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1: 실천과 복귀

실천과 복귀
1962.11.27 (화), 한국 전본부교회

12-91
실천과 복귀
[말씀 요지]

만물을 짓기 전부터 하나님은 생각하는 아버지요, 실천하는 아버지이시다. 그러한 하나님께서 당신 대신 세워 놓은 것이 아담 해와이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아버지이신 당신을 생각하고, 만물을 생각하고, 당신이 하신 것을 생각하고, 그 다음으로 자신들을 생각하기를 바라신 것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한 것이 타락이다.

하나님의 창조의 심정을 체휼할 수 있는 아담이 되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하나의 책임 분야를 남겨 놓고 아담이 그 과정을 지나가기를 바라셨다.

자기를 중심삼고는 그 어떠한 일을 한다 해도 하나님 앞에 세워질 수 없다. 하나님이 복귀역사를 하시는 목적은 먼저 생각하고 실천하시는 그 하나님을 알고 실천하는 사람을 만드는 데 있다.

나를 세워 실천하고 행동하게 하시려는 것도 우리에게 책임분담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심적 기반을 찾아 세우는 것이 복귀역사다. 그러므로 우리의 모든 생각은 아버지의 창조이상 실현에 가 있어야 한다.

우리는 가정생활과 사회생활에 있어서 제2의 하나님과 같은 입장에 서야 한다. 천지를 창조하시던 하나님의 심정으로 자기 자신을 찾고 창조목적대로 실천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을 하지 못하면 하나님이 아담 해와에게 `따 먹지 말라’고 했듯이 여러분도 그런 입장에 놓이게 된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과 같이 생각하고 실천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은 흑암 가운데에서 창조하셨다. 좋은 데에서 창조한 것이 아니라 좋지 않은 자리에서 창조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도 어려운 곳에서부터 출발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어려울수록 사람을 그리워하셨다. 고로 우리도 제일 낮은 자리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생명을 잉태하기 위해선 입덧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도 천지를 창조하기 위해 수고하셨듯이 내외적으로 고통을 거쳐야 비로소 생명이 태어나게 되는 것이다.

아기는 천지창조와 같은 과정을 거쳐 태어난다. 곧 그 생명체는 천지를 상징하고 있다. 부모가 모든 정성과 마음을 아기에게 쏟는 것같이 하나님께서도 천지만물을 창조하실 때에 그러하셨다. 태어난 아기가 자기보다 낫기를 바라는 것이 부모의 심정인데, 하나님의 심정도 그러하시다.

이제 어려워도 어려움의 흔적을 남겨서는 아니 된다. 하나님의 복귀노정도 그러하다. 하나님은 아들딸들에게 고통의 흔적이 남아지지 않기를 바라신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도 고통의 흔적을 남겨서는 아니된다.

7년은 맞는 기간이며 3년은 영광을 대신하는 기간이다. 우리는 이러한 10년 기간(원리과정)을 지나야 한다. 하나님께서 부동(不動)의 심정으로 피조세계를 창조하신 것같이 우리도 부동의 심정을 가져야 한다. 고로 하나님은 지금까지 부동의 심정을 가지고 있는 그 민족과 가정과 개인을 찾아 나오신 것이다. 그러기에 여러분은 부동의 심정을 갖추어 승리해야 한다.

사탄과 천사 그리고 하나님까지도 참소할 수 없는 기준을 통과해야 한다. 참소당 할 수 있는 자신이 되지 않았는가 돌아보라. 사탄의 참소와 천사의 참소와 하나님의 참소를 피해야 한다.

전도 기간처럼 중요한 기간은 없다. 하나님과 같은 입장에서 생각하고 실천할 시기가 다시는 없을 것이다. `나’라는 이름조차도 없는 우리다.

우리에게 아담 해와와 같은 이름을 지어 주고 싶은 분이 하나님이시다. 그런데 하나님이 이름을 지어 줄 수 있는 입장은 모든 참소를 벗어난 입장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볼 때 여러분은 이름을 지음받을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

뜻 외에 다른 것을 사랑해서 죄다. 하나님은 영광을 바라신다. 우리가 하나님을 생각하는 것은 영광의 뜻을 이루기 위함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앞으로는 자기 마음대로 못 산다.

