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38 to 9-343오셨다 가시는 예수

오셨다 가시는 예수
1959.06.21 (화), 한국 전본부교회

9-338
오셨다 가시는 예수
창세기 2:1-25 마태복음 27-44

[기 도(Ⅰ)]

이날은 아버지의 심정세계를 생각할 수 있는 한날로 세워 주시옵소서.

지금은 복귀섭리노정으로 볼 때 40고개를 넘어야 할 원한의 때이옵니다. 더우기나 이 달은 이 민족이 잊지 못할 6월이옵니다. 오늘이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후 부활하신 날로부터 66일이 되는 날인 것을 생각할 때, 이 한날을 저희들이 아버지 앞에 고이 바쳐 드리고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모셔 드리며, 있는 정성을 다 기울여 아버지 앞에 경배드려야 함을 느끼게 됩니다. 하오니, 아버지,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이 날은 이 달의 셋째 주일이옵고, 21수를 대신한 기억해야 할 날이오니 복귀섭리노정에 있어서 아버지의 뜻과 심정을 통할 수 있는 날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불충스럽고 부족한 몸들이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었사오니 저희 자신들이 아버지 보시기에 부끄러운 모습임을 깨달을 수 있게 하여 주시옵고, 아버지의 영광의 은사를 대할 수 있는 심정조차도 준비되지 못한 것을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땅을 대하여 슬퍼하신 지 6천년, 그 동안 아버지께서 사탄의 참소조건을 막지 못하여 서러워하시면서도 슬픔의 역사를 엮어 나오신 것은 아버지 당신을 위함도 아니었사옵고, 선조들을 위함도 아니었사옵고, 이 끝날 하늘의 모습들을 찾기 위한 것이었음을, 오늘날 저희들을 위한 것이었음을 아옵니다. 이런 것을 생각하면 아버님, 저희들은 감히 당신 앞에 나설 수가 없사옵니다. 섭리역사노정에서 수고하신 서글픈 아버지를 감히 대할 수가 없사옵니다.

그러나 아버지께서 오라하심에 왔사옵고, 불러 주시고 세워 주심에 이렇듯 감히 이 자리에 섰사오니, 오라 하신 그 말씀이 원한이 되지 말게 하여 주시옵고, 불러 세우신 그 뜻이 원한이 되지 않게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뜻을 위해서는 많은 무리가 필요하지만 아버지의 심정을 통하지 못하는 무리는 필요치 않다는 것을 아옵니다. 아버지의 심정 속에 깊이 기억된 자가 많지 않다는 것 또한 알고 있사옵니다.

저희 안에 아버지께서 계시고 아버지 안에 저희가 있어 아버지와 저희들이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생명의 인연에 엉클어지는 이 시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소수의 무리가 모였사옵니다. 저희의 몸 마음을 주관하여 주시옵고, 저희들의 머리머리, 심정심정을 연결시키어 아버지 것 아닌 것이 없게 하여 주시오며, 심정을 통하여 주관하고자 하시는 아버지의 그 간곡한 심정으로 저희를 직접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심정의 인연을 맺지 못하고는 아버지 앞에 설 수 없음을 알고 있사오니 오늘 저희들 모든 것을 버릴지라도 아버지의 심정을 통할 수 있는 간곡한 마음만은 고이 간직하여, 이것을 천적인 것이라 자랑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기를 원하옵니다.

세상적으로 볼 때는 심정의 소유자가 슬프고 외로운 것처럼 보이지만, 아버지의 뜻을 이루어 나가는 데 있어서는 심정의 소유자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이 시간 저희들 아버지 앞에 엎드렸사오니 긍휼히 여기시어 아버지의 심정을 통할 수 있는 은사의 분위기로 이끌어 주시옵소서.

억천만 사탄들이 이 시간도 저희를 조건삼아 하늘 앞에 참소하고 있는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간곡한 마음만이 그 모든 것을 막을 수 있고 제거시킬 수 있다는 것을 아오니 이 시간 모인 저희들에게서 아버지의 손길을 거두지 말아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하오며, 천천만 성도와 천군천사가 옹위하는 가운데 아버님의 새로운 기쁨의 은사를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민족을 대신하여 모이는 수많은 교단 위에도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외로운 심령을 붙안고 숨은 제단을 쌓아 하늘의 때를 염려하며 기도하는 당신의 아들들도 많을 줄 아오니 머리 숙여 호소하는 곳곳마다 아버지의 손길을 펴 주시옵소서.

