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05 to 11-313: 기쁜 날을 맞는 자가 되자

기쁜 날을 맞는 자가 되자
1962.03.05 (월), 한국 전본부교회

11-305
기쁜 날을 맞는 자가 되자
[말씀 요지]

여러분이 이 곳에 오기 전까지는 생활환경과 생활방법이 각각 달랐습니다. 그러나 일단 이 수련회에 참석하였으니 이제부터는 과거의 모든 습관과 관념을 버리고 새로운 생활을 해야 됩니다. 처음 6일 내지 1주일은 여러분 자신의 시험기간이 될 것입니다. 여기서는 눈을 꼭 감고 나는 없다는 입장을 취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물론 각각 자기 방식대로 살던 과거의 자유생활에 비하면 불편한 점이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난 9회까지의 선배들도 모두 늠름히 기쁘게 마치고 갔으니 여러분도 기쁜 마음으로 보내기를 바랍니다. 본부에 오면 잘해 주겠지 하는 기대를 했겠지만, 그런 기대는 조금도 갖지 말고 오직 눈은 앞만 바라보며 강사의 말을 열심히 듣기 바랍니다.

오늘 특별히 여러분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의 제목은 ‘기쁜 날을 맞는 자가 되자’ 입니다.

11-305
슬픔 속에 있으나 기쁘기를 바라는 존재세계
인격이 잘난 사람이나 못난 사람, 혹은 유식한 사람이나 무식한 사람을 막론하고 인간은 모두 슬픈 나날 속에 살고 있습니다. 과거에서부터 오늘까지 그렇지 않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사람뿐만이 아닙니다. 존재하는 만물까지도 슬픔 속에 처해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을 비롯한 모든 피조만물은 하나같이 기쁘기를 원합니다. 기쁜 시간, 기쁜 날을 맞고자 합니다. 창조주 역시 두말할 것 없이 기쁜 날을 맞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나도 이 원칙(기쁘고자 하신 창조원칙)을 벗어날 수 없다’고 하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을 중심한 전후, 좌우, 상하가 전부 기쁜 날을 맞이하기 위하여 있습니다. 여러분 각자는 ‘나는 이만하면 되겠지’ 하고 자랑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나타내는 것은 온 우주 앞에 기쁜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없습니다. 완전한 기쁨이란 선악을 분별한 후에야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는 아직 분별되지 않은 환경에 있기에 자랑할 수 없습니다. 인간은 타락한 모습이기 때문에 만물 앞에 보여줄 수 있고 자랑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동서남북, 즉 평면적으로 볼 때 내가 기쁠 수 있는 위치라 해도 나는 만족하지 않으려 합니다. 사람을 결코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불행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 원치 않는 불만이란 요소와 싸움을 해야 합니다. 그것도 내가 치느냐, 아니면 쓰러지느냐 하는 싸움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최전방의 병사와 같습니다.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지금 어떤 입장에 계시는가. 기쁨을 누리고 계시는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아직까지 기쁨의 한 날을 맞지 못하고 계십니다. 그것은 지으신 상대의 세계가 기쁨의 대상으로 나타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피조세계가 비운의 운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이 타락한 이후 하나님은 어떤 나날 속에 계시는가? 슬픈 나날 속에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 인간도 슬픈 나날 속에 살아왔으며 온 만물도 슬픈 나날을 지나온 것입니다. 모든 만상은 기쁨의 한 날을 맞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기쁘신데 인간은 슬프고, 인간은 기쁜데 만물이 슬퍼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웃음에 인간도 만물도 웃음으로 호응해야 할 것인데, 아직까기 그렇게 되어 있지 못합니다.

우리가 좀더 뜻 있고 가치 있는 길을 걸어 나가는 것은 하나님과 온 우주가 함께 기뻐할 수 있는 한 날을 찾기 위해서입니다. 여러분은 말로만 기쁨의 한 날을 맞겠다고 하고 있습니다. 지나온 여러분의 생활 가운데 하나님이 기뻐하실 수 있는 조건이 있었습니까? 그런 것이 없는 사람을 잡아서 처리하는 곳이 지옥입니다. 오늘날 나병환자 같은 불치병자를 격리하는 것과 같습니다.

