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4 to 10-110: 원수를 대한 아버지의 원한

원수를 대한 아버지의 원한
1960.07.17 (일), 한국 전본부교회

10-84
원수를 대한 아버지의 원한
마태복음 23:1-12, 23:29-39

[기 도]

지금 이때와 예수가 살던 시기 사이에는 많은 시간적인 간격이 있으나, 지금 읽은 말씀을 통하여 초조하고 비장한 심정으로 나섰던 예수의 성상을 저희들이 다시 한번 회상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4천년 동안 수고하여 이끌어 오신 이스라엘의 종말을 바라보면서 그 민족을 대하여 치하의 말을 하지 못하고 탄식의 말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예수 그리스도의 심정이 얼마나 안타깝고 한스럽고 슬펐으며 얼마나 고통스러웠겠나이까?

아버지, 사망선상에서 몸부림치고 있는 수많은 백성들을 바라보는 예수의 심중에는, 권고하여도 듣지 아니하고 깨우쳐 주어도 깨우칠 줄 모르는 무지한 무리들을 대하게 될 때, 하늘의 안타까움이 그 일신(一身)에 사무쳤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 안타까움이 사무치면 사무칠수록 땅을 대해 원망하고 싶은 마음도 아울러 높아간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사옵니다. 그러나 이것을 억누르고 참으신 그리스도의 심정을 아는 사람은 땅위에 아무도 없었습니다.

외로운 노정을 개척하기 위해 수고하시던 그리스도의 성상을 형같이, 아버지같이 모시면서, 그와 한마음이 되어, 그가 눈물짓는 자리에 있으면 같이 눈물짓고, 굶주리는 자리에 있으면 같이 굶고, 헐벗는 자리에 있으면 같이 헐벗고, 매맞는 자리에 있으면 같이 매맞고, 몰리는 자리에 있으면 같이 몰리는 자리에 서지 못한 것이 역사적인 한이었음을 저희들은 알았사옵니다.

심정의 세계는 역사적인 거리를 초월한다는 사실을 저희들은 알았습니다. 그러기에 저희들, 이제 심정의 바탕을 찾아 들어가 그리스도의 성상을 붙안고, 그의 사정을 통할 수 있는 심정의 친구가 되어 예수 대신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할 줄 알고 예수 대신 갈보리 산상을 향하여 달려갈 줄 아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런 아들딸이라 할진대, 그는 그리스도의 친구요, 역사를 넘어 하늘의 아들을 모신 자라는 것을 저희들이 체휼하게 하여 주시옵기를,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여기에 모인 당신의 아들딸들을 굽어살피시옵소서. 저희들은 가진 것이 없사옵니다. 땅에서 의지할 만한 그 무엇도 갖고 있지 않사옵니다. 이 민족도 그렇지만 저희들은 더욱 그렇습니다. 자랑할 것이 있다 할진대 주를 위하여, 하늘을 위하여 욕먹고 매맞고 상처입은 남루한 모습밖에 없사옵니다.

이런 저희들을 붙들고 이런 저희들의 편을 들고자 하시는 당신임을 생각할 때 원통하옵니다. 땅 위에는 잘난 사람도 많고 잘난 민족도 많사온데 이처럼 못난 저희들을 붙들고 사정하셔야 하는 당신의 사정을 통분히 여기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예수는 이 땅 위에 와서 수없이 눈물을 흘렸사오나 그 누구도 그것을 몰랐사옵고, 피눈물나는 애통(哀痛)의 심정을 갖고 천성을 대하여 호소하였사오나 그것을 아는 자도 없었사옵니다. 아버님, 오늘날 통일의 신도들을 불쌍한 자리로 몰아 연단시켜 주신 것을 감사드리옵니다. 굶주림 가운데에서 단결시켜 주신 것을 감사드리옵나이다. 아버지, 헐벗으면서도 뜻을 염려하고 매를 맞으면서도 당신을 염려하는 아들딸이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이것이 아버지의 소원이요, 이런 모습을 세워 이 민족 앞에 자랑하시려는 것이 아버지의 뜻인 것을 아옵니다. 이제 그런 모습을 찾아 세우기 위한 사명을 할 때가 왔사오니, 이 사명 앞에 저희들이 비굴하지 않게 하여 주시옵고, 이 사명 앞에 주저하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에게 있는 모든 정열과 성심을 다하여 당신 앞에 실적을 남기고 당신의 심정에 기억될 수 있는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제 여기에 나섰사온데 무슨 말씀을 하오리까? 아버지, 원컨대 이 시간 남한 각지에서 무릎을 꿇고 있는 외로운 당신의 아들딸들을 굽어살펴 주시옵고, 피살이 움직이는 심정을 갖고 아버지 앞에 부복하는 곳곳마다 생명의 인연을 두텁게 하여 주시옵소서.

외로운 자의 뒤를 따르는 자도 외로운 자이옵고, 몰리는 자의 뒤를 따르는 자도 몰리는 자이옵니다. 그러나 이것이 하늘을 위한 것이라 할진대, 하늘은 언제나 그들의 편이 되어 주실 것을 믿사오니, 그들이 외로울 때 붙들어 주시옵고, 염려하고 위로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오늘, 하늘을 향하여 엎드린 당신의 외로운 아들딸들의 무릎 무릎을 강하게 하여 주시옵고, 하늘 앞에 머리 숙여 감사의 눈물을 흘리며 맹세하는 무리들이 되게 인도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지, 이 시간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은 많은 것을 배웠사옵니다. 지나칠 만큼 많이 배웠사옵니다. 천적인 사명을 배우되 인간적인 지식으로 배웠사옵니다. 이제 저희들이 하나님의 심정을 간직하게 하여 주시옵고 천적인 사정을 감득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아버지 이 시간 친히 같이하여 주시고, 전하는 자의 마음이나 받는 자의 마음이 하나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억만 사탄들은 이 시간도 저희들을 노리고 있다는 실감이 골수에 사무치게 하여 주시옵소서. 원수의 장벽을 헤치고 생명의 길을 찾아 전부가 웃으며 아버지의 품에 안길 수 있는 은사를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남겨진 전부를 아버지의 뜻 앞에 드리오니 받아 주시옵소서. 간절히 부탁하올 때, 주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10-86
말 씀
잠깐 드리려 하는 말씀의 제목은 `원수를 대한 아버지의 원한’입니다. `원수를 대한 아버지의 원한’이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10-87
나를 중심한 선과 악의 싸움
우리는 모두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이 선한 땅이 못 되어 있고 땅 위에 사는 인류도 선한 인류가 못 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 세상이 악한 세상임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이 선을 소망하고 오늘의 부족함을 염려하면서 내일의 완전한 모습을 그리워하는 것은 여러분이 생활을 통해 잘 아는 사실입니다.

오늘날 땅 위에 살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에는 좀 나은 사람이 있는 반면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고, 좀더 충성하고자 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그 충성의 길을 막고자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세상이 그런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들 자신도 좀더 잘 될 수 있는 길을 가고자 할 때, 선한 그 무엇을 세워 나가고자 할 때 이를 방해하는 요소가 앞을 가로막는 것을 여러분은 여러 번 느꼈을 것입니다.

내가 선한 사람이라고 만우주 앞에 자처할 수 없는 것을 느끼면 느낄수록 자기가 처한 환경을 악한 환경이라고 원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자신이 이렇게 악한 세상에 살고 있으니 그러한 환경에 휩쓸려 악한 입장에 서게 되었다고 일시적인 변명을 하며 살고 있는 현실입니다.

그러면 어찌하여 이렇게 되었느뇨? 자신이 선한 사람이 못 되고 선과 반대인 악한 사람이 된 것이 환경 때문이라고 한탄하는 원인은 어디에 있느뇨? 그렇게 된 원인은 어디에 있느뇨? 그 원인을 추궁해 보면 타락의 보응(報應)에서 온 사실임을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선이니 악이니 하는 명사가 남아진 것도 타락 때문입니다.

