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24 to 11-227: 두 세계의 왕자가 되라

두 세계의 왕자가 되라
1961.09.20 (수), 한국 전본부교회

11-224
두 세계의 왕자가 되라
[말씀 요지]

여러분이 본부를 찾아올 때에 많은 기대를 품고 왔을 줄 압니다. 그러나 수련이라는 낱말이 의미하고 있듯이 여러분의 기대했던 것과는 다른 것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본부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각자의 사명을 맡아 바삐 움직이는 실무자들이고, 또 워낙 많은 사람들을 상대하다 보니 자연히 지방에서 전도자들이 여러분을 대해 주던 것처럼 따뜻하게 대해 주지 못하는 경우가 있을 것입니다. 그렇더라도 양해하고 수련에 임해 주기를 부탁드립니다.

11-224
기쁨과 슬픔의 두 세계
누가 여러분에게 `너는 누구냐?’ 하고 물으면, `나는 이러이러한 사람이다’ 라고 개인적인 입장에서 대답할 것입니다. `너는 무엇하는 사람이냐? 너는 무엇하러 왔느냐?’ 필시 창조주 하나님도 이런 질문을 하실 것입니다. 여기에서 여러분이 자기의 사정과 심정을 온전히 하나님 앞에 맡길 수 있느냐가 문제입니다. 이 세계에 30억 인류가 살고 있지만 어느 누구도 창조주 앞에 자신있게 선 사람이 없었습니다. 창조주께서 과연 그렇다고 공인할 수 있는 절대적인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여기에 온 목적이 무엇이냐? 그것은 어떠한 환경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온 것이 아니라, 인간의 근본 문제를 해명하고 절대자로부터 인정을 받고 확정을 받아 그 절대자 앞에 설 수 있기 위하여 온 것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행복하지 않으면 불행합니다. 외적, 곧 환경적으로 행복하다 할지라도 그 행복이 영계에까지 미쳐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절대자가 찾는 사람은 어떠한 사람이냐? 행복한 사람이 아니라 불행한 가운데 있을지라도 그 불행을 물리치고 진정한 행복을 만들어 가는 사람일 것입니다. 이런 내용을 토대로 구태어 오늘 드릴 말씀의 제목을 붙이자면 `두세계의 왕자가 되라’ 는 것입니다. 슬픔과 기쁨, 이 두 세계의 왕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라면 어느 누구든지 두 세계의 왕자가 되기를 바라십니다. 오늘 이 세계가 바라고, 또한 창조주께서 바라는 사람은 두 세계를 책임지고 맡아서 승리하는 사람입니다. 인간에게는 양심이 있어 가지고 이를 기준으로 한 생활관과 인생관이 있다고 할 때 여기에는 양심의 근본이 되고 주체가 되는 존재가 있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귀결입니다. 그분이 절대자라면 그분과 나는 어떠한 관계가 있는가? 더 나아가 가정과 사회와 국가와 세계와 절대자는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 이것이 문제입니다.

그러면 절대자가 찾고 있고, 절대자 앞에 아들딸로 설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이제까지 절대자는 한번도 기뻐해 본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니 인간이 기뻐해 보지 못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원인적인 주체가 기뻐해 보지 못했으니 결과적 대상인 우리 인간이 기쁠 수 없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입니다. 어떤 위인도 참된 기쁨을 누려 보지 못한 채 선을 추구하며 악과 싸우다가 갔습니다. 오늘보다는 내일, 내일보다는 모레가 더 잘 되기를 바라는 것이 인간이 바라는 공통의 욕망이지만 욕망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인간이 기쁘기 위해서는 슬픔을 제거해야 합니다. 그러나 먼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기 전에는 기쁨이 있을 수 없습니다.

종교의 이념의 우주적이요 내세적입니다. 종교인의 이미 수천년 전부터 이것을 위해 싸워왔는데, 일반인은 이제야 유엔이니 세계정부니 하고 있습니다.

종교인은 언제나 역설적인 길을 걸어 나왔습니다. 현실의 비극을 퇴치시키기 위해서는 현실과 반대 방향으로 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현실과 똑같은 길을 가서는 안 됩니다.

