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5 to 9-89: 부활절 기념예배 말씀

부활절 기념예배 말씀
1960.04.17 (일), 한국 삼청공원

9-85
부활절 기념예배 말씀
[말씀 요지]

*오늘은 2천년 전 예수님이 무덤에서 부활하신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하나님의 복귀역사는 부활을 이루는 것이 목적인데, 그 부활의 목적권내에는 전피조세계가 다 해당됩니다. 곧 위로는 하늘, 아래로는 땅과 인류 모두가 이 권내(圈內)에 들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9-85
누구나 가야 할 부활의 길
인간이 타락하지 않았다면 부활이라는 명사는 없었을 것입니다. 참다운 인간이라면 하늘 땅을 대하여 면목이 없는 자신임을 느껴야 합니다.

부활의 길은 타락한 인류라면 누구나 가야 할 길입니다. 부활의 해결점은 하늘 보좌에 있는 것도 아니요, 영계에 있는 것도 아니요, 어떠한 도주(道主)나 어떠한 경서(經書)에 있는 것도 아닙니다. 또한 오늘날의 기독교 자체에 있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복귀섭리입니다. 우리 인류는 타락으로 인하여 창조목적을 완성치 못했으니 부활의 과정을 통하여 재창조되어야 합니다.

오늘 여기에 모인 우리들은 부활의 날을 고대해야 합니다. 땅을 통하여 하늘(靈界)을 부활시켜야 합니다. 우리는 부활의 근거지가 천상(天上)인 줄 알지만 아닙니다. 이 땅입니다. 이 땅이 중심입니다. 부활의 근거지도 해결점도 이 땅에 있습니다. 이 땅에서 부활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천상의 부활, 인간의 부활, 만물의 부활, 지옥 인간의 부활도 한낱 명사에 그치고 맙니다. 그러므로 땅에서 먼저 부활한 사람이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영계(靈界)에는 지옥과 중간영계와 낙원과 천국이 있는데, 지금까지 하늘앞에 충성했던 사람들은 다 낙원에 가 있습니다. 예수님도 낙원에 가 계십니다. 부활의 목적을 달성하는 데 있어서 간접 목적지는 영계요, 직접 목적지는 땅입니다. 영계는 부활시켜야 할 곳이요 땅은 부활해야 할 곳입니다. 그러므로 먼저 땅에서 ‘나는 부활했다. 부활의 목적을 종결지었다’고 할 수 있어야만 천상천국에 갈 수 있습니다. 땅에 그런 이가 나타난다면 지상의 모든 것은 움직여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수많은 선지선열들도 첫째 부활에 참예하는 날을 소망으로 삼고 고대하여 왔는데, 그날이 곧 부활의 목적이 이루어지는 날입니다.

천상은 지상의 것을 수습하는 생활을 하는 곳입니다. 이후에는 무엇을 중심삼고 수습할 것이뇨? 예수의 인격을 중심삼고 세계를 수습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예수의 말씀으로 수습하는 시대도 지나가고, 희생하라 봉사하라 하는 시대도 지나갑니다.

타락세계에서 하는 행동은 결과적으로 고통과 슬픔을 남기게 되는데, 우리는 이것을 넘어 예수와 더불어 자유롭게 사랑의 심정을 노래하는 세계가 땅에 이루어지도록 해야 합니다. 지상에서 부활의 성업을 승리적으로 종결짓기 위해서는 먼저 예수의 심정을 계승하여 실천함으로써 하나님을 해방시켜 드려야 합니다. 행복과 희망과 자유와 이상의 원천이신 하나님이 기뻐하실 수 있는 심정을 통과해야 됩니다.

기독교인들은 이제까지 십자가의 주님을 바라보면서 신앙해 나왔습니다. 지긋지긋할 정도로 생각해 나왔습니다. 예수를 십자가에 달리게 함으로써 하나님께 고통과 통분의 심정을 가중시켜 드렸습니다. 십자가에 고난당하던 때의 예수보다 오히려 요셉 가정에서 나무를 깎던 시절의 예수가 더 순수하고 희망적이었습니다. 그런고로 십자가에는 비극의 곡절이 서려 있습니다.

우리는 십자가에 고난당하는 주가 주님이 오셨던 전체 목적인 줄 알지만, 고난없이 하늘 앞에 효성을 다하는 예수가 되었더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예수의 순수한 복음전파는 그 출발이 좋았습니다. 그런 예수를 받아들였더라면 성경에 예수님이 책망하신 내용이 없었을 것입니다. ‘스승이여, 나를 보고 그런 책망 마옵소서’ 라고 하는 개인이나 집단의 움직임이 있었다면, 오늘날 이렇지는 않을 거예요.

