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66: 인류복귀도 나 하나서부터

인류복귀도 나 하나서부터
1961.07.04 (화), 한국 주안(인천)

11-166
인류복귀도 나 하나서부터
[말씀 요지]

하나님께서 인류를 복귀하시는 데는 언제나 한 사람에서부터 시작하십니다. 다시 말하면 한 사람의 대표로부터 시작하십니다. 어느 한 국가가 잘되는 데도 내 한 개체가 문제가 되는 것이요, 인류가 잘되는 데도 내 한 개체가 문제입니다. 내 한 개체가 전체 앞에 실체적인 목적의 대상으로 서게 될 때 새 역사는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루어야 할 하나님의 뜻이 있을진대 이 뜻을 운영해야 할 주인이 있어야 합니다. 신의 목적을 달성한다는 것은 곧 천지만물과 인류와 개체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도 됩니다. 여러분은 크신 주인의 뜻 앞에 불리움을 받았으니, 과거로부터 현재를 지나 미래까지 같은 가치를 노래할 수 있는 대상실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내가 품은 뜻은 내 뜻만 되는 것이 아니고 아버지의 뜻도 됩니다.

뜻은 하나입니다. 개체의 사정과 환경은 다를 수 있으나 결국 전체의 흐름은 하나입니다. 지금까지 개체의 환경과 사정을 초월하여 전체적인 뜻에 대해 불변의 심정을 가지고 시종이 여일한 노정을 간 개체나 민족이나 국가는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민족적인 고개까지 넘어갔으나 국가적으로는 하나님의 뜻을 상속받지 못했습니다. 민족적인 범위를 벗어나야 했으나 그러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기필코 목적을 이룰 수 있는 한 사람을 찾고야 말 것이며, 민족, 국가, 세계를 찾고야 말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떠한 사람을 찾아서 축복하시고 창조의 목적을 이루려 하실 것인가? 어떠한 개인, 가정, 민족, 국가에게 이 사명을 맡길 것인가? 이것은 전세계 인류가 공동 목표 밑에서 전체적인 대가를 치르고 찾아와야 하는 것입니다. 개인적인 대가를 치르고, 가정적인 대가를 치르고, 민족적인 대가를 치르고 찾아와야 합니다. 이제까지 6천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겪었지만 그 고통을 승리의 대가로 치른 사람이 없었습니다.

이제 전인류가 축복을 받기 위해서는 어떠한 값을 치르고 전체적인 승리의 대가를 돌려 받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전세계 인류는 총단합, 총통일하여 이 일에 부딪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개인이 아닌 인류 전체의 행복을 얻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개인이, 가정이, 민족이, 그리고 어떠한 주권 국가가 이것을 얻으려면 어떠한 탕감, 또는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만일 대가를 치르고 찾은 민족이 있다 할진대 그 민족은 선민이 될 것입니다.

이스라엘이란 이름은 하나님이 주신 크나큰 축복입니다. 전부가 단결하여 `이것을 당신께 드리오니 세계적인 가치로 쓰시옵소서’ 할 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란 이름을 허락하십니다. 우리의 최대 소망은 축복을 받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라는 축복은 결코 가만히 앉아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스라엘의 축복권내에 들어가려면 개인적으로나 가정적으로 천 번 만 번 시련에 부닥치더라도 이겨내겠다고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개인적으로 피를 흘리고 가정적으로 피를 흘리고 민족적으로 피를 흘리는 시대를 지나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천민이 되려면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같은 눈물, 같은 피, 같은 땀을 흘릴 줄 알아야 합니다. 제물된 자는 자기를 중심한 `소유관념’과 `주관관념’이 없어야 합니다. 개인복귀노정을 거치고, 가정복귀노정을 거쳐 나가는 복귀도상에 있는 우리는 과거의 우리가 아닙니다.

우리가 빚이나 근심의 짐을 짊어 졌다면 풀어야 합니다. 흔히 큰 짐을 풀 때 처음에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릅니다. 방법을 모르면 기술을 배워서라도 풀어야 합니다. 어떠한 기술을 배워야 하느냐? 기중기를 부르는 기술을 배워야 합니다. 이렇게 푸나 저렇게 푸나 짐을 푸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문제는 빨리 풀 수 있는 방법을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자기의 생명을 다 바쳐서라도 이 짐을 빨리 풀어야 하는 것입니다. 재림의 시기에 있어서 짐을 풀려면 이제까지의 방법과는 다른 방법을 강구해야 합니다.

끝날에 처한 모든 사람들은 최고의 빚장이요, 최고의 유랑자요, 최고의 슬픈 자입니다. 이것들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심정입니다. 부자의 인연을 맺을 수 있는 심정을 갖고서만이 해결할 수 있습니다. 참이란 명사에서 심정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아버지와 심정이 하나될 때 참효자가 될 수 있습니다. 예수와 성신이 말하지 못하였던 것도 이 심정입니다. 이 심정의 고개를 넘어가려면 그 고개를 넘어갈 수 있는 도로를 만들어 놓아야 합니다. 소망의 뜻이 머무는 곳이 곧 심정의 터전입니다.

