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35 to 8-260: 하늘의 심정을 누가 알았는고

하늘의 심정을 누가 알았는고
1960.01.17 (일), 한국 전본부교회

8-235
하늘의 심정을 누가 알았는고
마태복음 11:1-19

[기 도]

이 시간 저희들은 하늘을 대하고 있사옵니다. 지금 저희들은 하늘의 뜻을 받들었던 세례 요한도 이해하지 못한 예수님의 역사적인 심정을 체휼하기 위하여 성경말씀을 봉독하였사옵니다. 저희가 앉은 이 자리는 감옥에 갇힌 후에 예수님을 염려하고 예수님을 위해 기도하고 예수님을 위해 모든 정성을 드려야 했던 세례 요한을 대신한 자리임을 느끼게 하여 주시옵소서.

세례 요한이 예수와 반대의 입장에 선 것이 하늘의 슬픔이요, 예수님의 억울함이었다는 것을 저희들은 배워 알았나이다. 하늘과 땅이 굽이쳐 돌아가는 순간에 엘리아의 사명을 대신해야 했던 세례 요한이 책임을 다하지 못할 때 지극히 불쌍한 모습이 되었던 것을 아는 동시에, 이 시대에 있어서 세례 요한의 사명을 대신해야 할 책임이 여기에 모여 앉은 저희들에게 있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사옵니다.

이제 저희들은 보고 느끼는 모든 것을 저희 한 자체를 중심삼고 보거나 느끼지 말아야겠습니다. 세례 요한이 자기를 중심삼고 느끼고 보게 되었을 때 사망의 친구가 되었다는 사실을 저희들이 이 시간 느끼게 하여 주시 옵소서.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중심삼고 보고 느낄 줄 알았던들 하늘의 반역자는 되지 않았을 것이고, 4천년 원한의 역사도 종결을 지어 놓았을 것입니다. 기쁜 가운데 주님을 모시고 영광의 날을 맞이했을 것이요, 영광의 역사를 이루었을 것이며, 영광의 민족을 건설하였을 것이옵니다. 그런데 세례 요한을 중심삼은 전체 교단과 민족이 책임을 다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역사적인 슬픔을 초래하였던 이 한 사실이 얼마나 비통한 것인지를, 저희들이 알게 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 소수의 무리가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었사옵니다. 저희들은 이 시대에 새로운 말씀의 봉화를 들고 나서야 할 자들이옵고, 세례 요한을 대신해야 할 사명이 저희의 어깨 위에, 이 한 몸과 마음 위에 짊어지워져 있다는 사실을 너나할것없이 뼈살에 사무치도록 느끼게 하여 주시옵소서. 역사적인 심정을 유린한 세례 요한의 후계자가 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역사상에 원통하고 분한 족적을 남긴 배반의 선조를 가졌던 것을 분하게 여기는 저희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앞에 충효를 다하여야 할 저희들, 새로이 심정을 가다듬어 아버지를 위안해 드리고 아버지의 심정속에 들어가 아버지의 한을 풀어 드림으로써, 하늘의 심정이 어떻다는 것을 밝히고 그 터전을 넓히는 사명을 다하는 승리의 세례 요한격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저희들을 긍휼히 보시옵소서. 이 한 시간은 수천년의 역사를 경과하여 역사적인 거리를 둔 시간이오나, 심정을 중심삼고는 아버지께서 함께 하실 수 있고 아버지의 아들 딸이 될 수 있사오니, 그리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심정이 통하는 자리는 아버지가 놓을 수 없는 자리임을 알고 있사오니, 저희의 사정과 아버지의 사정이 엉클어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는 역사적인 아버지인 동시에 실제 나의 아버지요, 내 생활 가운데 계시는 아버지이며, 내 이념과 내 생애에서 뗄 수 없는 아버지시옵니다. 이 시간 저희들의 마음과 몸을 화하여 그런 아버지로서 대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고, 친히 그런 아버지로서 나타나 주시옵소서. 아버지의 심정을 통할 수 있는 인연을 더 두텁게 하기 위하여 말씀을 나누는 이 시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러기 위해서 이제 저희가 지금까지 지니고 있던 모든 것을 포기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자기가 지니고 있는 재산이나 직위, 혹은 명예나 자랑할 무엇이 있다 할지라도 그 모든 것은 하늘 앞에 승리적인 조건으로서 바쳐질 것이 못 되오니, 그것들을 거부하고 참다운 미의 마음을 갖추고 참다운 선(善)의 심정을 갖추어 아버지를 모실 수 있는 이 한 시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참다운 미와 사랑에 화하여 아버지의 본성과 심정을 저희들이 다시 한번 느끼고 그 마음 앞에 머리 숙이어 그 마음을 중심삼고 아버지께 영광 돌리고 새로운 말씀을 받을 수 있는 이 시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잠들어 있는 이 민족을 긍휼히 보시옵소서. 외롭고 지치는 자리에서도 참고 싸워 나가는 사랑하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있사오니 그들 위에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더우기나 숨은 제단을 쌓으면서 때를 알지 못하여 염려하는 마음을 품고 하늘 앞에 호소하는 아들딸들도 많은 줄 알고 있사오니, 그런 아들딸들을 동원하시어 아버지의 승리의 한날, 영광의 한날, 사탄을 심판할 수 있는 그 한날을 어서 속히 맞이하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이 시간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고, 전하고자 하는 말씀에도 아버지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사람을 통한 말씀은 저희들이 많이 들었습니다. 사람과 인연되어진 말씀은 많이 들었사오나 그런 말씀을 원치 아니하고 있사오니, 아버지, 친히 나타나시옵소서.

생명도 아버지로 말미암은 것이요, 참다운 진리의 말씀도 아버지로 말미암은 것이요, 영광의 은사도 아버지로 말미암은 것이오니, 아버지를 중심삼지 않은 일체는 용납하지 마시옵고, 아버지로 말미암은 전체의 은사만으로 저희의 몸 마음과 전체의 분위기를 조정하시옵고, 사탄이 틈타는 시간이 되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전하는 자의 마음과 받는 자의 마음이 한 심정에 어리어 하나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 심정에 응하지 못하는 자가 있사올진대 스스로 죄인된 것을 뉘우칠 수 있는 마음을 허락하시옵소서. 이 시간 일체를 아버지 당신이 주관하시옵고, 아버지께서 친히 품을 수 있는 승리와 영광의 아들 딸로 인정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남아진 시간도 아버지 친히 주관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하올 때, 주의 이름으로 기도하였사옵니다. 아멘.

8-238
말 씀
오늘 여러분들 앞에 말씀드리려 하는 제목은 ‘하늘의 심정을 누가 알았는고’입니다.’하늘의 심정을 누가 알았는고’ 이러한 제목을 가지고 말씀드리겠습니다.

8-238
타락한 인간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심정
만물을 짓기 전에 이미 하나님에게는 창조하고자 하시는 심정이 있었습니다. 그 심정은 창조이상(創造理想)으로서 그것을 실현하기 위하여 하나님은 창조의 계획을 세우시고 만물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소원은 그의 심정이 통할 수 있는 창조이상의 세계, 창조이상의 사람, 창조이상의 만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이상의 세계, 이상의 사람, 이상의 만물이 못 되어 있는 것이 하나님의 한(恨)입니다.

