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31 to 8-353: 아버지,나는 무엇을 하였나요

아버지,나는 무엇을 하였나요
1960.02.28 (일), 한국 전본부교회

8-331
아버지, 나는 무엇을 하였나요
마태복음 25:1-46

[기 도]

아버지 ! 저희들은 남루한 옷을 입고 추한 모습으로 본래의 자기 집을 찾아 안방에 들어온 탕자와 같사옵니다.

아버님께서 잃어버린 아들딸을 그리워하신 것이 6천년이었사옵고, 저희도 6천년을 사탄에게 유린당하여 왔사옵니다. 아들딸을 찾기 위해 허덕이신 아버지의 안타까운 심정을 저희가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모양이야 추하든, 얼굴이야 어떻든 아버지를 알아보는 아들딸을 원하셨 사오나, 아들딸이면서도 아버지를 알지 못하는 자들을 붙들고 서글픈 역사노정을 걸어오신 아버지 앞에 저희들이 무슨 말을 하오리까. 이제 저희는 이 땅 위에서 그 무엇을 원치 않사옵고, 아버지를 아버지로 알아볼 수 있는 그 한 가지가 저희의 소원이옵니다.

아버님, 지금 성경 말씀을 보았사옵니다. 그러나 그런 말씀을 하신 예수님의 간곡한 사정을 그 누가 알았사오며, 서글픈 심정을 그 누가 알았사오며, 한스러운 심정을 그 누가 알았사옵니까? 그 예수는 만민의 구주요 만민의 참아버지였으며, 만민을 구하기 위한 싸움의 대표자요, 사탄의 조롱을 받은 대표자였고, 또한 십자가를 지고 가신 한스러움의 왕자요. 고난과 핍박 중에서도 눈물을 머금고 하늘을 위로하던 고통의 왕자였음을 저희들은 몰랐사옵나이다.

여기에 참여한 당신의 아들딸들, 어떠한 인연에 의해서인지 모르나 이마을 저 마을, 이 골짝 저 골짝, 이 골목 저 골목을 지나다 만나게 되어 여기에 모였사옵나이다. 아버지 ! 이제 이들을 붙들어 주시옵소서. 하시고 싶은 말씀을 하실 수 있는 마음의 터전을 이루어 주시옵소서.

아버님, 저희는 세상에서 많은 말씀을 들었사옵니다. 배우고 배워서 많이 알고 있사옵니다. 말도 누구 못지 않게 할 줄 압니다. 그러나 아버지를 애타게 그리워하는 마음이 없사옵니다.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이자리에 선 저희는 그 무엇을 자랑하기를 원치 않사오니, 아버지, 잊을래야 잊을 수 없고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심정의 인연을 이 시간, 맺을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것은 하늘의 소원인 동시에 저희들의 소원이옵니다. 이것이 이루어진다 할진대 천만의 믿는 무리들이 필요치 않사옵니다.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머리 숙여 흐느껴 우는 것이 무엇보다 귀한 것임을 저희들이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눈물겨운 역사과정을 거쳐온 아버지를 통곡하면서 위로해 드려야 할 저희들임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를 모시고 싶사옵고, 아버지를 대하고 싶사옵니다 아버지께서 남기신 슬픔과 고난의 길을 저희에게 다 맡기시고, 골고다의 험한 그 길을 다맡겨 주시옵소서. 아버지께서 평탄한 길을 가실 수 있도록 이 몸이 길이 되고, 이 몸이 발판이 되겠습니다’라고 할 수 있는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지 ! 이제 당신의 아들딸들이 모였사오니, 이 시간이 헛되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죽었던 자가 다시 살아나는 시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절망 가운데 있던 자가 소망을 가질 수 있고, 사망세계의 속박에서 허덕이던 자들이 자유의 해방을 맞이하는 시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심정의 중심을 잃고 아버지를 알지 못하던 자들이 다시 그 중심을 세워서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이 시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제 아버님의 말씀을 전하고자 하오니 뜻대로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전하는 자의 마음과 받는 자의 마음이 하나가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는 저희의 것이 아니오라 당신 것이오며, 저희에게 속한 모든 것도 저희의 것이 아니오라 당신께 속한 것이오니 당신께 돌려드릴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늘이 움직이는 대로 저희가 움직여서 하늘이 동하면 저희도 동하고, 하늘이 정하면 저희도 정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한스러운 모든 것을 청산 하고 아버지의 생명권내에서 그 영광을 노래하고 기뻐할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시옵고, 은사로써 품어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모든 것을 아버지께 맡기오니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 외로운 식구들이 아버지 앞에 호소하고 있는 줄 알고 있사오니,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주의 이름으로 기도하였사옵나이다. 아멘.

8-333
말 씀
여러분께 드리려 하는 말씀의 제목은 ‘아버지 ! 나는 무엇을 하였나요’ 입니다. ‘아버지, 나는 무엇을 하였나요’ 이러한 제목을 가지고 잠깐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8-333
살길을 찾아 방황하고 있는 우리의 모습
여기에 모인 우리들 모두가 불완전한 사람이며 죄악의 굴레에 속하여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 환경에서 살고 있는 여러분이요, 그런 환경에서 무엇인가를 찾고 있는 여러분입니다. 사람은 무엇을 항상 요구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목구비와 사지백체를 갖추고 있는 한 쉬임없이 움직이는 것입니다. 무엇인가를 찾고 있으며 항상 무엇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간도 여러분은 무엇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비단 여러분 개체에만 한한 것이 아닙니다. 넓게는 이 세계도 그러하고 이 땅도 이 우주도 모두 그러합니다. 창조주가 계시고 어떤 신이 있다 할진대, 그도 무엇인가를 하고 있고 무엇인가를 고대하고 있을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개인과 가정, 나아가서 사회와 국가, 세계, 천주까지 어떠한 인연과 동기 밑에서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부정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 살고 있는 나요 여러분입니다. 자기의 생애를 생애답게 영위 한다고 하며 살아나온 우리입니다. 사방에 자기를 자랑하고 싶은 마음을 갖고 살아나온 우리입니다.

그럼 오늘이 있는 반면에 지난 날이 있고, 오늘이 있는 동시에 내일이 있다는 것을 아는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너는 무엇을 하였느냐’ 하고 누군가 묻게 될 때 ‘나는 이것을 하였나이다. 당신이 고대 하는 것이 이것이었기에, 나는 과거에도 이것을 위하여 살았고 현재도 이것을 위하여 살고 있으며 미래에도 이것을 위하여 살고자 하나이다’ 하고 자신있게, 자랑스럽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과거에도 그런 사람은 없었고 현재도 없다는 것입니다.

