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79 to 11-217: 하나님의 대신자가 되자

하나님의 대신자가 되자
1961.07.17 (월), 한국 전본부교회

11-179
하나님의 대신자가 되자
[말 씀]

남한 각지를 샅샅이 돌고 닷새만에 돌아왔습니다. 대전을 거치고, 전주를 거치고, 광주를 거치고, 마산으로 해서 대구를 거쳐 삼척으로, 그 다음 제천을 거쳐 춘천으로 해서 돌아왔어요.

11-179
순회를 통해 느낀 것
이번에 순회를 하면서 느낀 것은, 지금은 우리들이 싸워야 할 때라는 것입니다. 지방에 있는 우리의 청년 남녀들이 대단한 결의를 하고 있는 것을 보아 이번 기간의 싸움은 승리의 성과를 가져 오리라고 봅니다. 그런데 이번에 가슴 아프게 생각된 것은 우리 식구들이 선생님이 간다고 하는 장소에 수백리 길을 걸어서 온다는 것이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돈이 많아서 차를 타고 다닐 수 있는 데도 여기 오기 싫어서 안 오는데, 우리 통일교회 청년들은 수백리 길을 걸어서 옵니다. 광주에 가니까 저 목포에서 혹은 무안에서 2∼3일을 밤낮없이 걸어서 왔다고 했습니다. 이런 걸 볼 때 우리 교회가 목표하고 세우려는 뜻이 이루어지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한 때와 한 뜻을 위해서 자기 일신의 어려움을 개의치 않고 달려들어 어떤 고난도 물리치고 움직이는 그들은 사회적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또 그들은 개인적인 사정에 매여 있는 사람이 아니요, 개인적인 어떤 의식이나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아닙니다. 20 전후의 어린 사람이 자기도 모르게 뜻을 위하여 생명을 바칠 각오를 하고 나서는 모습을 보게 될 때 얼마나 대견해 보였는지 모릅니다. 그런 식구들이 참 많아요.

대체로 그들은 여기 본부에 있는 청년들보다도 더 기백이 있습니다. 본부를 중심삼은 서울과 경기도 일원의 식구들, 현재 여기에 참석한 여러분과 그들을 비교해 볼 때 하나님을 향한 간절한 마음과 뜻을 따르려는 충성심에 있어 여러분들이 따르지 못할 기백이 그들에게 있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책임을 못하면 그들이 여러분을 밟고 넘어가 그 책임을 다할 것이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번 기간에 쭉 순회를 하고 나니 목도 많이 쉬었습니다. 가는 곳곳마다 근 세 시간, 네 시간 이상 말씀을 하고, 처음 만난 식구들과 밤이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 했기 때문입니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저녁 9시에 삼척에 도착하게 되어 있었는데 중간에 차가 고장나서 그날 밤을 지나고 다음날 새벽 4시 40분에 도착했어요. 그러니 삼척 식구들이 얼마나 기다렸겠어요? 아주 지쳤더군요. 새벽에 모임을 가졌는데 동해라 경비가 심해서 오래 얘기하지도 못했습니다. 1시간쯤 하다가 원주로 해서 춘천으로 갔다가 오늘 아침에 여러분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그런 일이 있을 때 선생님이 무엇을 생각하고 어떠 기도를 했을 것 같습니까? 금년은 우리 청년 식구들이 선생님의 명령을 받아서 전도 나가 있고, 하나님의 뜻을 공동의 사명으로 느끼고 이루어 나가기 위해 고생하고 있습니다. 사실은 대단히 힘드는 일도 있었습니다. 그런 것을 염려하면서, `여러분의 어려움을 대신하기 위해 기도하니 이것을 알아달라’는 기도를 했었습니다. 그래서 외지에 나가서 하룻밤 잠도 잤습니다.

지방 식구들과 우리는 한 형제입니다. 한 혈족입니다. 모두가 없어서는 안 될 사람들입니다. 처음 대하는 식구라도 심정이 같다는 것을 여러분도 느낄 것입니다. 통일교인들이 바라는 것이 그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오해받기 쉬운 명사를 쓰고 있는데, 그것이 `식구’라는 명사입니다.

사실 우리는 식구입니다. 말 그대로 식구예요. 처음 보는 식구와 한마디만 해도 다 통합니다. 세상의 혈족보다 더 가깝고, 자기의 심정을 털어 놓고 얘기할 수 있고, 간절한 소원이 있으면 그 소원을 털어놓고 부탁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인연이 우리에게는 맺어져 있습니다. 이것은 어떠한 수단이나 방법 혹은 어떠한 계획적인 조직 같은 것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것입니다. 이것은 자연적인 일입니다. 우리들이 알 수 없는 사이에 하나님을 중심삼고 맺어진 인연입니다. 이 인연은 하나님에게까지 연결된 인연입니다.

이러한 인연에 의해 움직이는 무리가 있다 할진대 그 무리는 아무도 깨뜨리지 못합니다. 사탄도 못하고, 사람은 더욱 불가능합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깨뜨릴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어떤 경우에 하나님이 이 인연을 깨드리실 것인가? 여러분이 잘못할 때입니다. 여러분이 잘못할 때 깨뜨린다는 것을 명심하기 바랍니다.

11-181
심정적인 지방식구들
여기에 지역장으로서 참석한 사람이 있으면 손들어 보세요. 서울 근방에 있는 지역장 여러분, 여러분들은 본부의 사정도 잘 알고 있고, 또 내가 여러분은 보고 싶으면 찝차로 가서 만나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중심삼고 나가는 데 있어서는 눈으로 보아 얼굴을 잘 안다고 해서 통하지 않습니다. 가까운 데 있어서 보고 만날수 있다고 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가까운 곳에 있고 책임을 진 입장에 있으면 있을수록 더 엄격하고 더 중요한 책임을 져야 합니다. 본부를 중심으로 가까운 곳에 있는 지역장들에게는 더 중요한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지방에 널려 있는 식구들은 본부가 가까운 곳에 있게 하고 본부 가까운 데에 있는 식구들은 제주도 끄트머리로, 아니면 저 울릉도 끄트머리로, 더 나아가서는 저 아프리카 최남단 희망봉으로 보내고 싶은 것이 선생님의 마음입니다.

책임을 졌으면 감당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 책임을 진 것을 자랑으로 생각하고 영광으로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그랬으면 좋겠어요, 안 좋겠어요?

이제부터는 통일교회에 어려운 일이 생기면 지방식구에게 맡겨서는 안됩니다. 선생님의 명령이 지방식구들에게 전달되려면 1차, 2차 해서 몇차례나 거쳐야 합니다. 그러니 지방식구들이 얼마나 불쌍합니까? 여기 서울 가까이 있는 사람을 보면 전부 미끈미끈 합니다. 여학생들은 최소한 크림 정도는 다 바를 겁니다. 저기 있는 남학생들도 바를 겁니다. 충분히 그럴 거 같아요.

저 전라도 남쪽으로 쭉 가 보면 거기에도 우리 식구가 있습니다. 그들도 나나 여러분과 같은 식구입니다. 그런데 심정에 있어서는 여러분보다 간절하고 여러분을 앞서 있습니다. 선생님이 가만히 보면 본부에 있는 식구들은 매끈한 아가씨들 때문에 못된 청년들이 싸움만 한다는 소문이 있는데, 이 서울 깍정이 식구들을 실컷 고생시켜 봤으면 좋겠어요. 이 서울 깍정이 식구들 중에는 `뜻이고 무엇이고 알게 뭐야? 선생님을 내가 언제 알았어? 통일교회가 나 아니면 죽나?’ 하는 패들이 많을 것입니다.

국가적인 운명으로 보나, 세계적인 운명으로 보나, 또는 천운으로 볼 때, 물론 현실적으로는 가진 것이 더 많을지 모르고, 지갑에 몇 푼의 돈을 더 갖고 있을지 모르며, 배후에 자기를 입증해 주고 보호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나 그것들은 문제가 안 됩니다. 사람 자체가 문제입니다.

조금만 어려워도 이리 빠지고 저리 빠지는 사람, 이런 사람은 당장 사회에 나가 자기가 원하는 분야에서는 잘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주적이요 천주적인 크나큰 포부를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거나 기울어지지 않게 설계하여 완성하려 할 때에는 그런 사람 쓸 수 없습니다. 오히려 얼굴은 거무칙칙하나 믿음직스러운 시골 사람이 훨씬 좋습니다. 남이야 보겠으면 보고 말겠으면 말고, 해(日)여 지겠으면 지고 말겠으면 말라고 하는 그들은, `뜻을 위해 일할 사람?’ 하면 너도 나도 손드는데 서울 깍정이들은 손을 들라고 해도 드는 사람이 없어요.

퍼센티지로 보면 이 서울 깍정이들은 마이너스입니다. 그러니 이 서울 깍정이들은 특별 케이스로 취급해서 끌어내려 교육해야 합니다. 지방에 있는 식구들이 본부에 있는 여러분보다 낫다는 거예요. 여러분은 요것들이고, 지방 식구들은 그분들이예요. 나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거 좋은 생각입니까? 나쁜 생각입니까?

여러분들은 하루도 안 걸리는 이곳을 오는 데도 얼굴에 화장을 하고 좋은 옷을 입고 사치를 부리고 오지만, 그들에게는 그들 자신 속에서 폭발되는 심정이 있습니다. 그들에게서 흘러나오는 심정의 봇물은 대답합니다. 여러분이 당해내지 못해요. 그러니 잘못하면 여러분이 밀려납니다.

11-183
수련은 고생하는 자리에서부터
하나님이 계시다면 잘먹고 사는 사람과 못 먹고 사는 사람 중에서 누구에게 더 마음이 가겠습니까? `밥 먹었니?’ 할 때 `예, 어저께도 먹고 오늘도 먹고 내일도 먹을 것입니다’ 하는 사람보다 `어저께는 밥을 보았는데…’라는 사람에게 더 마음이 가는 것입니다. 밥 먹는 것은 고사하고 보지도 못했으니 틀림없이 못 먹었단 말입니다. 내가 하나님이라도 밥 못먹는 사람에게 더 마음이 갈 것 같아요. 하나님은 밥 못 먹은 사람을 보고 안타까워하실 것입니다.

양심을 가지고 공의의 법도와 더불어 영원히 즐기며 살기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런 어려운 환경 가운데에서 사는 사람과 친하고 싶어하고, 그러한 사람을 보호하려고 합니다. 이것은 천리의 원칙입니다.

그러므로 참다운 부모가 있어서 그가 자식을 세계적인 인물로 만들기 위한 계획을 했다면 그 아들을 어떠한 자리부터 보내야 할 것이냐? 먼저는 수련을 시켜야 하는데, 밥 잘먹는 것부터 수련을 시켜서는 안 됩니다. 밥 잘먹고, 놀기 잘하고, 싸움 잘하게 하는 수련부터 시키면 안돼요. 못 먹고, 못 놀고, 남이 싫어하는 것부터 극복하는 훈련을 시켜야 합니다. `아! 난 못 먹어도 좋다. 꽁보리밥도 좋다. 개밥도 좋다고 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제일 낮은 것에서부터 제일 높은 것까지, 무엇이라도 잘 소화시킬 수 있다’ 하는 사람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높은 사람이나 낮은 사람이나 다 심정적으로 지도할 수 있는 사람이 됩니다.