왜 이렇게 되었느뇨? 여러분이 알다시피 타락한 연고입니다. 영원무궁토록 하나님의 심정을 중심삼고 창조이념과 더불어 움직여야 할 창조물은 선의 기원을 찾지 못한 채 오늘날까지 하늘과 인간, 하늘과 피조물로 각각 동떨어져서 움직여 나왔습니다. 본래에는 하나님의 손길을 거쳐난 인연을 갖고 있고, 하나님의 심정의 대상으로서 뗄래야 뗄 수 없는 인연을 갖고 있는 만물과 인간이로되, 오늘날엔 하나님의 손길이 우리의 몸에도 만물에도 머물 수 없고, 하나님의 심정 또한 만물에도 우리 일신에도 머물 수 없습니다. 이러한 통탄스러운 일이 있게 된 것은 타락의 결과라는 것을 우리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타락한 인간을 보는 그날부터 하나님은 타락한 세계를 보지 않으면 안 되었고, 타락한 인간을 대하는 그날부터 하나님께서 고대하시던 창조이상세계는 마음속 깊이 숨어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상이 있으되 그 이상을 실현할 수 없고, 만물을 대할 적마다 그 이상을 이루고 싶은 마음은 움직였으되 그 이상의 마음을 표현할 수 없는 하늘이었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만 되겠습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만물이로되 하나님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사랑해야 할 자녀로되 하나님이 사랑할 수 있는 자녀가 못 되었습니다. 그러기에 이 땅을 바라보는 하늘은 기쁨의 하늘이 아니었습니다. 슬픔 중의 슬픔을 느껴야 하는 하늘이요, 고통 중의 고통을 느껴야 하는 하늘이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은 본래 인간으로 하여금 당신의 직계 자녀라는 명분을 갖추게끔 지었던 인연을 포기 할 수 없어서, 다시 찾는 역사, 즉 구원역사, 재창조역사를 시작했습니다. 잃어버린 자를 다시 찾기 위한 역사노정에서 하나님은 많은 슬픔을 겪어 나오셨는데, 그 슬픈 마음을 동정해주는 한 사람이 없었던 하나님의 입장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가운데 하늘은 슬픈 심정을 품고 타락한 인류의 뒤를 따라 나왔습니다. 앞에 서지 못하고 뒤를 따라 나왔습니다. 사형수의 부모가 형장에 나가는 아들의 뒤를 따라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사망의 손길에 끌려가는 인류, 우주적인 사형수와 같은 인류의 뒤를 따라 나왔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마음대로 주관하고 사랑하고도 남음이 있어야 할 그 인류를, 사탄의 장중(掌中)에 내어놓고 사탄 앞에 유린당하고 찢김받는 제물의 입장에 내놓게 될 적마다 무한한 고통을 느꼈습니다. 개인을 그런 입장에 내놓을 땐 개인적인 십자가의 고통을 느끼지 않으면 안 되었고, 가정이나 민족, 혹은 국가를 그런 입장에 내놓을 때는 거기에 상응되는 십자가의 고통을 느끼지 않으면 안 되었던 하늘이었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염두에 두어야만 되겠습니다.

8-239
인간에 대해 품고 있는 하나님의 심정과 소망
그러면 어찌하여 하나님이 이러한 사정에 놓여지게 되었는고? 인간이 타락한 연고입니다.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시뇨? 인류의 참조상입니다. 나와는 뗄래야 뗄 수 없고 내 본질 전체와 인연되어져 있는 아버지이십니다. 그 아버지가 이런 사정에 처해 있다는 사실을 인간들은 모르고 있습니다. 하늘은 인간들이 이런 입장을 파괴해 버리고 다시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그 한날이 오기를 바라고 또 바라며 나오고 계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늘의 뜻을 알고 하늘을 찾기 위하여 하늘이 움직이는 방향을 따라 도의 길을 개척해 나온 사람들도 그 한날을 고대하여 나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날은 아버지께서 고대하시는 한날이요, 아들 딸도 고대하는 한날입니다. 그날은 잃어버렸던 아들이 사망의 사슬을 끊고 해방의 모습으로 다시 돌아와 아버지를 부를 수 있는 날입니다. 본연의 동산에서 지음을 받았던 그 본연의 참다운 아들 딸로서, 본연의 심정으로 그리던 아버지를 부를 수 있는 날입니다. 그 한날이 인류가 소원하고 하나님이 소원하는 날인 것을 여러분은 똑똑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마음을 갖고 하늘은 역사노정을 대해 나왔습니다. 죄인 중의 죄인된 인간을 대할 적에도 그러한 마음은 사라지지 않았고, 죽어가는 아들 딸을 대하는 자리에서도 그 마음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또 그러한 것을 탄식하며 선의 방향을 찾아 헤매어 나온 수많은 도인들이 움직이는 자리에서도 하나님은 떠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나의 죄인에서부터 선을 향하고 의에 불타 울부짖는 그 한 생명에까지 어떠한 환경, 어떠한 시대를 막론하고 하늘은 같은 심정을 갖고 대해 나왔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게 선한 하나님이요, 그렇게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인 연고로 인간이 죄 가운데 사로잡혀 있더라도 ‘내 아들이야, 딸이야’ 하는 감정이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 감정이 없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을 대할 때에 하늘은 무한한 고통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악한 아들딸을 바라보고 고통을 느끼는 하나님은, 선을 찾아 나가는 아들 딸이 있다 할진대, 그들에게 내 고통을 풀어달라고 요구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인 것입니다. 이것이 하늘의 심정입니다. 그런 연고로 선을 지향하여 도의 길을 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죄인을 붙들고 쓰러져 간 사실을 우리들은 역사노정을 통해서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어찌하여 하늘은 그러한 작전을 지시해 나오시는고? 하늘은 죽어가는 아들딸에 대해서도 아들딸이라는 감정을 잊어버릴 수 없는 연고로, 좀 선한 아들딸을 동원하여 그들을 구하고 싶고 도와주고 싶어서 입니다. 이것이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그렇기에 하늘은 6천년이란 기나긴 세월을 죄인들을 위해서, 악한 무리를 구하기 위하여 선한 아들딸들을 죽음의 자리에 몰아넣기를 개의치 아니하셨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누구입니까? 우리의 아버지입니다. 우리의 아버지는 어떠한 분입니까? 하나님은 부모이신지라 사망의 굴레에 사로잡혀 있는 아들딸들을 바라보게 될 때에 그들을 구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래서 아버지를 따르는 아들딸들을 희생시키기를 개의치 않고 역사를 이끌어 나오셨음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 마음이 섭리역사를 이끌어 나오는 본심입니다.

그런데 아담 이후 지금까지 6천년의 역사가 지나갔지만 죄악에 물들어 있는 인류가 어느 한때 이런 아버지를 불러봤으며, 어느 한때 이러한 일을 하고 계시는 아버지라 여기고 감사해봤습니까? 그런 자가 몇 명이나 되겠습니까?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거예요.

어찌하여 하늘은 아담 가정을 대할 때 무한히도 슬픈 심정으로 대했습니까? 아벨을 대하는 마음과 가인을 대하는 마음에 어찌 차이가 있었겠습니까? 본심에서 우러나는 그 심정에 있어서는 그도 저도 모두 아들딸의 입장이었으되 차별의 심정을 갖고 대해야 하는 것이 하늘의 사정이었습니다. 그렇게 서글픈 자리에 계신 하늘이신데 아벨의 제물은 받고 자신의 제물은 받지 않았다고 가인이 아벨을 쳐죽인 것은 하나님을 친 것보다 더 분한 사실이었습니다.

이리하여 인류의 역사는 하나님의 심정과 인연을 맺지 못하고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참다운 심정 앞에 반기를 들고 배반과 원망과 불만을 토로하기 시작한 것이 가인의 역사라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심정을 대했던 심정의 역사는 끊어지고 배반의 역사가 대(代)를 이어 이루어진 세계가 오늘날의 이 천지임을 우리들은 알아야 됩니다.

배반으로 인하여 타락의 심정을 조성하였던 가인의 역사를 우리는 무한히 통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부자의 인연을 맺어서 하나님의 심정의 역사가 전개되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하고 배반의 심정, 반역의 심정이 대를 이어 나온 연고로 인류 역사노정에 있어서 하나님의 심정의 역사가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랑할 수 있는 아들딸이 지상에 나타나지 않았다는 거예요.

