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7: 하나님의 충신 효자 열녀가 되라

하나님의 충신 효자 열녀가 되라
1961.01.29 (일), 한국 전본부교회

11-77
하나님의 충신 효자 열녀가 되라
[말씀 요지]

심정에 사무치게 될 때 주위가 움직이게 된다. 왜 주위가 움직이느냐? 지금까지 움직이지 않은 것은 마음의 방향성이 틀렸었기 때문이다.

이제 심정적인 기준이 하나님과 90도가 되어야 한다.

세계 인류의 가장 긴박한 문제는 이념적인 방향을 갖춘 토대를 이루는 것이다.그런 자리를 갖추어 가지고 변치 않고 나아가는 사람이 제일 무섭다.

하나님이 인간 타락 후 슬퍼하신 것은 사랑의 굳은 연결이 끊어졌기 때문이다.

참다운 마음, 참다운 사랑, 참다운 심정은 모두 간곡한 자리에서 인연을 맺어야 한다.

일주일 동안 심정적인 인연을 갖추기 위해 기도한 데 대해 감사한다.

4일간 순회하면서 느꼈던 것은 역사적으로 군왕을 위한 충신 효자 열녀는 많았는데 비해 하나님의 뜻을 위한 충신 효자 열녀는 없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우리는 다르다는 것이다. 그들은 모두 땅의 기준에 입각한 자유해방을 위해 바쳐온 것이다. 역시 그들은 하나님 앞에 근심의 대상은 되었을지라도 위안이나 기쁨의 대상은 되지 못했다.

아직까지 충신 효자 열녀라고 하나님이 자랑한 사람은 없었다.

하나님 앞에 충신 효자 열녀가 되는 것이 인간의 정도이지만 그런 사람은 없었다. 군왕과 부모에게는 그랬을지라도 하나님 앞에 그런 사람은 없었다.

하나님은 세상의 충신 효자 열녀들을 바라보시면서 그들이 하나님을 위한 충신 효자 열녀가 되기를 얼마나 그리워했겠는가?

하나님은 위하고 싶고, 그리워하고, 좋아하고, 보고 싶어하신다. 또 모든 것을 하고 싶어하신다. 하나님은 하고 싶지 않으신 것이 없다.

내 웃음, 내 만족은 하나님과 같이한 것이라야 한다.

하나님을 위하여 나를 돌보지 않고 나가는 것이 신앙의 길이요, 도의 길이다.

인간의 모든 것은 하나님과 반대된 입장에 있다.

지상의 모든 사람들은 천도 앞에 부끄러운 존재였다. 우리의 소망은 하나님이 기뻐하는 가운데 주고받고, 동하고, 자고 깨고, 먹고 싶은 것이다.

하나님 앞에 장담하고 나설 인간은 한 사람도 없다. 이제까지 하나님을 추앙한 인간은 많았지만 부끄럼이 없다고 자신하는 인간은 한 사람도 없었다.

좋은 것과 나쁜 것은 차이가 있다. 인간이 좋아하는 길로 가면 길이 막히고 싫은 길로 가면 거기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것이 종교의 길이다.

이목구비가 하나님께서 자랑하실 수 있는 것이 되어 있느냐?

영인들이나 땅의 성도나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준에 처하여 있지 않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라고 한 성경의 이 말씀은 인간에게 구하라는 말씀이 아니다. 먼저 하나님에게 구하라는 것이다. 주님은 이러한 중심이 서 있기에 우리에게 권고하셨다. 성경의 ‘하지 말라’는 말씀이나 ‘하라’는 말씀에는 하나님의 뼈와 살이 녹아져 있다.

하나님은 그리워하신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찾으시나? 땅 위에서 자기를 찾는 사람을 찾으신다. 무한히 찾아 헤매며 구하고 두드리는 사람을 찾으신다.

하나님은 인간 타락 전이나 후나 변함이 없다. 인간을 떠나실 때도 눈물로 떠나셨고 찾아오실 때도 눈물로 찾아 오셨다. 고로 하나님을 찾아가는 인간들은 눈물로 찾아가야 한다.

하나님과 인간은 고통과 통곡과 눈물을 안 가지고는 서로 대할 수 없다.

이제까지 사람의 행동은 하나님의 입장과 상반된 자리에 있었다.

하나님 앞에 여러분은 어떠한 대상자가 되겠는가? 몸굽혀 눈물 흘리는 처절한 심정을 가진 자가 되지 않을 수 없다.

