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41: 예수는 사랑의 중심으로 오셨다

예수는 사랑의 중심으로 오셨다
1961.04.17 (월), 한국 흑석동 국립묘지 뒷산

11-141
예수는 사랑의 중심으로 오셨다
[말씀 요지]

오늘은 예수께서 뜻을 완결짓지 못하고 돌아가셨다가 부활하신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인류가 타락하지 않았더라면 부활이라는 명사는 필요없게 됩니다. 원래 하나님과 인간, 영계와 육계는 뗄래야 뗄 수 없는 인연으로 맺어져야 할 것이었으나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그것은 갈라질대로 갈라지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된 것을 탕감복귀하기 위하여 재창조의 섭리를 해 나오셨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하늘과 땅이 부활되기를 소망하시며 개인, 가정, 민족, 세계, 천주가 부활되는 날을 고대해 나오셨습니다. 그러나 그 일을 이룰 개인이 없으니 가정, 민족, 세계의 나갈 길이 모두 막혔습니다. 그래서 인간들은 선조를 잘못 둔 것을 한탄하면서 내려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창조하실 때에 그 마음은 하늘을, 몸은 땅을 터로 하여 지으셨습니다. 따라서 인간 한 사람을 중심삼고 우주가 화동해야 할 것이었는데 인간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모두가 갈라졌습니다. 그러므로 영계와 육계를 통일하기 위해서는 먼저 내 마음과 몸이 일체를 이루어야 합니다. 갈라진 것을 다시 합치고 통일시켜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본성의 기준에서 인간의 양심을 상대로 한 감응작용에 의해 인류를 선의 방향으로 이끌어 오셨습니다. 즉 하나님은 우리의 양심을 기반으로 하여 인간과 인연을 맺어 나오셨습니다. 아담 가정에서도, 노아 가정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양심의 기준을 세워 대해 나오셨습니다. 역사노정에 있어서 개인이 완전히 부활하여 창조의 목적을 이루어야 합니다.

예수를 통하여 땅을 대한 하늘의 전초지(前哨地)가 비로소 만들어졌습니다. 그 전까지는 하나님께서 인간 세상에 발을 붙이실 수가 없었습니다. 노아를 거치고 아브라함과 모세를 거쳐 예수에 이르러 비로소 하늘의 전초지가 세워졌습니다.

이 땅에 있어서 하나님의 발판이 되는 중심존재가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입니다. 그는 사랑의 중심으로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은 예수를 통하여서만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는 땅의 불신으로 실체를 잃어버림으로 말미암아 땅 위에 하나님의 발판을 세워 놓지 못한 채 영계로 가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빚으신 다음 해와를 빚으신 것 같이 예수님이 영계에 가신 다음 성신을 보내셨습니다. 즉 영적인 상대로 성신을 보내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특정한 개체들만을 축복하시지 않습니다. 인간들의 양심을 중심삼고 전진하면서 역사하셨습니다. 양심기준이 일치되면 성신이 오시고, 그렇지 못하면 성신이 오실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성신은 정성들여 기도하는 때에만 오시어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성신은 부활의 은사를 가지고 오십니다.

우리는 기도하고 충성을 다해야 되겠습니다. 타락하기 전 천사장이 드리던 기준 이상의 충성을 드려야 하늘 앞에 나아갈 수 있습니다. 타락한 천사장 대신 충성을 하고 하늘 앞에 가야 됩니다. 예수님 이후 2천년이란 기간이 지났으나 충성드리는 것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신앙생활이 어떤 기준까지 올라가기 위해서는 얼마나 수고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6천년 동안 수고의 노정을 거쳐 오셨습니다.

예수가 이 땅에 재현하여 부활의 성체로서 수고한 것처럼 우리도 최후의 한 날을 맞이하여 부활의 완성체가 되어야 하고 하늘 앞에 충신으로 서야 합니다. 타락한 인간들은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와 딸의 입장이 성신 앞에 종의 입장인 천사장 대신 충성을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우리들은 모두 예수와 성신을 실체로 모셔야 합니다.

