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89: 예수의 참다운 탄생과 참다운 축하

예수의 참다운 탄생과 참다운 축하
1962.01.03 (수), 한국 전본부교회

11-289
예수의 참다운 탄생과 참다운 축하
누가복음 2:1

[말씀 요지]

하나님이 천지 만물을 짓게 될 때, 참다운 인간의 조상을 세워 영원토록 기뻐하고자 하셨다. 그런 기쁨이 계속될 수 있는 세계를 바라보고 아담 해와를 지으셨다.

그런데, 아담 해와가 기뻐하고 감사해 하고 행복해 하면 하나님도 기쁘고 영광이겠으나, 타락으로 인해 그들이 지옥을 달리는 선봉자가 되었으니 하나님은 그렇지 못했다. 하나님이 지어 주신 것을 자랑할 수 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으니 아담 해와는 수치의 조상이 되었다.

아담 해와를 원망하는 동시에 만물을 원망하면 원망할수록 하나님에게 슬픔이 돌아간다. 우리는 아담 해와가 저지른 모든 것을 다 회복해야 한다.

그러면 하늘과 인류와 만물의 슬픔이 어느 때에 풀리겠느냐? 이것은 후아담, 곧 예수로 말미암아 풀리게 되어 있었다. 예수님의 탄생은 아담 해와를 다시 살리는 재생의 기점이 되는 것이다.

예수님 한 분의 탄생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재현되는 것이요, 피조만물이 재생되는 것이다. 곧 메시아의 탄생은 세계에 대한 하나님의 소원 성취의 기점이다. 그 한 때를 맞기 위하여 고생을 해 오셨는데, 이스라엘 민족은 그러한 하나님의 뜻에 부응하지 못했다. 오히려 이스라엘 민족 때문에 실패하게 되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 민족의 반역이 없었더라면 개인과 가정과 민족도 찾아 세울 수 있었는데, 이스라엘 민족의 불신으로 섭리의 전체적인 책임을 감당하지 못했다.

예수님은 이중의 십자가 노정을 걸으셨다. 하나는 이스라엘 민족을 위한 것과 또 하나는 자기 자체의 사명을 완수하기 위한 것이다. 부활 후에 12제자를 다시 찾아가 일을 하셨다.

예수님은 이스라엘 민족이 받들지 않으니 30세까지는 개인을 중심한 가정적인 기준, 종족적인 기준을 만들어 놔야 민족적인 기준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요셉과 마리아가 하나되었더라면 가정적인 기대는 이루어졌을 것인데, 그러지 못한 가운데 종족적인 기준을 세우려니 이중의 십자가를 지게 되었다. 내적으로 택해 세운 이스라엘 민족과 하나되어 나가지 못하고 외적으로 나아가 하나님의 아들딸을 찾아 뜻을 이루고자 한 것이 3년 공생애였다.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는 동시에 하나님의 아들딸의 나라를 건설하고 온 우주에 있는 사탄의 세력을 제거하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기에, 그러한 뜻을 품고 사탄을 대해 싸워 나가면서 뜻을 이루고자 한 것이 3년 공생애 노정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재현이자 하나님 나라의 재현이요, 에덴 동산의 재현이며 하나님의 사랑의 재현이다.

이스라엘 민족은 슬픈 민족이 될 것이 아니고 온 천상천하를 주관하는 민족이 되어야 할 것인데 그러지 못했다. 이스라엘 민족의 하나님은 예수만의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이름은 예수만의 이름으로 남아졌다. 이스라엘 민족이 하늘 민족, 하늘 백성, 하늘의 소원이 될 수 있어야 할 것인데 하나님의 나라도, 하나님의 사람도 예수만으로 한정되고 말았다.

예수와 더불어 이룰 수 있는 하나의 가정적, 혈통적 기반이 되어야 할 것인데 그러지 못했다. 증거한 사람도 그랬다. 요셉과 마리아도 그랬다. 예수는 나면서부터 영광을 누려야 할 것이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이것이 지금까지 남아져 있다. 예수님의 복음은 천국이념으로 이스라엘 민족이 잘못한 연고로 예수만의 것이 되고 말았다. 또 메시아가 만민의 것으로 남기지 못하니 하나님의 것으로 남아졌다.