세상사람을 놓고 볼 때 선한 편 사람과 악한 편 사람, 또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나 개인을 놓고 볼 때도, 어느 한편에서 나를 끌어가려고 하는가 하면 또 다른 편에서 나를 끌어가려고 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사람이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이 있는 것처럼, 신(神)이 있다 할진대 그 신도 선한 신과 악한 신이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들 자신을 미루어 보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내 마음은 선을 향하여 가고자 하는데 환경에 이끌려 악한 길로 가게 되는 원인은 어디에 있느뇨? 내가 동기적인 주체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할진대, 여기에는 필시 나 이상의 원인과 동기가 되는 어떤 힘이 작용한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봄이 오면 봄의 기운이 모든 산천을 뒤덮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나 자신이 환경으로 인한 감정에 얽매이거나 환경으로 인한 죄 가운데 얽매이는 그 모든 것은 내가 직접적인 동기가 되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어떤 동기적인 힘 밑에서 간접적인 동기가 되어 움직이는 것입니다.

선을 찾다 보면 결국 절대자를 세우지 않을 수 없고, 악을 규명하다 보면 절대자와 반대되는 신과 만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개체에게는 중요한 책임이 있습니다. 내가 잘하면 선하게 되고, 못하면 악하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잘하면 절대자를 기쁘게 하는 것이고, 못하면 악한 원수를 기쁘게 하는 것이 됩니다. 이러한 기로에 선 인간이기에 아무리 미미한 생명이라고 생각되는 인간일지라도 그는 천적인 싸움과 역사적인 싸움을 하며 살고 있는 것입니다.

사상이나 이념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향해 움직여 나온 것이 지금까지의 인류역사입니다. 역사의 방향을 이상세계로 전향(轉向)시키기 위해 전개되어 나온 것이 문화사(文化史)의 변천과정입니다. 이것을 볼 때 인간이 주체가 아니라 인간은 제 2원인의 입장에서, 제 1원인의 대상으로서 행동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기독교에서는 인간이 타락하여 죄악된 세상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이러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10-88
악에게 점령당한 인간과 섭리역사
선의 이념을 세워 나오는 절대자, 즉 하나님이 존재한다 할진대 그 하나님 앞에 반대되는 것들이 있으니 그것이 죄요, 마귀요, 사탄입니다. 그것은 인간의 원수인 동시에 하나님의 원수라고 규정짓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있다는 것을 주장하기 전에 우리의 주변에 누가 있는가를 먼저 알아야겠습니다. 우리의 주변에는 하나님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원수인 악한 신들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만 되겠습니다.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창조주 하나님은 인간을 원수의 품에 넘겨주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인간을 위해 지어진 모든 피조물도 악한원수 사탄에게로 넘어간 것입니다. 본래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의 주인이요, 우리의 몸의 주인이요, 우리의 생활의 주인이시지만 우리 인간이 어찌어찌한 곡절로 인하여 하나님을 배반하고 하나님의 뜻과는 반대되는 입장에서 허덕이게 되었던 것입니다. 누구로 말미암아 이렇게 되었느냐? 하나님의 원수인 악신(惡神)으로 말미암아 이렇게 되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인간에게는 몸이 있고 마음이 있습니다. 더 나아가 심정이 있습니다. 심정과 마음과 몸을 갖추어 세계를 대해 나가는 데 있어서는 사정에 엉클어진 생활무대를 떠나서 할 수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느끼고 보고 만지고 먹고 살고 있는 이 세상은 누가 점령하고 있느냐? 하나님이 주관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원수 사탄이 점령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원수 사탄이 주관하는 세상을 돌이켜 본연의 상태로 회복하려고 하십니다. 이것이 구원섭리입니다. 회복하는 데는 어떻게 해야할 것이뇨? 원수를 항복시키지 않고는 회복할 수 없습니다. 장차 천상(天上)과 지상(地上)에 큰 싸움이 벌어지게 되는데, 그 싸움은 하나님이 원수, 즉 마귀 사탄을 굴복시키기 위해 벌이는 싸움입니다. 이것이 제일 큰 싸움이라는 것입니다.

역사노정에서 인간들은 부분 부분, 즉 지역이면 지역, 종족이면 종족끼리 싸움을 해 나왔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싸움을 해결하기 위하여 인간들을 선한 편으로 끌어 왔습니다. 악한 편으로 끌려가면 또 끌어 오면서 개인에서부터 세계까지 끌고 나오는 것입니다. 어떤 때는 악한 편이 이긴 것 같지만 결국은 선한 편으로 역사를 끌고 나오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대원수를 알아야 되겠습니다. 어떤 원수가 대원수인가? 이를 갈면서 보복하겠다고 하는 개인의 원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원수중의 대원수가 누구뇨? 하나님의 창조 위업을 이루려 했던 이 세계를 파탄시킨 사탄, 마귀, 악신이 바로 우리의 대원수입니다. 그는 온 피조세계의 원수인 동시에 우리 전인류의 원수인 것입니다. 이 원수를 갚기 위한 노정(路程)에서 인간들은 그 싸움의 재료로 사용되어 나오고 있는것입니다.

싸움은 이미 벌어졌습니다. 여러분이 편안히 잠을 자는 밤에도 선의 하나님께서는 원수를 격퇴하기 위한 싸움을 하고 계십니다. 밤이나 낮이나 이 싸움을 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원수를 갚아야 합니다. 이런 대원수가 우리 앞에서 생명을 노리고 이념을 파탄시키고 역사적인 행로를 더럽히면서 우리를 악의 함정으로 몰아넣으려는 움직임이 지상에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사건이 생기면 그 사건을 중심삼고 오른편이 생기고 왼편이 생기는 것입니다. 좌익이 있는가 하면 우익이 있습니다. 전후가 있고 상하가 있습니다.

사탄이 점령하고 있는 지역은 하늘땅 전체입니다. 이 땅은 사탄이 점령한 지역, 원수가 점령한 지역이라는 것입니다. 본래 인간은 원수에게 점령당해 살도록 되어 있지 않았지만 주인의 가르침을 어김으로 말미암아, 주인의 명령을 어기고 죽는다는 그 길로 감으로 말미암아 원수의 포로가 되었습니다. 포로가 되었어요. 그러한 종족으로 번식되어 내려온 것이 오늘날의 인류입니다. 천지에 대원수가 있나니 그는 역사적인 원수요, 이 시대적인 원수입니다. 또 미래에도 원수가 될 수 있습니다. 그는 인류의 원수인 동시에 만물의 원수요, 하나님의 원수입니다.

10-90
선과 악의 작전본부가 되는 인간의 몸과 마음
역사적인 전쟁, 혹은 천주적인 투쟁시기가 온다 할진대, 그 때에 선두에 서서 사탄을 박멸시킬 수 있고 굴복시킬 수 있는 의(義)의 정병(精兵)이 있다면 그는 필시 하늘의 아들딸임에 틀림없을 것입니다.

종교니 선이니 하는 것들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편안히 잘사는 것이 아닙니다. 남이 부러워할 정도로 땅에서 잘사는 것이 아니라, 나를 넘어서 내 후손까지 침범하여 유린하는 원수 사탄을 격멸시켜 지구상(地球上)에서 몰아내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인간의 목적이요, 하나님의 목적이요, 온 피조세계의 목적입니다. 또한 그것은 이제까지 싸워온 목적인 것입니다.

여러분의 몸은 여러분의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먹는 밥도 여러분의 것이 아닙니다. 밥을 먹고서 움직이는 여러분의 몸뚱이도 여러분의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것이 아니예요. 그러면 누구의 것이뇨? 마귀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인간을 지배하고 있는 이 마귀를 박멸시키기 위한 기지로 세워 놓은 것이 무엇이냐 하면 양심입니다. 양심은 시간성을 넘어서 여러분과 투쟁하고 있습니다. 이 사회와 투쟁하고 있습니다. 과거의 역사노정에서도 투쟁해 나왔고, 오늘 이 시대에도 투쟁하고 있으며, 내일의 역사노정에서도 투쟁해야 할 일선의 장병이 바로 여러분의 양심입니다.