각목 말뚝을 들어 사개를 물린 후에는 박아야 하는데, 여러분은 그때 아무데 꽂아도 불평 없는 말뚝과 같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런 곳에 세우는 것은 조상으로 세우기 위함이다.

야곱이 싸우던 그 자리를 피해서는 안 된다. 야곱이 개인 차원의 얍복강 승리의 기준을 세워 천사의 참소를 면할 수 있었던 것과 같이 우리도 민족 차원의 얍복강 승리의 기준을 세워야 한다.

승리한 야곱과 살고 싶었던 하나님이었지만 민족적 원수를 두고 개인적 기쁨을 누리는 것이 전체적인 기쁨이 아니기에 하나님께서는 그러지 못했다.

애급고역 기간은 하나님을 깊이 생각케 하는 기간이다. 하란 땅에서의 기간도 그러하다.

애급고역 기간 이후는 실천하는 기간이다. 그러나 그들은 광야의 생활이 애급고역보다 편하기를 원했기 때문에 망해 버렸다. 광야 생활의 모든 것은 재창조역사를 위한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명령대로 움직여야 한다.

예수님은 영계에서 광야노정을 걷고 계신다. 지금까지 죽음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생각하며 인간들로 하여금 사탄의 참소를 벗어나게 하고 있는 것이다. 세계적인 가나안 땅을 복귀하기 위하여는 세계적인 고난의 노정을 거쳐야 한다.

우리는 원수적인 조건을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에 서야 한다. 세계의 모든 싸움이 나의 싸움이라는 신념을 갖고 불의한 것을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에 서야 한다.

축복받은 가정을 어떻게 하면 고생을 시킬까, 어떻게 하면 아버지의 참소를 벗어나게 할까 하고 선생님은 생각하고 있다. 여러분은 삼위기대(아들딸)를 데리고 죽음의 길을 걸어야 한다.

예수님을 안고 마리아와 요셉이 애급으로 가던 길은 복귀노정의 전체를 표시하는 것이다. 돈과 시간은 얼마든지 남아 있지만 이런 기간은 두 번 다시 없다. 하늘땅에 한 번밖에 없는 때다.

여러분은 선생님의 심정의 방패가 되어야 한다. 선생님이 활동하는데에 지장이 없어야 한다. 수고한 역사를 풀어야 한다. 아론과 훌이 모세의 손을 들어주며 수고했지만, 원래는 모세나 아론과 홀은 수고해서는 안 된다.

다른 사람들에게 ‘나 같으면 의례히 손을 내렸을 것인데’ 하는 생각이 세 번 이상 나게 한 후에 손을 내려야 한다. 사탄세계에서도 제발 고생시키지 말라고 권고하는 사람들이 나올 때 그만해야 한다.

우리는 이런 날을 세워야 한다. 이런 날이 없이 새날은 없다.

때가 가까왔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한다. 여러분이 아니 하면 선생님이 하려 한다. 실천의 길은 고생의 길이다. 이 민족이 여러분을 대해 자기의 부모보다 낫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라.

자녀의 날에 상을 준 것(남 1명, 여 3명)은 하나님이 준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맹세를 할 수 있는 것이다.

하란에서나 애급에서나 지도자를 원망했으면 이스라엘 민족은 망해 버렸을 것이다.

지금은 선생님이 오른발을 들여 놓고 왼발을 떼려 하는 때다. 선생님이 마음놓고 왼발을 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선생님은 태중에 있는 아기를 위하여 기도해 본 일이 없다. 보다 큰 뜻을 위하여 염려하고 기도하면 작은 일은 자연히 해결되는 것이다.

돈으로 출발하다 돈이 떨어지면 아주 망해 버린다. 권세로 출발하면 돈이 있어도 떨어지는 것을 일으킬 수 없다. 그러나 고생으로 출발하면 지칠 때 돈이 있으면 그것으로 다시 출발할 수 있고, 또 돈이 떨어지면 권세로 다시 출발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