만일 그러한 사람이 있었다면 세계는 이렇게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늘이 우리와 이렇게 무심한 관계를 가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비록 적은한 개체라 할지라도 전체를 대신하고, 우주를 대신하여 답변을 할 수 있는 승리의 모습이 이 땅 위에 나타났다 할진대, 우리는 이같이 한스러운 생활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가슴속을 헤치고 헤쳐 보아도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한스러운 곡절이 연속되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밖을 보게 될 때도 그렇습니다. 천지가 그런 환경에 놓여 있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자기의 일신을 수습하여 대우주 앞에 나아가야 하는 것이 타락한 인간의 서글프고 고통스러운 생애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슬픔과 고통을 크게 느끼고 울고 있는 자가 어디 있는가? 그런 자를 찾는 것이 하늘이 라는 것을 여러분들은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는 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무엇인가 하고 있습니다. 가야 하고, 해야할 운명에 놓여 있는 이 일신은 어디에 머물러 있습니까? 행복한 가정에서 쉬고 있습니까? 국가의 어떠한 영광스런 자리에 여러분의 몸을 앉혀 놓고 있습니까? 그곳이 우리가 머물 정착지가 아닙니다. 그러기에 마음은 달리라고 재촉합니다. 머무는 곳곳마다 부딪혀 오는 충격이 있게 됩니다. 이러한 가운데서 생명의 안식처, 살 길을 찾아 방황하는 것이 우리의 신세요, 우리의 모습입니다.

여러분은 삼자의 입장에서 자신을 비판해 본 때가 있었습니까? 그러한 모습을 비판도 해 보고, 부등켜 안고 울어도 보고, 몸부림도 쳐 본 입장에서 이래서는 안 된다는 그 무엇을 찾아 세워 가지고 ‘하늘이여 ! 땅이여 ! 이런 것이 없습니까?’ 하고 외쳐본 때가 있었습니까? 없었다 할진대 여러분들은 불쌍한 자리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될 것입니다. 그러한 환경에서 전후 좌우를 헤아리지 못하고 뒤넘이치는 생활을 연속하고 있는 여러분임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의 환경인 동시에 지난날의 환경이었으며 또한 내일의 환경으로도 연장되어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슬프고 슬픈 입장에 여러분이 처해 있음을 깨달은 적이 있습니까? 지긋지긋한 과거였고 오늘도 지긋지긋한 생애이며 내일도 그러할 이 생애를 어이할 것인가? 몸부림을 치고 또 쳐도 해결지을 수 없는 운명에 놓여있는 우리들이라는 것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8-335
아버지, 나는 무엇을 하였나요?
이러한 환경에 처해 있기에 자신도 모르게 ‘나를 구해 주시옵소서’하는 것입니다. 과거를 부정하고 현실을 부정하고 미래를 부정하고 모든 것을 부정하면서 새로운 그 무엇을 찾고자 허덕이는 것입니다. 그것이 종교인들이 가는 길입니다. 종교는 여기에서부터 필요한 것입니다.

예수님도 그러한 길을 걸으셨고 성현군자들 가운데서도 그런 길을 걷지 않은 분이 없습니다. 더우기나 끝날에 처한 우리는 역사의 슬픔을 해결해야 할 자리에 있습니다. 이러한 우리에게 역사의 배후에서 천적인 심정을 연결시켜 주는 무엇이 없다 할진대 우리는 절망일 것입니다.

붙들고 싶어도 붙들지 못하고 해결해 주고 싶어도 해결하지 못하는 비운의 역사노정이, 도(道)라는 표본을 중심삼고 밟히고 찢기고 피흘리는 혈투극을 전개시켜 나오는 하늘의 복귀섭리 노정이라는 것입니다. 과거로부터 지금까지의 한스러운 복귀섭리를 내일에까지 연장시키지 않기 위해서는 이제 우리가 발판이 되어야 합니다. 하늘은 이 시간 여러분들이 이 역사를 해결해 주기를 고대하고 계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과거의 잘못은 과거의 잘못이요 지금의 잘못은 지금의 잘못이로되 내일의 소망을 가져야 할 우리들입니다. 우리는 그 비운의 역사를 하늘을 발판으로 하여 넘어서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엉클어진 일들을 우리의 생애에서 해결지어야 되고, 이 역사노정에서 해결지어야 됩니다. 천지의 창조주가 경영하시는 나라를 통하여, 세계를 통하여, 천륜을 통하여 천정을 통하여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만일 우리가 그러한 것을 알고 하늘을 바라보고 세계를 바라보고 인류를 바라보게 되면 부르짖을 것입니다. 자기의 있는 정열을 다 기울여 외칠 것입니다. 그 일을 위해서는 먹는 것이 문제가 아니요, 입는 것이 문제가 아니요, 몰아치는 핍박과 환난이 문제가 아닙니다. 인간의 심중 심중에 남아지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러기에 자고(自古) 이래로 선을 지향하던 사람 들은 그 뜻을 받들어야 할 사람들한테 배척을 받지 않은 자가 없었습니다. 그 걸음이 바로 하늘이 걸으신 걸음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역사를 붙들고 오늘날까지 전쟁사를 엮어 나오신 하늘은, 앞에서는 공격을 해 나오셨지만 그 배후에서는 하루 한 시간도 마음 놓지 못한 채 쓰러지는 인류를 바라보고 우셨고, 절망에 휩쓸려 탄식하고 있는 인간을 바라보고 서러워하셨습니다. 인류는 그분을 붙들고 서러워하고 울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 분이 있다 할진대 우리는 그분 앞에서 울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 그분 앞에서 울고 난 후에는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그분이 원하시는 일이 있다 할진대 천만번 죽는 한이 있다 할지라도 그 일을 하겠다는 마음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타락한 인간일망정 그것은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러한 역사노정을 거쳐오신 하늘을 위해 무엇을 하였습니까? ‘나는 무엇을 하였나요?’ 문제는 여기에 있습니다. 이러한 하늘의 입장과 내정(內情)을 안다 할진대 ‘나는 아버지 앞에 할 말이 없습니다. 아버지, 나는 무엇을 하였나요? 아버지, 나는 무엇을 하였나요?’하고 통탄해야 합니다. 한스러운 이 6천년의 역사노정에서 불신을 일삼고, 무지몽매 했던 우리의 선조들을 붙들고 나오시던 아버지, 새로운 한날을 세우고 새로운 하나의 모습을 만들기 위하여 6천년을 한결같은 심정으로 나오신 그 아버지를 위해 나는 무엇을 하였나요? 이 손은 무엇을 하였으며, 이 발은 무엇을 하였으며, 이 눈과 이 입은 무엇을 하였습니까? 이 사지백체와 이 모든 감각은 무엇을 하였습니까? 여러분! 이제 이 시간부터는 그런 입장에 서서 아버지를 다시 바라보고 그런 입장에 서서 자신을 다시 분석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지난날의 역사는 나 하나를 찾기 위한 것이었고 나 하나를 세우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내가 하늘 앞에 서는 날이 역사를 하늘 앞에 세우는 날이요, 천지를 하늘 앞에 세우는 날입니다. 아버지께서는 이런 일을 해 나오셨는데도 우리는 아무것도 몰랐던 것입니다. 이 시간 여러분의 마음에는 어떤 느낌이 있습니까? 마음과는 인연맺은 것 같고 사정은 느낄 것 같지만 심정을 알지 못하는 자리에서 허덕이고 있는 자기 자신임을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 사실을 부정한다 할진대 여러분은 하늘을 배반하는 배역자(背逆者)임에 틀림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느껴야 되겠습니다.

