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12 to8-327: 나의 이름이 무엇이냐

나의 이름이 무엇이냐
1960.02.21 (일), 한국 전본부교회

8-312
나의 이름이 무엇이냐
창세기 2:18-19 요한계시록 14:1-5

[기 도]

하늘의 명령을 받은 제사장들이 지성소에 들어가 속죄의 분향을 올릴 적마다 하늘은 은밀하게 대해 주신 것을 저희들이 알았습니다. 아버지 ! 이 시간 이 자리에 모인 저희들은 지성소 앞에 모인 무리와 같다는 것을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생애노정에서 더럽혀진 바가 있사올진대, 지성소에서 드리는 제사장의 분향으로 말미암아 속죄의 은사를 받았듯이, 아버지, 저희들도 정성을 다 기울여 성전 혹은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는 내 개체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느끼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성막의 휘장이 갈라진 그날부터 아버지는 저희들에게 지성소에 들어가 아버지 앞에 분향할 수 있는 제사장의 직분을 허락하였사온데, 오늘 저희들은 아버지 앞에 드릴 수 있는 간절한 마음이라도 가지고 있나이까. 아버지 보시기에 외식적(外飾的)인 무리가 되지 말고, 진정코 간곡한 마음으로 속죄의 은사를 받고 생명의 부활을 받기 원하여 모인 무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님, 저희의 손길을 붙들기를 얼마나 고대하셨사오며, 저희의 추한 몸을 안기 위해 얼마나 수고하셨사옵니까? 그 손길이 상처를 입어도 그것을 잊어버리셨고, 그 몸이 창을 받아도 그것을 잊어버리셨고, 피흘리는 역사노정을 거쳐오셨지만 그것도 잊어버리셨사옵니다. 예수는 불쌍한 저희들의 손을 붙들고, 저희들의 몸을 안고 ‘아버지여, 이들을 축복하시옵소서’라고 얼마나 기도하셨나이까? 또 아버님은 저희 한 자체를 세워 축복할 수 있고 하늘의 이름을 걸어 줄 수 있는 한날을 얼마나 고대하셨사옵나이까 ?

오늘 불초한 것들이 아버지 앞에 모였사오니 이 민족을 대신하여 모인 모임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수많은 교단을 대신하여 아버지의 심정과 인연을 맺고 노래할 수 있으며, 그로 말미암아 죽었던 생명들이 깨어나 아버지 앞에 환희하며 영광을 찬양할 수 있는 이 시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여기에 엎드린 당신의 아들 딸들은 이미 하늘로부터 주신 바의 말씀을 많이 들었습니다. 허락하신 바의 은사도 많이 받았습니다. 누가 아니라 하여도 부정할 수 없는 과거의 증거와 오늘의 증거도 갖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저희 자신이 어떤 조건을 세움으로 말미암아 되어진 것이 아니라, 저희를 위하여 저희가 모르는 가운데 하늘이 피어린 수고의 노정을 걸었던 연고로 되어진 것임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은사는 한번 잃어버리면 찾을 수 없고 한번 잃어버리면 체험할 수 없는 은사인 것을 아오니, 이날부터 심정적으로 아버지와 좀더 가까와지고 일체적인 자리에서 아버지를 체휼할 수 있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님, 이 시간 무슨 말씀을 하오리까.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많은 말씀을 주셨거든, 말씀의 실적을 갖추어야 할 책임이 있다는 것을 알고 그 말씀을 두렵게 생각하고 있는 당신의 아들 딸이옵니다. 그러나 불초하여 그 책임을 잊어버리고, 듣고도 또 잊어버리는 저희들이기에 하늘이 직접 운행하시어서 말씀을 통하여 저희의 몸 마음이 재창조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나이다.

하늘의 심정이 저희의 심정이 되고, 하늘의 움직임이 저희의 움직임이 되고, 하늘의 간절함이 저희의 간절함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허락하신 말씀으로 다시 인연을 맺어 나갈 수 있게 하시며, 천상과 인간이 관계를 맺어 하나된 가운데에서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는 승리의 제단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저희 개체들을 승리의 조건물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사탄세계의 모든 것을 제거시키기에 부족함이 없는 은사와 약속이 세워 지는 이 시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 날 지방에 널리어 외로운 제단을 쌓아 놓고 호소하는 당신의 아들 딸들을 품어 주시옵소서. 더우기 끝날의 한 때를 위하여 숨은 제단을 쌓아 놓고도 방향을 알지 못하여 허덕이는 자들이 있사올진대, 하늘이시여, 섭리의 손길을 펴시어서 그들이 갈 곳을 가르쳐 주시옵고, 그들이 머물 곳을 밝히 일러 주시옵소서.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허락하신 바의 복이 여기에 친히 같이하게 하여 주시옵기를 바라면서 주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8-314
말 씀
오늘 말씀드리려 하는 제목은 ‘나의 이름이 무엇이냐’ ‘우리의 이름이 무엇이냐’입니다. 개인으로 말하면 ‘나의 이름은 무엇이냐’가 되겠고, 전체를 두고 말하면 ‘우리의 이름은 무엇이냐’가 되겠습니다.

