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17 to 10-354: 하나님의 유업을 상속받는 자들이 되자

하나님의 유업을 상속받는 자들이 되자
1960.11.27 (일), 한국 전본부교회

10-317
하나님의 유업을 상속받는 자들이 되자
창세기 15:1-14

[기 도]

아버지 ! 많은 무리가 당신의 뜻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당신의 성업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당신이 보내실 한 분을 맞기 위하여 고대하고 있사옵니다.

오늘 이 시간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하늘의 모든 유업을 상속받을 자는 신앙의 연륜을 많이 쌓은 자도 아니옵고. 남을 위해 봉사하였다는 실적을 갖춘 자도 아닌 것을 아옵니다. 믿어도 참다운 심정을 통한 신앙을 해야 되고, 남을 위하더라도 심정을 나누어 주는 실적을 갖추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저희들은 알았사옵니다. 당신은 많은 무리 가운데에서 참사람을 찾고 계신다는 것을 알았사옵고, 많은 사람 가운데에 참사람을 세우시어 당신의 유업을 상속시키려 하는 뜻이 있음을 알았사옵니다.

오늘 보잘것없는 저희들이 놀라우신 아버지의 뜻 앞에 나오게 될 때 먼저 저희 자신들이 부족하다는 것을 확실히 깨달아야 되겠고, 하늘 앞에 감히 설 수 없는 타락된 후손임을 뼈살에 사무치게 느끼지 않으면 안 되겠사옵니다. 이리 보고 저리 보아도 하늘 앞에 내세워 자랑할 아무것도 갖지 못한 저희들임을 알았사옵니다. 선조로부터 내려온 혈통도 당신을 배반한 혈통이옵고, 선조의 피와 뼈와 살을 이어받은 모든 선지자들도 당신께서 기뻐하며 영원한 사랑의 심정으로 넓으신 그 사랑의 품에 품을 수 없는 죄악의 쓴 뿌리를 지녔기에 오늘의 저희들도 하늘 앞에 용납받기에 합당치 못한 모습들임을 너무나 잘 알고 있사옵니다. 당신께서 지극히 선하게 지으신 몸들이 당신이 싫어하실 수밖에 없는 부분과 요소를 지니고 이 땅 위에 산다는 이 억울한 사실을 알게 될 때, 저희들은 통탄하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이제 저희들의 피와 살과 세포 하나 하나에 악의 근성과 악의 요소가 잠재해 있다는 이 지긋지긋한 사실을 헤쳐 버리고 밟아 버리고 무자비하게 끊어 버려야 할 것을 알았사옵니다. 아버님의 거룩한 본성에 인연되지 못하여 본성의 심정과 본성의 혈통과 본성의 뼈살을 이어받지 못한 한스러운 후손임을 저희들 고백하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이와 같은 저희들 가운데서 당신이 영원무궁토륵 유업으로 남길 그 동산 가운데 세워 축복할 수 있는 아들딸이 어디 있겠사옵니까만, 이 부족한 것들에게 사죄의 조건, 용납의 조건을 세워 주시고 이리 감하고 저리 감하시어서 죄없다 할 수 있는 자리에 세워 주시려는 당신의 크신 은사 앞에, 몸 굽혀 머리 숙여 눈물지을 줄 아는 아들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하늘을 알면 알수록 아버지 앞에 민망한 자신임을 깨닫지 않을 수 없사옵고. 가면 갈수록 머리 숙여 아버지 앞에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 보이기에 두려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만, 이것이 하늘을 따라가는 길인 것을 아옵니다. 오늘 여기에 모인 당신의 아들딸들, 아들딸이라고 불리기에 합당치 못한 것을 아오나, 그래도 이들을 버리시지 않는 당신의 뜻이 있는 것을 아오니 굽어살펴 주시옵소서. 험한 자리에서 상처받으며 살아온 이들의 모든 흠을 아버지께서 가리어 주시옵소서. 아무리 피와 살의 인연이 끊어졌던 자식이라도 본연의 심정을 통하여서는 모른다 할 수 없는 자리에 있기에 당신은 이들을 참된 자식이라 기억하고자 하신다는 것을 아옵니다. 아버지, 이날을 축복하여 주시옵고 기억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 이날을 저희들이 새로운 역사적인 한날로 세우고, 몸과 마음과 심정 모두를 아버지 앞에 드려 자녀의 영광과 자녀의 명분에 접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는 아버지 앞에 드릴 것이라곤 아무것도 갖추지 못하고 있사옵니다. 이렇듯 부족한 몸들이옵기에 이 몸에 속한 일체 가운데 아버지 앞에 영광될 게 무엇이 있겠사옵니까? 그러나 저희들은 부족한 것을 깨달으면서 부족한 심정에 하늘이 염려하는 마음을 간직하여 모든 것을 아버지와 더불어 인연맺고 아버지와 더불어 조건적인 무엇을 세우려 하오니, 긍휼히 보시옵소서. 그 마음과 심정의 터전은 억천만금을 주고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아버지께서 너무나도 잘 아시기에 수많은 민족을 두고도 피어린 심정을 가슴에 품고 한 날의 뜻과 한 날의 영광을 위해 참고 눈물 흘리는 민족을 세워 나오신 것을 아옵니다. 그것이 택한 이스라엘 민족이요, 역사적인 선민들이 걸어 나온 길이요, 예수가 오셨다 가신 이후 지금까지 2천년 동안 택한 무리들이 피의 혈통을 연하여 세워 나온 흔적인 것을 아옵니다.

아버지 ! 이 시간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는 당신 앞에 아무것도 드릴 것이 없사오나, 애달픈 저희의 눈물을 먼저 드리고, 남아진 싸움터를 향하여 새로운 각오를 가지고 나아가 피살을 아버지 앞에 아낌없이 바치는 저희들이 되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이 시간 다시 한번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

아버지! 이날은 거룩한 날, 만인류를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수많은 인류는 이 시간 어디로 가야 할지를 모르고 방황하고 있습니다. 사망의 물결이 눈 앞에 다가오고 있으나 깨닫지 못하고 생사의 주권을 지배하시는 당신이 계심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들을 깨우쳐 당신의 품으로 안기도록 해야 할 사명이 저희에게 있는 것을 알고 있사오니 높고 크고 넓고 깊은 마음을 갖고 당신의 심정을 만방에 선포하는 아들딸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나이다. 그와 같은 책임이 저희에게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책임을 다하지 못한 저희들, 이 시간 부끄러운 마음을 금치 못하여 아버지 앞에 엎드렸사옵니다. 아버지의 애달픈 심정 앞에 눈물 흘리고 그 눈물과 더불어 아버지의 인연을 노래하고 찬양하고 그 사정에 엉키어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고 아들딸을 아들딸이라 부를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지! 남한 각지에 널려 있는 새로운 아들딸 위에 더더욱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핍박의 길을 가는 자의 뒤를 따르는 자도 핍박의 화살을 받아야 할 것을 아옵고, 몰리는 자리에서 외로이 눈물짓는 자의 걸음을 따르는 자들도 그와 같은 자리에 처해 있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당신은 지금까지 그런 자리에 처할 적마다 위로해 주셨사옵고, 쓰러질 때마다 권고하여 주셨사오며. 외로울 때마다 붙들어 주셨사옵니다. 그러면서 소망의 동산을 보여 주신 살아 계신 아버지인 것을 아오니, 오늘 이 시간 그와 같은 자리에 있는 당신의 아들딸이 있사올진대, 같은 은사로 역사하여 주시옵고 품어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그들이 이날 이 시간을 기억하여 아버지 앞에 정성들인 것을 친히 받아 주시옵고, 붙들어 주시옵고 생명의 인연을 세워 주시옵소서.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형편과 사정이 아버지 원하시는 뜻대로 되어지지 못하고 있는 것을 아는 저희들이기에 더욱 슬픈 마음 이루 헤아릴 수 없사옵니다. 저희에게 맡겨진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을 용납하여 주시옵고, 염려하는 그 마음을 보아 모든 것을 덮어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불쌍한 이 민족 위에도 축복하여 주시옵고 천상에 있는 수많은 천천만 성도들과 땅에 널려 있는 수많은 천천만 성도들과 나머지 수많은 인간들에게도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생명의 권한이 광명한 햇빛과 같이 비치어 하늘땅이 화동하며 노래할 수 있는 기쁨의 한 날이 올 것을 알기에, 즐거이 그날을 소망하며 고대하고 있사오니, 그날까지 참고 싸워 끝까지 남아질 수 있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허락한 이 시간, 아버지, 제단에 섰사오니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내 무슨 말을 하기를 원치 않사오나 뜻이 있기에 이 자리에 섰사오니,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인간적인 말이나 인간적인 모든 것은 제거시켜 주시옵고 당신이 친히 현현하시고 마음으로 통하여 마음으로 느끼게 하여 주시옵소서. 몸을 굽혀 하늘 앞에 눈물지으며 자기의 과거를 뉘우치고 생명에 부딪침을 받아 부활의 역사와 인연맺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전하는 자의 심정과 전하게 하시는 하늘의 심정이 부딪쳐 하늘의 뜻을 알고 전하는 뜻을 알아, 영원한 아버지의 복된 동산에 승리의 깃발을 높이 들어 아버지의 영광을 노래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당신의 아들딸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천민사상을 갖춘 당신의 아들딸, 복된 은사의 터전 위에서 길이길이 당신을 모시고 살 수 있는 아들딸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도록 축복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모든 것 아버지께서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고 사탄이 틈타는 시간 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바라오면서 주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니다. 아멘.