천상에서 원한을 품고 유리하고 있는 수많은 영인들이 이 땅 위에 탕감의 기틀을 닦고자 하는 것을 저희들이 알게 하여 주시옵고, 이 천지를 화동하게 하는 중심 역사를 저희들이 종결짓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러한 전체의 사명을 저희들이 절실히 느껴 이 한 시간, 아버지 앞에 경배드릴 수 있게 축복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이 시간 참석하지 못할 식구들도 있사오니 그들도 일률적인 은사로써 주관하여 주시옵고, 사랑의 품에 품어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오며, 남한 각지에 널린 외로운 식구들 심정심정이 통할 수 있게 하나의 심정으로 묶어 주시옵기를 간절히 원하옵나이다.

첫시간부터 끝시간까지 사탄이 틈타지 말게 주관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오며, 주의 이름으로 기도하였사옵나이다. 아멘.

9-340
기 도(Ⅱ)
찾아나온 길이 아무리 험하다 할지라도 인간이 가다 남긴 길이니 인간이 책임지고 가야 할 길임을 아옵니다. 슬픈 심정을 남기고 가신 십자가의 노정이 이 땅 위에 남아 있는 이상 저희들은 슬픈 심정을 품고 싸움을 거듭하며 골고다 산정을 향하여 달려가지 않으면 안 될 처참한 운명에 놓여 있는 것 또한 잘 알고 있사옵니다.

아버님은 저희들을 버릴 수 없고 저희들은 아버지를 붙들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고 창조주 하나님 아버지 당신과 인간인 저희들의 인연을 무시할 수 없기에 저희들이 아버지 대신 수고하지 않으면 안 되겠사옵니다. 하온데 도리어 당신 앞에 자신의 슬픈 사정을 아뢰지 않으면 안 될 입장에 있는 저희들을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의 슬픈 사정을 인간 앞에 털어 놓을 수 있는 한날이 어서 와야 할텐데 그날이 오지 않아 인간을 대한 슬픈 사정을 홀로 끌어안고 계시는 당신의 심정을 저희들은 아옵니다. 원컨대 아버님, 당신의 그 슬픈 사정을 털어놓을 수 있는 대상으로 저희들을 불러 주시옵소서.

