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62 to 8-285: 새로운 날

새로운 날
1960.02.07 (일), 한국 전본부교회

8-262
새로운 날
요한계시록 21:1-8

[기 도(Ⅰ)]

아버지, 오늘 아버지의 심정동산에서 저희들의 몸이 움직이고, 마음이 움직이고, 모든 생각이 움직이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의 심정은 무한한 사랑의 심정인 것을 저희들은 알았습니다. 아버님의 심정은 무한히 슬픈 심정이옵고, 무한한 상처를 입고 있다는 것도 저희들은 알았습니다.

아버님은 이 시간에도 그리워해야 할 처지에 계신 것을 알았습니다. 아버님은 이 시간에도 원수들의 참소의 조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계신 것을 알았습니다. 아버님은 아직까지 원수와의 싸움에서 승패를 결정짓지 못하시고 승리와 영광의 모습으로 나타날 수 없는, 그런 분이신 것을 알았습니다.

한없이 슬프신 아버님, 한없이 수고하신 아버님, 지금도 한없이 마음을 졸이시는 아버님, 그 아버님이 창조주이시고, 그 아버님이 온 만상의 주인공이시라는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고, 아버님이 당하시는 그 한없는 슬픔이 저희 가슴에 스며들게 하여 주시옵고, 한없는 분함과 원통함이 저희의 심중에 흘러들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것을 체휼한 자, 몸 둘 곳을 몰라 자기 몸을 가누지 못할 슬픔에 잠기게 하여 주시옵고, 그 마음을 수습할 수 없어 하늘인지 땅인지 모르는 채 통곡하는 아들 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6천년이나 슬픔의 제단이 연속된 데에는 선조들의 잘못이 있어서인 줄 아옵니다만, 오늘날 저희들이 또 책임 못하여 슬픔을 후대에 넘겨줄까봐 두렵사옵니다. 오늘 저희가 저희 일대(一代)에서 비운의 역사를 막고 하늘의 심정을 여기서부터 수습하여 새로운 기쁨의 심정으로 바꿔 놓아야 할 책임이 저희들에게 있다는 것을 배웠사오니, 이 시간 머리 숙인 저희들, 아버지의 심정의 동반자가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사람같은 사람은 많사옵니다. 그런데 땅 위에 무엇이 없어서 하늘이 슬퍼하시는가 하면, 당신의 심정을 통할 수 있고, 당신의 뼈살이 녹아질 수 있으며, 당신의 사랑을 그리워할 수 있는 아들 딸이 없어서인 줄 알고 있사옵니다. 하늘은 그러한 아들 딸들을 찾고 계시다는 것을 저희들이 알았사오니, 이제 정성을 다하고 이 몸 마음을 다 드려 그 심정 앞에 부족함이 없다 할 수 있는, 인정받는 아들 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저희들은 하늘이 어떠한 물질을 주는 것을 원치 아니하옵고, 사정을 알아주는 것을 원치 아니하옵고, 은혜를 주는 것을 원치 아니하옵니다. 그보다는 은혜를 주신 후에 연락(宴樂)하고자 하시는 아버지의 그 내정 (內情)을 저희들이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슬펐던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를 수 있으며, 고통의 아버지를 위로할 수 있는 아들이 되고 딸이 되기를 바라옵니다.

이것을 목표로 하여 저희들은 험한 길도 개의치 아니하고, 몰리는 길도 개의치 아니하고, 핍박과 조롱의 화살이 이 한 몸에 휩쓸어 온다 할지라도 아버지를 향한 일편단심의 심정만을 가져야 하겠사오며, 이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하늘을 향하여 더 가까이 갈 수 있고, 그것을 내적인 충고로서 소화시킬 수 있는 아들 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날 부족한 모습들이 모였사온데, 아버님, 여기에 찾아왔다가 도리어 염려하며 돌아가는 모습들이 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산 제물을 드리라고 수천년 동안 수많은 당신의 아들 딸에게 가르쳐 주셨사오나 아버지께서 받으실 수 있는 진정한 산 제물이 없었다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오늘 불초한 저희들이 모였사오니 긍휼히 보시옵소서. 불초한 저희들만이라도 역사를 대신하고 시대를 대신하고 미래를 대신한 하나의 산 제물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이 여기에 찾아오셔서 슬펐던 사실을 의논할 수 있으며, 괴로왔던 사실을 말할 수 있으며, 소망의 사실을 말할 수 있는 이 한 시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님이시여, 이 시간 천상에 있는 수많은 성도들에게 축복하여 주시 옵고, 지상에 널려 아버지의 뜻을 염려하며 호소하는 자들 위에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더우기 새로운 말씀을 붙들고, 새로운 심정을 갖고 어두운 세상에 나가 싸우고 있는 당신의 혈족들이 있사오니, 이 시간 그들을 붙들어 위안하여 주시옵고, 그들의 아픔을 친히 당신의 심정으로 덮어 주시 옵소서. 외로운 자리에서 상처받는 일 없이 아버지의 심정과 인연맺어 어떠한 고통과 어떠한 죽음의 장벽도 녹여낼 수 있는 하늘의 심정을 가진 아들 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같은 인연 가운데 세우셨고, 같은 목표 밑에서 같은 뜻을 위해 싸우고 있사오니, 아버지께서 옹위하시어 승리의 그날까지 이끌어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 시간에도 민족을 위하여 엎드린 아들 딸들이 많을 줄 알고 있사오니, 어느 곳에 있든지 그들을 축복하여 주시옵고, 수많은 인류 위에도 축복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드리는 이 한 시간 위에 아버지의 긍휼의 손길이 떠나지 마옵소서. 주의 이름으로 기도하였사옵나 이다. 아멘.

8-264
기 도(Ⅱ)
오라 하시는 아버지의 음성을 듣고 죄악의 성품을 가진 저희들은 황공한 마음을 갖고 아버지의 성상을 대하기 위해 나왔습니다. 아버님께서 저희를 불러주신 것은 사망의 세계에서 분별시키고자 하심인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거룩하신 성상을 대하게 될 때 저희들도 거룩한 영광의 모습으로 다시 빚어 주시옵고, 저희들을 축복하시어 영원한 새로운 동산을 유업으로 주시려는 아버지의 놀라우신 사랑에 몸 굽혀 감사드릴 줄 아는 아들 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지나온 6천년은 한스러운 날들인 것을 알았습니다. 이제껏 왔다 갔던 수많은 사람들은 참아버지의 모습이 어떠하며, 참아버지의 음성이 어떠하며, 참아버지의 심정이 어떠하다는 것을 안 사람이 없었사옵니다. 헤아릴 수 없는 은사로써 불초한 저희들을 모으시기에 얼마나 수고하셨사옵니까? 오늘 이 자리까지 이끌어내시기에 얼마나 고생을 하셨사옵니까? 얼마나 외로운 심정을 느끼셨으며, 얼마나 치욕을 당하셨으며, 얼마나 맞으셨으며, 얼마나 피눈물을 뿌리셨사옵나이까.

오늘 저희가 아버지 앞에 감사하는 이 마음도 저희 것이 아니옵니다. 이 한 몸에 하늘 땅을 움직일 수 있는 생명의 약동이 있다 할진대, 이것도 저희 것이 아니옵니다. 소망에 잠겨 ‘아버지 감사합니다. 그 뜻, 그 영광 놀랍소이다’ 하며 그리는 마음이 있을지라도 저희 것이 아니옵니다.