10-321
말 씀
이 시간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리고자 하는 제목은 ‘하나님의 유업을 상속받는 자들이 되자’입니다.

10-321
절대자의 경륜과 인간의 가치
여러분들은 현재 여러분 자신들이 어떠한 위치에 처해 있으며 어떠한 환경에 놓여 있다는 것을 짐작하리라고 봅니다, 여러분이 살고 있는 가정으로부터 시작해서 사회, 국가, 전세계의 정세를 바라볼 때 과연 그것이 절대자의 경륜 앞에 있어서 절대자가 영원히 사랑할 수 있고, 기뻐할 수 있는 가정이요, 사회요, 세계라고는 어느 누구도 생각지 않을 것입니다. 범위를 좁혀서 여러분 자신을 놓고 생각해 보게 될 때, 현실의 여러분의 가치를 만우주에 자랑하고 싶어하고 가장 귀하다고 생각하는 여러분 자신을 놓고 절대자가 영원한 축복을 해주고 절대자의 유업을 상속해 주며 ‘현재의 그 모습으로 길이길이 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지극히 작은 내 한 자신도, 또 지극히 크다는 이 세계도, 이 땅도, 더 나아가서는 하늘도, 아니 천주까지도 이 모두를 창조하신 창조주께서 보실 때, 그 유업을 상속해 주고 싶은 참다운 모습이 되지 못했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부정할래야 부정할 수 없습니다. 이 땅 위에 수많은 민족이 살고 있고 수억의 인류가 살고 있으되 하나님이 영원히 지니고 싶고 품고 싶고 영원히 남기고 싶은 개인, 또 그러한 가정, 민족, 국가, 세계가 없습니다. 그러한 것은 우리들의 생각에 머물 뿐이지 사실로서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 이상 슬픈 일이 없고 이 이상 억울한 일이 없습니다. 개인으로부터 사회, 국가, 인류 전체가 이러한 것을 알지 못하고 있는 사실을 바라보는 절대자가 있다 할진대, 그 절대자는 어떠한 입장에 계실 것인가 ?

이러한 사정들은 현실에서만 되어진 것이 아니라 우리의 조상이 타락한 날부터 이어져 내려온 것입니다. 수많은 선조들이 선을 지향하고 의(義)를 좇아 죽음의 자리도 개의치 않고 싸워나온 역사를 넘고 넘어 오늘날까지 오면서 하늘은 어느 한 날도 딱한 심정을 풀고 인간을 대한 날이 없었습니다. 이런 하늘임을 아는 사람이 있다 할진대. 하늘은 그 사람을 이 시대의 대표자로 세우실 것입니다.

하늘을 안다고 하는 사람은 많고 하늘을 믿고 따른다고 말하는 사람은 많되, 진정 하늘의 심정을 알고 하늘의 사정을 알고 하늘의 소원을 알아서 그 심정과 그 사정과 그 소원을 자기의 심정과 자기의 사정과 자기의 소원으로 삼고 이 모든 것을 자기 일대에 해결하기 위해 나선 사람이 역사 노정에 누가 있었습니까? 그런 가정이 있었습니까? 그런 민족이 있었습니까? 그런 국가, 그런 세계가 있었습니까? 없었습니다. 이것은 지극히 원통하고 분한 사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만일 절대자가 있어 그의 선한 이념을 이런 우리 인간에게 영원히 상속하고자 한다면, 그 절대자는 지극히 불쌍한 절대자일 것이며 지극히 서러운 절대자일 것입니다.

이러한 현실을 바라볼 때 하나님은 과연 이 천지간의 어떠한 사람들을 세워 천적인 유업을 상속시킬 것인가? 여러분,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 보십시오. 성경은 한 생명이 우주보다 더 크다고 높이 평가해 놓고 있습니다. 본연의 주인이신 하나님은 한 생명의 가치가 우주보다 크다는 것을 알고 계시기에 그 가치를 인정하고 싶은 심정인데 과연 하나님이 바라보실 때에 우주의 가치 이상의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개인이 되어 있고 사회가 되어 있는가? 못 되어 있습니다. 이런 것을 볼 때. 역사노정에서 선을 모방하라, 선의 유업을 상속받으라 하는 말씀들이 하늘의 말씀이라 할진대, 그 말씀을 대하는 우리들은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가 보고 믿고 있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요 천적인 유업을 상속시키기 위한 말씀이라 할진대, 오늘 현시대에 살고 있는 이 땅의 수많은 인류가 하늘의 유업을 상속시킬 수 있는 백성이요, 하늘이 유업을 상속해 주고 기뻐할 수 있는 인류가 못 되어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인류를 위하여 지금까지 갖은 수고를 하시고 인류를 위하여 피와 땀을 흘리며 죽음의 길을 개의치 않고 싸워 나오셨는데, 이 한 많은 하늘의 심정이 사랑으로 나타나지 않고 도리어 뒤집어져서 채찍으로 나타날 때는 이 땅을 일시에 멸망시켜도 하나님의 한을 풀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10-323
하나님이 수고해 나오신 목적
하나님이 계시고 그분이 지으신 만물도 있는데 어찌하여 하나님의 유업을 상속받는 것이 지금까지 인간의 소망으로 남아 있느뇨? 이것은 타락의 보응입니다, 타락의 보응. 제 아무리 자기의 인격을 높이 자랑할 수 있는 인격자라 하더라도 그 역시 하늘의 유업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은 아직까지 기쁨에 넘치는 얼굴로 쌍수를 들어 ‘내가 지은 하늘과 땅의 모든 것을 너에게 영원한 유업으로 상속하노라’ 하고 축복해 줄 수 있는 한 날을 갖지 못했습니다. 축복의 한 날을 갖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축복할 수 있는 자를 세워 만천하에 선포하지 못한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갖은 수고와 고생을 하시고 피어린 싸움의 역사노정을 거쳐 나오신 목적이 어디에 있느냐? 하늘 땅 전체의 유업을 기쁜 마음으로 상속해 줄 사랑하는 아들딸을 찾는데 있습니다. 이 목적을 위해 지금까지 헤매 나오셨다는 것입니다. 그 유업을 상속받을 수 있는 자는 이 땅 위의 수많은 민족과도 바꿀 수 없고, 수많은 국가와도 바꿀 수 없습니다. 수많은 민족과 국가를 잘라 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그와 바꿀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가치적인 모습을 세워 그로 말미암아 새로운 가정, 새로운 사회, 새로운 국가, 새로운 세계를 통할 수 있는 새로은 주권을 세워 하늘과 땅을 합하여 하나의 주권으로 통치할 수 있는 유업의 시대를 향하여 나아가는 것입니다. 창조주가 우리 인간을 창조목적을 두고 지으셨다 할진대 기필코 그러한 목적의 자리까지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처해 있는 현실을 바라보면 사방에는 싸움뿐입니다. 이 시간도 서로 물고 뜯고 죽이는 이런 판국에 놓여 있습니다. 어차피 어느 한 때에 가서 모두 청산되고 정비되어야 할 사회입니다. 6천년의 역사가 흘러왔지만 이 역사노정에 있어서 절대적인 것으로 남아질 수 있다고 하늘이 결정하여 선포한 것이 없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수천년 동안 선민의 권한을 자랑해 나왔습니다. 그들은 선민, 즉 택한 백성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택한 백성은 되었지만 택한 나라는 못 되었습니다. 선민권은 자랑했지만 택한 나라가 되지 못했어요. 그들은 선민으로만 남아질 것이 아니라 선민을 지나 하나님의 유업을 상속받을 수 있는 하늘의 백성이 되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역사노정에 선민임을 자랑한 흔적은 있으되 하늘이 택한 나라를 세웠노라고 자랑한 흔적은 없습니다, 더 나아가 그런 나라를 택해 세워서, 이 세계는 택한 나라의 것이라고 주장한, 그런 나라는 나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선하실진대 그분이 창조하신 창조물도 선할 것이고 창조한 물건에는 목적이 있을 것입니다. 어떠한 존재물이든지 목적을 떠나서는 가치적인 존재가 될 수 없습니다. 그 존재의 가치는 반드시 전체목적을 이루려 하는 데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실존세계에 존재하는 만상이 다 그렇습니다. 우주 전체를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그 창조목적을 향하여 만우주를 이끌어 나갈 것이거늘, 그 목적은 둘이 아니라 하나입니다. 하나. 종교도 하나요, 민족도 하나요, 국가도 하나요, 주권도 하나요, 세계도 하나 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땅과 하늘도 갈라진 것이 아니라 하나입니다. 하나님과 인간도 갈라진 것이 아니라 하나입니다. 하나님이 지선(至善) 이시기에 인간도 최후에는 반드시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하늘이 지선이면 인간도 지선할 수 있는 하나의 기준을 세워 개개인이 전체의 가치를 대신하여 만상 앞에 나타날 때, 모든 것은 거기서 하나의 자리를 잡을 것이라고 본인은 생각합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하나님께서는 구원섭리를 하시는 데 있어서 민족 민족이 다름에 따라 여러 형태의 종교를 세워 민족들을 움직이고 지도해 나오셨습니다. 하늘이 태초로부터 오랜 역사과정을 거쳐 역사의 종말까지 목적의 세계를 향해 일관하여 뚫고 나가는 하나의 정통적인 방향이 있나니, 그 방향을 따라 나오는 종교가 있어야 됩니다. 또 그러한 종교에는 반드시 선인(選人)이 있어야 합니다. 택함받았다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선민(選民)이 있기 전에 택함을 받았다고 하는 선인이 있어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택한 집인 선가(選家)가 나와야 되고, 그 다음에 비로소 선민이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역사의 최후에 남아질 수 있는 종교라 할진대 거기에는 절대자가 축복하여 택했다는 선인적인 하나의 중심, 이 온 세계 가운데에서 무엇으로 태어났다는 하나의 중심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 중심인물이 없으면 역사적인 종교로 남아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개인을 통하여 가정을 축복하고, 가정을 통하여 민족을 축복하고, 민족을 통해서 국가를 축복하고, 국가를 통하여 세계를 축복하고, 세계를 통하여 하늘땅을 축복할 수 있는 그 때까지 역사는 발전되어 나간다는 것입니다