우리는 한(恨)해야 되겠습니다. 자신의 몸에서 뛰고 있는 심장의 고동 소리를 듣게 될 때 우리는 한해야 되겠습니다. 그 맥박은 어디서부터 출발하여 나왔는고? 가인의 심장에서부터입니다. 가인의 심장의 소리가 지금 여러분의 몸 속에서 울리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는 가인의 피와 인연되어 선과 상반되기를 즐겨하는 입장에 처해 있고, 사탄의 피가 뛰고 있는 자신임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8-242
하나님이 한탄하는 원인과 인간의 책임
하늘이 지금까지 한탄하는 원인이 어디 있는가? 심정의 기원을 같이 해 가지고 하늘과 더불어 생활하고, 더불어 만물을 주관해야 할 인간이요 직계 자녀의 입장에 있어야 할 인간인데도 불구하고, 그렇게 할 수 없는 입장에 섰다는 것입니다. 그 반면 사탄과 동행하고 사탄을 중심삼고 생활하고, 사탄을 중심삼고 세계를 주관하고 있습니다. 이 세계는 악을 중심삼고 악의 사정을 통하고 악의 심정과 결탁하여 이루어진 세계이지, 선을 중심삼고 선의 사정을 통하고 선의 심정과 결탁하여 이루어진 세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을 지향하고 양심이 맑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세상이 싫다는 느낌을 갖는 것입니다. 이 세상이 내 본 마음과 배치(背馳)되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이러니 하늘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역사노정을 통하여 ‘도’를 세워 인류를 끌고 당기면서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기독교입니다.

우리 인류가 느끼고 보고 감각하는 일체의 것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닙니다. 인식을 철저히 해야 됩니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누구로 말미암은 것이냐? 사탄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이것을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됩니까?

인류는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하겠느뇨? 당장 좋아하고 기뻐하는 모든 것이 선의 하나님, 우리의 아버지를 기원으로 하여 되어진 것이 아니라 사탄의 무대에서 이루어진 것임을 알고, 그 즐거운 장면을 박차고 기쁜 장면을 박차고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한 운명에 놓여 있기 때문에 도(道)라는 것은 사탄의 무대에서 떠나라고 합니다. 내가 살고 있는 이 가정에서 떠나고, 내가 살고 있는 이 사회에서 떠나고, 내가 살고 있는 이 세계에서 떠나라 합니다. 떠나서는 어디로 갈 것인고? 새로운 곳입니다. 사탄과 인연되어 움직이는 이 세계 말고 하나님과 인연되어 움직이는 그 세계입니다. 거기가 인간이 바라는 본연의 세계입니다.

여러분들은 지금까지 멋대로 살았습니다. 지금까지는 이것이 좋고 저것이 나쁘다 하며 좋고 나쁜 것을 가리며 살았으나, 여러분이 좋다고 하는 그 모든 것은 하늘을 기원으로 하지 않았다는 것을 똑똑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것은 도리어 하나님을 슬프게 할 수 있는 재료입니다. 이것을 원수시하여 치고 나가는 자가 되기 전에는 본연의 세계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이 세상에 이러한 아들딸을 세우려는 하늘과 철옹성 같이 그것을 막아 나오는 사탄과의 싸움이 지금까지의 역사노정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누워서 잠을 자는 그 가정이 자기가 머무를 가정이 아닌 것을 알아야 됩니다. 자신이 움직이고 있는 이 사회가 우리가 바라는 사회가 아닌 것을 알아야 되고, 두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이 지구가 우리가 이상하는 지구가 아닌 것을 알아야 됩니다. 이 피조세계가 내 것이 못 되어 있다는 걸 알아야 됩니다. ‘내 것이로되 원수의 것이 되어 있구나. 본래는 내 것이었던 것을 원수에게 빼앗겼구나’ 하는 심정에 사무쳐 통탄하며 울부짖는 무리가 지구상에 쏟아져 나와야 됩니다.

이러한 무리가 나오기 전에는 역사의 한은 풀릴 길이 없는 것이요, 역사의 한을 풀기 전에는 소망과 사랑과 이상을 이룰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랑의 심정과 인연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를 대심판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분을 풀고 난 후에 바라던 심정의 세계를 이룬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지상천국입니다.

8-243
노아를 중심하고 섭리하신 하나님의 심정
보십시오. 가인만 하나님을 배반한 것이 아닙니다. 하늘은 가인 이후 1600년만에 노아를 세우고 수고하시기를 개의치 않았습니다. 하늘을 대해 나오던 노아도 하늘 뜻을 받들어 수고하는 것을 개의치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노아를 알았으나 노아는 하나님의 진정한 심정을 몰랐습니다. 하나님은 아벨과 가인을 알았으나, 아벨과 가인이 하나님의 심정을 몰랐던 것처럼 노아도 하나님의 심정을 몰랐습니다. 또 그 당시의 사람들도 하나님을 위하는 노아의 심정을 몰랐습니다.

여러분은 이걸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은 노아를 잘 알았습니다. 잘 알고서 노아가 하나님의 심정을 대신하여 하나님의 한을 풀어주면 그때에 기쁨의 아들로 대해 주기 위한 뜻을 품고 노아를 바라보던 하나님이었습니다. 복이 있다면 이 이상의 복이 어디 있겠어요? 축복이 있다면 이 이상의 축복이 어디 있겠어요? 영광이 있다면 이 이상의 영광이 어디 있겠어요? 하늘은 이러한 심정으로 노아를 바라보고 있었으나 따르는 노아는 그러한 하나님의 심정을 몰랐다는 거예요.

복귀섭리 노정에서 하나님은 이런 일들을 거듭해서 겪어 나오셨습니다. 여러분, 모르면서도 따라 나온 노아가 얼마나 불쌍합니까? 몰라주는 입장에서도 노아를 붙들고 나오신 하나님은 또 얼마나 불쌍합니까? 모르면서도 하나님의 뜻을 위해 살겠다고 허덕인 노아였습니다. 하늘은 그런 노아가 자신의 심정을 알아주기를 바라 나왔지만 노아는 그 사정을 몰랐습니다. 모르는 노아의 심정도 불안했거니와 하나님의 심정은 더욱 불안했다는 것입니다. 노아도 하나님을 몰랐지만 노아와 같이 움직이는 노아의 식구도 노아를 몰랐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모르는 아들딸들을 붙들고 나오느라 그 고충이 얼마나 컸겠는가를 우리는 똑똑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노아가 120년 동안 수고한 후에 하나님은 물심판을 했는데, 그 후에 남아진 것이 노아의 여덟 식구였습니다. 거기에서 하늘은 무엇을 고대했습니까? 타락하지 않은 하늘의 식구로서, 하늘의 가정으로서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즐기기를 고대했던 것인데, 노아 자신이 그것을 똑똑히 몰랐습니다. 자신은 본연의 아담의 자격을 복귀해야 할 입장이고, 아담가정으로 말미암아 맺혀진 한을 탕감복귀해야 할 입장으로 불려진 자신의 여덟 식구라는 것을 노아 자신이 몰랐습니다. 노아가 모르는 동시에 노아의 아들 딸도 몰랐습니다. 함도 노아를 몰라주었습니다. 분하고 슬픈 일은 무엇이뇨? 남이 알아주지 못하는 것은 참을 수 있는 일이로되, 죽으면 같이 죽고, 기뻐하면 같이 기뻐하고, 슬퍼하면 같이 슬퍼해야 할 식구가 몰라주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늘의 슬픔이었습니다.

