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97: 하나님과 우리의 재산은 심정이다

하나님과 우리의 재산은 심정이다
1962.02.23 (금), 한국 전본부교회

11-297
하나님과 우리의 재산은 심정이다
로마서 8:12

[말씀 요지]

지상에는 한을 품고 허덕이는 사람이 많다. 우리에게는 이러한 한을 토로할 수 있는 친척과 친구가 있다. 그러나 하나님에게는 그러한 대상이 없다.

우리는 고통이나 슬픔 등이 하나님과 아무 관계가 없는 줄 알고 지내왔다. 알고 보면 인간에게 아무런 큰 한이 있더라도 아무리 분한 원수가 있다 해도 이것들은 어떠한 한계 안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하늘의 분(憤)과 한은 역사적인 것이다.

인간은 한을 풀기 위해 어떠한 것을 생각하고 추구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무리 슬픈 일이 있더라도 그 슬픔을 표시할 수가 없었다. 그것은 이 세계가 원수의 주관하는 세계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불행을 표시하는 말은 여러가지가 있어도, 하나님의 불행은 무어라 말할 수 없을 정도다. 하나님의 불행을 어찌 인간의 불행에 비할 수 있겠는가.

인간은 불행하다. 우리는 불행한 인간을 찾아가야 한다. 하나님에게 고통을 준 것이 인간이기 때문에 인간이 하나님의 불행을 청산해 드려야 한다.

하나님의 한은 세기적이요 세계적이다. 하나님은 역사를 이끌고 심판의 한 날을 향하고 있다. 여기에 앞장서는 사람은 하나님의 심정을 알아야만 한다.

사랑의 하나님이 왜 제물을 받아야 하는가? 그것은 고통 가운데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어느 도(道)나 제물의 과정을 거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인간이 비참한 자리에 들어가는 것을 인간은 막을 수 없다. 왜 그런가? 그것은 하늘이 인간의 비참함을 하나님의 것으로 세우려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개인을 희생시켜 가정과 사회와 국가를 세워 나간다. 7년대환란은 그래서 있어야 하는 것이다. 심판대에서 최후의 부름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비참한 사람들이다.

메시아를 찾아 나아가는 사람에게는 행복과 평안을 허락할 수 없는 것이다. 하늘이여, 인류여, 나를 쳐라! 역사 이래의 모든 것이 전부 동원되어 나를 치더라도 그것을 이길 수 있는 자라야 최후의 승리자가 되는 것이다.

아무리 사탄세계의 위압이 있다 하더라도 쓰러질 때는 혼자 쓰러지지 말고 하나님을 붙들고 쓰러져야 한다. 예수님같이…. 이스라엘 민족은 쓰러지면서 하나님을 붙들지 못하였다.

앞으로 미국이 사명을 못 하면 이제껏 쌓아 놓은 탑이 무너진다. 쓰러지더라도 하나님을 붙들고 쓰러져야 한다. ‘아버지, 당신의 한을 나로 인하여 청산하시옵소서’라고 할 수 있어야 한다. 아니, ‘이제부터 새로운 역사를 출발시키시옵소서’라고 할 수 있어야 되는 것이다.

이러한 자리에서 하나님과 함께 심정의 터를 닦아야 새역사가 시작되는 것이다. 그러한 사람이라야 새로운 시대의 선봉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지금은 이념주의시대이다. 또한 세계주의시대이다. 앞으로 올 세계와 자기와의 관계를 알아야 한다. 그 관계의 차이가 크면 클수록 고통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지금은 불행한 때다. 이것이 크면 클수록 복된 세계가 빨리 온다.

심정은 개인에서 천주까지 직선을 그으며 그 외적인 형을 넓혀 왔다. 고로 인간이 알아야 할 것은 ① 타락의 심정 ② 복귀의 심정 ③ 부활의 심정이다. 이것은 역사적으로 내려온 것이지만 여러분은 오늘 이 시대의 전체를 평면적으로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야곱이 고생할 때에는 그에 반응하여 모든 사람이 고생해야 하는 것이다. 나는 과거의 개인, 가정, 민족, 국가의 결실체로서의 ‘나’라는 것을 심정적으로 알아야 한다.

‘너는 누구냐?’ 할 때, 복귀된 아담이요, 복귀된 노아라고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아담과 노아를 심판할 수 있다. 요컨대 심정을 중심해야 심판이 성립될 수 있다.

우리는 영육을 합하여 한을 풀 수 있는 실체가 되어야 한다. 이러한 사람은 역사적이고, 시대적이며, 미래적인 실체다.

하나님의 창조 전후와 과정의 심정을 갖고 주관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승리적인 존재가 됐는가 안 됐는가를 결정하는 것이 대심판이다. 그러한 사람은 아담이 당한 유혹이나 시험, 노아의 시련, 아브라함의 시련, 그리고 모세가 당한 어떠한 처참한 것도 이겨내야 한다. 미디안 광야 40년의 역경이나 십자가의 죽음도 문제가 없다는 입장에 서야 한다. 하나님이 치시더라도 괜찮다는 입장에 서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을 배반한 것을 탕감복귀할 수 있는 것이다.

자기가 생각하고 소망하지도 않은 세계가 자기의 것이 될 수 있을 것인가? 우리는 죽은 자와 산 자를 심판할 수 있는 자신이 있어야 한다. 역사적인 인물의 꼭대기를 넘어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면 그 얼마나 멋진 일인가!

여러분은 어떠한 역사적인 인물의 짐을 지워달라고 기도해 본 일이 있는가? 아침 햇빛과 저녁 별빛을 바라보며 역사 이래 한을 품어 오신 하나님의 소망의 한 날을 바라보며 비춰 주는 것이라는 감정을 가져 보았는가?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이 우리를 보고 슬퍼하신다는 것을 아는 만물이므로 만물이 탄식하는 것이다. 어느 누구도 밥(음식)의 신세를 지지 않은 사람은 없다. 아니라고 하면 그들은 원망스럽다고 할 것이다. 그들이 동맹이라도 한다면 10일 이내에 인류는 쓰러지고 말 것이다. 그러니 모든 인류가 자기들로 인하여 살고 있다고 할 것이다. 밥의 신세를 지고 사는 우리들은 밥만 못하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을 하면 만물은 모두 우주적인 것이다. 이런 것들을 자기 것으로 주관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하나님의 심정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심정과 하나 된 조건이 갖추어질 때 비로소 가능하다.

말씀의 모든 요소 중에서 중심은 심정이다. 말씀은 태초부터 있었다. 하나님이 슬퍼하시는 것은 이것이 단절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을 잇자는 것이 복귀섭리이다. 이것을 잇는 자는 역사적인 재현의 실체이다.

예수님이 심정적인 재현의 한 날을 바라보고 오신다. 하나님은 정복하고야 안식할 수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아무리 탄식해도 이러한 심정을 중심하고 탄식해 보지 못한 우리들이다.

하나님을 대신한 심정으로 모든 것을 소화할 수 있어야 한다. 심정으로 원수를 점령하라! 하나님과 우리의 재산은 심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