하나에서부터 천천만사가 나를 중심삼고 이루어졌고 나를 위하여 되어진 것이었으나, 타락한 이후부터는 자기를 중심하였으되 이것이 자기 것이 아닌 것을 알았사옵니다. 그리하여 하늘이 저희를 다시 찾아 준 것이요, 저희 자신들이 다시 하늘 것으로서 세워져야 할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아버님 ! 진정코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아들을 얼마나 그리워하셨사오며,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딸들을 얼마나 그리워하셨사옵니까. 이 시간 저희들은 아무것도 갖고 나오지 아니하였습니다. 세상에 자랑할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저희의 영광은 이미 이 땅 위에서 사라져 버렸고 저희의 욕망도 이 땅 위에서 이미 사라져 버렸사옵니다. 저희가 땅 위에서 바라는 것은 아무것도 없사옵기에 저희들이 가진 소망과 욕망이 있다 할진대 당신뿐이었사옵고, 마음으로 그리는 것이 있다 할진대 참다운 아버지의 아들 딸이 되는 것밖에는 없사온데, 아버지, 모인 이들이 당신께서 역사적으로 그리워하시며 찾아 나오신 아들 딸의 모습이 될 수 있겠습니까?

저희들은 아버지 앞에 서기에는 부족함이 많을 것을 알고 있사오나, 약속의 말씀을 의지하여 아버지 앞에 아뢰지 않을 수 없사오니, 이 시간, 저희들이 저지른 과거의 모든 죄악의 행실을 회개시키시옵고, 타락의 속성을 제거시켜 주시옵소서. 자신도 모르게 자연적으로 몸 마음이 움직여 아버님을 대하여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결과적인 입장에서 동기적인 본연의 생명을 느껴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은 몰림받는 무리였습니다. 누구 하나 저희를 대하여 변명해 주지 않는 외로운 것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외로와하고 낙망할 때에 아버지는 불러 주셨사옵고, 기진맥진하여 쓰러져 있을 때에 아버지께서 저희들을 일으켜 주신 것을 아옵니다. 지성을 다하여 만드신 인간들에게서 찾고자 하시는 충절을 저희들이 지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절개를 지닌 아들에게 찾아가 주시옵소서. 하늘 앞에 세울 때 사탄까지도 참소할 수 없는 자랑스런 아들을 찾으시옵소서.

이것이 요구였고 이것이 소원인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사오니, 이 시간이 자리에 나온 저희들이 복을 받기 위해 나온 자가 되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언제나 아버지의 주실 복만을 그리워하는 자가 되지 말게 하여 주시옵고, 언제나 아버지의 사랑을 받고도 그 사랑을 잊어버리는 자가 되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은사를 받고서 배반하고 배역(背逆)하는 자가 되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이날부터는 아버지가 은사를 주기 위해 얼마나 수고하셨는가를 아는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이 주시는 은사에 대하여 돌려드리는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고, 사랑을 돌려드리는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사탄세계의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기뻐할 수 있는 충절이 사무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6천년 동안 아버지께서 주어왔고 뿌려왔던 그 모든 것에 대하여 대가의 결실을 돌려드리는 이 경배가 되게 하여 주시옵고, 식구들이 되게 인도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님! 이 시간 모였사오니 분부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이 시간 아버지의 무릎 앞에 모였사오니 저희를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 저희가 가졌던 것을 다 내어놓았사오니, 선과 악을 구별하여 주시옵소서. 이 땅 위에 자기가 선한 자라고 하며 아버지 앞에 나설 자가 어디 있사옵니까. 깊고 깊은 그 사랑의 성상 앞에 설 적마다, 아버지 약속이 있을 것을 바라면서 아뢰고 있사오니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 무슨 말을 하오리까. 모든 것을 당신이 책임져 주시옵소서. 심정을 통할 수 있는 아버지의 영광이 나타나시옵소서. 전하는 자의 마음이나 받는 자의 마음이 하나가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심정세계는 많은 말이 필요치 않고 논리와 이론이 필요치 않은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그런 것은 그 자체에서 자연히 알게 되고, 그 자체에서 해답을 얻고, 그 자체에서 스스로 해명을 받을 수 있는 은사의 자리임을 아오니, 아버지의 실존에서부터 시작하여 우리의 가치가 무엇이며 만상과의 인연은 어떻게 되어 있는가 하는 모든 것을 이 시간 저희들이 느끼고, 그러한 자리에서 아버지와 더불어 움직일 수 있는 이 한 시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외로운 식구들이 사방에 널리어서 이 시간도 머리 숙이고 눈물지으며 기도하고 있사오니, 그들을 긍휼히 보시옵소서. 먹을 것을 먹지 못하고 입을 것을 입지 못하고 싸우고 있고, 조롱과 핍박을 받으면서도 아버지의 옷자락을 붙들고 있는 아들딸들이 있는 것을 알고 있사오니, 이 시간 같은 은사로 보호하여 주시옵기를, 나의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날을 영광으로 받아 주시옵고 기쁨으로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주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8-267
말 씀
이 시간 잠깐 드리려 하는 말씀의 제목은 ‘새로운 날’입니다. ‘새로운 날’ 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잠깐 말씀드리겠습니다.

8-267
아담 해와를 대한 하나님의 소망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지으시던 그 순간은 새로운 순간이었습니다. 지어지는 만물도 새로운 만물이었습니다. 짓는 순간도 그러하거니와 지어진 물건도 새로운 것인 동시에 새 것을 대하고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마음도 새로운 마음이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새로운 만물을 지어놓은 그 에덴, 새로운 만물과 더불어 영원복락을 향유해야 할 주인공 아담 해와, 그 아담 해와를 세워놓고 새로운 심정적인 이념을 품고 바라보시던 하나님, 그 하나님에게는 어느 한 순간 어느 한 시간 귀하지 않은 때가 없었을 것입니다. 아담 해와가 거동하는 그 한 순간 순간은 말할 수 없이 심각한 순간이요, 말할 수 없이 귀한 인연의 시간이었다는 것을 우리들은 이 시간 다시 회상해 보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자라나고 있는 아담 해와는 날이 감에 따라 이지와 지능이 밝아져 하나님의 본성을 대신하기에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지음받는 새로운 세계를 대하여 하나님의 심정을 대신해서 볼 수 있으며, 들을 수 있으며, 만질 수 있는 자격자임에 틀림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담 해와를 바라보시면서 그들의 움직임이 하나님 자신의 움직임이고, 그들이 하는 말은 하나님 자신의 말이 되고, 또한 그들이 듣고 보고 느끼는 모든 것이 하나님 자신이 듣고 보고 느끼는 것이 되기를 바랬습니다. 그러한 관계와 인연권내에 있는 아담 해와는 하나님이 심중으로 그리던, 하나님의 전체를 대신한 존재였음에 틀림없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

아담 해와를 위하여 지으신 만물을 품고 계시는 하나님은 아담 해와를 세워 놓고 어떠한 한날을 고대하고 그리워하셨던고? 여섯째날까지 만물 지으시기를 다 필하셨으나 아담 해와를 완성된 모습으로 창조하지 않으신 데에는 필시 아담 해와와 하나님 사이에는 무엇이 남아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바라시는 것은 지어 놓은 상태의 아담과 해와도 아니요, 그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그 기간도 아니요, 아담 해와를 통하여 찾아 이루고자 하시는 한날이었음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 한날을 맞이하는 그 순간 하나님도 기뻐하실 것이며, 아담 해와도 기뻐할 것이며, 만물도 기뻐할 것이기에 만물도 그날을 고대하고 인간도 그날을 고대하고 하나님도 그날을 고대했음에 틀림없습니다.