이것 때문에 하늘의 역사는 연장되었습니다. 세상 사람이 몰라주어서 연장된 것이 아닙니다. 알아줘야 할 무리가 알아주지 못하였기 때문에 하늘의 역사는 슬픔이 가해져 내려왔다는 것을 똑똑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노아 앞에 함이 그랬고, 모세 앞에 민족이 그랬고, 예수 앞에 사도가 그랬습니다. 역사는 이렇게 내려왔습니다. 알아주기를 바라서 불러 모아 기르고 먹이던 그 무리가 몰라주었기 때문에 하늘의 뜻은 깨지고 찢기면서 내려왔다는 것입니다.

8-245
아브라함가정을 통한 하나님의 섭리와 교훈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불러 놓고 갈대아 우르를 떠나라 할 때 아브라함은 하늘의 부르심에 응하여 떠났습니다. 고향을 버리고 떠났습니다. 왜 ? 거기는 아브라함이 살 세상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은 원망받아야 할 세상, 저주받아야 할 세상입니다. 아무리 사랑하는 부모와 친척들이 살고 있는 땅이지만, 그 땅은 하늘의 사람이 살 땅이 아닌지라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외로운 황무지인 광야로 몰아냈습니다. ‘갈데아 우르를 떠나라’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오늘 여러분이 듣고 있는 내용을 모르는 입장에서 이 죄악 세상을 박차고 무조건 출발했습니다. 하나님께 제물을 드릴 때도 내용도 모르고 제물을 드렸습니다. 이삭을 잡아 죽이라 했을 때도 그 명령의 의미도 모르고 무조건 순종했습니다. 이렇게 모르는 입장에서 하늘의 뜻을 받들어 나온 우리 선조들의 역사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책임을 진 사람들은 모르면서도 하늘을 받들고 위하고 중요시해 나왔습니다. 이것을 아는 가정은 많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으로부터 이삭을 지나 야곱시대에 와서 야곱이 열두 아들을 데리고 라반의 집에서 돌아온 목적이 무엇이냐? 그 일대(-代)에 천적인 가정의 기반을 만들기 위해서였습니다. 하늘의 축복을 그리워하여 자기 형을 속이는 놀음까지 하였던 야곱이었으나 그의 아들딸들은 이러한 아버지를 알아주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야곱이 사랑하는 요셉과 베냐민을 시기 질투하였습니다. 이것이 기원이 되고 조건이 되어 이스라엘 12지파가 열지파의 편과 두 지파의 편으로 갈라지는 동기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역사노정에서 하늘을 받드는 책임자는 하늘의 뜻이 귀한 것을 알고 거기에 따라 움직여 나왔으나, 그 책임자를 알아줘야 할 식구가 알아주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하늘의 역사를 망쳐 놓았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담 해와와 그 자녀를 복귀하기 위한 하나님의 뜻을 아담의 아들이 배반할 줄이야 ! 노아를 통하여 이루려던 뜻을 그의 아들 함이 배반할 줄이야! 야곱을 통하여 이루려던 뜻을 야곱의 아들이 배반할 줄이야! 사탄세계에 있는 자들이 배반하고 몰라주는 것은 당연하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늘을 따르는 지도자 밑에, 혹은 부모 밑에 있는 자녀들이 따르지 못하였기 때문에 닦아 놓은 선조의 공적이 유린당해 내려왔다는 역사적인 사실을 우리는 똑똑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원수가 어디 있는고? 문 밖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네 집안 식구가 원수라고. 그 말씀은, 믿지 못하는 자, 배반하는 자, 하늘과 상관없는 위치에서 행동하는 자가 원수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모르고 따르는 노아, 아브라함, 야곱과 같은 선조들을 이끌어 나오셨습니다. 하늘은 모르는 자들을 세워 놓고 간곡한 사정을 알아주기를 바랐습니다. 어찌하여 이러한 선조들을 지도자로 세우셨던고? 여러분은 원리를 배워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우리의 선조들은 물랐다는 것입니다. 모르면서 따라 나왔어도 하늘은 뜻 앞에 배반될 때는 그들을 쳤습니다. 용서하는 법이 없었습니다.

8-246
모세와 이스라엘 민족을 중심한 섭리
야곱시대를 지나 모세시대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모세를 세워놓고 그를 장차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우려 하셨던 하늘의 심정을 모세 자신도 몰랐다는 것입니다. 바로 궁중, 원수의 궁중에 보내어 호화찬란한 환경에서 자라게 한 이유를 몰랐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민족 정신을 잃어버리지 않은 모세는 자신 앞에 호화찬란한 영광이 겹겹이 가로놓이면 놓일수록 그곳이 자신이 살 세상이 아니라는 신념이 쌓여 갔습니다. 아브라함도 그런 신념 밑에서 하늘 앞에 섰고, 노아도 그랬고 야곱도 그랬습니다. 모세도 그런 입장이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호화찬란한 바로 궁중이라 하더라도 원수의 궁중이라는 마음이 철석같았던 것입니다. 40평생을 바로 궁중에서 살았던 모세는 어느 한날도 행복한 날이 없었습니다. 자기의 민족이 비탄 중에 있는 것을 바라보게 될 때에, 죽는 한이 있더라도. 찢기는 한이 있더라도, 공포가 가해지더라도 민족을 구하고 싶고 민족을 동정한 나머지 민족을 위하여 죽겠다는 심정이 앞섰기에 이스라엘 민족을 향하여 뛰어들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모세의 절개를 누가 알았습니까? 이스라엘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 모세인 줄을 그때 이스라엘 민족 중 누가 알았습니까? 만일 그때 이스라엘 민족이 그러한 지조를 갖추고 하늘을 옹호하고 선민을 구하려는 심정을 갖고 있는 모세와 하나되었다면, 하늘의 역사는 연장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 앞에 나타나 새로운 신념의 말씀, 새로운 취지를 말할 때 배반하기를 일삼던 이스라엘 민족이었습니다. 이 무리들이 서로 싸우는 걸 바라보게 될 때, 모세의 의협심은 불탔습니다. 서로 단결하여 원수와 싸워야 할 입장인데 이를 모르고 동족끼리 서로 싸우니, 그것을 본 그의 심정은 안타까왔다는 것입니다. 한창 민족애에 불타 있을 때에 원수의 나라 애급 사람과 동족인 이스라엘 사람이 싸우는 것을 본 모세는 애급인을 그 자리에서 때려 죽였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 전체가 그때 모세의 편이 되어 하나로 단결하였으면 하나님의 섭리는 그때 시작됐을 것입니다. 40년 연장이 없었을 것입니다. 민족을 동반하고 가야 할 모세는 민족의 배반으로 미디안 광야 40년이라는 연장의 길을 걷지 않으면 안 되었다는 것입니다. 바로 궁중에서 갖은 고역을 당하면서 이스라엘 민족을 빼앗아 광야로 이끌어 나오는 모세와 그를 따라 나오는 이스라엘 민족은 다 불쌍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제는 어떠한 주권, 어떠한 가치, 어떠한 사회적 배경이 목적이 아니요, 어떠한 환경이나 어떠한 사회를 건설하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아는 것이 목적입니다.

하나님이 원하는 곳이 어디입니까? 하나님이 원하는 땅이 어디입니까? 하나님도 가고 싶고 인류도 가고 싶은 곳이 어디입니까? 그곳이 목적지입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민족이 단결하여 ‘하나님이 원하는 곳이 어디입니까?’ 하며 모세의 뒤를 따라 생사를 개의치 않고 가나안 땅으로 달려갔다면 그들은 광야에서 쓰러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이끄심에 따라 나오는 모세를 대하는 하늘은 어느 한 순간 쉴 사이 없이, 비록 모세가 잠들어 있는 순간이라 할지라도 마음 졸이면서 민족을 바라 보았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어떻게 될지 모르는 자리에 모세를 몰아 넣고 인도했던 하늘의 심정도 애달팠지만 애달픈 자리에 있는 그 모세를 이스라엘 민족이 몰라주니 그것이 더욱 분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민족은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심판은 이런 장면에서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리하여 모세는 뜻을 이루지 못하고 그의 후계자가 가나안 복귀의 뜻을 이루었던 것입니다.

