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7 to 9-74: 심정의 해원을 완성하려는 복귀역사

심정의 해원을 완성하려는 복귀역사
1960.04.10 (일), 한국 전본부교회

9-37
심정의 해원을 완성하려는 복귀역사
창세기 38:26-30 요한계시록 21:1-8, 22:13-17

[기 도(Ⅰ)]

저희들은 뜻을 이루기 위하여 수고하신 아버지 앞에 면목이 없음을 이 시간 다시 한 번 아뢰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아버지께서 경영하시는 섭리는 영광의 섭리가 되고, 선의 동산에서 즐거워하는 아들딸을 바라보고 환희하며 즐기는 생활을 하셨어야 할 것이었는데, 생각지도 않았던 타락으로 말미암아 아버지의 섭리는 기쁨의 섭리가 되지 못하고 슬픔과 고통과 탄식의 섭리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섭리를 엮어 나오시지 않으면 안 되었던 아버지! 그러한 섭리의 동기가 되고 원인이 되었던 저희 부족한 모습들은, 이 시간 아버지 앞에 역사적인 죄상을 회개하지 않을 수 없사오며, 시대적인 죄상을 회개하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또한 영원한 평화의 세계를 그리며 섭리하시는 아버지께서 그토록 바라시는 미래의 그 세계를 위하여 머리 숙여 회개한 기준 위에서 복을 빌지 않으면 안 될 섭리의 뜻이 남아 있는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사옵니다.

아버님과 우리, 우리와 만물, 아버지와 만물과의 관계에서 볼 때 어느 것 하나 아버지의 사랑의 심정을 벗어나서 지음받은 것이 없다는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사옵니다. 아버지와 영원한 부자의 인연으로 심정을 통할 수 있는 그 관계가 타락한 그날부터 깨져 버리고 하늘은 하늘대로, 인간은 인간대로, 만물은 만물대로 갈 목적지를 잃어버린 채 지금까지 탄식권내에 머물러 있다는 것도 저희들이 알고 있사옵니다.

사랑하는 아버님! 당신께서는 타락의 한과 타락의 탈을 벗지 못하고 불쌍한 운명의 길에서 허덕이는 저희의 사정을 잘 아시고 오늘의 복을 허락하시기 위해 수천년의 역사를 준비해 나오셨습니다. 그러나 저희의 모습을 돌아볼 때, 당신 앞에 허락받아야 할 것이 있는 동시에 축복의 기준을 세워야 할 책임이 큰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제 하늘과 인간 사이에 갈리어졌던 모든 심정적인 인연을 다시 찾아야 할 때가 되었사옵고, 인간 끼리 끼리 맺혀져 하늘을 노래할 수 있는 심정의 인연이 깨어진 것을 다시 맺지 않으면 안 될 때가 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뿐만 아니라 영원한 인연권내에서 화동의 조건물이요 승리의 조건물로서, 이념적인 생활의 재료로서 만물을 취하여 화동의 만상을 이루어야 했는데, 그 만물을 잃어버린 것을 탄식하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긍휼의 아버님, 심정의 인연을 찾아 헤매는 무리는 많사오나 아버지의 심정이 어떠하다는 것을 아는 무리는 적사옵니다. 아버지의 심정을 알지 못하고 흑암세계에서 허덕이며 복귀의 길을 가고 있는 이 인류를 다시 품어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님, 이날은 거룩한 날이옵니다. 한스러운 운명의 길을 피하지 않고 아버지께서 남기신 발자취를 따라 나가려는 각오와 결심을 갖고 이 자리에 모인 당신의 아들딸을 이 시간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승리의 한 때를 약속하신 아버지의 뜻을 바라보고 저희가 가진 모든 것을 다 아버지 앞에 제물로 바치기를 맹세한 몸들이오니, 그 뜻의 목표를 향하여 전진의 일보를 내디디어 승리의 개가를 부르고, 아버지의 영광을 높일 때까지 굴할 줄 모르고 패배할 줄 모르는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 거룩한 날, 만민 위에 축하여 주시옵고, 하늘이 찾아나오신 그 인연을 오늘 곳곳의 수많은 군중, 수많은 민족, 수많은 무리에게 연결시켜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끊어진 인연을 다시 잇기 위하여 복귀의 한을 풀고 싶으신 것이 삼위신의 심정인 것을 아오니, 그 심정의 토대 위에 복귀의 완결을 지으시옵소서. 그리하여 저희들이 일신(一身)으로부터 저희의 가족, 민족, 국가, 세계, 천지의 만상에까지 심정적인 인연이 맺어지기를 저희들은 고대하여, 불충 부족한 모습을 개의치 않고 아버지 앞에 머리 숙였사옵니다. 그러기에 아버지 앞에 눈물의 기도를 드리지 않을 수 없는 저희들이오니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지, 이 날을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인류는 심정을 잃어버림으로써 가야 할 목적지를 알지 못하고 있사옵니다. 그 인류 가운데 불쌍한 자리에 처하여 있는 삼천만 민중이 있사옵니다. 그러나 그 민중 가운데 당신의 선하심을 찬송하는 수많은 교단이 있사오며, 애절한 심정을 기울여 숨은 제단을 쌓고 땅을 치며 통곡하는 당신의 아들딸이 있사오니, 버리지 마시옵소서.

아버님, 아버지의 역사는 죄있는 인간을 버리시려는 것이 아니라 다시 찾아서 본연의 인간으로서 회복하시려는 복귀역사임을 알았사옵고, 잃어버린 창조이념을 다시 찾아 세워 재창조하시기 위하여 지금까지 사망세계를 붙들고 나오시는 아버지이심을 알았사옵니다. 이와 같을진대 오늘 아버지의 이념과 아버지의 심정을 만민에게 연결시키기 위하여 간곡히 호소하는 아들딸들이 있사오면, 같은 은사를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더우기나 외로운 자리에서 모진 핍박의 역풍(逆風)을 받으면서도 한줄기 생명의 빛, 체휼한 한줄기 심정의 인연을 노래하며 이 시간도 각지(各地)에 널리어 무릎을 꿇고 호소하는 무리들이 있는 것을 당신이 아시오니, 같이 축복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오늘 저희들이 모이게 된 동기를 아버지 아시옵고, 저희들이 성심을 다 기울여 아버지의 심정의 세계에 좀더 가까이 나아가고자 하는 것을 당신은 아시옵니다. 정열에 사무친 저희의 마음이 기필코 아버지를 모시고야 말겠다는 신념과 더불어 정성을 기울이는 이 시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고, 아버지를 대하고 싶은 간절한 저희의 마음이 아버지와 인연을 맺어 아버지의 아들딸로 축복을 받고야 말겠다는 신념을 가지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 날 만민 위에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의 존전이 그리워 외로운 모습들이 모여와서 무릎을 꿇었사오니, 버리지 마시옵고 품어 주시옵소서. 사탄이 일체 틈타지 않는 시간 되게 하여 주시옵고, 하늘의 보좌와 더불어 천천만 성도와 천군천사들이, 흘러 들어오는 심정의 인연을 노래하는 이 모임 위에 친히 같이하시고 움직이시어, 이 청중을 아버지의 장중에 넣으시고 뜻대로 주관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지, 모든 것을 승리의 기준에서 인연맺어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하올 때에 주의 이름으로 기도하였사옵나이다. 아멘.

9-40
기 도(Ⅱ)
아버지! 이 자리에 섰사옵고, 모였사오니 맡아 주시옵소서. 불쌍한 이 삼천만 민족을 하늘은 이 민족이 모르는 가운데 지켜 오시고 사랑해 오셨다는 것을 저희들이 알고 있사옵니다. 하늘은 황폐한 삼천리 반도를 품으시고 새로운 역사의 아침을 맞이할 수 있는 생명의 한 모습이 나타나기를 바라면서 나오셨다는 것을 저희들은 알고있사옵니다.

외로운 입장에 처해 있는 이 민족을 긍휼히 보시옵소서. 주변환경으로부터 시달림을 당하며 처참한 모습이 된 이 삼천리 반도를 긍휼히 보시옵소서. 당신이 사랑하던 민족이요, 긍휼히 품었던 이 반도인 것을 저희들이 알고 있사옵니다. 아버지, 이 삼천만 민중을 다시 사랑하여 주시옵고, 이 삼천리 동산을 다시 사랑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 아버지의 존전에 나와 머리 숙인 무리는 소수이오나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아버지의 심정을 그리워하지 않을 자가 어디있겠사오며, 선한 목적의 동산을 마음으로 그리지 않을 자가 어디 있사오리까? 그러나 수많은 사람들은 오늘도 갈 길을 몰라서 허덕이고 있사옵니다. 자신의 가치를 잃어버린 채 갈 길을 몰라 허덕이고 있는 불쌍한 무리들을, 아버지, 오늘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당신은 어느 누가 잘나서 부르시는 것이 아니었사옵니다. 심정을 품고 기르신 아버님을 알고 그 심정이 그리워서 눈물짓는 아들딸이 있으면 아버님께서는 당신의 사정과 처신과 위신과 체면을 잊어버린 채 바쁜 걸음을 멈추시고 그들의 손을 붙들고 격려해 나오신 것이, 지금까지 아버지께서 거쳐오신 복귀역사의 일로(一路)인 것을 알고 있사옵나이다.

긍휼이 많으신 아버지, 불쌍한 인류의 앞길을 지켜 주시옵고, 생명의 고갈을 당하고 있는 불쌍한 이 민족을 지켜 주시옵소서. 더우기나 하늘을 부르면서 아버지의 심정의 동산을 그리워하는 수많은 성도들이 있사오니, 그들을 지켜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그 가운데는 남이 모르는 심혈을 다 기울여 아버지의 제단 앞에 눈물을 뿌리며, 먹을 것을 먹지 못하고, 입을 것을 입지 못하고, 자기의 위신과 체면을 망각한 채, 그 옛날에 당신의 아들딸들이 간 전통의 노정을 밟기 위하여 모든 것을 버리고 허덕이는 무리들도 있는 것을 아오니 그들 위에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생명과 생명을 연결하여 아버지를 모실 수 있는 기쁨의 한날을 그리워하기를 6천년! 타락한 인간도 그날을 그리워하거든 하물며 본연의 심정을 품고 나오시는 아버님이야 어떠하시겠는가를 저희들이 알게 하여주시옵소서.

저희는 그 어떠한 것도 소유하기를 원치 않습니다. 심판의 과정을 거쳐나가야 할 땅 위의 어떠한 권세도 요구치 않습니다. 남겨진 당신의 피어린 발자국을 지키고 싶사옵고, 쓰러졌던 골짜기에 당신이 기뻐하실 수 있는 하나의 초석이라도 남겨 놓고 싶은 것이 저희의 마음이오니, 남기신 그뜻 앞에 몸둘 바 몰라 머리 숙이고 눈물과 더불어 걸어갈 줄 아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지! 오늘 이와 같은 자리로 이끌어 주신 아버지 앞에 감사를 드립니다. 아니 갈래야 아니 갈 수 없는 이 길에 당신의 인연이 있는 것을 알게 된 그날부터 오라 하시는 당신의 간절한 음성이 있음을 알았사옵니다. 사무친 애달픈 심정을 통하여 나오는 당신의 피맺힌 울부짖음을 들은 그날부터 걸어나온 저희들의 걸음을 지켜 주신 것을 감사드리옵니다. 걸어나오는 과정 가운데 험한 길이 있을 때에는 당신만이 저희들의 위안이 되어 주셨사옵고, 당신이 남기신 전통의 일면이라도 더럽힐까봐 염려하며 나온 저희들의 발걸음을 지켜 주신 은사를 더욱 감사드리옵니다.

외로운 길의 최선두에 서서 개척하셔야 하는 당신의 사정을 저희들은 알았사옵니다. 슬픔의 자리에서 슬픔을 머금으면서도 외로운 자들을 위로해야 하는 당신의 심정을 알았사옵니다. 고통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사탄의 수중에서 허덕이는 한스러운 무리들이 당신에게 십자가를 가하는 일이 있다 할지라도, 이들을 버리시지 못하는 당신의 애달픈 심정을 저희들은 알았사옵니다.