내가 있기 전에 선조가 있었고 선조가 있기 전에 하나님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있었기에 선조가 있었고 선조가 있었기에 내가 있다는 말입니다. 또 내 심정이 있기 전에 선조의 심정이 있었고 선조의 심정이 있기 전에 하나님의 심정이 있었으며, 내 인격이 있기 전에 선조의 인격이 있었고 선조의 인격이 있기 전에 하나님의 인격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그 무엇이 있기 전에 선조의 그 무엇이 있었고 하늘의 그 무엇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여러분은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8-337
하늘의 위로를 받을 수 있는 사람
자기 자랑을 즐겨 하는 사람이 있다 할진대 과거의 피어린 충신열사들을 돌아보아야 될 것입니다. 자기의 그 무엇을 호언장담하며 자랑하는 자가 있다 할진대, 현실의 불쌍한 자리에서 선을 찾기 위하여 몰리고 있는 분들을 붙잡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몰리면서도 악한 세상을 이끄시며 사탄과 싸우고 계신 하나님을 붙들어야 된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과거의 선한 사람을 붙드는 동시에 현실의 선한 사람을 붙들어야 합니다. 악한 사탄과 싸우고 있는 하늘을 붙들고, 역사적인 심정과 시대적인 심정을 가지고 뒤넘이쳐 나아가, 승리의 한 점을 이루어 놓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각오를 해야 되겠습니다. 우리는 그런 자리에서 하나님을 본받아야 되겠고, 참선조를 본받아야 되겠습니다.

선한 아버지, 선을 위하여 몰림을 당하고 죽음의 길도 개의치 않던 그 아버지였고, 선을 위하여 죽음과 모욕을 개의치 않던 선조들이었습니다. 하나님과 선조들이 부르짖던 그 선은 지금 어디 갔습니까? 하나님은 한을 품고 계십니다. 선조들은 울부짖고 있습니다. 그 울부짖음은 우리가 살고 있는 지상을 대하여 울부짖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을 대하여 울부짖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닫혀진 마음의 문을 열고 한없이 깊은 곳에서 울려 나오는 참 조상의 울부짖음을 들어 보았습니까? 사랑하는 아들을 부르는 하늘의 한없이 서글픈 음성을 들어 보았습니까? 잃어버린 아들을 찾아 헤매는 하늘의 서글픈 사정을 알아 보았습니까? 우리들은 몰랐습니다. 지난날의 선한 선조들을 동정하며 울 수 있는 그 한날을 그리워해야 할 우리요, 선조와 더불어 앞장서서 피어린 노정을 걸어 나오시던 아버지임을 알아야 할 우리입니다. 그 아버지 앞에, 그 선조들 앞에 여러분은 무엇을 하였나요? 해야 할 일은 남아 있는데 했다 하는 과거를 갖지 못하였고, 해야 한다는 것조차 잃어버린 우리 자신들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안일한 자리에서 스스로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며 살 수 있어요? 아닙니다. 여러분은 다시 마음과 몸을 가다듬어 나의 뒤에는 하나님이 계시고 선한 선조들이 있는 것을 느껴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이 평탄한 길을 걸어오신 것이 아니요, 선조가 평탄한 길을 걸어온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죽음과 핍박과 고통, 더 나아가서는 피와 땀이 연속된 끈을 내 뒤에 달고 있는 것을 여러분은 느껴보았습니까? 여러분을 움직일 수 없게 단단히 얽매어 놓고 이 시간도 부단히 끌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잡혀 있기에 곁길로 가려 해도 갈 수 없는 내 몸이 되었음을 느껴보았습니까? 아니 갈래야 아니 갈 수 없는 나라는 것을 느껴보았습니까?

이런 것을 느껴본 사람은 하나님과 선한 선조의 후손이 될 수 있습니다. 선을 위하여 피어린 노정을 붙들고 나오던 그들이 남기고 간 전통을 상속 받을 수 있는 후손임에 틀림없는 것입니다. 대답하고 싶지 않아도 대답이 나오고, 움직이고 싶지 않아도 움직여지니 어찌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악한 세상을 움직여 나오시는 하늘의 역사인 것입니다. 여러분 앞에서 아버지께서 움직이시고 선조의 혼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들의 정기를 받고 태어난 여러분이기에 그 뒤를 따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들의 느낌은 내 개인의 느낌보다 강하며, 그들의 맥박은 내 개인의 맥박보다 강합니다. 강하니 나를 끕니다. 아니 갈래야 아니갈 수 없는 피어린 그 길, 한스런 그 길을 자기 생애의 노정으로 삼고 갈 수 있는 무리가 이 땅 위에 나와야 됩니다. 그런 무리가 나오지 않는다 할진대, 이 땅은 영원한 심판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여러분 ! 오늘날 여러분들은 한없이 외로운 길을 거치고 거쳐, 오지 못할 곳으로 생각되던 이 자리에 모여왔습니다. 아니 갈래야 아니 갈 수 없고, 아니 생각할래야 아니 생각할 수 없고,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이 인연은 누구로 말미암아 된 것입니까? 여러분은 그것을 압니다. 여기서 말하는 이 사람도 그것을 압니다. 어느 누가 몰림의 자리에 나서고 싶겠습니까? 어느 누가 눈물짓는 외롭고 험한 길을 자진하여 가겠습니까? 그런 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역사는 그렇게 움직여 나왔습니다. 그런 노정을 거쳐 선의 터전을 넓혀 나오는 천적인 움직임에 인연되어 있기에, 자기도 모르게 아니 갈래야 아니 갈 수 없는 운명에 부딪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자가 있다 할진대 낙심하지 마십시오.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천만사의 고통은 훗날의 영광이 될 것입니다. 피어린 곡절에 사무친 일신이 되어 이 땅 위에 서지 못한다 할지라도 그의 심정 깊은 곳에서는 ‘아무개야! 너 괴로와하지 말라. 내가 있다는 것을 너는 알지 않느냐?’하는 위로의 음성이 들릴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본향의 근거지요, 마음의 안식의 터전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나의 아버지는 어찌하여 마음의 밑바닥에서 울부짖는 아버지가 되었습니까?’ 하며 한없이 통곡하고 분해 하며, 한없는 억울함을 느끼는 아들딸들이 많이 나와야 됩니다. 그래야만 하늘의 해원의 역사가 시작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8-339
배반을 반복해온 역사
우리가 믿고 있는 아버지가 영광의 아버지인 줄 알았더니 아니었습니다. 우리들이 모시고 있는, 오셔야 할 주님이 영광으로 오실 줄 알았는데 아닙니다. 가장 밑바닥에 깔리어서 이 시간에도 눈물을 흘리고 고통을 받으며 사탄에게 끌려가고 있는 사랑하는 아들딸의 뒤를 따르고 계시는 아버지입니다. 부모의 심정을 갖고 뒤를 따르고 있는 그분을 돌아보고 눈물 흘린 자가 있습니까? 없습니다. 여러분은 그런 하늘임을 몰랐으나 하늘은 몇천만번 여러분을 대신하였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하였습니까? 나는 무엇을 하였나요? 황공하고 망극한 일입니다. 우리 자신들은 역도(逆徒)의 선봉자임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에덴에서 애지중지 기르시며 부탁하시던 그 음성을 우리는 여지없이 유린하였습니다. 믿고 또 믿고 품으시며 사랑하고 싶어하시던 그 아버지를 그렇게도 생각없이 배반한 우리였습니다. 그런 인간들을 찾기 위하여 복귀의 조건을 세우고 사탄과 판가리 싸움을 해오신 아버지셨습니다. 아벨 제단과 가인 제단을 분리하실 때 아버님의 마음은 얼마나 슬펐겠습니까? 그런데 아벨은 사라지고 가인만이 남았으니, 우리는 가인 제단을 이어 나온 후손인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가인 제단의 동참자입니다.

