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18: 아버지의 심정을 상속받는 자자 되자

아버지의 심정을 상속받는 자자 되자
1961.08.26 (토), 한국 전본부교회

11-218
아버지의 심정을 상속받는 자가 되자
[말씀 요지]

새로운 차원의 울음을 울 수 있는 사람이 되자. 선생님은 거지를 붙들고도 옷을 벗어 주며 통곡할 때가 많았다.

어린아이를 붙들고라도 천운을 감싸고 사랑하면 그것을 중심으로 하여 그 부락의 인심이 돌아가게 된다.

지구장들은 책임 못한 회개의 눈물을 흘리고 사명감에 찬 눈물을 흘려야 한다. 진정 책임을 져 보았는가? 이번 기간에는 선생님도 기도를 많이 했다. 제2의 약속과 사명감을 갖고 나가자.

아버지의 뜻을 알고 붙들었으니 그 모양이라도 보여 드리자. 못 하겠다는 사람을 붙들고 나오시는 하나님의 심정을 생각하자.

삼천만에게 외치고 싶은 말은 대신 여러분을 붙들고 하는 것이다. 선생님은 제일 못난 자리에서부터 출발했다.

선생님은 군대에서와 같이 원칙에 어긋난 것을 용서하지 않는 마음을 가진 효원이를 좋아한다. 그러나 언제나 그래서는 아니 된다. 천운이 바뀔 때는 용서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선생님은 맨발로 삼천리 강산을 돌고 싶은 마음이다. 그것도 단벌 옷을 입고 돌고 싶다. 부흥단은 그런 심정을 보여 주기 위한 것이다. 자녀를 찾는 부모의 모습을…….

밥을 먹을 때도 `아버님, 먼저 드시옵소서’ 해야 한다.

승리한 아들딸을 놓고 즐거워해 보시지 못한 아버지께서는 사탄에게서 빼앗아 올 수 있는 탕감조건이 되는 우리들의 땀을 얼마나 보고 싶어하시겠는가! 지금까지는 뿌리를 내리지 못해 어떻게 할 수 없었으나 이제부터는 할 수 있다.

72명의 지구장은 축복받은 72명의 외적 형(外的形)이다. 종영(鍾泳)이는 처리 케이스에 든 사람이다. 그러나 사탄과의 연계적인 입장으로 세운 것이다.

아버지께서 아들을 붙들고 고생하며 우시던 자리로 나아가서 우리 스스로 아버지를 맞이하자.

시간을 엄수하고 공금에 대해 엄격해야 한다. 십일조는 철저히 해야 한다 자기 총수입에서 십의 일조는 반드시 하나님 앞에 바쳐야 된다.

연중행사 중 부모의 날, 자녀의 날은 성심을 다하여 기념해야 한다. 역사 이후 어느 효자가 베푼 잔치보다도 기쁜(심정적인) 잔치날로 맞이해야 한다.

복귀역사이므로 자녀의 날에는 모든 것을 봉헌해야 한다. 이 날을 위하여 성심성의껏 준비해야 된다. 부모의 날에는 정성, 자녀의 날에는 결실을 표시해야 한다.

내적 성전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믿음의 자녀를 찾아 세워야 한다. 하나님은 때를 수습하기 위하여 대신자를 세우신다. 환경이 악하면 악할수록 대신자를 세우기 위한 하나님이 싸움이 크고 그로 인한 하나님의 심정의 고통 또한 큰 것이다.

노아가 1,600년의 하나님의 심정을 상속받기 위해 걸린 기간이 120년이다. 하나님의 심정은 1600년 동안보다 120년 동안이 더 초조하셨다.

하나님은 우주적인 중심을 세우기 위해 6천년의 심정을 가지고 접붙이려 하신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이 제물이 되었다.

선생님은 하나님의 심정을 상속받아 그것을 다시 상속해주려 했던 노아의 입장에서 여러분을 대하려 한다. 고로 여러분은 하나님의 심정을 대신 상속받을 수 있는 자를 찾아 세워야 한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고난의 길에 세우려 하시는 것은 첫째 참소조건을 제거하기 위함이요, 둘째 불쌍한 자리에 세움으로써 동조자를 만들기 위함이다.

고난 중에서 맹세한 각오와 결심을 잃어버리지 않아야 한다. 이제부터 핍박의 한 고개는 넘어간다. 아무리 평안한 자리에 있을지라도 아버지의 심정을 잊어서는 아니 된다.

심정을 중심한 인격을 길러야 한다. 심판 후 노아와 같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기 위해서는 광야 40년의 노정을 계속 걸어야 한다. 이스라엘 민족은 가나안에 들어간 후에도 성전을 짓고 축복받을 때까지 광야노정과 같은 생활을 계속 했어야 했다. 모세와 같이 안타까와하는 족장이 12명만 있었어도 모세는 그 길을 끝까지 갈 수 있었을 것이다.

어느 시대나 선각자의 것을 상속하기 위해서는 눈물 없이는 안 된다.

생명의 길은 몸부터가 아니라 심정부터 가야 한다. 선각자는 사람들을 깨우쳐 가며 가야 한다. 이름이 있기에 깨우치기 위해서는 상속자를 세워야 한다. 하늘을 위하여, 시대적인 중심을 위하여, 나를 중심한 아들딸을 위하여 눈물 흘려야 한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기도하던 절개,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던 절개, 그리고 선생님이 기도하던 절개를 잃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