오늘은 이러한 제목을 가지고 말씀드리겠습니다.

8-314
창조와 타락으로 본 인간과 만물의 이름
이 땅 위에는 많은 사람이 살고 있으며 또 많은 존재물로 꽉차 있습니다. 그런데 어떠한 사람이나 어떠한 존재물이거나간에 이름을 갖지 않은 것은 없습니다. 여러분 각자에게도 이름이 있습니다. 우리 뿐만이 아닙니다. 모든 것에는 다 이름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 시조를 지어 놓으시고 이름을 아담이라 하셨고 또 해와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 아담과 해와를 만물의 주인공으로 축복해 주신 후 아담에게 모든 만물의 이름을 지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창세기 2장에 기록된 바와 같이 아담이 일컫는 대로 그 이름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아담이 지어 주는 그 이름은 어떤 이름이냐 하면, 영원한 이름이요, 둘이 있을 수 없는 이름입니다. 역사가 변하고 시대가 변하더라도 절대로 변할 수 없는 이름입니다. 그와 같은 이름으로 남아져야 할 사람들이고 만물인데, 오늘날 이 땅 위에 존재하고 있는 만물의 이름은 가지각색입니다. 또 땅 위에 살고 있는 사람 사람도 모두 가지각색의 인연을 거친 이름을 갖고 있습니다.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인류의 조상인 아담 해와를 세워 놓고 모든 만물을 주관하라고 축복하신 그날부터 하나님은 아담이 만물에게 지어준 그 이름이 영원히 남아지기를 바랬고, 하나님이 친히 이름을 지으신 우리의 조상 아담 해와도, 하나님이 잊을래야 잊을 수 없고 아니 볼래야 아니 볼 수 없는, 인류의 참조상이 되기를 바라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자리에 서지 못한 우리 인간은 하늘을 잊어버리게 되었고, 만물은 그의 이름을 잊어버리고 그 위치를 잊어버린 채 역사노정에서 허덕이며 나오고 있는 것을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

어찌하여 이렇게 되었느뇨?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여기에 모인 여러분 자신들도 이름을 갖고 있지만 그 이름은 타락한 후에 지어진 서글픈 이름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고로 오늘 이 땅에 존재하고 있는 모든 만물의 이름도 타락하기 전 아담이 친히 불러서 지어 주었던 그 이름이 아니라 타락으로 말미암아 더럽혀진 이름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이러한 사실을 무한히 슬퍼해야 되겠습니다. 요한계시록 14장에 보면 ‘어린양이 시온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 사만 사천이 섰는데, 그 이마에 어린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도다’ 라고 하였습니다. 타락한 인류, 타락권에 있는 만물은 본연의 자리로 복귀되어 하나님으로부터 다시 명령을 받아 지어진 새로운 이름을 받기를 심히도 고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이 갖고 있는 이름, 그 이름은 제거해 버려야 됩니다. 하나님이 영원히 기억하고 선의 세계에서 영원히 자랑할 수 있는 그 이름, 그 이름은 주께서 친히 지어 주셔야 되고 아버지께서 지어 주셔야 됩니다. 타락한 인간들은 이러한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하늘 앞에 실체로서 영광의 자리에 설 수 없습니다. 우리는 역사노정을 살펴보게 될 때, 선한 세계의 이름을 가질 수 있는 민족과 악한 세계의 이름을 가질 수 있는 민족, 이런 두 갈래의 형태로 빚어져 나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름이라 할진대 이것은 그 개체나 실체가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말할 때, 그를 대해서 절대자라고도 하고 혹은 최고의 원인자라고도 말합니다. 또는 최고의 지성을 갖춘 분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 양심의 명령에 따라 살려고 하는 사람이나 도(道)의 길을 가려는 사람이, 선을 중심삼고 소망하며 추구하는 행복이나 이상과 같은 것들은 모두 인간이 소유하고 찾아 이루어야 할 것인데, 그것들이 대상적인 명사 혹은 형상적인 명사에 머물러 있음을 우리는 부정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가리켜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은 예수가 곧 진리요 생명이요 길이라는 말이 아닙니까? 이런 것은 예수의 이름과 이퀄(equal =동등)이라는 것입니다.

