁길로 가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에서 열까지 마음을 붙들고 나갈 줄 아는 여러분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가는 곳에는 스승도 없습니다. 잘못했을 때에 마음이 기합을 주고 침을 주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은 적어도 3분의 2는 올바른 길로 가는 것입니다. 복귀도상에선 그렇습니다.

멀지 않아 `양심적인 인사는 나오라’고 외쳐야 됩니다. 자신을 명령하고 지도할 수 잇는 양심적인 바탕을 가져야 합니다. 양심을 기반으로 하여 배우고 실천한 것은 역사에 남고, 하늘의 용사로 싸운 것은 하늘땅 앞에 자랑의 조건이 되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믿고 싶은 사람을 찾아도 없었습니다. 양심이 자꾸 배우라고 합니까? 예수, 석가, 공자 모두가 다 그렇게 많이 배우지 않았습니다. 언제나 역사를 이끈 사람들은 많이 배운 사람보다도 양심의 기반 위에 서있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과거의 사람이나 현재의 사람이나 모두 배우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지식이 많은 학박사와 마음이 선한 사람 중 하나님은 어느 쪽을 택하시겠습니까? 아마도 방금 협회장이 말한 바와 같이 심정을 중심삼고 움직이는 사람을 택할 것입니다.

12-97
양심은 하나님의 집
함부로 믿을 수도 없고 배울 수도 없는 세상입니다. 잘못 배우면 큰일납니다. 마음놓고 살 수도 없습니다. 빨갱이와 살다가는 큰일나지 않습니까? 싸움도 잘못 싸웠다가는 큰일납니다. 함부로 싸울 수도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도의 길은 모든 것을 버리며 가는 길이며 양심을 찾아 나아가는 길입니다. 양심이 무엇을 요구하고 무엇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지, 이것을 알면 됩니다. 과거에는 양심에 반대되는 것과는 싸울 용기조차 갖지 못했습니다.

양심은 무엇이뇨? 하나님께서 믿으실 수 있는 집이요, 하나님께서 같이 사실 수 있는 집입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믿을 수 있는 인간을 기다리십니다. 참답게 믿을 수 있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에게는 믿음과 소망이 있어야 되겠습니다.

오히려 싸우지 못한 것이 다행인지도 모릅니다. 잘못하면 사탄이 집어 가고 맙니다.

여러분의 과거는 어찌하여 불행하였던가? 배우고 싶고, 믿고 싶고, 남기고 싶어도 할 수 없었습니다. 진정한 `나’와는 관계가 먼 생활을 해왔기 때문에 불행했던 것입니다.

양심적인 사람은 이 세상에는 고충밖에 없기 때문에 이 세상을 피하고 싶어합니다. 양심은 선을 찾아가라고 뒤에서 명령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양심이 고대하던, 믿을 수 있는 무엇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들으면 들을수록 좋고, 배우면 배울수록 좋은 것, 양심이 고대하던 것을 찾았습니다.

이것은 모든 것이 죽는 것보다 더 두려운 것이라고 해야 합니다. 이 내용대로 생활하고 싶어하는 것이 양심입니다. 그 내용대로 사는 사람은 싸우고 싶어도 싸울 것이 없습니다. 그런 사람이라 할진대, 그는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홀로 있다 할지라도 외로운 사람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은 부모와 같이 살면서도 부모를 믿을 수 없었고, 형제와 같이 살면서도 형제를 믿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여러분은 영원히 믿고 같이 살 수 있는 분과 하나 되었는데, 이것이 역사적인 행복입니다.

같이 믿고, 같이 배우고, 같이 살고, 같이 악을 심판하고, 같이 선을 세우고자 하시는 최고의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이것을 발견하고 마음이 명령하는 대로 행동한다 할진대, 그는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즉, 절대적인 하나님편에 서서 선과 함께하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12-98
제일 귀한 사람이란
하나님을 발견한다는 것은 무엇이냐? 만사를 해결하는 절대의 중심인 그분과 나와는 아버지와 자식의 관계라는 것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러면 절대의 중심인 그분과 나와 하나가 되는 것이요, 마음은 아버지요 몸은 아들로서 부자가 동거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음은 아버지의 대신, 몸은 아들의 대신이라는 입장에서 아버지와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아들로서 아버지의 명령을 받는다 할진대 천하의 누구도 이것을 빼앗지 못합니다.

양심의 명령을 받는 것은 아버지로부터 명령을 받는 것과 같습니다. 마음의 소원은 아버지의 소원인 동시에 나의 소원이요, 몸의 소원이요, 만물의 소원인 것입니다. 그러한 양심은 내 몸도, 천지 만물도 모두 좋아합니다.

앞으로는 사람이나 어느 국가가 영원히 남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소원과 하나님의 사정과 하나님의 심정이 남는 것입니다.

이것이 모두 다르다면 피조물과 인연을 지을 수 없습니다. 소원은 하나의 인연 가운데 있습니다. 하나님의 소원과 내 소원, 즉, 양심의 소원, 몸의 소원과 만물의 소원이 하나의 인연 속에 있는 것입니다. 때문에 내 양심의 소원이 이루어진다면 하나님의 소원도, 몸의 소원도, 만물의 소원도 다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천하를 걸어 놓고 염려하는 사람이 되고, 뜻을 이루다가 못 하면 후손에게 유언이라도 하고 갈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한 사람의 후손은 결코 망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곧 소원의 일치이니 통일의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영원히 남아지는 것은 하나님의 소원과 하나님의 사정과 하나님의 심정이요, 내가 남겨 놓아야 할 것도 하나님의 소원과 사정과 심정입니다. 이것이 3대 요건입니다. 하나님은 소원과 사정이 성취되어 기쁜 심정을 가지셨습니까? 아직까지 그렇게 되지 못하였습니다. 마음대로 치리(治理)하시지 못하고 지금까지 인간을 찾아 나오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니 얼마나 불쌍하신 하나님입니까?

