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3: 고생과 축복

고생과 축복
1962.10.13 (토), 한국 전본부교회

12-53
고생과 축복
[말씀 요지]

축복받은 자는 세계 앞에 아벨이다. 고로 제물을 바칠 때에는 누구보다 더 정성을 들여 바쳐야 한다.

우리가 고생하는 것은 세상 사람들에게 도피처를 구해 주기 위함이다. 죽지 말고 고생하라.

장권사 말을 들으면 부끄럽다. 그보다 더한 식구를 축복했어야 했기 때문이다. 72가정을 축복해 준 것은 뜻 위해 욕먹은 기준이라도 있기 때문에 해준 것이다. 뜻을 위하는 것은 서러워도 기쁘지만, 자기를 중심한 것은 기뻐도 서러운 것이다.

선생님이 유언하고 싶은 것은 고생하라는 것뿐이다.

가나안 땅에 정탐 보낼 때는 제일 우수한 대표자를 보냈을 것이다. 선생님도 똑똑한 자를 이북에 보내려 한다.

다섯을 맞을 사람이 열을 맞으면 그 다섯은 하나님이 갚아 주신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희생하는 종교가 되어야 한다.

축복받은 가정 때문에 다른 식구가 할 말을 못 할까봐 두렵다. 고로 가정들은 절제하는 생활을 해야 한다.

민족이 동정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심정적인 빚을 지지 말자. 이스라엘 민족이 6백만이 죽었지만 축복을 받지 못하였다.

이 길은 선생님이 생사를 각오하고 찾아 세운 길이다. 인간을 중심한 욕망에서 세운 것이 아니다. 선생님에게는 한 민족에 세 쌍 이상 세워야 할 뜻이 있다는 것을 알라.

여러분은 심정적인 족장이 되어야 한다. 죽어도 이 길을 가야 한다. 예수님이 공연히 죽은 줄 아는가! 선생님은 아픈 몸을 무릅쓰고 이 일을 하고 있다.

지상에 플러스될 사람은 절대 안 죽는다. 탕감조건에 걸린 사람이라면 모르지만. 축복받은 사람이 말씀을 들을 때는 사탄에 대한 분한 마음이 치밀어 올라야 한다.

선생님은 아무 데나 앉으려 한다. 선생님이 깨끗한 곳에 앉을 수 있도록 자리를 만들었는가?

예진이를 사랑하지만 예진이를 버리고 떠나야 할 날을 생각하고 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죽이려 할 때 이삭은 반항하지 않았는데 그것이 훌륭한 것이다. 효자에게 두 번 세 번 권고하는 법이 어디 있는가! 하나님도 노아에게 한번만 말했다.

사건을 많이 일으켜야 한다. 그러나 예수님처럼 감당하지 못할 것을 남기지 말라. 어떻게 해서라도 다 이루어 놓아야 한다.

서울에 있는 식구들은 선생님이 지방에서 한 말씀을 누구보다도 먼저 알려고 노력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