8-316
예수의 이름과 나
성경 66권의 말씀은 하늘이 우리에게 무엇을 바라서 하신 말씀이뇨. 참다운 하나의 사람을 만들기 위해서, 참다운 하나의 사람을 찾기 위해서 허락하신 말씀이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우리가 말씀을 따라 나가고 말씀을 지켜 나가는 목적은 어디에 있느뇨. 우리도 예수님처럼 길이요 진리요 생명체를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을 이루어서는 무엇을 할 것이뇨. 예수의 신부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자의 최고의 목적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끝날에는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노릇한다고 했던 것입니다. 상대적인 관계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여러분이 기도할 때에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실체 예수보다도 그의 이름을 먼저 찾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만나기 전에 예수 이름으로 된 인(印)을 맞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귀노정에 있어서 아니 거칠래야 아니 거칠 수 없는 필연적인 운명인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반면 이 세상에는 사탄으로 말미암은 이름이 있습니다. 마귀를 사탄이라고 하고 사탄을 악이라고 합니다. 악에는 시기, 질투 등 여러가지 속성(屬性)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악의 속성이 사탄의 대명사(代名詞)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렇게 모든 존재물은 하나님과 더불어 있을 수 있는 이름을 가지게 되느냐 사탄과 더불어 있을 수 있는 이름을 가지게 되느냐 하는 기로에 서 있습니다.

우리는 타락하였을망정 하늘의 복귀섭리의 혜택을 받아 복귀의 노정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복귀하는 데는 무엇을 복귀하는 것인고. 잃어버린 본연의 아담을 회복하는 것이고 잃어버린 본연의 해와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6천년 기나긴 역사는 무엇이뇨. 하나님이 창조하셨던 잃어버린 인류의 참조상인 아담과 해와를 다시 찾는 역사입니다. 인류의 참다운 조상이 될 수 있는 아담과 해와를 찾아세우는 것이 어린양 잔치요, 그것이 이루어지는 때가 재림이상시대입니다. 6천년 역사는 타락하여 쓰러진 아담 해와를 다시 세워나오는 역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죽은 아담 말고, 쓰러진 아담 말고, 사탄이 침범하던 아담 말고, 6천년전 하나님 앞에서 사랑을 받던 그 아담 해와의 입장, 죽지 않고 살아 남아야 할 아담 해와와 같이 되어야 하는 것이 오늘날 성도들의 입장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하나를 붙들고 나오는 데는 하나님의 6천년 역사가 연결돼 있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여러분의 한 생명이 우주보다 더 크다는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이 붙들고 끌고 나오려는 이런 남자는, 창세된 그날부터 타락하여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역사노정에서 어느 한 때에도 끊어지지 않고 연속되어 내려와서 살아남은, 아담형을 대신한 존재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역사는 죽은 역사가 아닙니다. 역사는 돌고 돕니다. 그 형이 크고 작은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개인적으로 그런 형(型)을 거치고, 더 크게는 가정적으로 그런 형을 거친 다음 민족적으로, 국가적으로, 세계적으로 범위를 확대하여 거쳐 나가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모양은 마찬가지입니다. 그러기에 사망의 세계를 청산하고 새로운 은사의 세계를 넘어가야 하고, 심판의 고개를 넘어 부활의 권을 찾아 들어가야 할 우리들은 어떠한 입장에 서 있어야 되느냐? 타락하지 아니하였던 아담 해와의 입장에 서야 되는것입니다.

우리라는 존재는 6천년의 기나긴 역사노정을 거쳐 오면서 하늘의 서글픔의 대상이 되어 지금까지 아니 끌려 나올래야 아니 끌려 나올 수 없는 입장에서 하늘의 섭리 앞에 끌려 나왔습니다. 여러분 하나를 놓고 보더라도 여러분 자신에게는 아담으로부터 시작하여 노아, 아브라함 등 역대 선지의 피어린 혈통이 인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이러한 민족을 붙들고 나오는 하나님의 피어린 심정이 인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들이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그러기에 여러분 자신들은 이제 어떻게 해야 되느냐. 역사를 더듬어 보아서 역사노정의 저끄러진 모든 것을 청산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이제 새로운 부활의 은사를 받을 수 있는 자리에 나가기 위해서는 새로운 이념과 새로운 권한을 부여받아야 되는데, 그 새로운 이념을 받기 위해서는 새로운 이념을 주시는 하나님의 마음과 일치될 수 있는 자리에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마음과 일치되려면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 되느뇨. 하나님은 아담 해와를 지어 놓고 소망스런 마음과 기쁜 마음으로 그들을 바라보았지만 타락한 그날부터는 절망과 탄식과 한스러운 마음으로 바라보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 되느뇨. 내 마음으로는 하나님이 바라보셨던 선한 아담 해와를 그리워해야 되겠고, 내 몸으로는 하나님의 슬픔을 느끼고 절망의 자리에 서서 허덕이시던 하나님을 그리워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8-318
남겨야 할 이름과 제거해야 할 이름
어떤 이름을 가지고 있는 여러분이라 할진대, 여러분 자신은 옛날의 아담을 대신한 입장이요, 더 나아가서는 옛날의 가인과 아벨을 대신한 입장 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들은 아담을 대신한 존재인 동시에 가인과 아벨을 대신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담은 어떠한 존재였느뇨. 하늘을 불신하였던 불신의 조상이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아담의 이름을 갖고 있는 동시에 불신의 이름이 첨부되어 있는 것입니다. 타락한 우리는 하늘편적인 이름이 아니라 사탄이 침범할 수 있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불신의 조상으로부터 태어난 우리인 연고로, 아담의 이름과 더불어 불신의 이름을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복귀의 고비가 아담에게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자신들은 불신의 이름을 심판하고 하나님이 소망하시던 아담의 이름을 남겨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에게는 불신했던 요소가 남아 있습니다.

