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1 to 11-37: 하나님의 일선에 선 우리들

하나님의 일선에 선 우리들
1960.12.11 (일), 한국 전본부교회

11-11
하나님의 일선에 선 우리들
마태복음 25:29-46

[기 도]

─정전으로 약 3분간 녹음 못함.─

당신께서는 역사노정에서 인간들이 흩어질 때마다 불러 모아 주셨고, 방향을 잃어버릴 때마다 원수들을 보내어 쳐서라도 그 방향을 제시해 주셨음을 저희들은 아옵니다.

2천년 전에도 흩어진 무리를 수습하고, 민족을 수습하고, 세계를 수습하여 하늘의 영광을 높이 찬양하기 위해 만민의 통솔자로 메시아를 보내셨사온데, 메시아와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 되지 못하였사옵고 흩어진 이스라엘 민족은 이스라엘 민족대로 메시아는 메시아대로 분립되었기에, 그 이후 2천년 동안 피흘리는 역사가 계속되었고, 십자가의 고난이 계속된 것을 아옵니다.

오늘날은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에서 갈 길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던 40년 기간과 같은 때요, 그들의 불신으로 인해 이스라엘 민족사가 하늘의 채찍을 받아 종결지어지던 때와 같은 때인 것을 아옵니다. 어떤 면으로 보더라도 현대가 그런 때인 것을 아옵니다.

이와 같은 때를 수습할 수 있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아버님도 소망하고 계시고 저희들도 소망하고 있사옵지만, 저희들 스스로 마음을 수습하고 방향을 정하여 어떠한 길을 가야 하겠다고 결심하지 못하면, 가야 할 방향을 가르쳐 주며 그곳으로 가라 하는 사람이 나타난다 하더라도 가지 못할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문제는 이 땅의 모든 것이 흩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의 중심이 흩어진 것이요, 처할 위치와 나아갈 방향을 잃어버린 것임을 아옵니다. 이렇게 자신이 처할 위치를 모르고 나아갈 방향을 모르는 채 종말의 현상을 바라보는 저희들, 이제 아버님이 중심이신 것을 알았을진대는 아버님이 바라는 위치와 기준에 맞추기 위하여 스스로 무릎을 꿇고 머리를 숙여 정성을 들여야 하겠사옵니다.

끝날에는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밀실에 들어가 기도해야 되는 것을 아오니, 아버지의 심정기준과 저희의 심정기준이 일치되는 자리에 자신을 세우고 생활에 있어서 승리의 조건을 찾아 그 가치를 논하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시옵고, 그러지 못한다 할진대 아버지 앞에 설 수 없다는 것을 저희들이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러한 자리에 처하여 있는 저희들이옵고, 이러한 사회와 이러한 세계의 현상을 바라보고 있는 저희들이옵고, 이러한 환경에서 몸과 마음이 고통을 당하고 있는 저희들이오니, 이러한 저희들을 다시 빚으시어 심정의 기준을 세워 주시옵고, 아버지의 중심적인 역사를 제시하여 주시옵고, 저희의 마음의 중심을 성별하여 주시옵소서. 저희의 몸과 환경을 성별시키어 주시어 당신과 접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 긍휼의 손길과 자비의 은사를 이 민족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러나 몰림받고 쫓김받는 무리를 통하여 이루셔야 하는 당신의 뜻이 있다면 이 민족을 더 몰리고 더 쫓기게 하여 주옵소서. 그런 속에서 이 민족의 고통을 대신하고, 이 민족의 어려움을 대신하여 책임감을 가지고 나서고자 하는 젊은 무리들이 나오기를 바라고 계시다는 것을 아옵니다.

사망의 일선에서 허덕이고 있는 인류를 바라보고 눈물지으시는 아버지의 서글픔과 이 나라 이 민족의 서글픔을 저희들이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 서글픔들이 심정적으로 맺히어 하늘의 한이 피로 연한 울음소리와 더불어, 한숨과 더불어 이 민족 앞에 찾아오는, 두려운 때가 오는 것을 저희들이 알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민족이 어려움을 당하기 전에 저희들이 먼저 어려움을 당해야 되겠고, 인류가 어려움을 당하기 전에 저희들이 먼저 십자가의 길을 넘어가야 될 것을 알았사옵니다. 예수도 혼란된 환경 가운데서 천성을 향하는 길을 먼저 걷고 나서 그 길을 가라 하였습니다. 그것이 예수가 남기신 복음의 내용인 것을 저희들이 알고 있사오니, 이 역사노정의 첨단에 서서 모든 것을 책임질 수 있는 모습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부딪쳐 깨지고 쓰러지는 자들이 되지 말고, 부딪칠 적마다 아버지와 심정적인 인연을 굳건히 맺어 아버지 앞에 나설 수 있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날을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이 단상에 서서 무슨 말을 하기를 원하지 않사오나, 아버지께서 이들을 위하고 이들의 갈 길을 염려하여 이 시간을 허락하여 주셨사오니,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심정이 통하고 마음과 몸이 화할 수 있는 은사의 역사를 일으켜 주시옵고, 전하는 자의 마음과 받는 자의 마음이 하나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의 몸과 마음이 당신과 혼연일체가 되어 당신이 우(右)하면 저희도 우(右)하고, 당신이 좌(左)하면 저희도 좌(左)하고, 당신이 동(動)하면 저희도 동하고, 당신이 정(靜)하면 저희도 정하여 당신의 거룩한 생명의 터전을 저희의 마음 동산에 마련할 수 있는 승리의 이 시간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부족한 모습이 아버지 앞에 아뢰옵니다.

오늘 봉독한 말씀을 통하여 2천년 전에 흩어진 무리들을 바라보던 예수 자신의 모습이 처량하고 간곡했다는 것을 저희들이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는 굶주렸었사옵고, 예수는 목말랐었사옵고, 예수는 나그네가 되었었사옵고, 예수는 헐벗었었사옵고, 예수는 병들었었사옵고, 예수는 옥에 갇힌 바 되었었사옵니다. 참을 위해 가는 그와 같은 길이 끊어지지 않고 상속되어 오늘날 저희들에게까지 이어졌사와 저희들도 배고파 있사옵고, 목말라 있사옵고, 나그네가 되어 있사옵고, 헐벗어 있사옵고, 병들어 있사옵고, 사망의 옥에 갇혀 있사옵니다.

이렇게 굶주림과 헐벗음과 처참한 환경 가운데 있는 저희들이오나 서로 서로 돕고, 마음에서 몸으로, 몸에서 마음으로, 손길에서 손길로 연하여 서로 부둥켜 안고 아버지의 이름을 높이고, 아버지의 영광을 노래하고, 아버지 앞에 맹세하는 움직임이 이 가운데에서, 이 자리에서 일어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시간이 가면 갈수록 이러한 인연이 더 두터워질 수 있도록 사랑의 은사를 내려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나이다.

모든 것 맡기오니 사탄이 틈타는 이 시간이 되지 말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주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11-14
말 씀
이 시간 여러분과 같이 생각하려는 말씀의 제목은 `하나님의 일선에 선 우리들’입니다.

11-14
절대적인 중심과 관계맺지 못하고 있는 피조세계
천지에 중심이 없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우리는 절실히 느끼고 있습니다. 개인을 놓고 보더라도 누구든지 자신의 인격이 어느누구에 의해서도 왈가 왈부될 수 없는 절대적인 사상이나 주의를 중심하여 유지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단체를 보더라도 그 단체 역시 그 중심과 하나 되어 중심이 동하면 함께 동하면서 투쟁노정을 거쳐 하나의 목적을 향하여 나아가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국가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떠한 힘에 의해서도 옮겨질 수 없는, 반석과 같은 중심을 가진 국가라고 하면 아무도 그 국가를 삼킬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세계에 살고 있는 만민을 공히 양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인간은 이 양심을 중심삼고 선을 따라가는 생활을 해 왔고, 또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인간들이 악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생활 가운데 선의 추궁으로 인해 고통받고 있는 실상을 보게 됩니다. 이것을 볼 때 세계를 움직이는 어떤 변치 않는 중심이 있어서 그 중심이 인간들을 절대적인 하나의 기준에 연결시키려 하는 것을 우리는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 할진대 작은 내 개인으로부터 넓고 큰 이 세계에 이르기까지 그 중심에 연결되는 형태와 현상은 각각 다르다 할지라도 원칙적인 방향은 일치되어야 합니다. 그런 입장에 우리 자신들이 놓여 있어야 되겠고, 이 세계가 놓여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땅에 살고 있는 세계 인류와 우주는 변할래야 변할 수 없는 하나의 불변의 중심과 불변의 터전을 갖추어 자리를 잡아야만 문제의 해결점을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세계가 이렇다 할진대 천지를 창조하신 절대자도 그렇습니다. 피조세계는 절대자의 이념이 반영된 세계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피조세계는 창조하신 그 주체와 혼연일체가 되고 불변의 중심과 하나되어 영원한 위치를 잡아 하늘이 좋으면 좋고, 하늘이 동하면 동할 수 있어야 합니다. 피조세계가 그러한 하나의 절대적인 불변의 중심을 찾는 날에는 우리의 양심이 위치를 잡고 안식의 터전을 찾아 생각지 않은 가운데에서도 결과적인 목적을 이루게 되고 즐길 수 있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이 세계, 더 나아가서는 하늘과 땅, 즉, 천주(天宙)에 존재하는 모든 개체 개체가 불변의 중심을 갖추어 그 위치를 잡고 생활노정에서 그 가치를 나타내고 있습니까? 그러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극히 작은 분자를 보더라도 중심과 상대적인 관계를 맺어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절대적인 원칙은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것입니다. 절대자가 주체로서 피조물을 창조했다 할진대, 그 주체가 되는 절대자와 상대가 되는 피조물이 뗄래야 뗄 수 없는 불변의 관계에 있어야 하는 것은 필연적인 사실입니다.

