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3 to 12-59: 역사의 결실체가 되라

역사의 결실체가 되라
1962.10.07 (일), 한국 전본부교회

12-53
역사의 결실체가 되라
[말씀 요지]

여기에 모인 학생들은 전국의 각 교회에서 모여든 젊은 이들인데, 젊은이들에게 말하려면 선생님도 젊어져야겠다. 어느 정도까지 젊어져야겠느냐? 여러분은 나이와 생일까지도 같기를 바랄 것이다. 선생님도 그 정도로 젊어지길 원한다. 지금 여러분의 나이 때가 바로 선생님이 이 뜻을 찾던 때의 나이와 비슷하다.

여러분들은 오늘 이 총회에 참석하기 위하여 모였는데, 아마 각자 천태만상의 생각들을 하고 왔을 것이다. 오기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왔지만 `참마음’으로 온 사람은 몇 사람이나 될까? 갈 때도 `참마음’으로 가는 사람은 몇 사람이나 될까?

12-53
세계와 역사의 중심이신 하나님
그러면 선생님은 어떠한 사람에게 말씀을 할 것인가. 말할 것도 없이 `참마음’으로 온 사람에게 할 것이다. 때려서라도 그런 참사람을 만드는 것이 지도자의 책임이요, 사명이다.

무모하게 함부로 움직이면 안 된다. 전체를 위하여 움직일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오늘날 이 삼천만 민족은, 그리고 전인류는, 더 나아가서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고대하실 것인가? 삼척동자라도 답은 같다. 역사적인 결실체를 고대하고 계신 것이다.

그러면 과연 여러분은 어떠한 입장에 있느냐? 어디 보자. 여러분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살고 있다. 사람들 가운데는 밥만 먹고 사는 사람이 있고, 다음에는 생각하는 사람이 있고, 또 생각을 가지고 어떠한 사상을 전파하기 위하여 말을 하는 사람도 있고, 그것을 실천하기 위하여 용감하게 싸움을 하는 사람도 있다. 이 모든 것들을 자기 자신만을 위하여 한다면 역사적인 심판을 면치 못할 것이다.

그러면 하늘땅을 위하여 사는 사람은 어떠한 사람이냐? 사는 것과 말하는 것과 움직이는 것을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또 개인을 위해서 사는 사람과 가정이나 민족, 혹은 국가나 세계를 위하여 사는 사람 중에 누가 더 귀한 사람인가? 여기에서 부인할 수 없는 것은 더 큰 것을 위하여 사는 사람이 더 귀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오늘날 세계의 역사는 이 세계를 창조하신 분과 연관되어 있다. 따라서 아무리 못난 사람도 세계적인 인물이요, 너도 나도 모두가 세계성을 띤 사람들이다.

그러면 우리는 어떠한 사람을 위해야 할 것이냐? 천지를 우리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사는 사람을 위해야 한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최고의 이상을 생각하며 사는 분을 위해야 한다.

하나님은 말씀과 인격으로 실천하시는 분이시며 천지를 위해 온 분이시다. 또 하나님은 말씀과 실천에 있어서 절대적인 분이시다. 그러한 하나님께서 언제 말씀하시고 실천해 보셨는가? 환경이 어지러울수록 하나님은 불쌍하시다.

아직까지 그러한 생활을 하고 그런 말씀을 실천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한 사람을 만들기 위하여, 또 그런 사람들을 영원한 이상세계에서 살게하기 위하여 소망의 첫사람을 보내셨나니 그분이 바로 메시아다.

이 세계는 인간의 것이다. 그런데 유물사관은 경제사관을 터로 하고 있고, 물질위주의 세계를 가치시한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사람 그 자체를 중심으로 한다. 공산주의는 먼저 사람을 찾아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민주주의는 공산주의보다 한 단계 앞서 있다. 다만 이 민주주의에는 인간중심에서 신중심으로 들어가야 할 과제가 남아 있다. 즉 하나님과 더불어 사는 세계에로 한 단계 높아져야 된다.

하나님은 한갖 교황청이나 가톨릭만의 하나님이 아니다. 하나님은 세계 종교의 하나님이요, 인류의 하나님이시다. 세계는 바야흐로 하나님이 소망하시는 이상의 세계로 수습되어 가고 있다. 때문에 하나님은 봉건시대의 교황청이나 가톨릭에만 계실 수 없다. 앞으로 세계는 기필코 하나의 세계가 되어야 하고 또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바라시기 때문이다.