천지창조의 이념을 중심삼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부여하고자 했던 은사의 전체를 우리는 아직까지 다 모르고 있습니다. 미지의 내용으로 남아 있는 영원한 세계를 모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실체로 나타나 말씀하셨던 그 말씀도 믿지 못하였던 인간이니, 나타나지 않고 무형세계에서 하시는 말씀과 사실을 믿을래야 믿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하나님이 기뻐하실 수 있는 아담의 이름은 남기고 타락으로 말미암아 저끄러진 불신의 이름은 여러분 자신에게서 제거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믿지 못하여 타락한 아담 해와의 가정에서 하나님은 가인과 아벨을 세워 복귀섭리를 하셨습니다. 여러분, 역사노정에 나타났던 모든 추태는 여러분 자신들이 부린 추태임을 느껴야 됩니다. 우리 선조가 저끄러 놓은 불신의 이름도 여러분의 것이고, 가인과 아벨이 제물드릴 때 가인이 아벨을 죽인 살인의 이름도 여러분의 이름입니다. 우리가 하늘 앞에 서기 위해서는 역사적인 죄상을 내가 책임져 청산하고 나서지 않으면 역사적인 하나님을 위로해 드릴 수 없고, 역사적인 심정을 갖고 회개하기를 바라시는 그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여러분 자신이 지금 갖고 있는 그 이름 위에 하나님이 그려오신 본연의 아담의 이름만을 세워 놓고, 그 외의 모든 더러운 이름은 제거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는 불신의 이름이 씌워져 있습니다. 가인이 아벨을 죽여 살인자의 이름이 붙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분 자신에게도 살인자의 후예란 이름이 붙어 있습니다. 형무소에 가게 되면 자기의 이름과 더불어 살인자나 강도라는 이름이 붙게 됩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여러분에게도 자신의 이름 외에 가인이 아벨을 죽였던 살인의 죄명(罪名)이 붙어 있다는 것입니다. 살인한 것이 옛날의 가인만이 아니라 오늘의 나에게도 계승 되어 있습니다. 불신한 것이 옛날의 아담이 아니라 오늘의 나입니다. 이걸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 아담 이후 1, 600년만에 노아 때가 있었습니다. 노아는 믿음의 절개를 세우기 위하여 120년 동안 충성을 다하였습니다. 노아의 일을 진정으로 협조하지 못했던 노아의 식구들도 노아의 믿음의 혜택으로 축복받을 수 있는 자리에 공짜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함이 하늘 앞에 부끄러운 모습이 되었습니다. 성경 역사에 혹은 타락 이후의 구원섭리노정에 하늘이 기뻐하지 않는 모든 것은 우리의 것, 여러분의 것으로 남아집니다. 내 것이 됩니다. 1, 600년 동안 수고하여 노아를 세우고 물로 세상을 심판하고 난 후 남아진 노아의 여덟 식구야말로 하나님의 소망의 식구였습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 함이 벌거벗은 노아를 보고 부끄러워함으로 말미암아 하늘 앞에 부끄러운 족속이 된 것입니다. 이로 말미암아 여러분 자신들도 하늘 앞에 얼굴을 들 수 없는 부끄러운 이름이 붙어 있는 것입니다.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노아 이후 400년이 지나 아브라함시대에 와가지고 3대 제물을 바치는 데 있어서 소와 양은 쪼갰으나 비둘기는 쪼개지 않았습니다. 쪼개는 것은 성별(聖別)하는 것입니다. 성별해야 할, 갈라야 할 비둘기인데도 불구하고 가르지 않았기 때문에, 성별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브라함의 제물은 실수로 돌아갔던 것입니다. 이렇게 가르지 못하고, 성별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불결이란 명사가 여러분에게 붙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또 모세를 중심삼고 보더라도 모세는 혈기로써 반석을 두 번 쳤습니다. 물론 민족이 잘못해서 쳤다고 하지만 그는 여러분의 선조이기 때문에 여러분 자신들이 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모세의 혈기는 하나님의 뜻을 배반하고 사탄의 뜻을 이루어 준 것입니다. 그러기에 모세가 혈기로써 반석을 두 번 쳐서 생긴 이 죄악도 여러분 자신의 이름으로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모세를 따라 나오던 이스라엘 민족은 모세를 배반하였습니다. 불신은 물론이거니와 배반하였습니다. 배반하고 하늘을 향해 저주하였습니다. 그 불신과 배반, 그리고 저주의 이름이 누구에게 붙여졌느뇨. 후대의 우리에게 붙여져 있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1장에 보면, 스물 한 가지의 죄악상이 나타나 있습니다. 여러분, 이 죄악의 모든 명사는 이 세상의 명사가 아닙니다. 여러분 자신에게 짊어지워져 있는 이름인 것을 알아야 됩니다. 29절부터 보십시오. 모든 불의와 악덕과 탐심과 포악과 시기와 살인과 분쟁과 기만과 무자비함과 말을 지어내는 것과 음행하는 것과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것과 능욕하는 것과 교만한 것과 자랑하는 것과 악을 도모하는 것과 부모를 거역하는 것과 어리석은 것과 배반하는 것과 무정한 것과 긍휼히 여기지 않는 것, 이러한 것이 있습니다. 이렇게 하늘에 배치되는 전체의 명사는 역대 선조들로 말미암아 만들어져서 지금까지 연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최후에 가서는 이 모든 명사를 어떻게 해야 되느냐. 책임을 지고 그 모든 명사를 청산해야 됩니다. 이러한 사명이 여러분에게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8-321
신앙은 무엇을 요구하는가
그러기에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스스로를 죄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죄인입니다. 아버지여, 이 죄인을 용납하여 주시옵소서’합니다. 죄는 무슨 죄? 아담의 죄로부터 가인의 죄, 함의 죄, 아브라함이 실수한 죄, 모세가 실수한 죄, 이스라엘 민족이 실수한 죄, 예수를 십자가에 죽인 죄, 그 이후 수많은 민족들이 예수를 배반한 전체의 죄악의 명사가 여러분 일신에 지워져 있는 것을 느껴야 되는 것입니다. 역사노정에서 수많은 신도들이 자칭 죄인이라고 자복하였지만 역사를 걸어 놓고 죄인이라고 자복한 사람은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는 끝날에 승리의 한 중심을 세워가지고 심판의 행사를 해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이런 길을 가고자 할진대, 역사노정에서 이렇게 되었던 모든 죄악의 이름을 가진 것들을 심판할 수 있어야 됩니다. 죄악을 재촉시켜 나왔고, 죄의 이름을 우리의 핏줄기에 혹은 우리의 생활에 붙였던 사탄을 심판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들은 끝날이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우리 자신을 우주적인 죄인으로 세워 놓고 이것을 굴복시킬 수 있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런 자만이 심판의 고개를 넘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대의 죄악상을 바라보게 될 때 그 죄가 그 사람들의 것이 아니라 여러분의 것입니다. 명동의 일가족 살인사건 같은 것도 그 사람만의 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에게도 그러한 살인을 범한 사실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들은 나타났고 여러분은 나타나지 않았을 뿐입니다.

