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21: 우리의 갈 길

우리의 갈 길
1961.09.16 (토), 한국 전본부교회

11-221
우리의 갈 길
[말씀 요지]

연로한 사람들이 마음 놓고 잠 자는 것을 보면 이상하다.

하나님 앞에 무엇을 가지고 갈 것인가? 책임 다한 것을 가지고 가야 한다.

우리는 죽음을 소홀히 생각해서는 안 된다. 자기가 갈 길이 바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종교생활은 사후에 탕감해야 할 것을 살아서 탕감하는 생활이다.

일생의 갈 길을 단축해서 가려는 것이 도의 생활이다. 육신이 있는 동안은 준비해야 한다.

내가 살고 있는 것은 흡사 거미줄 같은 것에 걸려서 살아가는 것과 같다. 죽어 평탄한 자리에 가는 문제는 살아서 해결해야 한다.

선생님이 죽어도 사탄은 무너지게 되어 있다. 그러나 각자에게는 갈 길이 남아 있다. 준비기를 지나고 실천하는 기간을 지나 수확하는 시기에 생명을 거두어야 한다.

준비기보다 수확기가 더 바쁜 것이다. 말씀하는 사람이 하늘을 대신하여 선포할 때 졸면 천법에 걸린다.

선생님은 기도를 많이 한다. 예배시에는 모든 식구를 위해 기도한다. 식구들의 고통을 체휼적으로 느끼기 때문이다. 그럴 때는 단 5분이라도 기도해 주어야 한다.

3년만 지나면 선생님과 상관없는 일들이 생길 것이다. 모세 때에도 60만명이 광야에서 쓰러졌으니 이 시대에도 쓰러지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선생님의 심적 상태는 작년 다르고 금년 다르다. 과거에는 식구들의 것을 선생님이 책임지려 했으나 지금은 다르다. 각자가 결실할 때이므로 그들을 생각해 주면 도리어 그들의 길을 막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식구들이 옷을 잘 입은 것을 보면 마음이 불안하다.

4월 이후부터는 이 단에서 설교하지 않았다. 각자가 최후의 때임을 알아야 한다. 지금까지 선생님은 단 10분을 마음놓고 살지 못했다.

신앙생활 하는 동안에는 하늘이 인정하는 환경을 가져야 한다. 죽은 후에 자기를 붙들고 울 자가 몇일까 생각해 보라. 죽기 전에 자기로 인하여 구원받고 영계에 간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은 천사를 대신해서 싸워 줄 것이다.

여러분을 보면 살이 없고 해골만 남은 사람처럼 보인다. 에스겔 골짜기의 해골들은 바로 살아 있는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다. 신앙자는 죽음의 문제를 현실에서 해결해야 한다.

갈 길이 멀면 멀수록 발길로 차서라도 갈 길을 가게 해야겠다. 이것은 하늘의 책임이다. 혼자서는 못 간다. 서로 자극을 받아야 한다.

내가 책임을 지고 움직일 때는 하나님도 같이 움직이신다. 심정을 붙들고 쉴 때는 하나님도 함께 쉬시는 것이다. 하나님이 대해 주시는 법도와 도수가 있다. 하늘의 일을 대신하는 사람만을 대해 주신다.

섭리는 아담 하나를 찾기 위한 것이다. 심정은 무한하다. 사탄을, 종을, 형제를, 자식을 굴복시킨 후에야 부모의 자리에 설 수 있다.

사탄은 편안한 자리에서 굴복시킬 수 없다. 눈물로써 굴복시켜야 한다. 6천년의 역사적 총탕감을 단시일에 하고 넘어가는 기간이 3년 기간이다. 내가 나를 바로잡아서 죽지 않고 하나님 앞에 바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자기를 위해 변명하는 것은 허락치 않는다. 예수님도 자기를 변명하지 않았다. 하나님도 당신을 위한 변명은 아니 하신다. 종과 형제, 자녀를 위해 변명할 수는 있다. 종과 형제나 자녀를 위해 변명하는 것은 허락된다는 것이다.

선생님이 여러분과 같이 종이나 형제, 자녀의 입장에 설 때는 이미 지나갔다. 여러분들은 하늘의 대신자로 설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 길은 피를 토하면서라도 가야 하고 죽어서라도 가야 한다. 고생하면 그것이 재산이다. 후회하면서 간 길은 다 갔어도 헛된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