오늘날 세계는 두 진영으로 갈라져 있습니다. 공산주의의 이념은 결코 만천하의 백성들의 마음이 머무를 수 있는 이념이 못 됩니다. 아무리 잘 날으는 비행기도 비행장이 없으면 착륙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미 그 터전을 닦아 놓으셨습니다. 주인 없이 외로움에 지쳐 있는 인류에게 하나님과 통할 수 있는 심정의 샘, 즉 천정을 개발하게 하는 것이 도의 길을 가는 사람이 해야 할 일입니다.

여러분은 역사적인 선조들의 모든 실수를 책임져야 합니다. 천상천하 어떠한 사탄 앞에도 대가를 치르고 영수증을 가지고 오시는 분이 재림주입니다. 그분은 이제부터 `내 눈물은 역사적인 눈물이요, 내 땀은 역사적인 땀이며, 내 피는 역사적인 피’라고 할 수 있는 실체입니다. 하나님의 역사적인 탄식을 소망과 기쁨으로 돌리기 위해 오시는 분이 재림주 즉, 메시아입니다.

우리들은 승리한 이스라엘이 되어야 합니다. 역사적인 원수 사탄이 스스로 입을 열어 자신이 패자로 서게 되었음을 직고할 때까지 싸워야 합니다. 이스라엘이란 이름을 얻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인류를 사랑하셨다면 어떤 기준에서 사랑하셨을 것인가? 인류를 사랑하기 위해 이때까지 역사해 나오신 하나님이었지만 아직까지 창조의 목적을 이루지 못하셨고, 사랑하는 아들딸 하나도 얻지 못하셨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 원할진대 자기에게 오는 십자가의 짐을 짊어지기를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수천 년 동안 뜻을 위해 살아오신 하나님, 감사합니다’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신세진 빚을 갚아야 할 운명에 처해 있는 우리가 이것을 벗어 버리려면 사탄과 맺고 있는 부자의 인연과 형제의 인연을 끊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역사적인 대표의 사명을 해야 되겠습니다. 만일 예수님 당시 제사장들이 이스라엘 민족에게 `세상 짐을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 너희들도 세상 짐을 지고 가는 그의 어린양이 되라’고 외쳤다면 뜻은 이미 이루어졌을 것입니다.

오늘 이후 모든 것을 청산해야 합니다. 짐을 풀 때에도 지금까지의 방법과 다른 방법으로 해야 합니다. 모든 짐은 심정으로부터, 그리고 아담 가정에서부터 풀어야 합니다. 우리 앞에는 아담과 아브라함과 모세와 예수가 남기고 간 역사적인 일이 남아 있습니다. 말씀은 실체를 통해서, 실체는 심정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천정을 통해서 입체의 세계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말씀을 받으려면 최고의 정성을 들여야 합니다. 몸은 제물이 되어야 하고, 심정은 하나님과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축복을 받을 수 있는 민족으로 한민족이 택함을 받았다면 우리는 최선을 다하여 책임을 해야 되겠습니다. 그래야만 하나님이 허락하신 우주사적인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역사적인 빚과 짐을 풀어야 할 책임과 사명이 있음을 알고 그러한 소임을 다하는 데 게을리하지 말아야 되겠습니다.

개인은 가정의 발판이 되어야 하고, 가정은 민족의 발판이 되어야 하고, 민족은 국가의 발판이 되어야 하고, 국가는 세계의 발판이 되어야 하고, 세계는 천주의 발판이 되어야 합니다. 개인을 부르고, 가정을 부르고, 민족과 세계를 부르고 있는 이때에 우리는 어디에 서 있으며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가? 지금은 민족을 위해 가야 할 때입니다. 나 하나는 천주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으니 나를 아버지 앞에 몽땅 드리겠다고 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보다 더 처량하고 불쌍한 자리에 계시다는 것을 망각하지 마십시오. 빚진 나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심정의 기준을 잃지말고 지도자와 자기의 환경을 맞추어야 합니다. 개인과 가정과 민족과 세계를 걸어 놓고 담판기도를 할 때처럼 심각한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3곱하기 7은 21, 21일의 광야노정기간 동안 이를 악물고 끝까지 나아갑시다. 이런 기준을 갖고 40일, 1년 혹은 3년이라도 고생하십시오. 이것은 하나님을 울릴 수 있고, 사탄을 누를 수 있는 기반을 만들기 위해서 입니다. 이 3년간 고생의 대가로 사탄 세계를 빼앗아 옵시다. 만일 하나님이 `복을 받기 위해 너희는 무엇으로 그 값을 치르겠는가?’ 라고 물으면 `피 끓는 사랑으로 갚겠나이다’ 할 수 있어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