그 날이야말로 만상(萬象)이 즐거워할 수 있는 날이요, 그 날이야말로 하나님이 창조역사를 끝내 놓고 기뻐하실 수 있고 최고의 웃음을 웃을 수 있는 날이요, 최고의 춤을 출 수 있는 날이요, 천지가 생겨난 이후에 비로소 최고의 자유와 행복에 잠기어 만상이 뒤넘이치면서 화동(和動)하는 날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한날, 그러한 한 시간, 그러한 한 순간은 하나님의 심중에 소망의 날과 소망의 시간과 소원의 순간으로 묻힌 채 오늘날까지 미완(未完)의 이상(理想)으로 남아져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억울한 자리에 처하여 계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어찌하여 이렇게 되었는고? 타락이라는 슬픈 한 장면이 벌어짐으로 말미암아 이렇게 된 것임을 우리는 명심해야 합니다. 타락! 이 타락이라는 것이 새로운 만물도 하늘이 세운 법도에서 끊어냈고, 새로운 사람도 하나님의 법도에서 끊어놓고, 새로운 천지도 그 법도에서 끊어놓고, 새로운 하나님의 이념도 끊어놓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슬프고 또 슬프게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타락의 인연을 맺고 나온 역사, 타락의 혈통을 받고 있는 나입니다. 이것을 본연의 새로운 동산의 아담으로, 새로운 동산의 만물로, 새로운 동산의 하나님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어떻게 처리해야 할 것인고? 이것이 하나님의 고충이요, 인류의 고충이요, 역사의 고충이요, 만물의 고충임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8-269
인간의 타락과 새로운 한날을 맞기 위한 역사
하나님이 타락한 인류를 버릴 수 없는 인연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잘 알고 있습니다. 영원한 이념을 중심삼고 인간을 지은 원리적인 내용이 있는 연고로 하나님은 타락한 인류를 버릴래야 버리지 못한 채 이 날 이 시간까지 붙들고 나오십니다.

사람들은 흔히 말하기를,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라 합니다. 모든 만물은 인간으로 말미암은 것이요, 이 세계도 인간으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인간이 새로운 무엇을 갖고 있다고 자랑하더라도, 제아무리 인간적인 권한을 자랑한다 하더라도 이는 타락세계의 종의 신세를 면치 못한 자리에 있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다시 말하면, 타락인간은 하나님이 지으신 새로운 이념의 세계와 새로운 이념의 동산과 새로운 이념의 심정을 가진 사람과, 그 만물과는 하등의 인연이나 하등의 관계가 없다는 것을 우리는 똑똑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기에 타락한 인간들은 싸움의 역사를 거쳐오고 있습니다. 고통스럽고 슬픈 생활 속에서 허덕이면서 소망과 소원, 이념과 이상을 찾아 헤매고 있습니다. 그 소원이 무엇이며 그 이상이 무엇이뇨? 그 목표가 무엇이뇨? 그것은 다른 게 아니라 새로운 한날뿐입니다. 새로운 한날뿐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똑똑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타락한 인간이 새로운 한날을 맞이해야 되겠고, 이 만물이 새로운 한 시간을 가져야 되겠고, 이 천지가 새로운 한날을 맞이한 가운데 하나님을 모시고 새로운 날을 즐길 수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역사노정에 수많은 선지성현과 의인들이 왔다 갔지만, ‘나는 새날을 맞았고, 새로운 하늘의 뜻을 세웠고, 새로운 한날을 틀림없이 세웠노라’고 부르짖고 간 사람은 없었습니다. 예수님도 새로운 날을 소망하시면서 죽어갔습니다. 하나님도 우리에게 약속하시기를, 끝날이 온다고 하셨습니다. 내 마음의 움직임을 볼 때도 오늘의 나를 거부하고 새로운 한날의 나를 찾아 헤맨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타락한 인류는 새로운 날을 찾아 헤매고 있습니다. 타락의 혈통을 가진 오늘의 우리들도 새로운 한 생을 찾아, 새로운 한 시간을 찾아 헤매고 있습니다. 자기도 모르는 그 무엇이 우리의 감성을 움직여 오늘 이 시간도 나를 그런 방향으로 재촉하고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이 새로운 한날이 천지간에 이루어지면 하나님은 우리의 것, 세계는 우리의 것, 인류는 우리의 것, 만물은 우리의 것입니다. 하나님을 통하여 인연되어진 천상천하의 모든 피조물은 나의 것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그 한날을 맞을 수 있는 세계적인 이념을 찾아 허덕이고 있습니다. 세계를 지배하고 세계를 주관하고자 하여 이념을 품고 그 주의를 주장하여 나오는 사람이라면 그 이념을 거부하고 그 심적인 요구를 거부하는 자는 한 사람도 없습니다. 성현군자 성인현철들이 우리보다 앞서 이러한 소망을 가지고 이 길을 개척하였습니다.

그 뒤를 따라가는 우리들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그러한 한날, 하나님이 나의 것, 세계가 나의 것, 인류가 나의 것, 존재하는 일체가 나의 것이 되는 한 시간을 그리워하며 고대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8-270
새로운 한날을 세우기 위해 개척자로서 싸우신 하나님
하나님은 이러한 역사적인 한 시간, 역사적인 한날, 새로운 한날을 세우기 위하여 지금까지 싸움에 싸움을 계속해 나오고 계시는 것입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우리의 목전에서 싸우고 계시는 아버지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은 역사노정에서 싸워오셨고 오늘 이 시간에도 우리 앞에서 새로운 한날의 개척자로서 싸우고 계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새로운 한날을 고대하며 나오셨습니다. 새로운 날을 세우기 위해 싸워나오고 계십니다. 인간들이 싸워서 승리한다 해도 타락인간의 승리가 되니 뭐합니까. 타락한 인간을 시켜 건설해서 뭐합니까. 그렇기 때문에 타락과 하등의 관계가 없는 하나님이 타락한 인간 앞에서 싸워나 오시며 타락하지 않았다는 승리의 기준을 세워 타락하지 아니한 혈족을 남기시기 위해 수고해 오셨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시대 시대가 지남에 따라 개인을 지나고 가정을 지나고 민족, 혹은 부족을 지나고 국가를 지나서 세계까지 나왔습니다.

인간들은 자신이 선두에서 싸우는 줄 알고 있지만 그것이 아닙니다. 타락한 인간만으로써 싸워가지고는 이상이니 이념이니 하는 것이 이루어지는 한날이 올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아시는 하나님은 지금까지 6천년이란 기나긴 세월을 거치면서 우리의 선조보다도 먼저 개척해 나오셨습니다. 우리 선조가 움직이기 전에, 우리 선조가 개척하기 전에 하나님이 먼저 개척자가 되셨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개척자가 되어 수고하신 터전 위에 사람을 세워 싸우게 해 나온 역사인 것을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역사상에 큰 전쟁이 몇 번이나 있었습니까? 그 큰 전쟁이 벌어지기 전에 하나님이 먼저 큰 전쟁을 하시고, 그 전쟁에서 승리한 발판 위에 인간들을 세워 전쟁을 하게 하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날 육신을 가진 우리 인간들은 육(肉)만의 사람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종교인들은 악신(惡神)이 있는 동시에 선신(善神)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선한 하나님이 계시고 악한 사탄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사탄은 인류를 지배하였습니다. 사탄은 인류를 자기의 소유물로 하였습니다. 사탄은 우리의 혈통까지, 우리의 심정까지 유린하여 자기와 인연맺고 말았습니다.