내 한 개체에는 하늘의 작전본부도 있고 사탄의 작전본부도 있습니다. 우리의 양심을 근거로 하는 것이 하늘이요, 우리의 몸을 근거로 하고 있는 것이 사탄입니다. 이 양심과 몸이 싸우고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아우성치고 싸우며, 쓰러졌다 일어서고, 맹세했다 또 꺾어지고, 결심했다 또 무력해지는 생활을 반복해 나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몸을 쳐서 일어서지 못하게 할 수 있는 양심의 권한을 회복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최고의 목적입니다.

종교적인 술어로 말한다면 우리의 마음은 천국에 연하여 있고 우리의 몸은 지옥에 연하여 있다고 하겠습니다. 마음을 다스리는 신은 하나님이요, 몸을 다스리는 신은 마귀라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되었는가? 여러분, 하나의 곤충을 보아도 상대적인 관계로 대할 때는 상충이 없습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되었느냐? 하나님이 잘못 지으셔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원래는 인간의 몸과 마음이 상대적으로 무한히 주고받고, 주고받고, 또 주고받을 수 있게 지으셨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주려 해도 받지 않고 서로 싸우기만 하는 것은 타락의 보응입니다.

이 싸움을 누가 정비해야 되느냐?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느냐? 하늘과 인간이 합동작전을 해서 정비하지 않는 한 신앙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습니다. 이념이니 이상이니 해도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오늘날 인간들은 `양심적으로 살자’, `선을 지향하자’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이 땅이 사탄의 점령권내에 있기 때문에 수많은 민족으로 갈라졌습니다. 민족과 민족간의 풍습이 다르고 전통이 다릅니다. 이 사회는 사탄이 주관하고 있고 사탄을 중심삼고 전통과 풍습이 뿌리박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 사탄들을 박멸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10-92
인간의 양심과 하나님의 섭리
그러기 위해서 하늘의 시대 시대마다 인간이 새로운 양심의 충격을 받도록 역사하시면서 그들의 마음과 이념을 개척하시고 혁명을 통하여 사탄의 세력을 깨뜨려 나오셨습니다. 그러니 지금까지 얼마나 수고하셨겠습니까? 우리가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는 역사노정에서 하나님은 싸워 나오신 것입니다.

인간이 이 땅 위에서 아무리 선을 위해 외친다 해도 100년 이상을 계속할수 없지만 하나님은 선의 세계를 이룰 때까지 원수를 대해 싸움을 계속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지금까지 원수 앞에 하늘편의 정병을 내세워 행진 명령, 출동 명령을 해보신 적이 없습니다. 지금까지의 역사노정에서 하나님은 새로운 이념을 세워 인간들의 마음을 움직이시면서 악한 세상을 정복할 수 있는 정병을 모으셨습니다. 이것이 지금까지의 역사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원수를 갚아 줄 수 있는 군대가 있어야 할 텐데 아직까지 그런 군대가 없습니다. 선한 정병이 모아진다면 그 선한 정병과 합동작전을 펴서 원수인 마귀 사탄을 사로잡아 무저갱(無低坑)에 가두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이 목적이 이루어져야 이 땅에 평화가 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좀더 차원 높게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보통 사람들은 일상 생활적인 감정을 통하여 자기와 대립된 자, 혹은 몇 대 선조로부터 무슨 상충이 있어서 원한이 맺힌 자를 원수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원수가 있습니다. 그러니 이 원수를 갚기 전에는 어떤 원수도 갚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 개인적인 원수는 문제가 아닙니다. 개인적인 원수를 갚다가는 선한 사람이 희생을 당합니다. 그러니 참으라는 것입니다.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랑을 강조하고 원수를 위해 기도하라고 하면서도 왜 끝날에 심판한다는 명제(命題)를 세웠느냐? 그것은 원수 사탄을 위해 기도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사람을 위해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인간을 타락시킨 장본인인 사탄을 위해 기도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 원수에게 농락당하고 억울함을 당하는 인간을 위해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무엇 때문에 심판이라는 명사를 세웠겠습니까?

하나님은 공의(公義)의 심판주이십니다. 전세계에 있는 하늘편의 선한 정병들은 하나로 뭉쳐 하나님의 출동 명령에 따라 이 악한 세상을 들이치고 사탄을 사로잡아야 됩니다. 그때까지 각자가 준비를 해야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날을 맞기 위해 6천년이란 역사를 끌고 나오셨으나, 아직까지 그 한 날을 맞지 못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10-93
본래의 양심기준을 가졌다면
인간이란 마음과 몸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을 분석해 볼 때 우리의 마음이 절대적으로 하늘편에 서 있느냐? 아닙니다. 우리의 마음은 어떤 사상적인 혹은 이념적인 환경에 좌우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먼저 침범을 당한 곳이 어디냐? 먼저 침범을 당한 곳은 몸이 아니라 마음입니다. 내 마음에서 지금까지 작용하고 있는 양심의 기준은 아담 해와가 타락하기 전의 기준입니다. 본래의 선한 사람, 완성한 사람이 지녀야 할 양심기준이 아닙니다. 이것이 옳은지 저것이 옳은지 완전하게 판결을 지을 수 없는 양심기준이라는 것입니다. 타락하기 전 미완성한 아담 해와의 양심기준이 오늘날 세계 인류의 양심과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어 있어요.

만일 타락하지 않았다면 이 양심기준이 어디까지 올라갔겠느냐? 하나님에 대한 해명이 필요없는 기준까지 올라갔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주인이라는 것을 자동적으로 느끼는 기준까지 올라갔을 거예요. 그러한 양심기준이 완결되었다면 그 양심이라는 씨에서 태어나야 할 것이 무엇이뇨? 그것은 심정입니다. 사랑이란 말입니다. 인간이 그러한 기준을 갖추었다면,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만우주를 지배한다는 것입니다.

사랑은 시간성을 초월합니다. 공간성을 초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양심작용도 심정을 따라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어떤 일이 벌어졌느냐? 본래 하나님이 세우신 양심의 기준, 즉 타락하지 않고 완성한 아담 해와의 양심기준을 갖출 수 없게 되었습니다. 타락하지 않고 완성한 아담 해와의 심정을 인간이 갖추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의 창조계획대로 아담 해와가 완성하여 완성한 심정을 갖추었다면 하나님을 몰랐겠습니까? 알고도 남는다는 것입니다. 천사가 누구이며 만물이 무엇인가를 안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으로서, 심정에 있어서나 마음에 있어서나 몸에 있어서 어떠한 미비함도 없이 하나님의 절대적인 사랑의 심정과 연결되어 그 절대자를 대신하기에 부족함이 없도록 지어졌던 것입니다. 그런데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인간의 마음기준은 타락한 아담, 타락한 해와의 마음 기준에서 출발된 것입니다. 그러기에 여러분의 마음으로는 하나님이 있는지 없는지 모릅니다. 아담 해와도 하나님이 나타나서 따먹지 말라고 명령하니 그대로 믿었다가 하나님이 나타나지 않으니까 자기들 마음대로 행동하여 타락한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몸을 굴복시키지 못하는 원인은 어디에 있느뇨? 마음기준이 사탄에게 깔려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오늘날 땅 위에 살고 있는 인간들의 마음이 몸의 지배를 받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본성적으로 남아진 양심기준이 하늘을 향하여, 천륜을 향하여 움직이는 방향성을 잃지 않기 때문에 이것을 뚫고 나온다는 것입니다. 과거를 뉘우치는 순간 폭발합니다. `아이고 이래서는 안 되겠다’고 할 때 폭발된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틈만 나면 폭발되어 나오고자 하는 마음의 작용을 여러분은 지금까지 생애노정에 혹은 시간 시간 생활과정에서 무수히 유린했습니다. 그러기에 사탄의 종, 사탄의 아들딸이란 말입니다.