이제 당신의 음성을 들은 저희들, 당신의 심정을 체휼한 저희들, 무엇을 주저하오리까? 무엇을 두려워하오리까? 이 몸이 제물되어 당신의 존전을 영광되게 하는 것이 저희의 소원이옵고, 그래야만 저희의 모든 한을 풀 수 있다는 것을 당신은 아시오니 긍휼히 보아 주시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나이다.

이날 여기에 모인 당신의 아들딸들은 외로운 길을 걸어왔습니다. 슬픈길을 걸어왔습니다. 하늘만이 아시는 한 길, 하늘과 맺어진 그 인연, 하늘과 통할 수 있는 저희의 심정을 당신은 아시옵니다. 오늘 저희들의 이 모임은 하루 이틀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6천년 피의 인연을 통하여 이루어진 한 장면이라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탕감의 역사는 그 피의 값을 요구하는데, 죽음의 피가 아닌 생명이 약동하는 산 영광의 피를 요구한다는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이 날을 맞이하는 슬픈 이 한 마음을 아시고, 분한 이 심정도 아시고, 억울하신 당신의 심정을 대신한 저희의 이 심정도 아시는 아버지, 이러한 자리에서 당신을 따르고 있는 무리들도 불쌍한 자들이옵니다. 당신이 가라 하시는 그 길에서 저희들은 배척도 받아 보았사옵고, 매도 맞아 보았사옵고, 철창에도 들어가 보았사오나 그 무엇도 아버지와 맺은 생명의 인연을 끊을 수 없다는 철석같은 마음, 아버지를 위하는 일편단심의 이 한 심정만은 천추에 길이 남기고도 남음이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오늘 여기에 모인 당신의 아들딸들, 달려온 걸음이오니 갈 곳밖에 모르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고, 달리는 발걸음이오니 죽더라도 달리다가 쓰러져 죽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슬픈 일이 있으면 아버지와 더불어 기도하였고, 아버지께서 복을 빌어 주던 이 자리가 변하여 사탄이 기뻐하고 장단을 칠 수 있는 인연이 맺어지는 자리가 될까봐 두렵사옵니다. 삼위신이 세우신 지조와 절개를 저희들이 본받고 유업으로 받아, 오늘에 세우시려는 천적인 심정의 주춧돌을 놓을 수 있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저희들 앞에 맡겨진 사명이 귀중한 줄 아옵니다. 가고 가고 또 가도 아버지 앞에 불충과 불효, 미급과 미완성의 자리에 처해 있는 자신을 자탄해야 할 운명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오늘 이 자리에 모였사오니, 크신 사랑의 손길을 펴 주시옵고, 당신의 애달픈 심정을 터쳐 놓으시어서 ‘내가 너희를 위해 이렇게 살아왔고, 너희들을 찾기 위하여 이렇게 나왔다’고 통사정을 할 수 있는 이 한 시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하늘이 원하시고 하늘이 바라보시며 하늘이 찾으시는 자는 많이 아는 자가 아니요, 그저 뜻없이 따라가는 자도 아니요, 아버지의 심정을 붙들고 몸둘 바를 알지 못하고 눈물짓는 자인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심정으로부터 맺혀진 한은 심정을 통하지 않으면 풀 길이 없다는 것을 배운 저희들, 이 시간 아버지를 내 아버지로 모셔 놓고 외로움과 슬픔에 젖은 아버지의 한의 심정을 저희들이 인계받고 아버님을 위로해 드리고 모실 줄 아는 당신의 아들딸들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날 수많은 인류 위에 축복하여 주시옵고 삼천만 민중 위에도 축복하여주시옵소서. 더우기나 외로운 자리에서 찬 서리를 맞아가며 먹지 못하고 입지 못하면서도 아버지 앞에 충절을 세우기 위하여 슬픈 눈물을 뿌리는 당신의 아들딸들도 이 시간 많을 줄 아옵니다. 슬픈 일이옵니다. 그들 각자의 마음 마음을 붙들고 위로하여 주시옵고, 기쁨의 날을 고대하는 그들 앞에 영광과 승리의 표적이 이 시간 나타나게 역사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오늘 모인 당신의 아들 딸들의 모습을 거룩타 인정하시옵고, 사탄이 일체 틈타지 못하는 이 시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의 사랑의 인(印)을 치시어서 영원히 아버지의 아들딸로, 아버지의 소유로 결정될 수 있는 인연이 이 시간 각자의 심정 심정에 연결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기쁨의 새로운 역사가, 재창조의 환희가 이들 앞에, 이들의 마음속에 충만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하옵나이다.

남아진 시간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하늘에 있는 모든 식구들과 땅에 있는 참다운 아들딸 위에도 영광의 약속과 더불어 기쁨의 은사가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바라면서, 모든 말씀 주의 이름으로 기도하였사옵니다. 아멘.

9-44
기 도(Ⅲ)
아버님, 저희의 심정이 어떠한 위치에 있는가 살피게 하여 주시옵소서. 자기의 가치를 높이 찬양하고 싶었던 나. 이제 나라고 주장할 수 있는 그 자체를 다시 분석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과거를 거쳐서 현실에서 생활하다가 오늘 이 자리에 머문 내 자신이 어떠한 위치에 처하여 있는지 오늘의 나의 가치를 결정짓지 못할진대, 과거의 나와 이 시간의 내가 별다른 차이가 없다는 것을 저희들이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제 저희의 마음의 중심이 어디에 있는가 다시 살피게 하여 주시옵소서. 방향도 없이 떠도는 마음이 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목적도 없이 자기의 위치를 망각하여 허덕이는 마음이 되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천지가 변할지언정 자신의 말씀은 일점 일획도 변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하고 있는 그 자체도 변할 수 없는 것을 저희들이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께서 말씀을 전하신 것은 그 말씀을 붙들고 좋아하는 자를 만들기 위함이 아니라 그 몸과 그 심정을 붙들고 좋아하는 자를 만들기 위한 것이었음을 아는 저희들이라 할진대, 아버지, 저희의 마음이 당신의 뜻을 대하든가 당신의 심정을 대할 때, 어떠한 위치에서 그 목적하는 바의 가치와 상대적인 관계의 인연을 가지고 오늘의 생활을 개척할 수 있는 모습이 되어 있는가가 문제인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아버지! 이 마음이 자신이 머물 수 있는 위치를 잃어버린 것이 탄식이요, 자기의 가치를 전세계와 온 천주와 더불어 논위할 수 있는 자격을 상실한 것이 탄식임을 알고 있사옵니다. 본래의 인간은 자기의 갈 방향을 갖추어 천상의 대주재와 관계를 맺은 자유의 환경에서 그의 가치와 높고 선하심을 노래해야 하고, 아버지의 심정을 통하여 아버지와 더불어 화하고 즐거워해야 할 인간임을 저희들은 알고 있사옵니다.

잃어버린 본연의 위치를 다시 찾기 위해 헤매는 인류, 잃어버린 본연의 가치를 다시 찾기 위해 오늘도 고심하고 있는 인류이옵니다. 심정을 걸어놓고 마음과 몸이 화하여 기뻐할 수 있는 목적의 동산에서 주인과 더불어 영원히 노래하는 것이 저희들의 소원이옵니다. 그 동산을 향하여 발걸음을 옮겨 놓는 그날부터 어떠한 어려움과 슬픔이 닥치더라도 그 모든 것을 획득하는 그날까지 주저할 줄 모르는 당신의 아들딸들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그와 동시에 아버지를 대한 일편단심의 심정만은, 송죽처럼 언제나 변함없이 끓어올라 천상 혹은 지상의 전존재세계를 움직여 내고도 남음이 있는 불변의 충신의 가치로 단장시켜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창조주가 있다 할진대, 그러한 모습을 그리워하실 것임을 저희의 추리로도 알 수 있사오매, 당신 역시 그것이 소원임을 알고 있사옵니다. 그런 기준에서 아버지와 인연맺고, 타락한 세상 험악한 죄악의 세상을 짓밟기에 부족함이 없는 당신의 아들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 몸, 상처입은 몸이지만 아버지 앞에 내어 놓습니다. 수습할 수 없는 이 마음, 거리에서 방황하는 것과 같은 이 마음도 내어 놓습니다. 생명의 안식처를 찾지 못하여 허덕이던 과거의 그릇된 모든 것을 다 내어놓습니다. 주체적인 실존자요, 영존자이신 당신의 은사를 바라고 나온 저희들이 오니 생명과 사랑의 아버지 앞에 경배드릴 수 있는 이 시간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나이다.

저희들의 모든 것은 저희 것이 아니옵니다. 모두 당신께 바쳤사오니 당신의 장중에 넣으시어서 몸이 옳지 못하거든 쳐서라도 성별해 주시옵고, 마음이 옳지 못하거든 꺾어서라도, 아버지의 심정과 인연맺을 수 있도록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그런 인연을 세우는데 있어서 분부하실 말씀이 많을 줄 알고 있사오니 말씀하여 주시옵고, 권고하여 주시옵고, 충고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무슨 말씀을 하오리까. 아직까지 저희 앞에 토로하실 당신의 한이 많은 것을 알고 마음 졸이고 있사오니, 아버지,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몸 앞에 마음을, 마음 앞에 심정을, 심정 앞에 천륜을 모셔야 할 것을 저희가 알고 있사옵니다. 이 시간 아버지의 애달픔과 아버지께서 염려하시는 그 심정을 토로하여 주시옵소서. 지금까지 느끼지 못한 심정적인 혁명이 이 시간에 이루어져 천상의 인연을 배반하였던 것을 회개하는 무리가 많이 나오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전하는 자의 마음과 받는 자의 마음이 갈라지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당신이 운행하시는 그 전체적인 분위기에 휩쓸리고, 존재의식은 운행하시는 아버지의 의식에 사로잡혀 심정과 더불어 체휼할 수 있는 기쁨의 약속을 허락해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하옵고 원하옵니다.

남한 각지에서 이 시간 외로운 무리들이 무릎을 꿇고 머리 숙여 기도하고 있사오니, 아버지께서 같이하여 주시옵고, 더더구나 이 시간 이 지리를 그리며 눈물짓는 식구들이 있사오니 그들 위에도 같이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살고 있는 사정과 형편에 얽매어 당신이 소원하시는 뜻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그들의 마음은 얼마나 섧겠사옵니까. 크나큰 은사로 이 시간 그들을 위로해 주시옵고, 붙들어 주시옵고, 품어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나이다.

남아진 시간을 맡기오니 삼위신이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저나라 영계에 있는 뭇 영인들과 심정을 기울여 아버지의 이념을 그리워하는 선한 자들을 같은 식구의 심정권에서 축복하여 주시옵고, 인연을 맺는 이 시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하면서 주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9-46
말 씀
여러분 자신들이나 여기에 서 있는 이 사람은 자기도 모르게 무엇에 의지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자기보다 더 높고 가치스런 그 무엇과 인연맺고자 하고, 자기보다 더 높은 가치적인 그 무엇을 그리워하는 것은 누구나 다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만일에 인간이 타락하지 않았다면 우리 자신들이 그리워할 것은 무엇이었을 것인가. 그것은 단지 하나님의 심정뿐일 것입니다. 타락하지 않은 인간이 하나님과 가까이하고, 하나님과 인연을 맺고 싶어한다 할진대 그것은 하늘이 갖고 있는 어떠한 물건을 얻으려 함도 아니요, 하늘이 알고있는 어떠한 지식을 얻으려 함도 아니요, 하늘이 지니고 있는 어떠한 권한을 얻으려 함도 아니라 하나님 속에 깊이 잠겨 있는 심정을 소유하려함일 것입니다. 그것만이 그들의 가치의 표준이 될 것임에 틀림없을 것입니다.

이것은 마음을 가진 인간이라면 누구나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에 타락한 땅에 살고 있는 우리들도 그 어떠한 것보다도 심정의 가치를 노래할 수 있는 안식의 터전을 그리며 허덕이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심정의 기준을 찾아 헤매야 할 인간이라는 것을 먼저 여러분들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9-47
인간이 그리워하는 것
한 시간이면 한 시간, 하루면 하루, 몇 십년이면 몇 십년이 생애 노정을 거치는 그 과정에 있어서, 그 심정이 깊고 넓고 높은 사람일수록 행복한 사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아무리 갖춘 것이 풍부하고 모양이 늠름하다 할지라도 그런 기준을 갖지 못한 자는 불행한 자라는 것을 여러분들이 잘아는 바입니다. 타락한 인간도 그렇거늘 타락하지 않은 본연의 인간도 그러했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기억하여야 되겠습니다.