예수가 하나님의 것만으로 탄생되니 이런 것을 바라보는 하나님은 탄식하고 후회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예수가 그리스도인 줄 마리아나 요셉은 몰랐다.

4천년 동안 찾아 세운 제1이스라엘은 깨어져 나가고 예수 믿는 무리로 제2이스라엘이 형성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이후 지금까지 그러한 무리를 중심삼고 섭리해 나오셨다. 예수는 자신의 소망과 꿈을 인류와 하늘땅의 소망으로 이루기 위해 걸은 것이다.

참다운 축하를 드리기 위하여는 이스라엘 민족 앞에 보이시던 예수의 참모습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사랑은 예수의 사랑이요, 예수의 사랑은 곧 내 사랑이라고 할 수 있어야 한다.

하늘의 천군천사가 찬양하기 전에 우리 인간들이 먼저 찬양하지 못한 것을 한해야 한다. 심정적인 차이는 있을망정 오늘과 같은 축하는 처음이다. 참다운 축하를 못 드리면 참다운 분을 모시지 못한다. 그가 죽으면 대신 죽겠다고 해야 한다.

여러분은 다시 오시는 메시아의 한을 해원할 수 있는 인격자가 되어야 한다. 메시아를 맞이하여 해방의 자리에서 기뻐하고 사랑해야 한다. 메시아는 하늘나라의 왕자로서 사랑과 생명과 기쁨의 중심이요 이상의 중심이었다.

다시 찾아오는 메시아 앞에 부끄러움 없이 나타날 수 있는 적격자가 되라. 자신의 마음 상태나 생활을 예수와 비교해 볼 때 과연 자신이 있느냐? 모시기 위하여 준비되어 있느냐? 그렇지 못하다면 문제다. 하나님의 대상인 하나님의 가정, 하나님의 민족, 하나님의 세계까지 나타나야 한다. 민족과 하늘과 땅을 대신하여 축하할 책임을 느껴야 이스라엘의 대를 이어나갈 수 있는 자격자가 된다. 그리고 과거 이스라엘의 재현의 실체가 된다.

그러므로 이제 여러분의 종말노정에 있어서 이스라엘 민족이 실수한 것과 같은 그러한 노정이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신념이 있어야 되겠다. 이러한 믿음을 가져야 한다. 이제는 세계적인 준비와 기반을 닦아 가지고 나타나야 할 것이다. 한으로 남아진 것을 박차고 나서서 모든 것을 상속받겠다는 신념을 가지고 오시는 주를 맞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다시는 주를 맞을 수 없다.

여러분은 과거의 모든 실수는 무지했기 때문인 것으로 알고 이제는 새로운 주님의 사랑을 받아야 한다. 오늘날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자보다 예수 당시에 축하하는 자를 하늘은 더 소망하였다. 우리는 하나님의 실체가 되어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자가 되고, 또 그렇게 된 다음에 죽은 예수의 한을 풀고 모실 수 있어야 한다. 그러한 자격을 갖추어 가지고 주님의 성탄을 축하한다면 2천년이 지난 오늘이지만 그러한 축하가 가장 의의가 있을 것이다.

나는 여러분이 지금까지의 모든 잘못을 총탕감하고 넘어가겠다는 마음을 갖추어 가지고 오시는 주는 어떠한 개인이 아니고 하나님의 재현체이고, 온 천주이념의 재현체라는 것을 깨닫기를 바란다. 참다운 축하의 자격자가 되라.

──중 략──

6천년 역사는 하나님이 개인을 때려 개인을 뺏고, 가정을 때려 가정을 뺏고, 민족을 때려 민족을 뺏고, 국가를 때려 국가를 뺏고, 세계를 때려 세계를 빼앗아 온 역사이다. 예수는 역대 섭리사에 왔다 갔던 중심인물들의 재림체요, 국가는 이스라엘의 재림체다.

공산주의는 가인, 민주주의는 아벨, 이상세계는 셋을 상징한다. 율법적으로 에덴을 복귀하고자 하는 파는 신구약을 지킨다. 진리로 에덴을 복귀하고자 하는 파는 ‘이용도’ 파로서 모든 것을 진리로 풀어나가는 파다. 그러나 이제는 사랑으로 에덴을 복귀하고자 하는 파가 나와야 한다. 지금은 성경에 있는 최고의 말씀을 거두어 이룰 때다.