우리는 이 땅 위에서 천사장이 인간을 모실 수 있는 법도를 세워야 합니다. 타락으로 인해 이러한 실체적인 기준이 서지 못했던 것입니다. 만민의 부활을 위한 기도보다 먼저 자기 개체의 부활을 위한 기도를 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이 땅 위에 참아버지로 오시어 우리 각자를 실체로 세우고자 할진대 반드시 해와의 실체형인 참어머니를 찾아 세우지 않으면 안 됩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다시 오셔서 심정적인 부모로서의 사명을 완결지을 수 있는 길을 이루어 놓아야 되는데, 이것이 곧 어린양 잔치입니다.

우리는 일생 동안 천리의 법도를 찾아 세워야 합니다. 예수님이 오시기까지 수천년 간의 섭리역사는 아담 해와를 부활시키기 위한 역사였습니다. 이 일을 하기 위하여서는 탕감의 법도에 의하여 역사상 수많은 인간을 희생시키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목적은 완전한 `사람’ 하나와 같은 형태와 기능을 갖춘 피조세계를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기독교는 이를 이루기 위한 뼈요, 다른 모든 종교들은 살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전영계(全靈界)가 기독교를 중심으로 움직이도록 역사해 오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땅 위에 하나의 실체를 세워서 선주권의 행사를 아직 한번도 해보지 못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직접적으로 역사하지 못하시고 간접적으로 역사해 오셨습니다. 인간 조상의 타락으로 인하여 죽었던 만민이 오늘날에 와서는 하나님의 아들의 자리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책임자가 책임을 다하지 못하게 될 때 수많은 인간들은 중간 위치에 남게 됩니다.

예수께서 영적인 기준을 세우고 가셨지만 하나님의 뜻은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이것을 위해서는 때가 차고 환경이 조성돼야 하고 하나님이 같이하셔야 합니다. 종적인 예수의 뜻이 횡적으로 제자가 많다고 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종적인 기간을 거쳐야 합니다. 즉 과거로부터 내려오는 전후의 관계를 연결지어야 합니다.

예수 재림의 목적은 아들의 사명을 지나서 아버지의 사명을 하는데 있습니다. 참부모는 종의 입장에 있는 사람을 양자로 세우고, 다시 그 양자를 직계의 아들딸로 세워야 합니다. 예수님이 오시는 날은 아버지만 아십니다. 하나님에게는 횡적인 기독교가 문제가 아닙니다. 원칙적으로 이스라엘 민족은 절대로 예수님을 죽게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도 죽고 이스라엘 민족도 죽었습니다. 오늘날 전세계의 기독교인은 정성을 다하여 탕감조건을 세워야 합니다. 구약시대의 영인들도 예수와 같이 기도해야 합니다. 구약의 지도자들이 전부 기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성신을 중간에 놓고 역사하십니다. 예수께서는 그 날과 그 수가 차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수억천만인과 함께 끝날의 한 존재를 찾기 위해 부활섭리를 하는 것입니다.

타락한 인간은 영적인 골고다와 육적인 골고다의 길을 가야 합니다. 뭇도인들이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는 질서와 급수에 따라서 합니다. 마음과 몸이 부활하는 데 있어서도 먼저 종의 부활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종으로서의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영인은 자기보다 급수가 위인 사람은 도울 수 없습니다.

승리적인 존재가 오기 전에는 하늘과 땅 사이에 막힌 담이 헐리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창조하신 것은 창조의 실체상인 승리적인 존재로 세우기 위함이었습니다. 재림주는 영계의 말단에서부터 부활의 운동, 해방운동을 벌여야 합니다. 여러 갈래로 갈라진 영계의 영적인 골고다의 길을 개척해야 합니다. 소생급과 장성급을 거쳐 완성급으로 넘어가야 합니다.

