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06 to 12-111: 전체를 대신한 개인이 되라

전체를 대신한 개인이 되라
1962.12.17 (월), 한국 전본부교회

12-106
전체를 대신한 개인이 되라
[말씀 요지]

본부에 있는 여러분은 한 가정의 개인이나 한 교회의 개인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수다한 우리 조상들을 대해서도 개인적으로 불러 역사하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 같은 한 사람을 세우시려고 간곡한 마음을 가지고 2천년간이나 준비하셨다는 것을 우리는 부정할 수 없습니다.

12-106
보다 큰 것을 세우시려는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만의 뜻이 아니고 이 뜻은 전인류의 뜻인 동시에 내 뜻인 것입니다. 뜻은 내 한 개체를 중심삼고 행 불행(幸不幸)을 결정짓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나는 전체를 대신한 나이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승리의 아들딸로 세울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복귀원리를 통하여 이것을 배웠을 것입니다.

남겨 준 것과 보태 준 것을 비교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대신한 백성이었어야 합니다. 그들이 아무리 개인이라 할지라도 개인으로서의 개인이 아니라 이스라엘 민족을 대표한 개인이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입장은 곧 하나님을 대신한 입장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이 그런 입장에서 여리고 성을 정복하여 축복의 땅으로 만들어 주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6천년이 지난 오늘에도 하나님께서 참다운 자녀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끝날에 전체를 대표한 개인이 되라는 것입니다. 어떠한 지역이나 클럽의 개인이 아니라 전체를 대신한 개인입니다. 크게 보인다고 해서 반드시 큰 것이라고 할 수 없고 작게 보인다고 해서 반드시 작은 것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뜻 가운데서는 개인, 가정, 민족, 국가, 세계, 천주가 모두 하나를 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사람을 보고 가장 기뻐하실 것이냐? 개인보다도 가정, 가정보다도 사회, 사회보다도 민족, 민족보다도 국가, 국가보다도 세계, 즉 보다 큰 것을 위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이 나중에는 천주를 위하고 하나님을 위하여 뜻을 품고 정성을 다 바치는 사람임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그런 사람이 복을 받을 날은 먼 앞날로 기약되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택하여 믿음의 조상으로 축복하지 않았더라도 그가 뜻을 품고 살고, 후손들에게 유언으로 남겨 끝날까지 끌고 나오게 하면 복을 받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큰 사람이면 큰 사람일수록 참고 나가야 어떠한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이 됩니다. 아브라함만 하나님께서 축복하신 것이 아닙니다. 당시에 뜻을 대할 수 있는 사람이 아브라함 한 사람뿐이어서 축복해 주실 것을 약속한 것이지 결코 최종적으로 축복을 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진실로 뜻을 품은 사람이 있다면 지금까지 그 뜻을 품고 이어 내려오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입교 이후 맹세를 하였다면 그것은 어떤 기준에서 한 것입니까? 뜻을 대한 그 맹세가 진정한 것이었다면 그것이 외적으로는 나타나지 않았어도 오래 참을 수 있어서 내적으로 많이 성장했어야 합니다. 아브라함 당시에 아브라함은 몰랐지만, 영계의 성도들이 역사하고 천사세계가 협조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충성하고 맹세한 사람이 있다면 비록 그가 이 시대에 존재하더라도 그는 이 시대의 사람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인 사람입니다. 또한, 그가 하는 일은 역사적인 일입니다. `역사적이다’하는 것에는 모든 것이 다 포함됩니다.

예수께서 성도들을 대하실 때, 그것은 박 아무개나 김 아무개와 같은 개체를 움직이고자 해서 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 개체를 대하는 이면에는 항상 전체와 연관짓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개인을 세우시는 것은 그 개인만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그 개인을 중심삼고 가정을 세우시려는 것입니다. 가정을 세우기 위해 개인을 택해 축복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야 그 개인이 깨어져도 한 단계 올려 놓았던 기준이 있으므로 축복했던 가정적 기대는 남게 됩니다. 그래서 거기서 민족을 대신한 실체를 출발시킬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12-108
복받는 사람은 고생을 한 사람
이제 오시는 주님을 중심삼고 국가적인 기준을 발판으로 하여 세계적인 역사를 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제2이스라엘, 즉 오늘날 세계에 있는 기독교인의 사명입니다. 이들은 하늘과 땅의 시련을 겪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선의 기준을 복귀할 수 없습니다.

