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47: 나는 어떤 존재인가

나는 어떤 존재인가
1962.06.07 (목), 한국 전본부교회

11-347
나는 어떤 존재인가
[말씀 요지]

─선생님께서 입교 6개월 미만자와 초대면자를 알아보신 다음에 말씀하심─

여러분은 보다 큰 목적을 위하여 오늘 이곳에 수련을 받으러 왔습니다. 그런데 앞으로 자기 중심한 생활을 한다면 더 큰 목적을 위하여 수련을 받는 의의가 없어집니다. 자기를 버리고 뜻 앞에 절대 복종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여러분은 이제부터 40일간의 단체생활을 하게 되는 것이니, 오늘 여러분은 공적인 ‘나’로서의 제일보를 내딛는 엄숙한 순간에 놓여 있습니다. 공적인 목적 앞에 흡수되어야 하고, 또 그 목적을 이루는데 각자 재료가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결심을 이미 하였으리라고 봅니다. 그러니 이후부터는 눈이 있어도 마음대로 보면 안 되고, 입이 있어도 마음대로 말하면 안 되고, 귀가 있어도 마음대로 들으면 안 됩니다. 본부의 식구들로 하여금 여러분에게 푸대접을 하게 하는 시련을 주어 단련을 시키고 싶습니다.

여러분들이 지방에서 본부를 향해 떠나올 적에 그렇게도 그리던 서울 본부에 가면…… 하고 많은 기대를 했겠지만 사실은 기대한 것에 미치지 못할 것입니다. 외모는 이처럼 초라하고 볼 것이 없어요. 그러나 내적인 기상만은 하늘땅을 쥐었다 폈다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뜻을 품었다면 남자고 여자고 한번 해 볼만한 일입니다.

단번에 천하를 호령할 수 있는 자리에 올라갈 수는 없습니다. 올라갈 수 있다 해도 그래서는 안 됩니다. 내적으로 외적으로 환경을 갖춘 인격적인 위인이 된 후에야 가능합니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사람이 문제입니다. 자기가 자신을 자랑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역사를 대하여 공적인 명령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공적(公的)이라는 것은 자기를 위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를 위하고 나라와 세계를 위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러한 공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어떠한 일이라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남자가 없으면 여자들로만이라도 남자의 일까지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손도 여러분의 것이 아닙니다. 손으로 밥을 먹을 때도 삼천만을 위해서 먹으면 세계 인류의 손을 대신해 먹는다는 생각을 하고 먹어야 합니다. 비록 꽁보리밥에 된장찌개라도 공적인 입장에서 먹어야 합니다. 사지백체를 다 그렇게 움직여야 합니다. 그러니 만큼 불평불만은 있을 수 없습니다. 때로는 3일 금식을 하라고 명령할지도 모릅니다.

수련이란 닦고 연단한다는 것 아닙니까? 닦고 연단하는 데는 무엇을 표준으로 할 것인가? 여러분 가운데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고깃덩이 뿐인 겉사람과 다른 하나는 속사람이 그것인데, 타락한 입장에서 보면 타락한 겉사람과 타락한 속사람이 있습니다.

이것들이 본연의 인격체를 닮아 나가자는 것입니다. 본연의 인격체란 만물이 경배하고 하나님이 품에 품으시고 입을 맞춰 줄 수 있는 어린애와 같은 모습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본연의 인격체를 표준으로 수련을 받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실상 형편없는 존재입니다. 그러니까 최하의 경지에서부터 훈련해야 합니다. 내일부터는 진짜 수련입니다. 천하를 품을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더 나아가 사탄까지도 굴복시키기 위해서는 지옥 밑창의 세계를 받아도 이를 극복해야 하는 것입니다. 수련은 이러한 본성의 자아를 찾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면 나는 누구였던가? 오늘 말씀의 중심이 바로 이것입니다. 타락한 인간은 내세워 자랑할만한 것이 없습니다. 내세울수록 추태입니다. 잘났다고 하는 여러분의 모습이 실상 알고 보면 형편없습니다.