오늘날 우리 나라의 위정자들을 보면, 대학교를 나와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들 중에는 껄렁껄렁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한번 가슴을 치면 뒤로 뻥하고 쓰러질 패들이 많아요. 그런 사람들은, 순진하고 배운 것 없고 땅을 사랑하고, 양심을 재산으로 하여 자연 법도대로 살아가는 양심적인 사람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역사를 섭리해 나오시는 하나님이 계신다 할진대, 어떤 사람이 하나님으로부터 천륜의 대축복을 상속받겠습니까? 무엇이든지 척척 안다고 자랑하는 사람? 천만에요. 그런 사람들이 아니라 순진한 사람들에게 상속해 준다는 것입니다. 역사를 한번 보세요. 세계적인 위인들은, 자연과 더불어 피와 땀을 흘리고, 자연의 냄새를 좋아하고 자연을 친구삼아 노래하면서, 국가를 염려하고 어떤 이념을 품고 사는 사람들의 자식들이었습니다. 그런 부모 밑에서 태어난 자식들이 위대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위인들은 거의 농촌 태생입니다. 자연환경 가운데에서 태어난 사람들이예요.

11-184
자기 수련과 자기 자랑
여러분은 뭐 조그만 일도 자랑하려고 하는데 자랑하는 것은 좋습니다. 그러나 자기 혼자 있을 때 자랑하십시오. `야, 눈아! 너 참 잘 생겼구나. 그럼 잘 생겼지. 야, 귀야! 너 참 멋있구나. 잘 생겼어. 야, 너 얼굴도 잘 생겼구나. 그렇고 말고’ 하며 혼자 자랑하라는 것입니다. 거기에 하나님을 입회시키면 더욱 좋습니다. `하나님! 제 눈을 이렇게 이쁘게 만들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제 귀를 이렇게 잘 만들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몸도 이렇게 튼튼하고, 얼굴도 이렇게 멋있습니다. 이 모든 것을 아버지의 아들딸로서 손색이 없게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면 하나님은 창조주이시기 때문에 참 좋아하실 것입니다. 이거 거짓말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자랑의 내용도 못가진 자들이 자기를 들어 자랑한다고 꺼떡거립니다. 그러면 안 돼요. 그러니 통일교회 청년 남녀들은 자랑을 하되 아버지를 걸어 놓고 자랑할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자랑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루를 두고 볼 때 낮과 밤이 있듯이, 사람에게도 일생을 두고 볼 때 못난이 모양을 하는 기간이 있습니다. 이 기간은 밤과 같은 기간입니다. 그러나 밤이 지나 아침이 되고 낮이 되면, 그때에는 자기가 맡은 어떤 책임을 절대 남에게 양보해서는 안됩니다.

오늘날 이 세계는 아직까지 밤 기간에 머물러 있습니다. 낮과 같은 때를 맞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전세계 인류 모두는 교만하지 말고 자기를 높이지 말아야 합니다. 인간들은 낮을 맞은 것 같이 생각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밤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온유겸손하고 낮은 자리로 가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일단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 책임을 지고 나가는데 있어서는 최대의 권한을 가지고 활동해야 합니다. 그 사람을 어느누구도 탓해서는 안 됩니다. 정 안 되면 몸뚱이를 갈겨서라도 해야 합니다.

인간은 아직 자기를 자랑할 수 있는 입장에 서 있지 못하니 겸손한 자리에서 자기를 수련해야 됩니다. 그런 후에 자기를 자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 얼굴이 뒷뜰에 있는 호박처럼 형편이 없어 자랑할 내용이 없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그 사람에게 정말 자랑할 것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의 마음은 고상한 것이기 때문에 남보다 더 넓고 더 깊고 온유한 마음을 지니고서 대하는 사람마다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으면 됩니다. 이런 마음이 있으면 아버지께서 직접 같이해주실 것입니다.

내가 이런 말을 왜 하느냐 하면, 서울에 있는 여러분들이 이 여름에 지방에 가게 되면 궂은 일은 살살 피하고 먼지가 묻으면 손끝으로 터는 그런 패들이 되지 말고 그와 반대되는 길을 가야 되겠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지방식구들과 여러분이 차이가 있다고 해서 조금이라도 지방식구들을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그들을 오히려 본받아야 합니다. 농촌에 가서 일한다 하더라도 그들을 대할 적에 절대로 자랑하는 입장에 서지 마십시오. 어린이들을 대할 때에도, 그들을 붙안고 `야, 너희들 참 좋구나’ 하며 품어 주어야 합니다. 지방에 나가 보면 아주 꼴불견인 사람이 많습니다. 자기 자랑만 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여러분은 자기 혼자만 자랑하지 말고 `너희들 참 잘하는구나’ 하면서 그들을 붙들고 자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들로 하여금 `좋다’ 할 수 있게 만들어 놓으면 모든 것이 통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냐? 하나님의 속성을 따져 보면 자랑하기를 참 좋아하십니다. 세상에 그렇게 자랑하기 좋아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자랑은 끝이 없습니다. 창조까지 하신 분이시니 그럴 수밖에요. 하나님은 최고로 자랑하기를 좋아하시는 분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동네 사람들게 자랑을 하고 싶거든, 자랑하고 싶은 내용을 안팎으로 갖추어 그것으로 그들을 감동시켜 놓고 자랑해야 합니다. 그러면 아무리 호박처럼 생기고 멍텅구리같이 생겼어도 동네 사람들이 복덩이로 알게 됩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만드십니다. 하나님은 못난 사람을 제일 잘난 사람 이상으로 만들어서 마을 사람들 앞에 자랑하십니다. 그러니까 자랑을 하려면 아버지를 내세우고 해야 합니다. 그러면 괜찮습니다. 자랑을 하려면 먼저 하나님께 `나 자랑 좀 하겠어요’ 하고 나서 해야 합니다. 혼자 해서는 안 됩니다. 아버지의 이름으로 자랑해야 됩니다.

11-186
인간이 조금만 잘해도 자랑하고 싶어하시는 하나님
여러분은 이번에 나가게 되면 자랑을 해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아버지의 이름을 갖고 해야 합니다. 아버지가 어떻게 생겼는지는 모르나 아버지 이름만 가지고 자랑을 하면 실수를 해도 아버지는 좋아하십니다.

선생님이 지금까지 이 길을 걸어 나오면서 느낀 것은 하나님은 자랑하고 싶어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랑의 심정을 가지면 자연히 자랑하고 싶어지게 됩니다. 크고 넓고 높고 깊은 사랑을 가지면 가질수록 자랑하고 싶은 것이 본연의 심정입니다. 안 그래요? 부모들이 대부분 그렇습니다. 저 빈민굴의 거지도 다른 사람들은 쳐다보지도 않지만 그저 자기의 아들딸이 좋아서 죽겠다고 합니다. 그것이 사랑에서 흘러나온 마음이요, 그러한 마음이 있기 때문에 자랑하고 싶은 것입니다.

하나님께 좀더 악독하고, 좀더 추악한 악마와 같은 마음이 있었다면 타락한 인간들에 대한 복귀섭리 역사를 6천년 동안 하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기에 인간들이 조금만 잘하면 ‘야 우리 아들딸 보아라’ 하며 자랑하고 싶어 하십니다. 어떤 가정이 조금만 잘해도 ‘야, 내 사랑하는 가정 보아라’ 하시며 사탄까지 공인하게 하십니다. 그렇게 한바탕 자랑했다가도 인간들이 그대로 못하면 꽝 하고 무너지는 것입니다. 개인을 자랑했다가 그대로 못해서 꽝, 가정을 자랑했다가 꽝, 이스라엘 민족을 자랑했다가 꽝, 또 예수를 한바탕 자랑했다가 꽝, 이렇게 무너졌던 것입니다.

조금만 잘해도 자랑하고 싶어하는 것이 하나님의 심정입니다. 부모의 심정이 그런 것같이 하나님의 심정도 그렇습니다. 그러니 조금만 기쁘게 해드리고 잘만 하면 사랑을 몽땅 받을 수 있습니다. 이런 것을 알고 여러분들은 그런 아버지의 자랑거리를 체험하러 나가야 하겠습니다. 알겠어요? 뭘 체험하려 간다고요? 자랑거리요? 그래요. 자랑거리를 체험하러 나가야 합니다. 사업을 해서 돈을 벌어들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분들은 자랑거리를 많이 만들어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자랑거리를 많이 가지면 어떻게 될 것이냐? 하나님께서 삼천만 민중에게만 자랑하시겠습니까? 천하의 모든 사람 앞에, 천상세계 앞에 자랑하실 것입니다. 이 얼마나 고마운 일입니까? 이러한 것을 알고 부디 하나님이 자랑해 주실 자랑거리를 많이 가지고 오기를 부탁합니다. 알겠지요?

오늘 내가 몇 시에 오라고 했습니까? (식구들이 9시라고 대답함) 그러면, 내가 여기에 몇 시에 도착했습니까? (10시 10분이라고 대답함) 그러면 70분을 어긴 셈이 되는군요. 사실 약속을 지키지 못한 사람은 여기 나와서 얘기할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말씀할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여러분에게 사과합니다. 그렇게 알고 여러분들도 앞으로 시간을 잘 지켜야 하겠습니다. (녹음상태 불량으로 말씀이 연결되지 못함)

11-187
예수님을 불신한 이스라엘 민족
가나 혼인 잔치에서 예수님께서는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술이 없다고 할때 `여인이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느뇨?’ 했습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모친이지만 하늘의 공법으로 볼 때는 원수였다는 거예요. 그러니 예수님은 그런 말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사실이 아니겠지, 별소릴 다 하네’ 할지 모르지만 사실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심정을 몰라서 하는 말들입니다. 이해하겠어요? 나라도 그랬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에게 한 말을 부모에게 하고 싶었습니다. 또 형제에게도 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하지 못하고 집을 나왔습니다. 그러다가 나중에 어떻게 죽었습니까? 민족의 반역자요, 사회질서의 파괴자로 몰려 죽었습니다. 얼마나 미워했으면 살인 강도 바라바와 바꾸자고 했겠습니까? 유대 백성들은 예수님을 원수로 생각했습니다. 얼마나 처참합니까? 여러분은 그토록 처참하게 돌아가신 예수님을 믿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사실은 다 빼놓고, 영광 중에 구름을 타고 재림하셔서 구원해 준다는 말에 귀가 솔깃해 있습니다. 알아야 할 것은 모르고, 해야 할 일도 안하고 천당에 가겠다구요? 천당은 그런 자들이 가는 곳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4천년 역사의 반역자들입니다. 제사장 이하 전민족이 예수님을 붙들고 `나를 잡아가 주시오. 나를 데려가서 죽이든지 살리든지 당신의 뜻대로 하십시오. 동으로 가라면 동으로 가고, 서로 가라면 서로 가고, 남으로 가라면 남으로 가고, 북으로 가라면 북으로 가겠습니다. 구덩이를 파고 들어가라고 하면 들어가겠습니다’라고 했던들, 예수님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살아서 천하를 통일하였을 것입니다. 모세도 하나님이 내몰아 가나안 7족을 점령하게 했는데, 예수님이 천하를 통일하지 못했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는 죽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죽지 않았더라면, 그는 이스라엘 민족을 제물로 삼고 특별히 주신 성소를 중심삼아 대제사장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갈라졌던 천지를 하나로 통일하셨을 것입니다. 또 이 천지의 죄악의 담, 즉 민족과 민족끼리 서로 원수시하던 죄악의 담과 만민의 가슴에 뿌리깊이 박힌 그 죄악의 담을 헐어 버리고 속죄의 제사를 드렸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대제사장으로서 속죄의 제사를 드리고 만천하를 그 주관 아래 두었더라면, 하나님의 섭리역사는 2천년 동안 연장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두가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제물로 삼을 수 없었고, 성전을 중심삼고 일하실 수 없었습니다. 더렵혀진 성전에 있을 수 없어서 예수님은 제물의 길을 가셨으니, 그곳이 바로 겟세마네 동산에서부터 골고다의 산정까지입니다.