맨 처음부터 천지가 그러하였다면 오늘날 우리 인간들은 고통스러운 환경과는 하등의 관계가 없었을 것이요, 불안과 공포라는 낱말조차도 우리와 관계가 없었을 것이요, 역사적인 비참사나 처참한 전쟁이나 투쟁사도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랬더라면 목적하는 바의 가치를 이루며 살아가고, 목적하는 바의 가치도 결실되어 그 가치와 더불어 즐길 수 있는 환경에 들어갔을 것입니다. 또한 우리에게는 한없이 평화롭고 한없이 자유로운 이상세계가 펼쳐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현실에 처해 있는 여러분 자신이요 가정이요 사회요 국가요 세계입니다.

11-15
인간이 처한 실상과 절대자
섭리의 뜻을 이루어 나가는 데 있어서 눈물의 고비를 피할 수 없는 이 억울한 사정이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이뇨? 그것은 인간이 절대자가 지향하는 하나의 위치를 포착하지 못하고 변할 수 없는 그 위치에서 변할 수 없는 관계를 맺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 때문에 이런 결과가 벌어졌다고 단정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잘나고 아무리 만천하에 자기의 이름을 드날리며 호령할 수 있는 자가 있다 할지라도, 뒤넘이칠 때는 그도 쓰러지는 운명에 놓이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역사노정에 민족을 지도한 중심, 혹은 애국자가 있었고 하늘을 중심삼고 이 세계 인류 앞에 선에 접근할 수 있는 진리를 표명했던 성현 현철들이 많았지만 그들도 역사적인 비판의 대상이 되어 역사의 제물이 되어 사라졌던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현재의 주의나 사상, 우리가 지니고 있는 관념, 우리가 세우고 있는 생활의 목표 등은 어떤 것인고? 그러한 것들 역시 변하지 않는, 철두철미한, 원칙적인 중심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하나의 과정적인 것밖에는 안 됩니다. 과정적인 것들은 하나로 합해지지 않습니다.

완전무결한 중심이 세워질 때에는 자신의 갖춘 바를 만천하에 자랑하면 자랑할수록 그것이 오히려 부끄러움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천하를 움직일 수 있는 성공자라 할지라도 무엇인가 물결쳐 들어와 자기의 마음을 흔들어대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어떤 절대적인 하나의 완전한 존재, 변할래야 변할 수 없는 뚜렷한 하나의 핵심 존재가 이 세계에 침투하여 이 시간도 움직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양심을 가진 선한 사람들은 그것을 향해 전진해 나가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중심을 잃어버린 인간입니다. 이것을 종교적인 용어로 말하면 타락의 보응이라 할 수 있습니다. 원통하고 분한 타락의 보응입니다. 이것은 창조 이후 타락의 역사노정을 거쳐온 우리의 선조들도 원치 않은 것이요, 현재의 인간들도 원치 않는 것이요, 미래에도 원치 않을 것입니다. 이런 한스러운 오점과 한스러운 타락의 보응으로 인류는 사방으로 휘몰리어 이리 쓰러지고 저리 쓰러지고, 이리 찢기고 저리 깔리면서 죽음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이러한 가운데 태어난 인간이기에 고통스런 것입니다. 이러한 입장에 있는 우리들임을 알아야만 됩니다.

그러면 하늘이 원치 않은 타락이 벌어졌는데, 이것을 어떻게 해야 될것이냐? 만일에 이것을 해결해 주실 수 있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면 지극히 서러운 일입니다. 오늘날 세계는 좌우 양대 진영으로 갈라져 대결하고 있지만, 이 역사적인 고통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의 새로운 세계를 출산해야 하는 입장에 놓여 있는데 인간이 구상하고 계획한 그 무엇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이념에 젖어 있고 사상에 젖어 있고 주의에 젖어 있는 우리의 마음을 돌이킬 수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우리 몸의 모든 세포와 신경을 동원하고 힘을 다하여 새로운 동산, 새로운 이념세계를 향하여 달려가게 할 수 없습니다. 이 일은 인간이 아닌 절대자, 천주의 중심의 가치를 결정하실 수 있는 한 분을 통하지 않고서는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고마운 것은 이 세상의 어떤 주의가 아니요, 어떤 단체도 아니며, 어떤 지도자도 아닙니다. 이런 처참한 환경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가진 절대자가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중심을 잃어버리고 본향을 잃어버려 아무런 가치도 찾아볼 수 없이 파멸한 인류를 구원할 수 있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 이상 고마운 일이 없는 것입니다. 때문에 어떤 주의나 사상을 넘고 자신의 인격과 가치를 넘어 하나님을 존중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양심이 있는 한 이것을 부인하지 못할 것입니다.

11-17
나는 누구를 위하여 존재하느냐
그러기에 역사는 뒤넘이쳐 나왔습니다. 좌가 우가 되고, 우가 좌가 되고, 전이 후가 되고, 후가 전이 되고, 상이 하가 되고, 하가 상이 되면서 사방팔방으로 뒤넘이쳐 나왔습니다. 안 그렇습니까? 여러분의 하루의 생활도 그런 생활이었으며 여러분의 1년도 그렇고 일생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가정생활이나 사회생활도 그러한 환경에서 뒤넘이치고 있는 것입니다.

좌가 우가 되고, 우가 좌가 되고, 상이 하가 되고, 하가 상이 되고, 전후가 뒤넘이치며 변천해 나오는 역사노정에서 하늘은 하나의 해결점을 찾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누구를 위해 살고 있으며, 누구를 위하여 일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상이 하가 되고, 하가 상이 되고, 전후가 뒤바뀌고, 좌우가 뒤넘이치는 한이 있다 할지라도, 우의 자리에 서야 하는데 억울하게 좌로 거꾸러지는 한이 있다 할지라도 하늘을 위하여 존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쓰러지고 쓰러지면서도 이 작전을 해 나오신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인간들은 몰랐습니다. 그러기에 선을 지향해 온 사람들, 즉 도를 따라 나온 선한 사람들은 시대시대마다 참혹한 일들을 당했습니다. 그들은 위치가 바뀔 때마다 거름이 되었고, 시대가 바뀔 때마다 거름이 되었습니다. 시대의 변천에 따라 억울하게 많은 피와 땀과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들은 당시에 있어서는 망한 자요, 불쌍한 자요, 원망받아 마땅한 자로서 민족의 원수로 사라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의 목표, 그들의 중심, 그들의 생활 감정은 오로지 하나의 이념을 찾아 나오는 섭리의 중심을 향한 것이었고,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을 향한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것을 철두철미하게 지니고 나온 사람들이 역사를 뒤집어 놓았던 것입니다. 망하는 것 같은 자가 역사를 깨고, 실패한 것 같은 자가 역사를 수습한 것은 역사노정이 입증하는 사실입니다.

오늘날 우리 자신은 어디에 있느냐? 아무리 중심을 잡을 수 없는 혼란스런 환경에 처한다 하더라도, 어떠한 죽음의 자리에 들어가 있더라도 자기 자신이 누구를 위하여 존재하느냐 하는 것은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가르쳐 주고 싶으신 것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이것을 만민 앞에 가르쳐 주기 위하여 하나님은 종교의 역사를 통하여 메시아니 구원사상이니 하는 것을 내세우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자신은 누구를 위하여 존재해야 하느뇨? 하늘을 위하여 존재해야 합니다. 죽어도 하늘을 위하여 죽고 살아도 하늘을 위하여 살아야 합니다. 그런 자는 죽어도 죽은 자가 아닙니다.