시련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그 첫째는 환경적인 시련이요, 둘째는 인간적인 시련이요, 세째는 영적인 시련입니다. 시련을 이기려면 그 시련의 기준보다 한 단계 앞서야 됩니다. 즉 국가적인 승리의 기준을 세우려면 세계를 걸고 이거야 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스라엘의 고난의 수가 차고, 기독교의 고난의 수가 차고, 하나님의 고난의 수가 차면 됩니다.

오시는 주님을 중심삼고 모이는 곳이 성경에 있는 이스라엘의 예루살렘입니다. 그때에 복받는 사람은 고생을 겪은 사람입니다. 산에서 도를 닦은 사람입니다. 어떤 사람이 민족을 위할진대, 가정을 버리고라도 나와야 그 가정이 망하더라도 민족적인 애국자의 계열에 남아질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럴 수 있는 사람이 복받을 사람입니다.

가정, 종족, 민족으로 나아가는 데 있어서는 항상 한 단계를 더 위하면 한 번 실수해도 남아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위해 기도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개인적인 섭리시대, 곧 태초부터 지금까지 개인에서 개인으로 계승하면서 하나님을 위하여 나온 무리가 있다면, 비록 아무 축복을 받지 못하였다 하더라도 그것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은 그것을 기껏 2천년밖에 못 했습니다. 이스라엘 후손들은 제2 이스라엘이 나온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한 번 기도하고 천년을 기다릴 수 있는, 그렇게 정성들인 민족이 있었는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좋아하시는 것을 보고 내가 좋아해야 합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가지고 하나님이 좋아하시게 하면 안 됩니다.

복은 어떤 것이냐? 공적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을 잘못 받으면 망합니다. `원통해라. 내가 이렇게 일을 했는데!’ 하고 불평하는 사람은 복의 세계에 있어서 파탄꾼입니다.

원수를 갚아 주실 수 있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도 아직 원수를 갚지 않았는데 내가 어떻게 원수를 갚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이제는 원수를 갚아라’ 하실 때 심판을 하게 되면 사랑하는 아들딸에게는 하늘과 땅, 하나님의 사랑까지 다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 복이 주어집니다.

그러니 우리는 `아버지, 지금 복을 주시면 원수에게 찢길 것이니 잘 간직해 두셨다가 끝날, 뜻이 이루어져 태평세계가 되면 그때 주시옵소서. 주시는 아버지도 섭섭치 않고 받는 저희들도 든든하게 하옵소서’ 해야 합니다. 이런 사람이야말로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사람입니다. 고생은 자기 혼자 다하여 뼈만 남게 되었어도 `복은 모든 인류와 하나님께서 다 받으시옵소서’ 할 수 잇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누구라도 복을 돌리게 되며 하나님께서도 통곡을 하실 것입니다. 참고 넘어갈수록 복의 세계는 하루라도 빨리 오는 것입니다.

12-109
오시는 주님의 수고
예수의 수고보다 더 크게 남아진 하나의 세계가 있습니다. 예수의 수고는 2천년의 수고요, 모세의 수고는 80년의 수고입니다. 그러나 하늘땅이 굴복하고 사탄도 통곡할 수고가 있으니 하나님의 수고가 바로 그것입니다. 그래서 자연히 세계는 그분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어떠한 사람이 가정을 위한 수고를 하면 그 가정이 복을 받고, 민족을 위한 수고를 하면 그 민족이 복을 받는 것입니다. 앞으로 오시는 주님의 수고는 하늘땅을 잘 살게 하는 수고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수고도 그러합니다. 그것은 예수의 수고와 비교할 수 없는 것이요, 사람들의 수고와도 비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고생하여 영인들이 울고 사람들이 울게 해야 인류에게 광명이 동터오는 것입니다. 고생을 해야 합니다. 내적, 외적, 환경적인 고생을 해야 합니다.

예수를 안다고 해야 할 때 모른다고 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곡절을 발표하는 민족이나 교파가 있다면, 그 민족이나 교파는 세계를 정복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디로 찾아오실 것인가? 죽음의 고비를 넘은 곳으로 찾아오십니다. 하나님의 내용을 발표하여 공산당까지 울릴 수 있으면 그 힘은 공산당을 정복하고도 남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슬픔을 소개하고 나서 천국을 말해야 정통입니다. 그것을 말하지 못하는 교가 이단입니다. 타락은 슬픔을 하나님의 가슴에 심은 것입니다. 아직 그 슬픔의 뿌리를 빼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먼저 그 슬픔을 말해 주어서 슬픔의 길을 걷데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기쁨의 날을 맞이한 후 축복을 받으면 그 축복은 마지막 축복입니다.