참된 사람이란 선을 주장하는 사람이며, 어려운 사람과 슬픔을 같이 겪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종교인 가운데서 기쁨과 슬픔을 완전히 정복하였다고 하는 사람이 있느냐?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기쁨과 슬픔을 완전히 정복한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11-226
먼저 슬픔의 세계를 정복해야
여러분은 기쁨과 슬픔의 두 세계를 뚫고 나가야 합니다. 종교인은 보다 높은 세계를 추구해 오기는 했지만, 슬픔의 세계를 제거하기 위해 전력을 쏟은 사람은 없습니다. 부모의 슬픔과 고통을 제거하는 사람이 효자입니다. 부모가 효자를 사랑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인류의 슬픔이나 고통을 자기의 것으로 여기는 사람을 사랑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선만을 추구하는 사람보다는 고통을 밀어내는 실전의 투사가 되어야 합니다. 뒤따라 가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기쁨을 노래할 자격이 있는 사람은 슬픈 환경을 영원히 제거시킨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이상주의적 망상에 잠겨서는 아니 되겠습니다. 참된 이상은 모든 슬픔을 거친 후에 나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선지 성현이나 역사적인 인물, 무릇 참을 찾아 나가는 사람 보다는 미래를 개척해 나가는 사람을 찾아 쓰십니다. 우리는 행복의 문을 두드리기 전에 불행의 요소를 해부해야 합니다. 이 기준을 넘어야 우주적인 왕자가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인류의 슬픔, 역사의 슬픔, 민족의 슬픔, 세계의 슬픔, 하나님의 슬픔을 배우러 왔습니다. 역사를 위하여, 시대를 위하여, 미래를 위하여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라야 애국자라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무엇보다도 먼저 슬픔을 책임져야 합니다. 역사는 하나님께서 그르친 것이 아니라 인간이 그르친 것입니다. 따라서 여러분들이 이 슬픔을 청산해야 합니다. 선생님은 기도할 때 천당 가겠다고 기도하지 않고 슬픔을 청산짓겠다고 기도합니다. 하늘에 가서 좋은 위치에 서려면 땅에서 좋은 위치를 만들어야 합니다.

하나의 세계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기쁨과 슬픔의 두 세계를 정복해야 합니다. 좋은 것을 갖겠다고 하는 단체는 많았지만 나쁜 것을 갖겠다고 하는 단체는 없었습니다. 그러한 단체가 있다면 세계는 그들의 손에 지배되고 하나님도 소유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떠한 난경에 빠질지라도 그 환경을 점령하고 그 가운데에서 무한한 가치를 찾아 노래하여, 그 환경을 밟고 다져서 콘크리트처럼 견고한 환경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선의 세계가 왔을 때 겉으로 나타나지 않는 주관자가 될 수 있습니다.

천국은 지옥을 피해서 가는 것이 아니라 지옥의 밑창을 뚫고 가야 합니다. 천국을 가기 위해서는 죄의 문제와 고통의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위하여 싸우는 사람을 원하십니다. 세계를 제패하기 위해서는 가장 천한 자리로 내려갈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날의 가난한 토인들을 강대국들은 도우며 그들과 함께 노래부를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은 하나님을 중심삼고 이러한 방향으로 움직여야 할 때입니다.

여러분은 눈물을 흘리되 자신을 놓고 ‘과거에는 그러했고 현재에는 이러이러한 놈입니다’ 하는 회개의 눈물을 흘려야 합니다. 산골짜기에 눈물이 고여 그 위를 배를 타고 건너야 될 정도로 눈물을 흘려야 합니다. 눈물로 시작된 역사이기 때문에 눈물로 해결지어야 합니다.

11-227
아버지 앞에 서려면
여러분은 눈물을 흘려야 됩니다. 역사의 혁명사를 보면 그 혁명의 뒷면에는 반드시 피눈물이 어려 있습니다. 몰리고, 박해당하고, 욕먹고, 매맞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선생님도 그러한 투쟁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내 슬픔보다 하나님의 슬픔이 수천만배 크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인간의 평면적인 슬픔은 하나님의 입체적 슬픔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들은 자신을 몇 번이나 살펴보았습니까? 오늘 있은 공판을 보았겠지만 여러분들은 그 이상의 죄인입니다. 여러분들은 스스로 자신을 비판해야 합니다. 조금도 변명할 수 없는 나입니다. ‘이놈의 입, 이놈의 눈, 이놈의 손, 이놈의 발, 이놈의 몸은 이제까지 다 무엇을 했느냐’ 하며 비판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눈물 골짜기를 지나지 않고는 아버지 앞에 설 수 없습니다. 우리가 부르는 아버지는 결코 천한 아버지가 아닙니다. 참되고 귀한 아버지이십니다. 이러한 아버지께서는 하늘의 왕자들이 필요하기에 여러분을 모아 수련을 시키는 것입니다. 학박사가 효자 충신이 아니라 외곬으로 나가는 사람이 효자요 충신입니다. 부모의 슬픔을 아는 사람이 효자요, 나라의 슬픔을 아는 사람이 충신입니다.

사실 한국은 여러 면에서 꼴찌입니다. 그것이 거꾸로 돌아서면 첫째가 됩니다. 하나님은 최고의 선진국을 택하여 섭리하는 동시에 가장 후진국을 택하여 섭리하십니다. 여러분이 전도를 나가도 가장 어려운 곳을 찾아가야 합니다. 돌아가는 데서만이 영원이 있을 수 있습니다. 평면적인 직선상에는 영원이 있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기쁨의 왕자가 되는 동시에 슬픔의 왕자가 되어야 합니다. 슬픔의 왕자가 되면 기쁨은 저절로 따라오게 마련입니다.

눈물을 흘려야만 역사적인 인물이 될 수 있고, 우주적인 인물이 될 수 있습니다. 복귀역사는 조건의 역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용서를 받으려면 하나님의 눈물 골짜기를 메워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