어차피 역사는 세기 세기, 시대 시대를 거쳐오면서 뒤바뀌고 깨지는 것입니다. 그 시대에 아무리 크게 성공을 했다 해도, 그것이 천지의 중심과 접할 수 없고 하나님의 목적과 통하지 않는다 할진대 깨집니다. 또 그 당시에는 깨어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시간적인 차이가 있을 뿐 십년, 백년, 아니면 몇 세기 후에는 반드시 깨져 나갑니다. 이렇게 바뀌어지는 역사노정에 처해 있는 여러분입니다.

이러한 역사노정에 처한 여러분이기에 아무리 가정을 붙들고 자식을 붙들고 사랑한다 할지라도, 그것 역시 한 번은 바뀝니다. 6천년 역사를 거쳐왔으니, 이 심정의 중심은 언제 바뀌어도 한 번은 바뀌어야 됩니다. 지금까지 인류의 역사노정에 있어서 생활을 통한 사정은 해마다 바뀌고, 세기마다 바뀌고, 시대마다 바뀌어져 나왔습니다. 전부가 한 번은 바뀌어져 나왔습니다. 끝날이란 어떠한 때뇨. 심정적인 중심이 인간 자신도 모르게 바뀌어지는 때가 끝날이예요. 그때에는 이 세상 것은 전부가 바뀌어질 것입니다.

오늘날까지의 인륜도덕은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고, 자식은 부모에게 효도하고, 부부는 유별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삼강오륜의 초석으로 지금까지 내려왔으나 이것 역시 바뀌어지고 있습니다. 이렇듯 기존의 관습이나 규범 등이 자연적으로 바뀌어지는 기세가 사회환경에, 생활환경에 침투해 들어오는 날이 끝날이라는 겁니다. 세계적인 지도자, 혹은 메시아가 이땅 위에 나타난다 할진대 그분은 이 문제를 수습해야 합니다. 그렇기에 예수는 이 땅에 와서 누구보다도 나를 더 사랑하라고 한것입니다.

그러면 이구동성으로 끝날이라고 말하는 이 때에, 여러분은 `자신이 누구를 위하여 존재하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자신을 위하여 존재해서는 안 됩니다. 나라를 위하여, 세계를 위하여 존재해야 합니다. 더 나아가서는 어떤 주의나 사상을 발판으로 하여 하늘과 땅을 위하여 존재해야 합니다. 하늘과 땅을 위하여 존재한다는 자부심을 갖고 나타나는 무리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날 모든 종교는 `땅’을 원수라고 합니다. 그러나 `땅’을 원수로 대할 것이 아니라 하나의 목적을 이루는 대상물로 대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하늘과 땅이 내 것이요, 나는 하늘과 땅을 위하여 존재한다고 자부할 수 있어야 됩니다.

절대자가 계신다 할진대 그가 세우시려는 주의와 사상, 이념은 어떠한 것이냐? 하늘과 땅을 위하라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과 인류를 위하여 존재한다고 하며, 스스로 그 가치를 존중시하고, 스스로 그 위치를 평가하고 그러면서 스스로 그 방향을 향하여 철두철미하게 가겠다고 자부하고 나서는 무리들이 이 땅에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하늘은 바라고 계시며 지금까지의 인류 역사 이것을 바라고 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까지는 물질 빼앗기 싸움을 했고 그 이후 오늘날까지는 사람 빼앗기 싸움을 해 나왔는데, 이제 마지막에는 하나님 빼앗기 싸움이 벌어집니다. 하나님을 빼앗기 위해 서로 나는 삼단이고 너는 이단이라고 주장합니다. 여러분, 어저께 신문에서도 보았겠지만 앞으로는 그보다 더 큰 문제가 벌어지게 됩니다. 지금까지 하늘은 종교단체를 가만두었지만 앞으로는 세계적인 사조를, 세계적인 운세를 휘감아 소용돌이치게 할 것입니다. 동기적인 입장에 서서 문제를 해결하든가 상대적인 자리로 몰아넣어 해결시키든가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일이 성취될 때까지 많은 종파가 깨어져 나갈 것입니다.

11-20
하나님의 섭리가 종결되려면
인류역사가 하나의 목적세계를 향하여 가는 과정에서 수많은 민족이 깨지고 바뀌었습니다. 하나의 귀결점을 찾아 세우려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도 그러한 노정을 거칩니다. 여기에서 마지막까지 남아져 역사를 수습할 수 있는 이념은 하늘을 위하고 땅을 위하고 인류를 위하는 이념입니다. 그러니 인류를 통하고, 하나님을 통하고, 천지를 통할 수 있는 심정기준을 가진, 자기의 가치를 천상천하에 자랑할 수 있고 노래할 수 있는 사람들이 나와야 합니다. 더 나아가 땅과 하늘과 하나님은 우리의 것이요,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요 나는 그분의 아들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무리가 나와야 합니다.

지금까지 가정을 가져 보지 못하신 하나님이요, 나라를 가져 보지 못하신 하나님이요, 세계를 움직여 보지 못하신 하나님이 그러한 개인을 찾았다 할진대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하나님은 그 사람을 중심으로 사회의 기본이 되는 가정의 형태를 갖추고 그 가정을 중심으로 사회를 형성하고 그 사회를 중심으로 민족을 형성하고 국가를 세워 새로운 주권세계를 향하여 출발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땅 위에 메시아를 보내시어 그를 신랑이라 하시고 인류는 그의 신부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뜻하느냐? 역사노정에서 하나님이 찾아 나오신 제일 기준인 아버지와 아들딸, 즉 참부모와 참아들딸의 기준을 세워 새로운 역사의 페이지를 기록하기 위한 기점으로 세운 것임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제는 정신차려야 할 때입니다. 자신이 갖고 있는 것을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할 때입니다. 밥숟갈을 붙들고 다시 한번 생각해야 하겠습니다. 눈앞에 보이는 모든 만상을 대하여 재비판하여야 하겠습니다. 자기의 생활적인 모든 조건을 재수습해야 하겠습니다. 천심을 통하여 어떤 것이 옮고 그른 것인가를 냉철하게 판단하고 결정하여 옮은 것을 취하고 그른 것은 베어 버릴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최후의 때에는 그러한 일이 벌어져야 합니다. 누구를 위하여? 자기를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을 위하는 데는 자기 자신이 그르면 자신을 잘라 버리고, 가정이 그르면 가정을 잘라 버리고, 국가, 민족, 세계까지도 미련없이 자르고 넘어설 수 있어야 합니다. 자기 스스로 잘못된 모든 것을 포기하고 변할 수 없는 하나의 중심과 통할 수 있는 위치와 방향을 갖추어 생활 가운데에서 목적의 주체이신 하나님의 가치를 노래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있다 할진대 그는 인생행로에 있어 대승리자입니다. 인간은 그러한 과정을 거쳐 나가야 합니다. 많은 사람이 망하고 많은 민족이 멸망하게 되더라도 하나님의 섭리의 뜻이 종결되려면 그러한 핵심적인 과정을 거쳐 나가야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팔자가 좋아서인지 혹은 운이 좋아서인지 시대적인 혜택을 받아 좋은 시대에 태어났습니다. 매를 맞아도 직접 맞고, 상을 받아도 직접 받고, 말을 들어도 직접 듣고, 책망을 들어도 직접 들을 수 있는 때에 태어났습니다. 여러분은 한민족, 즉 한국 백성으로 태어났으되 한국 백성만으로서가 아니라 세계를 대신한 민족이라는 입장을 떠날 수 없습니다. 내 민족만을 위하여, 내 국가만을 위하여 살 때는 지나갔습니다. 지금은 세계주의가 대두된 시대입니다. 서로 대결하고 투쟁하는 과정에서는 일개 사회의 주의나 사상을 넘어 그 이상의 가치적인 위치와 방향을 갖추어 나타나지 않는 한 도저히 새로운 시대를 향하여 나아갈 수 없습니다. 또 지배받는 민족은 될망정 지배하는 민족은 될 수 없습니다.

