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9 to 12-13: 죽음을 각오하고 가라

죽음을 각오하고 가라
1962.07.01 (일), 한국 전본부교회

12-09
죽음을 각오하고 가라
[말씀 요지]

1960년에 3년 노정을 약속하고 출발했는데, 벌써 2년이 경과하고 이제 1년밖에 안 남았다. 나는 자나 깨나 잊지 않고 금년 이 한해를 어떻게 보낼 것인가 생각하고 있다. 뜻 앞에 승리적인 성과를 올리기 위해 아낌없이 바칠 각오로 움직이라.

12-09
여러분은 어떤 자리에 머물러 있는가
이 뜻은 스승만의 뜻도 아니요 현재의 식구만의 뜻도 아니다. 스승과 통일식구뿐만 아니라 이 땅과 하늘, 그리고 하나님 아버지의 뜻인 것이다. 이처럼 크고 놀라운 뜻인 것이다. 2년 동안 많은 핍박의 길과 여러가지 사정을 헤치고 나왔다.

오늘에 자아의 가치를 걸어 놓고 오늘과 내일의 문제들을 생각해 볼 때, 뜻을 걸고 싸워 나온 것은 잘 싸웠다고 할지 모른다. 물론 남에게 자극을 주기도 했을 것이다.

하늘이 동역한 과거를 생각할 때, 하늘땅이 숭배할 수 있는 내가 되어 있느냐, 같이 한 번 생각해 봐야 할 때인 것이다. 이것으로 종결되는 뜻이 아니라 앞에서 쓰러지면 밟고 넘어가서라도 이루어야 할 뜻인 것이다. 쓰러지더라도 `내 대신 부디 이 뜻을 이루어다오’ 하면서 스스로의 역사를 상속할 수 있는 유언이라도 하고 쓰러져야 한다.

과거보다도 현재가, 현재보다도 미래가 문제다. 현실을 밟고 서서 목적의 세계를 향해 행진해야 한다. 잘못하면 과거의 협조했던 것이 문제가 아니라 천적인 탄식을 하게 된다. 내 일대뿐만 아니라 선조와 후손까지 배후가 다 걸려들게 된다. 과거가 거룩하면 가는 발걸음도 훌륭하게 된다.

승리자냐 패자냐고 묻게 될 때, 지금 여러분은 어떤 자리에 머물러 있는가? 다시 한 번 수습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여러분이 교회문을 마음대로 출입해? 그렇게 할 수 없다. 여기서 부르는 아버지란 이름이 그렇게 쉽사리 부를 수 있는 아버지가 아니요, 여기서 부르는 식구라는 명사가 그렇게 쉽사리 부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천천만 성도가 피땀 흘린 터전 위에 세워진 것이다.

이 거룩한 자리에 나온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니다. 다시 말해서 설교 듣는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내 자체가 문제인 것이다. 인습적인 신앙관념이나 습관적인 생활이 다시 계속되는 경향이 없지 않은가 스스로 비판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

여러분은 어차피 태어났으니 살아야 하고, 살다가 가야 한다. 처음부터 태어나는 것도 선포하고 태어난 것이 아니요, 사는 것도 산다고 선포하고 사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가치적인 그 무엇을 가지고 태어났으면 그런 생활을 하다가 저 세상에 가야 한다. 또 그런 생애를 살아야 한다.

엄숙한 곳에서 내가 왔으니 엄숙한 곳에서 내가 살고 엄숙한 곳으로 가야 한다. 그것은 누가 시켜서 그러는 것이 아니다. 자연적인 인연에서 출발하여 자연적인 인연의 길로 가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부자연스럽게 출생하였고 부자연스러운 곳에서 살고 있고 부자연스러운 곳으로 가게 된다. 이렇게 살다 가면 되겠는가? 안 된다.

부자연스럽게 태어났으니 이것을 청산해야 하고, 부자연스럽게 살고 있으니 이것도 청산해야 하고, 부자연스럽게 가고 있으니 이것도 청산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이것은 자기 스스로는 청산할 수 없다. 이것을 청산해서 재 공인하려 하니, 하나님이 여러분의 삶을, 곧 죽고 사는 것을 간섭하려 하는 것이다.