심정심정을 털어놓아 저희들이 당신의 자식임을 알고 당신이 아버지임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저희가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를 수 있고 아버지께서 저희를 자식이라 부를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러한 영광의 한날이 오기를 하늘은 6천년 동안 고대해 오셨사옵고, 저희 선조들도 그 한날을 위해 수천년 동안 싸워 나왔음을 아옵니다. 진정 뼈와 살에 사무치도록 나의 아버지를 불러 보지 못하였사옵고 심정과 뼈살이 녹아지는 자리에서 아버지를 자랑할 수 있는 마음도 가져 보지 못하였사옵니다.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땅에는 수많은 사람이 살고 있으되 아버지의 심정을 헤아리는 자는 없사옵고, 하늘에 수많은 놀라운 일이 있다 하나 하늘을 중심삼고 놀라운 일이 일어나지 않은 것을 아옵니다. 역사에 남아지고 기억될 일이라 할진대 아버지께서 움직이시지 않은 것이 없다는 것을 저희들은 아옵니다. 역사노정을 회고해 볼 때 슬픔으로 얼룩진 노정이었사옵고, 저희의 선조들이 유린되고 지극히 고된 십자가 고개에서 쓰러진 처참한 역사였다는 것을 아옵니다. 이러한 입장에서도 저희들을 대신하여 사탄과 싸우시는 아버지를 체휼할 수 있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고 하늘을 본향이라 부르고 있사오나, 아버지의 심정을 아는 자는 없사옵고 아버지와 영원한 인연을 맺은 자도 없사옵니다. 하오니 저희들이 아버지의 심정을 통하여 아버지와 영원한 인연을 맺어 당신께 생명의 기쁨을 돌려드릴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영원한 이념의 실체로서 아버지 앞에 자랑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고, 심정의 주체로서 아버지를 대신하여 자극적인 충격을 일으킬 수 있는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오늘 여기에 모인 당신의 아들딸들을 굽어 살피시옵고, 그 마음과 몸을 장중에 쥐시옵고 사망의 권한과 생명의 권한을 갈라 세워 주시옵소서. 저희의 마음에 아버지께서 원치 않으시는 악의 요소가 있사올진대, 아버지시여, 제거하여 주시옵소서. 생명의 권능으로 나타나시어 저희의 모든 것을 성별시켜 주시옵고, 본연의 마음을 일으켜 아버지의 심성과 본질에 화할 수 있는 기쁨의 시간으로 인도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감히 아버지 앞에 설 수 없는 부족한 몸들이오나 긍휼의 아버지, 사랑의 아버지 앞에 엎드렸사오니 긍휼의 은사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상처받은 손들을 아버지 앞에 벌리고 있사오니 품어 주시옵소서. 상처입은 몸들이오나 아버지 앞에 생축의 제물로 바치고자 하오니 받아 주시옵소서. 아버지, 사탄의 참소 조건에 걸리는 자들이 되지 말고 아버지께서 친히 대할 수 있는 성별된 모습들로서 다시 빚어질 수 있는 당신의 아들딸들 되게 인도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 시간, 아버지, 굽어 살피시옵고 저희들의 심정심정이 화하여 아버지의 품을 닮게 하여 주시옵고, 저희의 사정사정이 아버지의 복귀의 소망을 중심삼고 서로 엉클어져 사탄을 대하여 싸우고자 결심하는 이 시간 되게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앞에 경배드리는 시간이오니 사탄이 틈타지 말게 보호하여 주시옵소서.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님, 불쌍한 삼천만 민족 위에 일률적인 은사를 베풀어 주시옵고, 이 민족을 대신하여 모이는 수많은 교단 위에도 같은 은사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당신의 뜻을 중심삼고 하나로 화할 수 있는 기쁨의 날이 어서 속히 임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외로운 심정을 품고 아버지의 뜻과 아버지의 심정과 아버지의 사정을 알기 위해 토굴이나 혹은 의로운 곳에서 호소하는 아들딸들이 있사올진대, 그들에게까지도 일률적인 은사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이 시간 모든 것을 아버지 앞에 맡겼사오니 저희의 일체가 아버지와 인연되지 않는 것이 없게 하여 주시옵고, 저희의 몸 가운데 아버지의 사정과 인연되지 않은 부분이 없게 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것을 아버지 뜻대로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사탄의 계교에 빠져 아버지께 서러움을 드리는 아들딸들이 되지 말게 주관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오늘 전국에서 행해지는 모든 행사에도 아버지께서 친히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간절히 부탁드리며 주의 이름으로 기도하였사옵나이다. 아멘.

9-343
기 도(Ⅲ)
이 시간 성경 말씀을 대하니 당시의 장면을 연상하게 됩니다. 죄없는 예수님께서 하늘이 보내신 사명을 지닌 몸으로 빌라도 법정에 나타나신 슬픈 장면을, 역사는 이미 지나갔으나 심정으로 다시 회상하여, 그때의 예수의 마음과 몸을 붙들고 눈물지을 수 있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하늘을 품고 땅에 대한 구원섭리의 뜻을 품고 30여 년의 생애를 사신 예수가 자신을 구주로 대해주는 한 사람을 찾지 못하고, 구주로 모셔주는 한 가정을 찾지 못하고, 구주로 따르는 한 민족을 거느리지 못한 채, 한스러운 운명의 날을 맞아야 했던 역사적인 서러움의 날을 회상하게 되옵니다.

저희들은 예수의 심정을 통할 수 있고 예수의 사정을 통할 수 있으며 예수의 소원을 알 수 있어, 그를 대신하여 눈물지을 수 있고 그를 대신하여 공분의 마음에 사무치는 모습들이 되지 않으면 안 되겠사옵니다.

원치 아니한 때에 십자가의 길을 가셔야 했고, 때 아닌 때에 사명을 종결지어야 했던 예수였기에, 할 말도 다 못하고 심정에 세운 비장한 각오와 결심의 행사도 하지 못한 채 한을 남기고, 또 안고 가셨사온데 그 심정을 아는 자가 어디 있사옵니까?

아버지님이시여! 하늘을 우러러 보는 예수의 눈에는 만민을 대한 서글픈 눈물이 고였었고, 죽음을 앞에 둔 그의 초초한 형상은 인류를 대신한 모습이었음을, 오늘날 저희들도 뼈에 사무치게 알지 못하거니와 그 당시의 사람들 가운데도 그토록 처절한 고난을 당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안 자가 없었사옵니다.

