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70 to 11-274: 공적인 사명자

공적인 사명자
1961.12.17 (일), 한국 전본부교회

11-270
공적인 사명자
[말씀 요지]

나는 개인적인 존재가 아니라 공적인 존재입니다. 선이나 의나 행복 등은 공적인 것이므로 이를 내 것으로 갖기 위해서는 공적인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역사를 통해 보아도 개인은 나타났다가 사라져도 공적인 의나 행복은 남아 있습니다. 내가 아무리 괴롭고 슬프더라도 공적인 복은 민족이나 인류를 위해 남겨 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11-270
공적인 존재가 되라
공적인 것은 역사가 보장하고, 시대가 보장하고, 미래가 보장해 줍니다. 즉 역사성과 시대성과 미래성을 띤다는 것입니다. 역사 이래로 공적 사명을 완수한 자가 없었습니다. 여러분은 ‘공적 사명자’라는 신념을 갖고 싸워 주기 바랍니다. 그런데 한 가지 명심해야 할 사실은 ‘내가 공적인 사명자’로 서게 된 것은 내 스스로 공적인 입장에 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인연은 멀고도 먼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공적인 이익과 우리의 조상과 현실의 여러 환경을 타개하기 위해 그 위치에 서게 된 것입니다.

그런고로 이번 기간에 여러분이 맡은 지역에서 하는 모든 행동과 일은 개인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역사상 하나님의 공적인 이익을 위해 수고하다가 영계에 간 모든 영인들이 전부 여러분 편이 되어 협조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 공적인 사명을 알고 신념을 갖고 역사상의 어느누구보다도 제물적인 입장에서 이 사명을 하려고만 한다면 과거의 공적, 전체적인 가치를 찾으려고 노력한 선조들의 인연이 현실에서 역사적인 결실로 재현될 것입니다. 해원이란 명사는 이럴 때에 부합되는 것입니다. 역사적인 공적 책임을 진 자들이 책임을 다하지 못할 때는 하나님이 대신 그 역사적인 공적 책임을 맡아서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나올때까지 수고하십니다.

오늘날까지의 역사노정은 선과 악의 투쟁이 점철된 노정입니다. 이러한 역사가 내 앞에 다가왔으니 나를 중심하고 악은 악으로 선은 선으로 갈라 세워야 합니다. ‘나’라는 존재는 이 성패를 좌우할 관건을 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개인을 초월하여 공적인 존재임을 명심하여야 합니다. 과거에 충성과 효성으로 공적인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수고한 선조들의 그 역사적인 위업을 계승할 자는 그들보다 공적 사명 앞에 더 충성할 수 있는 사람이라야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공적인 사명을 맡으려면 역사를 초월한 우주적인 충효열(忠孝烈)의 심정과 각오를 갖추어야 합니다.

이와 같은 공적인 일을 누가 할 것이며, 누가 책임을 질 것인가? 하늘도 땅도 아닙니다. 오직 사명을 깨달은 사람만이 하여야 합니다. 나는 공적인 입장이므로 나의 말과 행동에는 하늘과 땅의 인류가 매여 있다는 엄숙한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끌려 다니는 사람이 되지 말고 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역사적으로 공적 책임을 졌던 수많은 가정과 개인, 즉 노아, 아브라함, 모세 등을 불러일으키는 동인(動因)이 되어야 합니다.

11-271
가치있는 사람이 되려면
만일 하나님이 여러분을 역사적인 공매장에 끌고 가서 공매에 붙인다면 여러분은 자신의 가치가 얼마나 나갈 것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사람은 얼마나 줄래?’ 하실 때 아무도 관심있게 바라보지 않는, 거지조차도 거들떠보지 않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미처 말하기도 전에 사탄이 먼저 ‘하나님, 이 지구상에 있는 만물의 반을 주겠습니다’ 해도 하나님이 고개를 가로저으실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만물을 더 주겠습니다. 그래도 안 주시겠습니까?’ 하며 사탄이 안달할 수 있는 인물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중심한 전인류를 구원할 수 있는 가치적인 존재였기 때문에 사탄이 침범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사탄의 3대 시험을 생각하면서 여러분은 자기가 몇 푼 짜리냐를 생각해야 됩니다.