10-325
유업을 상속해 줄 인간을 찾으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타락 이전 본연의 선한 자리에 있던 아담과 해와에게 하늘 땅을 총합하여 여기에 하나님의 실체까지 겸하여 유업으로 주려고 하셨습니다. 하늘 땅을 주는 동시에 창조주까지 주겠다는 것입니다. 이 이상 큰 유업이 어디 있겠습니까? 인간이 타락한 그날부터 하나님은 하늘을 수습하고 땅을 수습하고 인간을 수습하여 ‘네 것이자 내 것’이라고 할 수 있는 날을 항해 나오십니다. ‘너자 나요, 네 가정인 동시에 내 가정이요, 네 사회인 동시에 내 사회요, 네 나라인 동시에 내 나라요, 네 세계인 동시에 내 세계’라 할 수 있는 것을 바라시며 하나님은 지금까지 나오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늘 땅 전체의 유업을 홀로 붙안고 그 유업을 상속해 줄 인간을 찾아 나오시는 것입니다.

땅 위에 큰 야망을 가진 어떠한 사람이 있다 할진대, 그의 야망은 이 세계, 보이는 이 세계입니다. 오늘날 민주와 공산이 대결하여 싸우고 있는데 그들의 욕망은 무엇인가? 이 세계를 자기들의 주의와 사상으로 규합시켜서 하나의 이념권내에 몰아넣기 위해 서로 대결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인간들이 자기 욕망을 성취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이 땅에 국한될 뿐입니다.

본래의 인간은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습니다. 이 세계를 자기 마음대로 좌지우지할 수 있는, 그런 승세를 가지고 있는 장군이라 할지라도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인간이 활동하는데 있어서 초보단계에 불과합니다. 그러면 인간의 최고 발판, 즉 인간이 활동할 수 있는 최고의 발판이 무엇인가? 온 세계입니다. 여러분이 살고 움직이고 있는 이 사회의 일부분이 인간의 활동무대가 아닙니다. 하늘 전체를 대신한 이 세계가 인간의 최고의 발판입니다. 그 발판을 단장하려니 사회니 무엇이니 하는 현실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누구든지 아무리 못난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 욕망을 세계 무대에 두고 있습니다. 민족적인 기반에서 욕망을 충족시켰다는 사람은 없습니다. 자기의 민족권을 넘어서 혹은 자기의 민족권으로 모두를 끌어들여서라도 세계를 정복하려 합니다. 이러한 인간 본연의 심정, 인간 본연의 마음은 죄를 지은 자나 선한 자리에 있는 자나 마찬가지입니다. 선한 사람은 선을 통하여 그 목적을 이루려 하고, 악한 사람은 악을 통하여 그 목적을 이루려 하니, 언젠가는 선악이 서로 부딪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지금이 바로 그런 때입니다. 이 둘이 부딪치는 때가 되었다는 거예요. 어떤 사람은 하나님이 있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하나님이 없다고 합니다. 죄 중에 가장 큰 죄는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 이상 큰 죄가 없습니다.

그러면 지금까지 창조주께서 인간에게 주고자 하시는 유업은 무엇이냐? 인간들이 살고 있는 땅덩어리가 아닙니다. 이 땅덩어리가 아니예요. 우리가 상속받아야 할 것은 이 땅에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이 땅을 토대로 하여 영원무궁한 세계, 광대무변한 세계를 우리 인간에게 상속해 주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하늘과 땅은 물론 천주를 창조하신 창조주까지 주겠다는 것입니다. 참다운 종교의 목적지는 어디인가? 땅이 아닙니다. 땅이 아니예요. 전부 다 한 중심인 유일신을 지향합니다. 종교를 세워 그것을 지향하는 개인, 가정, 사회, 민족, 국가의 형태로 역사를 이끌어 나오셨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에서는 아직까지 하늘과 땅, 거기다가 하나님 자신까지 합하여 ‘이 모든 것을 영원히 너희에게 주노라’ 하는 축복을 못하셨습니다. 축복을 못하셨어요.

선민사상을 자랑하던 이스라엘 민족에게 하나님은 무엇을 주려고 했습니까? 하나님 자신을 주기 전에 당신의 아들을 주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 아들을 때려죽였습니다. 하나님의 선민이라 하여 그 아들을 통해 유업을 전부 주려 하셨습니다. 보십시오. 이스라엘 민족을 세우기까지 하나님이 얼마나 수고하셨는지. 민족을 세워 놓고는 무엇을 주려고 했느뇨? 하나님의 사랑하는 독생자를 주려고 하셨습니다.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나중에는 하나님 자신까지도 주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의 최고 목적점입니다.

10-327
선민권을 빼앗긴 이스라엘 민족
여러분은 예수를 믿고 성신을 받아 가지고 예수와 인연맺어, 부활한 성체(聖體)로서 하나님 앞에 서기를 바라고 주를 만나면 그만인 것으로 알고 있지만 그게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상속하려 하시는 것은 주만이 아닙니다. 자신까지 주려 하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어 가지고 주님만 만나면 다 되는 줄 알지만 아닙니다. 요한계시록 14장 1절을 보면 “어린 양이 시온산에 섰고 그와 함께 14만 4천이 섰는데 그 이마에 어린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도다”라고 했습니다. 예수의 인정을 받는 동시에 아버지의 인정을 받아야 됩니다. 오늘날 이 땅 위에는 수많은 기독교 신자들이 있으되 진정 하나님의 아들을 받들 수 있는, 보내신 하나님의 본의에 합당하게끔 모시는 자가 몇 사람이나 있으며, 그런 교회가 몇 군데나 있습니까? 하나도 없습니다.