지나간 역사는 모두 슬픔의 날들이었습니다. 인류는 이 슬픔의 길을 한걸음 한걸음 밟고 올라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역사의 발전현상입니다. 역사상 성현으로 일컬음을 받은 사람들은 어떠한 사람들입니까? ‘제가 이제 죽사오니 하나님이여 붙들어 주시옵소서’라고 한 사람들입니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라’고 하였지만 사실은 거기에 ‘생명을 다하라’도 보태야 합니다. 쓰러지는 사람들을 하나님은 그냥 두는 것이 아니라 구하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붙들려고 하는 사람들을 붙들어야 합니다. 붙드는 데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생명을 다해서 붙들어야 합니다.

11-307
하나님과 인간의 공동과업
그러자니 여기에 지도자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천주적인 지도자, 양심적인 지도자는 어디에 있는가? 가장 중심되는 분이 어떠한 인간이 아니라 천지를 창조하신 분입니다. 그래서 그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버리고 나를 믿으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인간을 믿다가는 다 망합니다. 망하지 않기를 바라는 사람은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절대자이십니다. 온 인류 앞에 심령을 개척하여 절대자를 찾기 위해 나타난 것이 종교입니다.

하나님께서도 기쁨의 한 날을 맞기 위하여 수고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 홀로는 그 날을 맞을 수 없습니다. 인간과 공동으로 해야 됩니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인간이 하늘을 부르는 것이 상식입니다. 소망을 잃고 죽은 자와는 달리 소망을 잃지 않은 자가 있다면, 양심의 직고는 공식적인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다 아십니다. ‘하나님 살려 주십시오’ 하는 것은 최후의 선언이요, 유언입니다. 이것을 아는 사람은 타락할 수 없습니다. 발전은 있어도 퇴보는 있을 수 없습니다. 하늘은 아십니다. 거기가 인간의 종착점입니다.

부모가 아들딸을 불러 놓고 `너는 어떠어떠한 사람이 되고, 또 어떠어떠한 일을 하라’고 가르친다 해도 `너는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는 것만 못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 되라는 것은 최고의 가르침입니다. 죽기 전에 `하나님!’ 하는 것은 수많은 사람들이 남겨야 할 유언입니다. 슬픔이 연속되는 가운데에서도 최후의 말은 `하나님을 안다’는 것이어야 합니다.

자기 아들딸이 살인강도로 교수형을 받아 최후를 맞게 될 때 그것을 보고 ‘아이고 하나님, 내 아들딸 죽으니 감사합니다’ 할 부모는 한 사람도 없습니다. 법이야 어떻든지 ‘하나님, 우리 아들딸을 살려 주십시오’ 합니다. 악한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탄에게도 그런 마음이 있기에 복귀섭리를 해 나오시는 것입니다.

분하다고 칼을 가지고 나타나는 것보다도 그것을 꽉 누르고 ‘하나님!’ 하는 것이 최고입니다. 도의 길을 가는 수많은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는 가운데 그러한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거기에 숨겨진 하늘의 손길이 있는 것을 알게 될 때에 그들은 모두 `감사합니다’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분함이 있어 당장 풀어야 할 때는 ‘하나님 당신은 아시나이다’ 하는 것이 그 어떠한 것보다 더 가치 있는 일입니다. 그럴 수 있는 자들은 기쁜 모습으로 이 세계에 나타날 수 있을 것입니다.

생활이 어렵고 분하고, 복잡하면 할수록 그 속에서 ‘아버지!’ 하며 외치는 사람이 도의 생활에서 승리하는 사람입니다. 평범한 사람들은 자기 본위의 생활을 하지만, 도인들은 내 가정, 내 민족, 혹은 세계의 잘못된 모든 것이 내 죄요 내 잘못이라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을 붙들고 나오는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통할 수 있고 하나님이라는 말을 유언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 할진대 하나님은 또 다른 사람을 찾으셔야 하는 것입니다.

1대에 한 유언이 하나님의 유언과 들어맞아 ‘네 것이자 내 것이다’할 수 있는 입장을 찾아 세우기 위하여 오시는 이가 메시아입니다. 이분이 와서 이 땅의 인간들을 대표하여 기쁨의 한 날을 찾아야 합니다. 역사적인 유언을 할 수 있는 개인, 가정, 민족, 세계가 있습니까? 없으면 망합니다.