이리하여 사람에게 지배받아야 할 이 세계는 사탄이 지배하는 세계가 되었고, 사람으로 말미암아 빚어져야 할 이 세계의 역사는 사탄으로 말미암아 빚어진 역사가 되었기에 모든 것이 사탄과 인연되어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인간들은 이것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역사의 기원은 어떠한 민족도 아니요, 어떠한 부족이나 씨족도 아니요, 개인이 제창한 어떠한 주의나 사조도 아닙니다. 이 역사는 단 하나 선한 하나님이 개척자가 되어 악한 사탄세계를 대하여 싸워나온 투쟁사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에 연유하여 역사는 선과 악이 대립하면서 엉클어져 나왔다는 사실을 우리는 올바로 알아야 되겠습니다.

8-272
하늘과 사탄이 싸우는 근본 목적과 그 종결시기
그러면 하늘의 소원은 무엇이뇨. 잃어버린 에덴을 다시 찾는 것입니다. 하늘의 소망은 무엇이뇨. 지으신 동산이 사망의 공포를 느끼지 않고 원수의 침략을 받지 않는 안식의 동산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늘이 싸우면서 찾아 나오는 소망의 목적지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역사는 하나의 세계를 향하여 가고 있고, 하나의 이념세계를 지향해 들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세계에는 주의와 사상이 나와서 움직여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으로써 세계는 끝나지 않습니다. 움직이고 있는 주의와 사상이 새로운 주의 같고 새로운 사상 같으되 이것은 타락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주의요 사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의 마음이 움직이고 있으되 그것은 악의 혈통에 인연되어 움직이는 마음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들의 심정이나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 주의와 사상은 어디에다 근거를 두어야 될 것이뇨? 생활적인 감정을 영원한 이념과 접속시켜 줄 수 있는 정적인 것을 기반으로 해야 됩니다. 그러지 못한 주의와 사상은 어느 한때 슬픔과 더불어 사라져 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늘은 인간의 마음과 인간의 심정을 혁명하기 위하여 인류역사를 움직여 나왔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의 인간들을 찾아오시는 데는 어떻게 찾아오셨느냐. 인간 심정의 중심을 향하여 공격전을 개시해 나왔습니다. 사탄에게 지배당하고 사탄에게 점령되어 있는 이 인간들을 사탄세계와 끊어놓고, 악의 본성을 폐하여 본성적으로 악을 싫어하고, 선을 좋아 할 수 있는 그 심정기준을 이루기 위하여 하늘은 개척해 나오셨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지금까지의 도의 관념은 심정적인 기준에 못 들어가고 있습니다. 그 도의 주의와 사상은 양심적인 기준까지는 이룰 수 있을는지 모르되 역사적인 심정, 민족적인 심정, 천륜적인 심정, 뼛골로 흐르는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심정, 부부끼리 사랑하는 심정, 형제끼리 사랑하는 심정……. 이런 심정문제를 완전히 해결짓지 못하고 있는 것을 여러분은 똑똑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 심정의 기준이 잡혀지지 않았기 때문에 인류는 싸우는 것입니다. 이 심정의 기준이 잡혀지지 않았기 때문에 형제 사이에 분열이 생기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사탄은 무엇 때문에 6천년 동안 싸워나 왔느뇨? 우리의 심정을 서로 점령하기 위하여 싸워나오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이 심정기준은 어느 때 잡혀질 것이뇨? 이 세계의 종말과 더불어 사탄세계가 송두리째 점령당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타락한 인간을 찾아 나오시며 세우려 하시는 새로운 날인 것을 알아야 됩니다. 타락한 인간들의 심정세계를 점령해 나오던 무리를 걸어 놓고 하늘이 심정적으로 점령했다고 외칠 수 있는 그 한 시간, 그 한날이 인간들이 찾아가는 날이요, 하나님이 그 한날을 인간 앞에 소개해 주기 위하여 싸움의 용자로서, 전체를 책임진 개척자로서 우리의 선조 때부터 지금까지 세상을 끌고 나왔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의 수고가 끝나는 시간은 언제이뇨? 하나님의 싸움이 끝나는 시간은 언제이뇨? 하나님의 심정은 하나입니다. 자식이 부모를,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그 심정은 하나입니다. 누가 점령할 수 없는 심정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고, 하나님의 자녀가 그렇다 할 수 있는 그 한날이 하나님이 찾고 계시는 새로운 날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타락한 인간도 부모된 자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은 둘이 아닙니다. 이는 절대 중의 절대입니다. 그것은 존재의식을 넘어서 존재할 수 있고 움직일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만우주의 어떠한 원동력이나 어떠한 존재물의 주관권내에서 머물지 않고 초월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이념을 초월 합니다. 인격적인 가치를 초월합니다. 이 기준은 하나님의 가치까지도 초월할 수 있습니다. 이런 기준이 이루어지는 날에는 악을 대하여 심판주의 입장에 있던 하나님도 심판주가 아니다 하는 자리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도의 기준을 세우고, 양심의 도리를 세우고, 인간 세계에 윤리를 세워 이 한 목표를 바라보게 하고 있습니다. 이 사탄 세계는 주의의 싸움, 혹은 혁명적인 사조를 개척하면서 나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의 역사는 변천의 역사요, 우리의 생활의 역사, 우리의 싸움의 역사는 변천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심정은 알파이자 오메가입니다. 처음이자 나중입니다. 참이라는 것은 시작과 끝이 같은 것입니다. 처음에 크다가 나중에 작아지는 것은 거짓입니다. 시작보다는 나중에 커가는 것이 선한 것입니다. 선은 망하는 법이 없기 때문에 작은 것에서부터 큰 것으로 즉, 작은 선에서부터 하나님과 같이 큰 선으로까지 발전해 나오는 것임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악은 컸다가 작아지는 것입니다. 악은 큰 이 한 천지를 가졌으되 점점 점점 빼앗겨 나오고 있습니다. 악의 역사는 잃어버리는 역사요 선의 역사는 찾아지는 역사입니다. 이런 원칙을 볼 때, 하나님이 주관하는 어떠한 도(道)나 어떠한 종교가 있다 할진대, 그것은 날이 가면 갈수록 확대되어 나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날이 가면 갈수록 주의와 사상을 휩쓸어 하나의 세계를 향하여 나아갈 것임에 틀림없다는 결론을 지을 수 있습니다.

8-274
역사가 변천하는 이유와 투쟁역사의 종착점
이런 원칙 밑에서 판단하게 될 때에, 오늘날 기독교는 세계적인 종교가 되어 있고 기독교인들은 세계의 사조를 움직이는 사람들이 되어 있어요? 선은 선한 것으로서 나왔으되 선의 목적지를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선은 선될 수 있는 역사는 거쳐 왔으되, 선의 가치가 이렇고 선은 이것이다, 아버지가 찾으시는 선은 이것이다, 영원한 선의 주체가 지녀야 할 것은 이것이다 하는 것을 명시해 주지 못했습니다. 예수는 이것에 대해 끝날에는 신랑 신부가 상봉해야 한다고 상징적으로 말했습니다.