12-55
앞으로의 시대는 심정의 시대
하나님께서는 먼저 세계를 대표할 수 있는 한 사람을 찾으신다. 그런데 왜 가나안 7족을 멸하셨느냐? 그들은 하나님을 위한 민족 형성의 발판을 갖추지 못하였기 때문에 세계적인 입장에서 치신 것이다. 세계를 위하는 데 있어서 국수적인 사상은 깨지게 되어 있다. 이러한 가운데에서 심판의 관문을 넘을 수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심정도 나의 것이다’ 할 수 있는 사람을 만들려고 하신다. 그래서 개인과 가정과 민족을 이끌고 고통에 고통을 당하시면서 세계적인 입장까지 이끌어 오셨다.

오늘날의 역사는 해산하려는 여인의 진통기와 같은 입장에 있다. 현대 문명을 문예부흥의 소산이라고 하지만 이제부터는 심정이 문제가 된다. 하나님과 우리는 하나다. 또한 하나님이 보실 때는 세계도 하나다. 국경 같은 것은 필요 없다. 하나님이 보실 때는 오직 하나의 세계일 따름이다. 국경 같은 건 다 원수다. 누가 금을 그었는가?

그러면 하나님이 소망하시는 사람은 어떠한 가치를 가진 사람인가? 이 컵(책상 위에 놓인)은 누구의 것이냐? 천주의 것이요, 인류의 것이다. 만물도 그러한 가치에 동참하기를 소망하며 아직까지 탄식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을 유린하는 악당들은 심판받아야 한다. 저 산은 누구의 것이냐? 김씨의 것? 아니야. 오직 하나님의 것이다.

여러분은 세계가 내 것이라고 생각하며 생활하고 실천해야 된다. 그러기에 여러분을 소망의 실체요, 소망의 등대라 하는 것이다. 여러분은 천지를 상속받을 거룩한 왕자들이다. 그런데 밥 한 덩어리에 팔려다녀? 그러면 안 된다. 인간의 본성을 회복하고 자신의 본연의 가치를 알아 가지고 천지의 법도에 의해 모든 인연을 맺고 현실과 미래를 연결지어야 한다. 그러한 사람은 민족이 소망하는 사람이요, 30억 인류가 소망하는 사람이요, 영계에 있는 모든 영인들까지도 소망하는 사람이다. `이 세계가 나의 것이고 이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도 나의 것이다’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오늘날 한국이나 미국, 아니 세계 30억 인류를 다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사람이다. 그러한 사람이 어디에 있는가?

이러한 소유관념을 갖고 `천하는 내 것이요, 지구도 내 것이다’라고 해야 한다. 그러한 내가 어두움의 골짜기를 헤매었으니 탄식할 일이다. 이러한 나는 죽어야 한다. 나는 이제 본연의 나를 찾아 헤매는 `나’요,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나’요, 끝날의 민족이 찾는 `나’라고 하는 젊은이들이 10만 명만 되면 세계를 지배할 수 있다. 소망의 `나’를 그리워하는 젊은이가 되어야 한다. 여러분은 무엇을 하려 했느냐? 어떻게 살려고 했느냐?

우리는 민족 감정을 초월해야 한다. 흑인 백인을 차별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잘났다는 사람이 심판받는다. 부자집의 잘난 아들은 만점이요, 병신 자식은 영점인가? 아니다.

민주진영은 아프리카에 가서 보물을 나누어 주고 피와 살을 나누어 주어야 한다. 잃어버린 동생을 찾는 형이 되지 않으면 깨져 나간다. 오늘날 공산주의가 팽창하는 것도, 그들이 그래도 하나님이 불쌍한 사람을 구하려 하시는 것과 같은 형태나마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사랑의 인연을 이 땅 위에서 맺기 전에 고루거각에서 잘 살아서는 안 된다.

역사는 물질배급시대와 인간배급시대를 거쳐 심정배급시대로 나아가고 있다. 자식이 부모의 재산을 상속받으려면 부모의 사랑을 받아야 한다. 그러기 전에는 상속권을 못 갖는다.

먼저는 물질축복시대를 거쳐 인간축복시대가 오고 그런 다음에 하나님을 위주로 한 심정축복시대가 오게 되어 있다.