하늘은 이 한을 풀기 위하여 선조들을 세우시어 불쌍한 생활을 거치게 하셨습니다. 1600년만에 노아를 찾으셨는데, 그분은 불쌍한 분이었습니다. 시대를 역행하는 천적인 사명을 맡은 노아였습니다. 노아에게는 친구도 없었습니다. 동지도 없었습니다. 부인도 사정을 통할 만한 부인이 못 되었고, 자식도 의논을 할 수 있는 자식이 못 되었습니다. 그런 자리에서 명령하신 하늘의 음성을 붙들고 참으며 120년 동안 싸웠습니다. 한에 한이 가해진다 할지라도 그 약속에 대한 절개를 지킨 노아였습니다. 40일 홍수 심판이 지난 후 하늘의 소원을 성취하여야 할 함이 그 뜻을 알지 못하고 불신의 행동을 저질렀습니다. 우리는 가인의 제단에 동참하고 함의 제단에 동참한 무리입니다.

하늘은 천지의 대성업을 완결짓기 위하여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불러 놓고 심정을 기울여 명령하였지만, 하늘의 뜻에 맞게 3제물을 드리지 못하고 실수했던 아브라함이었습니다. 그런 아브라함의 입장을 넘었다고 할자가 있습니까? 바로에게서 끌어낸 60만 대중, 새로운 천지인 가나안 땅을 향하여 활기차게 나오던 그 이스라엘 민족이 하늘을 배반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배반한 그 무리들을 붙들고 애달픈 심정에 북받쳐 본의 아니게 반석을 두 번 치던 모세였습니다. 그런 모세의 입장을 넘어섰다고 할 자가 누가 있겠습니까?

그 뿐입니까? 4대선지 12소선지 등 하늘의 뜻을 받들었던 수많은 선지들의 발을 괴어 주었고, 그들을 품어 주었고, 그들의 울타리가 되어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배반한 선조들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선조의 피를 받은 후손이 여러분이 아니라고 누가 장담하겠습니까?

그래도 하늘은 이 불쌍한 민족을 구해 주시기 위하여 4천년을 하루같이 고대하시다가 사탄을 무찌르고 승리의 개가를 부르기 위하여 메시아로서 예수를 이스라엘 민족에게 보내주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은 이도 여지없이 배반해 버렸습니다.

8-341
고통의 예수를 믿어야 하는 신앙자
우리는 역사적인 예수를 존중하고 있습니다. 역사의 위인인 예수를 믿고 있다는 것입니다. 나는 그것을 원치 않습니다. 우리는 그 시대에 천민이었던 예수를 믿어야 되겠습니다. 몰리고 손가락질 받던 예수, 제사장들이 바알세불을 힘입은 자라고 하던 그 예수를 믿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이른 아침에 성으로 들어오실 때에 시장하신지라. 길 가에서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그리로 가사 잎사귀밖에 아무것도 얻지 못하시고 나무에게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게 열매가 맺지 못하리라(마 21:18∼19)”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저주하실 수밖에 없었던 예수님의 심정을 알아야 됩니다.

영광스러운 예수를 믿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리나 고통스러운 예수님, 몰리시던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없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시면서도 원수를 대하여 ‘아버지, 저들의 죄를 용서하소서’하시며 복을 빌던 예수님, 아버지의 심정과 뜻을 염려하신 그 예수를 믿는 사람은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 오늘 여기에 무엇하러 왔습니까? 여기는 불쌍한 예수꾼이 되기 위한 사람들이 모인 곳입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이 사람은 여러분을 몰리던 예수님의 친구로 만들고 싶은 것입니다. 그러한 길을 가라고 가르쳐 주어야 할 불쌍한 자리에 서 있는 이 사람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저는 이 민족을 대하여 울부짖은 때가 있었습니다. 하늘을 대하여 원망한 때도 있었습니다. 죄인이 있다 할진대 나 이상 큰 죄인이 없다고 울부 짖어도 보았습니다. 남이 모르는 것을 알고 남이 느끼지 못한 것을 느끼고 보니, 기뻐하는 자리에서 가슴을 쳐야 했고 춤추는 자리에서 통곡을 해야 했습니다. 나는 시대적인 죄인인 것을 느껴 보았습니다. 시대적인 배반 자인 것을 느껴 보았습니다. 하늘이 이런 나를 필요로 하기에 한결같이 그길을 걸어 나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엉클어진 심정이 나를 이끌고 있고 붙들고 있기에 오늘 이런 놀음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때로 책망도 하였습니다. 또한 여러분을 붙들고 통곡도 했고 권고도 했습니다. 그럴 적마다 개인으로서 여러분을 대하지 않았습니다. ‘옛날에 아담을 대하시던 아버지여, 이 시간 나타나시옵소서. 가인을 대하시던 아버지여, 이 시간 나타나시옵소서. 함을 대하시던 아버지여, 나타나시옵소서. 아브라함을 대하시던 아버지여, 모세를 대하시던 아버지여, 예수님을 대하시던 아버지여, 나타나시옵소서’ 하며 대했습니다. 세상만사를 다 잊더라도 이 일만은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나는 무엇을 하였나요? 나는 무엇을 하였나요? 돌아보기가 부끄러운 자신인 것을 느껴보았습니까? 눈을 들어 산천초목을 바라보기에 부끄러운 자신인 것을 깨달은 적이 있습니까? 사망에 허덕이는 이 민족을 바라 보고 몸 둘 바를 몰라 통곡하고 이들을 대신하여 내가 제물이 되겠다고 허덕여 보았습니까? 그러지 못하였을진대 하늘의 심정은 여러분에게서 떠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배워야 되겠습니다.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가져야 되겠습니다. 모든 것을 내 것으로 삼아야 되겠습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과 심정이 하늘 것이 되는 동시에 역사적인 것이 되어야겠고 시대적인 것이 되어야겠고 미래적인 것이 되어야겠습니다. 그런 우리가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그렇게 해봤습니까? 세상이야 어떻게 하든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고 싶었던 마음을 남기고 가셨습니다. 그 심정을 넘어서서 아버지를 부를 수 있는 자리에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아버지와 더불어 앞을 바라보고, 아버지와 더불어 뒤를 바라보고 아버지와 더불어 주위를 살펴야 하는 것입니다. 나라는 존재의식을 가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나는 아버지의 것으로서 사로잡힌 지가 오래 되었습니다. 나는 아버지와 인연된 지가 오래 되었습니다. 그것은 십년도 아니요,백년도 아니요, 천년도 아니요, 6천년도 아닙니다. 창세 전부터, 창조의 대계획, 즉 창조이념을 세우던 그때부터 나는 아버지 앞에 붙들린 바 되었습니다. 여러분, 그런 것을 느껴 보았습니까?