우리는 최고의 선을 지향해 나왔습니다. 행동에도 선이요, 말씀에도 선이요, 생활에도 선이요, 내 관념과 주의 전체가 선이 되기를 바라고 나왔으나, 나는 바라고 있습니다. 주의로만 주장하는 선이 물러가고 행동으로만 자랑하는 선도 물러가기를. 그것을 넘고 넘어 하나님의 사랑을 지향 하는 선이 인류가 찾아나아가는 최후의 종착점이요, 그 선이 하나님이 선의 환경을 개척해 나오신 최후의 종착점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선의 중심이 이러하기에 예수는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를 대하여 효도하고, 누구를 사랑해야 할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자기를 사랑하라고 하지 않았어요.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것이 첫째되는 계명이라(마 22 :37)”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원칙적인 내용을 갖지 못한 종교는 어느 한 때 굴복당합니다. 이런 내용을 갖지 못한 주의와 사상도 굴복당하고 말 것입니다. 세계는 이런 종말적인 무대에 봉착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계시다 할진대 하나님도 지정의(知情意)를 내포한 주인공을 찾습니다. 지와 의는 상대적이로되 정은 절대적입니다. 세상에 아무리 훌륭한 인격을 갖춘 자, 명망이 높은 자가 있다 할지라도 심정적인 면에 있어서 어느 한 기준에 이르지 못했다면 불행한 자입니다. 이걸 부정하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바라보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찾고 계십니다. 인류도 바라보고 또 찾고 있는 그 기준은 하나님과 같은 점입니다. 그 기준은 갈라졌던 인간과 하나님이 상봉할 수 있는 점입니다. 하나님이 심정동산에서 비로소 안식할 수 있는 위치를 잡는 그 점입니다. 그 점은 과연 무엇이냐? 새로운 아들 딸을 세워놓고 영원히 영원히 사랑할 내 아들 내 딸이라 할수 있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마음, 하나님의 뼛골에 흐르는 그 마음은 어느 누가 점령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악한 사탄권세가 있다 할지라도 주인이 둘이 될 수 없는 그 이치를 여러분은 똑똑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나는 하나님 앞에 수많은 기독교를 대신하여 기도한 때가 있었습니다. ‘하나님, 아무리 명색을 갖춘 기독교인들이 많고 영화로운 환경을 자랑하는 교회당과 교파가 많다 할지라도 나는 그런 것을 원치 않습니다’하고. 하나님도 그런 것을 원치 않으심을 알았기에 그런 기도를 한 것입니다. 하늘은 찾고 계시되 어떠한 교회당을 찾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는 자기 아들이 청년일 때는 아들을 빙자하여 다른 젊은이를 사랑합니다. 사랑하지만 젊은이 전체를 직접 사랑할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누구를 연유하여 누구로 말미암아 사랑하는 것입니다. 아들이라는 존재를 근거로 하여 사랑의 인연을 맺어 나간다는 것입니다.

8-276
하나님이 인간을 간접적으로 사랑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이와같이 하나님도 인간들을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였습니다. 그래서 사랑해 나오셨습니다. 사랑하는데는 역사적으로 사랑했고, 혹은 사회적으로 사랑했고, 혹은 가정적으로 사랑했습니다. 보호해 주고 사탄을 분별시키면서 사랑해 왔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사랑해 오셨지만 인간을 대하여 ‘너는 내 아들이요, 내 딸이다’하시며 붙안고 사랑하시지는 못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은 복귀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복귀역사라고 하였습니다. 복귀역사인만큼 근원에서부터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올라가는 역사입니다. 하나님은 사랑해 나왔습니다. 자녀로 사랑해야 할 인간인데 타락한 연고로 종과 같이 사랑한 때가 있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백성과 같이 사랑한 때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스라엘 역사입니다. 종과 같이, 백성과 같이 사랑했으니 아들과 같이 딸과 같이 사랑할 수 있는 한날을 찾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 역사입니다.

예수와 성신은 왔었습니다. 누구로 왔던고? 예수는 사랑할 수 있는 아들이요, 성신은 사랑할 수 있는 딸로서 왔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이것을 잘 모릅니다. 성신이 뭡니까. 성신은 어머니신입니다. 어머니신이 성신입니다. 예수는 아들이요 성신은 딸, 이것이 인간의 표본 입니다. 인간은 예수와 성신을 표본삼아 이들과 인연을 맺음으로써 하늘의 아들 딸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늘의 아들 딸이 된다는 거예요.

내가 아들 딸이 된다니 고마운 일입니다. 고맙습니다 하고 하나님께 몇번이고 감사해야 할 일입니다. 그런데 아들 딸로 인정을 받는 것은 좋지만 하나님의 한이 남아 있는 것을 나는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저 아들 딸로 축복해 줄 수 있는 아들 딸보다도 품에 품고 애지중지하며 사랑할 수 있는 아들 딸들을 찾고 계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만물을 대해서 자랑할 수 있는 아들 딸보다도 품에 품고 뺨을 대고 입을 맞추며 사랑할 수 있는 아들 딸, 애지중지할 수 있는 아들 딸, 뼛골에 사무친 심정으로 사랑할 수 있는 아들 딸을 찾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를 세우시어 신랑과 신부라는 목표 밑에서 인류를 끌어들이려 했습니다. 그러기에 부활한 예수를 막달라 마리아가 붙잡으려 할 때 막았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찾고 있는 날이 멀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소원하시는 아들 딸은 어린양 잔칫날에 신랑 신부로 축복해 주고 그날부터 품고 사랑할 수 있는 아들 딸이었습니다. 그런데 역사상의 어느 누구도 6천년 전부터 오늘 이때까지 아버지의 품에 품고 혈육처럼 심정으로 기를 수 있는 아들 딸이 못 되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넘어야 할 고개는 어떠한 고개뇨. 주를 만나기 위한 세계적인 골고다입니다. 주를 만나기 위한 세계적인 골고다를 넘어야 합니다. 그 고개를 넘어 부활권내에 들어가서는 주를 어떻게 대할 것이뇨. ‘당신은 역사적인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당신은 시대적인 하나님의 아들 입니다. 당신은 미래적인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라고 인정할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8-277
하나님의 궁극적인 소원
우리는 말씀을 통하여 예수가 역사적인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알았습니다. 이 예수는 타락하기 전 선한 모습으로 하나님의 품 가운데서 자라난 아담과 같이 타락의 한을 잊어버린 자리에서 품고 키운 아들이 되어야 했는데, 그런 예수가 되었습니까? 못 되었습니다. 한스러운 4천년 역사를 붙들고 그 역사적인 서러운 장면과 싸우지 않으면 안 될 싸움의 책임자로 일생을 다 보내신 분이 예수였습니다.

하늘은 고대하고 있습니다. 예수가 신부를 맞이하는 그 한날로 하나님의 해원이 끝날 줄 알고 있는데 그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또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나는 한 때 이것을 알고 무한히 슬펐습니다. 역사적인 싸움의 무대에 하나의 구세주로 예수를 보냈지, 구세주가 필요없었던 선의 동산, 타락의 인연이 없는 동산의 왕자로서 보내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서 말입니다. 타락하지 아니한 세계, 사탄의 참소와 사탄의 비난을 받지 않는 선의 동산, 사탄의 비난, 비소, 사탄의 참소를 받지 아니하고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는 왕자로서는 태어나지 않은 것을 알고서 말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예수의 이런 사정을 꿈에도 모르고 있습니다. 예수만 맞이하면 단 줄 압니까. 아닙니다. 예수를 만나 가지고는 뭘 해야 할 것이뇨. 예수를 만나 가지고는 하나님의 사랑을 노래해야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은 무엇을 그리워하시느뇨. 타락으로 인한 한에서 벗어나서 안식할 수 있는 자유의 새 천지를 맞이해서 모든 시름을 잊고 사랑할수 있는, 어릴 때부터 품고 사랑할 수 있는 그런 아들 딸을 그리워 하신다는 것입니다.