제사장 가야바를 위시하여 전체 이스라엘 교단은 예수를 빌라도 법정에 넘겼사옵니다. 새로운 복음의 말씀을 가지고 새로운 생명과 복된 이념과 사랑의 실체로 나타난 예수였사온데, 그 예수를 붙들고 ‘나에게 생명을 나눠 주시옵고, 우리 민족 앞에 새로운 이념을 세워 주시옵고, 고난을 당한 우리에게 생명의 원천을 옮겨 주시옵소서’라고 호소한 생명이 없는 것을 바라보실 때 예수를 보내신 하나님도 예수도 한없이 슬펐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예수를 알고 모셔야 할 민족이 오히려 그를 반대하고 죽음의 길로 내몰기 위해 날뛰었으니 뜻을 품고 온 예수는 얼마나 불쌍하였사옵니까?

하늘의 심정을 통하고 예수의 심정을 통해야 할 민족인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예수께서 민족을 염려해야 했고, 원수에게 끌려가는 예수의 슬픔도 모르고 원수의 장중에서 놀고 있는, 사망권에 있는 민족을 바라보고 ‘아바 아버지여 저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하신 예수의 심정을 저희들이 더듬어 느낄 수 있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십자가라 하면 저희들은 이름만으로만 알았습니다. 예수가 간 골고다 산정이 예수에게 있어서는 지옥이요 죽음의 형장이었던 것을 저희들은 알지 못하였습니다. 하오니 이제는 저희들이 십자가를 생각할 때, 예수의 몸이 찢기는 아픔보다 4천년 동안 쌓여온 하나님의 한의 심정이 찢기는 서글픔이 얼마나 컸던가를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가 십자가에서 살이 찢겨 피를 흘린 것이 서러움이 아니라, 심정을 짜내야 했던 것이 더 서러운 일이었음을 알 수 있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여기에 모인 무리 가운데 진정한 당신의 아들딸이 있사옵니까? 예수가 흘린 피를 무시하고 하늘의 복을 받기를 바라는 자가 있사옵니까? 예수의 심정을 밟고 하늘의 뜻을 대하고자 하는 자가 있사옵니까?

울고 울고 또 울어도 한이 풀릴 수 없는 슬픔의 한날을 기억하고, 예수의 죽음에 대해 끝도 없이 통곡할 수 있는 무리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삼천만 민중이 새로운 이념을 흠모하여 우는 민족은 되나 하늘을 위해서 눈물 흘릴 줄 모르는 민족이 될까봐 두렵사옵고, 수많은 교단이 예수의 심정에서 흘러나오는 눈물의 인연을 거절할까봐 두렵사옵니다.

몰림받는 자리에서 제단을 쌓고 아버지를 부르는 불쌍한 저희들을, 아버지, 긍휼히 보아 주시옵소서. 저희들은 가진 것도 없고 자랑할 아무것도 없사옵니다. 오로지 뜻 대한 심정을 품고 아버지의 마음을 대신하여, 예수의 죽음을 대신하여, 예수의 십자가의 고통을 대신하여, 이 민족을 대표하여 울 줄 아는 저희들이 되지 않으면 안 되겠사옵니다.

아버님, 나라를 붙들고 우는 백성은 그 나라를 사랑하는 무리이옵니다. 분열된 교계를 붙들고 우는 참다운 청년남녀가 고대되고 있사옵니다. 골고다 산정에 생명을 내놓는 한이 있더라도 ‘하늘이여, 민족이여, 세계여, 인류여 남겨진 심정을 길이길이 받들라’고 호소하시던 예수의 심적인 친구가 되게 이끌어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지의 심정을 통한 자라 할진대 아버지의 깊은 심정을 살필 수 있고, ‘아버지여, 나를 제물삼아 이 땅 위에 심판의 조건을 세워 주시옵소서’하시던 예수의 사정을 알 것이옵니다.