우리는 가시관을 쓰신 주, 창에 찔려 피를 흘리신 주가 주님의 전부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고통을 받지 않은 예수를 백퍼센트 믿었다면 그것은 십자가의 고통을 받은 예수를 믿는 것보다 얼마나 더 귀했겠습니까? 하늘은 그것을 요구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에게는 가는 곳마다 사탄의 화살이 있었고, 절망으로 인해 찢긴 자리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예수가 부활하기까지 하나님이 겪으신 고통은 예수의 고통보다 훨씬 더 컸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순수한 부활의 심정을 요구하신다는 것입니다. 아버지께서는 어떤 찔림도 받지 않은 모습을 만나기를 소원하신다는 거예요. 그러나 사탄에게서 태어난 우리에게는 사탄의 화살에 찔린 자국이 있으니, 그것을 보셔야 하는 아버지는 원한과 고통에 사무쳐 계시는 것입니다.

9-87
심정의 문을 개방해야 할 우리
그러므로 우리는 죽지 않은 예수의 모습을 그리워하고 노래하며 부활절을 맞이해야 되겠습니다. 예수는 이런 것을 보고 더 좋아하십니다. 또 역사도 바라고 있습니다. 하늘은 ‘참아라. 참고 희생하라. 몸은 비록 찢기고 죽게 되더라도 심정세계에만은 상처를 받지 말고 흠을 남기 말라’고 하십니다.

역설적이지만 하늘은 이렇듯 마음과 몸이 사탄의 침범을 받지 않은 존재를 바라고 나오셨기 때문에 젊을 때나 늙을 때나 어느 한 때라도 그 마음에 상처를 입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항상 곱고, 귀하고, 밝고, 깨끗하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선지선열들은 몸 마음으로는 무한히 슬퍼했습니다. 그러나 아직 심정으로 슬퍼한 사람이 없습니다. 심정세계의 슬픔은 아직 미개척 분야입니다. 우리는 이 분야를 개척해야 할 선봉자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몸의 호소, 마음의 재촉, 심정의 재촉, 이 세 관문을 넘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역사를 돌이킬 수 있는 역사적인 선봉자로서 하늘의 부름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말뿐이 아닙니다. 심정의 문을 개방해야만 신랑이 나타나고, 하나님도 자유로이 행차하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첫째도 심정, 둘째도 심정입니다.

우리는 어차피 심정의 문을 통과해야 됩니다. 심정의 문을 통과했다는 조건을 세우지 않고는 부활할 수 없습니다. 예수도 심정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였습니다. 그러기에 첫번째도 심정이요 천번째도 만번째도 심정입니다. 이 심정의 문을 열어야 천국문이 열립니다. 천국문이 열리는 날, 그 몸과 마음, 심정에 상처를 받지 않은 사람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몸과 마음과 심정에 상처를 받지 않고 예수가 해야 할 일을 대신하는 사람이 예수의 형제입니다. 예수를 대하여 형이라 오빠라 할 수 있습니다. 이는 특권 중의 특권입니다.

과거의 역사는 외적인 땅과 재물을 빼앗는 싸움의 역사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내적인 사람과 주의를 빼앗는 시대입니다. 이 내적인 싸움이 아직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천국문이 꽉 닫혀 있는 것입니다. 완전한 것이 나와야 이 싸움이 해결될 것이며 천국문도 열릴 것입니다. 그것이 곧 심정의 개방입니다. 그러므로 하늘 땅 전체가 심정분야에 있어서 자유개방을 해야 합니다. 하늘 땅은 이 시간도 심정의 인연을 맺기 위해 탄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피조만상을 심정의 인연으로 지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풀 한 포기에도 심정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그 인연이 끊어졌습니다. 만일 천상의 심정의 인연과 지상의 심정의 인연을 연결시킬 수 있는 자가 있다면, 그는 하늘땅의 무엇이든지 해결할 수 있습니다.

역사는 재창조역사입니다. 재창조역사는 사람 하나를 찾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지금까지는 사람의 몸과 같은 땅을 빼앗는 물질 중심한 전쟁을 해왔고, 공간과 같은 마음을 빼앗는 주의(主義:ideology)를 중심한 전쟁을 해왔습니다. 앞으로는 영계(靈界)에 해당하는 심정을 빼앗는 심정 중심한 전쟁이 벌어질 것입니다. 우리는 심정을 개방시켜 하늘을 찾아야 할 역사적 과중에 놓여 있습니다.

여기에 식구라는 명목하(名目下)에 모인 여러분들은 부활을 완성할 목적으로 모였는데, 여러분은 몸 빼앗기 싸움에서 해방받았습니까? 사상 빼앗기 싸움에서 해방받았습니까? 못 받았다면 여러분은 부활이 안 된 것입니다. 여러분이 부활되려면 부활의 내용을 구비해야 합니다. 몸적인 부활을 거쳐 심적인 부활을 일으키면 타락 이전, 즉 태초의 가치적인 미(美)를 갖추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상에서 이루어지면 천상도, 지상도 만물도 다 해결됩니다.