오늘의 나는 개체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연의 옷’을 입고 있는 존재입니다. 이 옷에는 아담, 아벨, 노아, 아브라함과 같은 역사적인 모든 사람들의 한숨과 애수와 눈물과 한이 젖어 있고, 인류의 불신의 죄가 얼룩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옷을 벗어야 합니다. 벗되 일시에 벗어야 생명나무 앞에 나아갈 수 있는 자격자가 됩니다. `하나님이시여, 역사적인 인물들의 땀과 눈물과 한과 피와 심정을 제가 대신 상속받아 감당하겠사오니 저를 세워 주소서!’ 하면서 담판하여야 합니다. 선생님은 이런 것을 알기에 여러분을 공적인 입장에 세워 주고자 하는데 여러분은 싸구려가 되렵니까? 밥 한 그릇에 팔려가고, 몽둥이 앞에 물러서고, 원수 앞에 쉽게 굴복하는 자가 되어서야 되겠습니까?

특정 가치가 개인의 가치보다 크면 그 개인의 가치는 굴복당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개인의 가치가 특정 가치보다 작은 것을 알면 굴복하여야 합니다. 어느 민족 전체의 가치가 특정 가치보다 작으면 민족 전체가 굴복해야 합니다. 그 특정 가치와 같이 살고 또 같이 죽으려면 공적 가치의 입장에 서야 합니다. 그 특정 가치는 영원, 절대, 불변의 가치이므로 그 가치에 동참하기 위해서는 절대적인 공적 입장에 서고 그 가치의 대신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 가치는 하늘과 땅이 못 세웁니다. 오직 참사람만이 세울 수 있습니다. 이 ‘참’이란 말 속에는 역사성과 공적인 의의가 있습니다. 이 참사랑의 가치를 상속받기 위해서는 자기의 관심과 심정을 천주를 대신하는 입장에 세워야 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지방에 나가서 계몽할 때 가령 ‘가’자 한 자를 흑판 위에 쓰면서 강의를 하더라도 앞에 앉은 소수의 사람을 대해서 강의하지 말고 온 천주를 대해서 강의해야 합니다. 땀을 흘려도 천주복귀의 심정으로 ‘부활의 땀’을 흘려야 합니다. 그러면 역사적인 인연을 갖고 있는 후손이므로 선령을 감동시키고 선령의 양심과 인연되어 열매를 맺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종의 시대, 자녀의 시대, 부모의 시대를 거쳐오시면서 복귀섭리를 해 나오십니다. 우리는 이 땅 위에 선지자가 나타나서 종의 위치와 환경을 개척할 줄 알고 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먼저 하늘이 이 땅을 찾아오셔서 종의 입장에서 길을 닦아 세계적 종의 시대를 만드는 수고를 하신 다음, 그 터전 위에 종의 실체로 선지자를 보내셨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독생자 예수를 보낼 수 있는 터전을 닦기 위해서 하나님은 친히 자녀의 입장에서 수고해 나오셨습니다. 또 참부모를 보내시기 위한 길을 닦아 놓기 위하여 하나님은 이 땅을 몇천 번이나 왕래하셨고, 한민족에게 한 가닥 희망을 걸고 수고해 오셨습니다. 하나님이시면서도 종의 모습으로 눈물 흘리셨고, 하나님이시면서도 자녀의 모습으로 눈물지으셨고, 부모의 모습으로 눈물을 뿌리셨음을 알아야 합니다.

11-273
끝날의 신앙자가 가져야 할 태도
우리는 이와 같이 수고하신 하나님의 역사노정을 그대로 걸을 수 없습니다. 지상에서의 한정적인 때만을 가진 우리이니 그 역사과정을 통해 계시는 하나님의 심정과 인연맺어야만 합니다. 그래야 역사적인 인물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여! 구약시대에 당신의 심정을 상속받고 대신 책임져 줄 종이 없어 얼마나 한스러우셨습니까? 저는 이 시대에 심정적으로 그때의 종을 대신하는 자가 되겠습니다. 하나님이여! 당신이 자녀의 입장에서 수고하실 때 당신이 찾으시던 자녀가 없어서 얼마나 한탄하셨습니까? 저는 갖출 바를 갖추지 못했으나 심정적으로 그때의 자녀가 되어 당신을 위로하겠습니다’ 하면서 하나님의 심정을 위로해 드려야 합니다.

이 끝날에 참다운 신앙의 길을 가는 자라 할진대 하나님의 종이 되어 하나님을 찾는 입장을 취하든가 종을 찾는 하나님의 실체가 되어 종을 찾아 헤매든가 이 둘 중 어느 하나의 입장을 취해야 합니다.