만일 이 땅 위에 하나님의 뜻이 완전히 이루어진다면, 우리의 양심을 하나님의 창조이념으로 꽉 채우는 날에는 이 몸 같은 건 문제가 안 됩니다. 몸뚱이가 문제가 아니란 말입니다. 그런데 이 양심기준이 하나님이 세워 놓으신 기준만큼 차지 않았을 때 타락하여 사탄에게 깔려 버렸기 때문에 오늘날 인간들은 그 원칙의 기준까지 올라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10-95
본연의 양심 기준을 세우는 날에는
사탄은 사망의 장벽을 세워 놓고 있습니다. 그 밑에 깔려 있는 것이 우리의 몸입니다. 하나님 앞에 원수가 된 사탄은 본래 천사장입니다. 하나님이 주체이면 천사장은 영적(靈的)인 대상(對象)입니다. 마음은 하늘을 상징하고 몸은 그 대상(對象)을 상징하기 때문에 사탄은 인간의 몸을 발판으로 활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느 종교든지 몸을 치는 것입니다. 어떠한 국가나 어떠한 주의를 정복하는 것이 종교의 목적이 아니라 몸을 정복하는 것이 종교의 목적입니다. 그리하여 본연의 양심기준에 들어가려 하는 것입니다. 몸이 요구하는 모든 조건을 무시해 버리고 마음문을 열고 아담 해와가 타락하지 않고 올라가야 했던 양심기준에 들어서게 될 때에 비로소 거기에서 평화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사명은 무엇이뇨? 예수는 말하였습니다, 천국은 네 마음에 있다고. 사탄을 굴복시켜 안식처를 만들지 못하면 지옥입니다. 천국 가겠다고요? 그런 망상(妄想)은 버리십시오. 알고 보니 믿었다는 조건만 가지고는 천국 갈 수 없습니다. 신앙의 힘을 갖고 하늘과 대적(對敵)하고 있는 사탄, 즉 이 몸을 때려잡은 승리자가 되어 있는가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것만 통과하면 지옥은 안 갑니다. 절대 안 갑니다. 오늘날 인간들이 수양이니 도덕이니 하지만 그것 가지고는 그 기준에 미치지 못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인간들이 손을 들고 항복할 수 있겠습니까? 항복할 수 없습니다. 왜?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계신다면 어떻게든 이 길을 뚫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타락인간은 세상에 대한 욕심밖에 없습니다. 땅만 주관(主管)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본래 인간은 땅만 주관하게 지어지지 않았습니다. 영계(靈界)까지 주관하게 지어졌습니다. 그런데 인간들은 이것을 모르고 있다는 말입니다. 인간을 주관할 하늘은 있으되 하늘의 명령을 통하여 직접적으로 주관할 수 있는 다리가 없습니다. 인류의 시조(始祖)가 그것을 끊어 놓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후손 중에도 그것을 연결시킨 사람이 한 사람도 없습니다. 본부에는 작전참모부가 있어서 모든 계획을 하고 있지만 그 계획을 연락해 줄 전화줄이 끊어진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을 알아야합니다.

이것을 이어 놓는 날에는 양심의 빈 자리를 채울 수 있는 힘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생명력이 흘러들어온다는 것입니다. 즉, 타락하지 않고 완성한 본연의 양심기준을 세우는 날에는 몸은 문제없다는 것입니다. 몸뚱이 정복은 문제없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런 마음기준을 세워 놓고 하나님이 모른다고 하실 수 없는 심정의 인연을 가져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과 인간을 부자(父子)로 인연맺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버지요, 인간은 아들이라는 인연을 맺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오늘날 인간 가운데 그런 인연을 맺은 사람이 있습니까? 한 사람도 없습니다.

여러분이 지금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감정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면서 느끼는 모든 감정은 양심의 완성기준에서 하나님의 심정과 연락되어 나온 것이 아닙니다. 아니란 말입니다. 아니예요. 그러면 어디서 나온 것이냐? 악신(惡神)에게서 나온 것입니다. 악신이 우리의 마음을 점령하고 있는 것입니다. 악신의 핏줄이 우리의 마음과 우리 몸의 세포에까지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원수가 하늘에 있는 줄 알지만 여러분의 피와 살이 원수 사탄의 요소입니다. 피와 살이 원수입니다. 원수의 피가 몸에 들어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생각할 때 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껴야 되겠습니다. 이 고깃덩이에, 이 세포에 대원수의 피가 흐르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피와 살에 원수의 뿌리가 연하여 있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이러한 사실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인간들은 이런 고깃덩이를 잘 보양(補養)하고 있는것입니다.

이런 내용이 있기 때문에 종교는 이 원수를 때려잡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는 원수는 네 집안에 있다고 하였습니다. 사람의 몸을 성전(聖殿)이라고 하였지요? 이 몸은 성전이니 곧 집입니다. 집안에 원수가 있다고 했으니 몸이 곧 원수가 되지요. 그러니 이 몸을 정복하지 못하면 하나님의 창조이념을 완수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방법으로 원수를 정복해야 될 것인고?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어떤 원수가 있다면 그가 어떻게 해서 원수가 되었는지 그 사정을 모르고서는 그를 정복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알아야 됩니다. 아담 해와에서부터 어떻게 해서 몸이 원수가 되었고, 원수 사탄이 우리의 선조들을 어떻게 농락했으며, 또 예수를 어떻게 했고, 나를 어떻게 하고 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역사적인 원수를 알아야 합니다. 역사적인 원수로서 행동한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또한 이 시대의 원수가 나를 침범하여 나를 농락하고 있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내 생명을 미래에까지 영원토록 종으로 만들고자 하는 원수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원수들의 세계가 지옥입니다. 이놈의 원수를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원수를 모르고서는 원수를 굴복시킬 수 없습니다. 또한 원수를 갚으려면, 먼저 천상(天上)과 지상(地上)에 뿌리박고 있는 원수에 대한 하나님의 원한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원수를 대한 하나님의 원한이 누구 때문에 생긴 것이냐? 땅 위에 있는 인간들 때문입니다. 땅 위에 살고 있는 이 무리들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10-97
인간이 최후의 안식처로 삼을 곳
인간은 본래 어떤 무리였느뇨? 하나님의 품에서 애지중지 사랑을 받던 무리였습니다. 하나님의 피를 받은 하나님의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요, 세포 중의 세포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던 인간이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칙을 세워 놓고 만우주를 창조하셨기 때문에 그 기준을 무시하는 날에는 온 피조물이 다 깨지는 것입니다. 이것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인간들은 그러한 기준을 중심삼고 서로 좋아하며 살아야 했는데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그 기준을 놓쳐 버리고 오른손엔 하나님을 붙들고 왼손엔 이 땅을 붙들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인간을 끌어다 접붙이려는 놀음을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구원섭리입니다.

타락이 무엇이뇨? 하나님과 심정적인 인연을 배반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양심의 기준을 완성하지 못하고 배반한 것이 타락입니다. 하나님의 이념을 세우지 못하고 배반한 것이 타락이라는 말입니다. 초점은 하나님의 심정기준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늘은 인간을 찾아오십니다. 찾아오실 때에는 `너희들의 몸뚱이를 사랑하라. 어떠한 학문이나 지식을 사랑하라’고 하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찾아 나서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찾아 나서라’고 하셨어요. 이것이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도의 길을 세워 나오시는 기준입니다.

이러한 곡절을 모르고, 사탄이 어떻게 하나님 앞에 원수가 되었는지, 우리 선조가 어떤 죄를 지어 하나님으로부터 쫓겨났는지를 모르고 어떻게 원수를 정복할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원수에 대한 한을 풀 수 있겠습니까? 맺혔으면 풀어야 합니다. 맺힌 것을 풀려면 반대방향으로 뚫고 나가야 합니다. 원수들이 못 나가게 하더라도 뚫고 나가야 합니다. 원수의 장벽을 뚫고 나가기 위한 것이 지금까지의 인류역사입니다.

인간들은 앞으로 세계가 하나의 세계가 되어야 한다는 것은 알고 그 길을 찾아 나가고 있으되, 양심과 심정이 통일되어야 한다는 것은 모르고 있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연결시켜야 되겠느냐? 역사적인 사조(思潮)를 볼때, 인간들은 하나의 세계를 향하여 나오되 하나님이 원하시는 본연의 양심과 그 양심에 불어넣고자 하시는 본연의 심정을 모른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외적으로, 환경적으로, 상징적으로 수습해 나오는 것이 사상이요, 주의입니다. 사상이나 주의는 양심적인 감흥을 일으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목적이 땅에 있다면 그것은 사탄입니다.

