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03: 직계의 자녀가 되는 길

직계의 자녀가 되는 길
1962.03.01 (목), 한국 전본부교회

11-303
직계의 자녀가 되는 길
[말씀 요지]

하나님이 종의 입장에서 사명을 못 하는 민족과 국가를 칠 때에는 하나님 자신이 그 이상 많은 고통을 받으신 후에 치는 것이다. 고로 하나님은 불쌍한 하나님이시다.

종의 자리에서 양자의 자리로 가는 데에는 복잡한 수속절차가 있다. 기독교는 양자의 권한을 갖고 있는 종교이다.

이제는 양자의 자리에서 직계 자녀의 자리로 나아가는 때다. 양자는 출발부터 다른 자녀이다. 몸도 마음도 심정도 혈통도 부모와는 다른 자녀이다. 그러나 직계 자녀는 부모와 혈통이 같다.

부모의 고통이 그 핏줄에 있고, 부모의 선악의 전부가 그 핏줄에 있다. 자식이 어린애기로 태어나지만 그 자식에게는 부모가 자라던 근원에까지 인연이 맺어져 있다. 80노인의 일평생의 모든 것이 10살 난 자식이라도 그에게 모두 인연지어져 있는 것이다.

접을 붙일 때에도, 양쪽에서 진액이 나와서 화(和)할 수 있는 하나의 기준이 잡혀야 그 진액이 전체에 이어진다. 접을 붙이기 위하여는 뭉청 잘라야 한다. 고목에는 접을 붙일 수 없다. 아무리 큰 나무라도 다 끊어내야 접을 붙일 수 있다. 끝날 성도들에게 모든 것을 버리라고 하는 것은 접붙일 준비를 하라는 말이다.

성신을 거쳐 예수님의 마음속에까지 들어가려는 것이 오늘의 기독교의 역사(役事)다. 고로 예수님은 종적으로 볼 때에는 부모요, 횡적으로 볼 때에는 신랑이다. 물론 남자에 대해서도 예수님은 신부라 했다. 고로 남자도 예수님을 그리워해야 한다. 자기의 몸이 자기 것이 아닌 입장에 서야 한다.

자기 자신을 심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세계를 심판할 수 있다. 역사적인 인물들은 모두 ‘나만 남았나이다’ 하는 자리에서 출발하였다.

부모를 사랑하는 것이 자식을 사랑하는 것보다 털끝만큼이라도 나아야 한다. 도의 생활의 저울추가 자식인 것이다.

하나님의 심정으로 인하여 창조가 있었던 것이니, 모든 것이 있기 전에 심정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고로 우리는 현대에 살고 있지만 심정만은 하나님이 창조한 때부터 현재까지 전역사에 동참되어 있다.

종으로부터 양자, 자녀, 부부, 부모의 자리로 나아가고, 하나님과 일체를 이루는 자리에까지 나아가야 하니 험난한 길을 아니 갈 수 없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