나는 아버지의 친구가 되고 싶고 효자가 되고 싶습니다. 천사와 의논하지 않고 하나님의 그리고 그리던 아들이 되고 싶습니다. 아담이 타락하지 않고 아버지와 더불어 의논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타락함으로 슬픔이 생기게 되었으니, 여러분은 ‘나는 아버지와 더불어 슬퍼하고 싶어요. 6천년 동안 슬퍼하신 아버지와 더불어 슬퍼하고 싶습니다’ 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여러분은 그런 마음을 가져 보았습니까? 수많은 선조들이 왔다 갔으나 그런 마음을 가졌던 선조는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성경에는 천적인 곡절이, 비통한 사실이 숨겨져 있습니다. 아담은 어떻게 되었으며, 가인과 아벨은 어떻게 되었는가? 또 노아의 가정, 아브라함의 가정, 모세의 가정은 어떻게 되었으며, 요셉가정을 중심한 예수님의 생애는 어떻게 되었는가? 이것을 알기 위해서는 여러분의 피 살이 아버지의 피 살과 하나가 되어, 아버지가 동하면 내가 동하고 아버지가 정하면 내가 정하고 아버지가 기뻐하면 내가 기뻐하고 아버지가 슬퍼하면 내가 슬퍼할 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8-343
암호로 가르쳐 줄 수밖에 없는 하늘의 비밀
우리 식구 가운데는 그런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생각지도 않는 통곡이 나오고, 생각지도 않는 눈물이 한없이 쏟아지는 것을 체험할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그런 아버지와 인연이 된 것입니다. 그런 심정을 갖고 성경을 보아야 압니다. 창세기를 볼 때는 자신이 아담이 되고 해와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서서 축복받던 그 아담 해와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성경을 바로 알게 됩니다.

무슨 학설, 무슨 이념 다 지나가 버립니다. 심정의 세계는 논리적으로 해명될 수 없는 세계입니다. 논리적인 법칙 밑에서 움직이는 하나님이 아니기에 하나님을 절대자라고 합니다. 성경 말씀의 구절 구절에는 절대자의 심정이 얽혀 있습니다. 논리적인 것을 몇천만배 초월하여 계시는 심정의 아버지시라는 것입니다.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분입니다. 이런 경지에 들어가 하나님과 부자의 인연을 맺고 그 심정을 느낄 수 있는 자리에 들어가야 창세기 1장, 2장이 풀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전에는 모릅니다.

하나님은 역사를 이끌어 오셨고, 오늘 이 시간에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치열한 싸움을 전개하시며 사랑하는 아들딸을 보호하고 계십니다. 그 뿐만이 아니라 자고로 선의 종족을 염려하시며 축복의 방향을 돌리지 않고 오늘의 나를 내일의 상속자로 세우기 위해 수고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기에 역사적인 하나님이요, 시대적인 하나님이요, 미래적인 하나님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하나님을 대하여 진정한 아버지라 할 수 있는 자리에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보십시오. 생애에 아무런 무엇을 세워놓지 못하고 하늘 앞에 섰을 때 ‘너는 무엇을 하였느냐’고 묻게 된다면, 무어라고 대답하겠습니까? 아무런 대답을 할 수 없는 우리입니다. 이런 우리를 붙들고 오늘날까지 모를 말씀을 갖고 찾아오신 하늘이었습니다. 이렇게 무지한 무리에게 알 수 있는 내용을 가지고 찾아오셔야 할 하늘인데도 불구하고 모르는 내용을 가지고 찾아오셨던 하늘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성경은 비유와 상징으로 되어 있는 것입니다. 사망의 쇠사슬에 매어 있는 사랑하는 아들딸을 친히 풀어줘야 할 하늘인데도 불구하고 직접 풀어줄 수 없는 사정이 있기에, 푸는 비결을 눈짓으로 가르쳐 주시며 찾아오셨던 하늘이십니다. 성경은 생명과 사망을 가르는 찰나에는 그 기준을 가르쳐 주지 않았습니다. 하늘은 그것을 직접 가르쳐 주지 못하시기에 눈짓으로 가르쳐 주셨음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 ! 성경이면 다 된다고 생각하지요? 어느 정도는 됩니다. 그러나 하늘은 사탄 앞에 기필코 승리의 왕자를 세우고자 하십니다. 심정을 통하여 교시하여 가지고, 심정을 통하여 사탄을 굴복시킬 수 있는 왕자를 만들고 싶어하신다는 것입니다. 가르쳐 줄 수 없는 자리에서 타락하여 사탄에게 붙들렸기 때문에, 그 사탄을 끊고 나오는 방법도 가르쳐 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암호로써 가르쳐 주는 과정이 신앙노정입니다.