인간 타락의 응보로 받게 된 것이 무엇인고 하니, 그것은 하나님의 심정세계와 끊어지고 하나님이 주관하시는 동산에서 추방당하고, 하나님이 지으신 전체의 세계를 내 것으로 소유하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타락한 인간의 슬픔인 것입니다.

인간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지음받은 온 만물에게 슬픔이 왔다 할진대, 그것은 참다운 인연을 가지고 사랑의 심정을 통할 수 있는 사람을 대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천상(天上)의 영인(靈人)들도 하나님의 심정과 인연을 맺지 못하여 하나님의 무궁무진한 사랑의 손길로 품을 수 있는 아들딸이 되지 못한 인류, 즉 타락의 혈족을 바라보고 탄식할 것입니다. 그러기에 심정의 기준을 찾아 헤매야 할 타락한 인간들은 불쌍한 처지에서 허덕이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똑똑히 기억해야 되겠습니다. 마음의 안식처, 더 나아가 심정의 안식처를 찾기 위하여서는 자기의 소유나 자기의 의식 관념전부를 포기하고라도 하나님의 심정만을 소유하여야 된다는 것을 타락한 세계의 우리가 항상 느끼는 바입니다. 타락하지 않은 세계에서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만일 어느 누가 하나님의 사랑을 가졌다고 한다면 그 사람은 존재 세계를 전부 다 준다해도 그 사랑 하나와 바꿀 수 없을 것이며, 천상천하의 어떠한 권한을 다 준다고 해도 그 사랑 하나와 바꿀 수 없을 것입니다.

타락 전이나 타락 후나 궁극의 목적은 심정의 안식동산을 찾는 것입니다. 심정의 동산을 찾아서 대하면 대할수록 새롭고, 대하면 대할수록 행복스럽고, 대하면 대할수록 자유롭고, 대하면 대할수록 그 가치와 그 위치와 그 영광의 한계를 측정할 수 없습니다. 그것을 누리는 사람은 최대의 행복자일 것입니다. 만일에 이 땅 위에 그런 사람이 있다 할진대는 어떠한 인간도 그를 배반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이 땅 위에 있다 할진대 모든 사람은 그를 붙들기 위하여 모든 것을 버리고 허덕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정을 소유해 놓고 하나님과 뗄레야 뗄 수 없는 인연을 맺은 사람, 그런 완성한 사람이 있다 할진대 천상의 어떠한 존재라도 그를 붙들려고 노력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타락했기 때문에 이런 인연이 갈래갈래 찢어져버렸습니다. 그런 연고로 그 인연을 다시 맺기 위해서 섭리해 나오시는 것이 구원섭리입니다. 왜 구원이라는 낱말이 생기게 되었으며, 그 구원은 왜 해야 되느뇨. 본래의 자리에서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이 세계는 그 무엇인지 모르게 새로운 이념에 의해 구원받기를 고대하고 있습니다. 왜? 이념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이 땅위의 모든 인간들은 그 무엇인지 모르게 어떠한 위치에 찾아 헤매고 있습니다. 왜? 머물러야 할 위치를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연구하는 것은 무엇 때문이뇨. 알 수 없는 성경이기에 알기 위해서 허덕이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구원의 길을 가고 있는 목적은 무엇이뇨. 나를 모르는 인간이 되었기 때문에 나를 알기 위해서입니다. 나를 존중시하며 새로운 이념을 알려고 하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세계를 알 수 없는 인간이 되었기 때문에 세계를 알기 위해서입니다.

자기의 욕망을 이루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를 해명했다 할지라도 그가 모르는 바가 있나니, 그것은 절대자입니다. 세계를 움직이는 어떠한 이념적인 주체자가 있다는 것입니다. 세계를 넘어 무한한 실존세계 전체를 꿰뚫어 그와의 인연을 맺기 전에는 안식할 줄 모르는 것이 심정의 세계입니다. 우리는 세계를 모르고 있고, 무한한 영계를 모르고 있고, 하늘을 모르고 있습니다. 이것이 다 타락의 보응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오늘 여러분들 앞에 말씀드리려는 제목은 ‘심정의 해원을 완성하려는 복귀역사’입니다. ‘심정의 해원을 완성하려는 복귀역사’라는 제목을 가지고 말씀드리겠습니다.

9-49
우리의 선조 아담과 해와의 죄상
여러분 중에는 10년 혹은 20년, 더 나아가서는 일생 동안 하늘을 숭배하며 도의 길을 찾아나온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러한 어려운 길을 가는 원인은 어디에 있느뇨. 여러분 자신이 잘못해서가 아닙니다. 여러분 자신이 잘못한 것보다도 우리의 선조에게 잘못이 있고, 그 선조를 거슬러 올라가게 되면 근본적으로 잘못한 장본인이 있나니 그들이 타락한 인류의 조상인 아담 해와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선조 아담 해와는 하나님의 사랑의 품에서 자라났고, 하나님의 지성 지대(至聖至大)하신 사랑의 심정 밑에서 키움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자라는 모습이 귀엽고 사는 환경이 자유스러웠다 할지라도 그들이 지니지 못한 것이 있었나니 그것이 무엇이었느뇨? 허락하여 주신 만물이 없었던 것도 아니요, 심부름꾼이 없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아담 해와가 하나님의 아들딸이 될 수 있는 심정의 인연을 맺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한이예요.

하나님이 무한한 창조의 이념과 더불어 즐길 수 있는 소망의 세계를 세우시고, 아담 해와로 말미암아 천하만상이 자유자재로 주관되는 모습을 보고 기뻐하시고자 했던 것은 그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이었습니다. 외적인 어떠한 조건이 귀해서가 아니라 당신의 심혈이 그들에게 침투되어 있고, 당신의 뼈살이 잠재해 있고,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심정의 흐름이 아담 해와에게 향하고 있었던 연고로, 아담 해와에게 온 천지만물을 허락하였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나 아담 해와는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늘을 저버렸습니다. 만물을 저버린 것도 아니요, 축복해 주신 것을 저버린 것도 아니요, 저버려서는 안 될 하나의 원칙을 저버렸나니 그것이 무엇이뇨. 하나님과 심정의 인연을 맺을 수 있는 기반입니다. 심정의 기반을 저버렸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타락입니다.

심정의 모든 가치를 노래하기 위하여 지으셨던 아담 해와, 그 아담 해와를 지어 놓으시고 기쁨과 소망의 심정으로 자라는 그들을 보고 즐거워하시던 하나님, 따먹지 말라는 엄중한 계명을 세워 놓으시고 때를 바라보며 참아 나오시던 하나님의 소망의 심정이 얼마나 간절하였는가를 아담 해와는 몰랐습니다. 자신들을 대해 얼마나 고대하시고 얼마나 쓰다듬어 주고 싶어 하시는지를 이들은 몰랐다는 것입니다. 움직이는 그 모습을 귀여워해 주고, 쓰다듬어 주고, 안아 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셨지만 하나님은 세우신 법도의 한 기준을 완성할 때까지는 기간을 두고 ‘따먹지 말라’는 조건을 세우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만일에 아담 해와가 이러한 하나님의 심정을 알았던들, 타락의 인연을 맺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심정을 유린하고 천사장과 관계를 맺어 버림으로써, 하늘 세계 앞에 용서받지 못하고 추방당했던 것입니다. 그들이 타락한 조상, 타락한 부모인 아담 해와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은 아담 해와를 바라볼 적마다 소망의 심정이 불타올랐고, 그들을 볼 적마다 그들이 자아완성하여 행복한 생활을 할 것을 생각하시며 행복의 감정이 불타올랐고, 하나님이 지으신 천지만물을 그들 자신이 지은 것처럼 주관하고, 즐거워하며 쓰다듬어 줄 것을 바라셨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소망의 심정은 아담 해와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다 끊어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선조가 저끄러 놓은 죄상 중에 용납받지 못할 크나큰 죄상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타락한 인간을 그냥 내버려둘 수 없습니다. 왜? 본래인간을 지으실 때 영원의 기준인 원리적인 법도에 의하여 지으신 연고로 그 기준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타락한 아담 해와를 저버리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였으나, 그들을 저버리게 되면 6일간 지으신 전피조세계의 원칙을 저버리는 동시에 영원의 기준까지 저버리지 않으면 안될 입장이 되고, 영원의 주체이신 하나님의 실존까지 침해당할 수밖에 없는 입장에서기 때문에 이를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아담 해와를 다시 한번 구원하는 섭리를 시작하신 것입니다.

영원한 원칙을 세워놓고 그 기대(基臺)위에 영원의 주체자로서 군림하여 생명체를 주관하고자 하셨던 그 심정의 발판을 인간조상이 타락했다고 해서 끊어버릴 수 없었기에, 그 기준을 바라보시면서 타락한 인간을 끌고 끌어서 본연의 심정기준까지 끌어 올리려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구원의 역사입니다.

9-51
구주를 통한 구원
도의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이뇨. 절대자가 있다 할진대 그 절대자가 대할 수 있는 하나의 신앙자, 즉 심정의 관계에서 승리하였다는 하나의 모습을 하늘이 세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을 세우지 않으면 실패입니다. 오늘날 이 땅의 타락한 후손들도 그런 하나의 존재를 하늘과 인연맺게 하지 못하면 실패라는 것입니다. 구원이 완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찾아오셨습니다. 지으신 만물이 그리워서 찾아오신 것이 아닙니다. 천상의 행복의 보좌가 그리워서 찾아오신 것이 아닙니다. 아담 해와가 타락한 그날, 그때부터 하나님은 심정의 뒷골목을 외로이 걸으시며 6천년 역사를 거쳐 오늘 이 시간까지 여러분의 뒤를 묵묵히 따라오고 계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기에 오늘 이 인류가 가야 할 방향은 사망의 세계, 사망의 함정, 생지옥인 이 땅에서 목적도 모르고 방향도 모르는 채 걷고 있는 발걸음을 돌이키는 것입니다. 구원! 구원이라함은 다시 구한다는 것입니다. 구하기 위해서는 구해주는 구주가 필요하니 이 땅 위에 구주라는 명사가 생겨난 것입니다.

구주는 인간들이 사망세계에서 그냥 그대로 살도록 방치해 두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구주는 필요없습니다. 구주는 이 세계를 저버리고, 이 세계를 청산하고, 오늘의 고착된 환경을 청산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구주를 찾는 목적은 어디에 있느뇨? 구주를 만나기 위해서가 아니라 구주를 보내신 장본인이신 하나님과 심정의 인연을 맺기 위해서입니다. 그 인연을 맺어질 때까지 돌진해야 할 운명에 처해 있는 것이 타락한 인류요,타락한 부모의 후손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인간은 지식에 굶주리고 있습니다. 혹은 명예욕을 채우지 못해 굶주리고 있습니다. 배고픔과 헐벗음에 허덕이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굶주리고 있는 조건이 많을 것입니다. 타락한 인간이기에 응당히 굶주림에 허덕여야 합니다. 조상이 저끄린 죄상의 보응으로 인간이 굶주림에 허덕이는 것은 당연하지만 인간을 구하여야 할 하늘도 굶주려 나왔다는 것입니다. 무엇에 굶주려 나왔느뇨? 심정에 굶주려 나온 하늘임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자유의 동산에서 품을 수 있는 아담 해와는 어디 갔느뇨? 엿새 동안 만물을 지으시고 소망으로 기다리시던 아담 해와는 어디 갔느뇨? 지어 놓고 ‘어서 자라거라, 자라서 축복해 준 대로 만민의 참부모가 되어 내가 지은 만물을 너희들이 지은 것과 같은 심정으로 사랑하거라’ 하시며 바라보심 행복의 심정, 또 그들의 후손과 온 천하만상이 하나님과 화하여 화동의 꽃동산을 이루기를 바라신 소망의 심정, 이런 심정을 잃어버린 채 하늘은 허덕여 나오고 계시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9-52
하나님이 찾으시는 존재
이 땅 위에 구주가 필요하다 할진대 어떠한 구주가 필요하겠습니까? 우리에게 지식을 갖다 주는 구주는 필요없습니다. 명예나 권세를 부여해주고 당대에 성공하게 해주고, 배를 만족시켜 주는 구주도 필요없습니다. 하늘이 진정 인간을 사랑한다 할진대 우리 인간 앞에 어떤 구주를 보내주실 것이뇨? 심정의 구주입니다, 심정의 구주. 이것이 인류의 소망의 목표입니다. 하늘은 이 땅 위의 인간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환경을 수습하고 갖은 방법으로 가르쳐 나왔습니다.