하늘이 주신 아들을 받들지 못한 이스라엘 민족입니다. 그들이 만약 하나님이 주신 아들을 받들어 모셨던들 그 아들을 통해 하나님까지 상속받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상속받았던들 이스라엘 민족은 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잡아죽인 죄로 이스라엘 민족은 2천년 동안 세계를 유리고객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땅 위의 어떤 조그만 민족을 대표하는 시시한 지도자의 아들을 죽여도 살아 남지 못하거늘 하물며 하나님이 사랑하는 아들, 세계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하나님의 아들을 잡아죽였으니 편할 리 만무하지요.

그러면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민족, 선민이라는 이스라엘 민족이 어찌하여 지금까지 나라 없이 유리고객하면서 여러 민족에게 몰리고 쫓기며 고난의 노정을 면치 못하고 비참한 노정을 걸어 나왔는고? 예수를 죽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죽인 죄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는 왔다가 갈 적에 민족에 대한 억울한 심정을 품고,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가 ‘아바 아버지여 할 수만 있다면 이 잔을 피하게 해주시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4천년 역사가 글러 버리게 될 환경에 있던 예수 그리스도의 심정은 몹시 안타까왔던 것입니다. 예수가 죽으면 4천년 역사가 다 끊겨져 나가는 것입니다. 구약성서를 통하여 예언했던 대로 메시아가 죽는 날에는 구약의 역사가 슬픔의 역사로 종국을 본다는 것입니다. 예수가 스스로 죽었나요? 죽임을 당했지, 예수를 죽임으로 말미암아 택함받은 이스라엘 민족은 선민사상을 잃어버렸습니다. 선민권을 빼앗겨 버렸다는 것입니다.

10-328
하나님의 유업이 상속되어지는 때
4천년 동안 선조들이 공들여 닦아 놓은 토대 위에 예수님은 민족을 품기 위해 오셨습니다. 민족을 품기 위해 오셨어요. 그러나 그 민족을 품지 못하게 됨으로 말미암아 그 민족 대신 오늘의 기독교가 세계적으로 제 2의 이스라엘이 되었습니다. 예수는 오늘의 이스라엘 민족을 품어 주지 않습니다. 유대교를 품어 줄 수 없어요. 그들은 아직까지 메시아가 오기를 바라고 있으니 그게 무슨 이스라엘입니까? 죽어간 예수는 유대교를 품고 사랑할 수 있는 처지가 못 됩니다. 유대교가 뜻을 받들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그 뜻은 예수를 믿고 예수를 중심으로 한 기독교가 선민권을 부여받게 된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은 택한 제 2의 이스라엘이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제 2의 이스라엘을 세우셔서 민족을 품고 나서 세계를 품어야 할 노정이 남아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 기독교인들을 소망의 곳으로 몰아내는 거예요.

예수는 세계를 품기 위해서 오셨기에 세계가 기독교 이념을 중심삼고 움직일 수 있는 한 때를 맞기 위해 예수가 다시 와서 세계적인 조상으로 나타나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 땅에 민족을 세우고 주권을 행사할 수 있는 그 하나의 이념 세계를 이룰 때까지 하늘의 싸움의 역사는 끝나지 않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유업은 언제 상속되느뇨? 하늘 땅이 하나 되어서, 하나님께서 이 땅 위에 수많은 인류가 살고 있고 수많은 민족과 국가가 있지만 다 제쳐 놓고 ‘나는 네 하나님이요, 이 민족의 하나님이요, 이 나라의 하나님이다’ 하실 수 있는 존재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하나님의 유업이 상속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 개인은 존중시되고 높이 평가되어야 하며 우주를 대신할 수 있는 가치를 갖고 있는 존재로되, 횡적인 관계를 맺어 가정에 들어가게 되면 가정의 제물이 되어야 합니다. 천리원칙이 그렇습니다. 광물은 식물을 위하여, 식물은 동물을 위하여, 식물과 동물은 사람을 위하여 있듯이, 한개체도 그 가치를 존중시하는 반면, 전체의 가치 앞에 굽히고 들어가야 하는 인연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천지의 원칙이 그렇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자기 개인을 하늘땅과 맞먹는 가치로 평할만큼 귀하다 해도 가정이 있으면 가정을 위해 봉사해야 됩니다. 개인보다는 가정을 위주해야 하고, 가정보다는 사회를 위주해야 하며, 사회보다는 국가를 위주해야 합니다. 더 나아가 국가보다도 세계, 세계보다도 하늘, 하늘보다는 하나님을 위주해야 합니다. 원칙이 그렇게 되어 있어요.

하나님께서 오늘날까지 우여곡절의 노정을 거쳐, 역사노정의 변천을 거쳐 역사를 이끌어 오신 것은 최후의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들 멋대로 점령하고 점령당하고 있지만, 최후에는 하나님께 점령당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점령당하는 동시에 하나님을 점령해야 합니다. 거기에서 모든 것은 종결됩니다.

이는 땅 위의 모든 인류가 가야 할 운명의 길입니다. 이 운명의 길을 헤치고 나아가 하나님을 모셔 놓고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피조세계를 품어 가지고 그 앞에 서서 ‘아버지여, 축복해 주소서’ 할 수 있는 이런 한날을 맞이할 때까지 싸워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절대자가 있다 할진대 그 절대자는 그런 한 날을 맞이하고서야 안식의 자리를 잡을 수 있습니다. 그래야 하늘과 땅이 다 자리를 잡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까지 어떠한 민족을 믿으려 하셨으되 진정으로 믿지 못하셨습니다. 성경 말씀, 이스라엘 선민에게 준 성경 말씀을 보아 가지고 하나님을 점령할 수 없습니다. 믿지 못한 인간들입니다. 그러니 중요한 것은 성경이 비유와 상징으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실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목적하는 바의 귀일점이 이렇다는 것을 알았다 할진대, 이땅 위의 수많은 인류와 민족들은 이제 무엇을 먼저 점령해야 하느냐? 자기의 어떠한 주의나 욕망으로 국가를 통치하고 세계를 정복하는 것도 좋겠지만, 그보다 귀한 것은 하늘 땅을 맞붙여 가지고 하늘 땅을 지으신 창조주를 점령해야 합니다. 그때까지 인간은 나아가야 됩니다.

여러분, ‘하나님 아버지는 내 것이다. 영원한 내 것이다. 이 땅도 내 것이요, 하늘도 내 것이다’라고 인정하지도 아니하고 알지도 못하는 자를 축복해 주시겠어요? 천만부당한 일입니다. 인간이 가야 할 길이 어디뇨? 하늘을 바라보며 이 하늘은 우리 하늘, 땅을 바라보며 이 땅은 우리 땅, 하늘과 땅을 지배하고 계시는 하나님은 우리 하나님이라고 할 수 있는 사상이 나오기 전에는 이 세계에 평화가 오지 않습니다. 이리하여 내 땅이며, 이리하여 내 하늘이며, 이리하여 내 하나님이라고 말할 때. 어느 누구도 아니라고 변명치 못할 자리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그 관념이 철두철미 하게 세워지기 전에는 하늘의 유업은 하늘 땅 어디에고 자리를 잡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알지도 못하고 생각지도 않는 그런 자들에게 주겠습니까? 그러면 또 망하지요.

10-330
하나님이 축복해 주실 자와 종교
그러기에 지금까지 종교에 있어서는 땅은 떼어 버리고 ‘하늘은 내 것이다’ 라고 하며 나오고 있습니다. 땅은 사탄세계예요. 그러기에 땅은 떼어 버리고 하늘은 내 것이라며 지금까지 나왔습니다. 개인으로부터 가정, 민족, 국가, 세계에 이르기까지 땅은 떼어 버리고 하늘만 붙들게 해 왔습니다. 그리하여 하늘을 붙잡은 그 백성을 동원하여 공중권세를 잡고 있는 사탄을 쳐 몰리게 해 가지고 땅을 정복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노정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이제 끝날에는 이 땅과 하늘을 규합시킬 수 있는 종교가 나와야 할 것이거늘 그 종교는 지금까지 역사적인 정통의 노정을 거쳐온 개인을 통할 수 있고 가정을 통할 수 있고 선민 사상을 통할 수 있는 내용의 역사적인 종교여야 됩니다. 현시대에 있어서 일개 종파적인 관념에 사로잡힌 그런 종교로서는 안 됩니다. 어떠한 주의나 사상에 휩쓸려 들어가서도 안됩니다. 어떠한 종파도 문제없고 어떠한 주의 사상도 문제없다고 할 수 있는 종교라야 합니다. 또 그 종교를 믿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이 땅은 우리의 것, 이 하늘도 우리의 것, 하나님도 우리의 것이라고 자신있게 누구에게나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나 사탄 앞에서는 물론 천상에 있는 수많은 선지선열 앞에서까지도 당당히 변명할 수 있는 재료를 가져야 됩니다. 그런 내용을 갖는 동시에 실적을 가져야 축복의 은사가 내린다는 것입니다.