이 땅 위의 인간들은 지금까지 무엇을 지배하여 나왔던고? 물질을 지배하고 몸뚱이를 지배하는 데 전력을 다해 나왔습니다. 그 반면에 종교는 물질과 몸뚱이를 끊어버리고 양심을 지배해 나왔습니다. 이것이 두 갈래의 역사노정입니다. 우리는 몰랐지만 역사노정에서 하나님은 양심적인 역사의 인연을 넓혀 가지고 하나의 중심이념을 가진 존재를 세워서 인간들이 그와 하나되게 하기 위한 목적을 갖고 나오셨습니다. 지금으로부터 2천년 전 즉, 타락 이후 4천년 만에 양심의 방향을 잃어버린 인간들 앞에 자석과 같이, 플러스(+)적 양심형으로 나타난 사람이 예수입니다. 그는 참사람, 선한 사람이었습니다.

11-22
역사의 귀추와 도의 길
그러면 이 역사는 어떻게 될 것인가. 무엇을 중심으로 귀결될 것이뇨. 물질과 몸뚱이를 중심한 역사적인 관이나 이념, 주의나 사상은 세계의 기반이 될 수 없습니다. 세상의 인연을 끊어버리고 양심에 따라 선을 지향하여 나선 사람들 즉, 도의 길을 가는 사람들이 세계의 기반이 될 수 있습니다. 이들의 가는 모습은 처량합니다. 불쌍합니다. 얼굴을 보아도 처지를 보아도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가는 길은 적막강산입니다. 그 길은 가족도 못 따라갑니다. 홀로, 홀로 가야 하는 길입니다. 한번 가면 다시 못 오는 길입니다. 그 길에서는 뜻을 이루지 못하면 쓰러져 망해 버리는 거에요. 도의 길은 그렇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스라엘 역사를 상고해 보아도 그 길은 갔다가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길임을 알 것입니다. 돌아가는 날에는 죽게 됩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애급의 바로 궁중을 기쁨으로 탈출하여 황무지인 광야를 향하여 힘있게 달려나갈 때에는 말할 수 없는 희망과 소망에 넘쳐 있었으나 그 길은 비참한 길이었습니다. 보따리도 못 가지고 가는 길이요, 편안히 잘 수 있는 이불 하나도 가지고 갈 수 없는 길이었습니다. 다 팽개치고 나서야 하는 길이었습니다. 그 길은 굶주리는 길이요, 목마른 길이요, 나그네 길이요, 헐벗는 길이요, 병들어 넘어지는 죽음의 길이었습니다. 오늘날까지 인류 역사노정을 거쳐 오는 동안 도를 사랑하는 수많은 사람들은 그런 길을 걸어갔습니다. 그 길은 사랑하는 아들딸을 버리고 가야 할 길, 천적인 인연을 갖고 죽어도 그 길에서 죽어야 할 길, 일생을 걸어 놓고 가야 할 길입니다. 뼈살을 에이는 듯한 고통에 눈물을 흘리면서도 사랑하는 가족을 두고 돌아서서 홀로 가야 하는 운명의 길입니다. 그렇다고 이 길을 가는 데 있어서 뚜렷한 목적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막연한 길입니다. 도의 길을 찾아 헤매는 사람, 참으로 불쌍합니다. 동시에 그러한 길을 찾아가는 가정도 불쌍합니다. 그러한 민족이 있다 할진대 그 민족 또한 불쌍합니다.

하늘을 직접 배반한 것도 이스라엘 민족이요, 하늘의 일을 망친 이스라엘 민족입니다. 불쌍한 민족입니다. 유일신 이념을 가지고 어디 가나 그 중심만은 잃지 않은 그들은 가는 곳곳마다 학살을 당하고, 학대를 받았으며 지금까지 유리고객하고 있습니다. 불쌍한 역사노정입니다. 하늘의 역사가 그렇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 길은 둘이 갈 수 없습니다. 오직 혼자 가야 하는 길입니다.

이런 역사노정에서 세상은 세상대로, 하늘은 하늘대로 나갈 것이 아닙니다. 개인을 세워서 가정을 세웠다 할 수 있는 기준을 세워 놓고 그 개인을 다시 끌어내 가지고는 돌려보내야 됩니다. 4천년 동안 그런 길을 갔던 사람들, 그 전체의 가치를 대신하여 다시 내보낸 한 분이 바로 메시아입니다. 그분이 메시아예요. 이 메시아는 우리 선조들이 흘린 피의 결실체요, 희생의 결실체요, 고생의 결실체요, 눈물의 결실체요, 땀의 결실체입니다. 또한 선조들의 부활체요, 원수를 치고 선조의 한을 풀어야 할 중심존재요, 가나안의 약속을 이어받은 분입니다.

11-23
신인평등(神人平等)의 시대가 와야
오늘의 세계는 몸뚱이와 물질을 위하여 싸우는 세계입니다. 아무리 경제학, 과학, 사상이 발전된다 할지라도 그것이 우리 인류에게 평화를 가져다 줄 수 없습니다. 그것으로는 안 됩니다. 마음의 세계에 들어와 이 육체와 물질을 재감별시킬 수 있는 어떠한 주의나 천적인 움직임이 역사적인 종말시대에 나타나지 않는 한 이 세계는 망해 버릴 것입니다. 이제 하늘이 기필코 하나의 중심을 결정지어야 할 최후의 시대에 봉착했습니다. 이러한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이 많은 문제들을 어떠한 입장에서 해결할 것이며 청산할 것이뇨? 이 문제가 세계적으로 벌어져 두 사조로 나타났으니 그 하나는 유물사관이요, 다른 하나는 유심사관입니다. 딱 나뉘어 나왔습니다. 땅과 더불어, 몸뚱이와 더불어 나가면 망합니다. 그러니 하나님과 더불어 청산해야 합니다.

여기에 있어서 우리가 제창해야 할 것은 마음인데 이 마음의 주체가 누구냐? 이것을 들고 나와야 됩니다. 마음의 주체는 하나님입니다. 그러나 막연한 하나님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위주할 때가 왔습니다. 수천년의 역사노정을 거쳐왔지만 하나님을 위주하여 나아가자는 주의나 사상이 언제 나왔습니까. 나오지 않았습니다. 어느 민족, 어느 국가의 이념이나 주의 사상도 하나님을 위주해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그림자 모양 막연한 것이 지금의 민주주의입니다. 앞으로는 인권옹호시대를 넘고 남녀 평등권을 주장하는 시대를 넘어, 신권을 옹호하고 하나님과 우리 인간이 평등하다고 하는 자리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이제까지 하나님 노릇을 못해 보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나님 노릇을 못해 보셨다는 것은 무엇이뇨? 하나님과 인간이 평등한 자리에 들어가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잘못된 일입니다. 신권이 옹호되어야 합니다. 신권을 옹호해야 돼요. 우리를 지으신 주체와는 아무런 관계도 맺지 못해 접할래야 접할 수 없는 입장에 있으면서 무슨 평등이고 무슨 자유입니까? 하나님과 평등한 자리에 가야 합니다. 그 자리로 가는 데는 눈물 아니면 안 되고, 통회하고 가슴을 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을 바로 보지 못하는 입장을 넘어 자유와 평등을 노래하며 `나의 아버지’ 할 때 `오냐’ 할 수 있는 자리에 가야 합니다. 예수가 부활한 후 막달라 마리아가 붙잡으려 할 때에 `만지지 말라’ 한 것은 아직 때가 안 되었기 때문입니다. 끝날은 하나님께서 사랑의 손길을 펴시고 `내 아들딸아’ 하며 만민을 품기 위하여 오시는 때입니다. 그러기에 신권옹호를 부르짖고 신인(神人)평등을 부르짖어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신과 인간이 다같이 합하여 자유천지에서 노래할 수 있는 때가 되면 하나님의 복귀역사도 끝나고 우리 인류의 소망도 모두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인간들은 그것을 위해 하나님이 움직여 나오시는 것을 모르고 잠만 자고 있습니다. 자기의 자녀를 사랑하며 살고 있으되 그런 인간들을 바라보며 눈물짓는 하나님이 계신 것을 몰랐습니다. 인간은 평화스러운 가정, 자유스러운 가정을 노래하였지만 하나님은 눈물을 흘리며 나오셨습니다. `너희는 나의 아들딸인데 원수의 가정에 들어가 평화를 노래하는구나, 원수의 제물이 되어 수고하는구나’ 하며 눈물지으셨던 것입니다. 철천지 원수인 사탄의 품에 안겨 갈 길을 모르고 자기의 자식을 품고 사는 무리들을 바라볼 때 미칠 것 같았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누가 알았던고?