하늘을 통하여 인간의 양심을 폭발시켜서 환경을 혁명시키는 운동이 이 시대에 나오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 일면을 갖추고 나온 것이 오늘날의 좌익입니다. 유물사관이예요. 이것은 이 땅 위에서 어느 정도까지는 득세(得勢)하게 됩니다. 그러나 천상(天上)의 인연을 중심삼고 나오는 주의 앞에는 손들어야 됩니다.

인간이 최후의 안식처로 삼을 곳은 어떤 곳인가? 마음이 편안하다고 행복하지 않습니다. 마음 가운데 심정의 안식처를 개척해야 합니다. 좀 어려운 말이지요. 마음이 편안한 환경을 가졌고 자기 마음대로 세상을 주관할 수 있는 기준을 가졌다 할지라도 그 마음에 핵심이 없으면 안 됩니다. 그 핵심은 심정입니다. 그 심정을 채워 놓아야 그것이 만사(萬事)의 동기가 되어 조화를 이루는 것입니다.

부모가 좋은 까닭이 무엇입니까? 부모의 마음과 내 마음이 같기 때문입니다. 심정이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뗄래야 뗄 수 없는, 환경을 넘고 시대를 넘을 수 있는 내용이 있기 때문에 좋아하는 것입니다.

10-99
천당 갈 수 있는 조건
이러한 때에 처해 있는 우리들, 심정을 잃어버리고 양심의 중심을 잡지 못하고 생활의 목표를 잃어버린, 몸을 가진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 될것이뇨? 한꺼번에 다 안 됩니다. 악한 것은 떼어 버려야 합니다. 떼어 버려야 돼요. 양심이 하늘편에, 선한 세계에 제일 가깝기 때문에 양심이 문제가 되지 몸뚱이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에서는 몸을 치는 것입니다. 밥을 먹는 것이 다 뭐야! 원수의 배통을 이겨야 합니다. 몸뚱이를 편안하게 하는 것은 사탄을 안식시키는 것입니다. 이 몸뚱이에 대해 적개심을 가져야 합니다. 원수인이 몸을 대해 보복할 자신을 가진 자라야만, 그런 자신을 갖고 승리한 자라야만 하늘의 정병이 될 수 있습니다. 출발기준이 되어 있어야 합니다. 크나큰 선의 이념을 중심삼고 몸의 정욕이나 식욕 등 욕망의 일체를 자유 자재로 주관할 수 있는 사나이나 여인이 되지 않는 한 하늘이 세우실 수 없는 것입니다.

종교에서 말하는 끝날이 되면 어떠한 현상이 벌어지느뇨? 누구의 명령을 받지 않고도 세상 만사를 다 잊어버리는 자리에 들어가게 됩니다. 지금까지 아들이니 처자니 무엇이니 무엇이니 하던 모든 것이 전부가 꿈 같습니다. 이런 심정적인 혁명이 벌어지지 않는 한 천국백성이 못 됩니다. 아이고 내 사랑하는 아들딸, 아이고 내 사랑하는 남편, 아내 아이고 내 사랑하는 어머니 아버지 하는 것들이 다 어디서부터 출발한 것입니까? 사탄을 근거로 하여 인연된 것들입니다.

대심판이 무엇이뇨? 사탄세계의 무대를 쳐갈기는 것입니다. 사탄세계와의 심정의 인연을 끊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역사는 부모와 자식을 배반하게 하는 사조(思潮)로 흘러갑니다. 암만 붙들고 앉아 있어도 갈라 세운다는 것입니다. 형제와 형제가 싸우게 만들고 부부가 서로 싸우게 만듭니다. 그래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새것을 세워야 합니다. 하늘의 심정을 다시 접붙여 주려니 그런 놀음을 하는것입니다. 예수는 이 땅 위에 와서 ‘누구보다도 나를 더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과연 메시아입니다. 이런 원칙적인 관(觀)으로 볼 때, 과연 예수는 메시아입니다. 어떤 메시아? 사랑의 구주입니다, 사랑의 구주. 고마운 일입니다. 역사노정에서 이러한 부르짖음이 없었던들, 오늘날 우리들은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없을 것입니다. 고마운 일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 칭하고 세상의 부모를 버리면 하늘 부모를 주겠다는 것입니다. 하늘 부모를 주겠다는 말이예요. 여러분을 낳아 준 부모가 진짜 부모예요? 나를 지으시고 생명까지 불어넣어 주신 부모가 진짜 부모입니다. 사랑하는 육신의 부모 대신 하늘의 부모를 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세상 것과 합동적전을 해서는 안 됩니다. 세상 것은 원수입니다. 원수! 원수란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가 복음을 외치고 나설 때 `누구보다도 나를 더 사랑하라’고 하였습니다. `아비나 어미나 혹은 처자나 시어머니나 그 누구보다도 나를 더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과연 메시아입니다. 성경 66권 다 필요없습니다. 자기 자식 이상 하나님을 더 사랑하면 됩니다.

어떻게 해야 천당 갈 수 있느냐? 천당 갈 수 있는 조건은 무엇이냐? 자기 아들딸보다도 하나님을 더 사랑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남편이니 아내보다도 주님을 더 사랑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자기 몸보다도 성신을 더 사랑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삼위일체입니다.

마음은 몸의 신랑이고 심정은 마음의 신랑이며 하나님은 우리의 심정의 주인이십니다. 또 예수는 신랑입니다. 성신은 신부입니다. 그래서 마음적인 형이 예수요, 몸적인 형이 성신입니다. 천지를 대신하고 심정의 하나님을 대신하여 마음적인 형인 예수와 몸적인 형인 성신이 역사(役事)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는 마음세계를 찾아나가는 중심입니다. 신랑이예요. 우리가 마음으로 그리워하는 것이 무엇이뇨? 신랑입니다. 신랑! 우주가 생겨난 이후 처음이자 마지막인 혁명을 제시하기 위해 오셨던 분이 예수입니다.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10-101
원수를 갚으려면
이런 견지에서 볼 때 기독교인들, 끝날에 하나님 앞에 서야 할 기독교인들이 `하나님, 내 아들 아무개를 데려왔습니다. 또 누구를 데려왔습니다’라고 하는 것은 안 통합니다. 이들 모두 사탄을 근거로 하여 출발하였기 때문에 그들이 사랑하는 일체를 하나님께서 대해 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탄이 좋아하는 무대에서부터 출발했으니 원수입니다. 원수! 이것을 생각할 때는 이가 갈립니다. 오늘날, 역사의 종말까지 왔지만 아직까지 심정의 혁명을 주창하지 못했습니다. 부분적으로 해 나왔습니다. 기독교에서부터 부분적으로 해 나왔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가정도 돌보지 않고 돌아다니지 않아요? 예수에게 미쳐서 말이예요. 그래야 됩니다. 그래야 돼요.