그러나 도인에게는 물질축복도 안 해주고 마지막의 심정을 상속해 주기 위하여 외곬으로 몰아넣었다. 지금까지 신학을 중심삼고 내려온 종교인들의 걸음은 하나님으로부터 심정을 상속받기 위한 걸음이었다.

무엇이든지 줄 때에는 자꾸만 주고 싶어하는 부모의 마음을 가지고 주어야 한다. 심정을 가지고 주어야 한다. 껍데기로 주어서는 안 된다.

지금은 형제시대이다. 또한 형제사회국가시대이다. 그러니 싸우고 있는 가인 아벨이 서로 화합하는 형제의 때가 와야 한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찾느냐? 하나님이 `내가 너에게 무엇을 주고 싶노라’ 할 수 있는 자가 누구겠는가? 하나님은 먼저 불쌍한 사람에게 `주고 싶노라’ 하신다. 불쌍한 자중에서도 도를 닦는 사람이 제일 불쌍하다. 그러니 도인들에게 먼저 주어야 한다. 그리하여 그 도인이 고맙다고 하며 이젠 더 이상 필요 없으니 다른 사람에게 주라고 하고, 이렇게 끝까지 올라가면 되는 것이다.

12-57
천지간에 남아질 수 있는 사람이 돼야
이러한 역사적인 때에 사람을 어떻게 지도해야 할 것이냐? `세계는 내것이다’ 하며 새로운 세계와 더불어 생각하고 말하고 실천하는 사람으로 만들어야 한다. 지금까지는 나를 위해서 살아왔고 기껏해야 부모 형제를 위해 살아왔다. 그러나 이제는 그러면 안 된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냐? 세계 대신, 하나님 대신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음식을 먹는 것도 그렇다. 인간은 만물보다 못하다. 만물은 해원의 한 날을 바라며 탄식하고 있다. 그들은 원한다. 천지간에 참되게 남아질 수 있는 사람을….

창조주가 있다면 그 창조주에게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필요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사람들을 하나님 앞으로 몰아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나도 이 자리에 참석한 여러분도 그런 사람을 위해 일해야 한다.

심정의 세계에서는 모두가 평등하다. 천국에서는 노인을 부모로 대접하고, 인류를 사랑하는 한 가족으로 대하고, 모든 남녀를 형제로 대한다. 천국은 가정을 확대한 세계로 형제애의 세계이다.

천지는 우리가 졸고 있어도 그 궤도를 따라 돈다. 아무도 없다고 누가 보지 않는다고 마음대로 하면 망한다. 안 볼수록 잘해야 한다.

남이 내게 무엇을 줄 때도 부모의 심정을 가지고 `나는 이것으로 만족합니다. 세계를 위해 주십시오’ 해야 한다. 하나님은 먹다 남은 찌꺼기를 주시지 않는다. 먹다 남은 찌꺼기를 주는 사람은 큰사람이 못 된다.

하나님의 뜻을 위하는 데는 혁명적인 기질도 있어야 한다. 뜻 앞에, 하나님 앞에 최고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

가는 거다. 가야 한다. 가야 할 운명이다. 그러니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느냐? 문 밖에 나가면 맹세한 것을 잊어버려? 그러면 안 된다. 천년 만년이 가도 변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은 이런 인격을 지닌 실체를 바라셨지만 아직까지 땅 위에 나타난 사람들은 그런 실체가 되지 못했다. 하나님이 생각지도 못한 모습들을 하고 있다.

이스라엘 민족과 하나님은 혈로를 거쳐오셨다. 하나님은 불쌍한 분이시다. 영광의 자리에는 한 번도 서보지 못하시고 몰림받고 저주받는 암담한 자리에서 신음하면서 싸워 나오셨다. 하나님께는 역사적인 화살 자국이 있다. 선민의 역사도 피의 자국과 죽음의 자국으로 이루어졌다.

개인들이 망할 때에도 가정의 상속자가 있었고, 가정들이 망할 때에도 민족의 상속자가 있었고, 민족들이 망할 때에도 세계의 상속자가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직도 처참한 신세를 면치 못하고 계신다.