11-25
하나님의 소원과 중심인물들이 걸은 길
하나님이 원수 앞에 보이고 싶은 것은 무엇이뇨? 당신께서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사랑하는 딸이라고 할 수 있는 인간의 모습입니다. 역사노정의 어떠한 사람 이상 사랑의 심정을 품고 아버지와 아들의 인연으로 혼연일체가 된 인간의 모습을 사탄 앞에 자랑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하나님의 소원은 창세 이후 오늘날까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온 세계 인류는 하나님의 아들 딸로서 자유와 평화가 가득한 행복의 동산에서 하나님과 더불어 신권옹호와 신인평등을 노래하며 즐겁게 살아야 할 것이었는데, 지금 탄식과 절망 가운데에서 허덕이고 있습니다. 소망의 주체이신 하나님을 가로막고 있는 원수, 양심의 길을 혼란시키는 그 원수에게 사로잡혀 허덕이고 있습니다.

말없이 참을 찾아 나오고 묵묵히 선을 찾아 나온 우리의 선조들은 생애를 통하여 일념으로 하나님을 기뻐할 수 있는 소망의 한 날을 고대하였거늘, 끝날이라고 하는 이때에까지 그 한 날을 맞지 못했습니다. 그 한 날을 이루실 분을 만나지 못하고 모시지 못한다면 인류는 어떻게 될 것이뇨? 이것을 생각할 때 우리는 새로이 각성해야 되겠습니다. 새로운 각오와 결의를 해야 하겠습니다. 분하고 원통한 하나님이 계시고, 처량하고 불쌍한 우리의 형제가 있으며, 하나님이 이루시려던 하나의 주권과 이념을 세우지 못한 원통함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모두 나그네요, 벌거숭이였습니다. 불쌍한 무리였습니다. 어디가서 하룻밤도 편안히 잘 수조차 없는 길을 걸어 나온 사람들이 소위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나온 사람들입니다. 원통, 원통한 일입니다.

옛날의 노아도 원통했고, 아브라함도 원통했습니다. 또한 곡절은 모르고 사정은 모르지만 그 곡절과 사정의 대상자로 택함을 받은 자들 역시 원통한 노정을 걸었습니다. 하나님을 위한다는 일념으로 나아가던 야곱도 하란을 향하여 갈 때 돌베개를 베고 눈물짓는 노정을 거쳤습니다. 원통한 일입니다. 모세도 마찬가지입니다. 호화찬란한 외적인 모든 것을 갖춘 바로 궁중의 제반 조건이 그의 심정을 평화롭게 해줄 수 없었고 행복하고 만족스럽게 해줄 수 없었습니다. 그가 처한 자리는 원수의 자리였습니다. 때문에 일편단심으로 하늘 앞에 무릎을 꿇고 남 모르는 눈물을 지으며 기도를 그치지 않았던 모세였음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모세는 하늘을 향한 마음이 간절해지고 복받쳐 올라 마침내는 궁중을 박차고 나섰습니다. 하늘이 허락할 때를 고대하던 모세는 세상을 헤아릴 줄 알고 전후를 가릴 수 있는 연령, 40세가 되던 해에 이스라엘 민족을 향하여 궁중을 박차고 나섰던 것입니다. 그가 간 길은 어떤 길이었는가? 삼시 호화롭게 먹고 호화찬란한 옷을 입던 그가 단벌 옷과 단벌 신발로 일편단심, 목적을 향한 빛나는 충절의 마음에 사무쳐 고역에 시달리는 불쌍한 이스라엘 민족을 찾아들었던 것입니다. 그러한 모세의 발걸음은 비장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러한 모세의 40평생도 원통하지만 찾아간 이스라엘 민족으로부터 배반을 받은 것은 더 원통한 일입니다. 그리하여 원수의 나라 애급에도 몸을 두지 못하고 미디안 광야로 나가던 모세의 서러움을 우리는 생각해야 하겠습니다. 그러나 환경이 변하고 자기의 몸이 처량하고 보잘것 없게 되었을망정 그의 일편단심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자신이 가는 길이 역사적인 제물의 길이요, 도인들이 가다 남긴 역사적인 노정임을 안 모세는 역사적인 길을 가는 민족의 친구가 되기 위해 애썼고, 미래의 수많은 인간들이 가야 할 도의 노정을 개척하는 책임자의 입장에서 40년 동안 양치는 목자생활을 했습니다. 바라보이는 초원지대를 가나안 땅으로 보고, 풀을 뜯고 있는 양떼를 이스라엘 민족으로 생각하며 양을 붙안고 울던 모세였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 땅을 붙들고, 양떼를 붙안고 `하나님이시여’ 하며 눈물짓는 모세를 바라보신 하나님은 모세의 그 심정의 터전이 축복해 줄 수 있게 되었기에,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하시며 찾아오셨던 것입니다. 불쌍한 자리에 있었으나 간절한 마음에 사무쳐 외치는 모세의 심정이었기에 하나님과 인연이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하는 길이 이렇게 원통스러운 길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았습니다. 이 길은 비단 모세만이 간 길이 아닙니다.

11-27
억울하고 원통한 길을 가야 할 성도
이스라엘 민족사를 수습하고 하나님의 한을 풀기 위하여 4천년의 결실체로, 메시아로 보내졌던 예수의 마음은 일편으로 기뻤으나 이 땅위에 온 그의 처지는 슬프고 원통했었습니다. 그는 어찌하여 남과 같은 민족을 갖지 못하였던고? 어찌하여 권세를 가지고 태어나지 못했는고? 그것은 필연적인 탕감의 노정을 가야 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아시는 하나님은 분하지만 예수를 십자가에 보내 놓고 성신을 이 땅 위에 한 중심으로 보내셨습니다. 땅은 어머니의 상징이니 승천한 예수대신 어머니 신이 와야 합니다. 그래서 이 땅에 와서 제단을 쌓고 눈물을 뿌리며 인간과 모자의 인연을 갖추어 나온 것이 지금까지의 기독교 역사입니다. 억울하고 분한 일입니다. 억울하고 분한 일이예요.

소망의 한 날을 고대하며 6천년 역사노정에서 고아처럼, 나그네처럼 남루한 옷을 입고 허덕이는 무리들이 기독교 신자입니다. 어느 한 날도 편안한 잠을 잘 수 없는 무리들이 기독교 신자입니다.

내가 잘나고 네가 못났다고 하던 이스라엘 민족은 광야에서 까마귀 밥이 되고 독수리 밥이 되었습니다. 이런 것을 생각할 때 오늘날 우리는 각성을 해야 합니다. 각성하여 원통스러운 역사상의 사실을 우리가 우리 시대에 해원해 봅시다. 모든 정력을 다 기울입시다. 민주사회를 논의하고, 신이 있다고 주장하는 세계의 사조 앞에 우리는 제물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 시대에서 하늘의 복을 받을 자는 누구인가? 안락하게 잠을 자는 자가 아닙니다. 하늘이 아직까지 안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 할진대 우리가 여기서 안식할 수 없습니다. 이 세계 앞에 원통한 길을 가는 무리는 이 세계를 지배할 수 있습니다. 원통해해야 합니다. 누구를 위하여 원통해해야 되느냐? 내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 원통해해야 하는 것입니다. 끝날은 원한을 푸는 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시고 싶은 그 사랑의 심정을 나눠 주지 못해서 원통해하시고 당신께서 세우고자 하시는 백성을 세우지 못해서 원통해 하시고, 당신께서 찾고자 하시는 가정을 찾지 못해서 원통해하십니다. 우리는 이토록 원통해하시는 하나님을 생각하고 사무치는 심정으로 세계를 향하여 봉화를 들고 나설 수 있는 무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무리가 나타나기를 하나님은 바라십니다.

역사는 동서가 하나의 종결점을 짓기 위해 부딪쳐 돌아가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쓰러지지 않고 처참한 소용돌이의 중심에서 솟구쳐 나와 `하나님이여! 당신의 슬픔과 고통과 한의 노정에 저를 보내 주시옵소서’라고 할 수 있는 무리, 광야에서 양을 치던 모세와 같은 절개를 가진 무리가 나오기를 하나님은 고대하십니다. 갈대아 우르에서 하나님께 충성하던 아브라함과 같은 사람의 무리, 하란에서 21년 동안 하나님을 대해 준비하던 야곱과 같은 사람의 무리를 하나님은 고대하신다는 것입니다. 필시 그러한 무리가 나와야 합니다.