오늘 모인 당신의 아들딸들, 마음은 어디에 머물러 있으며, 몸은 어디에 있는가를 스스로 명시하고 슬픈 역사의 흐름에 있어서 나는 어떤 입장에서 움직이고 있고, 어떤 감정과 사정을 갖고 있는가 스스로 살필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슬픈 역사를 되풀이하여 아버님을 반역하는 자들이 되지 말고, 타락으로 말미암아 아버님의 심정에 슬픔이 생겼사오니 당신을 붙들고, 당신과 더불어 슬퍼할 줄 아는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슬픔이 끝나지 않는다 할진대 아버지께서 영광의 시간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고, 아버지의 심중에 사무친 원한과 슬픔을 해원하지 못할진대 천국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사오니, 슬픈 역사를 다 지나가게 하고 역사의 고비고비에 널린 슬픈 사정들을 털어버릴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식구들이 가슴을 헤쳐 놓고 사정사정을 아버님과 연결시키지 않으면 선의 동산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 시간 모였사오니 친히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으로 이들을 권고하고자 하오니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인간의 내용을 갖고 말하지 말게 하여 주시옵고, 전하는 자의 마음과 받는 자의 마음이, 전하는 자의 심정과 받는 자의 심정이 공히 아버지의 심정을 통할 수 있게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부족한 저희들이 아버지 앞에 황공함을 느끼면서 눈물을 흘릴 수 있고 아버지를 붙들고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이 시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 시간도 몰리고 지친 식구들이 외로이 무릎을 끓고 하늘을 향하여 기도하고 있는 줄 아오니 그들의 친구가 되어 주시옵고 그들의 보호자가 되어 주시옵고 그들을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그 마음 그 심정 위에, 아버님, 같이 하여 주시옵고, 아버지께서 대해 주시고 보호해 주심을 느낄 수 있는 시간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나이다.

모든 것을 맡기었사오니 뜻대로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주의 이름으로 기도하였사옵나이다. 아멘.

9-346
말 씀
여러분께 말씀드리고자 하는 제목은 ‘오셨다 가시는 예수’입니다. ‘오셨다가 가신 예수’가 아니라 ‘오셨다 가시는 예수’라는 제목을 가지고 잠시 동안 말씀드리겠습니다.

9-346
신앙, 구원, 구주가 필요한 이유
하나님의 역사는 복귀역사라고 우리들은 말하고 있습니다. 잃어버린 것을 다시 찾는 역사, 타락으로 말미암아 잃어버렸던 인간을 하나님이 섭리로써 다시 찾는다는 것입니다. 타락이 없었던들 구원섭리도 필요없을 것이고, 구주라는 명사도 필요없을 것이고, 절대자인 하나님을 대하여 대상적인 입장에서 해야 할 신앙이라는 것도 필요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신앙이니 구원이니 더 나아가서는 구주니 하는 것들을 필요로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본연의 자체를 잃어 버렸기에 그것을 다시 회복해야 할 조건에 걸려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4천년의 오랜 역사를 거치면서 세워 주어도 믿지 못하고, 이끌어도 방향을 잡지 못하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선지자들을 통하여 민족의 지도자요, 인류의 구주인 메시아를 보내 주마고 통고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가나안 땅을 떠난 그날부터, 애급 고역이 그들 앞에 있고 광야에서 쓰러지는 한이 있어도 메시아가 온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민족을 찾고 국가를 세워 그 국가를 통치하실 수 있는 한날이 오기를 바라고 나왔던 사실을 우리들은 역사를 통하여 잘 아는 바입니다.

이렇게 인도함을 받던 이스라엘 민족, 유대나라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죽으라 하면 죽음의 길을, 어려움이 닥치면 어려움의 길을 가야 할 입장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선민이라고 하여도 그들 역시 타락의 후손인 연고로 이끄시는 하나님의 심정과 일치된 입장에 서지 못하였습니다. 우리들은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지요.

9-347
하나님이 찾으시는 민족, 국가, 백성
하나님이 찾으시는 것은 무엇이뇨? 그냥 외적으로 민족의 형태만 갖춘 민족을 고대하는 것이 아니고 외적인 형태만 갖춘 국가를 고대하는 것도 아닙니다. 민족이 있으면 그 민족을 움직일 수 있고, 국가와 주권이 있으면 그 국가의 주권을 움직일 수 있는, 심정으로 연결된 하나의 주권과 하나의 민족과 하나의 백성을 하나님은 고대하시는 것입니다.

선민이라면 그들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알고, 자신들을 어떤 목적을 위해 세우셨는지를 분명히 알았어야 했습니다. 그리하여 어떠한 고난에 부딪치고 어떤 환난이 닥쳐도 그것을 밀고 나가야 했습니다. 이런 것이 당신의 이스라엘 민족이 취해야 할 태도였으며 하늘을 대하는 심적 기준이었습니다.