그러면 심정은 어떠한 자리에서 논해야 될 것이뇨? 깨끗하고 거룩한 자리에서 논해야 됩니다. 심정은 거리나 시장에서 논할 것이 아닙니다. 원수들을 다 제거시켜 안식의 환경을 만들어 놓고 성별된 지역에서 논해야 됩니다. 하늘과 역사적인 인연이 맺어지고 시대적인 인연과 미래적인 인연이 맺어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놓은 연후에야 심정의 인연을 맺는 것이 하늘의 복귀섭리라는 것입니다. 구원역사입니다. 하늘이 지금까지 6천년 동안 수고해 나오신 목적은 무엇이뇨? 심정의 안식의 동산을 이루기 위해서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러한 구원섭리를 해 오시는 하늘 앞에 머리 숙여 감사드려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택해 놓고 심정을 통할 수 있는 개인을 찾아 헤매셨습니다. 그리하여 타락한 혈족 가운데 하나님의 심정을 통할 수 있는 하나의 조상을 찾아 세우셨으니 그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입니다.

그는 여러분이 지금까지 믿고 있는 것과 같은 이름만의 믿음의 조상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존재는 어떤 존재뇨. 하나님은 심정의 주체이시기 때문에 그 심정을 대할 수 있는 개인, 심정을 걸어 놓고는 어떠한 일도 의논할 수 있는 존재를 하나님께서는 찾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 존재가 바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하늘과의 심정의 인연을 세상의 그 어떤 이념보다도 철저히 느꼈던 것입니다. 자기의 자녀보다도, 자기의 친척보다도, 자기가 가지고 있는 재산보다도, 자기가 지금까지 알고 있는 지식보다도 더 중요시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늘을 대하여 느끼는 심정적인 인연은 그 무엇으로도 끊을래야 끊을 수 없고, 바꿀래야 바꿀 수 없는 하나의 기준이었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꿈에 나타나 갈대아 우르를 떠나라고 명령하셨을 때 쉽사리 가정 기물을 꾸려 사랑하는 부모와 형제 친척을 다 버리고 외로운 광야로 나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이러한 심정적인 기반을 갖추었기에 믿음의 조상이 되었다는 것을 모르는 신앙자는 망합니다.

이렇게 하늘은 2천년 동안 수고하여 비로소 심정을 통할 수 있는 하나의 대상을 세우심으로써 심정의 기준을 찾으신 것입니다. 심정복귀를 해야 할 하나님의 입장이 그러하다는 것입니다. 타락한 인간 가운데 개인을 찾아세우고, 개인을 찾은 후에는 가정을 찾아 세우고, 가정을 찾은 후에는 국가, 민족, 세계를 찾기까지 하늘은 섭리역사를 중단하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여기에 왔습니다. 무슨 인연인지 모르지만 여기에 와서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렇다 할진대 듣는 여러분은 자신의 심정이 어디에 처해 있는가 하는 것을 반성해야 되겠습니다.

심정의 기준을 갖추어 가지고 하나님과 결정적인 인연을 맺은 자가 있다면 그는 영원한 승리자입니다. 가정을 배경으로 하여 승리했다면 그 가정권내에 있어서 영원한 승리자가입니다. 국가를 대신하여 승리했다면 그 국가권내에 있어서 최고의 승리자입니다. 세계를 대신한 기준을 갖고 승리했다면 세계적인 승리자입니다.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기에 역사는 내적으로는 수습하여 올라가고, 외적으로는 깨뜨려나가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이 죄악된 세상이 망합니다. 외적으로는 깨뜨려 나가는 역사요 내적으로는 수습해 올라가는 역사라는 것입니다. 반대가 된다는 말입니다. 왜? 복귀역사는 타락한 세상과 하늘편을 합해 가지고는 섭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갈라놓으려니 한편으로는 깨뜨리고 한편으로는 수습하는 역사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아야만 합니다.

본래 아담 해와가 타락하지 않았다면 우리의 참조상이요, 이 땅 위에 있어서 하나님을 대신한 대표자입니다. 아담 해와가 타락하지 않았다면 온 세계는 아담 해와주의의 세계란 말입니다. 아담 해와는 누구의 것이냐.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러니 이 세계는 하나님주의의 세계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럴 게 아니겠어요? 일개 민족도 자기의 역사를 중심삼아 가지고 풍습과 시대적인 사회환경을 이루어 놓거든, 만일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담 해와가 타락하지 않았다면 이 세계는 아담주의의 세계가 되었을 것입니다. 동시에 절대 집권자이신 하나님주의의 세계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랬으면 싸움도 없고, 분열도 없고, 주권쟁탈역사도 없다는 것입니다.

9-54
복귀섭리 역사의 전말
하나님은 이 사탄세상을 깨치고 이루시고자 했던 본래대로의 세계를 세우시는 것이 목적입니다. 그래서 사탄세계를 수습해 나오신 것입니다. 씨족으로부터 부족, 부족으로부터 민족, 민족으로부터 국가의 형태를 거쳐나오면서 거기에 주권자가 나옵니다. 그런데 그 주권자를 그냥 두어서는 안 되겠기에 깨뜨리는 것입니다. 하늘편 사람들을 세워 가지고 깨뜨려 나온 것입니다. 그래야 한 곳에서 수습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그런 싸움을 해 나오신 것입니다.

그 주권자가 하늘의 반대편, 즉 땅 위의 영원한 집권자가 되면 천국을 찾아나가는데 방해자가 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어떠한 주권자 앞에 나타날 적마다 반대를 받지 않은 때가 없습니다. 원수입니다. 기독교를 세워 이것을 때려 부순다는 것입니다.

로마가 아무리 철옹성 같은 강국이었지만 기독교가 들어가서 그 로마를 무너뜨리고 말았습니다. 그리하여 군주사회를 거쳐 민주사회로 넘어갔습니다. 왜? 깨뜨려 놓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세계가 집권자나 독재자의 손아귀에 들어가게 되면 하늘이 복귀역사를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깨뜨려 나가는 것입니다. 깨뜨려 가지고 군주시대를 거쳐 민주시대로 넘어왔습니다. 상류계급부터 출세하여 중류계급이 출세했고, 이제는 노동자, 농민까지 출세할 수 있는 때에 왔습니다. 내리 몹니다. 이제는 형제의 인연, 부자의 인연, 부부의 인연까지 다 깨져 갑니다. 아버지가 자식을 때려 죽이고, 자식이 부모를 때려 죽이는 천지가 되는 때, 그 때가 끝날인 줄 알란 말입니다. 오늘날 민주세계는 각성해야 됩니다.

외적으로 깨뜨리는 천지운세에 따라 하나님의 일선과 사탄의 일선은 같다는 것입니다. 일의 내용도 일선은 같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지금 민주주의를 신봉하는 선진국가들은 각성해야 됩니다. 가던 걸음을 돌이켜야 됩니다. 돌이키는 데는 어떠한 지식을 중심삼고 돌이킬 것이 아니요, 어떠한 재물을 갖고 돌이킬 것이 아니요, 심정을 갖고 돌이켜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망합니다. 망해요. 허덕이고 헤매다가는 나중에 큰 세계의 이념 앞에 자폭하고 만다는 것입니다. 세계를 자기 것으로 가진다 하더라도 그 외적인 환경이 내적인 심정을 점령해 들어오는 고독한 입장을 내적으로 수습하지 못한다면 파멸해 버리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늘은 내적으로 수습해 들어오는 섭리를 해 오고 계신 것입니다.

하늘은 이런 목표 밑에 일찌기 하늘이 사랑할 수 있는 개인 아브라함을 택했고, 아브라함이 실수함으로 말미암아 야곱을 세웠습니다. 그를 중심삼고 가정을 복귀하여 승리했다는 조건을 세움으로써 주신 이름이 이스라엘이었던 것입니다. 그 뒤 모세 때에 와서 이스라엘 60만 대중으로 하여금 가나안 복귀노정을 거치게 하시고 나중에는 예수를 보내주셨습니다. 그 민족의 기반 위에 예수를 세우심으로써 천적인 복귀섭리의 줄기는 오늘의 여러분에게까지 뻗쳐 나온 것입니다.

야곱은 가정 대표자로 일대에서 가정복귀를 완성하였고, 모세는 민족의 대표자로서 애급에서 60만 대중을 구해내었습니다. 세계적인 애급으로부터 세계적인 가나안 땅으로 구해낼 메시아는 이 땅에 오셨더랬습니다. 민족 복귀를 완성한 이스라엘의 기반 위에 승리적인 군왕으로 군림하여 세계를 정복하기 위해 오셨던 분이 예수였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예수가 죽으러 왔다구요?

하나님은 세우신 예수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간 그날부터 만왕의 왕, 메시아의 재림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런 주인공이 오시는 데는 무엇을 갖고 오시느냐? 인간의 소망, 역사의 소망, 시대의 소망, 온 천주의 소망인 심정의 복지를 가지고 찾아오신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늘은 우리에게 권고하셨습니다. 어떠한 지식을 가지라고 권고하지 않았습니다. 어떠한 권세를 누리라고 권고하지 않았습니다. 죽든지 살든지 신부의 절개를 가지고 단장하라고 권고하셨습니다. 신부의 절개를. 그건 왜? 세계의 인류가 최후의 종단선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심정적인 주인 앞에 심정적인 상대의 가치를 갖춘 신부가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신부의 자격을 갖추기 전에는 그 선을 넘지 못하기 때문에 제일 좋은 선물로써 복된 약속을 해 놓으신 것입니다.

9-56
심정을 온전히 토로하지 못한 예수님
끝날이 되어 오니 세계는 두 갈래로 갈라졌습니다. 그렇잖아요? 두 갈래로 갈라져 접선되고 있습니다. 접선은 일선에서 됩니다. 지금까지는 함께 나오다가 이제는 맞섰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함께 나왔습니다. 지금까지는 하늘편이 사탄편과 어깨를 겨누고 나왔지만 언제까지나 사탄과 어깨를 겨누고 나와서는 안 되겠기에 맞서는 것입니다. 이러한 투쟁역사가1차 대전, 2차 대전으로 전개되었고, 3차 대전형으로 전개되어 나오는 것입니다. 이제는 판가리를 지어야 되기 때문에 맞서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민주주의와 공산주의를 딱 맞세워 놓았습니다. 하나는 유심(唯心)이요 하나는 유물(唯物), 하나는 영적이요 하나는 물질적입니다.

그러면 앞으로의 세계는 어떠한 세계가 될 것인가. 공산주의를 삼켜 버릴 수 있는 심정적인 이념세계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세계가 어떤 세계뇨? 천주주의 세계입니다. 이것은 여기에서 말하는 사람의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제창하는 말이요, 예수가 고대하는 말입니다. 예수주의는 무엇이뇨. 예수는 어떤 분으로 오시느뇨. 타락하지 않은 부모가 이 땅 위에 없으니, 아담 해와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참된 부모를 잃어버렸으니 그 잃어버린 부모를 다시 세우는 데, 그분이 참부모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이제 오시는 그 부모를 모시기 위해 그 부모의 약속을 중심삼고 가던 걸음을 전부 돌이켜야 합니다. 다 버리고 가야 됩니다. 버림받는 길을 찾아가는 것이 신앙의 길입니다.