예수가 이 땅에 왔다 갔지만, 이런 아들 딸이 이 땅 위에 있었느냐? 없었습니다. 만일 이런 아들 딸이 이 땅 위에 있는데 하나님이 그를 죽이면 하나님도 참소받습니다. 그런 아들 딸을 죽일 자는 없다는 거예요. 예수를 하나님이 죽음의 자리에 내놓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은 그가 그러한 아들 딸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기를 구세주로 대하지 않는 타락한 세계에서 싸움의 왕자, 메시아의 기준을 가졌던 것입니다. 만일에 사탄의 침범을 받지 않는 영원한 선의 동산에서 하나님이 품고 사랑할 수 있는 아들 딸이 있는데, 그를 사탄세계에 내놓아 죽게 했다면 천리 원칙은 근본부터 다 깨져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가 인류 앞에 나타내지 않은 분야가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나는 이 분야가 밝혀지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소원도 의당 그래야 논리적으로 맞는 것입니다. 타락했기 때문에 우리에게 예수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예수가 필요없습니다. 그런데 예수가 필요한 입장에서 구원받는다면 그 자리는 양자의 자리입니다. 양자. 로마서에 양자되기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직계의 자녀가 아닌 양자인 것입니다.

예수님도 신랑 신부를 갖추게 되면 하나님 품에 안기게 된다는 것입니다. 안기는 데는 그럴 수 있는 조건을 갖추어야 됩니다. 만일 예수가 승리해서 신랑 신부를 갖추어 가지고 지상천국을 이루고 하나님이 사랑할 수 있는 아들 딸을 가졌다면, 즉 에덴 동산에서의 타락하지 않은 기준에서 아들 딸을 가졌다면 어떻게 되었을 것이냐. 그거 생각해 봤어요? 오늘 처음 나온 사람은 ‘아 그것은 이단의 말이다’ 할 것입니다. 좋습니다. 그 기준을 향하여 우리는 넘어가야 되겠습니다. 나는 여러분 대해서 이것을 고대하고 있습니다. 내가 기도하는 목표가 있다면 그것입니다. 그런 것을 위해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8-279
인류가 가야 할 최후의 목적지
여러분, 우리는 한날을 사모하고 있습니다. 한 시간을 찾기 위하여 싸우고 있습니다. 이 목표를 향하여 수십 년 외로운 길을 걸어왔고 이 목적을 향하여 핍박의 길도 걸었으며, 이 한날을 성취시키기 위하여 연속되는 시련의 자리에 들어가는 것도 주저하지 않고 나선 것입니다. 우리는 이 목표를 향해 가야만 합니다.

제 1 이스라엘은 망해 버렸으니, 예수를 위주한 기독교가 제 2 이스라엘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제 2 이스라엘의 백성입니다. 기독교는 제 2 이스라엘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 제 2 이스라엘이 책임을 못하니 ‘주를 모시고 살수 있는 제 3 이스라엘을, 하나님이 품고 사랑 할 수 있는 아들 딸을 이 땅 위에 보내 주시옵소서’하고 기도해야 됩니다. 기도할 건 그것 밖에 없습니다. 내 아들 딸에게 복주시고, 내 나라를 사랑해 주시고, 이 세계가 어떻고 하는 기도는 하지 마십시오. 이 세계는 다 망할 거예요, 한번 심판대 앞에 서야만 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도 찾고 계십니다. 인간도 찾고 있습니다. 여러분이나 나나 그리워하며 찾아야 할 한 곳이 어디뇨? 내가 정성을 기울여야 할 정성의 근원지가 어디뇨? 정성을 드려야 할 왕궁이 어디뇨? 정성을 드리는데는 예수를 통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타락하기 전 아담의 심정을 대신하여, 타락하지 않은 아들 딸이 하나님 앞에 정성드리는 그 기준까지 가야 합니다. 이것이 타락한 인류가 가야 할 최후의 목적지입니다.

우리는 충성을 하되 예수보다 더 충성해야 됩니다. 예수는 죄악을 대하여 싸우고 사탄을 대하여 싸우는데 있어서 한면으로는 칼을 들어 원수와 싸우고 또 다른 면으로는 하나님을 위로하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싸우지 않는 입장, 즉 싸움을 다 끝내 가지고 불안과 공포를 느끼지 않는 평화와 자유의 환경에서, 자유 천지에서 하나님 앞에 충성을 드릴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런 모습을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도 이것을 향하여 2천년 동안 싸워 나왔습니다. 성신도 이것을 향하여 그날을 소망하며 싸워 나오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한 시간, 그 한날을 향하여 가야 하는 것입니다. 가는 데는 죽어서 말고 살아서 갈 수 있으면 얼마나 영광이겠습니까?

그 한날은 심정이 얼크러질 수 있는 순간이요, 하나님이 기뻐서 통곡할 수 있는 시간이요, 하나님의 기쁨과 하나님의 슬픔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 시간입니다. 지금까지 6천년 동안 쌓인 하나님의 슬픔의 보따리를 다 터쳐버리는 시간입니다. 그 순간은 역사적으로 제일 슬픈 순간이 될 것입니다. 역사와 더불어 하나님은 온갖 슬픈 노정을 걸어왔으나 그 순간에는 역사의 모든 슬픔을 한번에 울어 치웁니다. 동시에 그 순간부터는 기쁨의 눈물을 흘리기 시작하는 순간입니다. 그날은 희비극이 교차되는 순간입니다. 이것을 상징하여 인간세계에 반영되어 나타나는데, 하나님의 슬픔을 인계받은 종자, 하나님의 기쁨을 인계받은 종자로 갈라집니다. 그것이 심판입니다, 심판.

하나님이 지금까지 인간을 붙들고 슬퍼하시던 역사는 종결되고, 인간 대하여 소망하시던 기쁨의 날은 시작됩니다. 하나님 속에 체휼된 슬픔은 악한 종자에게 넘겨주고, 선한 마음과 기뻐할 수 있는 기쁨의 울음은 선한 종자한테 넘겨주는 것입니다.

세계는 심정을 두고 갈라질 날이 올 것입니다. 이것이 하늘이 인간 앞에 세우는 심판날입니다. 이날의 심판을 피하기 위하여 선지선열들이 선의 싸움을 한 피어린 역사노정이 있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것을 고이고 이것을 높이고 이것을 세우기 위하여 싸워 나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그날은 다가오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자는 시간에도 다가오고 있고, 싸우는 순간에도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 무엇을 생각하는 시간에도 다가오고 있으며, 여러분이 자식을 품고 사랑하는 그 순간에도 다가오고 있습니다. 어느 한 순간, 어느 한 찰나를 멈추지 않고 우리의 마음을 향하여 육박해 들어오고 있습니다. 우리의 생활에 침범해 들어오고 있습니다. 우리가 바라보고 있는 세계를 향하여 공격하고 있습니다. 이 한날을 마음에서부터 생활에서 가정에서 사회에서 국가에서 세계에서 쌍수를 들어 환영할 수 있는 하나의 왕자가 없습니다. 하늘은 그런 자를 찾고 계십니다.

8-281
하늘이 찾고 있는 인간과 새로운 한날
여러분, 여러분은 어떠한 생활관을 갖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어떠한 주의를 갖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어떠한 세계관을 갖고 있습니까? 여러분이 가져야 할 세계관은 그것이 아닙니다. 하늘은 새로운 이념에 불타는 세계관, 그 이념을 중심삼은 사회관, 그 이념을 중심삼은 가정관을 갖고 그 이념을 중심삼은 인격자가 되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내 일신에서부터 그러한 인격을 갖추어 가정, 사회, 국가, 세계의 문을 열고 ‘하나님 오시옵소서’ 할 수 있는 자가 된다 할진대, 심판대를 넘어갑니다. 무슨 말인지 이해하시겠어요?