그래서 골고다는 세계적인 성전입니다. 이걸 알아야 합니다. 세계적인 성전이 어디라구요? (골고다라고 대답함) 그래요. 골고다입니다. 세계적인 부활의 터가 어디뇨? 골고다입니다. 세계적인 사망의 터가 어디뇨? 골고다입니다. 생사의 결정을 짓는 장소가 어디라고? 골고다입니다. 이 골고다는 예수가 왔다 간 이후에 성소와 지성소가 된 것입니다. 이것을 똑똑히 아십시오.

예수님이 골고다의 길을 간 후에 유대에 있는 모든 성전과 제사장들과 이스라엘 민족은 전부 사탄의 것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들은 전부 지옥으로 가야 합니다. 지옥 중에서도 상지옥으로 가야 됩니다.

원통한 것은 이 땅 위에 아직도 유대교가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메시아를 죽게 한 유대교가 2천년이 지난 오늘까지 남아 있다니…. 그것을 우리 손으로 정비해야 합니다. 정비하는 데는 무력이나 권력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이치대로 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죽인 유대교인들은 보응을 받아야 합니다. 모세를 따르던 이스라엘 민족 60만도, 모세를 배반하고 하나님을 배반하자 광야에서 까마귀밥이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세계적인 지도자 예수님을 배반한 이스라엘 민족은 세계적인 까마귀밥이 되고 있습니다.

이제는 새로운 조직을 해야 할 때입니다. 그래서 요즘에 재건운동이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될까요? 여러분, 궁금할 것입니다. 앞으로는 세계적인 이스라엘의 움직임이 있을 것입니다. 흥미진진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마음에 비장의 무기를 갖고 출발해야 합니다.

11-189
주님의 참신부가 되려면
이스라엘이 망하게 된 동기가 무엇입니까? 그들은 잘되려다 망했습니다. 그들은 `아이고, 고생이 싫으니 메시아가 와야겠구나’라고 했던 것입니다. 메시아가 오는 그날부터 행복이 찾아올 줄 알았던 거예요. 그러나 메시아가 온 그날부터 어떻게 되었습니까? 미명이 더 깜깜한 것처럼, 극심한 고난의 불길이 휩쓰는 7년 대환란이 있다고 성경에는 똑똑히 나와 있습니다.

요즘, 주님을 신랑으로 맞겠다는 망상적인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할 일은 안하고 주님을 신랑으로 맞겠다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런 엉터리가 어디 있습니까? 신랑으로 오시는 주님이 어디로 어떻게 오시는지 무엇을 좋아하시는지 그들이 압니까? 알아요? 일반적으로 신랑이야 거지 신랑도 있고 뭐 많습니다. 그런데 주님을 그런 거지 신랑으로 만들려고 합니까? 그 모양 그 꼬락서니를 해서 주님을 맞겠다구요? 강도짓하고 별의별 짓 다하는 것들이 주님을 신랑으로 맞겠다구요?

주님은 하나님의 왕자입니다. 하나님의 왕자를 끌어다가 자기같은 사람의 신랑을 만들려고요? 그런 신랑 만들어서 뭐합니까? 주님은 하나님이 좋아서 품으시는 분이요, 천하 만민이 그 앞에 머리를 숙여야 할 분입니다. 주님은 천하를 품으신 분이기에 손끝 하나로 천하를 움직일 수 있는 영광의 덕망을 갖춘 분입니다. 그러한 분을 신랑으로 모시려면 그 이상이 되어야 합니다. 그보다 고생을 더 해야 돼요.

이렇게 얘기하다간 한이 없겠습니다. 그러나 이런 말들은 참 귀한 말입니다. 선생님의 말이 아니라 사실이예요.

조는 사람이 있으면 얘기 안하겠습니다. 조는 사람은 내가 웃도리를 벗어서 여기에다가 깔아놓고 모셔다 눕혀 드릴 거예요. 부인네들이 쭉 드러누워 있으면 멋지겠네요. `야 주님이 나의 신랑으로 오신다’ 그런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런 껄렁껄렁한 생각을 하지 말란 말입니다.

여러분, 거리에 나가면 머리도 엉망이고 손도 시커먼 것을 묻히고 다니는 지저분한 지게꾼이 있지요. 그들에게 가서 목을 안고 입을 맞춰 보십시오. 아주 깜짝 놀라서 어쩔 줄 모를 겁니다. 여러분들이 아무리 지지고 볶고 바르고 한다고 해서 하나님이나 주님이 보시고 `아! 아름답다’ 할 수 없습니다.

생각을 해 보세요. 자기의 있는 모든 것을 다 들여 예쁘게 한다고 했는데 주님이 본체만체하면 어떻겠는지…. 주님이 보고 `아, 좋구나. 이것도 내 것이고 저것도 내 것이다. 네 것은 전부 내 것이다’ 할 수 있어야 그의 신부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네 것은 전부 내 것이라고 할 수 있어야 근사한 신랑이 되는 겁니다. 여러분, 그렇지 않겠습니까?

주님이 여러분을 보면 실망하실 것입니다. `아이구, 이런 것들이 신부라고…. 더러움 타겠다. 더러움 타겠어. 주님이란 말도 하지 말라’ 할 것입니다. 백정같은 마음을 가지고 `주님이시여, 나의 원대로 해 주소서’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주님의 노릇을 하겠어요? 이렇게 마음들이 틀려먹었기 때문에 그것을 고쳐 주기 위해 주님이 오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그런 사람들의 소원을 절대로 안 들어줍니다. 왜? 그런 사람들의 소원은 타락의 습벽을 통한 욕망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그런 모든 욕망을 부정해야 합니다. 다 때려 눕혀야 해요. 그렇게 하지 않고 주님을 만나 좋아하며 `주님 어디로 갑니까?’ 하면 `그만둬라’ 할 것입니다. 자기가 한 일을 생각해 보고 죄송해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하여 주님께 동정의 마음을 일으켜야 합니다. 그러면서 눈물을 흘리고, 매를 맞아도 ‘주님’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되어야 비로소 신부로서의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물론 그런 사람이라야 신부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전에는 안 돼요.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여러분을 내모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아들딸의 모습을, 사랑하는 신부의 모습을 만들려고 내모는 것입니다.

11-191
예수님을 지켜 드리지 못한 제자들
내모는 데는 어디로 내모느냐? 사탄이 우글우글하는 빈민굴로 내몰고, 사탄이 우거하고 있는 현장으로 내모는 것입니다. 가 봐라 이겁니다. 거기에서 후퇴한다구요? 주님이 뒤에서 오시기 때문에 살려면 목을 걸고 넘어가야 합니다. 예수님은 골고다를 넘어갔습니다.

여러분, 성소와 지성소가 어디라고요? (골고다라고 대답함) 그렇습니다. 골고다입니다. 우리에게도 골고다의 길이 남아 있습니다. 내가 천신만고의 고통으로 인해 천지를 진동시키는 신음소리를 남기는 한이 있더라도 나는 골고다 산정을 향해 가겠다,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의 3배 이상의 고통의 십자가를 지고 나는 백번이라도 가겠다는 결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은 자는 골고다의 뒷뜰에도 못 갑니다.

이러한 고난의 길이 남아 있기 때문에 2천년 동안 성도들이 수고하며 주님을 고대했지만 주님은 오시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만일 오늘날 이 땅에 예수님을 따르던 12제자 이상, 120문도 이상, 이스라엘의 제사장 이상의 골고다를 넘는 무리가 있다면 주님은 아니 오실 수 없습니다. 그래도 안 오신다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 상소장을 써서 `예수를 좀 보내 주십시오’ 할 수 있습니다.

왜 그러냐? 예수님은 옛날 세 제자밖에 없는 불우한 자리에도 오셨고, 12제자밖에 없는 천대받는 자리에도 오셨고, 이스라엘 민족이 내모는 자리에도 오셨습니다. 그런데 옛날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제사장들 이상의 무리가 골고다 산정을 넘어섰을 때 왜 안 오겠습니까? 이런 무리가 있어서 지금이라도 `주님, 오시옵소서’ 하면 벼락같이 오셔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기독교는 명실공히 세계적인 종교가 되었지만, 옛날 베드로, 요한, 야곱을 무색하게 하고, 70문도, 120문도를 무색하게 할 수 있다는 각오아래 골고다의 산정을 거침없이 넘나들 수 있는 참다운 제자들이 없어서 오셔야 할 주님이 아직까지 못 오신다는 것입니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어요. 우리 통일교회 신도들, 욕을 먹고 쫓김받고 조롱받고, 원수들의 저주를 받는 자리에 있을 망정 골고다의 성지를 지켜야 하고, 거기에서 죽음의 고개를 넘어 승리하신 주님을 보호해야 합니다. 베드로 같은 자 말고, 무서워 도망갔던 12제자 말고, 예수가 죽은 뒤에 모인 70문도 120문도 같은 무리 말고, 죽음의 자리를 목을 내놓고 지키며 싸울 수 있는 무리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를 따르던 무리들이 그러한 무리가 되었더라면 예수는 그때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죽지 않았을 거예요. 내가 왜 이런 말을 하는 줄 알아요? 분해서 그럽니다. 사실을 말하자면 한이 없습니다.

11-192
천상에서 기도하고 계시는 예수님
오늘날 세계의 기독교를 대해가지고, 또 천상에 가 있는 잘 믿던 사도들을 대해가지고 당당하게 묻고 싶은 것이 있나니, 그것이 무엇이냐? 골고다의 성전을 어떻게 지었느냐, 예수님께서 골고다의 산정을 어떻게 가셨느냐, 골고다에서 하나님 앞에 제사장으로서 제사를 드리던 예수의 심정 기준은 어떠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아무도 모릅니다. 아들과 아버지밖에 모릅니다.

우리는 사도들을 비웃고, 이 땅에 왔었던 선지자들을 비웃을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천상의 영인들과 지상의 성도들 앞에 자랑할 수 있는 내용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려면 우리는 하나님과 예수님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잡다하게 기도할 필요가 없습니다. 구원은 나중 문제예요. 당장의 문제는 지성소에 들어가는 법과, 성전에 들어가 속죄소 앞에서 만민을 대신하여 속죄의 기도를 드리는 법도를 아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기 위해 담판기도를 하고 철야기도를 해야 할 때인데 `구름타고 오시옵소서’ 하고 있습니다. 꿈을 꾸고 있는 망상들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암만 기도해 보세요. 오나. 만일 여기에서 내가 한 말이 거짓말 같으면, 이 다음에 죽은 후 나를 호출하여 `통일교회의 아무개가 했던 말인데’ 하고 물어보십시오. 답변해 줄께요. 더욱 꼼짝 못하게 답변해 줄께요.

우리는 넘어가야 되겠습니다. 기필코 가야 되겠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골고다 산정까지는 주님이 30평생 개척한 길이거늘 기필코 가야 합니다. 골고다 산정을 가던 주님이 세계 만방을 비추는 아침 햇살이 되지 못하고 시들어 가는 저녁놀이 되었다는 사실, 얼마나 원통한 사실입니까?