성경을 연구하고 또 연구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우리의 주님 예수님은 어떠했으며, 이스라엘 민족의 구주인 모세는 어떠했으며, 가정적 구주인 야곱은 어떠했으며, 개인적 구주인 아브라함은 어떠하였는가. 노아는 어떻게 되었으며 아담 해와는 어떻게 되었는가를 알기 위한 것입니다. 이것이 곧 머리를 싸매고 헤매는 도의 길입니다. 인생의 근본문제가 어디에서 해결되는지 아십니까? 오늘날의 과학문명을 통하여 이루어진 이 세계관을 잘 설명하는 데서 해결되는 게 아닙니다. 실증적인 논리를 세우고 실증적인 가치를 논하는 데서 인생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원점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잃어버린 것을 찾으려면 잃어버린 곳에 가야 찾으니 그곳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돌아가는 데는 성경말씀만을 통하여서 돌아가서는 안 됩니다. 성경 말씀의 내막에 숨겨져 있는 골수의 심정을 통하여 돌아가야 됩니다. 이것이 도인들이 찾아가야 할 길입니다.

2천년 전에 왔다 가신 예수의 심정을 통해 돌아가자는 것입니다. 그 예수는 어떠한 예수뇨. 4복음에 말씀하신 그 예수로는 너무나 부족합니다. 너무나 미진하고 부족합니다. 말씀을 하시던 예수의 배후, 말하고 싶어도 나타내지 못했던 그 심정을 알아야 합니다. 혈혈단신 혼자서라도 로마를 정복하려는 심정을 품고 바라보던 예수의 가슴에는 사무친 원한의 심정이, 퍼붓고 싶은 마음이 얼마나 간절했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는 못했습니다. 한마디도 못했습니다.

예수가 아무리 못났다고 해도, 열 두 제자 혹은 몇 천명의 무리를 끌고 다니면서 사회의 반역자로, 시대의 반역자로 몰려야 하는 처량한 예수가 아닙니다. 만일 예수가 세계적인 반역자로 몰리는 자리에 갔던들, 온 세계가 동원하여 예수를 죽이려고 하는 자리에 나갔던들 예수는 안 죽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가 뒷골목을 걸으면서, 이 골목에서 쫓기면 저 골목으로 피해 다니던 처지에서 그 말씀에 예수님의 이념과 심정이 온전히 다 토로되어 있어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그것 가지고는 예수께서 하신 말씀은 이해할 수 있으되 말하고 싶어도 말 못하신 예수의 은밀한 심정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심정을 알기 위해 ‘세상아 잘 있거라’ 하며 성경의 말씀과 더불어 복귀노정을 더듬어 올라가야 할 운명에 처해 있습니다.

우리는 복귀섭리역사를 거슬러 올라가서 예수를 지나, 선지자를 지나, 아브라함을 지나, 노아를 지나 아담에 이르러 그 아담의 타락한 내력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됩니다. 그리고 우주 창조의 시발부터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해명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어디에서부터 출발했는지도 모르는 채 가고 있고, 가야 할 목적지가 어디인지도 모르는 채 가고 있는 처량한 모습들입니다. 오늘날 이 세계는 광야입니다. 황무지입니다. 이런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40년 동안 광야에서 허덕이던 것과 마찬가지로 세계 인류는 광야와 같은 천지에서 헤매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에서 갈 길을 못 찾아 헤매고 있을 때 하나님은 모세로 하여금 그들의 갈 방향을 제시해 주셨습니다. 60만 대중이 단결하여 죽으나 사나 모세를 심정적인 주체로서 모시고 나갈 때는 그들의 가는 길이 만사형통하였으나, 그 심정의 인연에서 벗어나게 될 때는 멸망하였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의 역사가 증명합니다.

전세계 기독교가 세계적인 광야노정에 머물러 있는 이때, 기독교인들은 무엇을 해야 될 것이뇨? ‘세계적인 지도자여, 오시옵소서. 세계적인 선각자여, 오시옵소서. 진리가 없어 황무지와 같은 이 동산 위에 민족을 사랑하고 당신의 아들딸을 지켜줄 수 있는 참된 주인이 없사오니, 이 땅 위에 모세와 같은 지도자를 보내 주시옵소서’ 하며 애달파하며 기도하는 무리가 나와야 되겠습니다.

9-59
제2이스라엘인 기독교인의 사명
교회는 어떠한 목사의 교회가 아닙니다. 어떠한 당회의 교회도 아닙니다. 어떤 노회의 지배를 받아야 하는 교회도 아닙니다. 교회는 내 교회요, 주님의 교회입니다. 심정이 엉클어져 있는 교회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내 뼈살을 가르는 한이 있을망정 교회와 나와의 인연은 가를 수 없다고 하는 무리가 이 천지간에 나타나지 않으면 기독교는 망합니다. 망해요. 망하나 안 망하나 두고 보란 말입니다.

심정적인 복귀의 노정을 거치는 데는 어떻게 거치느냐? 거꿀잡이입니다. 외적으로는 종단세계를 향하여 나가고, 내적으로는 한 곬을 타고 거꾸로 올라간단 말입니다. 사탄편에도 사탄의 아들딸, 부족, 민족, 국가가 있으니 하늘편에서도 하나님의 아들딸, 하나님의 부족, 하나님의 민족, 국가를 세워야 합니다. 그래서 하늘편 민족으로 이스라엘 민족을 세우셨습니다. 오늘날 전세계 기독교인들은 제2이스라엘 민족입니다.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제1이스라엘 민족은 오신 예수를 배척하고 죽임으로 말미암아 망했는데, 제2이스라엘인 전세계 기독교인들도 제3이스라엘의 통치자로 오시는 주님을 또 다시 추방하면 망하고 맙니다.

역사는 돌아간다고 하였습니다. 나선형으로 돌아간다고 하였습니다. 형태에 있어서 작고 큼의 차이가 있을 뿐 역사는 반복하면서 그 무대를 넓혀 세계의 기준까지 딱 갖다 맞추는 것입니다. 개인적인 사회에서 세계적인 사회로 전개시켜 가지고 해결지어야 되기 때문에 예수님 당시의 시대상이 오늘날 다시 전개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때의 모양, 그 시대의 환경과 같은 환경으로 접근해 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외적으로 그렇게 해 놓고 하늘은 개인을 세워서 이것을 수습하는 것입니다. 둘이 싸우고 있으니 그것을 수습하려면 이것 같지도 않고 저것 같지도 않은 하나의 새로운 무엇으로서 이 세계를 새로운 방향으로 전개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 세계는 투쟁으로 망해 버릴 것입니다. 하늘이 있다 할진대 그러한 일을 할 수 있는 하나의 기준을 세워야 할 것입니다.

역사는 우리 인간으로 하여금 지식을 통하여 외적으로 행복의 기초를 닦게 하였고, 종교와 윤리와 도덕을 세워 사회적인 질서의 기준을 갖추게 하였지만, 인간끼리 연락될 수 있는 심정적인 질서는 세우지 못했습니다. 그걸 알아야 합니다. 심정적인 질서를 세우지 못했어요. 하나님이 있다 할진대 그 하나님은 이제 무엇을 해야 될 것이뇨? 외적인 환경은 갖추어졌으니, 인간 앞에 외적으로 허락되었던 축복의 기준은 복귀되었으니 이제 세계적으로 심정적인 인연이 갖추어진 형태가 나타나야 됩니다. 그래서 심정적인 인연을 중심삼은 세계를 갖추기 위해 오시는 분이 재림주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세계는 지식혁명을 해 나왔고 사회조직혁명을 해 나왔습니다. 그러면서 양심의 기준을 넘어서 심정의 혁명까지 일으키려 합니다. 심정혁명을 완결지으려면 우리가 타락으로 잃어버렸던 하나님과 타락하지 않은 참부모님을 모셔 놓고 참아들딸이 돼야 됩니다. 하나님, 참부모, 참아들딸, 이 삼자가 잃어버렸던 한 기준을 중심삼고 상봉할 수 있어야 심정혁명이 완결됩니다. 그럴 수 있는 때가 끝날입니다. 여러분, 이것을 똑똑히 알아야 됩니다. 똑똑히.

그러기에 복귀를 하는 데 있어서는 개인으로부터 가정, 민족을 복귀해 나왔습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민족을 세워 가지고 예수님을 만왕의 왕으로 보냈던 것입니다. 여기에서 세계는 예수를 만왕의 왕으로 세우고 그의 이념 앞에 욱어져 들어가야 했습니다. 그런데 싸움만 하면 되겠어요? 그런 후에는 옛날에 왔다갔던 선지자들의 모든 심정적인 내용을 전파시켜 심정적인 인연을 연결지어 놓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예수가 오기 전 영계에 간 모든 사람들은 제1이스라엘입니다. 예수가 와서 세우려 한 것은 타락하지 않은 본연의 이스라엘이었습니다. 승리한 이스라엘 세계를 하나님의 법도에 따라 통치할 수 있는 주권자를 세워 승리한 이스라엘이 제2이스라엘입니다. 그러나 예수를 죽임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민족은 제2이스라엘이 되지 못했습니다.

9-61
제3이스라엘이 되려면
다시 말하면 예수가 오기 전까지의 영계가 제1이스라엘이요, 예수님 당시의 이스라엘 민족이 제2이스라엘이요, 예수의 주권을 통해서 이루어질 선하고 참되고 영원한 믿을 수 있는 하나님의 아들딸이 제3이스라엘입니다. 예수는 제3이스라엘의 조상으로 오셨습니다. 그런 예수가 죽음으로 말미암아 영적구원의 표준만 세우게 되었으니, 오늘날 다시 전세계의 인류를 이끌어 가지고 제2이스라엘의 기준까지 다시 끌고 가야 합니다. 그리하여 재림이라는 명사를 걸어 놓고 제3이스라엘을 소망으로 하여 나가야 한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기에 끝날에는 내적으로 이러한 환경을 만들어 놓고 오시는 주님은 영계를 제1이스라엘로 삼고, 이 세계의 인류를 제2이스라엘로 삼아, 이 땅에 참부모로 나타나 가지고 승리적인 아들딸, 하나님이 사랑할 수 있는 아들딸을 만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실 수 있는 아들딸이 나타나기 전에는 제3이스라엘이 이 땅 위에 세워질 수 없습니다. 제3이스라엘이 이 땅에 세워지지 않는 한 하나님의 뜻은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복귀는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외적으로 그런 형태를 갖추어 놓았기 때문에 오늘날 영계를 통하는 신령한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예수는 영적 신랑이었기 때문에 영적으로 믿어 나오고, 영계의 지배를 받으며 영적인 기준을 중심삼고 영계 제일주의로 나왔지만, 이제 끝날이 되어 넘어가는 때에 처한 우리 인간들, 다시 말해 제2이스라엘이 되는 이 땅이 영계를 지배하여야 됩니다.

그리고 앞으로 오시는 주를 모실 수 있으려면 그 몸을 더럽히지 아니하고 정결하며 흠이 없는 자가 되어 주와 인연을 맺어야 합니다. 신랑되신 주님이 사랑할 수 있는 신부의 자격을 갖추어 어린양 잔치에 참예해야 합니다. 그 식이 끝난 후에 참부모로 등장하시는 주님과 사랑의 인연을 거치어 거듭나지 않은 사람은 제3이스라엘이 못 됩니다.

그러기에 지금까지의 부모는 부모 같아도 부모가 아닙니다. 처자 같아도 처자가 아닙니다. 자녀 같아도 자녀가 아닙니다. 내가 사랑하는 그 누구보다도 하늘을 더 사랑하겠다는 간절한 마음이 없고, 그런 자리에 나갈 수 없다면 심판받습니다. 자기 아들딸 혹은 처자, 혹은 사랑하는 사람때문에 갈 길을 못가는 사람들은 심판받아요.

복귀섭리는 천리원칙에 따라서 합니다. 심정적인 기준을 복귀해 나가는 것이 해원의 원칙입니다. 천지를 대신할 수 있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가지고, 타락으로 말미암은 죄의 관념이 없는 상태에서 하나님이 기뻐하면서 품고 사랑할 수 있는 아들딸이 없는 것이 한입니다. 오늘날 이 천지에 그런 사람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이제 주님이 와 가지고 그런 사람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 주님이 구름 타고 와요? 기독교인들은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 무리를 깨우치기 위해 나온 것이 통일교회입니다.