여기에 모인 수련생 여러분은 하늘과 더불어 기쁨의 한 날을 맞이해야 합니다. 평탄하지 못했던 과거를 가진 그대로 멸망의 도가니에 쓰러지는 불쌍한 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과거의 나와 오늘의 나를 비교하여 오늘의 나는 발전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는 사람은 기쁨의 한날을 맞는데 있어 방해꾼입니다. 여러분은 과거보다 나아졌어요? 나아진 사람은 손들어 보세요. ─모든 손을 들었음─그래야 됩니다.

지식과 건강뿐만이 아니라 모든 면에서 부족하였다고 생각하는 것이 나쁜 것이냐, 좋은 것이냐? 좋은 것입니다. 그것은 좋은 생각입니다. 그러나 그런 걱정 속에서 눈을 높이 떠 창조주는 어떠할 것이냐를 생각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 자리는 얼마나 엄숙하고 거룩한 자리인지 모릅니다. 돈 천만 원이나 억만 원이 문제가 아닙니다. 자신이 얼마나 나아졌느냐가 문제입니다.

11-309
하나님께서 슬프신 이유
옛날에는 시골에서 국민학교만 나왔어도 괜찮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부족하다고 느낄 것입니다. 이제는 밥을 먹는 자리에서도 ‘하나님!’ 굶는 자리에서도 ‘하나님!’ 해야 합니다. 고통거리가 더 늘었습니다. 우리들의 고통이 크면 클수록 이 세상의 고통의 한계선은 내려갑니다. 우리가 그 고통으로 인해 굴러 한바퀴 도는 날에는 세상의 고통은 밀려나는 것입니다. 이제 천상천하에서 절망의 왕자는 하직을 해야 합니다.

이 삼천만 민족을 놓고 슬퍼하는 것보다 더 큰 한을 품고 하나님을 부르는 사람이 있다 할진대, 하나님께서 기특한 내 아들아, 내 딸아 하시겠습니까? 안 하시겠습니까? 그러한 무리가 많으면 많을수록 하나님의 슬픔은 없어질 것입니다. 인간도 하나님도 지금까지 슬픔의 환경을 벗어나지 못했으니 이것을 벗어나기 위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슬픔을 하루빨리 해소해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슬픔과 한이 다 내 것이라 하며 서로 책임지려 할 때 하나님의 한과 국가의 한과 세계의 한과 나의 한이 풀립니다.

인간을 고생시키려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인간은 타락 행위를 저질렀기 때문에 하나님이 마련하신 탕감의 영역권에서 싸워야 합니다. 싸움은 인간이 해야 합니다. 우주적인 한을 품고서 싸우는 사람이 많이 나타나야 됩니다. 그러한 사람이 나타나지 않는 한 하나님의 소원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만일 그런 책임자가 있다면, 그런 길을 가는 집단이 나타나야 됩니다. 여기에 통일교회가 나타난 것입니다.

‘나’는 역사적인 존재입니다. ‘나는 노아나 아브라함 때의 나다’ 하는 것을 유언으로 남기고 갈 수 있는 역사적인 사람이 많이 나타나야 됩니다.

민족적인 투쟁시기가 지나고 세계적인 투쟁시기가 지나서 해방이 되면 하나님의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이요, 그때 이루어지는 세계가 이상세계입니다. 과거에는 내 가정, 내 마을 하였지만 수련을 받고 난후에는 이 세계를 끌어 안고, 나아가 이 천주의 소원을 붙들고 나아가야 됩니다. 끝날에 하나님은 이런 사람들을 소집하십니다. 오늘날도 이런 사람을 필요로 합니다. 이러한 사람을 만드는 것이 통일교회의 사명입니다.

우리에게는 기쁨의 한 날을 맞이해야 할 소망이 남아 있습니다. 여기에 그 날을 맞이할 수 있는 비결이 있습니다. 우선 내가 있으면 전후 좌우 상하가 있습니다. 그리고 과거 현재 미래가 있습니다. 돌아서서 역사를 찾아가는 내가 되고, 조상을 찾아가는 내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 내가 되어 있습니까?