도의 길은 독신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여자는 여자대로 독신 생활을 하고, 남자는 남자대로 독신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제일 먼저 채워야 될 것은 무엇이뇨? 마음입니다. 마음을 채워서 천정(天情)과 인연을 맺어 놓은 후에 세상을 바라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 곡절의 동기를 풀기 전에는 하나님의 원수를 갚을 수 없습니다. 원수는 영원히 남게 되는 것입니다. 똑똑히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낭설(浪說)이 아닙니다. 사실입니다, 사실. 그래서 예수는 모친인 마리아에게도 `여인이여, 너와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느뇨?’ 했던 것입니다. 세상적인 혈육의 인연을 갖고 대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의당한 말입니다. 의당한 말이예요. 하늘을 사랑해야 할 이스라엘 민족, 하늘의 뜻을 받들어야 할 유대교인들은 자기의 아들딸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한다는 인정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사탄 세상에서 가지고 놀던 찌꺼기를 하나님이 받아 주실 것 같습니까? 안 받아 줍니다. 안 받아 줘요. 원수의 손길이 닿은 것을 취하실 것 같습니까?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 몸에는 독소가 있습니다. 악의 목적을 달성하고자 하는 사탄의 피살이 스며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 눈,이 몸, 이 입, 이 귀, 이 모두가 사탄의 행락(行樂)과 사탄의 이념을 세워 나오는 통로입니다. 그래서 불교는 세상을 멀리하고 산중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래 가지고는 안 됩니다. 악과 싸워서 승리해야 하는데 싸움도 안 하려고 합니다. 기독교는 세상에 속해 있으면서 악과 싸워 이기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세상적인 것과 싸워 이기겠다고 하는 무리가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원수 중에 제일 큰 원수는 어떤 원수뇨? 사업상의 원수가 아닙니다. 제일 큰 원수는 사랑하는 남편이나 아내를 빼앗아가는 사람입니다. 이 이상 큰 원수는 없습니다. 여러분도 다 알겠지만, 본래 그런 곡절이 벌어졌던 것입니다. 그런 선조들에게서 피살을 받아난 우리는 몸에 대한 애착심을 전부 버려야 합니다. 굶주려 보아야 됩니다. 도의 길은 굶주리는 길입니다. 이 몸이 피곤해서 나가 떨어질 때까지 노동판에 나가 일도 해봐야 합니다. 막 쳐야 됩니다.

그런 자리에 나간 사람은 부모가 와서 '야, 아무개야’ 해도 늠름히 넘어갈수 있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아내가 과거의 인연을 내세우면서 나타나도 단연히 끓고 나서야 됩니다. 세상의 어떠한 욕망이나 주위의 인연이 휩쓸어 오더라도 그것을 끊고 나서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오, 너는 내사랑하는 아들이다’ 하시고 다시 보내 주십니다. 너희 아들딸을 구하고 부모를 구하고 아내를 찾아가라고 다시 보내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어야 합니다.

예수는 이러한 사명을 하기 위해 이 땅에 와서 제자라고 세워 놓긴 하였지만, 그러한 제자를 갖지 못하였습니다. 오늘날까지 수쳔년 동안 믿는다 하는 신앙자들은 세계적으로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있었으나 그러한 신자는 없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통일이념을 갖고 나선 우리들은 무엇을 해야 하느냐? 심정적인 인연을 회복해야 합니다. 목적은 이것입니다. 잘 먹고 잘 사는 것은 문제가 아닙니다. 거지 할아버지의 옷을 입었든지 얼굴이 찌그려졌든지 어떻게 되었든지간에 하나님이 `오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실 때에 '아버지!’ 하고 달려나가 통곡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심정이 여러분에게 있습니까?

10-103
사탄세계에서 승리할 수 있는 비결
오늘날 인간들은 아버지가 아버지인지, 누가 누구인지 모릅니다. 깜깜천지에서 살고 있습니다. 아버지를 잃어버리고 보지 못했으니 그 아버지가 어떻다는 것을 설명해 주는 사람이 나와야 합니다. 아버지가 어떻고 어떻다고 설명해 줄 수 있는 내용을 갖고 오는 사람이 참목자입니다. 그 모습을 바라볼 때, 자신도 어쩔 수 없이 자기의 마음이 그리로 끌려가는 핏줄의 인연을 느낄 수 있는 지도자를 만나야 됩니다. 여러분, 예수가 이 땅위의 인간들 앞에 참아버지로 오셨지만 그런 인연을 느낀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러면 사탄세계에서 승리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이뇨?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해명하여 하나님도 눈물지으실 수 있는 자리까지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런 자가 하나님의 아들딸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 `당신은 역사노정에서 수많은 원수들 앞에 농락받고 고충을 겪으시면서도 저희들을 아들 삼고 딸 삼기 위하여 피눈물의 역사노정을 개의치 않고 이시간까지 참아 나오신 저희들의 참아버지시옵니다. 당신의 심정은 이러하고 당신의 마음은 이러하고 당신의 몸은 이러한 것을 알았습니다’ 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대성통곡을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위신을 잊어버리고 하나님의 보좌를 생각하지 않고 대성통곡을 하실 것입니다. 그 모습이 남루하고 타락세계에서 지친 형편없는 모양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이 위신을 잊어버리고 통곡하시게 만들 수 있는 자라야만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인간들은 많은 욕심을 갖고 있습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그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을 욕먹는 자리에 몰아넣어서 죽이는 한이 있더라도 하늘의 아들딸이 될 수 있는 인연을 맺는 자리에 세우고 싶습니다. 여기에 들어와 말씀을 들으면, 즉 하나님이 어떻다는 것을 보여 주다시피 해명해 주는 말씀을 들으면 하나님을 붙들지 않을 수 없는 사무친 마음이 우러날 것입니다. 그런 느낌이 일어나지 않는다 할진대 그 운동은 세계적인 운동이 아닙니다. 가다가 깨지고 만다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를 믿고 여기에 나온 여러분! 원컨대 여러분은 그러한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런 사람이 되어 있습니까? 그런 운동이 내 개체를 중심삼고 벌어져야 합니다. 참다운 양심을 중심삼고 참길을 찾아 헤매는 사람에게 하나님을 해명해 주면 자기도 모르게 휩싸여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돌아가게 할 수 있는 것은 천적인 내용, 본연의 양심의 힘입니다. 지금 여러분이 갖고 있는 양심이 아니라 본연의 양심의 힘입니다. 그 본연의 양심의 힘과 본연의 심정이 폭발되어 나오는 느낌을 신앙노정에서 찾지 못한다 할진대 천국 못 갑니다. 하나님의 아들딸로 서지 못해요.

10-104
원수를 갚는 방법
하나님의 원수를 갚는 데는 창으로 찔러서 갚는 것이 아닙니다. 어떻게 갚아야 하느냐? 절대자이신 하나님 앞에 사탄을 해명해야 합니다. `하나님, 이렇고 이렇고 이렇지 않습니까?’ 할 때 하나님이 '오냐, 오냐’ 하실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몸땅 참소해서 사탄을 갈겨 버려야 됩니다. 사탄은 심정의 도적입니다.

그러면 사탄이 어찌하여 하나님의 대원수가 되었느뇨? 인류를 빼앗아간 그날부터 대원수가 되었거늘, 원수가 된 내용이 무엇이뇨? 하나님께서 창조이념으로써 인류시조와 영원한 인연을 맺으려던 천적인 사랑의 인연을 빼앗아 간 것입니다. 그러니 대원수입니다. 대원수예요. 이제 이 사실을 우리는 알았습니다.

사탄의 역사는 내 몸에서부터 벌어집니다. 그러니 내 몸을 정복해야 합니다. 이것을 생각할 때 굶고 헐벗고 욕먹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철창에 갇히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죽기 전에 원수를 갚아야 합니다. 여러분, 죽기 전에 원수를 갚지 않으면 안 됩니다. 원수를 갚고 죽어야 합니다. 참부모의 원수, 참신랑 참신부의 원수, 참자녀의 원수가 하늘땅에 남아 있거늘 이 원수를 박멸시켜야 할 책임이 기독교에 있는 것입니다.

원수를 박멸시키려면 하나님의 심정을 유발시켜야 됩니다. 하나님의 심정을 유발시키려면 하나님의 속사정을 알아야 합니다. 몰랐으니 알아야합니다.

아담 해와를 지으시고 그토록 기뻐하신 하나님이지만, 아담 해와가 타락했을 때 그토록 서러워하신 하나님이란 걸 알아야 돼요. 아벨과 가인을 중심삼고 싸우신 하나님, 노아를 중심삼고 싸우신 하나님, 아브라함, 모세, 예수를 중심삼고 수천년 동안 싸워 오신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아버지인 것을 알게 될 때 심정이 터져 나갈 것입니다. 충격을 받아야 합니다. 마음 깊이 충격을 받아야 합니다. 세상의 어떠한 설교자, 어떠한 스승의 말에서 받아 보지 못한 감동을 받아야 합니다. 역사적으로 시대적으로 미래적으로 심정의 인연을 증거할 수 있어야만 살 수 있습니다. 그러니 원수를 갚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의 대원수를 갚아야 되겠습니다. 이 땅은 선한 사람들이 피를 흘린 땅입니다. 원수 때문에 피를 흘린 땅이예요.