그러면 신앙은 무엇을 요구하고 있느뇨. 회개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회개. 회개는 어떠한 회개냐? 역사적인 회개와 시대적인 회개입니다. 하늘은 역사적인 회개를 바라고 있고 시대적인 회개를 바라고 계십니다. 그런 것을 알고 ‘과거의 모든 죄도 내 죄요, 이 시대에 머물러 있는 모든 죄도 내 죄이오니, 아버지,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이러한 기도를 하는 사람이어야만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느 한때 여러분 자신들이 살인강도라고 생각해 봤습니까? 혹은 내 자신이 강도나 절도라고 느껴봤습니까? 하늘 앞에 용납받을 수 없는 추악한 모든 죄의 명찰을 내 몸에 걸고 있는 것을 느끼고 회개해 봤습니까? 이 자신이 미워져 가지고 자신 속에 있는 죄악의 요소를 굴복시키기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고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하늘 앞에 사죄해 봤습니까? 그러지 못하였을진대 하늘 앞에 설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는 4천년 역사의 모든 죄악을 그 몸에 지고, 시대적인 모든 죄악을 그 몸에 지고 십자가의 노정을 갔습니다. 예수가 오셨다 가신 이후 2천년이 지난 오늘 끝날에 있는 우리는 6천년 역사의 모든 죄악을 이 한몸에 지고 담판해야 하고 하늘 앞에 속죄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속죄의 은사, 해방의 은사를 받아야 합니다. 하늘과 땅이 기뻐할 수 있는 기준을 세우지 못하는 한 심판의 고개를 넘을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는 죄인 중에도 부모를 죽인 죄인입니다. 사탄세계에서 나를 낳아준 부모가 아니라 영원히 부모로 모시어야 할 예수를 죽였다는 것입니다. 예수는 누구입니까? 아담이 타락함으로 참부모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이를 복귀하기 위한 아담형 인물, 즉 제 2 아담이었습니다. 참부모로서 인류를 품기 위해 오셨던 분을 우리들이 잡아 죽였습니다.