그러면 예수는 언제 어디로 오시는가? 밤길을 걸어오신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아침 햇빛이 못 되고 저녁 빛으로 사라진 예수이기 때문에 밤길을 걸어 오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밤길을 걸어온 기간이 2천년입니다. 이걸 모르고 하나님의 아들이 될 것 같아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지상의 대제사장으로서의 사명도 다하지 못하고 가셨기 때문에 아직까지 제사를 지내고 계십니다. 아직까지 기도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밤 길을 걷고 계시고, 천하를 방랑하면서 하늘의 아들딸을 찾고 계십니다.

그런 걸음으로 개인을 찾아오셨고, 민족을 찾아오셨고, 세계까지 찾아오셨습니다. 이제는 미명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어떤 옷이 빨간 옷인지 흰옷인지 분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떤 것이 그릇된 것이고 어떤 것이 이상적인 것인지, 어떤 것이 합당치 않은 것이고 어떤 것이 합당한 것인지 짐작할 수 있는 시대, 밝은 시대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오늘날은 끝날입니다. 예수께서 아침 햇빛으로 떠오르지 못하고 저녁 노을로 사라졌는데, 다시 아침 햇빛으로 떠오르는 시대가 되었으니 지금이 종말의 때요, 끝날인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러면 오시는 주님은 어디로 올 것이뇨? 골고다의 길로 가셨으니 골고다의 길로 오십니다. 그러면 세계적인 골고다, 끝날에 성도들이 넘어야 할 이 골고다는 어떠한 곳이뇨? 골고다라는 것은 해골의 곳입니다. 해골의 곳. 참다운 믿음의 아들딸들이 신음하는 곳이요, 생사의 갈림길에서 피를 토하고 쓰러져 나가는 곳입니다. 이런 곳이 골고다예요.

그러면 좌우가 혼란된 이 세계에서의 세계적인 골고다는 어디일 것인가? 귀가 있는 사람은 들으십시오. 머리가 있는 사람은 생각하십시오. 그만큼 얘기했으면 마음이 있는 사람은 느끼란 말입니다. 세계적인 겟세마네 동산은 어떤 곳이뇨? 그곳은 택한 무리가 살지 않았던 곳입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택한 사람들은 얼씬도 하지 않은 곳이예요. 구경꾼들이 모여드는 곳입니다. 구경꾼들이 모여서 `잘 죽는다, 고생 잘 한다’고 비소하는 곳이라는 거예요.

11-194
골고다로 가신 주님 골고다로 오시나니
끝날의 성도들, 끝날의 참다운 아들딸들은 최후의 골고다를 찾아가야 하는데, 그 길은 예수를 따르던 제자들이 도망을 간 것과 마찬가지로 누구나 다 갈 수 있는 길이 아닙니다. `잘 죽는다, 잘 논다’ 하는 구경꾼들과 원수들의 조롱을 받으며 가는 길입니다. 원수들이 바라보는 자리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피를 흘리며 신음하면서도 아버지를 부여안고 `아바 아버지여! 어찌하여 날 버리시나이까’ 하며 아버지의 심정 속을 찾아드는 무리들이 가는 길입니다. 통일교인들이 가야 할 길은 이러한 골고다의 길입니다. 알겠어요?

생사의 결판을 짓는 최후의 순간, 그 숨막히는 긴장된 순간을 앞에 놓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철야를 하며 피땀을 흘리며 호소하던 예수의 심각한 울음 소리를 여러분은 재빨리 듣고 그 고난의 길을 대신 가야 합니다. `주님을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는 이 몸이 되겠다’고 준비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민족 앞에 원수로 몰리고 쫓기는 무리가 될 것이어늘, 옛날에 제사장들에게 쫓김받고, 교단으로부터 몰림받던 무리와 같이 된다고 섭섭해 하지 마십시오. 나는 여러분을 끌고 그러한 길을 가려고 합니다. 여러분은 이 길을 가는 데 있어서 예수가 겟세마네 동산에서 흘리던 것과 같이 눈물을 흘려야 하고, 피와 땀을 흘려야 합니다. 만우주의 죄를 대속하는 속죄의 왕자로, 대제사장으로 오신 예수께서 처참한 제사장의 모습으로 자기의 몸을 제물로 드리고 재림의 약속을 남겨 놓고 십자가에 돌아가신 곳이 골고다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늘의 왕자가 제사를 드렸던 제단이, 제물을 드렸던 그곳이 겟세마네 동산이요, 골고다인 것입니다. 세상이 아무리 아니라고 하여도 그곳이 성전이요, 지성소입니다. `골고다에서 들리는 그 속죄의 울음 소리에 가슴을 치는 이들이여, 여기 모일지어다’ 이것이 끝날의 새로운 경고입니다.

예수는 하늘의 왕자로 영광스러운 자리에서 태어나야 했지만 말구유에서 태어났습니다. 선생님은 예수의 사정을 잘 압니다. 선생님은 예수와 동시대에 살지 않았지만 이 세계의 어느 누구보다도 예수의 사정을 잘 알고 있습니다. 세상에 역사에서 배우지 않았지만 잘 알고 있습니다. 여기서 선생님이 말하는 것이 가상적인 것인지 아닌지 분석해 보십시오. 2천년 전 골고다의 이슬로 사라진 예수는 사명감에 불탔을 것이며, 정의감에 불탔을 것이고, 원수들을 일격에 물리칠 심판의 한날을 간곡히 소망하였을 것입니다.

11-195
원수를 위해 복을 빌어 주신 예수
세계적인 골고다의 산정을 넘어가야 할 이때, 민주주의와 공산주의가 대결하여 선악을 판결해야 할 이때에 고난의 제물로 오는 왕자가 다시 오시는 주님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세계적인 골고다를 넘어가야 할 이 시대에, 좌우에서 모진 바람이 불고 회오리바람이 부는 와중에서도 홀로 하늘을 붙들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던 예수, 하늘의 심정을 갖고 골고다 산정에서 피를 흘리면서까지 원수를 사랑하라고 외치시던 예수의 그 음성과 같은 울부짖음을 들을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새 시대에 승리한 이스라엘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러한 길을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예수님이 가신 그 길을 가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겟세마네 동산까지 따라가야 합니다. 가 가지고 졸면 안 됩니다. 거기서 다시 골고다까지 가야 합니다.

오늘 여기서 외치는 사람도 겟세마네의 동산을 넘어 이 민족 앞에 나타나려고 합니다. 이 민족이 공인하는 날까지 골고다의 길을 가려고 합니다. 지상의 모든 면에서 영계의 공인을 받으려고 합니다.

영적인 세계에도 골고다의 길이 있습니다. 육체의 해골 곳이 있는 동시에 영계의 해골 곳도 있습니다. 골고다를 전부 메워 버리기 위해서는 영계의 해골 곳까지 메워야 됩니다. 영계의 해골 곳이 어떤 곳인 줄 알아요? 사탄이 점령하고 있는 곳입니다. 육계의 해골 곳은 어떤 곳인 줄 알아요? 이런 곳을 넘어야 할 세계적인 환란이 남아 있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다 지나가야 합니다.

오늘날 인간들은 하나님을 배반하여 하나님을 잃어버린 입장에 있습니다. 이 불행한 입장에서 하나님을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나쁜 것, 싫은 것을 모두 소화할 수 있는 주인을 만나야 합니다. 예수가 바로 그러한 분이십니다. 그분은 천하에 제일 못된 사람으로 몰려 극형을 당하는 자리에 세워도 죄송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가장 억울한 자리에 내놔도 죄송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런 자리에 있게 될 때 입이 있어도 말을 하지 않았고, 눈이 있어도 볼 줄 모르고 귀가 있어도 들을 줄 모르는 사람처럼 묵묵했습니다. `내가 맡은 바 책임을 다하지 못했으니 욕을 먹어도 싸고 천대받아도 싸지. 내가 책임을 다하지 못하여 수천 수만의 생명이 죽게 됐으니 그 보응으로 죽어도 싸지’ 하고 생각하신 분입니다.

여러분 진실로 원수를 대해서 복을 빌 수 있었던 예수의 마음을 생각해 봅시다. 예수님이 원수를 위해 복을 빈 그것이 원수를 공인한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자기에게 책임을 맡기기 위해서 얼마나 수고하셨는가를 먼저 생각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그 수고와 그 고난이 선조들의 피와 땀과 눈물의 모체라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자신은 비록 고통받다 이슬같이 사라지지만 4천년 동안 수고하신 하나님의 거룩한 공적의 터전만은 상속받겠다고 하는 사람들을 용서해 주고 기도해 주지 않으면 안 되었던 예수님의 심정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11-196
하나님을 모시려면
여러분은 잃어버린 하나님을 찾기가 이렇게 힘든 줄 몰랐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생사의 기로에서 나는 아버지의 것이라고 하며 자기의 몸을 제물로 드리기까지 하셨으나, 아직도 이 땅 위에는 하나님을 모셨다고 하는 증거가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그러니 다시 와서 이 땅 위의 고통과 슬픔의 보따리를 다 청산해야 됩니다. 그래야 하나님 아버지를 모실 수 있습니다. 죄악의 보따리가 청산되지 않고는 이 땅 위에 하나님을 모실 수 없습니다. 그래서 재림주님이 예수님으로부터 그 사명을 인계 받아서 모든 죄를 짊어지고 제사장이 되어 속죄의 역사를 함으로써 하나님으로부터 속죄 받으려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 아버지를 영광의 아버지로 모시기 위해 오시는 분이 재림주님이기에 예수님은 오늘날까지 그 재림주님이 오실 날을 위해 정성들이고 준비하고 계십니다.

이 땅 위에 하나님이 오실 길을 개척하기 위해 수고했지만 그 길을 완전히 개척하지 못했기 때문에,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아들은 아들대로 그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분담해서 사명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아버지와 아들이 같은 일을 하고 있다는 거예요. 아버지와 아들이 같은 목적을 놓고 아들 예수가 하늘에서도 일하고, 아버지 하나님이 땅에서도 일하고 계십니다. 이렇게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애를 쓰고 있는 것입니다.

능력 많으신 하나님께서 6천년 동안이나 수고하셨지만 사랑할 수 있는 아들을 못 찾았고,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이 되어야 할 인간 또한 사랑하는 아버지를 찾지 못했습니다. 영원한 내 아버지요, 영원한 내 아들이라 할 수 있는 행복의 한 날을 맞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찾기 위해 예수를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고 하나님을 만나서 부활의 자리를 찾아 나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아요? 그래서 우리는 골고다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원수는 누구입니까? 사탄의 원수는 누구입니까? 사탄이 하나님의 원수인데 하나님은 그 사탄의 자식들을 용서해 주십니다. 그러나 사탄에게는 용서하는 법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딸이 사탄에게 한 번 걸리기만 하면 국물도 없습니다. 그래서 6천년 동안 모든 것을 쥐고 `안 됩니다’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탄이 제일 사랑하는 자가 누구냐? 자기 새끼들입니다. 반면 사탄이 제일 미워하는 자는 누구인가?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그렇겠지요?