그러나 선민임을 자랑하던 이스라엘 민족은 역사노정에서 하늘 앞에 많은 죄를 졌습니다. 물론 그 시대에 대한 범죄보다도 그 시대를 움직이고 있는 하나님의 심정에 대한 범죄가 컸다는 것을 우리들은 먼저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인간을 복귀하는 데는 무엇부터 복귀해야 할 것인고? 소원도 소원이거니와 사정, 더 나아가서 심정을 복귀해야 할 것입니다. 끊을래야 끊을 수 없고 나눌 수 없는 심정의 세계를 복귀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하늘은 지금까지 그 한날을 바라보면서 역사의 고비고비마다 배후에서 심정의 터전을 넓히기 위해서 수고하셨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오늘날 우리들은 알지 않으면 안 될 것이요, 이것을 몰랐던 선조들에 대하여서는 공분의 심정을 품고 항의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우리가 여러 가지 사정에 엉클어진 생활환경에서 산다 할지라도 그것은 결국 다 지나가고 마는 것입니다. 아무리 땅 위에서 행복한 생을 살았다고 자신의 영락(榮樂)을 노래하는 자가 있다 해도 그것은 다 지나가 버리고 말아요. 그렇지만 일생 동안 어떤 사명을 붙들고 살아간 사람이라면 그에게는 남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사정이 아니라 사정을 지배할 수 있는 심정입니다. 이 심정이 역사를 지배하고 민족 정신을 고취시켜 나오며 사상을 연결시켜 나온다는 사실을 우리는 부정할 수 없습니다.

9-348
인간을 복귀하는 데 있어서의 선결 과제
이제 끝날에 하나님이 찾고자 하는 것이 심정적인 기준이라 할진대 ‘심정의 참된 주인이 되시옵소서’ 할 수 있는 참다운 아들이 있어야 됩니다. 그런 아들의 모습을 대하여 ‘내 사랑하는 아들아’ 할 수 있는 날이 오지 않는다 할진대, 심정을 중심삼은, 천상과 지상을 대표한 아들과 딸이 세워지지 않는다 할진대 예수가 오셨던 것도 헛것이요, 6천년 동안 섭리하신 하나님의 섭리도 헛것이요, 인간을 위하여 행복의 이념을 세워 놓았던 사실도 헛것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본문의 말씀을 보아 예수는 인간을 위해 오신 것이 아니요, 천태만상의 고난의 길을 가기 위하여 오시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늘의 황태자요 만민의 구주요 온 피조세계의 주인공으로 오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를 하나님의 심정을 대신한 분으로, 하나님이 자랑할 수 있고, 만민의 심정을 대신한 분으로 만민이 추앙할 수 있으며, 만물의 심정을 대신한 분으로 만물이 노래할 메시아, 구주로 보내셨던 것입니다.

예수의 생활환경은 하늘의 심정을 중심삼고 노래할 수 있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와 반대였습니다. 예수는 그런 환경에서도 하늘과 땅을 대신하여 만민 앞에 나서야 할 자신의 사무친 심정이 어그러질까봐 분해도 분한 표시를 못했습니다. 슬퍼도 슬픈 표시를 못하고 억울해도 억울한 표시를 못했습니다. 예수에게 자비심이 많아서, 긍휼의 마음이 많아서, 용납의 마음이 많아서 말하지 못한 것이 아닙니다.

만민을 총합한 실체로서 천상으로부터 지상에 온 예수는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해 버리면 죄악된 세상에 조건이 잡힐 것이고, 움직이고 싶은대로 움직여 버리면 사탄의 참소 조건에 걸릴 것이기에 그랬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대하시는 예수의 심정과 주인으로 세워 놓은 예수가 백성을 대하는 심정과 만우주를 대하는 심정, 이러한 심정 문제에 어떤 흠이 될 수 있는 조건이 남아질까봐 염려하는 마음이 컸기 때문입니다. 예수는 원수까지 사랑하라 하였고 원수를 대하여 복을 빌어 줄 수 있는 아량을 가지 분이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기독교의 역사가 사랑만을 중심삼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도 사랑을 중심삼고 자비와 은사만으로 대해 주시지 않는다는 것을 미리 알려주셨습니다. 그러기에 심판날이 오는 것입니다.

9-349
심판날은 언제인가
그러면 심판날은 언제인가? 우리의 사정을 호소할 수 있는 날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위하여 얼마만큼 수고하셨고, 얼마만큼 곡절을 가지셨고, 우리를 찾기 위하여 얼마만큼 참으시고 수고하셨던가를 깨달아, 간곡한 심정으로 통곡해야 할 날이 심판날입니다.