여러분은 지금 하늘과 종적으로 연결되어 나아가지만, 중심이 생긴 다음부터는 평면적으로 연결되어 나아간다. 심정적인 인연을 벗어나서 존재하는 것은 없다. 참된 통일의 아들딸이 있다고 하면 하나님은 그들에게 바라는 것이 많을 것이다. 자신을 주고 싶을 것이다. 과거나 현재에도 그러하고 미래에도 그러할 것이다.

어떠한 고통과 슬픔이 있어도 사탄 앞에 굴복하면 해원할 도리가 없다.

그러면 여러분은 이제 어떻게 해야 할 것이냐? 내 나가는 길을 어떠한 고통이나 슬픔과 어려움도 막을 수 없다는 심정적인 기준을 세워야 한다. 그리고 아버지께 ‘제 어깨에, 제 몸에 지우고 싶으신 것을 지워 주시옵소서’ 하고 자신 있게 아뢸 수 있어야 한다.

나무의 순은 하늘을 향하여 90°로 자라고 있다. 인간은 만물의 주관자요. 주관자는 중심존재다. 그러므로 인간은 그 무엇이 걸고 잡아채도 넘어지지 않아야 한다. 45°의 입장에 처한 인간은 다 꺾였다.

선생님은 이 길을 가고 싶어서가 아니라 가야 하기 때문에 갔다. 아직까지는 탕감노정이었다. 하나님의 소원은 창조의 이념을 이루는 것이다. 그 뜻을 이루어 드려야 한다. 하나님 앞에 나가는데 이념과 이상이 높은 것은 좋되 하나님의 심정은 여러분의 이념과 이상 그 이상이기 때문에 자숙해야 한다.

하나님의 아들딸이라면 하나님의 심정을 나타내야 한다. 한을 해원해 드리기 위해서는 심정을 중심삼고 해야 한다. 하늘과 땅, 또는 영계의 천천만 영인들이 걸고 넘어지더라도 무난히 넘어서야 한다. 보다 가까운 식구 식구들의 한을 풀어주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좋아하신다. 선생님은 그러한 것에 너무나 예민해 있다.

하나님의 6천년의 원, 이것은 이 땅에서 풀어야 한다. 원, 이것은 어느때부터 있었느냐? 타락 전부터 있었다. 그것은 창조이념을 중심삼은 원이다. 거기에 타락의 한이 첨부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모든 한을 풀어드려야 한다. 어디에서? 지상에서 해야 한다. 여러분 각자로부터 해야 한다. 하나님을 믿는 아들딸로서의 여러분이 아니면 안 된다. 타락으로 떨어진 것을 다시 붙안고 창조의 성업을 이루기 위한 섭리가 6천년 역사다. 우리는 지금까지 실수한 모든 것까지 해결해야 할 입장에 있다.

하나님은 여러분과 무엇을 맺기 위하여 찾아 오시겠나? 여러분은 죄에서 해방을 받아 마음과 몸이 화동할 수 있는 입장을 갖추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어야 한다. 마음과 뜻을 다하고 정성을 다해야 한다. 어느 정도? 목적이 없는 만물은 하나도 없다. 목적을 다하는 날까지…….

이때는 결실기인 가을과 같은 때다. 눈 앞에 보이는 만물, 또는 천상에 있는 모든 것은 다 아버지의 심정을 통해야 한다. 지상의 어느 것이라도 다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자리까지 나아가야 한다.

여러분의 느낌이 마음을 움직이고 심정까지 움직여야 한다. 나아가 환경을 움직이고 만물까지 감동시켜야 한다.

자신을 비판해 보라! 아버지의 사랑 앞에 무엇을 나타낼 것이냐? 실체적인 그 무엇을 가지고 나타내야 한다. 이것이 남자는 여자와 여자는 남자와의 주고 받음이다. 상하 부모, 전후 부부, 좌우 형제로서 식구들끼리끼리 한을 풀어야 아버지의 한을 풀어드릴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