오늘 이 땅에 살고 있는 인류는 지금까지 역사노정에서 이 땅이 어떠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늘이 어떠하셨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더 나아가서 하늘과 땅과 하나님이 우리 인간들 때문에 어떠한 고통을 받으셨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역사적인 동시에 천주적인 유업을 상속시키려 하는 하늘은 이 끝날에 있어서 수많은 민족 앞에 무엇을 예고할 것인고? 어떤 일개 종파만 중심하고 구원받자고 하는 따위는 안 됩니다. ‘오! 하나님, 그저 불쌍히 여기시어 천당 보내 주소서’ 해서도 안 돼요. 어떤 사람에게 그 유업을 상속해 주시겠습니까? 아버지의 집, 창고에 있는 모든 것을 달라고만 하는 사람들에게는 안 해줍니다. 하늘의 유업을 상속받고자 하는 사람은 아버지 대신 고난의 자리까지 나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성도들에게 어찌하여 땅은 버리고 하늘만 찾으라고 했느뇨? 땅이나 하늘이나 모두 하나님이 창조하셨는데 어찌하여 땅은 빼놓고 하늘만 찾게 했는가? 하늘을 찾은 후에 땅은 어떻게 할 것이냐? 땅과 하늘을 찾은 후에 하나님은 어떻게 될 것이냐? 이런 모든 문제를 해명해야 됩니다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요, 하늘은 내 하늘이요, 땅은 내 땅이요, 인류는 우리의 인류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도 부정할 수 없고, 천상의 천사도 부정할 수 없고, 사탄도 부정할 수 없는 재료를 가져야 합니다. 그 중심을 내 것으로 소유하고야 말겠다는 철두철미한 사상을 가진 자가 되기 전에는 아무리 은혜가 많고 사랑이 많은 하나님이라도 축복을 해줄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유업을 상속해 줄 수 있는 한 분, 한 때, 한민족, 한 터전이 나타나기를 바라며 6천년 동안 수고하신 하나님 앞에 나타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축복을 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신자들은 ‘믿고 죽으면 천당가겠지’하고 생각하지만, 천만의 말씀입니다. 여러분, 영계에 가 보십시오, 잘 믿는다고 하는 목사 장로들, 가 보란 말입니다. 손들고 이럴 줄 몰랐다고 하게 되나 안 되나 가 보란 말입니다. 왜? 하나님의 소원이 무엇인지, 하나님의 심정이 어떠한지, 하나님의 사정이 어떠한지 모르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소원이 예수 잘 믿는 것인 줄 압니까? 예수만 믿어 가지고 뭘 하겠다는 거예요? 예수를 믿어 가지고 사탄세계를 정복해야 됩니다. 목적은 그것입니다. 일개인의 구원이 목적이 아닙니다. 개인을 찾아 세워 가지고 개인으로 말미암아 이 세계를, 사탄세계를 빼앗아 와야 됩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믿고 천당 가겠다고요? 가 보십시오. 가 보란 말입니다. 그런 신앙 할 때는 지나갔습니다.

이제 우리 신도들은, 전세계 기독교인들은 하늘이 택하신 재 1이스라엘 민족과 마찬가지입니다. 이는 일개인이나 일개 국가를 대신하여 나타난 것이 아니라 세계를 대신하여 나타났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제 2이스라엘 선민권내에 들어있는 전세계 기독교인들은 단결하여야 합니다. 모세가 가나안 복지를 향하여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7족을 멸하라고 명령하였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그러면 이 시대에 있어서 하늘이 바라시는 소원은 무엇일 것인가? 하나님이 없다 하는 곳에는 한 치의 땅도, 지으신 만물 하나도 두고 싶어하지 않으십니다. 만물도 하나님의 손길을 거쳐 지어진 것이요, 만민도 하나님의 손길을 거쳐 지어진 것일진대, 주인을 배반한 곳에 하나님은 최후의 승리의 터전을 갖출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전세계 기독교인들은 단결하여 어떠한 사람들을 내세워야 할 것이뇨? 역사적인 심정을 대신하였던 사람들을 내세워야 합니다.

지금까지 6천년 동안 섭리해 나오신 하나님의 역사는 무엇을 빼앗아 나았느냐 하면 축복을 빼앗아 나왔습니다. 즉, 다시 말해서 상속권을, 유업을 남겨 나왔습니다.

10-333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택해 세운 것은
아담이 타락한 그날부터 2천년이 지나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택해 세우셨습니다. 아까 성경 본문에서 본 것과 마찬가지로 아브라함을 택하셨는데, 이는 아브라함 하나를 위해 택한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악한 땅 위에 하늘을 알지 못하는 이 땅 위에 아브라함을 택한 것은 아브라함 일개인이나 그 종족을 위해 택한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그 민족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택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그 후손을 택한 것은 하나님을 위하여 택한 것이지 그 민족을 위하여 택한 것이 아닙니다.

당시의 아브라함은 ‘저는 몰랐사온데 하나님 고맙사옵니다. 역사노정에서의 믿을 수 있는 하나의 선조로 세워 주시니 고맙습니다’ 하는 입장이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하늘을 믿고 따르고 있었으되, 하나님은 그 가운데에서 아브라함을 대하여 ‘나는 네 하나님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네 하나님이다’ 하였습니다. 이러한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아담이 타락한 그날부터 2천년 동안 수고하며 찾아 세운 사람입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 능력으로 아브라함을 일시에 몇백 번 택할 수 있지만, 창조법도에 의하지 않고는 택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원리원칙과 순리적인 조건과 전후 좌우 상하의 구비점을 갖추어 가지고 수많은 민족을 수습하셨고 수많은 가정을 수습하셨고 수많은 개인을 찾았습니다. 그 가운데에서 아브라함을 불러 세우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불러 세우게 될 때, 아브라함 하나만 붙들고 불러 세웠겠습니까? 천만의 말씀입니다. 아브라함 하나를 세울 때는 수많은 사람들을 다 테스트해 가지고 그 가운데에서 아브라함을 세웠습니다. 아브라함이 재산이 많고 가문이 훌륭해서가 아니라 하늘 앞에 정성을 들임에 있어서 그 시대에 최고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개인적인 기대가 되었기 때문에 택한 것입니다.

그러면 개인 아브라함은 어떤 개인이뇨? 개인을 찾는 하나님의 섭리의 상속자요, 하나님이 남겨 주신 땅의 상속자입니다. 이것을 알아야 돼요.

아브라함은 어떤 사람이뇨? 인간들에게 하나님의 전체의 유업을 상속하는 것이 섭리의 목적인데, 그 목적을 이루어 나가는 데 있어서 한 사람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2천년 동안 수고하여 찾아 세워 축복하신 하나님의 유업 상속자입니다. 그러니 이스라엘 민족들은, 아브라함의 후손들은 아브라함의 유업을 상속받아야 했습니다. 그것이 곧 축복입니다, 축복.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손을 들어 축복하던 그 축복을 상속받아야 합니다. 고마운 것은, 이 땅에 수많은 종족이 살고 있고 수많은 사람이 살고 있으되 단 한분 미래의 조상이라고 하여서 개인을 찾아 세울 수 있는 하나님의 유업을 우리에게 주었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함부로 대한 민족은 망했습니다.