오늘날 기독교 신자들의 신앙관으로는 심판날이 자기들의 사정을 노래할 수 있는 날인 줄 알지만 아닙니다. 주를 상봉할 수 있고 즐거운 마음으로 하늘 앞에 경배할 수 있는 날인 줄 알지만 아닙니다. 그것들은 다 지나갑니다. 바울이 말하기를 ‘믿음과 소망과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전 13:13)’ 하였거늘, 천상과 인연되어진 자, 심정에 화하여 하늘을 우러러볼 줄 알고 그 심정에 동하여 예수를 붙드는 자를 예수도 고대할 것이고 하늘도 고대할 것입니다. 그런 자를 찾아 세우는 날이 6천년 종말시대에 있을 심판의 날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인간을 대하여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나는 너희의 아버지이고 너희는 나의 아들’이라고. 또 예수는 말씀하시기를 ‘나는 너희의 신랑이요, 너희는 나의 신부’라 하였습니다. 더 나아가서는 ‘너희는 나의 친구’라 하였습니다. ‘네 피살을 다 뿌리면서 원수를 위해 복을 빌라’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말씀들은 무엇을 근거로 하신 것인고? 천상에 사무친 천적인 심정을 대하는 예수에게는 민족을 붙들고 그 민족을 대신하여 하지 않으면 안 될 책임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기쁘고 행복스러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슬프고 원통스럽고 분한 것을 책임져야 했던 것입니다. 분한 역사를 대신하여 홀로 싸우겠다는 심정이 앞섰기에 배반한 민족을 붙들고 기도하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자신을 몰아내는 모든 반역자들을 위해 변명하던 예수의 심정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역사는 그냥 지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2천년 전의 예수를 회고해 볼 때, 그는 한낱 청년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당시의 어떤 제사장이나 교법사나 서기관들의 눈에 띌래야 띌 수 없는 미미한 존재였습니다. 그는 많이 배우지도 못했습니다. 그는 목수의 아들이었고 그의 형제들도 그가 메시아인지 몰랐습니다.

그와 같은 입장에서 볼 때 그는 세례 요한만도 못하고, 규례를 지키는데 있어서는 유대교인만도 못하고, 행동하는 데 있어서는 교법사만도 못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 예수가 어떻게 만민의 메시아가 될 수 있었으며, 만우주의 구주가 될 수 있었는가? 외모가 훌륭해서 그런 것이 아니요, 그의 배경과 권세가 당당해서 그런 것이 아니요, 그를 옹위하는 대중이 있어서 그런 것도 아닙니다. 단 하나의 조건이 있었으니, 그것은 그가 천륜에 흐르는 골수의 심정을 통하였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역사상의 모든 인류가 그를 메시아라고 추앙할 수 있는 하나의 조건이 되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를 믿되 십자가에 달려 죽어간 예수를 믿었습니다. 피흘리고 죽어간 예수를 믿었습니다. 그러나 정적인 세계에는 사망이 없습니다. 정적인 세계에서는 역사를 초월합니다. 정적인 심정세계에서는 시공을 초월합니다. 하늘의 심정이 동할 때 천지가 움직여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것은 창조의 원칙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되 십자가의 심정을 믿을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믿는 성도를 그리워해야 되겠습니다. 십자가의 심정을 전해주는 하나의 교직자가 필요한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인간의 타락으로 인해 엉클어진 사정과 소망에 관한 문제들은 하나님이 천만번 용서하고 지나갈 수 있으되 심정문제에 들어가서는 절대 용서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9-351
알아야 할 예수의 심정
우리 성도들이 십자가를 믿고 천정과 인연맺기 위하여 나섰다 할진대 예수의 서러운 사정을 붙들고 울어야 되겠습니다. 울고 싶어도 울지 못한 예수의 심정, 분하고 통분한 자리에서도 원수를 위하여 기도해야 했던 그 심정, 만 우주의 주인공으로 오셨다가 만상을 버리고 가면서 다 이루었다고 하신 예수의 심정을 알아야 합니다.

66권의 성경말씀 가운데에서 역사적으로 흘러나온 하나님의 심정을 제거시킨다는 것은 말도 안 됩니다. 그렇게 되면 말씀의 가치는 없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4천년의 복귀섭리를 붙안고 왔던 예수는 슬픈 사람이었습니다. 왜? 가정이 없어서가 아니요, 부모나 친척이 없어서가 아니요, 민족과 나라가 없어서가 아니었습니다. 땅 위에 심정의 인연을 맺지 못했기 때문에 불쌍하다는 거예요.

