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6 to 12-40: 나는 무엇을 남길 것인가

나는 무엇을 남길 것인가
1962.07.16 (월), 한국 전본부교회

12-36
나는 무엇을 남길 것인가
[말씀 요지]

여러분은 그동안 원리를 통해 많은 것을 배웠을 것입니다. 지금 여기에는 122명이 모였는데, 수는 적어도 여러분 각 개인은 모두가 역사적인 열매입니다.

여러분은 창조원리에서 피조만상과 잘 주고 받을 수 있는 가치적 존재가 되어야 함을 배웠습니다. 여러분 자신들은 선을 바라보고 살아왔다는 과거의 생활 가운데에서 무엇을 남길 수 있습니까? 혹 있다고 할지 모르겠습니다. 또 교회에 들어온 연수에 따라 남길 수 있는 그 무엇이 있다고 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천주 앞에 절대적인 가치를 가지고 나타날 수 있느냐를 생각하게 될 때 지금까지의 `나’는 잊어버려야 할 모습임에 분명합니다.

12-36
자기와 자기의 위치를 돌아봐야 할 때
40일 수련에 들어와서 여러분은 `나는 무엇을 남길 것인가, 이곳, 본부의 스승들 앞에 무엇을 남길 것인가’, 또는 `오늘 이 자리를 떠나면서 무엇을 남기고 갈 것인가’를 생각해 보았습니까? 오히려 `이렇게 했더라면…’ 하고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한 많은 탕감의 운명길을 가는 여러분은 무엇을 남기고 있는가를. 기쁨이나 영광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면 역사와 현세를 바라볼 때 나는 무엇을 남겨야 하며, 무엇을 남기기 위해 살아 나가야 할 것인가?

과거의 선열들이나 또 오늘날의 사람들은 너나할것없이 모두가 더 이상적인 것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인간들은 모두가 무엇을 위하여 생을 살았으며 또 살고 있는가? 죄악의 세상을 위해서인가 아니면 다가오는 세계를 위해서인가? 그들은 자신들의 희생의 대가로 오늘 이세계의 어떤 사람과 새로운 인연을 맺고자 할 것인가? 목적도 모르고 허덕이다 쓰러지는 사람과 인연 맺으려 할 것인가? 아니면 어떤 뜻을 세워 형제와 인류를 위해 그리고 창조주의 뜻을 위해 희생하는 무리와 인연 맺으려 할 것인가?

지금까지 인류는 결과적으로 악을 남겨왔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자기 일신은 망하더라도 새로운 무리들 앞에 상속시켜 줄 수 있는 새로운 이념을 소유해야 하겠습니다.

이 종말시대에 있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선조들이 남기고 간 역사적인 죄를 탕감하고, 순교한 선열들이 핏자국을 남기고 간 데 대한 책임지는 것입니다. 악의 역사를 등지고 새로운 선의 이념을 갖는 것은 하나님과 모든 선조들과 인류 모두가 바라 온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사망의 물결에 휩쓸려 죽음의 역사를 이을 것이 아니라, 선을 위해 억울하고 분한 역사를 걸어나온 선조들의 희생의 터전을 상속받아야 하는 엄숙한 자리에 있습니다. 여러분은 전자를 박차고 후자를 택하겠다는 맹세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까지의 인류역사는 가인과 아벨, 하늘편과 사탄편이 대결하여 왔습니다. 인류역사는 결과적으로 선과 악이 대결하며 엮어 내려온 것입니다. 악은 자기를 감추거나 드러내 놓고 항상 선을 쳤고, 선은 맞으며 내려왔던 것입니다. 우리 삼천만 민족을 놓고 보아도 그렇습니다.

오늘날 우리 민족 가운데에도 남이 모르는 희생의 길을 걷고 있는 무리가 분명히 있습니다. 오늘날 여러분은 악의 조건을 남기는 무리가 되지 말고, 어떤 희생을 치러더라도 후대에 남아질 수 있는 길을 가야 합니다.

여러분은 천리(天理)에 입각한 중대한 사명을 지니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역사적인 사명을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오관은 여러분의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눈은 투쟁의 역사에 있어서 원수 사탄을 바라보고 나오시던 하나님의 공분의 눈이 되어야 합니다. 손은 역사적인 선열들, 즉 여호수아와 갈렙, 그리고 모세와 예수와 같은 감각을 가진 손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지금까지의 역사노정과는 달리 새로운 것을 남기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의 앞길은 알 수가 없습니다.

인계를 하는 데는 심정으로 해야 합니다. 말이나 몸으로 인계하기는 쉬우나 심정으로 인계하기는 어렵습니다.