그러면 아브라함이 개인적인 축복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떠한 자리로 나아가야 했느뇨? 이는 자기가 살고 있는 땅 위에서 최고의 정성을 들인 자로 하늘이 알아주신 바 되었지만, 일단 하늘이 불러 세운 그 시간부터는 하나님이 명령하십니다, 하나님이 명령하시는 거예요. 하나님은 인간 대해서 명령을 해보지 못하셨습니다. 본연의 선의 심정을 지니신 하나님으로서 참다운 유업상속의 대표자를 세워 명령을 해보지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받으려면 지금 자기가 좋다고 하면서 살고 있는 그 환경에서는 안 됩니다. 특정한 지역을 택해 가지고 거기에 가라 하십니다. 가고 나서부터 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는 어떠한 내용을 설명하지 않으시고 무작정 가라고 하셨습니다. 인근 친척들과 재미있게 살고 가정 기물을 다 갖추어 안락하게 살던 아브라함에게 갈대아 우르를 떠나라는 청천벽력과 같은 명령이 내렸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예 아버지, 당신의 명령이온데 내 어찌 아니 가오리까’ 하며 떠났습니다.

그가 행랑 보따리를 짊어지고 나서게 될 때 좋은 곳으로 보낸 것이 아니었습니다. 광야로 내몰았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쓸쓸한 곳으로 내몰았습니다. 내모는 데는 사탄들이 많은 곳으로 내모는 것입니다. 사탄들이 많은 곳으로 내몰아요. 이걸 알아야 됩니다. 왜? 하나님의 유업을 상속받을 자는 사탄의 참소를 벗어나야 되기 때문입니다. 사탄의 참소를 받는 자에게 하늘의 유업을 상속시킬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난의 길로 내모는 것입니다.

그러나 ‘나를 버리고 가정을 버리고 환경을 버리라 하신 하나님이시여 ! 나를 사랑하시는 당신의 마음, 나를 사랑하시는 당신의 뜻을 내가 압니다. 내가 당신을 배반하기 전에는 당신은 나를 배반하지 않으시고, 내가 당신을 저버리기 전에는 당신은 나를 저버리지 않으시며, 죽을 자리에 들어갈지라도 그 자리에서 내가 당신을 배반하지 앉으면 쓰러져 죽은 나의 영을 일으켜서라도 살아서 뜻을 이루어 승리한 자의 자리에 두시려 하는 당신의 마음을 압니다’ 한 아브라함이었습니다. 이러한 기준이 어느 누구보다 철두철미했기 때문에 그는 개인적으로 세계를 대신하여 하나님의 유업을 상속받고 미래의 축복을 약속받았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개인적인 유업 상속자가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축복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너로 말미암아 이제 네 민족이 해야 할 것은 무엇이뇨? 너는 내 뜻을 본받아 하늘의 명령에는 생사지경도 개의치 않고 움직일 수 있는 후손을 가져 목적하는 이 세계를 정복하고 하늘과 땅을 통일시켜야 한다. 그 다음에는 나까지도 너희의 하나님으로 인정하노라’ 라고.

아브라함은 개인적인 유업을 상속받은 축복받은 자이기에, 개인적인 유업을 상속받는 데 동참하기 위해서는 아브라함을 지성껏 모셔야 됩니다. 이것이 원칙입니다.

10-335
가정 유업 상속권 복귀를 위해 택한 야곱
아브라함 한 개인을 택해 세웠지만, 아브라함이 제물 실수를 함으로 말미암아 가정을 택하지 못했기에 이삭을 거쳐 야곱에까지 3대를 내려간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3대만에 아브라함 개인에게 축복하였던 개인 유업의 실체를 한 단계 높여 가정적으로 유업의 복귀를 이룰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 가정 복귀의 기준으로서 누구를 택했느냐? 야곱을 택했습니다. 가정을 찾기 위한 축복의 기반으로 아브라함을 세웠지만, 그 축복이 처음 이루어진 것은 야곱 때였습니다. 성경 말씀을 보면,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라고 했고 그 다음에 야곱의 집을 축복했습니다. 아브라함의 집을 축복하지 않았어요. 야곱 때는 이미 개인유업 상속시대가 지나 가정유업 상속권을 복귀해야 할 시대에 들어갔기 때문에, 하나님은 가정기준을 세우기 위해 야곱을 내몰았던 것입니다. 야곱이 에서를 속인 동기와 그 복잡한 내용은 시간 관계상 다음에 이야기하겠습니다. 어쨌든 하나님은 야곱을 통하여 역사하셨습니다.

야곱은 에서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한 연고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의 뜻을 대신한 야곱이었기에 에서가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세상적인 모든 것 다 끊어 버릴지라도, 혈연관계, 육친적인 모든 것을 다 끊어 버리고라도 하나님의 뜻을 위하고자 하는 야곱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아브라함을 갈대아 우르에서 끌어 내어 가지고 뜻을 이루기 위해 내몰았던 하나님께서 그 기준에 있어서 어느 누구보다도 야곱이 하늘의 유업을 상속받기에 합당하기 때문에 그에게 축복을 넘겨준 것입니다.

야곱은 하란에 있는 라반의 집에 가서 종살이를 했습니다. 우상을 섬기던 라반의 집에 가서 갖은 고역을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21년간의 고역 노정을 무난히 돌파하였습니다. 야곱에게 있어서 라반은 외삼촌이었지만 원수와 같았습니다. 그 라반을 쳐서 축복을 빼앗고 하늘의 협조를 얻어 자기 일가를 솔거하여 다시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시련 도상으로, 20여 년의 갖은 고역의 노정으로, 춘풍추우에 꺼슬리는 서글픈 환경으로 내몰렸을 때, 야곱은 얼마나 하나님을 배반하고 싶었겠습니까! 그러나 내가 변하기 전에는 나를 축복해 주신 하나님의 뜻도 변하지 않는다는 신념을 가진 야곱이었기에 자기 고향으로 돌아 갈 수 있었습니다.

라반의 집에서 승리했으니 그 다음엔 영적인 사탄까지 승리해야 합니다. 그래서 사탄 대신 나타난 천사와 씨름을 한 것입니다. 그 씨름에서 승리하여 가정적인 기준을 세웠기 때문에 이스라엘 민족이 택함받은 민족으로 출생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야곱의 열 두 아들이 12지파를 형성하고 12지파는 12사도를 대신하여 역사를 이루어 나온 것입니다.

고마운 것은 타락한 인류가 사는 이 땅 위에, 타락한 민족들이 사망의 촉각을 높이는 이 땅 위에 개인적인 유업의 승리자를 세우고 야곱의 일가를 통하여 가정적인 승리의 기준을 세워 하늘의 유업이 이 땅에 남아지게 된 것입니다. 야곱을 통하여 세운 그 가정은 하늘이 사랑하는 가정입니다.

그러면 야곱은 누구뇨? 가정적인 조상입니다. 아브라함은 개인적인 조상이로되 야곱은 가정적인 조상으로 등장한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야곱의 집을 축복해 주셨습니다. 이렇게 올라가는 것입니다, 야곱을 중심삼은 야곱의 일가는 소망의 동산에서 세계의 유업을 상속받을 수 있는 가정적인 기반으로 하나님이 인정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야곱을 중심삼고 흘러나온 이스라엘 민족은 그들의 지도자를 새 세계의 유업을 상속받을 수 있는 기반 위에 세워 놓아야 합니다.

그래서 하늘은 가정적으로 승리의 기준을 갖춘 이스라엘 민족에게 가정적 축복을 해 준 다음 그들을 어디로 내쫓았는가? 바로 궁중으로, 애급으로 내쫓았습니다. 오늘날 예수 믿는 사람들, 예수 믿어 복받고 천당 가겠다구요? 천만부당한 일입니다. 반드시 세상을 이겨야 합니다. 자기 환경을 정리해 가지고 이겨야 됩니다. 오늘 여기서 살다가 내일 저리 가라하면 가야 됩니다. 그 땅이 하늘이 택한 땅이 못 되어서 그 땅에서는 하늘의 뜻을 이룰 수 없고 다른 땅에서 이룰 수 있다면 그곳으로 가야 합니다. 왜 ? 세계적인 대표이기 때문입니다. 개인으로서, 혹은 가정으로서 세계의 대표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명령하면 세계를 대표하는 가정이 그냥 머물러 있을 수 없습니다. 하늘이 '어디 어디를 거쳐서 세계적인 이념을 세울 수 있는 곳으로 가라’ 하면 ‘예’ 하고 일언반구의 불평도 없이 절대 복종해야 합니다.

이리하여 야곱의 가정은 애급으로 가서 4백년 동안 갖은 고역을 당하고 학대를 받았습니다. 그러한 어려은 자리에 쳐넣어졌지만, 야곱의 집을 축복한 하나님의 뜻은 변함이 없고 자기 민족이 하나님을 저버리기 전에는 하나님이 자기 민족을 버리지 않으신다는 것을 믿고 나온 사람들은 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되어 나온 거예요.