우리 원리는 어떻게 하여 인간과 하나님이 이렇게 되었는가를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 소원과 사정과 심정은 서로 통해야 됩니다. 최후의 담은 이것입니다. 때문에 제일 귀한 사람이란 하나님의 소원과 사정과 심정을 알아 이루어 드리는 사람입니다.

성경에도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라고 하지 않았는가? 인간이 하나님의 소원과 사정과 심정과 일치되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이 타락의 원인입니다. 그렇게 못 되어 있는 것을 되도록 하려는 것이 타락의 원인입니다. 그렇게 못 되어 있는 것을 되도록 하려는 것이 구원입니다. 구원은 복귀요, 복귀는 돌이키는 것입니다. 그것은 처음보다 배 이상의 힘이 드는 것입니다.

아무렇게나 사는 것은 쉽지만, 양심을 위해 하나님을 위해 사는 것은 배 이상의 힘이 듭니다. 하물며 천지를 위하여 사시는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힘이 드시겠습니까? 법도대로 하시기에 힘이 드시는 것입니다. 더구나 6천년이나 거꾸로 돌아간 것을 돌이키려면, 그보다 더 힘을 들여야 하니 얼마나 힘이 드시겠습니까? 그러니 불쌍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이러한 소원과 사정과 곡절이 있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아직까지 근심 가운데서 떠나시지 못하고 계십니다. 마찬가지로 뜻을 품은 사람도 뜻이 이루어질 때까지는 근심을 떨쳐 버릴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제 내일부터 남한 각지로 떠나야 합니다. 하나님과, 여러분과, 여기 있는 스승이 해야 할 일은 이 근심스러운 것을 해결하는 것입니다. 양심의 근심, 몸뚱이의 근심이 연장되어 가정과 사회와 국가와 세계에 뻗쳤으니 결국 온 천주가 근심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나라를 위하여 근심하는 사람은 애국자요, 하나님을 위하여 근심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딸입니다. 나라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은 나라의 장래를 위하여 걱정하는 자녀를 낳는 것입니다. 세계적으로 볼 때도 이러한 민족과 사람들을 가진 나라는 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러한 사람들만이 낡은 역사를 바로잡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 바로 이러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심정과 소원과 사정과 일치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한 자리에 서야 모든 것이 출발되는 것입니다.

12-100
선생님의 부탁
여러분은 자신의 몸과 마음의 생활을 위하여 근심하지 마십시오. 우선 찾아가는 마음을 위하여 근심하십시오. 여기에도 하나님의 소원과 사정과 심정이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여러분의 마을에 찾아오신다면 이 세 가지를 풀어 드려 편안하게 하룻밤이라도 쉬고 가실 수 있도록 해드리겠다고 해야하겠습니다.

여러분의 근심은 죄악의 아들딸들을 하나님의 아들딸로 만들기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오늘날 개인, 사회, 민족, 나라, 세계를 하나님께서 근심하고 계신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선생님은 40평생 동안 한시도 이것을 잊은 적이 없습니다.

나라의 재건을 위하여 근심하는 사람은 나라가 필요로 하는 사람이요, 하나님을 위하여 근심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필요로 하는 사람입니다. 가정을 위하여 근심하는 사람은 가정이 필요로 하는 사람이요, 마을을 위하여 근심하는 사람은 마을이 필요로 하는 사람입니다.

뜻의 곡절을 대하면 분하고 원통해서 눈물을 흘려야 합니다. `참고 사오니’ 하고 기도하게 되면 힘도 주십니다. 하나님의 심정이 통한다 할진대 여러분이 가는 길은 결코 멸망의 길이 아니라 승리의 길입니다. `이 땅아 지금은 이러하지만 몇 해 후에 보자!’ 하는 기개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이 소원하는 가정과 민족을 위하여 염려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된다 할진대, 아무 것도 갖지 못하고 배우지 못했다 할지라도 불쌍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반드시 재기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보는 눈과 말하는 입이 세상 사람과 다릅니다. 하나님의 소원을 풀어드릴 수 있는 무엇이 있다 할진대 모든 것을 제쳐 두고 하여야 합니다. 부락에 풀어야 할 문제가 있다면 만사를 제쳐 두고 그것을 풀어 나가야 합니다. 가진 것이나 다른 어떠한 것도 필요 없습니다.오직 하나님을 위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 마음을 가지고 근심하고 실천해야 사탄의 참소를 면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나를 보내 주시옵소서’ 할 때, `오냐! 네가 가서 네 부락과 면과 군과 도를 구하고, 더 나아가 나라를 구하라’ 하실 수 있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이것을 위하여 결의하고 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 결심은 어디로부터 오느냐? 원수에 대한 의분심에서부터 옵니다. 이 원수는 나와 온 세계에 꽉 차 있고, 6천년간 악을 행해 온 원수라는 것부터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알고 실천하면 하나님의 사정이나 심정과 통할 수 있고,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어 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아버지를 모시고, 아버지와 하나 되어서, 양심은 아버지요 몸뚱이는 아들이라는 심정을 품고, 하나님을 위해서 가달라고 하는 것이 오늘 헤어져 가는 여러분에게 하는 말씀이요 부탁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