사람들 중에는 말을 분담한 사람도 있고, 그보다 더 어려운 몸을 분담한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개중에는 어떠한 희생도 무릅쓰고 역사에 남을 심정의 노정을 걷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의 선조들은 죽으면서도 후손들에게 이 심정을 인계해 달라고 호소하였습니다. 이것을 실감치 못하면 여러분의 갈 길은 막연할 수밖에 없습니다.

12-38
여러분이 상속받고 인계해 주어야 할 것
여러분, 단단히 명심하십시오. `나는 역사의 인연을 상속받았노라’ 하며 역사적인 인연을 대신한 실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여러분들이 역사에 남아질 수 있는 실체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혼자 행동해도 혼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보는 것, 먹는 것, 입는 것, 눕는 것, 이 모든 행동은 그것이 아무리 처량한 것이라 하더라도 혼자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새로운 건설의 길을 가는 무리임을 자부해야 합니다.

선생님은 지금까지 투쟁의 노정을 걸어 나오는 동안 영어살이도 해보았습니다. 인생길을 열어주는 스승과 지도자를 가진 여러분은 고생하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행복합니다.

아무리 처량하고 어려운 자리에 처하더라도 여러분은 결코 홀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떠한 어려운 고비를 넘어갈 때면 `선열들이여! 나의 이 어려움이 당신들의 어려움에 비해 어느 정도입니까? 어느 정도 남길 수 있는 것입니까?’ 하며 어느 정도의 가치가 있는 것인지 재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우리의 선조들은 흔들렸어도 하나님은 절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수많은 선조들은 배반하고 돌아섰지만 하나님께서는 변치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 가운데에서 전통을 세우셨습니다.

한편, 우리의 선열들은 악한 세상에서 사라지지 않고 사탄과 대결하여 선의 역사를 이어 나왔습니다.

여러분에게도 어느 한 때 총공격 총진군의 명령이 내려질 것입니다. 여러분 일대에 이 악한 세계를 무찌르지 않으면 안 됩니다. 역사는 때때로 동요되었지만 우리의 선열들이 닦은 천륜의 실적은 오늘 이 시대에까지 섭리의 역사를 이어 나왔습니다.

육신을 중심한 이 세상은 가면 갈수록 불안과 공포와 혼란 속으로 빠져 들게 됩니다. 여러분은 이런 세상 풍조를 거슬러 올라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이제까지의 역사는 투쟁의 역사였습니다. 이제부터는 새로운 역사를 남겨야 합니다. 지금까지의 역사는 잊어야 할 역사였으나 이제부터의 역사는 새로운 역사입니다. 우리는 새로운 개인의 역사, 가정의 역사, 사회의 역사, 종족의 역사, 민족의 역사, 세계의 역사와 하늘땅의 역사를 다 내포한 새로운 세상을 이루어야 합니다. 그 세계는 여러분이 죽고 난 다음에 이루는 것이 아니라 오늘 이때에 다 이루어야 합니다.

기독교는 초대교회 시대에 그 기반이 닦여졌습니다. 새로운 역사도 우리가 가고 난 몇만 년 후에 이루어지게 할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시대에 이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 천추만대 후손들에게 남길 이상세계의 재료입니다.

통일의 이념을 중심삼고 움직이는 선생님의 계획은 몇 대 후에 가서가 아니라 우리 1대에, 죽기 전에 초석을 바로 놓자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역사적인 전통을 세우고 새역사를 창조하는 데 있어서 본보기가 되어야 합니다. 아담 해와야말로 천추만대에 추모하고 따를 수 있는 본보기로서 새세계의 역사를 전개하는 주인공이 되어야 했는데, 그렇게 되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비참한 역사가 시작된 것입니다.

이제 이 새로운 사명은 누가 짊어져야 할 것인가? 우리가 져야 합니다.

여러분은 이 시간이 끝나면 일단 가정으로 돌아가게 되는데 이 출발에서부터 달라져야 합니다. 생활과 말과 느끼는 모든 것이 달라져야 합니다.

후손들이 본받고 추모할 수 있는 역사를 남겨야 할 사명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이제 여러분들은 새 세계를 창조함에 있어서 역사적인 전통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됩니다.

여러분의 손, 발, 이목구비 등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은 여러분의 것이 아닙니다. 밥 먹는 것, 잠자는 것, 입는 것, 일하는 것도 전부 여러분만을 위한 것이 아니요, 천지를 위한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이 가정으로 돌아가서 반대하는 부모를 보면 동정이 갈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을 동정하기 이전에 하나님의 한이 얼마나 크게 서려 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싸우다 쓰러지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보이는 사탄은 물론이고 저 영계까지 진격하여 보이지 않는 사탄까지 무찌르겠다는 목표 아래 총진군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과거의 나는 이러했고 오늘의 나는 이러하니 이제부터는 이러한 내가 되어야겠다는 확실한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20대에는 무엇을 남기고, 죽을 때에는 무엇을 남길 것인가? 남기는 데는 얼마만큼 가치있는 것을 남길 것인가?