11-198
신앙자들이 걸어온 길
여러분들은 무엇이 되려 합니까? 무엇이 되겠어요? 사탄이 제일 좋아하는 사탄의 새끼가 될래요, 하나님의 자녀가 될래요? 물론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를 고대하겠지요. 하나님의 자녀가 한번 되어 보십시오 어떤가. 사탄 새끼들이 많은 이 세상에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녀로 태어나면 누구의 원수입니까? 사탄의 원수입니다. 또 사탄 새끼의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사탄이 제일 미워하는 사람이지요. 사탄 새끼들이 제일 미워하는 사람이 되는 거예요.

미워하니까 어떻겠습니까? 여러분이 가면 `어서 오시오. 당신을 위해 잔치를 벌였으니 멋드러지게 하루 놉시다’ 할 줄 알아요? 천만에요. 으슥한 곳으로 끌고 가서 목을 걸어 놓고 `하나님의 자녀 될래, 안 될래?’ 할 것입니다. 그럴 게 아니예요? 하나님의 자녀는 사탄의 원수요, 사탄새끼의 원수입니다. 이 몹쓸 세상을 뒤엎기 위하여 태어난 자녀이니 사탄들이 어떻게 하겠어요? 교수대에 목을 걸어 놓고 `너 하나님의 자녀 될래, 안 될래? 항복할래, 안 할래?’ 한다는 것입니다. 잡아채기만 하면 그만입니다. 이렇듯 사탄의 교수대에 목이 걸린 입장에서 싸워 나오는 것이 신앙자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여러분은 어떠한 지역이나 어떠한 환경에 가든지 그것이 자기의 보응의 길임을 알아야 합니다.

원수의 나라에는 용서법이 없습니다. 이토록 수천년 동안 우리의 선조들은 모진 핍박을 당했지만, 피땀을 흘리고 심지어 학살까지 당했지만 사라지지 않고 종족을 번식시켜 나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언제 이 원수를 갚을 날이 올 것인고? 승리의 한 날을 기하여 그들을 전부 판결해야 할 것이 전세계에 널려 있는 기독교인들의 책임인데, 이들이 잠들어 있습니다. 이렇게 잠들어 있는 기독교인들을 깨우쳐야 할 통일의 무리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하늘의 혈족이니 골고다 산정에서 못박혀 쓰러질 각오를 해야 합니다. 너도 불쌍하거니와 나도 불쌍합니다. 교파가 크건 작건 교파에 속한 무리는 모두 불쌍한 무리들입니다. 교파는 갈래갈래 찢어져 나온 핏줄기요, 이 교파에는 뭇사람의 피가 얼룩져 있으니, 우리는 그들을 원수로 생각하지 말고 그들이 맞을 매를 대신 맞고, 그들이 받을 고통을 대신 받을 수 있는 무리가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무리가 천지간에 많이 나와야만 원수 사탄의 도성을 한꺼번에 무너뜨리고 승리의 한 날을 맞을 수 있으며, 영원한 천국을 건설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 하늘편 땅과 백성과 주권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딸이 지금 누구에게 목이 매어 있습니까? 사탄에게 목이 매어 있습니다. 사탄에게 목이 매어 죽을 시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러한 마당에서 하나님은 가슴을 조이고 계십니다. 이것은 사실입니다. 지어낸 말이 아니예요. 하나님께서는 만인을 구하기 위해 천신만고 끝에 한 사람을 세우셨는데, 사탄이 그를 죽였습니다. 가정을 대표하는 한 가정을 세웠더니 사탄이 그 가정을 잡아죽였습니다. 민족을 대표하는 민족을 세웠더니 사탄이 역시 그 민족을 잡아죽였습니다. 지금 남아 있는 신자들은 사탄들이 죽이다 죽이다 남은 사람들입니다. 그래도 지금 명실공히 하나님 편에 속한 자녀라는 이름 아래 세계에 수십억의 신자들이 널려 있습니다.

11-199
아버지를 만날 수 있는 곳
지금 세계는 하나님 편과 사탄 편, 둘로 갈라져 있습니다. 지금 시대는 이 둘이 대결을 벌이고 있는 시대요, 외적인 환경을 수습하는 동시에 내적인 정비를 해야 하는 시대입니다.

이러한 시대에 처한 여러분들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이냐? 아버지께서 무엇을 하시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택한 유대 백성들이 책임을 못하고 쓰러지니 하나님은 기독교를 제2이스라엘로 세우셨습니다. 그러면 이 기독교는 무엇을 위해 만드셨는가? 새 시대에 왕으로 오실 재림주님 앞에 새로운 이스라엘, 즉 택한 선민이 되게 하기 위해 만드셨고, 만국의 대제사장의 책임을 지고 오시는 재림주님을 모시게 하기 위해 만드셨습니다. 민족적인 감정을 초월하고 국가적인 감정을 초월하여, 한 부모 아래 한 형제라는 혈족의 인연을 존중하면서 오시는 주 앞에 제물이 되고 제단이 되어야 할 것이 현재 기독교입니다.

한국의 기독교가 통일교회를 몰아내기 위해 별의별 짓을 다하고 있는데, 이것은 슬픈 일이지만 일면 고마운 일이기도 합니다. 왜? 그들이 제2이스라엘로서 하늘의 제단이 되지 못했으니 우리가 그 제단이 될 수 있고 제물이 될 수 있으며, 또 그들이 제사장의 책임을 못했으니 우리가 제사장의 자리에까지 나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곳은 어디인가? 은밀히 기도하는 장소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아들딸이 죽을 자리에 있을 때 찾아가십니다. 당신의 아들딸이 원수에게 잡혀 쇠고랑을 차고 교수대의 이슬로 사라지려 할 때에 사랑의 아버지이신 하나님께서는 통곡하면서 찾아가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천신만고 어렵고 어려운 험한 길을 거쳐서라도 아들의 죽는 모습이나마 꼭 보겠다고 찾아가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런 아버지인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그 아버지와 상봉할 수 있는 자리는 골고다입니다. 십자가상이라는 거예요. 우리 통일교인들은 예수께서 비록 단벌의 홍포, 피와 땀과 눈물로 얼룩진 초라한 옷을 입으셨지만 천주 앞에 거룩한 제물이 되어 수천만 대를 이어온 썩은 피, 사망의 핏줄을 씻어 버리는 속죄의 길을 가심으로써 새로운 생명의 핏줄이 이어졌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예수가 저녁 빛으로 눈을 감았으나 이제는 반대로 새 아침의 광명한 빛으로 나타나기를 우리는 고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엄숙한 찰나에 서 있습니다. 우리는 죽더라도 하나님 아버지를 보고 죽어야 되고, 살더라도 하나님 아버지를 만나 함께 살아야 합니다. 예수는 죽는 자리에서 하나님을 만났지만, 우리는 예수가 흘린 피의 공로로 말미암아 살아 있는 동안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끝날 성도들의 소망입니다. 예수는 몸이 찢기고 피를 토하는 죽음의 자리에서, `아버지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하시며 부활을 약속하고 가셨지만, 오늘날 우리는 `아버지여! 어찌하여 나를 환영하시나이까?’ 할 수 있는 자리에 서 있습니다. 그러니 `이 몸이 아버지를 모실 수 있는 골고다 산정에 있으니 황공망극하옵니다’ 하는 여러분이 되어야 합니다.

11-201
통일신도들이 가야 할 길
하늘이 원하시는 것은, 죽음과 삶(생명)이 뒤넘이치는 자리에서 죽은 아들딸 말고 산 아들딸을 품고 당신의 위신도 잊고 `내 아들딸아! 이제는 원수의 손아귀가 없어졌구나. 6천년의 한이 비로소 풀렸구나’ 하는 것입니다. 자식들도, 죄악의 몸이었던 자신들의 처지를 잊어버리고 눈과 코와 입이 하나되어 하나님을 붙안고 `아버지! 천년 만년 함께 살고 싶습니다. 영원히 당신을 붙들고 함께 있겠습니다. 이젠 가도 같이 가게 해주십시오’ 하는 것이 소원입니다. 이것이 타락한 인생이 가야 할 마지막 소망의 종착점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자리는 어떤 자리이냐? 사망과 생명이 엇갈리는 골고다 산정입니다. 이 골고다 산정으로 가는 길이 기독교 신자들이 가야 할 최후의 길, 넘지 않으면 안 될 복귀의 길입니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은 이것을 모르고 잠들어 있으니, 우리는 그것을 깨우쳐 그 자리까지 끌고 가야 합니다. 그러려니 우리의 뼈골이 녹아져야 하는 것입니다. 이 스승이 무지한 여러분을 모아 놓고 땀으로 목욕을 하면서 외치고 있는 것도, 여러분의 죽었던 몸이 부활하여 심정의 동산, 골고다를 바라보면서 죽어 간 예수의 한을 풀고 거룩한 몸으로 하나님의 유업을 상속받을 수 있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아들딸을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곳이 겟세마네 동산과 골고다 산정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앞으로 우리는 싸움을 해야 할 것인데, 광야노정을 걸었던 이스라엘 민족에게 가나안 7족이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세계적인 가나안 복귀노정을 걷고 있는 제3이스라엘인 우리 앞에는 수십 수억의 원수들이 있고, 그들이 우리의 동태를 엿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행군나팔 소리가 들리면, 밤이든 낮이든 가리지 말고 시간을 초월하고, 사정을 초월하고, 개인적인 소망을 초월하여 전진해 나가야 합니다. 목적 달성을 위해 모든 것을 경주하여 행군해야 할 시기가 온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잃어버린 아버지를 찾고 있습니다. 인간이 타락으로 인해 빈사상태에 빠졌는데, 죽음 길에서도 아버지를 찾으면 약속하신 아버지는 찾아오실 것입니다. 굶주려 쓰러지는 자리에서 아버지를 불러 보세요. 우리의 아버지는 살아 계십니다. 아버지는 선한 목자이십니다.

여러분은 민족의 운명과 세계의 운명을 염려하면서 `아버시시여! 지금까지 못난 저희들을 찾아오시기 위하여 얼마나 고생을 하셨습니까? 이제 이 민족의 죄를 내가 대신 짊어지고, 민족의 고통과 슬픔을 제가 책임지고, 이 세계의 고통을 제가 책임지겠사오니 당신은 부디 나로 말미암아 쉬시옵소서’ 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야 합니다.

여기서 외치고 있는 스승은 지금 하기 어려운 말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골고다 산정에서 쓰러지면 어떻고, 교수대의 이슬로 사라진들 무슨 한이 있겠느냐는 결의를 갖고 삼천리 방방곡곡 잠들어 있는 이 민족을 깨우치고, 지금까지 하늘을 유린해 온 사탄을 쫓아 이 민족, 이 강산에서 사탄을 몰아내야 하겠습니다. 또 하나님이 찾아오시는 가시밭길을 내 몸으로 메우겠다는, 살아서 메우지 못하면 죽어서라도 메우겠다는 결의를 갖고 나서야 할 길이, 쫓김받는 통일신도들이 가야 할 길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천대를 당하고 피를 토하는 괴로움이 있더라도 낮이든 밤이든 나를 몰아내시옵소서’ 해야 합니다. 그러다가 쓰러지고 피를 흘려도, 아주 망해도 하늘을 위해 망했다면, 거기에는 반드시 승리의 탑이 세워질 것입니다. 이러한 뜻을 위해 우리는 모였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11-202
최고의 행복의 기준은 하나님
내가 이번에 남한 각지를 순회하면서 주로 말한 내용이 이런 것입니다. 그러한 사나이와 아낙네들이 되기를 바란다고 했어요. 그들 앞에 내가 무슨 이득을 보기 위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들의 살 길이 거기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이 살 길이 있다면 내가 여러분의 친구가 되어 주기도 하고 천만번 이용당해 주기도 하겠습니다.