우리의 선조들은 하나님에게 6천년에 걸쳐 부끄러운 책임을 지워 놓았다. 하나님이 지금까지 그 책임을 벗지 못 하셨기 때문에 오늘날 인류는 이렇게 원치 않는 자리에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결과를 바라보는 선조의 슬픔은 얼마나 컸겠는가? 한편 하늘의 요구는 얼마나 컸고, 하늘의 수고는 얼마나 컸더냐?

여러분 하나가 잘되면 천지가 잘되고 여러분 하나가 잘못되면 천지가 잘못되는 것은 배후의 역사적인 인연이 있기 때문이다. 일대 승리적인 깃발을 들고 자기 이름과 더불어 후대에 상속해야 할 문제가 있다.

여러분의 입교한 목적이 어디에 있느냐? 우리 교회에서 식구라고 불려지는 의미는 어디에 있느냐? 가족적으로 민족적으로 하늘적으로 청산해야 할 것을 청산치 못했으니, 그것을 가정 이전에 개체 개체로 청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어느 누구의 복을 위해서가 아니다.

12-11
배반하는 자리에 서지 말라
내가 본래 태어날 때 사랑의 인연이 있는 하늘에서 태어나지 못하고 사랑의 원수가 없는 가운데서 태어나지 못한 조건이 있다. 이것을 청산하는 데는 개인 문제부터 완전히 청산짓고 난 다음이라야 하늘과 땅의 문제가 청산되어진다. 미래에 조건이라도 남기고 가지 않으면 안 된다. 배후의 원통한 인연을 청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자신을 살펴볼 때 만신창이가 된 내 자신의 문제를 청산하여야 한다. 그것이 내 과거요 현실이요 미래인 것이다. 소위 자랑하는 바 내 자체요, 오늘의 내 입장인 것이다.

과거도 수치스럽고 현실도 수치스럽다. 이 모든 하늘 땅 앞에서의 수치를 어떻게 내 일대에서 해결할 것인가? 과거를 걸어 놓고 현실을 걸어 놓고 하늘 땅이 공인하는 가운데서 청산해서, 이 시간부터 그러한 자체를 한 시간이라도 내 일대에서 갖고야 말겠다고 재차 각오해야 한다.

뜻을 위한 내 생활에서 하늘 앞에 요것만은 과거에서 아직까지의 모든 것을 주고도 바꿀 수 없다고 하는 것을 갖지 않으면 안 되겠다.

아벨, 노아, 아브라함, 모세, 누구도 그러한 한 시간을 가졌다고 자처할 사람이 있느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영계에 가서는 얼굴을 못 든다.

구세주가 다시 오는 목적은 청산된 후에 하늘이 공인할 수 있는 길을 소개하는 것이다. 그것을 못 하고서는 우리와 메시아 사상은 하등의 관계가 없다. 그래 가지고는 우리가 사탄 대하여 승리한 자라고 할 수 없다. 이것만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런 하루를 가져야 한다. 섭리의 뜻을 대하여 나오신 하늘과 같이 살았다고 하는 그런 날이 우리에게 있어야 한다. 하늘 땅, 과거의 어느 누구도 흠모할 수 있는 한 날을 가져야만 한다.

그렇게 엄숙한 과제와 회개해야 할 일을 앞에 놓고, 오늘날 여기 들어 왔으니 이제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를 직시해야만 한다. 과거로 현재를 세운다. 즉 현재는 미래의 터전이 된다. 이 순간이 내일을 개척하느냐 못하느냐 하는 엄숙한 시점이다.

그러므로 뜻을 대해 나가는 길에는 방심이 있을 수 없다. 마음 놓을 사이가 없다. 요즈음 보건대, 재차 박차를 가해야 하겠다. 칭찬하기를 원하실진대, 그런 자리로 내몰아야 할 것이 하나님의 입장이다. 현실의 생활을 밟고 올라서서 새로운 미래의 터전으로 나아가라고, 하나님은 쉬지 않고 강조하신다. 여러분이 무책임한 중에도 하나님은 책임지시고 일을 해오셨다. 이런 것을 느끼면 느낄수록 밥을 먹고 배부른 것도 미안해하고, 건강한 모습도 미안해해야 한다.

몸이 병들었어도 한 시간을 아까워해야 할 식구가 있다는 것이다. 죽는 자리에서도 더하고 한 시간이라도 더 가라고 하시는 하늘이 있는 것이다.