하나님은 왜 기쁨의 하나님이 못 되었느냐? 왔던 길을 되돌아간 하나님이기에 불쌍하신 하나님이요, 슬프신 하나님입니다. 미래의 길을 가지 못하시고, 오늘을 버리고 과거로 되돌아가야 하는 하나님이기에 기쁨의 하나님의 못 되는 것입니다. 돌아가는 데는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가야 하기에 슬프신 하나님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돌아서서 가시지 않는다 할진대 인간은 소망의 한 날을 가질 수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들은 하나님께서 뒷걸음쳐 돌아가시는 길을 따라가야 합니다. ‘하나님이시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하며, 에덴으로 돌아가시는 하나님을 붙들고 통곡하는 인간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가시는 길은 평탄한 길이 아닙니다. 슬픔의 골짜기입니다. 가시는 그 길을 보고 큰 소리라도 질러야 하는데 우리는 방향조차 모르고 있습니다. 거기서 ‘아이고 답답하구나. 막혔구나. 질식하겠구나’ 하시는데 지금 우리는 하나님을 부를 수도 없고 붙잡을 수도 없는 지경입니다. 가다가 뼈다귀만 남는다 할지라도 인간은 하나님을 따라가야 하는데 방향도 알지 못하는 형편입니다. 이곳에 쓰러지면 하나님은 그냥 두고 돌아가셔야 하는 입장입니다. 물어 뜯겨 죽게 되어서야 하나님을 부르는 인간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옛날부터 어둠의 권세가 잠식해 들어오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우리 인간은 어찌하여 고아가 되었나! 팔목을 잘라도 항의할 자가 없습니다. 주권이 없는 불쌍한 백성들입니다. 우리 인간들은 주권이 없는 불쌍한 모습입니다. 우리가 주권을 찾으려면 내 마음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불러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시 내려오실 수 없습니다. 사탄이 하나님을 오실 수 없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어떤 험산 준로도 넘어, 사탄이 나는 못 따라가겠다고 하는 곳까지 가야 합니다. 이 길이 고해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사탄이 따라오지 못하는 곳에 하나님이 거하실 수 있는 안전지대를 만들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유구한 역사를 선인(善人), 선가(善家), 선민(善民)을 통하여 섭리하셨습니다. 과거의 도인들은 사탄이 못 가는 길을 갔습니다. 모두가 싫다는 길을 갔습니다. 마음이란 무엇이며, 사랑이란 무엇이며, 참이란 무엇이냐를 알기 위해 고난의 길을 갔던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이 가야 할 길입니다.

11-311
통일교회의 사명
통일교회는 어떠한 교회인가? 산이 있으면 굴을 뚫고, 골짜기가 있으면 교량을 놓는 일을 하는 교회입니다. 철통같은 사탄과 대적하는 최일선의 교회입니다. 여기에서는 사탄을 나 혼자서 책임지겠다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할 수 있는 힘을 다하여도 하지 못할 때에 하나님께 협조를 청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협조하여 주실 것입니다.

이 나라 이 민족이 8·15해방 때 얼마나 기뻐했습니까? 이제는 하나님을 해방시켜야 합니다. 천상천하에 이런 집단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을 해방시키는 것이 목표입니다. 하나님께서 마음을 놓고 웃으실 수 있어야만 천하에도 기쁨과 해방의 한 날이 옵니다. 그러니 그것을 책임질 정병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이념이 한많은 한반도에서 실현될 수 있다니 얼마나 복된 일입니까?

그러면 이 좋은 날을 찾아가는 비결은 무엇이냐? 어떻게 그 한 날을 찾아갈 것이냐? 그 비결이 무엇이냐? 과거, 현재, 미래가 있거늘…. 우리는 이제까지 한많고 슬픈 역사노정을 걸어왔습니다. 과거보다는 오늘, 오늘보다는 내일이 나아져야 합니다. 오늘의 나를 세워 어제의 나보다 나아져야 하고, 금년보다 내년은 주먹하나 만큼이라도 나아져야 합니다. 지식도 지식이지만 마음과 몸의 인격에 있어서도 점점 좋아지는 생활을 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낙오자가 됩니다.