10-337
민족적인 유업상속의 대표자로 세운 모세
이스라엘 민족이 애급에서 4백년 동안 고역을 하고 60만 대중이 유리고객할 때에, 개인으로부터 가정적 유업상속의 축복기준을 세우신 하늘은 한 단계 올라가 민족적인 유업상속의 대표자를 세워야 했기에, 민족적 유업상속의 대표자로 세운 사람이 누구냐 하면 모세입니다. 모세는 60만 대중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존재입니다. 민족적으로 볼 때에는 60만 분의 1이로되 뜻으로 볼 때는 조상의 입장에 있었으니, 민족 유업의 뜻을 이루는 데 있어서 모세를 통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애급 고역노정에서도, 원수들의 핍박 가운데에서도 천적인 절개를 지키고 어떠한 호화찬란한 자리에서도 택함받은 선민이라는 사상을 잊어버리지 않고, 즉 아브라함의 축복과 야곱의 집의 축복을 잊어버리지 않고 일관하여 민족유업을 상속받을 수 있는 심지(心志)를 굳혀온 모세에게 있어 축복은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모세는 호화찬란한 바로 궁중에서 공주의 아들로서 천하를 가질 수 있는 환경에 있었으되 내 동기는 다르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 생활 속에서도 동편의 자기 조국을 향하여 남모르는 기도를 한 모세였습니다. 좋은 옷을 입을 적마다 도탄 중에 쓰러져 가는 민족을 염려하던 모세였습니다. 좋은 옷을 입고 민족을 바라 볼 때 더욱 가슴이 아팠다는 것입니다. ‘차라리 내가 이런 자리에 있지 않고 너희들과 같은 자리에 있고 같은 옷을 입으면 마음이 편할 것을…’ 하고 생각한 모세였습니다. 모든 것이 갖추어진 호화찬란한 환경에서 그들을 바라볼 적마다 가슴에 못이 박혔던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 저 불쌍한 민족을 위하여 제가 선두에 서겠습니다’라고 수십년 동안 남이 모르는 가운데 기도하였습니다. 일편단심, 하나님의 심정 골수에 통할 수 있는 기도를 하였습니다. 그런 동기가 있었기에 하나님은 모세를 택하였던 것입니다. 그런 자유롭고 풍요하고 호화로운 환경 속에서도 하늘을 대하여 정성을 들이고, 민족을 위하는데 있어서 4백년 고역으로 도탄에 빠진 60만 이스라엘 민족 어느 누구에게도 비할 수 없는 충성의 심정을 모세가 갖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천지를 대신하는 한 개인을 찾아 세우기까지 2천년, 한 가정을 찾아 세우기까지 120년, 거기에 다시 4백년의 노정을 거쳐 모세를 세우기까지 2400년을 수고하였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피어린 심정을 알고 ‘당신이 축복하신 민족이 어찌하여 이렇게 되었으며, 당신이 불러 세우신 민족이 어찌하여 이렇게 되었습니까?’ 하며 통탄한 모세였습니다. 민족의 슬픔을 자기의 슬픔으로, 민족의 아픔을 자기의 아픔으로, 민족의 억울함을 자기의 억울함으로 알았던 모세였기에 애급인을 돌로 쳐죽였습니다. 그것을 사람을 죽였다는 면에서보다도 민족을 사랑하는 심정적인 면에서 볼때 ‘하나님이 택한 민족이 어찌하여 이와 같은 자리에 있는가?' 하는 분하고 원통한 심정, 하나님의 심정과 동일한 심정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가 애급인을 때려죽여도 사탄이 참소 못했던 것입니다. 이는 민족을 위함이요, 하나님을 위함이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자기가 처한 환경이 자유롭지 못한 것을 깨닫고 호화스런 환경을 일시에 다 버렸습니다. 자기의 모든 환경을 저버리고 ‘지긋 지긋한 40평생을 오로지 민족을 위하여 심혈을 기울였거늘, 다시 바로 궁중에 들어가 이 몸을 더럽힐소냐’ 하며 미디안 광야를 향하여 나서는 모세의 발걸음은 하나님이 동반한 걸음이었습니다, 그가 민족을 뒤로 하고 바로 궁중을 뒤로 하고 미디안 광야를 향할 때에는 눈물이 앞을 가렸습니다. 그만큼 하나님과의 심정적 인연이 두터웠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목자 생활을 40년이나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민족을 위하여, 철저한 선민사상으로 그러한 길을 간 모세가 자기 일신의 처량한 사실을 갖고 탄식했다면 무수히 탄식했을 것입니다. 1, 2년이 아니라 40년입니다, 모세는 양떼를 몰 적마다 이스라엘 민족을 연상하였고, 주인을 따라오는 양떼를 바라볼 적마다 60만 대중을 연상하여 그들과 더불어 바로 궁중을 나와 택한 축복의 땅, 가나안 복지로 향할 날을 위해 기도하고 명상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10-339
모세를 따라 민족적 유업을 상속받아야 했던 이스라엘 민족
모새가 40년 동안 눈물 흘리고 피땀 흘리며 심정을 기울여 호소한 것을 하나님이 아셨기에, 모세는 ‘내 소원의 날이 왔노라’하며 40년 만에 80노구를 이끌고 하나님의 축복의 뜻을 가지고 바로 궁중으로 되돌아갔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모세를 전민족의 대표자로 세우셨습니다. 모세를 세운 날부터 모세가 책임자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서 말씀하시지 민족을 통해서는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일단 책임자를 세웠으면 그에게 전권을 맡겨 가지고 그를 통하여 지배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모세를 불러 세운 그날부터는 60만 대중을 쓸어 버리는 한이 있다 할지라도 모세 하나만은 버리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중심, 즉 주체가 대상보다도 더 가치적이지 않으면 자리를 못 잡는다는 것입니다. 택하기 전에는 모르지만 일단 택해 놓은 그날부터는 60만 대중을 쓸어 버리면 쓸어 버렸지 모세는 못 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런 기준에서 60만 대중 앞에 모세를 보냈습니다. 바로 궁중에 돌아가서 모세는 10여 차례의 이적 행사를 통하여 바로와 이스라엘 민족을 분립 시키고 승리의 기준을 세워 바로를 속이며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나왔습니다. 야곱이 라반의 집에서 몽땅 가지고 나온 것과 마찬가지로 모세도 애급나라에서 나올 때 몽땅 받아 가지고 나왔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죽더라도 모세를 붙들고 죽어야 했습니다. 죽으나 사나 모세가 일편단심 하늘에 충성하던 거와 마찬가지로 이스라엘 민족도 모세가 가는 곳은 어디든지 따라가야 했던 것입니다. 모세가 눈물을 흘리면 그 눈물은 민족을 위한 눈물이니 민족도 울어야 하고, 모세가 싸우면 그 싸움은 민족의 싸움이니 민족도 싸워야 했습니다. 민족적인 유업의 실체로 택해 세운 것이 모세이거늘, 모세를 잘 받들면 민족이 유업을 다 상속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민족은 광야에서 모세를 믿지 못하고 불평 불만을 했습니다. 애급나라에 살 때는 그래도 굶지는 않았는데, 60만 대중이 광야에 나가서 1, 2년도 아닌 40년을 유리고객하였으니 이 이스라엘 민족이 어떠했겠는지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만일 오늘날 전세계에 널려 있는 기독교인들을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 황무지에 끌어다 놓고 4년만 살라고 하면 모세를 쥐어 뜯어 가지고 가루를 만들어 놓을 거예요. 그래도 이스라엘 민쪽은 용합니다. 40년 동안 참았으니 말예요. 가자면 갔습니다. 택한 뜻앞에 이스라엘 민족은 모세를 따라갔습니다. 그러나 하늘의 법도란 인간의 법과 달라서 사탄과의 조건이 처리되어야 민족을 처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그런 고충이 따른다는 것을 이스라엘 민족은 몰랐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민족을 세워 놓으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사탄도 민족을 빼앗으려 하고 하나님도 민족을 이끌어야 하니 하나님께는 민족을 대하기 전에 사탄을 처리해야 할 조건이 있는 것입니다. 이 조건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을 40년 동안 유리고객하게 한 것입니다. 그렇게 해야 하는 하나님의 심정은 얼마나 원통하고 안타까웠겠습니까?