여러분, 오늘 눈물짓는다고 낙심하지 마십시오. 피땀을 흘리는 한이 있다 할지라도 낙심하지 마십시오. 세계의 운명은 바야흐로 생사를 귀결짓는 때에 와 있습니다. 이러한 때에 여러분은 어디로 가겠습니까? 바로 궁중에 머무르겠습니까? 우리가 사는 이곳은 우리의 고향이 아닙니다. 필시 가야 할 본향이 있습니다. 우리의 선조, 아담 해와로부터 원수까지도 할렐루야 할 수 있는 본향이 있습니다. 그 본향으로 가야 할 길이 남아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걸 남기고 가는 자는 망합니다. 망해요.

11-28
심정으로 단장해야 할 우리
여러분! 자기 자신을 명심하십시오. 자기 자신을 재분석하십시오. 자기 자신을 주시하여 내 피는 누구의 피며, 내 고깃덩어리는 누구의 고깃덩어리이며, 내 뼈는 누구의 뼈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손아, 너는 하나님께서 붙들 손이다. 몸뚱이야, 쓰러지는 날에 만민은 조롱할지 모르지만 하나님께서는 붙들고 눈물지으실 것이다’라고 자처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야 합니다. 몸뚱이가 찢기고 매를 맞고 철창에 갇히는 한이 있더라도, 하나님께서 철창 사이로 손을 내미시어 `내 아들아!’ 하실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역사적인 사조를 넘기 원한다 할진대 필시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때는 옵니다. 때를 기다리는 우리는 바쁘지만 때를 찾아 나오시는 하나님은 더욱 바쁘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참다 못해 지쳐 쓰러지는 사람보다도 그러한 자리를 해결해 주지 못하고 참음의 자리에 계셔야 하는 하나님의 마음이 더욱 초조하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 말을 여기 서 있는 젊은 사람의 말로만 알지 말고 논리적인 논거를 세워 그런 면에 입각하여 비판하고 판단해 보십시오. 지금까지의 것과 다른 그 무엇이 있어야 인류는 다시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무엇이 없으면 망하게 됩니다. 살고 싶은 대로 살아 보십시오. 얼렁뚱땅 해 가지고 행복의 터전을 갖춘 듯이 살아 보란 말입니다. 망합니다. 아브라함이 취하여 하나님 앞에 바칠 제물의 사체 위에 난데없이 솔개가 내릴 줄 누가 알았습니까? 영원무궁한 평화의 왕궁을 건설하여 산다는 것이 쉬운 일인 줄 압니까?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지금의 때가 그러한 세계를 이루어야 하는 때이니, 모세가 몸단장을 하고, 야곱이 몸단장을 하고, 아브라함이 몸단장을 하고, 예수가 몸단장을 하던 것같이 우리도 몸단장을 하고 나서야 하겠습니다. 무엇을 위하여? 내 나라를 위해서가 아니라 세계를 위하여, 나아가 하늘을 위하여 몸단장을 해야 하겠습니다.

신랑을 맞이해야 할 신부들이여! 그대들은 안팎으로 모든 장비를 갖추어 단장을 해야 합니다. 단장하는 데는 물질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심정으로 단장을 해야 합니다. 인류의 심정과 하나님의 심정과 주님의 심정으로 단장해야 합니다. 하늘의 심정이 나에게 동기가 되어 있었고, 땅의 심정이 나에게 결과가 되어 있으니 나는 알파와 오메가적 심정의 결실체로서 단장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멀리 바라보시던 역사를 당겨 가까이서 바라볼 수 있고, 소망을 찾던 인류가 지금까지의 어떠한 주의나 사상을 다 버리고 `당신은 세계를 주고도 바꿀 수 없습니다’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이 땅 위에 나타나지 않은 한 세계는 망합니다. 이건 공론이 아닙니다.

지금은 생사가 뒤넘이치는 최후의 때입니다. 하나님의 일선 도상에 서서 최후의 결판을 지어야 하고 승패를 결정지어야 할 때입니다. 즉, 지금 우리는 하나님의 일선에 서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싸움은 어떤 싸움이뇨? 물질적, 외적인 싸움이 아닙니다. 마음의 싸움, 심정의 싸움입니다. 이 심정에서 원수가 많습니다. 외적으로 나타난 세상의 모든 일이 원수입니다. (정전으로 10초 정도 녹음되지 않았음)

11-30
하나님의 일선과 그 일선을 만든 목적
사탄을 대하여 책망하고 싶고, 참소하고 싶고, 저주하고 싶고, 시험하고 싶은 모든 조건을 걸어 싸울 수 있는 기간, 120년 동안 노아는 수많은 원수의 무리와 혈혈단신으로 싸웠습니다. 수많은 원수를 대해 혼자 싸웠어요. 창을 가지고 싸운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싸웠습니다. 원수들의 창에 몸을 맞은 것이 아니라 마음을 맞았습니다. 아담 이후 1,600년 동안 상처입어 오신 하나님을 대신하여 마음에 상처를 입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가 하나님께서 동정하실 수 있는 입장에 섰던 연고로 하나님은 그를 찾으셨습니다. 그런 후에도 1,600년 동안 수고하신 하나님의 일선을 적에게 빼앗기지 않았기에, 그 방주의 고지를 사탄에게 빼앗기지 않았기에, 하나님은 그것을 중심삼고 천사들을 동원하여 홍수심판을 하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리하여 근근히 하나님만이 취하실 수 있는 최일선으로 노아의 방주를 세우셨는데, 거기에 다시 사탄의 일선이 생겼으니 하나님의 심정이 어떠하셨겠습니까? 1,600년 동안 억울하게 공격당하고 사탄의 화살을 받아야 했던 사실들을 모두 정리하여, 하나의 승리적인 일선을 갖추어 평화의 동산을 세워야 할 노아의 가정에 다시 사탄의 일선이 생겨난 것은 너무도 원통한 일입니다.

함의 실수는 개인적인 실수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인 실수요, 노아의 분함은 개인적인 분함이 아니라 천주적인 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사실을 함은 몰랐던 것입니다. 일 개인으로 택해 세운 노아도 자신이 그렇게 크게 쓰이고, 그렇게 큰 가치의 존재임을 몰랐습니다. 땅을 다 심판하여 수많은 민족을 고기밥으로 쓸어 넣으시고도 노아의 여덟 식구만큼은 살리신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을 그들은 몰랐던 것입니다. 노아의 여덟 식구가 있는 곳은 하나님의 사랑의 일선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일선이었어요. 그렇기 때문에 함의 실수가 그토록 큰 한을 가져 왔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일선이 침범을 받고 나니 하나님은 침범받은 그곳에 계실 수 없기에 그들을 다 사탄에게 내주고 400년 동안 그 민족을 붙들고 억울함을 당하셨습니다.

그리하여 2천년만에 아브라함을 찾아 세우셨습니다. 근근히 세운 하나님의 일선에 하나님 대신 인간을 세워 인간으로 하여금 사탄을 굴복시키게 하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세우시고 이어 이삭, 야곱 3대를 거쳐 근근히 인간을 대한 작전 개시를 할 수 있는 발판을 세워 나오신 것입니다. 그리하여 비로소 야곱때에 이르러 땅에 하나님을 대신하여 하나의 가정을 움직일 수 있는 참모를 세운 것입니다. 야곱 가정이 하나님의 일선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개인을 거치고 가정을 거쳐 민족에 이르러 찾아 세운 모세는 누구며, 이스라엘 민족은 어떤 민족이뇨? 모세는 하나님의 일선의 참모총장이요, 모세를 따르던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의 일선을 지켜야 할 정병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민족은 행군 나팔을 울리며 싸우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듣지 않았고, 간곡히 외치는 참모총장 모세의 말을 거부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슬픔의 제물로 쓸쓸한 광야에 묻히고 만 억울한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하겠습니다.

민족을 찾아 세우신 하나님은 사탄을 민족에게 맡겨 놓고 바라보기만 하고 당신은 싸움을 하지 않으려 하셨습니다. 그런데 민족이 책임을 다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가담하여 다시 역사를 끌고 나오시는 것입니다. 사탄과의 싸움의 일선에 하나님이 가담하지 않고 인간들끼리 모여서 사탄 도성을 무찔러 하나의 세계를 이루게 하려 하신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니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이 같이하신다고 해서 그의 권한을 가지고 할 것이 아니라, 제일 불쌍한 민족의 입장에 서야 했습니다. 민족을 지도하려면 그 민족의 가장 불쌍한 입장에 서야 합니다. 사탄세계를 지도하려면 사탄세계의 끝에 서야 돼요. 하나님은 모세를 민족의 책임자로 세우시고 그가 가장 불쌍한 자리에서 당신의 심정을 나타내기를 기대하셨던 것입니다.