미래에 낙오자가 되지 마십시오. 오늘의 황폐한 현실을 보고 낙심하지 마십시오. 미래가 있으니 낙망하지 마십시오. 만일 길이 막혀 다른 어느 민족도, 다른 어느 누구도 못 간다면 우리는 이 기회에 제일 약소한 무리라 할지라도 그 길을 뚫고 가야 합니다. 그러면 복받는 무리가 될 것입니다. 좋은 환경에서는 노래에 맞춰 춤을 출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무거운 보따리를 짊어지고 고개를 넘으라고 한다면 그럴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모두 하나님 앞에 바쳐져야 될 것이니 그렇게 하겠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모든 사람들은 그 앞에 모든 것을 바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한국인은 숙명적으로 비애, 절망, 낭패 등을 당해 왔습니다. 그러나 이런 절망을 멋지게 넘어설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위하여 수고하겠다고 하며 나서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좋아하시지 않겠습니까?

지금까지 나는 탄식만 해 왔으나 이제부터는 ‘미국백성도, 공산주의자도 나와 비교해 보자. 너희들이 가지 못하고 쓰러지는 길을 나는 가겠다’는 자신을 가져야 합니다. 그들이 자기들끼리 싸우다 쓰러지면 그때 승리의 깃발을 듭시다 하는 것이 도인의 입장입니다. 이러한 것을 가르쳐 주는 곳이 통일교회입니다.

오늘보다 내일이 나아져야 하고 내일보다는 모레가 나아져야 합니다. 자꾸만 나아져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고생을 많이 해야 합니다. 뼈가 부서지도록 고생해야 합니다. 공부를 하거나 농사를 짓거나 편안해 가지고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없습니다. 십자가가 동반되어야 합니다.

위대한 지도자란 인생이 필시 가야 할 정도를 발견한 사람입니다. 6천년의 고생보따리를 짊어 지워줘도 ‘하겠습니다’ 할 수 있는 지도자가 되어야 됩니다. 생명을 걸고 가겠다고 할 수 있고, 가다가 쓰러져도 ‘고맙습니다’라고 할 수 있다면 세계는 그의 것이 됩니다. 쓰러져도 그러한 입장에서 쓰러지면 천지의 운세가 동하여 천지를 정복할 수 있습니다. 예수는 죽었으되 세계를 정복했습니다.

우리들의 임무는 이 삼천리 강토에 널려 있는 청년 남녀를 불러다가 수련을 시켜 역사적인 한의 곡절을 총청산하는 충신, 효자, 열녀를 만드는 것입니다.

11-313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이 되라
통일교인은 슬픔과 고통의 자리로 몰림을 당하기도 합니다. 거기서 힘을 다하다 쓰러지면 망하느냐? 그 길이 정도라면 망하지 않습니다. 선생님에게는 그러한 길로 몰아넣을 수 있는 배포가 있습니다. 지금 여러분이 처해 있는 이 자리는 어떠한 자리인가? 오늘에서 내일로 넘어가는 역사적인 자리입니다. 젊은 청년들인 여러분은 ‘역사적인 모든 사람들이여 오라! 내가 매를 맞아 주마. 대신 죽어 주마’ 하고 선봉에 나서야 합니다. 과거에는 어려움을 당하면 도망치던 내가 변하여 새로운 역사의 파수꾼이 되겠다고 나선다면 나쁜 일입니까, 좋은 일입니까?

하나님은 힘쓰는 자의 것이 되게 되어 있으니 새시대는 필시 `하나님의 수고를 나에게 인계하여 주십시오’ 하며 싸우는 자들의 것이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 책임을 지고 싸우십시오. 하나님이 무엇이든 갖다 줄 수 있는 사람을 만드는 것이 통일교회의 이상입니다. 어제보다는 오늘이, 오늘보다는 내일이 나아지도록 합시다. 그러면 기쁨의 왕자가 될 수 있습니다.

선생님은 본부에 있지만 하루에도 몇 번씩 전국을 다 돌아보고 싶습니다. 뿐만아니라 전세계와 천상까지도 다 돌아보고 싶습니다. 오늘보다는 내일 더 가치있는 투사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하나님!’ 하는 소리가 수많은 종교인과 도인들이 부르는 ‘하나님!’ 소리보다 더 커야 합니다. 또 ‘아버지는 틀림없이 우리의 말을 들어 주신다’ 하는 자신감을 갖고 그럴 수 있게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실 수 있는 내가 되어야 합니다. 하늘과 땅과 만물이 영원히 부러워할 수 있는 불변의 기대를 닦아 전체가 기뻐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소망하는 기쁨의 날은 시작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