하나의 진리로 영원히 남아질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슬픈 역사를 인류 앞에 소개해 주는 것입니다. 그것이 마지막 진리입니다. 심기를 하나님 앞에 심었기 때문에 거두는 것도 하나님 앞에서 거두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인류를 아직까지 심판하지 못하신 것은 아들딸의 입장으로 지으신 창조의 심정을 버릴 수 없기 때문이고, 사탄 대해서는 당초 충신으로 지으셨던 그 기준을 무너뜨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창조의 기준을 무너뜨리기 전에는 심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누가 심판할 수 있는가? 하나님의 아들이 할 수 있습니다. 아들은 부모의 원수를 갚을 수 있습니다.

이제까지 참으로 주신 것을 참으로 받아서 참으로 심은 사람이 몇이나 됩니까?

하나님의 슬픔을 역사적으로 변증하여 시대적으로 체험하게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그 고개를 넘고 난 후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수 있는 개인, 가정, 사회, 민족, 국가, 세계, 천주가 어떻다는 것을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전부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치려고 했을 때, 이삭이 한마디만 항거를 했어도 하나님께서는 이삭을 받으실 수 없었습니다.

야곱은 축복의 가치를 알았고, 하나님으로부터 약속을 받았기 때문에 축복받은 것입니다. 실제로 축복을 받는다고 해서 야곱에게 당장 무엇이 생기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그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야 했습니다. 이것이 사탄세계에서 받을 수 있는 복의 최고 기준입니다.

모세도 궁중의 영화를 누릴 수 있었지만 벌판의 목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쓸쓸한 광야에서 양을 치면서도 민족을 생각하였습니다. 예수도 그랬습니다.

우리 성도들의 순교사는 있어도 하나님의 순교사는 없습니다. 최후의 진리는 하나님의 고통을 소개하여 예수까지도 통곡하게 하고, 지옥에 간 사람들까지도 통곡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복귀의 길, 원리의 길은 안 갈 수 없는 길입니다. 복귀의 길은 찾아가는 길이요, 원리의 길은 밟아가는 길입니다. 그 길을 가는 데 있어 본부의 사람들은 전체를 대신한 개체들입니다.

12-111
천국은 어떻게 가는가
천국은 어떻게 가는 것이냐? 예수를 믿고 십자가를 지고 나서 축복을 받아서 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천국은 하나님이 계신 곳이므로 하나님과 함께 살 수 있는 자격자가 되어야 가는 곳입니다. 그 자격은,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만물을 주관하라는 축복을 이루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부부가 자식을 데리고 함께 갈 수 있어야 천국입니다.

아브라함은 종 중에서도 믿을 수 있는 종이었습니다. 아직까지 기독교는 양자의 입장입니다. 예수는 직계의 아들로 왔지만 양자를 세우는 역사를 하시고 가셨습니다. 피살자는 구원의 역사를 할 수 없기 때문에 부활시켜 부활한 예수로 구원하게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영적으로 이겼다는 조건을 세운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인은 영계의 낙원만 바라보고 예수를 믿어온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셨다가 사탄의 손에 죽었으니 이젠 그 사탄을 우리가 죽어야 합니다.

다시 오시는 주님은 몸을 쓰고 오십니다. 그리하여 실체적으로 아들딸이 될 수 있는 수속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분의 사명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시는 주님은 고난을 당해야 합니다. 그분은 인간의 뒷골목으로부터 오십니다. 도의 길을 가는 사람들은 사탄세계에서 보면 모두 낙오자들입니다. 주님은 쓰레기통에서부터 찾아오십니다. 기독교는 겟세마네의 연속이요, 골고다의 연속입니다.

천국은 언제부터 시작되느냐? 오시는 주님의 어린양 잔치가 끝난 다음에서부터 이루어집니다. 영적 구원을 통한 기독교이기 때문에 구교를 통하여 신교, 신교를 통하여 더 새로운 교가 나와야 합니다. 여기에도 3수가 관계되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1대, 아담은 2대, 아벨은 3대인데 그 중 망친 것은 2대인 아담입니다. 따라서 복귀섭리역사에서는 둘째 아들을 두고 생사의 결판을 짓는 것입니다. 완성의 역사를 책임지고 오시는 3수 섭리의 최종 실체이신 재림주님은 세계적인 죄악사를 총탕감해야 합니다.

오시는 주님은 먼저 노아 가정의 세 아들을 찾습니다. 3대를 거치면 종족이 됩니다. 최소 단위의 세 아들딸을 찾아야 합니다. 그래야 비로소 부모의 자리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아버지를 죽인 피값을 갚아야 합니다. 피값을 모아서 성지를 사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