1,600년 역사를 끌고 나와 때를 맞이한 하나님은 비로소 노아를 세우셨습니다. 다음에는 가정을 세우고 민족을 세운 후 이스라엘 나라를 세우셨습니다. 그렇게 나오면서 하나님은 개인 일선을 잃어버리지 않고, 가정 일선을 잃어버리지 않고, 민족 일선을 잃어버리지 않고, 국가 일선을 잃어 버리지 않은 위치에 계셔야 했습니다. 그것 때문에 하나님은 가중된 고통을 당해 나오시는 것입니다. 민족이 책임하지 못할 때, 하나님 앞에는 가정이 책임하지 못한 것이 플러스(+) 되고, 개인이 책임하지 못한 것이 플러스(+)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예수를 이 땅 위에 보내신 것은 땅 위의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일선을 책임지고 영적인 싸움을 실체적인 싸움으로 벌이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땅 위의 인간들이 예수를 죽임으로 예수와 성신이 갈라져서 지금까지 영적 싸움이 계속되고 거기다가 육의 싸움까지 가중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육을 치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육신 속에 사탄이 꿈틀거리고 있으니 치라는 거예요. 원통한 일입니다.

11-32
최후의 일선
그 이후 2천년이 경과하여 끝날이 되었습니다. 기독교 신자를 동원하여 하나님이 움직일 수 있는 새로운 제 2이스라엘을 세우고 새로운 시대를 향하여 넘어가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예수의 말씀을 통하여 천국을 건설하는 하늘편 선민이 되어야 했는데 그 시대를 놓쳐버렸습니다. 그래서 국가의 고통과 민족의 고통과 가정의 고통과 개인의 고통을 하나님과 예수와 성신, 즉 삼위신이 지고 계신 것입니다. 지금까지 삼위신이 이 땅 위의 억울한 자의 아버지요, 몰림받는 무리의 주인으로서 나오셨으니 이 얼마나 불쌍하고 원통한 사실입니까?

여러분은 아버지께 복을 바라는데 먼저 그 아버지가 어떠한 아버지인지 알아야 하겠고, 믿고 있는 주님이 어떠한 주님인지 알아야 하겠고, 믿고 있는 성신이 어떠한 성신인지를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것을 안다면 자기 손에 상처가 있다 해서 `하나님이여, 이것을 고쳐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할 수 없는 것이요, 매를 맞아 쓰러진다 할지라도 하나님께 부탁의 기도를 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세계적인 종말시대에 하나님은 다시 역사적인 운명과 더불어 승리의 기준을 세우기 위한 최후의 천적인 일선을 찾아 세워야 합니다. 이러한 때에 우리는 세계 인류 앞에 봉화를 들어야 하겠습니다. `전세계에 널려 있는 기독교인들이여! 도인들이여! 단결하라, 양심 있는 사람은 동원되라’는 플래카드를 내걸어야 되겠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정병으로 일선의 고지를 올라가 사탄과 최후의 결전장에 서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고맙고 감사한 일입니다. 일면 분하고 억울하고 원통하지만, 그것을 책임지고 원수를 갚을 수 있는 때가 온 것은 고마운 일입니다. 지금이 바로 그런 때입니다. 역사적으로 그러한 때라는 것입니다.

하늘은 여러분 개개인에게 `아무개야, 너는 제2이스라엘 천민(天民)으로서 이 땅 위의 원수를 점령하여 승리의 땅과 승리의 백성을 갖고 있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지금이 그런 때입니다. 내가 잘났다 네가 못났다고 싸움하는 그런 때가 아니예요. 전세계의 종교인이 동원되어 이스라엘의 대열을 찾아야 할 때입니다.

그러려면 어떤 관이 서 있어야 되느냐? 아까 말한 대로 나는 누구의 것이며 누구를 위하여 있느뇨? 나의 눈, 나의 모든 감각기관은 누구를 위해 있느뇨? 몸뚱이는 원수요, 마음은 하늘입니다. 여러분은 선 악의 일선인 것입니다. 그것이 종적으로 개인으로부터 가정, 사회, 국가, 세계까지 전개되어 나왔습니다. 이제는 여러분이 이렇게 종적으로 내려올 것을 횡적으로 전개시켜 옛날의 노아와 같은 자리에 서야 하고, 아브라함과 같은 자리에 서야 하고, 야곱과 같은 자리에 서야 하고, 모세와 여호수아와 갈렙과 같은 자리에 서야 하고, 더 나아가서 예수와 같은 자리에 서야 할 때입니다. 여러분 그러한 자리에 서겠습니까? 그런 때가 왔습니다. 틀림없어요. 여러분 단단히 결심해야 되겠습니다. 이 말은 여기 서 있는 사람의 말이 아닙니다.

많은 한을 품고 나아왔던 한국 민족! 이 민족은 `굶주려라, 헐벗어라, 나그네가 되라’ 한 성경 말씀대로 다 했습니다. 옛날 하늘을 위해 나아가던 사람들이 그랬습니다. 이 종말 시기에 세계적인 이스라엘을 건국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이 있다 할진대, 이 최후의 시대에 몰림받고 쫓김받는 제물적인 국가가 나타나야 됩니다. 굶주림의 울음소리가 들려야 할 때가 왔습니다. 조갈증에 한숨을 짓고 우는 소리가 들려야 할 때가 왔습니다. 머물 곳이 없는 나그네의 신세가 된 민족이 나와야 합니다. 지금 우리 민족이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는 나그네입니다. 그러니까 동냥을 하여 먹어야지 별 수 있어요? 굶주려 병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갇혀 있습니다. 지역적으로 그래요.

천상에 하나님이 계셔 이러한 것을 본다 할진대, 시대적인 기운에 따라 이러한 민족을 세계 앞에 하늘의 정병으로 세우실 것입니다. 이러한 운명 앞에 선 삼천만 민족은 어떠한 모습이 되어야 할 것이뇨? 지극히 작은 자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피어린 심정을 붙들고 눈물 흘리며 하나님의 심정과 더불어 움직이는 불쌍한 효자의 모습, 효녀의 모습, 충신의 모습이 되어 하나님이 붙안고 통곡할 수 있는 민족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이 민족은 살 길이 있습니다.

여러분! 낙심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헐벗는 것은 우리를 위해서가 아니요, 우리가 굶주리는 것도 우리를 위해서가 아니요, 우리가 목마른 입장에 있는 것도 우리를 위해서가 아니요, 나그네가 된 것도 우리를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병든 것도 우리를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세계를 위해서였습니다. 이러한 입장에 있는 이 민족에게 단 하나의 길이 있나니, 못 먹는다고 울지 맙시다. 헐벗었다고 울지 맙시다. 병들었다고 한숨짓지 말고 갇히었다고 낙심하지 맙시다. 6천년 역사노정에서 하나님의 뜻과 선을 찾아 나왔던 사람들의 발걸음이 그랬고, 타락한 그날부터 지금까지 하나님 역시 이러한 역사를 거쳐오며 수고하셨습니다. 그러니 이 삼천만 민족은 6천년 역사노정 위에 깔린 하나님의 슬픈 발자국을 제거시키고 위로해 드릴 수 있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민족적으로 하나님을 붙들고, 우리 아버지의 나라를 위하여, 우리 아버지께서 임재하실 길을 닦기 위하여, 우리 아버지께서 계실 집을 짓기 위하여, 우리 아버지께서 행차하실 국토를 단장하기 위하여 굶주리며 움직인다면 그 영광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굶주리고 목마른 그 사정을 가지고 아버지의 터전을 개척하여야 합니다. 우리가 이루 말할 수 없는 처량한 나그네의 모습일지라도 그 나그네 이상 고통의 길을 걸어 아들딸을 찾아 오시는 아버지를 염려하며, 자기 일신의 처지를 잊어버리고 아버지를 위안하기 위하여 수고하는 무리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썩어 들어가는 사망세계를 바라보시고 고통스러워하시는 하나님의 심정을 위로해 드리고 그 하나님의 아픔과 고통을 덜어드릴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다 할진대는 절대로 망하지 않습니다.