8-248
예수님을 중심한 하나님의 섭리와 복음의 중심내용
모세도 그러하였지만 더 나아가 예수님 기대를 회상해 보십시오. 예수님은 무엇 때문에 이 땅에 오셨습니까?

4천년 역사노정에 왔다 갔던 신앙의 선조들은 모르는 가운데 하나님을 믿고 나왔고, 모르는 가운데 하늘을 소망하고 따라 나왔었지만, 예수님은 불쌍한 이스라엘 선민 앞에 하늘의 심정을 통고하기 위해 몰리면서도 이끌어 나오신 분입니다. 이 4천년 동안 모르는 자들을 인도하시던 하늘의 심정은 얼마나 분하고 안타까왔겠습니까? 하늘은 이 심정을 붙안고 아무것도 모르는 이스라엘 민족 앞에 메시아가 온다고 수천년 동안 준비시켜 나왔습니다. 그가 오는 날에야 하늘의 심정을 알 수 있다고 하나님의 내적 심정을 예고시켰기에, 이스라엘 민족은 모르는 가운데 메시아를 바라고 있었습니다. 그런 민족들이 메시아를 부정했습니다. 만일에 메시아를 바라지 않았던 이스라엘 민족이었다면 심판받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늘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모르는 그들을 인도하시던 고충을 털어놓고 나는 누구이며 너희들은 누구라는 사정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그 사정을 나누기 위하여 4천년만에 하늘의 보내심을 입은 메시아가 예수였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역사는 밝혀지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심정은 밝혀지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세계는 전개되나니, 만일 그때 이스라엘 민족이 예수님 앞에 귀의하여 예수님이 죽으면 같이 죽고 살면 같이 살 수 있는 단결된 민족이 되었던들, 오늘날 이 세계는 원자탄으로 인한 공포에서 허덕이는 세상이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무엇을 갖고 오셨느뇨? 새로운 선포를 하기 위해 말씀을 갖고 오셨습니다. 새로운 선포의 내용은 무엇인가? ‘나는 너희의 아버지다’ 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너희들은 내 백성이다’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선포할 내용을 갖고 오셨습니다. 더 나아가서는 좋다는 명사를 다 허락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죄인되었던 인간이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고, 죄인되었던 인간이 하나님의 아들딸이 될 수 있고, 죄인되었던 인간이 하나님의 신부가 될 수 있고, 죄인되었던 인간이 하나님을 대신할 수 있다는 것 이상 더 좋은 소식이 어디 있겠습니까? 갖고 오신 복음의 중심 내용은 이것입니다.

예수님은 선포하러 오셨습니다. 4천년 동안 한을 붙안고 슬퍼하셨던 하나님의 애달픈 그 심정을 선포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몰렸습니다. 풀이 자라고 있는 벳새다의 들에서 5천여 무리를 모아 놓고 먹을 것이 없어 하나님 앞에 애원의 기도를 올리는 예수가 되었습니다. 준비한 성전은 수없이 있었으되, 그곳이 안식의 처소가 되지 못해 몸 둘곳이 없었던 예수였습니다.

공연이 베풀어지는 궁전의 제단에서 하나님을 부르면서 의논해야 할 예수님이 감람산 뒷골짜기에서 호소하는 예수님이 되다니, 이게 웬말입니까? 4천년 동안 준비한 예루살렘 성전은 누굴 위한 것이었습니까? 하나님의 사정을 통고하고 심정의 인연을 선포하는 그 주인공을 맞기 위하여 준비한 예루살렘 성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예수님 앞에서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편안한 자리에서 하늘의 모든 사정을 선포해야 할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이 웬말입니까? 그것까지는 그래도 좋다는 것입니다. 나중에는 십자가의 길, 골고다의 길이라니, 이게 웬말입니까?

그는 믿는 자를 그리워했습니다. 유대 백성을 찾았습니다. 믿는 자를 찾고 믿어줄 자를 찾고 알아줄 자를 찾았으나, 믿는 자도 못 찾았고 믿어주는 자도 못 찾았고 알아주는 자도 찾지 못하였습니다. 더 나아가서는 사랑할 자를 찾았으나 그 또한 찾지 못했기에 예수님께서는 할 수 없이 십자가를 지고 이 땅 위에서 추방당하는 서러운 몸이 되셨습니다.

억울한 하늘의 심정을 선포하기 위하여 오셨던 예수님, 하늘이 약속하셨던 천적인 복을 주기 위하여 오셨던 예수님, 택한 이스라엘, 수고한 이스라엘, 억울하였던 이스라엘의 모든 소원을 성취시키고 세계 앞에 자랑할 수 있는 제사장 국가를 이루기 위해 오셨던 예수님을 몰아냈기 때문에 오늘날 이스라엘 민족은 저렇게 처참하게 되었습니다. 다 예수님 죽인 죄의 대가(代價)입니다. 당연히 받아야 합니다.

8-250
예수님은 어떠한 분으로 오셨으며 그의 목적은 무엇인가?
그러면 오셨던 예수님은 어떠한 분이신가? 그는 무형의 아버지를 대신한 실체의 아버지였습니다. 실체의 아버지. 그는 우리의 아버지입니다. 죽어서도 우리의 아버지, 살아서도 우리의 아버지입니다. 생애를 바쳐 모셔야 할 아버지요, 영생의 나라에서도 모셔야 할 아버지입니다. 그런데 그 아버지는 아들 딸을 만나 가지고 한번도 아들이라고 불러 보지 못하고 한번도 딸이라고 불러 보지 못한 채, 아들한테 몰리고 딸한테 몰리다 나중에는 창에 찔려 죽어갔습니다. 비통한 일 중에 이 이상 더 비통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기에 예수님은 이 땅 위에 오셔서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요 16 : 12)”고 하셨던 깃입니다. 이는 아버지로서 자녀에게 할 말을 못다 하셨다는 것이요, 신랑으로서 신부에게 할 말을 못다 하셨다는 것이요, 만왕의 왕으로서 하고 싶은 말을 못다하셨다는 것입니다. 그 당시 로마의 법에 걸리지 않는 정도의 말밖에 못했습니다. 그것이 예수님이 하고 싶었던 말일까요? 아닙니다. 아니예요. 원수의 땅에서 예수님이 자신의 심정을 다 털어 놓았으면 당장에 용서받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사탄이 주관하는 이 세계에 있어서는 반동분자요, 반역자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늘은 지극히 조그맣지만 그러한 사정을 예고할 수 있는 하나의 국가 형태를 갖추어 놓고 그러한 말을 해야 할 예수님을 보내신 것입니다.

제사장과 서기관, 이스라엘 민족 전부가 하나로 단결하여 예수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한 말씀도 새지 않게끔 해서 실천하였다면 예수님의 말씀을 중심삼은 이상세계는 시작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러한 환경을 갖지 못하였습니다. 제사장과 서기관은 가는 곳곳마다 예수님의 원수가 되었습니다. 잡아먹으려고 했습니다. 그런 판국이니 예수님은 내가 누구며 너희는 누구라는 말도 못하고 가실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 얼마나 불행한 일입니까.