하나님을 대신하여 여러분들을 내세우는 하나님의 마음은 처량합니다. 인간이 어찌하여 이런 길을 거쳐서 하늘을 배반한 보응을 탕감해야 되는고? 곡절이 이렇게 되었으니, 그것을 풀려면 반대의 길을 가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아버지가 그리워 몇 번이나 통곡해 보았습니까? 잃어버린 아버지가 울부짖고 계시는 곳을 찾기 위해 다리가 부러져도 개의치 않고 산이나 들을 허덕이며 다녀 보았습니까? 아버지가 나를 그리워하며 통곡하시는 자리가 있을 것이거늘, 그곳이 어디일 것이뇨? 그곳을 찾으려 해매어 보았습니까?

오늘날 우리들은 전세계 앞에, 온 천주 앞에 절대적인 내용을 주장하며 나섰거늘, 아는 것이 무엇이뇨?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라는 것과 아버지의 심정이 어떻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니 이제 `아버지께서는 효자 효녀의 모습을 바라보시며 웃고 즐거워하시기 위해 인간을 지으셨는데 슬픔이 웬말입니까? 탄식이 웬말입니까? 곡절이 웬말입니까? 이 모두가 아들딸이 못 된 저희들의 죄입니다’ 하며 통곡하는 무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돌아갑니다. 그래야 돌아가요. 그래야 새것이 됩니다.

우리는 다 잃어버렸습니다.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내 자신도 가진 것 없습니다. 나는 명예도 원치 않습니다. 여러분의 스승이 되는 것도 원치 않습니다. 단, 쓰러지는 그 순간에 `내가 사는 동안 아버지를 대신하여 이것을 좀더 할 걸…… 하는 후회를 남기지 않는 자리에서 죽게 해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할 뿐입니다.

외로운 무리들을 앞에 세우게 될 때 하늘은 고통스럽다는 거예요. 마음에서, 심정에서 억제할 수 없는 그 무엇이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의 인연을 박차고 천정(天情)으로 돌아섰습니다. 돌아선 발걸음이니 낙망의 모습으로 갈 것이 아니라 힘차게 가야 되겠습니다.

하늘은 몇천 년씩이나 기다리셨습니다. 지금도 기다리십니다. 우리가 사망의 골짜기를 지나갈지라도 기다리십니다. 여러분이 나가서 허덕일 때마다 하늘은 기다리십니다. 여기 이 자리에서 외치고 있는 사람이 잘 알고 있습니다. 마지막이고 끝인 줄 알았으나 끝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절망으로 쓰러질 줄 알았으나 하늘이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참부모를 붙들고 통곡하는 무리, 참부모를 찾기 위하여 허덕이신 아버지의 팔을 붙들고 통곡하는 무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참부모 앞에 세워지는 참다운 자녀가 되는 동시에 참다운 형제를 그리워하는 여러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것이 여러분이 갖추어야 할 내용입니다.

인간은 종적으로 부모이신 하나님을 그리워하고 그 하나님 앞에 반드시 효성의 도를 세워야 합니다. 그러나 타락의 한을 풀지 못한 우리입니다. 효자가 무엇입니까? 탕자의 비유를 여러분은 알지요? 눈물을 머금고 탕자를 기다리는 아버지와 같은 마음을 갖고 돌아오는 탕자 앞에 달려나갈 수 있는 형제가 있다면, 아버지는 그에게 전체의 유업(遺業)을 넘겨 주실 것입니다

10-107
하나님의 대원수를 박멸시키는 하나의 길
오늘 우리들은 알았습니다. 세상의 탕자들도 한 혈육지친(血肉之親)임을 알았습니다. 역사는 흘렀으나 그 심정에 있어서는 사망의 아들딸들을 잊지 못하시고 6천년의 곡절을 거치시고도 그들을 놓지 못하신 아버지입니다. 아버지의 심정과 원한이 그들에게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하늘을 대하게 될 때, 벅찬 심정에 눈물이 앞놓여 가는 부모의 심정을 여러분은 가져야 합니다. 그러한 심정에 불타십시오. 삼복더위에 짐을 지고 가는 사람이 있거든 그를 붙들고 통곡하여 아버지의 심정, 어머니의 심정을 느껴 보십시오. 그가 수고하는 것은 나 때문이거늘, 내가 짐을 지겠다고 해보십시오. 가는 길을 막고, 형제여! 가야 할 길이 남아 있는데 어디로 가고 있느냐고 애달픈 마음을 갖고 통곡해 보십시오. 그런 여러분이 되었다 할진대, 여러분이 가는 길에는 하늘이 함께할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사람도 동반자가 없었습니다. 외로운 길을 걸어왔습니다. 한스럽고 분하고 통분한 사실이 가슴에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러나 하늘의 수고에 비할 수 없고 6천년 동안 한을 품고 나오신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는 것을 나는 느낍니다. 그러나 내가 진 책임을 감당하기에 부족한 것을 느끼고 통탄할 적마다 하늘이 붙들어 주시고 권고하여 주심을 또한 나는 압니다. 남이 도망치는 자리에서도 찾아오시는 하나님을 맞이하여 그 하나님께서 내 아들딸이라고 자랑하실 수 있는 아들딸이 되십시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그런 자리에서 여러분을 고대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시게 되었을 때 제자들은 십자가가 두려워 도망갔습니다. 그러나 강도일망정 죽는 예수의 처지를 서글프게 생각하면서 예수의 몸을 손으로 만져 보고 싶고 건드려 보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 찼을 때, 그 강도는 구원을 얻었습니다. 하늘의 혈족은 여기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말만으로 안 됩니다. 말 많은 사람은 많습니다. 수단과 방법은 수천 수만 가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진실 중의 최고의 진실은 사랑의 심정입니다. 사랑의 심정에는 수단과 방법이 있을 수 없습니다. 이것만이 하나님의 대원수를 박멸시키는 하나의 길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을 붙들고 그 하나님의 마음과 심정을 받아서 사탄과 대결하여 나서는 자가 있다면, 그보다 나은 사람도 그 앞에는 입을 못 벌립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모를 때는 사탄이 인간을 마음대로 농락할 수 있고 마음대로 지배할 수 있으나 천상의 심정을 통하여 우러나는 내용을 갖고 나타날 때는 억만 사탄이 항복하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죽더라도 아버지요, 살더라도 아버지입니다. 이 피가 사탄으로부터 받은 피이지만 이 피가 변하여 아버지의 피로 거두어지는 그 자리를 그리워하며 달음질쳐야 합니다. 그래야 사탄이 떨어지는 것입니다.

10-108
우리의 책임
이제 우리는 기도해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의 피살이 지금 사탄에게 속해 있습니까? 여러분의 피가 뿌려지고 살이 떨어질 때, 사탄이 와서 아이고 내 피요, 내 살이라고 부르짖으며 붙들어 갈 자가 되지 말게 기도해야 합니다. 피를 토하며 쓰러질 때 아버지께서 붙들고 우실 수 있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이 땅에 왔다 갔습니다. 또한 수많은 사람들이 오늘날 이 땅에 살고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도의 길을 찾아 나가고 있으나 오늘날까지 그러한 아들딸을 맞지 못하였습니다. 베드로가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도 예수를 배반한 배반 죄가 걸려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도 붙드실 수 없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형장(刑場)의 이슬로 사라졌지만 하나님이 보내신 독생자를 배반한 죄가 있기 때문에, 그 죽음을 탕감조건으로는 인정할 수 있으되 하나님을 위하여 선의 피살을 뿌리고 죽었다고는 인정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삼천만 민족이 갈 길을 몰라 허덕이고 있습니다. 그러니 굶주린 이 민족 앞에 지도자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사망세계에서 피땀을 흘리며 애걸하는 민족 앞에 생명의 철장(鐵杖)을 가지고 사망의 철망을 끊고 나아가, `동지여, 형제여, 내가 여기 있노라’고 외쳐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부자(父子)의 인연을 높이 세우고 형제의 인연을 세워서 종족과 민족을 형성하여 하늘 백성으로 등장하는 날 천상(天上)의 주권(主權)은 회복될 것이요, 천상에 사무친 심정의 원한은 해원(解寃)될 것입니다. 이것을 똑똑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 입고 있는 옷이 아깝습니까? 벗어 치웁시다. 보물을 갖고 있습니까? 허공에 던져 버립시다.