그런 경지에 들어가 예수의 사정을 더듬어 보면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에 나는 새도 깃들 곳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눅 9:58)’하신 그 마음을 가히 헤아릴 수 있습니다. 동분서주하며 발걸음을 재촉하였으나 어느 한 곳에서도 자신의 심정을 털어놓을 수 있는 안위의 한 시간을 갖지 못한 예수였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들, 믿으라 하는 권고의 말도 좋고 믿는다 하는 것도 좋지만 하나님의 심정을 염려하는 신앙생활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우리는 어디를 거쳐 가야 될 것인가? 예수가 왔다 간 후 6천년 역사의 종단시기에 처해 있는 여러분, 이제 심정 문제에 있어서 천정을 대신하여 하늘을 붙들고 여러분을 변명해 줄 수 있는 친구를 가졌습니까? 그리고 예수는 자신이 신랑이고 여러분이 신부라 하였는데 과연 사지(死地)에 나가서도 변명할 수 있는 신랑 신부의 인연이 맺어져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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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거쳐가야 할 자리
여러분들은 신앙을 통하여 하나님을 아버지로 알고 있고 아버지라 부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아버지의 심정이 여러분의 마음에 있고 그 아버지의 감정이 여러분의 마음에 느껴집니까? 이것이 중요합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예수가 왔다 간 후 2천년이 지났고, 아담 이후 6천년의 역사가 흘렀는데 하나님으로부터 선조로부터 예수로부터 이 시대를 거쳐 영원히 계속될 아버지의 심정을 가로맡아 ‘아버지, 제가 아버지의 심정을 대신하였으니 어느 누구도 저를 무시할 수 없습니다’ 할 수 있는 아들 딸이 땅 위에 나타나지 않는다 할진대 복귀섭리과정에서 하나님이 세우신 종적인 인연들은 모두 무효로 돌아간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볼 때 예수가 제일 분하고 억울하고 슬펐던 때는 언제였는가, 제일 어려운 때는 언제였는가를 알아 그것을 붙들고 그 심정에 동하여 우는 자가 되어야겠습니다. 그런 자가 있다 할진대 그는 지옥 갈 수 없습니다. 성경 66권의 말씀을 다 몰라도 그것을 배워야 됩니다.

나타낼 수 없는 우주적인 심정을 지녔던 예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만민의 구세주인 예수의 심정을 통하였다 할진대 그의 슬픈 사정과 어려운 사정과 고통스러운 사정에 눈물지을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오른편 강도는 죽음을 앞에 둔 예수의 심정을 알아 주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는 그에게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23:43)” 하는 긍휼의 말씀을 하셨던 것입니다. 이는 마음적인 면에서 예수의 고난에 동참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기독교 신자는 무한히 슬퍼할 줄 알아야 합니다. 왜? 예수가 아직까지 기쁜 날을 보지 못하셨고, 하나님도 아직 기쁜 날을 보지 못하셨기 때문입니다. 슬프고 억울하고 분하고 고통스러운 역사노정을 거쳐 나온 하나님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 역사를 청산하고 해원성사하여 기쁨의 한날, 영광의 한날을 세워야 되겠습니다.

그것을 이루기 위해 허덕이는 무리들은 가는 곳곳마다 눈물이 앞서는 것입니다. 그렇게 눈물이 앞서고 자기의 사정을 넘어 마음이 하늘을 향하여 움직이는 자가 되어야만이 하늘 앞에 가까운 신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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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가 가르쳐 주고 싶었던 것
예수는 2천년 전에 이 땅 위에 유대교를 찾아 오셨습니다. 택한 백성 앞에 약속한 대로 뜻을 이루기 위해 오셨던 것입니다. 무엇을 갖고 오셨던가? 그 당시 이스라엘 민족 앞에 무엇을 가르쳐 주고 싶어했던가? 인간이 타락한 그날부터 자신이 올 때까지의 역사적인 하나님의 심정을 가르쳐 주고 싶어하셨습니다. 역사적인 심정이 이러이러하기에 이러이러해야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심정의 인연을 맺어 소망하는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 미래적인 심정을 현실 생활권내로 끌어들여와 하나님 대신 하나님이 바라는 동산을 건설하기 위하여 오셨던 예수입니다.

이렇게 예수는 우리 선조들 앞에 나타났습니다. 천상의 심정을 대신하여 애절한 마음을 갖고 민족을 품기 위해 오셨던 것입니다. 그러한 심정을 유업으로 상속해 주기 위하여 오셨어요. 예수는 이렇게 오셨다가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제대로 입지도 못하고 살다 가셨습니다(이어진 녹음테이프가 없어 이후의 말씀은 싣지 못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