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14: 충성의 도리를 다하자

충성의 도리를 다하자
1961.02.19 (일), 한국 전본부교회

11-114
충성의 도리를 다하자
[말씀 요지]

많은 사람들이 선을 향하여 달려 나왔다. 그러나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남아 있다.

어디로 가야 할 것인가? 언제나 기뻐할 수 있는 곳, 혹은 언제나 기뻐할 수 있는 분을 찾아가야 한다. 이분이 절대자 하나님인 것이다. 하나님은 동기의 세계와 결과의 세계에 계신 것이다. 곧 원인과 결과로 계시는 것이다. 고로 알파요 오메가라고 했다.

인간이 원인과 결과의 과정에 있다는 것을 알면,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를 알게 된다. 역사는 원인의 세계에서 결과의 세계로 가고 있다. 고로 인간의 양심은 이 과정의 길을 가고 있는데, 역사의 흐름이 빠르기에 이를 따르려는 양심은 두배로 바쁘다.

동기는 하나님이 되고 인간을 결과로 세워야 한다. 타락하지 않았으면 인간이 역사의 원인이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원인을 못 가진 것이 타락이다.

타락으로 말미암아 목적의 세계는 멀고, 동기적인 권내에 있는 양심이 원인에 가까우므로 양심을 세우려 하는데, 이 사명을 하는 것이 종교다. 물론 불교도 마찬가지로서 이 범주에 속한다.

심정의 안정점을 알게 될 때 평화가 오는 것이다. 사랑의 세계는 관(觀)이 없다. 관을 초월한다. 전체적인 가치가 부분적인 가치에서 상대되어 그것이 전체적인 결과를 나타내는 것이 사랑이기 때문에 원인과 목적의 세계에 인연을 갖지 못한 인간들은 무가치하다. 고로 우리는 원인과 목적을 가르쳐 주는 곳으로 가자.

역사에 종말이 있다고 한 것과 나를 믿으라고 한 것을 보면, 하나님이 계심을 알 수가 있다. 모든 종교 중에서 역사적인 인연을 가지고 종말기를 지향하는 종교는 오직 기독교 뿐이다.

시대를 밟고 넘어야 할 기독교가 그런 입장에 서지 못할 때는 망한다. 고로 시대에 대한 공포심을 갖는 종교나 교회는 망한다. 로마 제국의 박해 가운데도 늠름하게 나아갔던 기독교였기 때문에 망하지 않았다.

우리는 세계적인 용단을 내려야 한다. 좌우익 세계의 중간에 있는 종교가 이것을 헤쳐야 한다. 사랑은 하나님도, 사람도, 동물도, 민주주의와 공산주의도, 다 좋아하는 고로 사랑을 세워 심정적인 것을 세우려 하는 것이다.

이제 인류는 하나님의 실존하심을 해명하고 자기를 알아야 한다. 이제까지 수많은 사람을 세웠는데 뜻이 왜 이루어지지 않았느냐고 물으면 하나님도 대답하지 않으실 것이다. 왜냐하면 또 물을 여지가 남아 있으니까. 사람이 없어 뜻을 이루지 못하셨느냐고 물으면 하나님은 눈물을 흘리시며 머리를 끄덕이실 것이다. 충성을 다하는 사람이 없는가고 물으면 하나님은 통곡하실 것이다.

그렇다면 그 사람은 어떠한 사람인가?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라고 하셨다. 수천년 동안 왔다 갔던 어떤 성도보다, 아브라함, 모세, 예수보다도 더 충성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사람이 나오기 전에는 뜻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죽음을 걸고 충성하는 것은 다 마찬가지다. 충성한 사람이 많지만 뜻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충성의 내용이 하나님이 소원하는 것과 다르기 때문이다. 오늘 이상의 소망을 두지 않고 충성한 사람은 없다. 즉 자기를 위한 충성을 했다.

하나님도 충성의 기준을 세웠기에 충성하라고 하신 것이다. 이 충성의 왕, 즉 하나님의 자녀가 되려면 하나님과 같은 충성의 기준을 세워야 한다. 하나님은 이 땅의 죄악 인간들을 위하여 충성하셨다. 이 충성은 끝이 나지 않는 충성, 충성할수록 마이너스 되는 충성을 하셨다. 고로 우리도 이러한 충성을 해야 한다. 즉 절망의 충성을 해야 되는 것이다.

천국도 영광도 싫고, 오직 당신의 충성을 아끼고 고통을 맡을 수 있는 나였어야 한다. 바로 궁중의 영광을 버리고 나선 모세는 민족과 하나님을 위한 충성을 한 것이다.

하나님은 고통은 자신의 것으로, 영광은 성도의 것으로 하시려는 것이다. 이 말씀은 지방에서부터 해 오는 것이다. 가자! 이 민족 앞으로 가자! 쓰러진 동포를 보고 `오, 내 형제여! 부모여!’ 할 수 있는 부모의 심정을 갖고 가자.

우리는 복중에서의 아벨을 모시고 승리의 조건을 세우려 하는 것이다. 우리는 복중의 가인 아벨의 자녀와 같은 상태인 것이니, 복귀된 가인 아벨로 태어나 복귀의 기대를 세워야 하는 것이다. 이 책임을 못하면 제2의 작전을 해야 한다. 가야 할 시기에 가자.

내일은 6수를 맞추는 날이다. 모든 한스러운 것을 털어놓고 갈라야 할 때다. 예수님 앞에도 5퍼센트의 책임이 남아 있었던 것같이 우리에게도 5퍼센트의 책임이 있으니, 이 5퍼센트를 위해 보내야 한다. 의심 없이 가야 한다. 주의도 전통도 이념도 이름도 없다. 오직 참부모주의밖에 없다.

천사가 심부름을 잘못했으니 아들을 세워 심부름을 시킴으로써 천사의 위치까지 복귀하려 하신다. 미련 없이 가야 한다. 전부를 불살라 버려라. 종말에는 아이 밴 여인들과 젖먹이는 여인에게 화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