그동안 많은 사람을 만나 보았다. 눈물 콧물 흘리며 맹세하던 사람, 세상이 다 못 가도 너만은 가겠지 한 사람들이 어디론가 다 가버렸다. 그 눈물도 그 맹세도 아랑곳없이 다 자기 갈 곳으로 가버렸다. 떠난 그들은 편안할지 모르지만 그것은 통회하며 맹세한 하늘과의 인연을 수치스럽게 한 것이다.

`나’라는 사람 때문에 어떠한 손상을 입으셨느냐고 하나님께 기도해 보라. `나’라는 사람을 세워서 하늘의 위신과 체면을 세우려고 하셨는데 기도라니 말도 안 된다. 예수님은 하늘의 왕자로 오셨다가 민족의 반역자로 몰리어 십자가의 이슬로 사라질 때 `내 뜻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하고 호소하셨다. 죽는 그때까지 운명하는 그때까지 하늘의 위신과 체면을 세우려 하신 것이다.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겟세마네 동산에서도 `내 뜻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하고 부르짖은 예수였다. 여러분은 죽음의 자리에서도 하늘을 배반하는 자리에 서지 말라.

우리가 가는 길은 사망으로 출발했으니 사망을 걸어 놓고 죽음을 각오하고 걸어야 한다. 가자! 사람은 누구나 피로한 것도 마찬가지고 어려운 것도 마찬가지다. 가자! 우리는 사상기준이 다르다. 모진 바람이 불어오고 사망의 물결이 흘러오는 자리에도 가자. 일기가 나쁘고 바람이 불어오는 자리에도 가자. 과거에 백운대 등산할 때와 지금을 비교해 보라. 과거에는 애기를 업고도 백운대 등산한 사람이 4명이나 있었다. 지금은 몇사람이나 될까?

12-13
3년 기간은 정성을 다하라
지금까지 통일교회의 길은 외적인 핍박이 많았다. 40평생 하루도 마음 놓고 못 살았다. 영계로부터 외부로부터 안팎으로 핍박이 컸다. 그래서 선생님은 `언제 40고개를 넘나, 세월아 빨리 가거라’ 하면서 나왔다. 40고개를 넘기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른다.

불쌍한 것으로 연결하여 40평생을 걸어온 것이 복귀의 노정이었다. 이제는 단축시켜 준다. 탕감복귀이다. 3년 기간에 단축된다. 3년 기간은 정성을 다하여야 한다. 개인 가정 민족을 걸어 놓고 싸워야 할 생사의 판가리 노정이다.

이 3년 기간 행사를 해놓고 좀 안심했다. 이 길까지 오는 동안 얼마나 어렵게 지내왔는지, 초대에는 영계로부터 시작하여 핍박이 많았다. 말씀을 통해서 하면 사탄이 조건을 세울 수 없다. 하늘이 명령하면 사탄 앞에 반격을 받아야 한다.

핍박하는 것은 자기뿐만 아니라 영계와 지상간의 삼각적인 반응으로 생기는 것이다. 옛날에는 극장도 한번 못 가고 종아리도 팔도 못 내놓고 다니고, 세수를 하는 데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했다. 그렇게 사탄세계와 격리하여 살았다. 지금은 겉으로 보기에 신앙생활을 하는지 어떤지 알 수 없어도 사탄이 참소할 수 없는 자리까지 나왔다.

작년 성혼식 때만 해도 반격이 심했다. 승리적인 기반을 얻고 난 다음에는 된다. 하늘이 이렇게 했으니 여러분도 그래야 한다. 여러분이 3년동안에 남길 것은, 이 기간은 내 기간이니 조금이라도 보탬되게 하라. 이기간을 통과함으로 하늘의 공인받은 여러분을 세워 과거를 중심삼은 현실, 현재를 중심삼은 미래를 세워야 한다. 미래의 사람도 걸어야 한다.

금년까지는 내적으로 핍박을 받는다. 요거 넘으면, 들어오기 힘들 것이다. 들어오려면 어찌나 시끄러운지 모른다. 그래서 내일 모레(7월 4일)순회 떠난다. 그 날이 뜻있는 날이다.

3년 기간의 공적인 순회는 이번이 마지막이 될지 모른다. 이번만이라도 같이 순회하는 심정을 가지도록 하라. 전체를 대신할 때는 특별히 정신차리도록 하라.

그러한 기간을 정성 다 들이면 여러분 자신이 산다. 8일 동안 다녀올테니 협회장과 단결하여 기도하면서 지내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