그것이 하늘 앞에 나아가는 데 있어서 사탄의 미끼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선을 위하여 피눈물을 개의치 않고 나서는 이들 앞에 한 치의 땅이라도 한 벌의 옷이라도 제공하기 위해 잠을 못 이루는 민족만 되면, 그 민족은 세계를 지배할 것입니다.

하늘은 그러한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아버지가 그리워 눈이 물크러지도록 울다가 미친다 할지라도 그 사람은 지옥 안 갑니다. 굶주리고 뭇사람의 손가락질을 받고 조롱을 받다가 쓰러졌다 할지라도, 아버지를 그리워하다 쓰러졌다 할진대 그 자리는 공터가 안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은 시대를 창조하기 위하여 나선 것입니다. 천륜의 혁명의 노정에 새로운 개척자로 나선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의 몸에는 개척의 피가 약동하고 개척의 살이 약동하여야 되겠습니다. 잠자는 이 민족을 붙들고 천상을 향해 기도해야 되겠고, 굶주린 이 민족의 위안자가 되기 위해 허덕여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여러분이 된다면, 오늘 이 시대에 밟힘받고 몰림받는다 해도, 이 민족 앞에, 이 인류 앞에 필요한 그날이 틀림없이 올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무리가 그리운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식구가 그리운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사람들을 규합하기 위하여 모든 것을 희생해 나가야 합니다. 그리하여 부모를 모르는 자들에게 부모를 해명해 주고, 형제의 인연을 모르는 자들에게 이제까지의 통설(通說)을 깨뜨려 영계(靈界)와 육계(肉界)의 한계를 넘어 참다운 형제의 인연을 알려 줘야 합니다. 그리하여 네가 굶주리면 내가 먹을 수 없고 내가 먹을 때 너도 먹어야 한다는 심정이 민족 감정 이상, 세계의 어떠한 사상이나 주의의 감정 이상 강하게 된다면 하나님의 해원 역사는 자동적으로 벌어진다는 것을 여러분은 똑똑히 알아야 하겠습니다.

나는 여러분들이 전도하러 나갔다 들어오면서 욕을 먹었다는 말을 하면 일면 분한 생각도 들지만 마음으로는 기뻐하며 기도합니다. 왜? 그 사람은 그 마음에 인간의 심정이 아니라 하늘의 애달픈 심정과 두터운 인연을 맺고 돌아왔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하늘 앞에 자랑할 날이 있을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새로운 각오 밑에, 있는 정열을 다 쏟아 세계인류를 대신하여 천적인 한(恨)을 일신(一身)에 지니고 하나의 폭탄이 되어 지옥에 가서 터져 피를 흘린다 할진대, 거기에 승리의 탑이 세워진다고 나는 믿습니다.

이러한 무리가 나와야 이 민족의 해원이 벌어지고, 이 민족은 새로운 이상을 향하여 나아갈 수 있고, 세계적인 정신을 중심삼고 새로운 민족의 발판을 닦을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철저히 느껴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기준을 세워 놓으면 이것이 영원히 하나님의 원한을 풀어 드릴 수 있는 승리의 방패가 된다는 것을 잊지 말기 바랍니다.

10-110
기 도
아버님, 지나온 40고개를 생각해 보면 인간적인 입장에서는 지긋지긋하옵니다. 한스러운 날이 지나가는 것은 역사의 필연성이고, 오늘 땅 위에서 행동하는 우리가 비운의 암초에 부딪치는 것 또한 타락한 세상의 곡절을 해결하는 천적인 노정이라는 것을 저희들은 알았사옵니다.

하나님의 대원수를 갚는 길은 심정이 기초가 되어 부모가 없는 이 땅에 부모가 되는 거예요, 형제가 없는 이 땅에 형제가 되는 것이며, 하늘의 백성이 없는 이 천지에 하늘 백성이 되는 것임도 알았사옵니다. 그래서 세상의 부모의 인연을 다 끊어 버리고 세상의 부부의 인연을 다 끊어 버렸사옵니다.

새로운 천적인 정적 인연(情的因緣)이 이 땅에 뿌리 내려야 할 때가 옴으로 말미암아, 오늘날의 사조(思潮)가 그러한 방향으로 활발히 휩쓸려 들어가는 것을 목전(目前)에 바라보고 있사옵니다. 좌우가 투쟁하는 오늘날 하늘은 심정의 중심이 천상(天上)으로부터 지상(地上)에 뿌리 박히는 한 지역을 찾고 계시오매, 그 한 곳이 필시 있어야 천적인 뜻은 이루어질 것이며, 또한 저희들은 하늘의 원한을 해원하여 만민 앞에 승리의 깃발을 높이 세울 날이 반드시 올 것을 아옵니다.

그러기에 오늘 이런 심정의 기반을 찾아 헤매는 운동이 외로운 삼천리 반도 위에, 피 흘리며 쓰러지고 남은 이 민족 가운데 벌어진 것을 생각할 때, 아버님, 황공망극하옵니다.

이제 죽어가는 이 민족 앞에 새로운 생명의 말씀을 전하여야 되겠고, 피눈물로 엉클어진 곡절을 전하여야 되겠사옵니다. 그리하여 수많은 생명들이 새로이 소생함을 받아, 이 민족, 이 세계는 가을 절기에 있사오나, 새로운 말씀을 중심삼고 봄 절기의 기운을 갖추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여름 절기를 향하고 새로운 가을 절기를 바라볼 수 있는 새로운 방향의 세계로 전환시킬 수 있는 역사를 다할 수 있도록, 아버지, 피눈물 어린 심정을 갖고 나가는 이들의 발걸음 위에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맡겨진 40일 노정을 마치고 다시 만나 손에 손을 잡고 마음을 터놓고 내가 민족을 위하여 눈물을 흘리고 이 민족에게 배척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나누며, 서글프고 원통한 사실이 있다면 '아버지!’하며 오히려 민족에게 복을 빌어 주면서 이 민족을 사랑했다는 산 증거적인 조건을 이들의 가슴 가슴에 품고 돌아올 수 있게 하여 주시옵기를 이 자리에서 아버지 앞에 호소하옵니다.

어려운 길로 보내고 싶지 않은 것이 여기 책임진 자의 마음이오나 천상의 곡절이 남아 있는 연고로 이들을 그 길로 아니 보낼래야 아니 보낼 수 없사옵고, 또한 그 길이 우리들이 가야 할 필연적인 노정임을 아옵니다.

그러므로 이들이 있는 정성을 다하여 한 방울의 피라도 아버지 앞에 드리기를 원하고, 한 점의 살이라도 아버지 앞에 드리기를 원하고, 하나의 행동도 아버지를 위하여 하고자 하오니 잘못된 일이 있을지라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이들을 부디부디 품으시사 보호하여 주시옵고 지켜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심정을 더듬어 가는 길은 외로운 길이요, 서글픈 길이요, 눈물의 길인 것을 아오니, 아버님, 친히 위로하여 주시옵고 축복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죽든지 살든지 하늘만을 붙들고, 쓰러지는 그날까지 최후의 승리의 영광을 아버지께 돌려 드릴 수 있는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그리하여 하늘땅을 아버지 품에 안겨 드리고 원수를 굴복시키는 그날까지 행군을 계속할 수 있도록 하여 주시기를 바라옵나이다. 아버지께서 이 행군 대열에 천상(天上)을 동원하고 지상(地上)의 양심 있는 자를 동원하여 획기적인 승리의 영광을 노래할 때까지 함께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하올 때, 주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