아버지는 어느 한 때 심정을 풀겠는가! ‘당신의 고통과 사정과 심정이자 내 것입니다’라고 하는 아들딸이 나타날 때 풀린다.

몸 둘 곳이 없어 허덕이는 자리에서 하나님과 심정의 인연을 맺을 수 있다.

남은 길을 열심히 넘어가야겠다. 힘이 부족하더라도 가야 한다. 친구나 이웃이라도 갖추어서 가야 한다.

여러분의 입장은 여러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 스스로 다짐하여 알아도 모르는 듯 있어도 없는 듯 ‘당신의 뜻대로 하시옵소서’라고 해야 한다.

하나님이 보고 싶고 사랑하고 싶었던 아들의 기준은 어떤 기준이었는가?

천권(天權)을 상속받을 수 있는 자는 어떤 사람이었던가?

예수님은 부활 후 마리아를 뿌리쳤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성전 휘장을 쳐놓고 대하셨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될 하나님의 사정이 있었다. 천번 만번 학대받고 몰림받고 쫓김받아도 ‘감사합니다’해야 한다.

역사적인 원수였던 인간이므로 하나님 앞에 부끄러운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이다. 하나님 앞에 나타날 때에는 자기의 몸과 이목구비의 수치스러움을 느껴야 한다.

하나님 앞에 추방된 것을 부끄러워하고 수치스러워하는 자리에서도 하나님과의 인연을 중시하며 받아들여야 정상적이다.

만민의 부끄러움을 가리워 주기 위하여 죽어간 분이 주님이다.

자기 스스로 자기의 실적을 내세워 ‘이만했으면 됐지’라고 할 수 없다. 스스로 자랑할 자가 있고, 기뻐할 자가 있다면 하나님밖에 없다.

하나님의 피 어린 손길을 찾아 헤매며 그리워하는 자, 하나님의 천권을 상속받을 자가 누구인고?

있으나 마나 한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 백성이 되든 아들이 되든 한 가지는 돼야 한다.

자랑한다면 못난 모습이지만 ‘어느 조건에든지 걸리지 않겠다’라고 자랑해야 한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피와 살에 심정을 심어 주고 싶어 하신다.

쓰러질 때 몸뚱이가 쓰러지는 것에 대해 슬퍼하지 말고, 피눈물로 외치시던 하나님을 생각하며 슬퍼해야 한다.

하나님 앞에 보이고 싶어하라.

스승이 좋아한다고 좋아하지 말라.

우리의 길은 외갈래 길이다.

옆에 대고 말이나 눈짓을 해서는 안 된다.

스승에게는 신념이 있다. 무엇이라도 할 수 있는 자신이 있다. 여러분에게도 그런 신념이 있는가.

지도자는 기뻐하는 자리에서가 아니라 슬퍼하고 눈물겨워하는 자리에서 인연맺어야 한다.

하나님이 보고 싶어하고 그리워하고 찾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말로만 알아서는 안 된다.

스승은 이 길을 찾아 나오기까지 참으로 비참했다.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다. 내 수족과 모든 것을 하나님 앞에 내놓기가 부끄러워 감추고 싶은 것을 불구하고 나서야 했다. 이러한 자리에서 하나님은 긍휼을 베풀고 축복을 하시고자 하신다.

마음으로 비웃기나 하고,

눈으로 곁눈질이나 하고,

손으로 성물이나 더럽히는,

이런 사람들은 이 길에 참여하지 않는 것이 좋다.

스승이 술을 안 마시면 음주자(飮酒者)는 참석하지 못하고, 스승이 담배를 피우지 않으면 담배 피우는 자는 참석하지 못한다.

지켜야 할 조건이 수십 가지가 있으나 말하지 않겠다.

3년 이상 뜻 앞에 충성할 기력이 없는 사람은 참가해서는 안 된다. 유언으로 예물을 후손에게 상속시킬 수 있는 자신이 없는 사람도 참가할 수 없다.

과거의 모든 후회의 조건과 곡절을 씻어 버리고 어린애의 입장으로 돌아가라. 어린애는 자기가 없다. 자기라는 의식과 소유관념을 망각해 버려라. 이 시간 여기에서 가르치는 것에 어긋나면 생애의 조건으로 남아져 사탄의 참소를 받을 것이다. 역사적인 노정을 걸은 선생님의 노정─1대 1의 탕감조건으로 세워야 하는 보응의 과정─을 여러분도 거쳐야 할지도 모른다.

고아 중의 고아가 되라.

이번에 18세 이상 60세 이하 연령에 해당하는 사람은 전도에 참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