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02: 충북도민은 도인이다

충북도민은 도인이다
1962.12.16 (일), 한국 청주교회

12-102
충북도민은 도인이다
[말씀 요지]

충청(忠淸)이란 가운데 중(中), 마음 심(心), 맑을 청(청)이 합하여 이루어진 말입니다. 마음의 중심이 맑으면 도인입니다. 충청도란 그런 말입니다.

`충청’이란 현실이 아니고 바라보고 나아가는 곳입니다. 그러한 곳을 가는 데 있어서 자력으로 가지 못하면 다른 이의 힘을 지원받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그러기 위해서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오늘 말씀의 대상이 주로 젊은이들이니 만큼 젊은이들을 상대로 하여 말씀하도록 하겠습니다. 나이 많은 사람들은 이해하기 바랍니다. 시간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이 시간 선생님은 입을 가지고 싸우고, 여러분은 귀를 가지고 싸우는 것입니다. 지금 이곳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였는데, 모두들 선생님께 많은 의문과 기대를 가지고 왔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러나 특별한 말씀은 하지 않겠습니다. 그저 평범한 말을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청주, 즉 맑은 고을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맑기만 해서는 안됩니다. 단단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단단한 고을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여기는 통일교회입니다. 통일이란 거느려서 하나 된다는 말입니다. 가정에는 부모가 있어서 가족을 거느리고 있고, 종족간에는 종손집이 그 종족을 거느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세계를 거느리는 사람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러니 누군가가 이 세계를 거느려야 됩니다. 지금은 그 과정에 있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주인 없는 물건은 가지는 사람이 주인이 되는 것과 같이 이 세계도 거느리는 사람이 중심이 된다는 말입니다.

지금 미국이 민주진영의 주인 노릇을 하고 있고 소련이 공산진영의 주인 노릇을 하고 있는데, 과연 미국이나 소련이 세계의 주인이 될 수 있습니까?

양분된 세계를 하나로 만들어 나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난의 역사가 점철되어 왔습니까? 아무리 훌륭하게 보이는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그가 온 세상 만민을 하나로 거느릴 수 있는 자격자이겠습니까? 개인, 가정, 사회, 국가, 세계, 하늘땅, 도의 세계까지 거느릴 수 있는 자가 있다면 선생님도 그 앞에 거느림을 받겠습니다.

지금까지의 역사가 거느릴 수 있는 한 중심을 찾아가는 과정의 역사라면 용납할 여지가 있지만 그렇지 못한 역사라면 깨 버려야 합니다. 지금 여러분도 그러한 과정에 있다면 다행이다 그렇지 못하다면 절망입니다.

거느릴 수 있는 한 중심을 찾으라고 양심은 명령합니다. 재촉하고 있어요. 그러면 여러분은 거느릴 수 있는 한 중심을 찾아 그가 바라는 대로 거느림을 받을 수 있는 합당한 기준이 되어 있습니까?

목적은 하나이어야 합니다. 양심은 하나의 목적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데, 몸은 그 반대의 방향으로 가고 있으니 그 벌어지는 각도가 고통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천지의 목적이 있다면 그 목적의 주인은 누구인가? 여러분은 목적의 그 주인이 여러분을 끌고 있음을 알고 있을 텐데 그 목적의 주인은 누구이겠습니까? 만인의 양심이 거할 수 있는 한 곳이 있어야 합니다. 그 중심은 인간보다 더 고차원적인 존재여야 합니다. 그 목적의 중심은 악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선이 아니면 거느릴 수 없고, 선이 아니면 하나 될 수 없습니다. 목적을 향하여 나아가고 있는 여러분은 선한가, 악한가? 자신의 몇 퍼센트가 선이고 몇 퍼센트가 악이냐?

우리 자신은 선과 악 가운데서 싸우는 중간 존재입니다. 지금 인간 세상에서 선에 속할 수 있는 자격자가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러니 인간들은 모두 거느림을 받아야 합니다.

자신의 전부를 버리고 다른 사람과 함께 가고자 하는 것이 선이요, 전부를 가지고 혼자 가고자 하는 것이 악입니다. 마음으로는 선을 원하고 좋아하는데 육신이 싫어합니다. 선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제일 원수가 육신입니다.

선의 창조주가 있다면, 그분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하여 애써야 하고 인간의 양심작용에 힘을 더하기 위하여 애쓰는 분이어야 합니다. 그래야 창조주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양심작용에 힘을 더하여 내려오는 흔적이 역사상에 남아 있나니 이것이 종교입니다.

종교! 선의 하나님이 약한 인간의 양심을 움직여 섭리했다는 역사적인 흔적이 종교입니다. 그러기에 역사가 바뀌고 세계가 변해도 선의 근본 중심은 변치 않았습니다. 문화권의 발전사를 보더라도 선의 창조주는 계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역사 이래 종교를 중심한 많은 문화권이 있었는데 그것들은 역사의 흐름에 따라 하나의 목적을 향하여 발전해 나왔습니다.

현재에는 기독교 문화권, 회회교 문화권, 힌두교 문화권, 불교 문화권의 4대 문화권이 있는데 이것들도 기독교 문화권을 중심으로 해서 하나되어 가는 과정에 있습니다. 이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사람은 자기가 좋을 때는 부모, 형제, 친척을 찾아 함께 즐기고자 합니다. 좋은 것은 행복한 것입니다. 행복은 영원한 것이요, 영원한 것은 심정입니다.

우주의 중심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부모와 자식입니다. 즉 부모와 나입니다. 하나님과 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버지, 나는 아들….

인생의 궁극적 목적은 아버지를 찾아 뗄 수 없는 관계를 맺어 기쁨을 느끼는 것입니다. 종교 중의 종교는 어떤 종교입니까? 천주의 창조주를 아버지라 하고 그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곳까지 인도해 주는 종교가 종교 중의 최고의 종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종교가 기독교입니다. 비로소 아버지의 심정을 대신하여 아버지의 독생자로 오신 분이 예수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구세주의 자격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나는 참감람나무요, 너희는 돌감람나무다’, 또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라’고 하셨습니다. 돌감람나무를 잘라 버리고 참감람나무에 접붙임을 받아야 합니다. 접붙이는 데는 뿌리만 남겨 놓고 가지는 모두 잘라 버려야 합니다. 그러자니 다 버리라는 것입니다.

고차원적인 종교는 사회를 떠나 산으로 들어갑니다. 그래서 부모를 찾을 수 있다면 그 길은 천만금보다 더 가치적인 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참몸인 내 몸을 네게 주겠다고 하는 종교가 종교 중의 종교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가 세계적인 종교인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만인간을 접붙이고 갔습니까? 그렇지 못했습니다. 접붙일 수 있는 준비만 갖추고 갔습니다. 그래서 다시 오신다고 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효도의 도리를 다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효도하기 위해, 자식된 도리를 다하기 위해 다시 오십니다. 인생의 최고 목적은 하나님과 동고동락하는 것입니다.

이제 국가와 국가가 형제의 인연으로 하나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국가와 국가가 형제의 이념으로 하나 되면 거기에 부모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종교의 목적은 천지의 부모, 즉 인류의 참조상을 찾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