인간은 참부모를 잃어버렸으니 그 참부모를 잃어버린 경로를 따라 복귀해 나가야 됩니다. 나는 그리워합니다. 여러분도 그리워해야 되겠습니다. 참부모의 사랑의 심정이 어떠한지, 참부부의 사랑이 어떠한지, 참자녀의 사랑의 인연이 어떤 것인지 우리는 모릅니다. 몰라요. 성경을 보십시오. 과부나 고아와 같은 인간이라 하였습니다. 세상 인간들은 부모가 있어도 고아입니다. 남편이 있어도 과부입니다. 본연의 원칙을 두고 볼 때 그런 입장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 기준, 심정적인 하나의 발판을 향해 전진하는 역사이기에 우리는 손을 들고 하늘을 향해서 외칩시다. 우리는 마음을 모두어 엎드려 통곡해야 되겠습니다. 무엇을 가지고? 하나님! ‘당신이 이상으로 삼고 세우시려던 참부모의 사랑의 심정이 어떤 것입니까? 참부부의 정리가 어떤 것입니까? 참형제의 인연을 어떤 것입니까?’ 라고.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하늘은 그런 기준을 이루어 놓기 위해서 심정적인 복귀역사를 해 나오십니다. 아담 해와는 타락의 모체였기 때문에 그들을 통해서는 복귀역사를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가인과 아벨을 세워서 역사하셨습니다. 부모가 깨졌으니 자식을 통해서 역사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이런 원통한 일이 어디 있느냐 말입니다. 구원이란 명사가 필요없어야 할 그들 앞에 구원이 필요하게 된 것입니다.

9-63
참부모를 세우기 위한 복귀역사
그리하여 가인과 아벨을 세워 놓고 부모의 실수를 탕감하여 하늘이 축복할 수 있는 가정을 이루기를 바랐지만, 그들도 실패하여 부모도 하늘 앞에 원수요 자식도 원수가 되었습니다. 하늘이 인정할 수 없는 자식, 하늘이 인정할 수 없는 부모가 되어 버렸으니 거꿀잡이로 찾아 들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거꿀잡이로 자식을 세워 놓고 거기에 부모를 보내시겠다는 겁니다. 이게 복귀섭리입니다.

아담 해와는 망한 부모가 되었을망정 가인이 동생을 죽이지 않았던들 가인과 아벨은 참부모의 기준을 세울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 기준을 세우기 위하여 가인과 아벨을 세웠는데, 가인이 아벨을 죽임으로써 그것이 깨졌습니다. 그래서 1600년이 흘렀습니다.

그리하여 1600년의 천신만고 끝에 아담가정에서 잃어버린 여덟 식구와 같은 형(型)을 근근히 찾아 세운 것이 노아가정입니다. 여기서 노아 할아버지 한 사람만 승리했으면 됐지 그 아들이 무슨 관계가 있느냐 할지 모르지만, 부자(父子)의 인연을 종결짓지 못하면 완전히 승리할 수 없습니다. 부모가 있고 자식이 있어야만 천지원칙의 승리적인 기준이 세워지는 것입니다. 노아를 세워 이루어 놓은 것이 노아의 아들 함의 실수로 말미암아 원통하게도 깨졌고, 아브라함을 세워 기준을 세우려 했으나 아브라함이 제물 실수를 함으로 말미암아 또 원통하게 깨졌습니다. 그리하여 야곱을 새워서 에서와 싸우게 해 나온 것입니다. 외적으로는 규모를 넓혀 나오면서 내적으로는 점점 좁혀 들어가는 거예요. 혈통복귀를 해 나온 걸 볼 때 그렇습니다.

아담 해와 때는 가인과 아벨을 나누어 가지고 가인을 굴복시키는 놀음입니다. 사탄이 먼저 출발하였으니 맏아들은 사탄편이고, 둘째아들은 하늘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을 보면 장자는 전부 다 쳤습니다. 장자는 사탄편이예요. 그래서 장자인 가인을 아벨 앞에 굴복시켜 승리적인 부모의 기준을 다시 회복하려 했는데, 그 기대가 깨어지니 1600년 동안 천신만고의 수고를 한 기대 위에 노아가정을 세워 잃어버린 아담가정의 여덟 식구의 형을 복귀하려 하였으나, 노아와 그 아들딸들이 하나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또 깨졌던 것입니다. 아벨은 동생으로서 형인 가인의 축복을 빼앗아 하늘 앞에 돌려야 했습니다. 먼저 출발한 사탄세계를 빼앗아 돌려야 했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당시에 하나님은 인간을 대하는 데 있어서 직접 대하실 수 없기 때문에 제물을 통하여 대하였습니다. 제물은 아들을 대신한 것이요, 자기의 소원을 성취할 수 있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아들도 들어가 있고 물질도 들어가 있고 세계도 들어가 있단 말입니다. 그러니 타락한 인간은 제물 앞에 머리 숙여 절대 복종해야만 사탄을 떼어버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제물을 드리는데 실수함으로 말미암아 상징적인 부자의 인연을 못 맞추었기 때문에 또 깨졌습니다.

그러나 아담 이래 2천년 동안 천신만고 수고한 기대 위에 다시 택해 세운 야곱은 에서의 장자기업을 빼앗았습니다. 아버지를 속여 가지고 형의 축복을 빼앗은 야곱을 축복해 주는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고 하겠지만, 그것이 원칙입니다. 천리원칙입니다. 거꿀잡이로 뒤집어 놓는 것입니다. 왜 그래야 되는지는 여러분이 복귀원리를 통해서 다 아는 사실입니다.

아담가정에서는 형제를 낳아 가지고 복귀하려 했습니다. 점점 근본으로 들어갑니다. 그 다음에는 쌍태로써 복귀하려 했습니다. 야곱과 에서는 쌍동이였읍니다. 쌍동이를 낳아 가지고 복귀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점점 근본으로 올라가 복귀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걸 알아야 합니다. 근본복귀를 완결지어야 하나님의 해원이 이루어진다는 겁니다. 사탄의 혈통권내에서 낳아 가지고 해원하려니 심각하다는 것입니다.

2천년 동안 수고하여 리브가의 몸을 통해 에서와 야곱이 쌍동이로 태어납니다. 쌍동이로 나와 가지고 동생이 형을 지배해야 됩니다. 빼앗아야 된다는 말입니다. 야곱이 하나님의 축복을 차지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원칙이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쌍태로서 낳은 날도 같고 연령도 같은 그런 자리에서 빼앗아 넘겨야 합니다.

그 다음 유다 때에 들어와서 유다는 다말을 통하여 베레스와 세라를 낳았습니다. 아담 때에 형제를 낳아 복귀하려던 것을 야곱이 쌍동이로 태어나서 승리하였으니 여기서부터는 복중복귀(腹中復歸)를 하게 됩니다. 복중복귀. 태중(胎中)에서 싸워 승리하여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태중에서 복귀할 수 있는 승리의 기준을 세워 베레스가 나왔습니다. 끝날 이 기준이 세계적으로 맞아들어 갑니다. 먼저 나온 맏아들 세라의 손을 홍실로 처맸는데, 이것은 앞으로 세계에 공산주의가 나온다는 것을 예시(豫示)한 것입니다. 그러나 잠깐입니다. 세라가 형노릇을 하려고 하였지만 동생 베레스가 밀치고 나왔던 것처럼 공산주의도 굴복당해야 됩니다. 깨져야 된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천지를 복귀하기 위한 원칙기준을 섭리역사상의 선조들은 상징적으로나 형상적으로 이루어 놓은 것을 알았고, 그것을 다시 실체적으로 탕감복귀해야 한다는 것을 여러분은 배웠습니다. 이제 세계적인 범위에서 이를 완결지어야 하고 실체적으로 완결지어야 할 때가 왔기 때문에 먼저 나오려고 한 세라의 손에 홍실을 처맸던 것처럼 공산세력이 이 땅 위에서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나오는 것입니다. 축복받을 수 있는 승리적인 아들의 모습이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이 앞장서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승리한 아들이 나타나면 이들은 망합니다. 원칙이 그렇게 되어있기 때문에 실체적인 승리의 기반, 기독교를 배경으로 한 하나의 혈족적인 심정의 기준이 세워지는 날에는 이 세계는 깨져 나간다는 겁니다. 원칙이 그렇게 되어 있으니 혈통적 복중복귀형인 베레스와 세라의 싸움이 세계적으로 벌어져 있습니다.

그 다음에 또 더 근본으로 들어가 보면 신랑 신부입니다. 예수는 그때를 바라보고 역사합니다. 신랑 신부 없이 복중에 잉태할 수 있습니까? 복중복귀 다음은 신랑 신부 복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적인 종말시기에 외적으로 수습해 나오면서 신랑 신부를 세워 혈통적인 기준을 완결지어 놓아야 복귀역사는 완결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안 되었기 때문에 이 땅 위에 인간들이 아무리 많다 할지라도 내 아들이라 내 딸이라 못해 본 하나님입니다. 참부모의 기준이 완결된 후에라야 내 아들이라 내 딸이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참부모가 이 땅 위에 세워진 후에야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겁니다. 천리원칙이 그렇습니다. 복귀니까 그래야 될 것 아닙니까?

9-66
선악의 투쟁을 통한 복귀
예수는 누구이며, 재림주는 누구이며, 어린양 잔치는 무엇 때문에 있느냐? 참부모를 복귀하기 위한 것입니다. 에덴의 아담 해와가 비극적인 결혼행위를 하여 타락함으로, 천하만상을 대신한 본연의 부모로서 너희는 영원한 승리자요 참부모라고 손을 들어 축복하는 선포식을 해보지 못한 것이 하나님의 한입니다. 그러니 되돌아가서 맞추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외적인 사탄에게 승리했다는 조건을 세워 가지고 원칙에 맞추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사탄이 굴복할 리 만무하다는 것입니다. 역사를 두고 하늘과 대결하여 나오던 사탄은 복귀의 근본을 해결짓지 않으면 절대 굴복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러기에 여러분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주님이 오신다고 하였는데 그 주님 앞에 나가려면, 아담가정에서 가인과 아벨을 싸우게 하셨던 하나님의 심정을 알아야 됩니다. 그래야 될 것 아닙니까? 하나님의 심정의 동반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걸 좁혀 가지고 쌍태에서 태어난 에서와 야곱을 세우신 후 21년 동안 야곱을 품고 애달파하시던 하나님의 심정, 비법적(非法的)인 것 같은 축복의 기준을 세워서 장자의 기업을 빼앗게 하신 하나님의 심정을 알아야 됩니다. 그 다음에는 유다가 자기 며느리 다말의 몸을 통하여 비법적으로 잉태한 아들 베레스와 세라로 하여금 복중에서 싸우게 하여 사탄의 괴수를 물러가게 하셔야 했던 하나님의 심정을 알아야 됩니다. 알아야 돼요. 모르면 절대 심정적인 혈족의 인연을 맺기 위한 천주복귀역사와 여러분은 하등의 관계가 없게 됩니다. 왜 배속에서부터 싸워야 되느냐는 말입니다. 이런 것을 알아야 된다는 말입니다.

그 다음에는 이것이 전부 다 세계적으로 벌어집니다. 오늘날은 이 싸움이 끝나는 역사적인 전람회시대입니다. 6천년 구원역사, 복귀역사의 전람회시대입니다. 보십시오. 앞으로는 여러분이 이해하지 못할 영통인들이 많이 나옵니다. 벌거벗고 춤추고 다니는 사람도 많이 나옵니다. 두고 보십시오. 이해하지 못할 사람이 많이 나옵니다. 별의별 사람이 다 나올 거예요. 그러나 흉보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그들보다 더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흉보는 사람이 더 불쌍한 사람입니다. 그래도 그들은 영적인 세계와 어떠한 인연을 맺어 가지고 심정 기준 앞에 세상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자기의 위신과 체면을 잊어버리고 행동할 줄 아는 사람들입니다. 미치광이라고 흉보던 녀석들이 미치광이에게 머리 숙일 때가 옵니다.

이제 우리들 자신 가운데 베레스와 세라와 같은 것이 있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있습니까? 없습니까? 몸이 세라와 같고 마음이 베레스와 같거늘 마음으로 몸을 치고 다시 나야 됩니다. 그것을 못하면 안됩니다. 그것을 못하면 참부모의 기준을 개인적으로 못 넘어간다는 것입니다. 한꺼번에 낳아야 될 때입니다. 복중복귀를 거친 아들딸 앞에 주님은 신랑신부로 오신다는 말입니다. 그 터전을 기반으로 하여 복귀해 들어가는 것입니다. 근본복귀를 해야 되니까 쌍태복귀에서 복중복귀를 거쳐 신랑신부의 문을 통해야 됩니다. 신랑 신부의 문을 통하지 않고 어린애를 낳을 수 있습니까? 그러니 신랑 신부를 세워야 된다는 것입니다.