옛날의 이스라엘 민족만이 그를 잡아죽인 것이 아닙니다. 가룟 유다만이 판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자신도 관련돼 있는 것입니다. 빌라도가, 혹은 제사장들이 공모하여 죽인 것만이 아닙니다. 로마 병정들만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른 것이 아닙니다. 가시 면류관을 씌운 것 그 모두가 그들만이 한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관계돼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 처참한 환경에 있던 예수는 누구뇨. 여러분의 참아버지였습니다. 육계 (肉界)에서도 아버지로 모셔야 하고, 영계(靈界)에 가서도 영원히 아버지로 모셔야 할 참아버지를 여러분 자신들이 죽인 것입니다. 가시 면류관을 씌운 것이 로마 병정만이 아니요, 못 박은 것이 로마 병정만이 아니요, 창으로 찌른 것이 로마 병정만이 아닙니다. 여러분 자신입니다. 여러분 자신.

인류는 6천년의 죄악의 역사를 안고 살아 나왔습니다. 지금도 그러한 죄를 지으며 살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6천년의 죄악이 종합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회개해야 됩니다. 6천년의 죄악사 전체를 걸어 놓고 회개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참다운 선의 주체요, 참부모이신 예수를 쳤으니, 우리는 그 부모의 명령을 받아 죄악을 탕감복귀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될 게 아니예요? 내가 참부모를 쳐죽여 죄를 저질렀으니, 우리들은 참부모의 말씀으로 죄의 요소를 뿌리뽑아야 됩니다. 아담 가정으로부터 오늘 이 시대의 나에 이르기까지 모든 죄악의 원천을 없앨 수 있는 자라야만 예수의 신부가 될 수 있습니다.

8-323
여러분은 어떤 이름을 갖고 있는가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회개해야 됩니다. 내 한 몸에는 거짓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으니, 이 거짓이란 이름을 떼어버리기 위하여 회개해야 됩니다. 혹은 시기라는 이름이 붙어 있고 교만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고 혈기라는 이름이 붙어 있으니, 이 이름들을 떼어버리기 위하여 회개해야 됩니다. 또 내 마음에는 남을 미워하고 죽이고 싶은 살인적인 요소가 있으니, 이것을 떼어버리기 위하여 회개해야 됩니다.

바울은 스데반을 죽이는 데 가담하였고 기독교인들을 잡기 위해 다메섹에 파송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다메섹에 가는 도중 예수를 만나 회개했습니다. 우리들이 죽여버린 예수가 메시아였음을 알았습니다. 죽이는 데에 자신이 찬동했던 스데반이 예수가 사랑하는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알았습니다. 그때 그는 스테반을 죽인 것을 회개하기보다 민족이 예수를 죽인 것을 회개했습니다. 민족을 세우기 위하여 4천년 동안 수고하신 하나님을 염려하면서 민족의 잘못을 회개했다는 것입니다.

그러고 난 후 아라비아로 가서 3년 동안 기도의 생활을 했습니다. 그 기간은 기뻐서 혹은 즐거워서 하늘을 노래하던 기간이 아닙니다. 슬프고 슬퍼 눈물을 흘린 기간이었습니다. 그 기간은 ‘예수를 죽였던 모든 죄는 내가 짊어지게 하시옵고, 이 한 일신으로 예수를 죽인 모든 죄를 탕감하게 하시옵소서’하는 복받쳐 오르는 심정으로 하늘 앞에 크나큰 회개를 한 기간이었습니다. 이러한 기간이 있었기에 죽음의 자리도, 어떠한 환경도 개의치 않고 예수의 이름을 갖고 나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울이 바울로서 나타날 수 있는 힘은 어디서부터 출발되었던고. 죄인임을 느끼고부터였습니다. 4천년 역사 전체를 회상해 보게 될 때 자신이 죄인의 대표자인 것을 느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죄인이 하늘의 긍휼의 손길에 붙들리다니…….’하는 감격의 한 때를 맞게 된 것입니다.

큰 죄인임을 느끼는 자가 큰 은사에 접하게 될 때 하늘 땅은 뒤집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바울은 지금까지의 이스라엘 역사를 새로운 복음의 역사로 전환시켰던 것입니다. 그 원동력은 어디서 나왔느냐? 죄악된 자기를 치고 죄악을 회개한 데서 나왔습니다. 그러한 노정을 거쳐 승리하여 사울은 하나님이 지어준 본연의 이름을 받아 바울이 되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끝날에 처해 있는 여러분에게 어떠한 이름을 갖고 있느냐고 하늘은 물을 것입니다. 네 이름은 무슨 이름이냐? 타락하기 전의 아담이더냐? 120년 동안 하늘을 위해 충성했던 노아더냐? 하늘의 뜻을 좇아 갈대아 우르를 떠났던 아브라함이더냐? 혹은 80년 생애를 민족을 사랑하고 택한 백성을 구하기 위하여 염려의 심정을 가지고 살았던 모세더냐?