이 길은 여러분이 가야 할 길입니다. 여러분들은 이 길을 가서 아버지를 만나 볼 수 있는 늠름한 자격자가 되어야 합니다.

선생님은 그런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내가 길을 가다가 외로울 때에 하나님 아버지께서 나를 불러 `아무개야 내가 있지 않느냐’ 하시며 권고해 주시던 생각을 합니다. 그러면 외로운 자리가 문제가 안 되지요. `나 혼자인 줄 알았는데 당신이 나와 함께 계시는군요’ 하며 힘차게 걸어갑니다. 어떤 때는 길 가는 거지를 볼 때 `저 거지가 나를 찾아온 아버지의 모습이라면 어떻게 할까’ 생각하며 통곡에 통곡을 한 적도 있습니다. 이런 마음을 갖고 아무리 남루한 옷을 입은 거지라도 그의 손을 붙들고 남모르는 통곡을 할 줄 아는 여러분이 되어야 합니다.

선생님은 그런 자리를 많이 거쳤는데, 고통과 고충 가운데에 홀로 있게 되는 외로운 자리에서는 `아버지는 매정도 하시구나. 아버지는 무자비하기도 하시구나. 책임만 맡겨 놓고 돌보아 주지는 않으시는구나’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럴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개야 네가 거지를 붙들고 있을 때 내가 함께 있었다. 아무개야 네가 도탄 중에서 불쌍한 사람과 더불어 눈물지을 때 내가 같이 있었다’ 하셨습니다. 그러니 이 길을 안 갈 수 있겠어요? 그러기에 예수께서도 `주릴 때 먹을 것을 주고, 나그네에게 영접하고, 지극히 작은 자에게 행한 것이 곧 나에게 행한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자유롭게 모실 수 있는 자리를 갖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골고다를 찾아오시는 아버님의 발걸음이 얼마나 슬프시겠는가?’ 하는 마음을 갖고 하나님을 찾아가야 합니다. 그러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라고 축복해 주어야 합니다. 그들이 축복을 받음으로 말미암아 여러분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심정을 알아 드리지 않고, 하나님을 몰아내려 하는 것은 큰 죄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세상의 모든 죄악의 근원은 자신에게 있습니다. 모든 죄악은 자신에게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여러분은 분명히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들은 죄 많은 살인강도보다 나을 것이 없습니다. 악질분자보다 나을 것이 없습니다. 그러한 여러분을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6천년 동안 수고해 오셨습니다. 나는 이런 사실을 알고, 이런 하나님이 사정을 체휼하였습니다. 여러분도 하늘의 사정을 통할 수 있는 환경 가운데 들어가 보아야 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대신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길을 대신해서 가지 않으면 하나님이 찾아 주시지 않습니다. 행복의 최고 기준이 하나님이시므로 하나님을 찾아야 하는데, 하나님이 가신 길을 가지 않고선 하나님을 찾을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몸을 대신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대신하여 가야 합니다. 나를 사랑하여 찾아오신 하나님, 불쌍한 만민을 돌봐 주시던 하나님을 회상하며 하나님을 대신하여 가야 합니다. 슬플 때는 우시던 하나님을 생각하며, 나는 얼마나 그런 일을 했으며 얼마나 그런 사람들을 위한 기도의 제단을 쌓고, 속죄의 조건을 얼마나 세웠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부디 이번 기간은 모든 죄를 탕감하는 기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번 전도기간이 그럴 수 있는 기간이라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11-204
새시대의 천민주의
골고다의 십자가는 누가 짊어지고 가는 것이뇨? 부모가 지고 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지고 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여러분 자신이 지고 가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지고 갈 때 여러분은 절대 신세를 져서는 안됩니다. 내가 맡아야 할 나의 책임이니, 내가 지겠다는 결심을 해야 합니다. 내 몫의 십자가는 내가 지고 가야 합니다. 그리하여 기어이 아버지와 상봉해야 합니다.

그렇게 싸워 나가는 노정에 있어서, 여러분은 베드로와 같이 배반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열두 제자와 같이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를 지지 못하고 도망가는 무리가 되어서도 안 됩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한 혈족임을 알아야만 합니다. 피가 같고 살이 같고 뼈가 같은 한 혈족입니다. 그러니 예수가 남긴 사명을 책임지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는 하나님의 유업을 상속받을 수 있는 분이었으나 죽음의 길로 갔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죽지 말고 천하의 모든 영광을 상속받아 승리의 제2조상, 새나라 새역사의 근원이 되어 주길 바랍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지요? 「예」 하나님을 찾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그런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메시아로 왔는데, 메시아는 어떠한 사람이뇨? 고통을 떠맡은 책임자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무엇 때문에 탄식하신다고 했습니까? 천하에 죄악의 보따리가 그냥 그대로 머물러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 죄악의 보따리는 무엇이겠습니까? 고통과 비애와 눈물의 보따리입니다. 여러분들은 이러한 것들을 책임질 수 있어야 합니다. 어느 부락에 들어가면 그 부락에 있는 나쁜 보따리는 모두 내 것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앞으로 천민(天民)들의 주의는 어떠한 주의가 되어야 할 것인가? 오늘날 죄악된 세계의 주의와는 달라야 합니다. 이 천민주의와 죄악세계의 주의를 비교해 봅시다. 오늘 타락된 세계의 사람들은 좋은 것이 있으면 서로 자기 것이라고 합니다. 목숨을 걸고 좋은 것을 차지하려고 합니다. 그런 주의를 가지고 싸우다가는 사탄의 사슬에 걸려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새시대의 주의, 천민들의 주의는 나쁜 것은 내 것, 슬픔과 고통은 내 것이라고 하는 주의입니다. 서로가 나쁜 것을 갖기 위해 싸우는 주의입니다. 그것을 차지하기 위해 싸우는 무리가 이 천지간에 나타나면 이천지는 그들의 것으로 돌아가는 주의입니다. 나쁜 것을 서로 갖기 위해 싸워야 합니다. 좋은 것을 갖기 위해 싸우면 나중에는 박살이 나게 되어 있습니다.

가인과 아벨이 무엇을 빼앗으려고 싸움을 했습니까? 좋은 것 가지려고, 즉 하나님의 축복을 차지하려고 싸웠습니다. 결국 그들이 싸우다 망하여 오늘날과 같은 세상을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이것을 복귀하기 위해서는 반대의 경로를 거쳐야 합니다. 동생이 좋아하는 것은 싫어하고, 동생이 나쁘게 생각하는 것을 내가 가지겠다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지금까지 하나님 아버지는 그렇게 해 오셨습니다. 그 아버지는 자식을 구하기 위하여 죽음의 자리에도 서셨습니다. 아직 좋은 것을 줄 때가 못 되었으니 그때까지 참으라고 하시며 아들 대신 죽음의 자리에도 서셨던 것입니다.

이렇게 죄된 것들을 길러 통일교회 신도를 만들어 놓았더니 그저 좋다고 활개를 치며 다니고 있습니다. 좋은 것만 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좋은 것 차지하려고 싸우다가는 망해도 나쁜 것 차지하려고 싸우다가는 망하는 법이 없습니다.

11-206
숭고한 생활
여러분들은 이 사망의 세계에서 사람들이 제일 무서워하는 것을 가져야 합니다. 제일 지긋지긋해 하고 제일 싫어하는 것을 생활 속에서 소화시켜야 합니다. 매일 밥을 먹듯이 말입니다. 그러한 일을 행하는 데 있어서는 자기가 어떻게 되어도, 밥을 굶어도, 눈물을 흘려도, 피를 토하며 쓰러져도 `고맙습니다!’ 해야 합니다.

어떻게 하여야 이러한 사람이 되겠는가? 역사적인 하나님의 심정을 샅샅이 알아야 합니다. 자기의 후손들과 천추만대 후대의 세계가 어떻게 될 것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앞으로의 세계에 대한 가치를 알면 현실에 대해 애착심을 느끼지 않을 것입니다. 현실의 가치는 실날 같은 것이므로 이것은 날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무리들을 만들기 위하여 하나님은 불쌍한 한민족에게 새로운 주의를 주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통일의 이념입니다. 통일이 쉬울 것 같아요? 세상의 죄를 우리가 도맡아야 합니다. 죄는 나쁜 것의 근거지이니 이것을 제거하는 책임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기준에 여러분, 일치될 수 있어요?

여러분들이 그런 곳에 들어가 고생할 때는 고생한다는 생각을 가지면 안 됩니다. 나쁜 것은 내 것이라는 마음만 가지라구요. 매를 맞을 때도 그 부락을 걸고 맡는 것이 아니라 27억 인류를 대신해서 맞는 것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이 매를 맞는 대신 인류의 죄를 탕감해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하세요. 한 끼의 밥을 굶더라도 `굶주리고 있는 수많은 인류를 해원시켜 주시옵소서. 아버지께서 이러한 길을 걸어 나오셨으니 그 심정을 내가 본받겠나이다’라고 기도하라구요. 이 얼마나 숭고한 사랑입니까?

그런 자리에서 주위를 돌아보며 `메시아의 모습을 바라보기를 고대해 온 만물아! 주인의 심정을 그리워하던 만물아! 너는 어느 한 때 이러한 심정을 가진 참다운 주인의 손길 앞에 귀여움을 받아 보았으며, 그 심정의 품에 안겨서 하룻밤이라도 지내 보았느냐!’ 해야 합니다. 그러한 마음을 품게 될 때 풀 한 포기를 붙들고도 진정으로 귀여워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여러분이 되었어요?

여러분들은 집에 있는 골동품을 내놓고 이건 우리의 선조가 물려준 것이고, 이조 시대의 보물이고, 뭐 어쩌고 저쩌고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 시시한 것을 갖고 자랑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심정으로 지으신 천지만물을 사랑하고 자랑해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사랑하는 아들딸을 잘살게 하기 위하여 지어 주신 것입니다. 금은보화를 주고도 살 수 없는 귀한 창조의 유물입니다. 그런데 그 유물이 천대받고 무시당해 왔습니다. 그래서 지금 천지만물이 탄식하고 있는 것입니다. 산을 보면 산이 탄식하고, 들을 보면 들이 탄식하고 있습니다. 불어오는 바람결마저 탄식하고 있습니다.