신랑 신부의 축복 예식이 이 땅 위에 벌어져서 하늘 땅이 공인할 수 있는 부모의 기준을 완결하여 그 부모로부터 축복을 받은 아들딸이 되어야 합니다. 그 부모로부터 하늘의 복귀역사는 이러이러했다는 가르침을 받아가지고 그것을 체휼하여 마음이 몸을 주관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럴 수 없다 할진대 여러분은 하늘과 상관없습니다. 오시는 주님은 6천년 동안 사탄의 피에 젖은 이 몸뚱이를 무자비하게 잡아치울 수 있는 권한의 말씀, 진리의 말씀을 갖고 오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 기준을 완결짓지 못하면 상관이 없습니다. 보란 말입니다. 여기서 말한 사람이 거짓말 했나. 복귀의 원칙이 그렇습니다.

여러분이 이것도 되고 싶고 저것도 되고 싶어 하지만 그래서는 안됩니다. 가인적인 요소, 에서적인 요소, 비법적인 원한이 내 일신에 내재해 있기 때문에 6천년 판가리 싸움이 벌어지게 됩니다. 그러기에 세계적인 공포는 내 공포요, 이 나라의 공포는 내 공포요, 이 가정의 공포는 내 공포요, 저 영계의 공포도 내 공포로 엄습돼 온다는 겁니다. 안 그래요? 이것이 한 물결로 굽이치는 때는 끝날입니다. 똑똑히들 아십시오. 믿어지지 않거든 기도해 보십시오. 여기서 땀을 흘리며 말하는 사람의 말이 거짓말인가.

9-68
타락역사의 총결산
여러분의 생사문제가 경각에 놓여 있습니다. 사망이냐 생명이냐를 심정을 기준으로 해서 결정지어야 할 어머어마한 때가 찾아오고 있습니다. 이것을 알기 때문에 안타깝습니다. 이 심정을 어떻게 토로할 것인가? 기운이 부족합니다. 뼈살이 움직이는 사람이라 할진대 다 알아야 합니다. 그럴 게 아닙니까? 여러분, 회사 같은 데서 연말에 총결산을 하게 되면 일년간의 무슨 부, 무슨 과, 무슨 계 등 모든 부서의 계산이 딱 맞아 떨어져야 되잖아요. 그 때는 사원 전부가 공동으로 책임지는 것입니다. 한가지가 걸리면 모두가 미해결입니다.

마찬가지로 이 때는 역사적인 총결산 시기이니 개인의 문제가 세계의 문제요, 세계의 문제가 개인의 문제입니다. 또한 이 나라의 문제가 세계의 문제요, 내 가정의 문제가 세계의 문제이며, 세계의 문제는 이 나라와 내 가정의 문제입니다. 그러니 내 개인의 문제가 세계의 문제인 동시에 하나님의 문제입니다.

여기에서 총결산하여 어떠한 계획적인 프로에, 하늘이 소모한 심정적인 기준에 맞추어 들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아담가정에서 소모된 것은 무엇이며, 노아가정에서 소모된 것은 무엇이며, 야곱시대에 소모된 것은 무엇이냐? 모세시대, 예수시대에 소모된 것은 무엇이며, 지금까지 6천년 동안 소모된 것은 무엇이냐? 소모된 심정적인 기준을 총결산하여 여러분이 거기에 마이너스되면 쫓겨납니다. 플러스되어야 해요. 그래서 ‘여기있소이다. 한푼의 이익을 아버지 앞에 가져 왔사오니 부족하나마 받으시옵소서’ 해야 됩니다. 신부 단장이란 것이 바로 그런 것입니다. 돈 가지고 재산 가지고 명예 가지고 신부 단장하는 줄 알아요? 천만에요.

하나님은 부모의 심정을 가졌으니 인간세상이 생겨난 후 한번도 자식을 품고 사랑하지 못하신 것을 아는 연고로, 도의 세계에서는 독신생활을 주장하는 것입니다. 천지를 대표할 수 있는 부모가 아직까지 생겨나지 못해서 가정을 이루지 못한 한이 천상에 남아 있는데, 타락한 자식들이 부모가 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도인들이 독신생활을 하는 거예요. 원인이 거기에 있습니다. 순서가 거꿀잡이로 되면 타락입니다. 주객이 전도되면 깨져요.

하늘은 고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마음이 막힌 것이 아닙니다. 사랑의 하나님이 인간을 품고 통곡하고 싶지 않고 가르쳐 주고 싶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얼마나 가르쳐 주고 싶고 얼마나 슬퍼했는지 압니까. 천륜을 대표할 수 있는, 창조원칙을 통과한 참부모가 나오지 않는 한, 참부모의 피살과 더불어 심정의 인연을 맺은 아들딸이 없는 한 축복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기준이 성립 안 되면 세상은 그냥 그대로 싸움이 계속 되고 만다는 말입니다. 여기 서 있는 사람도 오늘 이러한 이념을 위해서 외치는 것입니다.

타락한 후손이 소원해야 할 것이 무엇이뇨. 아들딸 많이 보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의 아들딸 있다고 자랑하지 마십시오. 부모 처자가 있다고 자랑하지 마십시오. 한하고 탄식해야 될 것은 무엇이뇨. 하늘이 세우고자 하시는 참부모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통곡해야 됩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하시어 손을 들어 축복해 주셨으나 하늘 땅에 공인될 수 있는 심정적인 부모가 못된 것이 타락입니다. 그 부모의 품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실 수 있는 심정적인 인연을 노래하는 형제를 못 가진 것이 타락입니다. 그 부모의 품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실 수 있는 심정적인 인연을 노래하는 형제를 못 가진 것이 타락입니다. 형제의 인연을 지나 사회와 국가와 세계를 못 이룬 것이 타락입니다. 여러분, 이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기에서 모든 설명을 구체적으로 세밀하게 해주고 싶지만, 시간관계상 더 상세하게 말씀드리지 못해 안타깝습니다. 그러나 근본복귀를 해 나가야 할 것은 분명히 알아야 됩니다. 여기서 말하는 사람은 그것을 알았습니다.

내가 옥중에 들어가 있을 때 부모가 찾아와서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고 ‘당신과 나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하고 말했습니다. 실제 그런 말을 했습니다. 천상의 인연의 길이 이런 것임을 내가 알거늘, 이 길을 가는데 도움이 못 되고 방해가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 부모는 내가 무얼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처자도 그런 입장에 있으면 가라 이겁니다. 세상에서 욕을 먹는 한이 있더라도 그런 형제가 못 되면 가라는 거예요. 욕을 하든 누가 뭐라 하든 어떻게 되든 할 수 없습니다. 통일신도들은 이러한 것을 심정적으로 지니고 가야 할 운명이 있다고 나는 단정하고 싶습니다.

여러분이 여기에 들어와 가지고 그런 인연의 기준을 훌쩍 넘어서 ‘할렐루야 감사합니다. 그렇구 말구요’ 하며 자기 부모보다도 처보다도 자식보다도 하늘을 더 사랑할 수 있고, 참부모의 심정에 인연될 수 있다면 여러분은 절대로 심판 안 받습니다. 절대 안 받아요. 지금까지 기성교회에서 믿고 나오던 모든 신앙자들은 문제가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를 알아야 됩니다. 사무를 처리하려면 그 사무가 어떻게 되어 있는지를 알아야 됩니다. 통곡해야 할 때는 왔습니다.

9-70
영원한 승리자
여기에 몰려온 여러분, 여기 있는 이 사람은 자식의 손목을 잡고 ‘너는 내 아들이다’ 하며 한번도 심정적으로 대해 주지 못했습니다. 남의 손에서 자라는 것입니다. 아버지라고 어디 갈 때 따라가겠다고 해도 ‘안 돼’합니다. 삼자의 입장에서 대합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내 자신이 부모의 심정을 총결산하여 하늘 앞에 공인받을 수 있기 전에는 자식이라고 심정적으로 대해 주면 범죄이기 때문입니다. 처자라고 심정적으로 대하면 범죄예요. 부모라고 심정적으로 대하면 범죄란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부모나 처자나 형제보다도 나를 더 사랑하지않으면 나의 제자가 못 된다고 말입니다. 이것은 내 말이 아닙니다. 알고 보니 진짜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여기에서 말하는 사람이 못난 사람이 아닙니다. 아무리 똑똑하다는 사람과도 맞설 수 있는 내용이 있다는 말입니다. 욕을 먹으면서도 가는 것은 내용이 있기 때문입니다. 철석같은 내용이 있단 말입니다. 철석같은 내용이 있기에 27억이 우는 사자와 같이 떠들어도 일신을 투신하여 싸우는 것입니다. 그런 각오를 한 지 오래 되었습니다. 왜? 하늘이 몰아치는 그 길이 가야 할 길임을 알았기에. ‘친구여 가거라. 사랑하는 부모여 가거라. 처자여 가거라. 내 몸뚱이여 가거라. 다 가거라. 다 가거라’ 하며 남은 것은 일편단심, ‘그대가 울 때 내가 울고, 그대가 슬퍼할 때 내가 슬퍼하고, 그대가 고통받을 때 내가 고통받고, 그대가 몰릴 때, 내가 몰리고, 그대가 밟힐 때 내가 밟히겠다’는 것 뿐입니다. 그것 뿐입니다.

이런 심정에 사무쳐 ‘아버지!’하고 울부짖는 아들딸이 있다면, 하나님이 이들에게 심판의 불을 내릴 수 있겠습니까? 없습니다. 허무하고 믿을 수 없는 이 천지에서 누굴 믿습니까? 부모가 영원한 부모가 아닌 것을 알았고, 처자도 영원한 처자가 아닌 것을 알았고, 형제도 영원한 형제가 아닌 것을 알았고, 살고 있는 이 세계가 하나님을 모시고 살 수 있는 영원한 세계가 아니요, 하나님께서 ‘너희는 내 백성이고 내 아들딸이라’고 할 수 있는 그 세계가 아닌 것을 알았으니 가야 되겠습니다.

나는 그리워했습니다. 본연의 부모를 모시는 그 시간을 그리워했습니다. 본연의 형제를 모실 수 있는 그 날은 통곡하겠습니다. 그 날은 벅찬 날입니다. 그 벅찬 마음은 1년으로도 그칠 수 없고 10년으로도 그칠 수 없을 것입니다. 복을 주어도 손을 내밀 수 없는 인간을 바라보고 안타까와하시는 하늘의 심정을 알았기에 이런 놀음을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남이 아니라 하는 길, 몰림받는 길을 왜 걸어왔습니까? 여러분들은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목적이 없는 사람이 불쌍한 자리에 처해지면 원망할 것이로되, 소망이 있고 새날에 대한 목적이 뚜렷하여 생명적인 절개를 노래할 수 있고, 심정적으로 행복을 노래할 수 있다 할진대 여러분은 죽어도 승리자입니다.

우리는 예수의 한이 무엇인지 알아야 됩니다. 예수님이 이 땅 위에 부모로 오셨으나 부모가 못 되고 돌아가심으로 말미암아, 2천년 동안복귀의 한을 밟고 밟으면서 서글픔의 자리를 피치 못하고 역사의 발자취를 따라 나오신 처량한 하나님이 되었고, 처량한 예수, 처량한 성신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본연의 아버지이시며, 예수는 우리의 몸뚱이의 아버지이며, 성신은 우리의 몸뚱이의 어머니입니다. 삼위일체가 어떻다구요? 모두가 다 허황된 패들입니다. 참이 거짓같고 거짓이 참같이 놀아나는 이 세상, 해부를 한번 해 봐야 되겠습니다. 참된 자여! 그대는 나타날 때가 있을 것이니 시궁창에서 밟힌다 해도 그 가치는 드러나리라. 그러니 우리는 참고 이를 악물고 철석같이 단결하여 그의 위신과 체면을 상실치 않고, 실존적인 위치와 그 가치에 있어서 영원하고 존엄하신 모양을 본받아 향기를 풍길 수 있는 아들딸들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리하여 심정적인 부모가 결정되는 날 세계는 움직여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영계는 그 앞에 제1 이스라엘로 탄생할 것이고, 전세계 기독교인은 제2 이스라엘로 탄생할 것입니다. 이제 그 심정적인 부모를 통하여 축복받은 무리가 제3이스라엘로서 천지에 나타나게 되면, 하나님은 그들을 품고 ‘할렐루야 아멘. 복귀의 해원이 성취되었노라. 심정의 한이 풀렸노라. 6천년 동안 네 모습을 자랑하며 늠름하고 당당하던 사탄아, 나와 봐라’ 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심정의 주권자가 땅 위에 생겨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자식이 부모의 위업을 받게 될 때 나이의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늠름하고 자신있게 받을 수 있는 것은 어느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심정의 인연이 있기 때문입니다.