하늘은 4천년 동안 수고하신 당신의 사정을 알리기 위하여 사정을 풀어 놓고 손에 손을 붙들고 ‘아버지 !’, ‘내 아들 딸아!’ 할 수 있는 한날을 보기 위하여 예수님을 보내셨건만, 보낸 그것이 한이 된 채 기독교 2천년 역사를 이루어 나온 것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오늘날 타락한 인간들 중에서 선을 바라보고 양심이 지향하는 방향을 따라가려고 허덕이는 사람들은 무엇을 원해야 할 것인고? ‘하나님이 있사옵거든, 하나님이여, 당신의 사정을 알려 주시옵소서’ 해야 합니다. 선조들이 외로운 길을 가고 죽음의 길을 가고, 피흘리는 길을 개의치 않고 간 것은 무엇 때문이뇨? 하나님의 사정이 그리웠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정을 알았으면 다음에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고? 하나님의 심정을 알아야 됩니다. 아까 말한 부자의 심정입니다. 그것을 알아야만 하나님이 내 아버지이고 나는 아버지의 아들 딸이 될 수 있습니다. 천지가 무너지는 한이 있더라도 이것만은 변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해결되어야 비로소 소원하신 그 기준이 세워지는 것입니다. 그 순간 천지는 역전(逆轉)하던 것이 정상적으로 회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수 있는 때가 끝날입니다.

이렇게 모르는 인류, 모르는 선조들을 지도해 나온 것이 하나님의 슬픔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알 수 있는 사람이 나오기를 기다렸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이 그것을 알고 그것을 알려주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오셔서 새로운 선포를 하셔야 했습니다. 무엇을 선포하느냐? 천국건설의 청사진을 선포하셨을 것입니다. 인간이 잃어버린 에덴동산을 사탄이 소유하고 있으니 그 사탄을 쳐부수고 새로운 본연의 동산을 건설할 수 있는 내용을 선포하셨을 것입니다. 그 선포문이 여기 성경에는 안 나와 있습니다. 다 지워 버렸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2천년 역사노정은 갈팡질팡하는 역사인 것입니다.

8-252
다시 오시는 주님의 사명과 믿음의 목적
이 세계를 이끌어 갈 주인은 누구인고? 민주주의도 아니고 공산주의도 아닙니다. 똑똑히 알아야 됩니다. 이 세계의 주인이 누구냐 하면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만왕의 왕입니다. 그 분이 주관할 수 있는 세계이기 때문에 사망세계에 머물러 있는 수많은 인류는 ‘오시옵소서. 메시아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분이 다시 오시면 무얼 할 것인가? 아담 이후 6천년 동안 쌓였던 하나님의 분한 마음과 한스러운 마음을 샅샅이 드러내고, 선조의 한을 밝혀줄 것이며, 따르고 받들어야 할 인물들이 배반하던 것을 밝혀, 저끄러진 곡절을 남긴 과거의 흠의 역사노정을 다시 반복하는 일이 없게끔 하실 것입니다. 그것을 하기 위하여, 그것을 선포하기 위하여 오시는 분이 주님이라는 것입니다. 그 분은 사탄을 규명하여 심판대에 올려 놓고, 인류를 규명하여 심판할 수 있는 원칙을 세워 놓고, 그 다음에 천국의 법도를 선포하실 것입니다. 내가 찾는 아들 딸은 이러한 아들딸, 내가 찾는 그 아들 딸이 살 가정은 이러한 가정, 내가 건설할 사회는 이러한 사회, 내가 이루어야 할 나라는 이러한 나라라고 선포하고 그 통치권내에 세계를 끌어들여 하늘 땅이 하나로 화할 수 있는 터전을 만들어 놓은 연후에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실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믿고 있는 성경 말씀, 6천년의 섭리를 지탱시켜 나온 성경 말씀이 있다 할지라도 이것은 원수의 나라에서 하신 말씀이기 때문에 마음 놓고 하신 말씀이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똑똑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천국에서 통할 수 있는 이상적인 말은 사탄이 참소를 하니까 주저하는 입장에서 한 말입니다. ‘참소하는 네 권한이 무엇이며 네가 참소하는 이유가 무엇이냐?’ 하며 사탄을 밟아치우고 승리적인 기반 위에서 한 말은 한마디도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믿고 있습니다.

기독교 신도들은 이 성경을 믿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고 성경을 배우는 목적은 성경 구절을 외우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의 행적을 아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잘하든 못하든, 예수가 왜 왔다가 갔던, 그런 것은 모를지라도 성경 가운데 숨겨져 있는, 성경을 통하여 나타내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라’하면 하나님도 ‘너는 내 딸이요, 내 아들이라’ 할 수 있는 심정의 자리에 서고, 원수도 어떠한 누구도 이걸 참견할 수 없다는 각오와 신념으로 하늘을 아버지로 모시고 사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성경의 완성자입니다. 그렇게 되면 성경을 한 구절도 모른다 해도 좋습니다.

그런 심정의 자리까지 나아가려면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우리 아버지는 이러한 이념을 갖고 인간을 지으셨고, 타락한 인간 때문에 이렇게 수고 하셨고,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시면서부터 지금까지 2천년 동안 이러한 역사적인 심정을 가지고 오셨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런 하나님임을 알고 그 하나님은 시대적인 나를 중심삼고 그 무엇을 이루기 위해 심정을 기울이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역사를 붙들고 나오시는 동안 아버지는 우리의 선조에게 심부름을 시킬 때 종으로서 심부름시켰지 아들로서 심부름시켜 본 일이 없었습니다. 종으로서 싸우게 하고 백성으로서 원수를 갚게 했지 아들로 세워서 원수를 못 갚아 봤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들을 세워 원수를 갚는 날이 심판날입니다.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무엇을 알아야 되느냐? 하나님의 사정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 사정을 알고선 무얼 해야 하느냐? 하나님이 심정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심정을 알고선 무엇을 해야 하느냐? 그 다음엔 내 아버지라고 해야 합니다. 내 아버지, 우리의 아버지.

우리가 이렇게 배우고 듣고 모심의 생활을 하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6천년 동안 인류가 허덕여 나온 목적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성경에 흐르고 있는 하나님의 사정을 알고, 하나님의 심정을 알기 위해서입니다. 민족이나 국가는 말할 것도 없고 개개인을 부모의 심정을 갖고 대하고, 상처를 당하고 유린을 당하고 배척을 받고 찢기며 나오신 그 하나님이 내 아버지라는 것을 알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은 기도하였습니다. 골고다에 오르기 전 이미 쓰러질 것을 아시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밤을 새워 기도하셨습니다. “내 아버지여 !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 26 :39)”라고. 이것은 ‘당신이 나를 보내심은 아버지의 기준을 세우기 위함이요, 내가 땅에 태어남은 아들의 기준을 세우기 위한 것이거늘, 아버지를 증거해야 될 입장에서 이렇게 꺾여질 수 없습니다’ 라는 뜻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심정임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천지가 무너지는 한이 있다 하더라도 아버지가 보내준 예수요, 아들의 기준을 갖추어야 할 예수였기 때문에, 천상을 대하여, 아버지를 대하여 그 뜻을 배반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8-254
하나님이 찾으시는 아들 딸
예수님은 아들로 왔다가 아들로 갔습니다. 아들로 갔다가 아들로 부활했습니다.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아들로 혹은 딸로 태어났으며, 하나님의 아들로 혹은 딸로 살았습니까? 회개하여야 되겠습니다. 어떤 집 아들로 태어났으면 죽어도 그 집 아들이요, 살아도 그집 아들입니다. 어떤 집 딸로 태어났으면 죽어도 그 집 딸이요, 살아도 그 집 딸입니다. 그 인연을 누가 부인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찾고 계십니다. 천상의 법도를 세워 놓고 부르짖고 계십니다. 나면서부터 내 아들이라고 할 만한 무리를 찾고 계시다는 거예요. 사는 동안도 내 아들이라고 할 수 있는 아들을 찾고 계십니다. 아들뿐이 아닙니다. 나면서부터 내 딸이라고 할 수 있는 딸, 사는 동안도 내 딸이라고 할 수 있는 딸, 죽을 때에도 내 아들 딸이라고 할 수 있는 아들 딸을 찾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아들로서 왔다가 아들로서 죽었으되, 딸로서 왔다가 딸로서 죽은 이는 없었습니다. 그러기에 신부를 찾아 헤매는 것입니다. 그러한 하늘의 심정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들로 났다가 죽어간 예수님 앞에 설 신부를 못 찾았으니 딸로 태어나 딸로 죽을 수 있는 신부를 찾아 ‘오, 내 아들 딸아’하시며 본연의 동산에서 아담 해와를 지어놓고 손을 들어 축복 하시던 그 기쁨의 심정을 하나님은 다시 찾고자 하신다는 것입니다. 한의 심정을 탕감하여 없애버리고 선의 심정을 연결시켜 상속시킬 수 있는 아들 딸이 있어야 합니다. 이 아들 딸은 사탄세계의 공포 분위기 가운데에 있어서는 안 될 것이요, 사탄이 참소해서는 안 될 아들 딸입니다.

