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40: 나는 누구였던가

나는 누구였던가
1962.04.19 (목), 한국 전본부교회

11-340
나는 누구였던가
[말씀 요지]

금년은 천적으로 의의가 깊은 3년 기간 중의 마지막 해입니다. 금년의 봄철은 더욱 중요한 시기입니다. 지난 2년이 그러했듯이 금년도 천적으로 중요한 의의를 갖고 있는 해입니다. 여러분이 일단 이 자리에 모였을진대 전체 식구를 대표하였다는 책임감을 가지고 마치는 날까지 무사히 지내 주기를 바랍니다.

오늘 말씀 드릴 제목은 ‘나는 누구였던가’입니다. 여러분은 각자 다르게 살아왔고, 종족은 그들의 전통을 중심삼고 다른 생활을 해 왔습니다. 그러나 공통된 점은 죄악사 속에서 살아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 이상으로 볼 때 원래 ‘나’라는 존재는 무한대의 가치를 지닌 존재이지만 현재의 나는 무가치한 존재입니다.

개체 하나에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연관되어 있습니다. 때문에 자기 한 개체는 자기 한 개체에 머무는 것이 아닙니다. 역사적 개체입니다. 원죄를 벗지 못한 후손이요, 죄의 인연을 상속받은 `나’입니다. 그러기에 나에게는 타락의 인연을 종결지어야 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나’는 아담 이후 역사를 거쳐오면서 등장하였던 수많은 섭리적 사명자들의 대신체입니다. ‘나’는 선한 입장과 그와 반대되는 입장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제는 죄악을 청산하고 오로지 선의 입장을 취해야 합니다. 그러나 나는 아직까지 죄악이 청산된 내가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나를 청산하여 어느 한 때에 가서는 선의 기준을 세워 아버지 앞에 나아가야 할 사명이 우리에게는 남아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믿을 수 있는 내 자신이 되지 않는 한, 수고한 하나님 앞에 배반자가 되고 실망을 드리게 됩니다. ‘나’는 나만으로 있는 것이 아니라 실패하지 않은 선조의 입장에도 놓여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시간부터는 하나님을 배반하지 않고 하나님께 수고를 끼치지 않는 내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는 한 여기에 모인 의의가 없습니다.

나는 누구였던가? 축복이라는 명사를 바라볼 수 없었던 내 자신입니다. 그러한 것을 느끼면 느낄수록 아버지 앞에 의탁해야 하겠습니다.

이제부터 ‘나’는 사적인 것이 전혀 없는 순수한 입장이 되어야 합니다. 곧 나에겐 아무것도 없다는 입장에서 내 자체를 온전히 아버지 앞에 내맡겨야 합니다. `나’라는 존재는 없습니다. 과거의 나는 용납받을 수 없는 모습임을 깨닫고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하나님이 선과 악을 책임져 주시고 선으로 옮겨 갈 수 있도록 무(無)의 자리에 서도록 해야 합니다.

아담이 타락으로 하나님을 서럽게 한 사실, 가인이 아벨에게 순종치 않은 죄, 노아를 중심한 섭리에 있어서의 함의 실수, 아브라함을 중심한 곡절의 역사, 모세를 중심한 슬픔의 역사, 예수를 중심한 한의 역사, 이러한 원통하고 분하였던 역사와 여러분 자신의 입장까지 탕감해야 합니다. 아담의 슬펐던 일과 아벨의 슬펐던 일, 노아와 함의 슬펐던 일, 아브라함이나 모세의 슬펐던 일을 대신 탕감하여 하나님께서 소망으로 바라보실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이것이 여러분의 책임입니다. 아담이나 아벨, 노아, 아브라함, 모세, 또는 예수의 사정과 심정을 체휼하고 ‘아버지, 나는 그들의 입장처럼 되지 않겠습니다. 세례 요한이나 예수님의 처지와 같이 되지 않겠습니다. 하나님을 슬프게 하는 무리가 되지 않겠습니다’ 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선조들이 하지 못한 충성으로 하나님 앞에 소망을 돌려드리겠다는 각오가 있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여, 아담에게 주고 싶었던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축복의 인연을 남기시옵소서’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노아, 아브라함, 모세 등의 사명자들이 맺고 싶어했던 심정의 인연을 맺어야 합니다. 역사적인 선조들이 상속받지 못한 심정을 상속 받아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타락한 아담 해와도 아니요, 가인 아벨도 아니고, 노아나 함도 아니며 역대 조상 어느누구도 아닙니다.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노아, 아브라함, 모세, 예수의 심정을 연결지어야 합니다. 아담으로부터 갈라진 역대 사명자들의 심정을 연결지을 책임이 여러분과 선생님에게 있습니다.

선생님은 아담으로부터 예수까지의 심정을 상속받아 승리적인 인연을 갖추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것이 오늘날까지 싸워 나오고 있는 역사적인 내용인 것입니다. 아담으로부터 끝날까지 연결시켜 하늘땅 앞에 내세우고자 하는 것이 재림의 이상이요, 참부모의 뜻입니다. 참부모의 이상, 참부모의 뜻을 느끼지 못하면 축복받을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의 나는 역사적인 배반자요, 용서받을 수 없는 죄인이었습니다. 그러니 탄식과 한을 풀고, 실체의 중심을 모실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놓은 자에게만 실체부모를 인연맺어 주고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유업을 상속하기 위해 참부모가 있는 것이고, 여러분은 참부모의 유업을 상속받기 위해 있는 존재입니다. 우리는 참부모의 심정과 섭리 역사의 슬픈 내용을 알아야 합니다. 참부모와 일체가 되어야 축복의 자리에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참부모의 슬픔과 고통과 기쁨, 예수의 슬픔과 고통과 기쁨을 나의 것으로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완전히 하나가 되어 생활하며 대신자의 입장이 되지 않으면 아무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아담 앞에서도 참부모를 대신한 나요, 노아나 아브라함, 모세, 예수 앞에서도 참부모를 대신한 나요, 하늘땅 앞에서도 참부모를 대신한 내가 되지 않고서는 축복의 자리에 설 수 없습니다. 남자는 아버지의 분신이요, 여자는 어머니의 분신입니다. 이 분신이라는 말에는 역사적인 눈물이 어려 있고 역사적인 슬픔과 곡절이 어려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역사적인 눈물과 슬픔과 곡절을 탕감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나는 이러이러한데 왜 축복을 해주지 않습니까?’ 하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걸친 참부모의 심정과 실체와 모든 말씀을 접붙임 받아야 합니다. 참부모를 대신하여 축복받은 선배들에게 지지 않고, 선배들이 책임을 못하면 그들의 책임까지 대신하겠다고 하면 틀림없이 그들과 같은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과거에는 부족했으나 끝까지 부족한 내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각오를 가져야 합니다. 개인의 목적은 허락이 안 됩니다. 참부모를 대신하지 않으면 축복받을 수 없습니다.

제2의 부모의 입장, 즉 특권적인 입장에서 20일 동안을 지내주기 바랍니다. 남자는 아버지를 대신한 입장이요, 여자는 어머니를 대신한 입장입니다. 이번 수련 기간을 통하여 부모의 심정과 형제의 심정을 체득하기를 부탁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