9-72
하늘의 자녀가 될 수 있는 자격
부모의 심정을 통할 수 있는 자식이라야 부모의 유업을 받을 수 있거늘 천지의 대경륜을 세우시어 복귀의 해원을 바라고 계시는 하나님 앞에 이 하늘 땅을 주관할 수 있고, 세계를 내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아들딸이 되려면, 여러분,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성경을 잘 안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몰라도 좋습니다. 무식하고 거지같아도 좋습니다. 얼굴이 못생겼어도, 옷이 남루해도 좋습니다. 때 낀 손으로 음식을 먹어도 좋다는 것입니다. 아버지를 부르는 음성이 부들부들 떨리고 손을 내놓기도 황공하여, 그 마음이 아버지의 심정과 뒤넘이치며 넘어갈 수 있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아들딸이 될 수 있습니다. 이 기준을 세우기 전에는 절대로 천국 못 갑니다.

땅 위에 부모가 생겨나서 땅에서 풀어야만 하늘에서도 풀리고 땅에서 매이면 하늘에서도 매인다는 것입니다. 좀더 구체적이고 세밀한 것을 알려면 여기에 와서 말씀을 들으십시오. 거짓말 아닙니다. 땅에서 몸뚱이(실체)를 잃어버렸으니 그 몸뚱이를 땅에서 찾아야 됩니다. 그러니 참부모, 즉 주님이 육신을 쓰고 와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이걸 반대하는 사람들은 돌입니다. 머리가 굳은 사람입니다. 당연한 얘기입니다. 6천년 동안 이 땅에 왔다 갔던 그 어떠한 선조도 이것을 몰랐습니다.

누가 우리의 조상입니까? 떨어져 내려왔으니 거꿀잡이입니다. 타락한 차원에서 보면 선조들이 조상이지만 하늘적으로 보면 나중에 나온 사람이 조상이 됩니다. 나중에 나오는 사람이 조상이예요.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세계적인 부모가 나오고, 세계적인 가정이 나오고, 세계적인 주권이 나올 때인 것입니다. 이놈의 세상은 다 넘어가야 된단 말입니다. 그렇다고 망해서야 되겠습니까? 나도 그것 때문에 기도하는 사람 중의 한 사람입니다.

여러분들은 이제 마음이 어디로 달리느냐를 알았습니다. 마음이 어디로 달립니까? 심정적인 기준을 갖추어서 부모의 심정을 통한 자가 있다면 그는 땅 위에 있으되 그에게는 영계를 총지휘할 수 있는 권한이 있습니다. 그런가 안 그런가 통해 보십시오. 영계는 제1이스라엘입니다. 그것은 타락 전의 천사세계에 맞먹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타락하기 직전의 천사세계와 같은 모양으로 영적 복귀를 했기 때문에 낙원권내에 머물러 있는 영인들은 천사와 맞먹습니다. 이 원칙을 알기 때문에 오늘 여기서 말하는 사람도 영계와 수많은 싸움을 했습니다. 싸워 승리한 기준을 세우게 되면 영계에 가 있는 수많은 영인들을 땅 위에서 조종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집니다. 천상에 있는 천사를 지배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되어야만 사탄이 도망갑니다. 사탄이 도망을 가요.

뱃속에는 별의별 것 다 집어넣고, 골통에도 별의별 것 다 잡아 넣고는 ‘오! 주의 이름으로’ 하며 암만 외쳐 보십시오. 그게 되는가 안 됩니다. 심정적인 기준이 서기 전에는 안 됩니다. 자기 마음대로 문서장을 만들어 하나님 앞에 가서 내가 당신의 아들이요, 혹은 딸이요 하면 통할 것 같습니까? 천만부당합니다. 내가 알고 믿기에는, 아버지를 부르는 게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심정의 기준을 갖고 영계의 모든 것을 부릴 수 있고 명령하여 움직이게 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게 되면 사탄이 도망갑니다. 그런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심정적인 주도권을 가져야 합니다. 그것이 원칙입니다.

그런 아들딸이 이 땅 위에 태어나면 땅 위에 있는 전세계 기독교인 즉, 제2이스라엘은 지배당합니다. 그런 날에야 통일의 역사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지배받는다는 거예요. 아무리 찧고 까불고 별의별 짓을 다 해보라는 거예요. 결국에는 자기가 패하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통쾌할 것 아닙니까? 그래야 진정한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능력으로 승패를 결정하는 분이라면 그런 하나님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 말입니다. 그런 하나님이라면 복귀섭리하는 데 6천년까지 걸리지를 않습니다.

9-74
심정을 중심삼은 무리가 주관하는 세계
하나님이 동할 때 동하고 정할 때 정하며, 하나님이 슬퍼하실 때 슬퍼할 수 있는 아들딸, 하나님이 울면 하염없이 울 수 있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면 자기 체면을 생각지 않고 춤을 출 수 있는 아들딸이 되어야 합니다. 아까 기도할 때 송장로가 허허 웃었는데, 그것을 처음 본 사람들은 우스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웃은 사람이 오히려 우스운 사람입니다.

심정의 해원을 완결짓기 위한 복귀역사는 여러분을 기점으로 하여 시작되는 것입니다. 심정의 복귀는 천상도 아니요, 세계도 아니요, 여러분의 심중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어마어마합니까? 천상세계가 아닙니다. 이 세계도 아닙니다. 여러분의 마음입니다. 심정의 해원을 완성한 자리는, 개체는 전체의 가치를 그리워하고 전체는 개체의 가치를 노래할 수 있는 자리입니다. 예수님도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다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심정적인 기준을 중심삼고는 그 가치가 작더라도 시간과 공간과 거리의 한계를 넘어서서 전체의 가치와 늠름히 견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머리카락 하나를 억천만금의 다이아몬드보다 더 좋아합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그런 기준을 가진 자는 하늘의 소유입니다. 그런 인연을 가진 자 앞에서는 암만 가지 말라 해도 사탄이 도망 안 갈 수 없습니다. 천륜의 법도가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심정이 인연된 아들딸이 나타나 그 아들딸에 의해 빚어진 가정, 그 아들딸에 의해 빚어진 나라, 그 아들딸에 의해 빚어진 세계가 되어 우리 아버지가 만왕의 왕이 되고 영원무궁토록 주권자가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그분의 아들딸이 되어야 합니다. 심정의 아들딸, 역사적인 아들딸이 되어야 해요. 심정은 천년 전이나 만년 후나 마찬가지예요.

6천년 동안 돌고비 걸음을 치고, 종종걸음을 치며 산과 험한 골짜기를 개의치 않고 허덕여 나오신 하나님입니다. 그 하나님의 한이 우리대(代)에서 풀어지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것을 풀려면 먼저 역사적인 심정을 알아 가지고 참부모와 참부부와 참형제의 심정을 가지고 아버지를 붙들 수 있어야 합니다. 그 기쁨은 천상의 기쁨이 아니라 지상의 내 몸이 노래할 수 있는 기쁨, 체휼적인 기쁨입니다. 내 일신의 가치가 우주적인 가치가 되어 ‘나를 따르라’하면 ‘오냐, 내 너를 따라가마. 내 너를 찬양하마’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기준에 설 수 있는 아들딸이 생겨나야만 천지만물을 지어 놓고 축복해 주신 하나님의 소원이 성사되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타락한 인간을 다시 찾기 위한 하나님의 한스러운 심정이 해원되는 것이며, 비로소 사랑하는 아들딸을 품에 품고 사랑할 수 있는 자유동산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제1관문은 참부모입니다. ‘잠들어 있는 인류여, 깨어라!’하고 외쳐야 할 때는 왔습니다. 6천년 전에 잃어버렸던 참부모가 이 땅에 다시오십니다. 하늘은 그 부모를 보내 주시기 위해, 사랑하는 아들을 선물로 보내 주시기 위해 그토록 애를 쓰신 것입니다. 그 부모를 보내 주시기 위해 사탄의 철망을 뚫고 지옥 밑창을 뚫어 나가고, 선두에서 피를 흘리고 매를 맞고 업신여김을 당하시며 절통해 하시고 통곡하며 나오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6천년 동안 심정에 굶주린 대주재요, 대왕으로서 지금까지 허덕여 나오신 하나님이심을 똑똑히 알아야겠습니다.

그 하나님을 위로해 드려야 되겠습니다. 그 하나님은 세상만사를 한꺼번에 다 심판해 버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셨으나, 당신의 목적이 있고 당신의 소원과 소망이 이 땅 위에 있는 연고로 그것을 바라보며 참고 또 참고 또 참아 나오신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그런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불러야 합니다. 이름만의 하나님이 아닌 심정의 하나님을 아버지라 불러야 돼요. 그리하여 우리의 혈족 아닌 혈족, 부모 아닌 부모, 형제 아닌 형제들이 세계적으로 동원되어 하늘의 절개를 세울 수 있고, 하늘의 심정과 인연을 맺어 동서고금을 넘고, 민족과 국가를 넘어 천상의 심정을 중심삼고 움직일 수 있는 새로운 주의가 이 땅 위에 나와야 됩니다. 그것이 안 나오면 세계는 깨져 나갑니다.

오늘 여기서 외치는 사람도 그 사실을 알았기에 이러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몰라 가지고는 여러분은 전부 망합니다. 삼천만 민중, 혹은 세계 27억의 인구 가운데에 그것을 알고 행하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나오면 세계는 그 사람에 의해 제패당합니다. 세계는 그 사람의 세계, 그 사람의 민족이 될 것입니다. 세계는 그러한 무리가 주관할 수 있는 세계가 될 것임에 틀림없다고 단정을 내릴 수 있습니다.

9-76
기 도
가고 오신 슬픔의 사정이 아무리 많다 할지라도 그것을 붙들고 우는 것으로 역사는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울 줄은 모를지라도 심정적으로 아버지를 위하여 나서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아버지의 뜻을 인계받고 아버지 앞에 세워진다는 것을 말하였습니다.

이들이 오늘 들은 말씀을 통하여 가슴 깊이 새로운 환희를 맛보고 심정의 놀라운 체험을 하여서, ‘인간의 가치가 이것이구나, 성경의 뜻이 이렇구나, 세계의 인연이 이렇게 된 것이구나, 하늘의 심정의 내용이 이것이구나’ 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말씀의 중심도 이것이요, 인간의 목적도 이것이요, 세계의 목적도 이것이요, 하나님의 목적도 이것이라 하였사올진대, 이 기준을 가지면 하나님도 상봉할 것이요, 세계인류도 상봉할 것이요, 민족도 상봉할 것이요, 형제도 상봉할 것이요, 부모도 상봉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아버지, 오늘 저희들이 어떠한 자리에 있습니까? 듣고 보니 애달픈 사실입니다. 이것을 체휼하지 못하는 자는 안타까울 것입니다. 생명을 걸고 이 길을 달려가서 아버지의 심정을 체휼하지 않으면 사랑의 세계가 내 앞을 가로막는다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탄식의 한이 저희 개체를 휩쓸고 세계를 휩쓸고 있는 이 때에, 부디 심정의 기준만은 천리원칙과 함께 불변의 중심으로 갖추어 세상을 비웃고, 사탄세계의 권한을 비웃으면서 하늘과 더불어 즐길 수 있는, 천국의 심정기준을 완성한 아들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오늘 이같은 자리에서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것도 40생애 노정에서 마지막입니다. 이 한 시간을 계기로 하여 내일은 광명의 한날이 저희 앞에 허락되기를 간절히 원하올 때에, 모든 말씀 주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