예수가 주장하던 주의가 이렇고 하나님이 찾고 계시는 것이 이겁니다. 그런 세계관입니다. 그러한 인격을 갖추어 ‘아버지여, 내가 사망세계의 문을 여니 오시옵소서. 이 사망의 사회의 문을 여니, 아버지여, 오시옵소서. 사망의 가정의 문을 여니, 아버지여, 오시옵소서. 사망의 실체의 문을 여니, 오시옵소서’ 할 수 있는 하나의 왕자를 하나님은 찾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땅 위에서 그런 사람 만나 봤습니까? 왔다 가신 예수가 이런 일을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말하였습니다.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라야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라 했습니다. 집안 식구도 그렇지 못할 때는 원수라고 했습니다.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는 철두철미한 분이었습니다. ‘내 손에 못을 박은들 나는 안 죽는다. 못을 박는다고 죽어지는 내가 아니다’ 했습니다. 죽지 않는 내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그렇게 철두철미한 우주관을 기반으로 한 세계이념을 갖추어 가지고 사망의 환경에 있을망정 ‘하늘이여, 이 세계의 문을 열었사옵고, 이 민족과 이 사회의 문도 열었사오니, 오시 옵소서’ 하면 하나님께서도 ‘오냐’ 하시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망의 물결이 진동하는 이 때에, 내 마음의 문을 열고, 가정의 문을 열고, 사회와 국가와 세계의 문을 열어 가지고 ‘아버님, 오시옵소서’ 할 수 있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심판날이 오기 전에 심판을 넘어설 아들 딸이 나와야 됩니다. 그런 존재가 나와야만 세상이 망하지 않지, 안 나오면 다 망한다는 겁니다.

인간들은 인생관을 갖고 있습니다. 세계관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심정을 통할 수 있는 천주관(天宙觀)을 갖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인간은 이론적인 것만 가지고는 안락하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인간은 이론만 가지고 움직이는 것이 아닙니다. 그걸 알아야 합니다. 천주관을 가지면 말하지 않아도 대하면 다 통한다는 겁니다.

오늘날 인간 앞에 네가 누구고 내가 누구라고 말하지 않아도 세상에서 제일 가까운 형제나 부모와 같이 누구보다도 가까울 수 있는, 심정이 자극될 수 있는 그 무엇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나오면 형제를 버리고 그리로 가고, 부모를 버리고 그리로 가고, 국가를 버리고 그리로 가고, 세계를 버리고 그리로 갑니다. 그것은 논리적인 한계의 인격, 구상하고 상상해서 되어진 인격이 아닙니다. 자연적이요 자동적이면서 천륜을 통할 수 있는 인격입니다. 천정(天情)이 움직여 인정적(人情的)인 모든 것을 자동적으로 지배할 수 있는 심정적인 인격이 이 땅 위에 나오면, 세계는 가만히 내버려 두어도 통일됩니다. 하늘은 이런 한날을 고대하고 있습니다.

그런 자극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겠느뇨? 타락하지 않았을 때 하나님이 품고 사랑하시던 그런 아들 딸이 이 땅 위에 나와야 합니다. 사탄을 궤멸시켜 가지고 사탄의 참소나 악의 침범이 없는, 공포와 불안을 느끼지 않는 행복의 동산에서, 그 자리는 영원무궁토록 태평이요, 영원무궁토록 자유스러운, 어디를 가서 어떻게 품고 사랑하고 어떻게 하든 누가 어떻다고 할 수 없는 자유천지의 동산에서 하나님이 품고 사랑할 수 있는 아들 딸이 나타나야 합니다. 그러면 이 세계는 순식간에 통일이 될 것입니다. 나는 그러한 것을 생각할 때마다 ‘아버지, 얼마나 그리웠습니까?’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8-283
새로운 한날을 맞이하기 위한 우리의 책임
이 그리워하는 마음은 창세 전부터 아버지께서 그리워하던 마음입니다. 안 그래요? 아담 해와를 낳기 전부터 고대하던 마음, 만물을 짓기 전부터 있던 마음입니다. 그 심정을 채우기 위하여 천지를 창조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무한히 불쌍한 분입니다. 죄악의 자식을 품고, 사랑하는 아들이라 할 수밖에 없는 거북한 입장에 있는 하나님, 죄악된 아들 딸들이 살고 있는 이 땅 위에 오셔서 찢기고 상처를 받고 몰리는 하나님인 것을 여러분은 생각해야 됩니다.

하나님의 심정은 찢기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통곡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심정에는 갈기갈기 찢겨진 상처가 있습니다. 민족이 쓰러지고 새로운 민족이 이루어지는 그때마다, 역사의 어느 한 페이지도 제외됨이 없이 하나님의 심정의 곡절이 스며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은 타락한 역사노정에 있어서 그러한 심정을 가지고 나오셨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그런 전통적인 심정을 가진 하나님과 심정적으로 결탁 되어야 됩니다. 그러려면 무한히 슬펐던 하나님을 알고 무한히 고통스러웠던 하나님을 알아야 됩니다. 무한히 분하고 억울했던 하나님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누구 때문에 하나님이 이러시는고? 인류 때문에, 우리 때문에, 이 세계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땅 위에 사는 우리들은 하나님의 한을 풀어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슬픔과 고통이 끝나지 않는 한 슬픔의 역사를 붙들고 나아가야 할 하나님임을 알았으면 ‘아버님이여, 당신의 슬픔을 제게 지워 주시옵소서’ 할 수 있는 아들 딸이 되어야 합니다. 안 주려 하시면 빼앗아 가지고라도 져야 합니다. 빼앗아서라도 하나님의 슬픔을 지는 아들 딸이 되어야 합니다. 아버님의 고통이 내 고통이요, 아버님의 억울함이 내 억울함이라고 할 수 있는 아들 딸이 이 땅위에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아들 딸이 몇 명이나 됩니까. 예수를 믿고 천당가겠다고? 예수를 믿고 편안하겠다고? 그런 사람은 하늘의 역적입니다. 할 것 다 해야 천당가는 겁니다. 할 것 다 해야 복받는 겁니다. 해야 할일을 하지도 않고 천당가려 하고 복받으려 해? 그런 사람은 강도입니다. 이걸 알아야 합니다.

이제 여러분은 하나님의 슬픔을 인계받는 왕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예수는 그런 왕자였습니다. 죽음을 홀로 인계맡은 왕자였기에 구세주가 되었습니다. 죽음으로 쓰러졌지만 부활의 권한으로 살아났으니 사망권을 지배할 수 있는 왕자가 되었습니다. 예수는 숨은 눈물을 많이 흘렸습니다. 여러분, 성경에는 이것이 몇 번밖에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나의 눈물, 피, 감정, 여기에는 예수의 모든 오관의 감정이 어리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와 더불어 울어본 자, 예수와 더불어 고통받은 자, 예수와 더불어 간장을 녹여본 자, 그런 자가 아니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통일교회를 찾아왔지만 과거의 그런 습관적인 신앙 갖고는 안 됩니다. 통일교회 신앙은 그런 신앙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입니다.