11-207
만물에 대한 새로운 인식
이제 여러분은 골고다에서 하나님을 모시는 아들딸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후에는 하나님의 아들딸의 자격으로 만물을 책임지는 만물의 주인이 되어야 됩니다. 하나님의 심정, 6천년 동안 죄 많은 우리를 찾아오셔서 버리지 아니하시고 사랑하신 하나님의 심정을 본받아 몽땅 사랑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누가 있든 없든 여러분은 풀 한 포기를 붙들고 `아버지! 당신이 이 풀을 지으실 때 이러이러한 마음을 갖고 지으셨지요? 이 풀을 갖다가 사랑하는 아들딸에게 보이면서 얼마나 자랑하고 싶으셨습니까? 여기 아버지가 지으신 이 풀도 사랑하는 아들딸 앞에 자기를 자랑해 주기를 얼마나 그리워했겠습니까? 그런데 그러한 날들을 맞지 못하였으니 얼마나 불쌍합니까?’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 `이제는 때가 되었으니 아버지를 대신하여 너를 품고 귀여워해 줄테니 지난날의 모든 탄식을 잊어버리고 나와 더불어 길이길이 같이 살자’ 해보세요. 그리고 `너는 영원무궁토록 넘겨줄 귀한 생명들이야. 아무리 많은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천추만대의 후손에게 넘겨줄 창조의 유물이며 보화야’ 하면서 만물을 대해야 합니다. 이렇게 풀 한 포기라도 애지중지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 주인이 된다면 얼마나 멋진 주인입니까? `산아! 내가 여기 왔노라. 물아! 나를 보면서 흘러라’ 하는 감정을 가져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을 보고 하나님이 `야, 이 녀석 봐라. 내가 좋아하고 내가 보고 싶어할 건데 네가 그러면 되니?’ 하시며 꾸지람하시겠어요?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래 오냐, 그럼 다 너에게 줄께. 네가 좋아하는 것이라면 다 줄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 풀 한 포기에서부터 천하만물 모든 것에 이르기까지 통틀어 너에게 주마. 하늘의 보좌까지라도 몽땅 너에게 주마. 네 것으로 만들어 주마. 내가 이토록 사랑하는 아들딸에게 주지 않으면 누구에게 주겠니?’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여러분이 하늘 편의 승리의 왕자로 서고 피조세계가 여러분 앞에 머리 숙이고, 서로가 없어서는 안 될 가치를 노래하며 사는 세상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창조이상이 이루어진 본연의 세상이며 곧 지상 천국입니다. 이러한 세상을 만들기 위하여 여러분들이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최고의 행복의 기준은 무엇입니까? 돈도 아니요, 재산도 아니요, 지식도 아닙니다. 인간의 최고의 행복은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만군의 여호와이시기 때문에 없는 것이 없습니다. 전지전능하신 분이기에 모든 것을 갖추고 계십니다. 그분은 좋다는 것은 얼마든지 창조하십니다. 지금도 사랑하는 아들딸들이 천하보다 더 아름다운 것을 구상하여서 `이것을 제가 원하오니 저에게 만들어 주실 수 있겠습니까?’ 하면 하나님은 `오냐’ 하며 순식간에 창조하십니다. 얼마나 멋집니까?

그렇지만 나쁜 것은 창조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나쁜 것에 사랑하는 아들딸의 목이 걸려 있기에 이것을 풀기 위해서 이제껏 고생해 오셨습니다. 이제는 나도 이것을 풀 줄 압니다. 이것을 처리하는 방법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 이 사탄세계를 소탕할 것입니다.

11-209
40일 전도의 의의
우리는 예수님이 남기신 유업을 상속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남기신 유업을 상속받아 예수의 동생과 누이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의 친형제들은 사탄이 전부 끌어갔습니다. 사실이 그러니, 여러분들은 주의해야 합니다. 어느 누구에게도 후원받지 말라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나 혼자만 남았다고 생각될 때는 하나님께 살려달라고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사탄과 단 둘이 대결할 때, 서너 마디로 사탄을 천 길 만 길 굴러 떨어지게 만들었습니다. 선생님은 우리의 작은 처녀들이 억센 사내들, 별의별 남자들이 우글우글하는 데에 떡 가서 늠름하게 대결하여 승리하는 것을 볼 때, 기분이 매우 좋습니다.

여기 있는 여자들은 더욱 조심해야 돼요. 아담 해와도 열여섯 열일곱살때 타락했습니다. 여기 그러한 연령에 있는 우리 식구들은 사탄이 어떤 수단을 써서 유혹해도 끄떡없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오히려 의기를 일으켜 사탄을 멋지게 밀어제끼고 그들을 하늘 편에 세우는 여러분이 되어야 됩니다. ‘우리를 어떻게 알고 이러느냐? 어림도 없다’ 할 수 있어야 됩니다. 이러한 승리의 아가씨들이 되기를 부탁합니다. 알았지요?「예」

그리고 우리 총각들은 그런 일에 플러스되는 일을 해야 합니다. 본시 사탄이 누구입니까? 6천년 동안 혈연을 통해서 우리를 고생시킨 장본인입니다. 이런 사탄과 싸움을 시키더라도 `요놈, 네가 하늘의 주관권을 가로채 6천년 동안 행사했지만 이제는 안 된다’ 하여야 합니다. 사탄의 멱살을 잡고 후려칠 수 있는 늠름한 사내들이 되어야 합니다. 알겠어요?「예」

선생님은 이러한 마음으로 남한 각지를 돌며 여러분을 위하여 기도하였습니다. 더구나 지금은 복잡한 때이니 여러분은 말을 주의해야 합니다. 또 지방에 가서 반드시 주의해야 할 사항은 40일을 40일로만 생각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아브라함부터 지금까지의 4천년 역사를 대신한 것이고, 광야 40년 기간을 대신한 것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이 1961년은 3년 기간 중에서도 총진군을 해야 할 해입니다. 각 면 단위에까지 우리의 초소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인간을 붙잡고 허덕이게 하는 사탄을 감시하여 일시에 몰아내야 하겠습니다. 명년에는 리 단위까지 계획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알지요?

이러한 뜻을 위해서 여러분이 어린 몸이지만 제물이 되겠다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니 단단히 준비하고 단단히 결의해야 하겠습니다. 이제는 여러분들이 기도를 하면 영계에서 협조해 줍니다. 동네에 가서 동네 사람들을 불러다 놓고 열심히 해보십시오. 하늘이 협조해 주실 것입니다.

11-210
합동작전을 펴야 할 일선과 후방
이제까지는 선생님에게 후방은 없었습니다. 언제나 일선이었습니다. 가는 곳마다 사방에서 사탄의 화살이 날아왔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선생님이 후방에 서야 할 때가 왔습니다. 여러분이 열심히 일해서 선생님의 울타리가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에게도 후방은 없습니다. 여러분이 일선에 섬으로써 우리에게 후방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전도 나갈 때에 혼자 가면 안 됩니다. 반드시 전도 나가지 못한 사람들과 연계작전을 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일선과 후방이 합동작전을 해야 합니다. 일선에 있는 사람은 앞에서 싸우고 후방에 있는 사람은 정성을 다해서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 협력하여야 합니다. 그런 정성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번에 불가피한 식구는 전도 안 나가더라도 모두 동참하였다는 조건을 세워야 합니다.

후방에 남아 있는 사람은 타락하지 않은 천사장의 입장이고, 일선에 나가 있는 사람은 타락하지 않은 아담 해와의 입장입니다. 그런 입장에서 모두가 타락한 사탄과 싸우는 것입니다. 후방에 있는 사람들은 타락하지 않은 천사장의 입장이므로 먼저 일선에서 싸우는 사람들에게 돈을 주어서는 안 됩니다. 일선에서 싸우는 아들딸이 오히려 자기들의 주머니를 털어 써야 합니다. 그래야 그들 앞에 위신이 서는 것입니다. 자기의 땀과 자기의 피로 사탄을 굴복시켜야 합니다. 아담 해와가 자기 위치를 다시 찾은 후에야 천사장이 모셔 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원칙입니다. 복귀의 이치가 그렇다는 겁니다. 후방에 있는 여러분의 입장은 천사장의 입장입니다. 일선에 나가 싸우는 사람이 아담 해와의 입장이라면, 후방에 있는 여러분은 천사장의 입장인 것입니다.

우리는 2대 1로 사탄과 싸우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중심삼은 사위기대를 이루어 사탄을 몰아내야 합니다. 사탄세계는 반드시 무너진다는 확신을 갖고 충성을 다해야 합니다. 선생님이 하나님 앞에 충성을 하듯이, 여러분도 뜻을 위해 충성을 다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이러한 길을 걸어 오셨으니 여러분도 이러한 어려운 길을 가야 합니다. 여러분이 전도 할 때 통일교회를 위해서 한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뜻을 위해 한다고 생각하십시오. 알겠어요? 원리 말씀을 대할 때도 선생님의 말씀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하늘의 말씀입니다.

선생님은 지금까지 여러분이 모든 것을 소유할 수 있는 비법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무보수로 인계해 주었으니 원리도 여러분의 것이요, 교회도 여러분의 것이요, 이 나라도 여러분의 것이요, 하늘과 땅도 여러분의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하나님도 여러분의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하나님을 모셔야 되며 이 천하도 여러분이 사랑해 주어야 합니다. `아! 이 백성도 나의 백성이니 내가 사랑해야지, 이 마을 사람들도 내 부모요 내 형제니 내가 사랑해야지’ 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삶은 누구를 위한 삶입니까? 결국 나를 위한 삶입니다. 나, 나, 나, 나를 위한 삶이란 말입니다. 예수도 그러한 일을 다 못하고 죽었으니 하늘나라에서라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모세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도 민족적으로 해야 할 사명을 못했으니 죽어서라도 해야 합니다.

`나는 한다’는 신념이 있어야 합니다. `27억 인류가 없어지더라도 나는 한다’는 신념을 가져야 합니다. 엘리야도 그러한 마음으로 `나만 남았나이다’ 했던 것입니다.

선생님에게도 그런 기간이 있었습니다. 처음부터 홀로 출발했지만 그런 얘기는 하지 않았습니다. 나 혼자라도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싸움은 이겨야만 희망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그러니 하나님을 사랑하고 인류를 사랑하고, 이 온 만물을 내 것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땀을 흘리며 가는 모습을 보고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신 길을 따라감으로써 전통적인 유업을 상속받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 앞에 나서면 하나님께서는 그런 아들딸에게 무엇이든지 전부 주시고 싶어하십니다. 주고도 또 주고 자꾸 주고 싶어하신다는 것입니다.

11-212
자기의 일을 하고 자기의 길을 가는 것이다
여러분들은 자기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자기의 일을 하는데 누가 월급을 줍니까? 월급 받고 싶으면 줄테니 받고 싶은 사람 있으면 어디 손들어 봐요? 자기 갈 길을 가는데 누가 돈을 줍니까? 통일교회에서는 돈을 안 받고 일해야 합니다. 내 땀과 눈물을 흘려서 일해야 합니다. 땀과 눈물을 흘려서 안 되거든 피를 팔아서라도 해야 합니다. 통일의 청년남녀들은 선생님이 보고 `됐다’ 할 때까지 일해야 합니다. 선생님은 여러분에게 명령하지만 말로만 명령하는 것이 아닙니다. 선생님도 과거에 그런 길을 걸어 보았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는 나를 모른 척 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도 그러한 길을 가면 하나님은 여러분을 반드시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러한 아들딸이 될 것을 생각하고 기뻐해야 합니다. 앞으로 우리 식구가 많아지면 월급 받지 않고 이 나라의 중요한 직에서 일하게 할 것입니다. 틀림없이 그렇게 할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피와 땀을 아끼지 말고 쏟아야 합니다. 하루에 밥을 한 끼 밖에 못 먹는 한이 있더라도 열심히 일해야 합니다. 그래도 안 죽어요. 안 죽어. 그럴 자신 있지요? 「예」일주일쯤 훈련해 보세요. 안 죽습니다. 내 나라 내 땅을 위하여 내가 살아 있는 동안 고생해야 합니다. 기뻐하시는 하나님을 모실 수 있도록 자리를 깨끗이해야 합니다.