여러분은 몰랐습니다. 무지한 인간들을 찾아오는 데 있어서 알 수 있는 내용을 갖고 찾아오지 못하고, 묵시로써 모를 내용을 갖고 찾아 나온 것이 하나님의 입장인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들은 올바른 마음으로 하늘을 바라보아 그 배후에 숨겨진 뜻을 알아야 합니다. 내 몸은 이리로 가려 했지만 하늘은 저리 가라 하는 것이 신앙의 노정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이 세계는 싸움터입니다. 평상시에는 마라톤 선수에게 달리는 비법을 가르쳐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최후의 시합을 할 때에는 가르쳐 줄 수 없는 것입니다. 하늘도 승리의 왕자를 찾아 나오는데 있어서 그렇게 했다는 것입니다. 전부 다 가르쳐 줄 수 없는 것입니다. 무지한 우리 인간을 대하여 알 수 없는 시늉을 하면서 가라고 재촉했던 하늘의 심정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8-345
아버지의 심정을 같이 느껴야 하는 아들딸
여러분이 자고 있는 그 시간에 하늘이 여러분을 몇 번이나 찾아오셨는지 알아요? 나 한 사람을 찾아 세우기 위하여 몇 백번, 몇 천번을 시늉으로 혹은 음성으로, 비유로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러나 인간들은 몰랐습니다. 6천년 동안이나 몰랐어요. 이제 우리는 그러한 아버지를 알아야 되겠습니다. 나 한 자체를 찾기 위하여 하늘이 이렇게 이렇게 수고하셨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도 자식들을 길러 봤지요? 사랑하는 자식이 원수의 품에서 처참하게 유린당하고 있는 것을 보는 부모의 심정은 어떠할 것 같아요? 기가 막힐 것입니다. 자식을 대한 여러분의 심정이 그러하다면 그 심정은 어디서 나왔겠습니까? 출처 없이 나올 수 있겠어요? 하나님이 그러하시다는 것입니다. 타락한 부모도 그러하거늘 하물며 하나님께서는 어떠하시겠습니까?

그러기에 여러분, 우리 아버지를 알아야 되겠습니다. 어떠한 아버지냐? 역사노정에서 제일 비참하게 걸어오신 아버지이심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역사노정에 있었던 어떠한 참사 이상의 참사를 당해 나오신 아버지이심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슬픔과 고통과 절망과 죽음의 울타리에서 허덕이는 자식을 바라볼 때 ‘너희들 잘하는구나’ 하는 하늘이 아니었습니다. 슬픔에 사무친 자식을 구하기 위해 더 슬픈 자리에 계셨으며, 고통의 자리에서 신음하는 자식을 구하기 위해 더 고통스런 입장에 계셨던 아버지셨습니다. 또한 죽음으로 사라지는 그 아들을 구하기 위해 죽음의 자리도 개의치 않은 아버지이신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이제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길을 가다 허리가 굽은 불쌍한 노인을 보게 되면 ‘내 아버지도 저런 모양으로 찾아오셨겠구나’하는 생각을 해야 됩니다. 또 부풀은 노동자의 손을 보게 될 때도 ‘아들을 찾으려는 내 아버지는 저 이상의 모양을 하셨겠구나’ 불쌍한 거지를 보게 될 때도 ‘이 거지는 거지가 아니라 내 아버지구나’ 하며 머리 숙일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아시겠어요? 보잘것없고 가련한 인생이라도 거기에는 하나님의 심정이 깃들어 있다는 것을 알고, 그가 내 아버지라는 마음으로 눈물을 흘리고 자기의 처지와 자기의 위신을 초월하여 행동할 수 있어야만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봉독한 성경 가운데도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을 보고 공궤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어느 때에 나그네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마 25 :37-40)”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의 뜻은 앞서 말씀드린 그 경지에 도달해야만 된다는 것입니다.

아버지와 심정이 통하면 원수가 없습니다. 빈부귀천도 없습니다. 천한 길을 거쳐 찾아오신 아버지 앞에 내 위신과 체면을 잊어버리고 머리 숙여 흐느껴 울 수 있는 모습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이 땅 위의 어느 곳을 가더라도 하나님의 아들딸입니다.

알고 보니 예수님의 생애가 이러했습니다. 이 말은 추상적인 말이 아닙니다. 사실적인 말입니다. 비단 이 사회에서 살고 있는 불쌍한 사람들만이 아니라 국가나 민족 앞에 역도(逆徒)로 몰려 철창에 갇히거나 교수대에서 이슬같이 사라지는 사형수를 대해서도 하늘은 그러한 입장에서 대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더 나아가 우리는 하늘과 끊어질 수 없는 천적인 인연이 있기에, 자신이 당하는 고통도 자신의 고통이 아님을 알아야 됩니다. 하늘은 이런 길을 거쳐 오십니다. 저는 한 때 사형수와 함께 감옥에 있은 적이 있습니다. 저는 그때 그를 붙들고 한없이 울었습니다. 내 아버지께서는 이런 아들딸을 붙들고 이 시간도 통곡하고 계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습니다 그런 마음을 억제할래야 억제할 수 없어 폭발시키는 사람, 그런 심정을 가진 사람이 천성의 길을 가는 아들딸입니다.

이 길은 죽음의 길입니다. 이 길을 가려면 하늘을 배반하는 무리와 생명을 각오하고서라도 싸워야 합니다. 그런 심정의 소유자가 교회에 한 두 명만 있더라도 나는 그 편이 되겠다고 나선 사람이 몰리고 있는 통일교인 입니다. 통일교회를 이끌고 가는 저도 몰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늘은 이 시간도 그들과 더불어 눈물짓고 있습니다. 이런 자를 배반한 자는 아버지를 배반한 자요, 아버지를 배반한 자니 용서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는 살아 있는 사탄입니다. 그들이 하늘의 최후의 판결을 받을 날, 저주받을 날이 멀지 않았습니다.

8-347
인간 대한 하나님의 소원
우리는 알았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찾아야 되겠고 붙들어야 되겠습니다. 눈을 들어 산을 볼 때나, 마을을 볼 때나, 도시를 볼 때나 우리는 역사노정을 걸어오신 아버지의 모습을 찾아야 되겠습니다. 슬픔의 길, 골고다의 길을 개의치 않고 싸움의 일로를 거쳐 나오신 그 아버지를 우리가 모셔야 되겠습니다. ‘죽더라도 나는 아버지의 아들이요, 어떠한 고통을 당하더라도 그분은 나의 아버지, 천정으로 맺어진 이 인연을 누가 끊을소냐!’하며 이 길을 나서는 무리가 되어야 합니다. 하늘은 이런 무리를 찾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마음이 이 삼천만 민족을 짊어지고 나가야 할 젊은 청년 남녀들의 가슴에서 폭발되게 되면 이 민족은 삽니다. 그렇게 되면 어떠한 민족도 이 민족을 지배하지 못할 것입니다. 국가의 정책이나, 또한 야망을 가진 어떤 개인이나 이념이나 주의도 꼼짝하지 못합니다.

뒷골목을 걸을 적마다 앞길을 염려하시어 자기의 위신도 잃어버린 채 우리의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애달파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여러분은 상상이라도 해 보았습니까? 이렇게 나오시기를 하루 이틀도 아닌 6천년이었다는 것입니다. 백년도 채 못되는 인간의 일평생도 고해라 하거늘, 6천년 동안이나 고해의 노정을 걸어오신 아버지입니다.