전인류의 소망이 이루어지려면 한 중심이 오셔야 합니다. 재림주는 영적인 골고다의 길을 넘어야 하며, 하늘과 땅 사이에 막힌 담을 헐어야 합니다. 도의 길을 열어 놓아야 합니다. 사선을 넘어서야 합니다. 최하부터 뚫고 넘어서서 승리의 발판을 세워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 실체의 기대를 통과하여야 합니다.

장성급에서 완성급으로 가기 위해서는 조건을 세워야 합니다. 그것은 두 세계의 골고다를 넘는 것입니다. 통일의 이념이 나오기까지 어떠한 고난이 있었느냐? 천상의 골고다가 있었습니다. 이 길을 가기 위해서는 최고의 십자가의 길을 가야 합니다. 하늘의 뜻을 중심삼고 가야 합니다. 부모와 자녀가 같이 승리의 한 날을 맞이해야 합니다.

지금은 주인이 없는 때입니다. 그러나 이 기간은 길지 않습니다. 이 기간 동안 우리는 이 민족을 일깨워야 되겠습니다. 우리 식구들은 다 종이 되어야 됩니다. 농촌에 가서 3년 동안 고생을 해야겠습니다. 일시에 농촌의 동(洞), 리(里)까지 동원하여 움직일 수 있을 때 승리의 기준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생명을 가지고 가야 합니다. 부활의 날을 향하여 가야 합니다. 약속의 한 날을 소망하며 가야 합니다. 우리의 뜻이 승리하면 그것은 곧 하나님의 승리요, 전인류의 승리입니다.

4월 17일, 이 날은 예수께서 부활하신 날입니다. 이 얼마나 좋은 날입니까? 예수님의 축복을 받으면 영계에서 승리한 예수님의 터 위에 서게 됩니다. 여러분은 천하의 대원수와 싸워 이길 수 있는 용자의 모습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이 길을 무난히 넘으면 천국가는 것은 문제 없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영적인 부활이므로 실체의 부활을 이루어 그의 목적을 달성한 뒤에 축하해야 합니다. 완전한 부활을 해야 예수님을 대하여 형제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눈물과 탄식으로 이 날을 맞이하셨습니다. 완성부활은 무엇이냐? 창조목적을 달성한 실체의 부활입니다.

타락의 혈통을 가진 인간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없습니다. 예수님에게 공인을 받고 나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불러야 합니다. 하나님은 함부로 부를 수 있는 싸구려 아버지가 아닙니다. 이 땅에는 예수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던 것과 같이 부를 수 있는 자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영계를 들춰보아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자가 없습니다. 이 이유는 인간이 믿을 수 없고 변하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도 진짜 아버지, 가짜 아버지, 의붓 아버지 등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인간은 땅 위에서 복귀의 역사, 부활의 역사를 거쳐야 합니다. 예수님은 죽음을 무릅쓰면서 원수와 싸우다 가셨는데, 그 길을 좇아가는 자가 없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과 예수님을 고통의 자리에서 해방시켜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무턱대고 복을 주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십니다. 온유겸손해야 합니다. 지게꾼 하던 사람이 당장 장관이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사탄의 뿌리를 잘라버려야 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축하하기 위해서는 십자가를 밟고 넘어가야 합니다. 그래서 부활한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십자가의 주님이 아니라 부활의 주님을 모셔야 합니다. 영적인 골고다와 육적인 골고다를 넘어가야 합니다. 어차피 모든 인간은 골고다의 고개를 넘어가야 합니다. 그리하여 부활하신 예수님을 모셔야 합니다.

1961년은 천적으로 중대한 의의가 있는 해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하늘땅을 대신하여 가야 합니다. 여러분은 마음과 몸이 부활한 실체로서 하늘땅 앞에 이 날을 축하할 수 있는 존재로 서야 합니다. 그래야 완전한 축하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