오늘날 온 인류는 하나님의 종의 입장이므로 하나님의 딸 중의 딸, 하나님의 아들 중의 아들을 만나야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세계적인 효자 효녀의 길을 닦아 세계적인 효자 효녀를 만들어 놓고, 세계적인 충신의 길을 닦아 세계적인 충신을 만들어 놓은 다음에 심판하십니다. ‘그 사람이 바로 참사람의 표준이다. 그와 같이 되라’고 하십니다. 이 ‘참사람’이 오시는 주님입니다.

이와 같이 감격의 날, 재림의 날이 오면 살아서 그날을 맞는 사람은 반역한 종의 입장에서 울어야 하고, 쫓겨난 자녀의 입장에서 울어야 하고, 다시 들어온 입장에서 울어야 합니다. 눈물을 흘리며 통곡하며 죄악의 피로 더럽혀진 옷을 씻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입장에 있는 것이 가치적 인연으로 본 공적 존재로서의 ‘통일용사’입니다. 선생님은 이 어마어마한 인연이 여러분의 실수로 인해서 유린될까봐 걱정이 됩니다.

돌감람나무는 참감람나무의 접붙임을 받아야 한다고 하였는데 접붙임을 받을 때에는 결과인 가지쪽에서 받으면 안 됩니다. 역사성을 청산지을 수 있도록 뿌리 쪽에서 접붙임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접붙임을 받는 순간에는 종래에 가졌던 진액을 없애고 새로운 진액을 받아야 됩니다. 지난날의 자기를 없애고 절대적으로 온유겸손하고 복종함으로써 화(和)하여야 합니다.

11-274
3년 기간의 중요성
이번 기간에 여러분이 맡은 지역에 나가면 ‘면민이여 다 오라. 이 면 출신 영인이여, 다 모여라. 충성 대회를 하자’라고 할 수 있는 각오로 일을 해야 합니다. 어떤 반대자가 생기면 여러분은 그가 자기 자녀에게도 베풀지 못하는 큰 사랑으로 부모의 입장에서 그 사람을 대해 주십시오. 피조물의 생명의 요소가 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기에 극치의 사랑은 그런 자를 굴복시킬 수 있습니다. 또 부모가 자기 자녀를 위해 일하는 것보다 더한 봉사로써 그 반대자를 위해 일할 수 있는 자녀의 입장에 서십시오. 그러면 그 반대자를 굴복시킬 수 있게 됩니다.

아담이 원수 사탄에게 패하였으므로 남자에게는 종으로서 원수를 대해 싸워 이기는 법을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해와가 효자가 될 아담을 타락시켰으므로 여자가 효녀가 되어 남자를 효자가 되게 해야 하니, 여자에게는 효녀가 되는 법을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남자는 종의 사명을 해야 하고, 여자는 자녀의 사명을 해야 하고, 예수님은 부모의 사명을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남자는 원수와 싸워 이겨서 원수를 자녀로 만들어 놓기 전에 나는 아무개를 사랑한다고 할 수 없습니다. 또 여자는 아버님 앞에 효녀의 실체가 되어야 하니 딴 생각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정하여 놓은 3년은 역사적인 탕감기간을 줄여 놓은 최소한의 연수로서 개인의 탕감기간입니다. 그러므로 앞으로 통일교회 식구는 누구나 이 3년 기간을 지나야 합니다. 심정일체라 말하였으니 여러분은 모두 선생님의 심정을 알아야 합니다. 이 밤에 선생님은 무엇을 하실까, 이 밤을 뜬눈으로 새지는 않으실까를 생각하며 선생님 대신 입장에 서서 모양이라도 닮아 느껴 보라고 허락한 것이 3년이라는 특사기간인 것입니다. 3년 동안 1년에 40일 계몽전도를 두 번 실시해서 3년간 합쳐도 1년이 못 되는데 이것마저 못한다면 말이 안 됩니다. 원래 이 기간은 금식하면서 넘어야 합니다.

여러분, 이와 같은 인연의 때는 한 번밖에 없습니다. 모쪼록 이번 기간에 여러분이 설 자리를 찾고 목적을 찾아 세우기 바랍니다. 만일 때를 놓치면 위치도 목적도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여러분은 선생님과 무관하게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