눈을 높이 들어 하늘을 바라보며 거기에 창조의 주인공이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 앞에 무엇을 내세울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은 만물 앞에 기쁨을 줄 자신이 있습니까?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보면 누구도 효자 효녀 충신 열녀라는 간판을 못 붙일 것입니다. 천륜 앞에 내세울 자격을 갖추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인륜 도덕 앞에도 내세워 자랑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불효라는 간판이 붙으면 아무리 개인적으로 잘났어도 가정이나 국가, 세계, 하늘땅, 그리고 창조주 앞에 결코 내세울 수 없습니다. 죄란 개인적으로는 의리를 지키지 않는 것이요, 사회적으로는 용납받을 수 없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이런 죄를 졌을 때에는 하나님도 ‘오냐 내가 용서해 주마’ 하실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공적인 하나님 앞에 내세울 건더기를 갖고 있습니까? 없을 것입니다. 공적인 세계관을 갖고 나오시는 하나님께서는 창조주로서 결국 세상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오늘의 이 끝날이 바로 그 심판 때입니다.

이 심판을 면하려면 하나님께서 6천년 동안 분부하신 말씀을 일생동안에 다 지키겠다고 맹세하고, 또 다 행했다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심판의 고개는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명령에 절대 복종하고, 자기 일생동안 다 못하면 후손에게 유언을 해서라도 기어이 이루겠다고 해도 넘을지 말지 합니다.

하나님은 역사적인 명령 앞에 순종하는 자를 찾으십니다. ‘내 아버지께서 어찌하여 이렇듯 처량하게 되셨는고. 명령만 내리소서. 나만은 지키겠습니다’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생각이라도 그렇게 해야 돼요.

그러면 ‘나’는 어떠한 모습인가? 내 모습은 더욱 시원찮습니다. 엉망진창입니다. 그러기에 내 속에서 준동하는 죄를 갈라쳐서 불에 태워 버리고, 나의 마음을 정화하겠다는 마음이라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 하늘 앞에 ‘세계적인 명령이라도 내리기만 하소서’라고 해야 지상의 낙원, 자유의 세계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용납받을 수 없는 존재들입니다. 이런 용납받을 수 없는 인간에게 하나님은 지금까지 배반당해 오셨습니다. 이놈의 몸뚱이! 이놈의 몸뚱이가 사탄의 제물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본래의 실체가 되기를 바라고 나오셨으나 그러한 실체가 되지 못했으니, 인간은 말씀의 배도자요, 실체의 배도자요, 심정의 배도자요, 혈통의 배도자입니다.

그러면 역사적 배도자의 후손인 여러분을 수련시켜서 무엇을 할 것이냐? 여러분을 훈련시켜 사탄 앞에 내보낼 것입니다. 그래서 모질고 무서운 시련을 받게 할 것입니다. 사람다운 사람을 만들어서 사탄 앞에 내보내야 할 처지에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이제까지 역사상에 왔다 간 수많은 선조들, 아브라함, 모세 등을 불러놓고 `당신들은 무엇을 했는가? 나는 당신들이 못한 것을 다 하겠다’ 해야 합니다. 또 사탄에 대하여 `역사적인 사탄들아! 와라’ 해야 합니다.

오늘 여러분이 여기 모여서 수련을 통하여 이런 것을 알게 되는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모릅니다. 이때는 효자라는 명사를 갖고 뜻길을 가야 승리자가 될 수 있습니다. 6천년 죄악의 역사를 책임지겠다는 각오 아래 하나님 앞에 순종의 왕자, 복종의 왕자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께서 ‘내 뜻대로 마시옵고 아버지 뜻대로 하시옵소서’ 했던 것처럼 효자의 기준을 세우고 난 다음, ‘사탄이 드디어 저희 앞에 굴복하였나이다’ 해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럼으로써 말씀의 조상이 되고, 실체의 조상이 되고, 심정의 조상이 되고, 순종의 조상이 되고, 혈통의 조상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며, 여러분 각자가 역사의 배도자임을 자각하고 역사적인 공분을 품고 사탄과 싸워 이겨야 합니다. 사탄의 항복을 받아야만 ‘나는 누구였던가’를 알게 됩니다. 새로운 말씀의 조상, 새로운 심정의 조상, 새로운 실체의 조상, 새로운 혈통의 조상이 되어야 합니다. 새로운 승리의 조상이 되어야 합니다. 본래 우리는 이런 모습이 되었어야 했는데 타락으로 말미암아 그러지 못했으니 ‘분하구나’ 하며 이 모든 것을 내가 해내고 말겠다고 나서야 합니다. 이게 쉽겠어요? 그러나 우리 당대에 우리의 손으로 복귀의 역사를 끝마쳐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