여러분, 여러분에게 무슨 이름이 지어져 있느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하늘은 바라고 계십니다. 악의 요소가 침범하기 전의 그 이름을 거쳐 최후에는 예수의 이름까지 가지기를 바라십니다. 여러분이 십자가에 돌아가시던 예수 말고 십자가를 심판할 수 있는 예수의 이름을 차지하지 않으면 신부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시여, 옛날 타락 전 아담 해와가 머물던 그 자리에 나를 옮겨주시옵소서’하고 기도해 봤습니까? ‘타락하기 전의 아담 해와의 심정이 그립소이다. 하나님을 자유롭게 대하고 하나님도 자유롭게 대해 주시던 그 아담 해와의 환경이 그립소이다. 뜻을 받들어 충성을 다해 제물을 드리던 아벨의 마음이 그립소이다. 혹은 노아의 심정이 그립소이다. 아브라함의 심정이 그립소이다. 모세의 심정이 그립소이다. 더 나아 가서는 예수의 심정이 그립소이다’ 라고 해 보았습니까?

역사노정에서 우리의 선조들이 악과 싸우던 마음, 하늘을 위하던 그 마음을 갖고 지금까지 더렵혀진 이름을 모두 청산하려는 신념, 청산해 버리기 위한 회개의 눈물이 없이는 예수의 이름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똑똑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에 혈기가 남아 있으면 여러분의 이름은 혈기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에 시기가 남아 있으면 여러분의 이름은 시기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타날 때는 그런 이름이 남아진다는 것입니다. 아무개 아무개 하는 이름이 아니란 말입니다.

8-325
우리가 부여받아야 할 이름
그러니 우리는 이런 죄악의 요소를 벗어나 성신의 아홉 가지 열매(갈 6:22-23), 즉 사랑과 희락과 화평, 인내와 자비와 양선, 충성과 온유와 절제를 우리의 이름으로 부여받아야 됩니다. 이 열매는 무엇이냐 하면, 죄와 인연되지 아니한 본연의 아담 해와의 심정을 갖추고 난 이후에 가져야 할 이름입니다. 여러분의 이름은 하늘이 바라는 이름이 아니라는 기예요. 하늘은 김아무개 뭐 누구 누구 하는 이름을 원치 않습니다. 하늘이 바라고 있는 것이 무엇이냐. 여러분의 이름이 사랑이기를 바라십니다. 화평이기를 바라십니다. 성신의 아홉 가지 열매의 이름을 여러분 자신들이 갖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내세울 수 있는 이름이 무엇이냐? 하늘은 이것을 물을 것입니다.

우리는 고대해야 되겠습니다. 죄악세계에서 더럽혀진 모든 이름을 회개로써 충성으로써 희생으로써 청산하고 성신의 아홉 가지 열매를 지니고 십자가의 고개를 넘어가 부활하신 예수와 만나야 됩니다. 여러분은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인내와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 중 어떤 이름을 갖고 있습니까? 아홉 가지 중 하나의 명사를 하늘 앞에 내 놓고 이것이 내 이름이라고 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러한 이름을 갖추어 가지고 내 자신이 그렇다고 인정받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세 사람 이상이 증거해야 됩니다. 가지고 있는 이름과 더불어 ‘그 사람은 과연 하늘의 아들 딸이야. 그는 온유한 사람이야. 자비로운 사람이야. 화동하는 사람이야’ 라고 세 사람 이상으로부터 증거를 받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성도의 증거를 받지 않고는 성부 성자 성신의 증거를 받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의 신앙노정에 있어서, 하늘은 내가 너를 사랑하고 너를 알아준다고 하면서도 내 보내는 것입니다. 하늘의 인정만 받아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땅에서 세 사람 이상의 인정을 받아야 됩니다. 인정은 어떠한 입장에서 인정을 받아야 되느냐. 부모의 입장에서 사랑하는 자녀와 같은 사람, 죽더라도 같이 죽고 살더라도 같이 살겠다는 입장에 선 아들, 혹은 딸 세 사람 이상이 그의 이름을 증거할 수 있는 자격자가 되어야만, 하늘은 그의 이름과 더불어 천적인 이름을 부여해 준다는 것을 여러분은 똑똑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여러분 자신을 회고해 보게 될 때, 여러분은 어떠한 이름을 갖고 있습니까? 사랑의 이름보다는 시기와 질투의 이름을 갖고 있진 않습니까? 화평의 이름보다는 불만과 불평의 이름을 갖고 있지는 않습니까? 어떠한 이름을 갖고 있는지 스스로 살펴 하늘 앞에 내세울 수 있는 이름을 가져야 될 것입니다.