12-40
주기 위해 눈물 흘리는 사람이 되라
지금까지 하나님은 오직 소망 하나를 중심삼고 처참한 투쟁의 역사를 엮어 내려오셨습니다. 눈물어린 슬픔의 노정, 땀 흘리는 슬픔의 노정, 피흘리는 슬픔의 노정을 거쳐 오셨습니다. 물론 역사상에는 인격자들도 많았습니다. 아버지께서는 당신의 가치를 무한히 나타내실 수 있는 입장인데도 불구하고 처참한 길을 걸어 나오셨습니다.

과거를 돌아보면 여러분은 지금까지 왔다 간 인격자들보다 못할지도 모르고, 또한 하나님을 영원히 따르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오직 한 가지 다르다고 할 수 있는 것은 과거는 슬펐지만 이제부터는 슬프지 않다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무엇을 찾기 위하여 희생의 길과 슬픔의 길을 걸었으나 지금은 무엇을 주기 위해 희생의 길을 걸어야 합니다. 과거에는 나를 중심삼고 살아왔으나 이제부터는 나를 무한한 가치 앞에 흡수시키고 또 영원히 남길 수 있는 역사를 창조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슬픈 역사를 상속받았습니다. 죽은 제물에서부터 시작하여 산제물이 되기까지 나아왔습니다. 하나님도 죽은 제물이 아니라 산제물을 찾아 나오셨습니다. 여러분은 슬픈 역사의 패자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이제 소망의 때를 찾았으니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전해 주고 싶어서 눈물 흘리고, 산제물이 되었으니 만물에게 사랑을 주고 싶어서 눈물을 흘리는 눈물의 소유자가 되어야 합니다. 눈물을 흘리되 역사상에 왔다간 선조들처럼 비참한 눈물을 흘려선 안 됩니다. 차지하기 위한 눈물을 흘려서도 안 됩니다. 주기 위한 눈물을 흘려야 합니다.

여러분의 마음속에는 참부모, 참부부, 참실체가 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자신의 실체, 자신의 혈통, 자신의 심정을 자랑해야 합니다. 그리고 주기 위한 생활을 해야 합니다. 선생님도 지금까지는 모든 것을 찾아 세우기 위한 기도를 해 왔으나 이제부터는 다릅니다. 주기 위한 기도와 주기 위한 생활을 할 것입니다. 과거에 차지하기 위해 흘린 눈물과 피와 땀은 이제 모두 주기 위한 것이 되어야 합니다. 소망의 한 때를 바라면서 주기 위한 생활을 해야 합니다.

새역사 노정은 주기 위해서 가야 합니다. 그러려면 여러분의 눈은 통일교인 전체를 대신한 눈이 되어야 하고 선생님을 대신한 눈이 되어야 합니다. 입도 전체를 대신하고 천지를 대신한 공적인 입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지금까지 역사적인 슬픔을 안고 나왔지만 이제부터는 그렇게 되어선 안 됩니다.

여러분의 눈물은 예수 때의 눈물과 달라야 합니다. 이제부터는 어떠한 처지에서도 슬픔의 눈물을 흘리지 말고 감사의 눈물을 흘려야 합니다. 또한 감사의 땀과 감사의 피를 흘려야 합니다.

오늘은 아무도 이 길을 가는 여러분을 높여 주지 않더라도 후손들은 반드시 손을 들어 여러분을 추모할 것입니다. 예수가 눈물과 피와 땀을 흘리고 통곡했더라도 때가 되면 그로 인하여 사람들이 최고의 공적인 마음을 갖고 감사의 눈물을 흘리게 될 것입니다.

이 삼천리 강산을 바라보고 사망선상에서 울부짖는 저들을 누가 건질 것이냐? 많은 지식을 갖추고 훌륭한 학문을 갖춘 자라고 해서 저들을 구할 수는 없습니다. 저들을 위해 참다운 피와 땀과 눈물을 흘리고 참다운 심정을 심어주며 참다운 실체를 갖다 줄 자가 바로 저들을 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이 가고 난 후에도 모든 사람이 머리를 숙이고 몸을 굽힐 수 있는 길을 가야 합니다. 돌아가서 다시 생각해 보십시오. 이제 여러분은 참다운 실체로서, 선봉자로서 살아야 하고, 슬픔의 눈물이 아닌 기쁨의 눈물을 흘려야 합니다. 그래야 후대 자손들이 슬픔의 통곡을 하지 않고 찬양을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여러분이 후대에 남겨 주어야 할 최고의 선물인 것입니다. 또 그래야만 이 세계가 이상세계가 되고 새로운 세계가 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