이런 것을 생각해 볼 때, 나는 무엇을 하였나요? 돌이켜 보아야 되겠습니다. 우리는 다시 한번 새로운 각오를 해야 되겠습니다. 아버지는 나만의 아버지인 줄 알지만, 아닙니다. 온 만민의 아버지입니다. 원수까지도 아들삼기 위하여 싸워 나오신 아버지입니다. 그런 아버지입니다. 그런 아버지. 그런 아버지를 대해 그저 ‘아버지 !’ 하니 참으로 뻔뻔스럽습니다. 얼굴을 들 수 없는 거예요. 저는 그런 것을 많이 느낍니다. 나를 보고 선생이라고 해서 여러분들이 인사를 하지만 그것 받기 꺼려합니다. 진실을 유린할까봐입니다. 진실을 유린하는 자는 천벌을 받습니다. 그런 자는 이 시간에도 움직이고 계시는 하나님을 밟는 자요, 역사적인 하나님을 밟는 자입니다. 미래의 소망을 유린하는 자인 것입니다. 우리는 가면 갈수록, 가면 갈수록 더 황공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여러분, 살았다면 몇 해를 살았어요? 믿었다면 몇 해를 믿었어요? 하늘은 6천년 동안이나 배반자들을 붙들고 나오셨고 믿지 못할 자들을 믿어주시려 하셨습니다. 믿지 못할 자들을 믿을 수 있는 자들 이상으로 믿어 주려고 하신 하늘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얼마나 믿었어요? 불과 몇 년, 몇 년 믿어 가지고 아버지와 비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무엇으로 이것을 보충할 것이냐? 심정으로 보충해야 됩니다.’생명을 갖고 세상에 나온 그날부터 지금까지 그리워한 자가 있다 할진대 아버지밖에 없습니다. 사랑하는 자가 있다 할진대 아버지밖에 없습니다’ 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버지와 같은 심정을 가지고 있다 할진대 자식이 문제가 아니요, 처자가 문제가 아니요, 부모가 문제가 아닐 것입니다.

과거에는 그러한 심정을 가진 아들의 입장에 서지 못했지만, 이제라도 그러한 심정을 가지고 역사적인 심정을 붙들고 나오신 아버지 앞에 ‘아버지’하면 ‘오냐, 네 아들아’하시며 심정을 기울여 붙들어 주실 수 있는 관계를 가져야 될 것입니다. 그런 여러분은 역사적인 아버지의 아들딸들이요, 시대적인 아버지의 아들딸들인 것입니다.

하늘은 여러분을 대해 원하고 계십니다. 여러분이 아버지의 심정을 알고 ‘나를 위하여 이렇게 수고하신 것을 알았으니, 아버지와 더불어 죽든지 살든지 하겠습니다’ 라고 한다면, 아버지께서는 여러분이 지금까지 한 모든 잘못을 잊어버리십니다. 지금까지 이루어 놓은 것이 없다 하더라도 품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8-349
가장 귀한 예물을 가지고 찾아오시는 아버지
여러분과 같이 아무 공적이 없는 인간들을 응당 가인과 같이 저주받아야 할 입장에 놓아야 할 것이요, 함과 같은 임장에 응당 놓아야 할 것이요, 쓰러진 모세와 같은 자리에 놓아야 할 것이요, 이스라엘 민족과 같이 심판을 받는 자리에 세워야 할 것이로되, 하늘은 그런 여러분들을 불러다가 타락하지 않은 본연의 아담과 같은 입장, 아니 그 이상의 자리에 놓으시겠다는 것입니다. 제물을 드리던 가인 아벨 이상의 자리에 놓으시겠다는 것이요, 120년 동안 수고하여 목적을 성사한 노아 이상의 자리에 놓으시겠다는 것입니다. 60만 대중을 이끌고 하나님의 뜻을 세웠던 모세 이상의 자리, 가나안 복지에서 하나님을 즐겁게 모셨던 그 백성 이상의 자리에 놓으시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셨다 가신 후 사도들이 바라는 소망의 자리 이상의 자리에 우리를 놓으시겠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성경에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노릇한다고 하였는데, 그 왕의 이름까지 우리에게 부여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황공한 예물과 은사를 가지고 찾아오시는 하늘인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찾아오시는 데는 어떠한 길로 오시느냐? 인류의 심정의 밭으로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하늘은 6천년 전부터 그렇게 찾아오고 계십니다. 아담 가정에서부터 노아를 거쳐, 또 아브라함과 이스라엘 민족을 거쳐 찾아오셨습니다. 예수께서 오셨다 가신 후 민족을 넘고 산을 넘고 바다를 건너 찾아오고 계십니다.

무슨 예물을 갖고 찾아오시느냐? 인류의 메시아요, 하늘의 독생자요, 하늘의 황태자인 예수님의 신부가 될 수 있는 영광을 우리에게 허락하시기 위해 찾아오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같은 입장이 될 수 있는 영광스런 왕관을 부여하기 위해 찾아오신다는 것입니다.

오시는 데는 세계를 다 거치며 찾아오십니다. 우리는 몰랐지만 한국도 몇 번이나 지나가셨을 것입니다. 개인으로부터 가정, 사회, 국가, 세계를 찾아오신다는 것입니다. 개인적인 기준, 사회적인 기준, 국가적인 기준, 세계적인 기준으로 찾아오신 것이 6천년입니다. 이렇게 떠나온 걸음을 돌이킬 수 없는 슬픈 하나님의 노정입니다.

이런 노정에서도 아들딸을 찾아 선물을 주고 가셔야 할 하나님, 그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자 어디에 있습니까? 예물을 품고 찾아오신 그분을 모신 자가 있습니까? 오늘 여러분이 여기에 모여온 목적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예물을 바라고 모여온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이냐. 이것을 찾아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한국에도 찾아왔거늘 찾아보라 이겁니다. 잘난 사람에게서도 찾아보고 못난 사람에게서도 찾아 보고 거지에게서도 찾아보고 죽은 이들에게서도 찾아봐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지금 때를 끝날이라 합니다. 찾아오시는 아버지를 모실 때가 다 됐다는 것입니다. 찾아오시는 데는 주먹구구식으로 찾아오시지 않습니다. 예수님도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마 7:7)”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찾았다 하는 자리에서 또 찾아야 되겠습니다.

8-350
아버지의 축복을 받으려면
주님이 오실 때 세상은 면양과 산양으로 갈라진다고 하였습니다(마 25:21-33). 이와 같이 세계는 이미 2대진영으로 갈라져 있습니다. 여러분 개인으로부터 가정, 사회, 국가, 세계에 이르기까지 갈라져 있다는 것입니다. 부정 못하지요? 우리는 마음의 친구를 찾아야 되겠습니다. 심정의 친구를 찾아야 되겠습니다. 만약 27억의 세상 사람을 모두 친구로 만드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27억과 더불어 살 수 있는 사람입니다. 어떤 사람이 친구의 입장에서 27억 인류를 대하여 무엇을 하자 할 때, 그들이 모두 움직이면 그는 27억 인류를 대표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렇지 않겠어요? 하나님께서는 그런 자를 찾는 것입니다. ‘네 마음엔 맞지만 내 마음엔 안 맞으니 나는 싫다’ 그래서는 안 됩니다. 아버지를 찾으려면 그러면 안 됩니다.

