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31: 말씀은 만민의 것

말씀은 만민의 것
1961.10.07 (토), 한국 양구

11-231
말씀은 만민의 것
[말씀 요지]

강원도는 산골지방이다. 한국의 자랑이 있다면 좋은 산수를 가지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이곳에는 딴 지역보다도 맑은 공기와 아름다운 산수가 있어서 좋다. 비록 딴 지구, 지역에 비해 인위적인 것은 뒤떨어졌더라도 자연환경에서 보충해 주기 때문에 오히려 복된 환경을 갖고 있다.

여러분은 강원지구 인도자 수양회에 참석하기 위해 사방에서 모여 왔으나 바라보는 목표는 한 가지다. 다시 한번 마음을 결속해서 나아가자.

때는 결실의 가을절기이다. 여러분도 씨가 되어 심겨지기를 바래야 한다. 이것이 여러분이 가야 할 길이다. 심는 것은 주인이 심어야 한다. 또 여러분도 주인의 입장에서 심어야 한다. 심부름꾼을 통하지 않고 친히 심고 가꾸고 거두어야 한다. 생명의 씨를 뿌리는 데도 종을 시켜서 뿌려서는 안된다.

역사를 통해 닦여진 터 위에 아들이 왔지만 완전한 결실을 거두지 못했다. 그래서 아버지께서 오셔서 뿌리고 거두시려는 것이다. 종이나 아들딸이 일하는 때가 아니라 아버지께서 일하시는 때다. 아버지께서 거둬들여야 한다.

나라는 존재는 지극히 미미하지만 아버지께서 명령하셨으니 내 것이 아니요, 아버지 것이라는 것이다. 여러분은 제 1, 제 2, 제 3 이스라엘의 조상이 돼야 한다. 아버지를 대신할 여러분들이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으니, 아버지께서 수고하셨다는 것이다. 아버지께서 여러분을 위해 우리를 대신 존재로 세우신 것은 우리에게 소망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이것을 영원히 지니기 위해서는 아버지와 심정기준이 일치해야 한다.

소망의 심정을 품고 수고해 나오시는 아버지께서는 영원한 아들딸을 갖고자 하신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배우는 것이 원리 말씀이다. 말씀을 이루기 위해서는 아버지의 실체가 되어야 한다. 원리 말씀에는 아버지의 심정이 들어 있다. 아버지는 말씀을 유언으로 해 나오셨다. 이것이 역사노정이다.

지금까지 이 땅은 하늘의 소망과 심정을 통할 수 있는 말씀을 갖지 못했으니 여러분은 이것을 가지고 있다. 이 말씀이 내 것에 그칠 것이 아니라 만민의 것, 영원한 것으로 해야 한다. 하늘땅을 통일하여 전체의 목적이 완성될 때까지 해야 한다. 이 말씀을 하늘땅 끝까지 전파하고 그 다음 아버지 앞에 보고해야 하고, 보고의 성과에 준하여 축복을 받아야 한다.

행복한 자는 돈이나 권세나 명예를 가진 사람이 아니라, 어떤 주권자가 귀한 것을 맡기는 것과 같이 유업을 맡을 수 있는 자가 행복하다.

여러분에게는 종족의 흥망이 걸려 있다. 여러분은 승리자가 되기를 원하고 패망자가 되기를 원치 않는다. 이것을 느끼지 않으면 안 된다. 승리하기 전엔 죽어도 안 된다. 어떻게 하든지 죽지 말고 맡은 바의 민족적인 책임이라도 해야 한다. 이것이 하늘의 기준이다. 이 말씀은 세계를 주고도 바꿀 수 없다. 여러분은 이 말씀을 받은 데 대해 천만번 쓰러지더라도 감사하는 느낌이 있어야 한다. 어차피 여러분은 한번은 죽는다. 이 말씀을 어느 정도만큼 귀하게 받았는가? 혼자서도 7개국 이상의 사람들을 책임져야 한다. 나아가 전체가 합동해서 전세계를 책임져야 하는 것이다. 말씀과 실체와 심정이 하나되면 하늘땅도 천국도 아버지도 다 우리의 것이다.

아버지께서 고생하시는 선(線)과 더불어 고생해야 한다. 완전 평행선이라야 한다. 조금만 틀려도 배반하는 때가 온다. 90도가 안 되고 85도만 돼도 이 마이너스 5도가 자꾸 커져서 부딪쳐서 깨진다. 90도의 싸움을 하라. 그런 싸움을 한 대표적인 분이 예수님이다.

아직까지의 여러분은 온전한 상태가 아니다. 지금의 나의 가치보다 몇천만 배 더 큰 가치를 지닌 나를 만들어야 한다. 그것은 아버지와 같은 심정으로 수고함으로써 가능하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6천년 동안 아버님께서도 가 보시지 못한 제일 치열한 전투 마당에 저를 몰아넣어 주시옵소서’ 해야 한다.

이것을 가지고 거꾸로 탕감할 수 있다. 아버지는 이만큼 고생했을 것이다. 아버지는 이것을 어떻게 당하셨을까! 아버지는 눈에는 무엇이…. 그리고 소망은 무엇이었던가? 아버지의 피땀, 비통한 사실, 이것을 찾아내야 한다. 아버지를 찾고 형제, 가정, 국가, 하늘땅을 찾아야 한다.

도의 길은 아버지 찾아가는 길이다. 슬픈 아버지를 찾아가는 길이니 기쁜 길을 더듬어 갈 수 없다. 개인을 찾기 위한 노아는 뿌리요, 아브라함은 가지요, 야곱은 꽃이었으나 피지 못했다. 그리고 예수님은 꽃으로 필 수 있는 존재였으나 폈다 떨어진 것이다. 그리고 다시 잎이 된 제 2 이스라엘, 기독교가 겨울철이 되니 앙상한 가지만 남게 되었다. 그러므로 이를 새로운 나무에 접붙이는 데는 내 아버지, 내 어머니, 내 형제, 내 처자로부터 끊어지는 아픔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을 소유하는 민족은 세계를 지배한다. 왜? 하나님의 종손이기 때문이다. 싫건 좋건 이삭은 사망세계의 대표자이며 야곱은 생명세계의 대표자이다. 하나님과 예수님과 선생님의 한은 자신이 풀 수 없다. 아들딸이 풀어 드려야 한다.

아버지가 좋아해야 할 얼굴이요 몸이다. 나의 모든 것이 아버지의 것이다. 동계계몽 때에 잘하면 여름 전도 때 실패한 것을 탕감복귀할 수 있다. 말씀의 실체(인격자), 즉 심정을 중심한 실체가 되어 나아가면 반드시 승리하게 된다.

보여 주고 싶고 남기고 싶고 말하고 싶은 것은 자녀의 3대 소원이요, 보고 싶고 받고 싶고 듣고 싶은 것은 아버지의 3대 소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