예수께서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하셨으니 우리는 그러한 길을 통하지 않으면 진리의 주인공이 될수 없고, 생명의 주인공이 될 수 없고, 사랑의 주인공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그 이름 위에 하늘이 부여한 말씀의 이름을 가지고 길을 대신하든가 진리를 대신하든가 생명을 대신하든가 사랑을 대신하든가 그 중의 어느 한 면을 대신해야 됩니다. 그렇게 하지 못한다 할진대 이는 예수와 관계가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까지 우리들은 회개의 생활을 해 나왔습니다. 회개해 나왔는데 무엇을 회개했습니까? 형제지간에 잘못한 것은 지극히 적은 것입니다. 그것보다도 내 자신은 역사적으로 죄악의 피를 거쳐온 후손이요, 무지무지하고 어마어마한 죄인이요 죄수라는 것을 느끼고 회개해야 됩니다. 그리하여 하늘의 긍휼의 손길에 품겨야 된다는 것입니다.

회개를 하고 나서는 속죄의 은사로 하늘로부터 너는 내 아들이요 내 딸이라고 하는 표적을 받아야 됩니다. 표적을 받아야 돼요. 그 표적을 받지 않는 한 여러분의 이름은 영원한 하늘나라에 남아질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천적인 것과 배치되는 모든 것을 심판하기 위하여 노력해야 되겠습니다.

원수가 따로 없습니다. 여러분 자신이 원수입니다. 땅을 중심삼고 소망하는 모든 것은 원수입니다. 땅의 무엇을 갖고 싶고, 무엇을 알고 싶고, 무엇과 관계 맺고 싶다 하는 모든 것은 다 쳐서 때려잡아야 된다는 말입니다. 이것을 다 풀어놓아야 됩니다.

세상 것보다는 하늘 것을 소망하고 그리워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지고 사탄의 이름을 다시 받지 않기 위하여 한날 한날을 하늘과 더불어 사는 사람이라야 하늘의 이름을 가진 자요, 주님을 모실 수 있는 자라는 것을 여러분이 똑똑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8-327
기 도
우리는 살아 남아야 할 아담 해와인 것을 알았사옵니다. 옛날 아벨이나 노아 혹은 모세나 억대의 모든 선조들은 잃어버린 아담 하나를 다시 빚어 만들기 위한 재료들이었다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또 저희들에게는 역사적인 하나님의 투쟁역사를 청산해야 할 사명이 남아 있는 것을 알았사옵고, 하나님이 아담으로부터 6천년의 역사노정을 거쳐 오는 동안 사탄과 피어린 투쟁을 하던 그 싸움에 동참하여 살아 남은 모습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이제 알았사옵니다.

저희가 과연 아담을 붙들고 변론할 수 있습니까? 함을 붙들고 변론하며 심판할 수 있습니까? 혹은 성별하지 못하여 사탄의 참소를 받고 빼앗긴 아브라함의 제단을 탈환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습니까? 모세가 반석을 두번 침으로 말미암아 광야에서 쓰러진 이스라엘의 60만 대중을 빼앗을 수 있는 권한을 가졌습니까? 십자가노정을 승리한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민족을 심판할 수 있고 시대를 심판할 수 있는 어떠한 중심을 갖고 있사옵니까 ?

끝날에 처해 있는 저희들은 예수의 심정을 품고, 역사노정에서 사탄과 싸워나오던 하늘과 삼위신을 대신한 실체로서 총심판을 할 수 있는 승리 적인 자리에 서 있습니까? 역사노정에서 사탄이 우리의 선조를 참소하던 전체의 조건을 내 일신이 청산하고 회개하여 속죄의 은사를 받은 증거가 없다 할진대, 그런 자리에 서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전 시대의 응어리진 모든 죄악상을 바라보게 될 때, 그것은 그들의 죄가 아니라 내 죄라 여기고 눈물을 흘리며, 그들 대신 회개하여 아버지 앞에 인정받는 자가 있다 할진대, 그는 새시대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저희들이 알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그러기에 선지라는 이름을 갖고 왔던 모든 사람들은 선조들의 잘못을 통탄하지 않은 자가 없었고, 시대의 부패상을 통탄하고 눈물로 회개하지 않은 자가 없었던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또, 한 고비를 넘어가는 이 시대에 있어서 저희들은 역사적인 죄악과 시대적인 죄악을 걸고 하늘 앞에 담판지어 속죄의 은사를 부여받음으로써 사탄을 심판할 수 있는 자들이 되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알았사옵니다. 이제 저희가 하늘의 이름을 갖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사탄과 싸워 이겨 골고다 산정에서 부활하신 영광의 주님 앞에 신부의 이름을 갖추고 나타날 수 있는 아들 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것이 하늘의 소망이요, 이런 한날을 세우기 위하여 6천년 동안 하나님이 사탄과 싸워 나오신 것을 알았사옵니다. 저희의 일신이 선한 소망의 실체, 사탄의 침범을 받지 않은 본연의 아담 해와의 모습으로서 아버지의 사랑의 품에 안겨 영광의 세계를 노래할 수 있고, 아버지의 아들 딸이라는 이름까지 가질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 부분에서 녹음 중단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