하늘의 중심을 대해서 전후 사방으로 당기는 힘이 폭발되는 것 같은 느낌이 없다면, 아직 심정적 부활이 안 된 것입니다. 어떤 고통 가운데 있더라도 그 고통을 능가할 수 있는 더 강한 심정의 충격이 없다면, 첫째부활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 마음과 몸이 하늘과 땅, 시간과 공간을 한꺼번에 느껴 새로운 무엇이 폭발되고, 지옥 밑창의 고통도 넘을 수 있는 강한 심정의 작용이 있어야 첫째 부활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9-89
복귀노정의 주된 목적 – 몸 마음 심정의 부활
오늘날 당면하고 있는 복귀노정의 주된 목적은 재림주님을 상봉하는 것입니다. 재림주님의 사명은 타락으로 말미암아 잃어버린 심정을 복귀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심정을 점령해 오시는 그 분을 대해서 일대 부활의 역사를 일으키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하나님의 심정을 땅 위에 그대로 연결시키기 위해서 오시는 분이 바로 재림주이십니다. 그 분은 땅 위에 사는 사람을 찾아오십니다. 여기에 모인 우리는 수많은 인류 가운데서 뽑아낸 무리입니다.

영계에는 수많은 영인들이 있습니다. 존재하는 어떤 것도 하나님의 심정의 인연을 거치지 않고 지어진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는 이 땅만이 아니라 천상의 수억만의 영인들까지 구원하려고 하십니다. 우리를 중심으로 하여 세계를 움직이려 하십니다. 그러니 우리는 복귀하시려는 하나님의 심정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정성을 기울여 지으신 아담 해와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그들의 심정은 죽었습니다. 이 심정을 부활시키기 위해 지금까지 6천년이 흘렀습니다. 하늘과 땅을 맡기려 했던 아들딸이 죽었으니 그들을 다시 살려야 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죽은 자식이 다시 살아나기를 고대하고 계십니다. 심정기준을 갖춘 완전한 아담 해와를 찾아 세워 전세계를 한꺼번에 복귀하시겠다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제 전세계는 통일된 하나의 이념을 세워야 합니다. 모든 재료는 준비되어 있으니 우리가 수고만 하면 됩니다. 우리의 몸뚱이만 움직이면 됩니다. 자유로운 환경에서 창조 당시의 천사와 같이 시키는 대로 심부름만 하면 됩니다. 자기의 가진 것을 다 바쳐 드리면 됩니다. 그리하여 첫째는 몸이 부활되어야 하고, 둘째는 마음이 부활되어야 하고, 세째는 심정이 부활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부활되기 위해서는 그 몸이 찢기고 찢겨도 쓰러지지 않고 승리의 기준을 세워 하나님과 심정의 인연을 맺어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에 처하여 있는 동안 하늘이 원치 않는 곳으로 가게 되는 때도 많습니다. 그런 길을 거치더라도 심정의 관문까지는 나아가야 합니다. 풀 한 포기를 보고도, 날아다니는 새 한 마리를 보고도 심정이 폭발되어야 부활완성단계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길을 걷거나 밥을 먹거나 그 무엇을 하든지간에 그것보다 앞서는 심정이 있어야 합니다. 하늘은 그것을 바라는데 우리가 그렇지 못하니 슬퍼하시는 것입니다. 심정에 느껴지는 것이 있거든 그것을 꽉 붙들고 바라보십시오. 놔라 해도 놓을 수 없다는 마음이 강하면 천국으로 향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사람이면 문제가 없습니다.

심정이 선생님보다 강하면 어디를 가도 괜찮습니다. 여러분은 눈만 뜨면 복귀섭리를 생각해야 하고, 하늘의 목적을 현실에서 찾아 세우는 가치적인 사람이 되어 부활의 날을 이루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선생님도 눈만 뜨면 그 생각입니다.

오늘 이 부활절에 우리의 심정이 문제입니다. 하늘이 바라시는 대로 현실에서 가치적인 맛을 내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부활을 완결하였다는 사람이 하늘에도 땅에도 없었는데, 이 불쌍한 민족이 사는 한반도에서부터 부활이 이루어진다는 것은 머리 숙여 감사해야 할 일입니다. 이 기준을 이룬 사람이 있다면, 그는 억천만금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사람입니다. 그는 모든 것을 잃어버린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갖고 있는 자입니다. 심정의 주도권을 쥐고 오시는 아버지 앞에 기쁨과 행복과 즐거움을 돌려드리는 아들이고 딸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그의 심정세계에 접붙여져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요, 주님은 우리의 신랑입니다. 하늘은 우리에게 그리움과 하나님주의와 충성을 알게 해 주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부자의 심정, 부부의 심정, 군신의 심정을 갖고 주의를 통일시켜 나가야 되겠습니다. 그 아버지의 이름 밑에서는 서로 용서 못할 것이 없고 곡절이 맺힐 수 없습니다. 신랑의 이름으로는 양보 못 할 것이 없습니다. 한 임금 밑에 충성하는데 하나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것이 심정부활의 총결론입니다.

40평생 이러한 말 한 번 하기를 소원했는데, 오늘 이렇게 하게 됐으니 이것을 듣는 여러분은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하고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