천지간 어디를 가든지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아들 딸을 갖는 것이 하나님의 소원이자 하나님이 섭리하시는 목적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위하여 전세계 기독교인들을 세워 그 한날을 예비시키고 그 한날을 예고시켜 나오고 있음을 여러분은 똑똑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8-255
기독교인들을 대한 하나님의 소망
전세계의 기독교인들은 이스라엘의 이러한 배반의 역사를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원수로 몰아냈기에 그런 불쌍한 역사를 걸어온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 역사가 민족층을 지나 오늘날 세계적인 층으로 등장했는데, 그것이 기독교인인 것입니다. 그럼 이 기독교인들은 어떻게 해야 되느뇨? 형제지간에 싸움을 하면 망합니다. 때문에 교파와 교파가 싸우는 걸 바라 보고 그들을 방망이로 내리치고, 무지한 양떼를 사망으로 이끄는 무리와 싸울 수 있는, 하늘을 대신하여 싸울 수 있는 용자가 나타나기를 하나님은 바라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농락하고 하늘을 배반한 모든 제사장과 서기관, 바리새교인들이 그 직책을 다 벗어버리고 이스라엘 민족을 예수님 앞에 굴복시켰던들 하나님은 뜻을 세울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역사가 이렇게 피에 엉클어지고 서글픔으로 이어져 나왔다는 걸 아는 우리들은 단결해야 됩니다. 단결. 너도 단결, 나도 단결. 동서양을 막론하고 국가 민족을 막론하고 모두 단결해야 되겠습니다. 이것이 뜻을 품은 사람들이 명심해야 할 하나의 표어일 것입니다. 단결하는 데는 생활통일이요, 행동통일이요, 이념통일이요, 심정통일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흑인이 문제가 아니고 백인이 문제가 아닙니다. 예수의 핏줄기가 동하고 있는 사람, 심정에 북받쳐 아버지를 부르고 싶어하는 사람은 모두 단결해야 됩니다. 이러한 운동을 전세계의 기독교인들 앞에 선포해야 할 시기가 가까와 온다는 걸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늘은 이렇게 해 주길 바랄 것입니다. 전세계 기독교인이 망한 이스라엘 대신 제2이스라엘로 세계에 등장하여 원수들과 싸우기를 바라십니다. 그런 날이 올 것이거늘 그날이 예수 재림날이요, 그 싸움을 책임지고 오는 분이 재림 예수입니다.

인간이 모르는 가운데서 인도하시던 하나님은 6천년 동안 홀로 수고하여 오늘날 전세계를 기독교권내로 몰아 넣으시고 알 수 있는 일과 알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그걸 바라볼 때에 우리는 황공한 마음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누구를 위하여? 무지한 백성이요, 무어라 말할 수없는 한스런 이 무리들을 위하여 하늘은 이렇게 수고하셨습니다. 여러분은 황공한 마음으로 바라볼 줄 알아야 됩니다.

이제 남은 것은 무엇이냐? 선조들도 몰랐던 하나님의 심정을 우리가 알아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정을 누가 알았더냐? 하나님의 심정을 누가 알았더냐! 하나님의 심정을 누가 알았더냐? 선민권을 자랑하고 4천년 섭리의 곡절을 붙들고 나왔던 이스라엘 민족이 알았더냐? 2천년 동안 예수님을 믿고 간 기독교인들 혹은 이 시대의 전세계 기독교인들이 알았더냐? 몰랐습니다.

하늘은 찾고 계십니다. 누구를? 아버지의 마음을 알아 천지가 변할지라도 결코 변하지 않는 심정을 가진, 아버지와 아들 딸의 인연을 맺을 수있는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전세계의 기독교인들이 다 모른다 할지라도 알아주는 아들 딸이 한 사람이라도 나온다면 문제는 수습된다는 것입니다. 선조들도 하나님의 심정을 몰랐습니다. 거슬러 올라가 볼 때 노아도 그러했고, 아브라함도 그러했고, 야곱과 모세도 그러했습니다. 모두가 모르는 가운데서 환경을 개척하다 갔기 때문에 알려주기 위하여 예수님은 오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또 오셔야 됩니다.

여기 모인 여러분,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이 누구인 줄 알았습니까?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인 것을 알았습니까? 여러분의 몸 마음은 사탄세계에 엉클어져 있는데, 이것을 해탈하여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아들 딸의 위신을 갖추었습니까?

한 걸음 더 나아가 하늘은 요구하고 계십니다. 나면서 아들 될 수 있는 아들, 나면서 딸 될 수 있는 딸을 바라고 계십니다. 그 아들 딸이 여러분을 통하여 나오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에게는 나면서 아들 될 수 있는 아들을, 나면서 딸 될 수 있는 딸을 하늘 앞에 갖추어 드릴 책임이 있습니다. 이러한 책임을 감당하는 자는 역사적인 해원을 성취할 수 있는 자요, 하나님의 직계 자녀라는 명분을 받기에 부족함이 없는 자입니다.

8-257
하나님의 아들 딸의 위신을 세워야 할 우리의 책임
나는 말하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이것을 알려주기 위하여 오신 그 역사가 어떻게 되어 있는 역사인지. 피에 젖은 역사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눈물이 수천만 번 뿌려졌다가 말려진 말씀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내가 서 있는 이 땅을 찾기 위하여, 이 인류를 찾기 위하여 그랬던 것입니다. 이 인류의 등에는 선조의 핏자국이 어려 있습니다. 이 인류의 이마 혹은 옷자락에는 선조의 피눈물이 어려 있습니다. 이것을 볼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선조들은 당연히 눈물 흘리며 죽어야 마땅하나, 나면서도 하나님의 아들이요, 살면서도 하나님의 아들이요, 죽었다가 부활해서도 하나님의 아들이었던 그 아들의 눈물과 핏자국이 여러분의 몸에 물들어 있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가르쳐 주기를 원하였던 예수의 심정을 이 시대에 사는 우리가 알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았다면 그 영광을 무엇으로 보답할 것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알려주기 위하여 6천년 동안 수고하셨고, 예수님을 보냈고, 선조들을 희생시켰거늘, 무의미하고 무가치하고 무감각한 만 인류들을 모아놓고 알려주는 그 한 마디 말은 수천만의 선한 사람들이 목이 메이고 피를 흘린 제단의 말씀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는 배웠습니다. 우리는 안다고 자인하고 있습니다. 알았으니 선포 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알려주시는 그 한 마디의 말씀에는 사형장에서 사라지는 수천 수만의 선한 사람들에게 알려 줄 수 없었던 하나님의 곡절이 묻혀 있는 걸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이 창조원리부터 복귀원리까지 전체의 말씀을 받게 될 때에, 그 말씀의 한 마디 한 마디에는 피눈물이 엉겨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것을 찾기 위해 수고한 사람은 제쳐 놓고라도 역대 선조들의 피눈물과 한숨이 절절히 얼크러져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찾기 위하여 어떠한 길도 감수하고 나온 사람이 있다 할진대, 그가 걸은 노정에는 한마디 말씀을 찾기 위해서도 피눈물 나는 사연이 깃들어 있고, 저주와 원망이 넘치는 걸음을 개의치 않고 걸어왔다는 걸 알아야 됩니다. 그 한 마디 말씀 밑에는 피눈물이 고여 있고, 죽음의 신음 소리가 나를 재촉하고 있음을 느끼는 자라야 역사적인 하나님의 심정을 알 수 있고, 역사적인 하나님의 사정을 알 수 있고, 하나님이 소원하며 찾던 아들의 면목을 갖출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6천년 후에 태어난 아들이라 해도 심정을 중심삼고는 6천년 전의 나일 수 있고, 심정을 중심삼고는 4천년 전의 나일 수 있고, 심정을 중심삼고는 2천년 전의 예수님과 같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 말씀을 통과해야 됩니다. 말씀을 지나는데 있어서는 핏줄기가 뻗쳐 있고 눈물의 길이 가로막혀 있습니다. 그것을 개의치 않고 나가야 되겠습니다. 그 말씀을 지나 실체를 모셔야 되거늘, 상처를 입고 십자가에 달려 운명하는 지경에 있는 실체를 맞을 수 있는 비장한 각오를 여러분은 가져야 됩니다. 이 말씀을 갖고 나선 마당에 하늘의 배반자라고 하며 좋지 않은 낙인을 찍는다 할지라도, 혹은 배반을 받아 이슬같이 사라지는 한이 있다 할지라도 ‘나는 핏줄기가 어린 그 말씀과 더불어 죽겠나이다’ 라고 할 수 있는 절개를 가진 사람들이 되어야겠습니다.