8-284
사탄이 제일 무서워 하는 사람
사탄이 제일 무서워하는 자는 어떠한 자뇨. 영과 육을 합하여 하나님이 지신 십자가를 대신 지겠다는 자입니다. 하나님의 사랑받겠다는 사람은 사탄이 우습게 알아요. ‘하나님, 제가 당신의 십자가를 지겠나이다’하는 자를 사탄이 제일 무서워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제가 억울함을 당하지오’ 하게 될 때 사탄은 도망간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끝날 성도에게는 반드시 환난이 옵니다. 하나님이 참아 나오신 고비고비의 곡절을 비롯하여 억울함과 배반과 배척과 몰림과 죽음과 역사상의 피어린 모든 흔적이 여러분을 휩쓸 것입니다. 그러나 하늘에 대한 일편단심, ‘내 뜻대로 마시옵고 아버지 뜻대로 하시옵소서’하는 이 심정을 누가 지배하겠습니까? 아버지와 나와의 심정적인 인연을 누가 끊겠습니까? 사탄의 권세요? 어림도 없습니다. 사망의 권한도 어림없습니다. 이 심정을 무엇이 지배할소냐! 이것을 찾아가는 노정에서 어떠한 어려움도 참고 넘어갈 수 있는 기준을 가진 자라야만이 최후의 심판대를 넘어설 수 있습니다. 그런 자라야만이 하나님이 찾고 있고 인류가 찾고 있는 새로운 한날을 맞이할 수 있다는 것을 똑똑히 알아야 합니다.

사랑과 절대적인 선은 영원합니다. 처음과 끝이 같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버지에게서 은혜받고 기뻐 춤을 추며 맹세를 해 놓고 어느 순간에 변하는 자는 사탄편입니다. 우리는 ‘아버지와 더불어 심정적으로 결탁된 이 마음을 누가 점령할소냐, 사탄세계의 사망권한아 오너라, 사탄세계의 피의 곡절아 오너라, 사탄세계의 그 무엇 다 오너라, 세기말적인 공포나 7년 대환난 전부다 한꺼번에 몰아쳐오라. 난 점령당하지 않는다. 그런것 가지고 날 점령하지 못한다’라고 할 수 있는 기준, 심정적으로 아버지를 부를 수 있는 승리의 기틀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래 가지고 ‘사탄세계에서 이러한 뜻을 위하여 싸워 오신 아버지시여! 이 사망세계에서 어느 한날 이러한 아들 딸을 만나 위로받으셨습니까? 위로받지 못하신 하나님이시여 ! 오늘 제가 위로해 드리겠습니다’ 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자는 새로운 시대, 새로운 날에 하나님의 아들 딸이 될 수 있고, 세계를 유업으로 받을 수 있는 당당한 자격자라는 것을 여러분은 똑똑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8-285
기 도
지나간 인생행로는 슬펐습니다. 성인현철도 다 지나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들의 주장도 다 지나가 버리고 그들의 세력과 권세도 다 지나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오직 사망과 성명의 권세뿐입니다. 사망의 권세를 비웃는 자가 이 땅에 많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사망의 권세를 비웃는 자만이 생명의 권세를 소유할 수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사망과 생명을 판가리하는 순간이 역사선상에서 벌어질 것이며, 사회에서 벌어질 것이며, 가정에서 벌어질 것이며, 내 자체에서 벌어질 것입니다. 이러한 것이 벌어지고 창조 이후 대전쟁이 벌어지는 때가 심판 때인 것을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이 땅 위의 믿는 신자들은 심판날에는 불이 하늘로부터 내려 이 땅을 살라버릴 것으로 알고 있으나 그렇지 않은 것을 아옵니다. 사망과 생명의 판가름은 이 세계의 사조를 걸어놓고 한다는 것을, 교회나 가정이나 이념이나 곡절에 엉클어진 세계의 실전상이 다 거기에서 판가리난다는 것을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사망을 갈라 치우고 생명의 권한을 갖고 나오는 자에게만 새로운 날, 새로운 시대, 새로운 세계, 새로운 천주를 바라볼 수 있는 약속이 있음을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말씀드렸듯이 새로운 한날을 위하여 저희들은 불리움을 받았사옵니다. 오늘 살고 있는 나의 모든 것은 다 지나가야 될 것입니다. 부모도 지나갑니다. 처자도 지나갑니다. 내가 갖고 있는 명예와 권세, 내가 갖고 있는 일체와 귀하다는 모든 것도 지나가 버립니다. 지나가고 남아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사망의 권세 앞에 시달리고 또 시달려도 남아질 것은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인연되어 있는 심정의 덩어리임을 알게 허락하여주시옵소서.

이것이 남아지는 곳에는 또 전인류가 살 수 있다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내가 쓰러져도 그것은 남아 있는 것을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 사망이 깊이 뿌리박은 이 천지 위에 생명의 뿌리를 깊이 박으사, 자르고 잘라도 무한히 나올 수 있는 터전이 어서 이루어지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아버님, 이것을 위하여 저희들은 부름을 받았습니다. 이것을 위하여 핍박을 받습니다. 아버지의 발자취를 따라 나가는 심정적인 노정 위에 있어서 어느 형제가 귀하지 않겠사옵니까? 멀고 가까운 거리의 차이는 있을 망정, 아버지를 대하고자 하는 심정은 역사와 더불어, 시대와 더불어, 미래와 더불어 움직이는 이념적인 충동인 것을 아옵니다. 오늘 저희들이 세계적인 심정의 기준에서 울지 못할진대 국가적인 심정의 기준에서 울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국가의 기준에서도 울지 못할진대 이 사회와 이 민족과 가정적인 기준에서 울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가정적인 기준에서도 울지 못할진대 내 기준에서라도 울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래야만 하늘권속의 일원으로서 세워질 수 있다는 것을 저희들이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예수는 불쌍한 분이었습니다. 그는 사탄 대한 싸움의 왕자요, 심판의 왕자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아버님이여, 끝날 심판을 하시어 신랑 신부의 이름을 찾아 세우신 그 다음에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저희들이 알았사오니, 타락이 없는 본연의 에덴동산에서 품고 사랑할 수 있었던 아들 딸로 설 수 있는 이념을 저희들에게 주시옵소서.

이런 사실을 알려 주신 것만 해도, 아버지, 감사하옵니다. 남이 모르는 가운데 이런 심정을 그리워하고, 남이 흘리지 않는 눈물을 먼저 흘릴 수 있으며, 남이 생각하지 않는 일을 먼저 생각할 수 있는 자리에 세워 주셨으니, 그 자리에는 못 갔을망정 이 어이 감사하지 않겠사옵니까.

저희의 마음이 아버지 것이요, 저희의 몸이 아버지의 것일진대, 저희들이 사는 나라가 아버지의 것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이 세계가 아버지의 것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 세계는 아버지가 창조하신 피조 세계의 한 분야임을 아오니, 아버지의 것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오늘 이들의 몸과 마음이 약동하여 새로운 한날을 심정적으로 그리워할 수 있고 ‘사탄세계의 고난아 나타나거라. 네 자랑할 것이 무엇이냐? 사망의 실권아 나타나거라, 네가 자랑할 것이 무엇이냐?’고 하며 그들과 이별하고 아버지와 하나되어 환희의 노래를 부를 수 있는 한 시간을 이들 앞에 허락하여 주시옵고, 기필코 그날을 맞도록, 아버지, 붙들어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아버님의 양자가 아닌 친아들로서 아버지의 영원한 사랑의 품에 안기어서 하늘 땅을 유업으로 받은 후, 그것을 다시 하나님의 것으로 돌려드릴 수 있는 기쁨의 자극적인 존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올 때에, 모든 말씀 주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