삼천만 민족부터 전세계 인류까지 우리의 움직임을 본받으라고 자랑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합니다. 이러한 성실성을 이 민족 앞에 보여주고, 하늘에 대한 애착심을 갖게 해야 합니다. 그래야 이 민족이 살아날 길이 열리는 것이지 그렇지 않고는 안 됩니다. 오늘날 혁명정부도 그렇습니다. 의식혁명, 다시 말하면 정신혁명을 어떻게 일으키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우리는 벌써 그 이상 몇 단계를 넘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만이 가고 있습니다. 알겠어요? 「예」

우리는 이 길을 가다가 매를 맞아도 그들을 원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도 그렇게 생각하십니다. 요놈의 사탄들이 동원되어야 얼른 탕감할 게 아니겠어요? 그래요, 안 그래요? 그렇지요? 결판을 내려면 싸움을 해야 합니다. 싸움을 하려면 악착같이 해야 합니다. 사탄들이 다 물러가야 싸움에서 이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있어 가지고 되겠어요? 그래 가지고 인정 받겠어요?

11-213
하나님의 대신자가 되는 길
여러분은 먼저 사탄과 싸워 사탄한테 이겼다는 증명서를 받아야 합니다. 그 증명서를 받기 전에는 하나님의 아들딸이 될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사탄한테 승리했다는 증명서를 예수님에게서도 받고 선생님에게서도 받아야 합니다. 그렇게 되기만 하면 우리는 지상에 있는 공산당을 단번에 몰아낼 수 있습니다. 공산당 같은 것은 문제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심정을 갖고 나가면 됩니다. 자신의 몸을 제물로, 자신의 눈물과 피와 땀을 제물로 바치면 됩니다. 자신을 죽지 않은 산 제물로 바치면 됩니다. 또 이러한 제물이 될 수 있는 상속자를 세워 놓고, 제사장이 되어 천지에 있는 탄식의 조건을 전부 일신에 지니고 `제가 여기에 있으니 저를 채찍질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저로 말미암아 해원하시옵소서’ 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아담이 어떻게 타락했고, 그것을 어떻게 탕감해 나오는가 하는 복귀원리를 다 배웠지요? 여러분은 하나님의 한에다 이 선생님의 한까지 플러스해서 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선생님은 여러분을 대할 수 있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그런 아들딸들에게 축복을 해주신다고 약속하셨으므로 내가 `당신의 아들딸로 드리오니 받아 주시옵소서’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야 여러분이 축복을 받을 게 아니겠어요? 그래야 비로소 축복받는 자리로 나가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통일교회가 가는 길은 간단합니다. 하나님의 대신자가 되는 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그토록 수고하셨으니 우리가 하나님 대신 수고하여 그것에 보답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쉬실 것 아니겠어요? 나 자신부터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백성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연대적인 책임을 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각자 하나님의 대신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부모의 심정을 지니고 종의 몸을 쓰시고 지상에 오셨습니다. 만민이 눈물을 흘리면 하나님도 눈물을 흘리셨고, 만민이 땀을 흘리면 하나님도 땀을 흘리셨습니다. 또 만민이 죽음의 자리에 설 때에 만민을 대신하여 피를 흘려 주셨습니다. 나를 대신하여 하나님께서 몇 천만번 제물이 되셨는지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여러 번 손수 제사장의 노릇을 하셨는지 모릅니다. 이러한 일을 개인적으로부터 가정적·민족적·세계적으로까지 해 나오셨으니 얼마나 고통이 많았겠습니까? 아들을 보내시어 이 사명을 하게 하려 하셨는데, 그나마 실패하여 하나님께서 아들의 사명까지 하시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입니다.

원래 하나님은 참된 아들, 하늘과 관계지을 수 있는 천지의 대신자를 세워서 그로 말미암아 만민이 고난의 길을 넘어 재생되기를 바라셨습니다. 그런 후에 축복해 주시려고 하셨습니다. 이러한 일을 가능케 해야 할 것이 예수의 사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가 사명을 다하지 못했으니 오늘 우리들이 그 사명을 책임져야 합니다. 부모의 심정으로 종의 몸을 쓰고, 눈물과 피와 땀을 흘려 제물이 되어야 합니다. 물론 승리한 제물이 되어야 합니다. 죽어서는 안 됩니다. 죽은 제물이 되어서는 안 된단 말입니다. 산 제물이 되어 제사장의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제사장이 되려면 성전이 있어야 되고 제단이 있어야 하고 백성이 있어야 합니다. 제단은 백성 때문에 있는 것이고, 제물과 제사장은 하늘 땅을 위해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이제 제사장의 자리로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동네를 찾아 다니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제단을 짓기 위해서입니다. 여러분이 제사장이 되려면 성전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에 동네에 가면 축을 쌓아서 성전을 지어야 합니다. 그 다음엔 제단을 쌓아야 합니다. 제단이 무엇입니까? 그 마을의 눈물의 성지입니다. 뜻이 이루어질 때까지 필요한 제단을 만들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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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장의 사명을 다하려면
여러분은 그 마을에서 특별한 사람을 택해서 3대의 제물과 12가지 제물을 드려야 합니다. 왜 그런가 하면 3수는 12수의 근본이 되는 수이고 12수는 전체를 대신하는 수이기 때문입니다. 12수를 찾아 세우면 동서남북 사방을 대신하여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12제자를 데리고 제사장 노릇을 하려고 하셨습니다. 그러다가 실패했기 때문에 할 수 없이 3제자를 세웠습니다. 세 사람은 동서남북 중에서 한 방향, 태양빛이 떠올라 오는 동쪽만 바라볼 수 있게 하는 제물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3제자를 세워 제물을 드렸던 것입니다.

그러면 3제자는 어떻게 해서 제물이 되었는가? 예수님 자신이 제1차 아담, 제2차 아담의 책임은 했지만 제자들의 실수로 뜻을 이루지 못하자 소망의 제3차 아담, 재림주라는 이름을 걸어 놓고 3제자를 세워 제사를 지내게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베드로·야곱·요한이 실수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의 실수를 복귀하기 위해 수고해 오셨고, 재림주님이 오실 때까지 제사장의 입장에서 준비해 나오고 계신 것입니다. 알겠어요?

그러므로 여러분들이 예수님의 한과 하나님의 한을 해원해 드려야 합니다. 예수님의 한이 해원되기 전에는 하나님의 한도 풀려지지 않습니다. 그러니 먼저 예수님의 한을 풀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예수님에게 3년 공생애 노정이 있었던 것같이 여러분들도 3년 동안 공적인 길을 가야 합니다. 3년 동안 120명을 전도 못하겠습니까? 정성을 들이면 됩니다. 그리고 나서 성전을 짓고 제단을 만들고 제물을 만들어 제사장이 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승리했다는 조건을 세우고 난 후에야 비로소 하늘의 아들딸로서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노아의 가정에서부터 야곱의 가정 형태를 복귀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 비로소 여러분은 이스라엘의 지파와 같은 개별적인 한 종족의 조상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간단하지요. 이것이 우리의 갈 길입니다. 알겠어요?

그러므로 나이 어린 여러분들 때부터 빨리빨리 시작해야 합니다. 이 길은 가라, 마라 할 여지가 없는 것입니다. 원리를 배우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임을 알게 될진대 안 갈 수 없고 안 할 수 없는 노릇입니다. 자신이 가야 할 길이므로 그 노정에서 패배자가 되지 말고 승리해야 합니다. 선생님도 지금까지 혼자 싸웠지만 승리한 기준이 있으므로 여러분도 승리할 수 있습니다. 선생님이 있는 한 염려하지 말고 끝까지 싸워 나가면 승리는 여러분에게 있을 것입니다. 선생님은 확신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알고 자신을 갖고 힘차게 돌격해 나갑시다. 알겠어요? 그렇게 맹세하겠어요? 맹세하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 자, 그럼 이제 선생님과 그런 서약을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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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를 확신하고 전진하자
지금까지 예수님을 대하고 뜻을 대하면서 별의별 생각을 다 했습니다. 하나님을 찾아 나가는 길이 힘든 길이라는 것도 알았습니다. 힘들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렇지요? 힘든 길이 복받는 길입니다. 어려운 것을 내가 책임지겠다고 하는 것이 하나님의 아들딸 되는 첩경입니다. 선생님도 노동을 해보았고, 빌어먹는 사람도 되어 보았고, 모둠매를 맞아도 보았고, 천대도 받아 보았습니다. 빈민굴에 들어가서 살아도 보았고, 거지를 도와주기도 했습니다. 그렇다고 싸구려 선생님이 아닙니다. 어디를 가도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절개와 위신을 잃어버리지 않았습니다. 알겠어요? 우리 통일교회 식구들은 세상 사람들이 아무리 지독한 핍박을 해도 선생님 앞에서 항의하면 안 됩니다. 항의를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선생님은 이번에 여러분을 개척지로 보내면서 여러분이 있는 곳곳에 못 가는 것을 제일 가슴 아프게 생각합니다. 그 이유를 요전에 설명했지요? 여러분들이 동원되어 있는 곳을 찾아가는데 선생의 입장에서 어떻게 빈손으로 가겠어요. 2천명이 동원되어 2명이나 3명이 한 조가 되어 나가는데 한 사람에게 천원씩만 줘도 2백만원이 들어갑니다. 또 40일 동안 순회하려면 할 수 없이 차를 타야 하는데, 기름값만 해도 하루에 만오천원이나 듭니다. 또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돌아다니려면 이에 따른 비용이 또 들어가는 것입니다. 하루에 평균 3만원을 잡으면 40일 동안 120만원이 듭니다. 작년에는 찾아가는 데마다 돈을 주었는데 많이 줄 때는 만오천원까지 주었습니다. 이것 저것 생각하면 자그만치 5백만원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 돈이 있어요? 없으니까 어쩔 수 없이 못 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알고 선생님이 못 간다고 절대로 섭섭해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대신 선생님은 여러분을 위해서 기도할 것입니다. 밥도 먹지 아니하고 기도할 거예요. 전도를 나가야 할 여러 젊은이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전도 나가기 전에 힘껏 격려해 주려고 합니다. 여러분은 부탁하는 선생님의 심정 앞에 어긋남이 없이 전부 전도에 참가해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 앞에 자랑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 주기를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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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도
아버님, 감사합니다. 당신이 찾아오신 복귀의 행로가 이렇게도 상처가 많은 행로요, 이렇게도 곡절이 많은 행로인 줄을 저희들은 진정 몰랐사옵니다. 수많은 인류가 살다 갔고, 수많은 인류가 살고 있으나 오늘 저희들이 알고 있는 뜻은 아무도 몰랐사옵니다. 저희들이 알고 있는 것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게 해줄 수 있는 날들을 맞이하게 해주신 은사를 생각하면 천만번 죽어도 갚을 도리가 없음을 저희들은 알고 있사옵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하여 이들이 새로운 확신을 가졌습니다. 이제 돌아가야 할 자리에 있사와 맹세적인 제물로 돌아가기를 원하고 있사오니 받아 주시옵소서.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민족의 승리와 영광을 위해 흘린 땀과 눈물과 피를 거두어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께서 피 흘리시며 호소하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들도 땀과 눈물과 피로 호소하게 해주시옵소서. 이로 말미암아 제2, 제3이스라엘이 회복되어 승리적인 아버지의 복귀의 권세가 땅에 세워지게 될 것을 알고 있사오니, 어린 사람에서부터 나이가 많은 사람에 이르기까지 사랑의 손길을 펴시사 아버지의 심정에 접붙여 주시옵소서. 간절히 부탁하옵니다. 언제나 보호하여 주시옵기를 바라올 때 주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