복귀라 하였는데 무엇을 복귀할 것인고? 말씀을 잃어버린 것이 타락이니 말씀을 찾아야 됩니다. 말씀을 찾은 후에는 무얼 해야 될 것이뇨? 말씀을 찾은 후에는 실체를 복귀해야 됩니다. 실체를 모시려면 사정이 통하여야 됩니다. 사정이 통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뇨. 심정이 연결되어야 됩니다.

지금까지의 구원섭리역사는 말씀을 통과하는 역사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류는 진리의 말씀을 찾아 헤매었습니다. 진리를 찾은 후에는 실체를 통과하여야 됩니다. 이 실체를 통과하지 못한 한이 남아 있는 연고로 이 땅 위에 실체의 주인공인 한 분이 오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재림 사상이라는 것입니다. 실체 통과의 은사를 입은 후에는 무얼 할 것인고? 신부 단장하여 신랑 신부의 인연을 맺고 심정의 문을 통과해 나가야만 하나님의 상속자가 될 수 있습니다. 말씀 가지고는 상속을 못 받습니다. 몸뚱이만 가지고는 상속 못 받습니다. 실체가 말씀의 화신이 되어 하나님의 심정을 통과했다는 합격장을 받아야만 천상천하의 대주재되시는 하나님의 아들 딸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8-259
하나님의 심정을 아는 자가 되자
여러분, 우리는 똑똑히 들었습니다. 우리는 똑똑히 배웠습니다. 말씀이 줄기차게 뻗쳐 있는 곳에 생명이 약동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말씀이 내 몸을 스쳐 지나갈 때에 환희와 해방의 느낌이 밀려드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그 말씀의 뒤에는 피눈물의 자국이 있는 것을 알고 서글픈 음성을 들을 줄 알아야 합니다. 그걸 알고 또 그렇게 가는 한이 있더라도 감사하고 황공한 마음이 앞서는 자라야만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아들 딸이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6천년 동안 인간은 너무도 하나님의 심정을 몰랐습니다. 그러나 하늘이 기뻐할 수 있는 한 때가 있다 할진대, 그 때는 어떠한 때냐? 심정으로 하늘을 소개할 수 있는 때일 것입니다. 선한 사람을 통하여 사망세계의 인간을 살려주려고 하시는 하나님의 심정을 알고, 그 심정을 해원하기 위하여 하나님 대신 살려주는 책임을 지고 싸우며 하나님의 심정을 선포하는 사람이 있다 할진대, 하늘은 모든 것을 아끼지 아니하고 그 사람 앞에 넘겨 주신다는 것입니다. 아끼지 아니하신다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가집시다. 우리는 자랑합시다. 우리는 남깁시다. 무얼? 우리의 명예를 남기기 위한 것이 아니요, 우리의 가문을 자랑하기 위한 것이 아니요, 우리의 무엇을 세우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단 하나 우리가 자랑할 것은 무엇이뇨? 하나님의 심정입니다. 그 다음에 자랑할 것은 무엇이냐?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요, 나는 하나님의 아들 딸이라는 것입니다. 개인이 그러하고 가정이 그러하고 민족이 그러하고 세계가 그러하고 천상천하가 그러할 때에 하나님의 소원은 성취될 것이요, 하나님의 한은 풀어질 것이요, 하나님의 천지창조 이념은 완성될 것입니다.

이런 책임이 여러분 각자에게 있는 것을 아시고, 하나님의 심정을 몰랐거든 여러분이 살아 있는 동안에 알아야 합니다. 나면서부터 혹은 살면서 하나님의 사랑의 심정을 알아드리다가 참다운 아들 딸들로 말없이 사라질 줄 아는 여러분이 되면 여러분에겐 천당이 문제가 아닙니다. 천상의 황국 (皇國)에서 하늘의 귀족이 될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8-260
기 도
우리는 가겠나이다. 우리는 자랑하겠나이다. 우리는 넘겠나이다. 우리는 이 뜻을 품고 쓰러지겠나이다.

반대자가 아무리 많다 할지라도, ‘우리는 아버지의 아들 딸이고 아버지는 우리의 아버지인 것을, 심정적으로 결속된 나와 아버지의 관계를 어느 누가 유린할소냐. 이 절개만을 자부하고 싶습니다. 이 절개만을 천추에 남기고 싶습니다’라고 할 수 있는 아들 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알려주신 은사를 황공하옵니다. 무지했지만 순종했던 선조들 앞에 면목이 없사옵고 순교자들 앞에 황공하옵니다. 또한 돌아가신 독생자 예수 앞에 황공하옵니다. 보잘것없고 자격 없는 저희에게 감당키 어려운 은사를 주셨사온데, 황공해하지 못하고 감사의 눈물을 흘리지 못하는 것을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알았사옵니다. 살아서 아버지의 아들되어야 함을 알았사옵고, 죽기 전에 아버지의 사랑을 높이 찬양해야 함을 알았사옵니다. 하오니 한을 남기지 말고 한번이라도 그러한 아들 딸이 되어 아버지를 모셔 보고 죽을 수 있는 저희들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것이 저희의 소원이요 아버님의 소원인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고, 아버님의 원수를 갚는 일이요, 사탄을 박멸하는 일이라는 걸 알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하늘의 뜻을 망치는 것은 역대의 선지들이 아니라 선지를 모시고 있는 식구와 따르는 무리였음을 알았습니다. 하늘의 뜻을 막는 자들은 그 뜻을 책임진 자가 아니라 뜻을 대하고 있는 집안 식구인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죽든지 살든지 개인적인 사정을 넘어서서 먼저 하늘을 세워놓고 그 다음에 싸우겠으면 싸우고 또 다른 무엇을 하도록 하여 주시옵소서. 하늘의 주권을 세울 때까지 참고 희생하고 양보하며 쓰러지면서도 이 뜻이 성취되는 한날을 위하여 목이 메이는 한이 있더라도 기도하면서 싸워 나가는 아들 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세계 앞에 맡겨진 책임을 저희들이 단결하여 감당하고도 남음이 있도록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였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