그래서 하나님은 쌍수를 들어 외치고 계신다. 인류 대신, 하나님 대신 싸울 용사가 없느냐고. 예수님의 입장에서 죽지 않고 뜻을 이루어야 할 운명이 우리 앞에 남아 있다. 죽어간 선조들과 우리들 자신과 후손들을 위하여 반드시 이루어야 한다. 개인의 원수를 갚는 것도 어려운데 역사의 원수, 인류의 원수를 갚는 것이 쉽겠는가?

하나님은 슬프시다. 120년, 아니 1,600년의 터 위에 세운 노아의 기대가 무너지고, 다시 400년을 거쳐 세운 아브라함이 실패하고, 그 후에 모세가 실수하고…. 이 모든 것을 책임지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겠다는 용사들이 되어야 한다.

지금의 시대는 원수를 향해, 적진을 향해 돌격해야 할 때다. 알겠나? 노아도, 아브라함도 모세도, 예수도 그들의 가족이 그들을 등졌다. 이민족, 이 땅에 아버지가 찾아오신다면 우리가 책임지자. 모든 것은 자신들에게 있다. 이 사회, 이 민족, 이 세계가 이렇게 된 것도 다 우리 자신들 때문이다. 하나님 대신 눈물 흘리면 망하지 않는다.

먼저 주고 매 맞고 빼앗아 오는 하나님이시다. 여러분도 그래야 한다. 하나님의 비참한 경륜도 우리들 때문이다. `너와 같이 말하고 너와 같이 일하고 싶다’고 말하고 싶은 하나님의 역사적인 심정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잊지 않고 기다리신다. 나는 언제 하나님의 복귀섭리에 동참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보라. 하나님과 같이 살 수 있는 생활무대를 찾아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과 같이 생각할 수 있고, 말할 수 있고, 행동할 수 있는 길을 찾아 들어가야 한다.

하나님은 모든 것이 십자가의 생활이요, 십자가의 길이다. 그러기에 하나님을 대신해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 십자가의 길로 가라. 죽음의 길로 가라. 십자가로 뿌렸으니 눈물과 통곡으로 거두어야 한다. 살고자 하는 자는 죽고, 죽고자 하는 자는 산다. 일개 부락을 위해 사는 것은 30억 인류를 대표하여 사는 것이다.

12-59
하나님의 뜻 앞에 세워진 사람들의 사명
하나님과 같이 한 시간이라도 생활할 수 있을 때를 생각하고, 그때를 위해 일해야 하는 것이 아버지의 뜻 앞에 세워진 우리들의 사명이다. 십자가까지 가는 거다. 선생님은 아직도 지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어떠한 어려운 길도 더 걸을 수 있다. 개인적으로 원수가 많지만 하나도 미워하지 않는다. 먼저는 세계의 원수를 갚아야 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시대는 세계적 가나안복귀시대이다. 모세 때의 이스라엘 민족은 각자가 자신들을 몰랐다. 소망의 땅인 가나안에 대한 동경도 희박했고 지도자도 몰라보았다. 그러니 망할 수박에 없었다. 역사상에 그러한 존재들이 있을 때 망하지 않은 적이 없다. 다 죽고, 20세 이하만이 남았다. 60만 장정이 있어도 할 수 있을지 말진데, 그들이 할 수 있었겠어? 다 항복해도 여러분은 항복해서는 안 된다. 60만 이스라엘 민족이 학살당한 것은 그들이 책임 못한 대가이다.

우리는 단결해야 한다.

여러분들은 스승을 바라볼 때 어떠한 입장에서 바라보는가? `선민이 되게 하소서’ 하며 때려서라도 가게 해줄 지도자, 칼로 몰아쳐서라도 가게 해줄 지도자를 찾아야 한다. 만약 모세가 칼을 들어서라도 이스라엘 민족을 몰았으면 10만쯤은 죽었어도 60만이 다 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념적으로 우리에게 어떠한 시련이 오더라도 문제없다. 가는 길에 지장이 되는 것은 차 버리고라도 가야 한다. 지도자가 그렇게 끌어 주기를 바래야 한다. 안 가면 망한다. 그러니 이렇게 해서라도 기필코 세계적 가나안 복귀의 사명을 해야 한다. 이 사명이 우리 통일교인의 어깨 위에 있다. 안 가면 때려서라도 가게 해주는 지도자가 있어야 한다. 가기만 하면 된다. 그래야 역사적인 승리자가 되고, 시대적인 선봉자가 되고, 미래적인 개척자가 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