통일 신도 여러분! 여기서 말하는 사람은 어느 한 교파를 주장하고 싶지 않습니다. 교파의 간판이 문제가 아닙니다. 잘 생기고 못 생긴 것이 문제가 아니요, 알고 모르는 유식과 무식이 문제가 아닙니다. 문제는 단 하나, 우리가 하나님 앞에 드릴 예물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 예물을 준비하기 위해 하나님 아버지의 굶주린 사정을 알고 눈물을 흘리며 굶주리는 자리에서도 하나님께 빵 한 조각을 대접할 줄 아는 여러분이 되고, 목마른 자리에서 마시고 싶은 한 모금의 물을 하나님께 대접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고, 나그네로서 한 벌밖에 없는 옷이라도 팔아서 하나님께 드릴 수 있고, 병석에서도 하나님의 고통을 대신하기 위해 허덕일 줄 아는 여러분이 되고, 갇히어 부자유스러운 환경에서도 하나님을 대신하여 고통받으려 하는 여러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이 민족을 찾아오실 것이로되 그 가운데서도 어떤 자를 찾아오시느뇨? 굶주린 자를 찾아오십니다. 먹고 춤추는 호화찬란한 자리에 있는 자의 아버지로 찾아오시는 것이 아니라 굶주린 자의 아버지로 찾아오십니다. 그러니 우리는 굶주리는 자가 되어야겠습니다. 목마른 자를 찾아오십니다. 이는 당신께서 그런 역사노정을 거쳐 오셨기 때문입니다. 나그네를 찾아오십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나그네의 자리를 거쳐 나가야 합니다. 갇힌 자를 찾아오십니다. 병든 자를 찾아오십니다. 그러한 곳에 하나님의 심정이 머무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본심, 천정, 천심을 중심으로 인류애를 갖고 허덕이는 아버지이십니다.

나는 이 민족이 그러기를 원하고, 우리 교단이 그러기를 원하고, 우리 교인이 그러기를 원합니다. 한편으로 보면 잔인한 스승이요, 잔인한 책임자일는지 모르지만, 천적인 원칙으로 볼 때 여러분을 그러한 자리로 내몰아야 할 입장이기에, 이 책임을 못하면 인류 모두에게 화가 돌아오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11-36
하나님의 일선에 서서 승전병이 되라
이렇게 내모는 목적은 무엇이뇨? 나 하나 잘 살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천국 건설을 위한 노정에 있어서, 하나님의 일선 도상에서 승리의 정병으로서 개선가를 부르고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려드리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안 가면 하나님이 친히 가셔야 하기에 가라고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자기의 생명이 아깝다고 이 길을 돌아서는 자가 있다 할진대, 그는 순교하여 천상에 가 있는 수천만 하늘 식구들의 원수가 될 것입니다. 그들이 분풀이를 한다면 원수를 대하여 하는 것이 아니라 여기에서 내모는 자를 대하여 분풀이를 할 것입니다. 그러니 아니 갈래야 아니 갈 수 없는 길입니다. `나는 하늘의 제물로서 하나님 아버지의 품에 안겨서 하나님과 더불어 붉은 피를 뿌리고, 하나님의 일선에 선 정병으로서 동지들의 손을 붙들고 팔을 붙들고 몸을 붙안고 눈물을 짓고, 피를 보고 눈물지으면서 죽음의 자리라도 가겠다’고 결심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 할진대, 그는 세계를 지배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자신의 아버지로 모시고 하늘 앞에 충심을 다하는 사람이 있다 할진대, 그는 새로운 역사의 첫 페이지에 기록될 수 있는 사도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붉은 피는 우리도 모른 가운데 자나 깨나 갈 길을 재촉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가야 할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는 존재요, 어차피 한번은 생사의 문제를 해결지어야 할 존재입니다. 그러니 어디로 갈 것인가를 결정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백마고지의 치열한 전투가 높이 평가된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것은 역사에 기록되어 길이길이 남아질 것입니다. 지금은 천국 건설을 위해 백마고지에서 쓰러졌던 장병들과 같은 제물이 필요한 때입니다. 여러분! 어차피 죽어 한줌의 흙이 되어야 할 몸이요, 공동묘지의 몇 평을 채워야 할 몸뚱이입니다.

역사의 한을 몸에 지니고 있는 여러분들이 남아진 최후의 역사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역사를 펼쳐야 하겠습니다. 하늘이 길이길이 품고 간직해 온 천적인 투쟁역사의 위업을 우리가 상속받아 이제까지 아흔 아홉 번의 싸움에서 실패했다 할지라도 한번 남은 이 싸움에서 승리를 거두어야 하겠습니다. 지금까지의 패배의 원한을 씻어 버리고, 역사적인 승리를 자랑하는 사탄을 때려잡아 항복을 받아서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려드려야 하겠습니다. 그러한 여러분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똑똑히 알아야 됩니다.

여러분이 대하고 있는 환경이 싸움터입니다. 여러분이 먹는 밥 한술도, 내가 입는 옷 한 벌도, 여러분이 보고 있는 천하 만상 모든 것도 싸움의 조건에 걸려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여러분의 손길을 통해 싸움의 탄식으로부터 해원받을 한 날을 고대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부디 하나님의 일선 정병으로서의 위신을 세우고 승전병이 되어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여러분이 되어 주시기를 부탁합니다.

11-37
기 도
아버님! 가라 하신 곳을 찾아왔습니다. 오다 보니 최후의 싸움이 남아 있는 것을 알게 되었사옵니다. 약속의 땅, 가나안 복지를 기쁨으로 바라보며 나아가던 이스라엘 민족 앞에 요단강이 가로놓였듯이 저희 앞길에도 최후의 싸움이 남아 있다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때를 맞이하여 한 지역을 향해 가라하는 명령을 받고 소망의 터전을 향하던 그 무리 앞에 요단강을 건너기 위한 3일 투쟁노정이 있었던 것을 알았사옵니다.

오늘날까지 면면히 내려온 처참한 역사의 핏줄기가 오늘 저희들에게서 승리의 것으로 거두어져야 할 것을 아옵니다. 예수가 겟세마네 동산에서 흘린 눈물이 거두어져 새로운 겟세마네 동산이 되고, 예수가 골고다에서 흘린 피가 승리의 피로 거두어져 세계적인 골고다가 되어야 할 것을 저희는 알았사옵니다.

이 시간은 최후의 특명을 받아 비장한 각오를 가지고 아버지 하나님의 보좌를 향하여 엄숙히 발걸음을 내디뎌야 하는 심각한 순간임을 아옵니다. 저희의 몸과 마음이 저희 자신들의 것이 아님을 알았사옵니다. 저희들이 누구의 것이며 누구를 위하여 이 자리에 있겠사옵니까? 저희는 아버지의 것이요, 아버지를 위하여 있사옵니다. 저희의 보급지는 땅이 아닌 것을 알았사옵니다. 몸의 보급지는 사방성을 갖추고 있으나, 마음의 보급지는 곤궁과 슬픔과 비애인 것을 알았사옵니다. 이것을 뚫고 자리잡지 않으면 안될 최후의 성벽에 당도하여 최후의 돌격 명령을 기다려야 할 순간인 것을 알았사오니, 이 순간에 저희가 꽃을 피우고 쓰러지겠다는 비장한 각오와 맹세와 신념을 갖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날의 외침이 이들에게 심판의 조건이 될까봐 두렵사옵니다. 엘리아의 기도가 참소당했던 것처럼 이날의 호소가 이들의 노정에 심판의 조건이 될까봐 두렵사옵니다.

뜻을 배반하여 슬픈 역사노정에 슬픔을 더욱 가하였던 자들을 치시는 아버지를 두려워할 줄 아는 저희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살이 깍이고 뼈가 부러지는 한이 있다 할지라도 작정한 결의가 변치 않고 최후까지 남아질 수 있는 저희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불변의 중심을 위해 이 몸마음 모두 바쳐진다면 무슨 한이 있겠사옵나이까.

천지가 자리를 잡고 안식하는 터전이 아버지의 보좌인 동시에 저희의 몸과 마음이 안식할 터전임을 알았사옵니다. 아버지가 저희를 붙들지 못하고 저희가 아버지를 붙들지 못하는 곳에는 사탄이 있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이제 저희는 그 사탄을 굴복시켜야 하겠사옵니다. 아버지를 중심삼고 저희의 몸과 마음이 평화의 세계, 승리의 세계를 향하여 출발하게 하여 주시옵고, 그 세계가 이루어지는 날을 맞아 아버지의 영광을 노래할 수 있는 자녀들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하옵니다.

자나 깨나 먹으나 굶으나 하나님의 일선을 지켜야 할 정병임을 잊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굶주리고 목마르고 병든 나그네와 같은 신세라 할지라도 서로가 붙안고 눈물지으며 위로하고 나누어 줄 줄 아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이들이 하나되어 아버지를 향하여 맹세하는 무리들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나이다. 아버지의 뜻대로 이루시옵고, 권고하신 뜻이 이들에게서 결실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