여러분! 이 한 교회도 27억 인류의 축소체입니다. 그러니 이 사람이 마음으로 찾고 있는 아버지도 내가 찾아야 되고 저 사람이 마음으로 소원하는 그 아버지도 내가 찾아야 됩니다. 그 사람의 마음을 내가 찾을 줄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아버지를 찾기 전에 먼저 상대방의 마음을 찾아 가질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앞으로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이념은 무슨 이념이냐? 그것은 상대방의 마음을 빼앗아 가질 수 있는 이념입니다. 그러한 이념시대가 지상천국의 시대입니다. 주님은 그러한 일을 하기 위해서 오십니다. 내 마음과 내 심정을 몽땅 빼앗기고도 감사할 수 있는 곳이 천국입니다.

8-351
아버지의 대신자
세계가 하나에서 가인과 아벨형 두 쪽으로 갈라졌으니, 한쪽은 떼어버려야 합니다. 이러한 현상은 내 마음에서도 벌어지니, 선을 지향하는 양심은 내 것이다 하는 입장이 되어야 됩니다. 가정을 두고 볼 때도 더 선한 사람이 내 형제, 사회나 국가를 두고 볼 때도 그런 사람이 우리의 식구, 우리의 종족, 우리의 것, 우리의 동포라는 감정을 가진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국경을 넘어 이것을 찾을 줄 아는 사람이 되지 않고는 세계를 거쳐 넘어 오시는 그 아버지를 모시지 못하고 그분이 갖고 오시는 예물도 차지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십니까? 만민의 의논의 상대자요, 만민의 보호자요, 만민의 비밀을 맡아가지고 지켜주시는 분입니다. 그러기에 여러분은 심중으로 의논하고 싶은 그분을 만나야 됩니다. 진정으로 애달픈 그 마음을 전부 털어놓고 의논하고 싶은 그분을 만나야 됩니다. 그러한 친구를 가져야 됩니다. 자기의 생명의 고충도 잊어버리고 보호해 주는 친구, 네 마음의 모든 비밀을 맡아 주마 할 수 있는 동지를 이 땅 위에서 찾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런 사람 가졌어요?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도 땅을 대하여 이러한 아들딸을 찾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들이 오시는 아버지를 모시고자 한다면 일방적으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6천년 동안 걸어나오신 것은 그와 같은 모습들을 세계에 남기기 위해서입니다. 하늘이 목적하는 세계에 그들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을 두드리면서 오시는 아버지였기에 이 사람의 마음을 수습하고 저 사람의 마음을 수습하여 연결시키는 일을 해 나오시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 세계를 하나로 움직일 수 있는 이념을 가지고 오시는 분이 재림주라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들은 찾아야 되겠습니다. 오시는 아버지를 찾아야 되겠고 여러분의 마음 가운데 와 계시는 아버지를 찾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도 내가 네 안에 있다고 하셨습니다.

여러분이 진정한 마음으로 그분을 모실 줄 알고, 그분과 부자의 관계를 맺어, 내가 죽더라도 그 인연을 끊을 수 없다는 사람은 하늘의 예물을 많이 받는 은사의 자리에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화평하게 하는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라 했습니다. 이 사람도 좋고 저 사람도 좋고 사방으로 좋은 인연을 맺을 수 있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 딸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천국에 갈 수 있는 결정은 어디서 하느냐? 내가 기도하고 뭐 어떻게 해서 결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끼리끼리 결정하는 것입니다. 천국도 우리 끼리끼리, 지옥도 우리 끼리끼리 결정하는 것입니다. 심판이 다른 데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무엇을 할 것인가? 우는 자의 어머니가 되고, 고통받는 자의 아버지가 되고, 슬픈 자의 어버이가 되어야 합니다. 하늘이 이 마음을 갖고 나오셨으니, 여러분들도 생명의 어떠한 느낌이나 아버지의 심정을 체휼한 바가 있거든, 이 민족을 위하여 우는 무리가 되고, 동정하는 무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을 친구로 모셔서 아버지를 대신하여 위로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그런 사람은 아버지의 역사적인 복을 받을 자요, 하늘이 축복할 수 있으며, 또 그런 사람에겐 허락한 축복을 넘겨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8-353
기 도
저희의 잘나고 못난 것이 아버지 보시기에는 종이 한 장의 차이도 없는 것을 저희가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심정을 가진 세상의 부모도 못난 자식을 더 불쌍히 여기거든 천정을 가진 하늘이야 더욱 그러하다는 것을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보편적으로 볼 때 불쌍한 자를 동정하는 사람이 하늘에 가까운 사람이요, 몰리는 자를 위하여 복을 빌어 주는 사람이 하늘에 가까운 사람인 것을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새로운 역사는 몰리는 무리를 통하여 이루어져 나오고 있는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습니다.

마음의 예물을 받고 이것을 번식시키기 위하여 허덕인 자들은 하나님의 많은 축복을 받았사옵니다. 금 다섯 달란트 받은 자도 그러하였고 두 달란트 받은 자도 그러하였으나,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그러하지 못하여 저주받은 것을 저희들은 성경을 통해 보았사옵니다.

아버지, 제게만 금이 있는 것이 아니옵고 어느 곳에든지 있다는 것을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어느 누구에게나 묻혀 있는 아버지의 그 심정은 억천만금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귀한 것임을 아오니, 저희는 아버지의 심정을 점령하는 주인공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의 생명줄에 연결되어 ‘너는 승리하였노라’는 하늘의 축복을 받아야만 사망의 권세를 이기고 승리의 영광권내에서 호산나를 부를 수 있다는 사실을 저희는 알았사옵니다. 지난날의 부족함을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행치 못한 저희였으나 심정적으로 하늘과 하나되는 자가 있다 할진대, 그는 본연의 동산을 차지할 수 있고 천적인 전권을 상속할 수 있으며, 하늘의 예물을 받을 수 있음을 알았사옵니다.

이제 준비하는 데는 내 한 자체의 기도에서 멈출 것이 아니라 머물고 있는 환경에서 형제와 형제 사이에 엉클어진 그 마음을 굴복시켜야겠습니다. 하늘의 심정이 나에게서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인연을 맺을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하늘과 생사를 같이하고자 하는 무리들에게 하늘이 같이한다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아버지께서 그러한 역사노정을 거쳐 오셨고 심정의 인연을 세워 종적으로 역사해 오셨다 할진대, 저희들이 횡적으로 심정의 인연을 세워 아버지를 찬양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 드린 말씀이 이들의 생명의 부활에 도움이 되고, 흑암의 세계에서 선과 악을 분별하고, 하늘을 향해 늠름하게 나아갈 수 있는 용자의 모습과 인격을 갖추는 데 도움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하올 때, 주의 이름으로써 기도하였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