10-341
공의의 법도에 의해 행해지는 섭리
잘못되면 아담이 타락한 이후부터 모세까지 2400년의 역사가 한꺼번에 꺾여 나가는 판국인데, 하나님도 얼마나 이스라엘 민족을 곧바로 가나안 복지로 들여보내고 싶었겠습니까? 그렇지만 인간을 대하는 데 있어서 하나님은 반드시 민족을 걸어 놓고 사탄과 싸우는 조건을 해결해야 합니다. 그러기 전에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 조건 때문에 과거의 선지자들이나 모세, 예수가 죽임을 당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6천년 역사가 이런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과 사탄 사이에 공의의 법도를 세워 놓고 그것으로 민족을 걸어 놓고 처리해야 할 조건이 있습니다. 이 조건이 해결되기 전에는 민족을 목적지에 갖다 놓을 수가 없습니다. 시련과정에는 둘 수 있으되 목적지에 갖다 놓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민족을 놓고 하나님과 사탄이 해결지어야 하는 천적인 내막을 모르는 이스라엘 민족은 배고프고 굶주리는 처량한 사정에 부딪치게 될 때에 모세를 바라보는 것보다도 자기의 자녀를 바라보게 되고, 모세를 생각하는 것보다도 자녀를 생각하게 되고 자기의 처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애급에 있을 때는 그래도 굶주리지는 않았는데, 40년 동안 광야에서 유리고객하는 생활을 하니 얼마나 처량했겠습니까? 입을 것이라곤 다 해어졌고 먹을 것이라곤 다 없어졌으며 마실 것도 없었습니다. 그런 판국에 놓여 있으니 그 처지가 얼마나 딱했으면 하늘이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려 주었겠습니까?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이 능력이 많아서 그저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려 준 것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한번 이적을 행하여 그 이적을 그냥 그대로 믿지 못하고 지키지 못할 때는 그것이 조건이 되어 사탄에게 물려가게 됩니다. 예수도 이적을 행하지 않았으면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모세도 이스라엘 민족을 살리기 위해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리지 않았다면 그도 이스라엘 민족도 광야에서 쓰러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것을 몰랐습니다. 그저 권능, 권능만을 요구했던 것입니다. 권능으로만 할 수 있으면 6천년이 걸리지 않아도 된다는 것입니다. 권능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하늘과 사탄 사이에 어길 수 없는 법도를 세워 놓고 그런 행사를 한다는 것입니다. 만일 이것을 민족이 하지 못할 때에는 그 민족이 전부 쓰러진다는 조건을 걸어 놓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오늘날 믿는 사람들은 알지를 못했습니다.

만나와 메추라기, 불기등, 구름기둥을 이스라엘 민족에게 주시기 위해 하늘이 얼마나 많은 고심을 하였던고! 민족 앞에 그런 이적을 행사하기 위해서 하늘은 얼마만큼 사탄과 피어린 혈투전을 벌였겠습니까? 영계에서 제물된 눈물과 제물된 피와 제물된 땀의 기대 위에서 민족을 고이 바친다는 희생의 조건을 세워 놓고 그런 행사를 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4백년 동안 애급에서 고역한 대가로, 수천 수백년 동안 택한 이스라엘 민족이 수고한 대가로 광야노정에서 그런 행사를 했던 것입니다. 사탄이 굶주린 것을 먹여 줘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입니다. 굶주린 민족을 먹여 주었으면 사탄도 굶주릴 때 법도에 어긋나지 않으면 먹여 줘야 된다는 것입니다. 모세는 그런 것을 몰랐습니다. 이렇게 하라면 이렇게 하고 저렇게 하라면 저렇게 할 뿐이었습니다. 곡절은 설명하지 않고 목적을 향하여 인도하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이리 가라고 하면 이리 가고, 저리 가라고 하면 저리 가고, 이래라 저래라 하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모세, 뜻만을 위한 모세도 훌륭하였거니와 이스라엘 민족도 훌륭했습니다.

그렇지만 이들이 최후까지 가야 할 뜻 앞에서 모세가 반석을 두번 치는 혈기를 부림으로 말미암아 이것이 화근이 되어 모세도 쓰러지고 이스라엘 민족도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이게 무슨 곡절이냐? 천적인 처리 문제가 저끄러졌기 때문입니다. 한 나라의 주권 안에 있는 백성들이 그 나라의 법도를 어기면 망합니다. 천상의 법도에 걸리면 넘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내용에 걸려서 이스라엘 민족은 광야에서 제물이 되었습니다. 그 후손이 남아 가지고 이스라엘의 전통을 세워 나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 앞에는 야곱의 집 대신 민족의 집이 있었나니 그것이 무엇이냐? 광야시대의 장막입니다. 모세를 모시고 나온 후부터는 장막이 집입니다. 민족이 거해야 할 집이예요. 그러니 죽더라도 장막을 붙들고 살더라도 장막을 붙들어야 합니다. 죽는 한이 있더라도 장막을 떠나서는 안 됩니다. 장막을 붙들고 나가야 합니다. 그러나 그 민족은 장막이 무엇인지 몰랐습니다. 그러니 장막을 붙들고 나오는 모세를 등한시하고 조롱을 안 했겠습니까? 생각해 보십시오. 안 했겠나 말입니다. 60만 대중이 별의별 소리 다 했겠지. 그리하여 민족이 모세와 하나되지 못하고 갈라졌으니 민족이 거해야 할 집, 즉 민족의 집. 장막은 별수없이 사탄에게 넘어간 것입니다. 민족이 그렇게 되니 사탄이 물어갔던 것입니다.

10-343
이스라엘민족이 중심인물과 하나가 되어 단결했더라면
그렇지만 그 민족의 2세들은 참았습니다. 2세들만은 하늘의 뜻을 따랐습니다. 그래서 2세를 대표한 여호수아와 갈렙을 세워 가지고 가나안 복귀노정을 마치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 성전 이념을 중심삼고 지금까지 나온 것입니다. 성전은 무엇이뇨? 성전은 이스라엘 민족의 집입니다. 그것이 앞으로 무엇이 되느냐 하면 하늘 땅을 지배할 수 있는 왕궁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장성하여 크게 된다면 어떻게 되느냐 하면 하나님이 군림 하실 수 있는 궁전이 되는 것입니다. 야곱의 집, 가정적인 집, 민족적인 집인 이 성전을 토대로 하여 누가 오시느냐? 약속한 메시아가 오십니다. 모세를 중심삼고 단결하여 장막을 떠나서는 안 될 민족이 마음대로 하다가 전부 다 망했습니다. 민족의 집을 잃어버렸으니 망하는 거지요.

이스라엘 민족은 가나안에 복귀한 후에 메시아를 고대했습니다. 천 오륙백 년이란 기간 동안을 고대하면서 나온 그 노정이 얼마나 복잡했고 그동안 얼마나 고생했습니까? 이것은 민족을 대신하여 지어진 민족의 집을 잃어버린 연고입니다. 민족의 집을 잃어버렸으니 민족의 집을 세워야 합니다.

그러면 그 민족의 집이 완성된 후에는 누가 올 것이뇨? 세계적인 유업의 실체가 오십니다. 하나님이 이 땅 위에 하늘의 유업을 상속할 수 있는 실체로 보내실 세계적인 대신자가 누구뇨? 메시아입니다.

메시아는 이스라엘 민족의 터전 위에 오시는 세계적인 조상입니다. 세계적인 조상이예요. 예수는 이 땅 위에 오셔서 ‘나는 너희들의 집이다. 내 몸이 곧 성전이다’라고 했습니다. 개인을 거치고 가정을 거치고 민족을 거치고 국가를 거치고 세계를 거친 후에는 실체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내적인 집이 아니예요. 내적인 집을 거쳐 심정의 집까지 들어가야 합니다.

예수는 이 땅 위에 나타났나니, 만민을 대신하여 이스라엘 민족 앞에 나타났나니, 이스라엘 국가를 대신할 수 있는 주권자로 오신 것입니다. 전세계의 수많은 국가는 주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도 싸우려니 최소한의 주권이 있어야 했습니다. 하늘이 이스라엘이란 약소민족을 택하신 것도 뜻이 있습니다. 하늘이 장악할 수 있는 최소한의 주권만 가지면 큰나라도 부릴 수 있습니다. 안 그래요? 대한민국을 보더라도 그렇습니다. 대한민국 같은 조그만 주권국가들도 미국 같은 나라와 일대일로 대할 수 있고 싸울 수 있는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늘이 바라는 것은 국가적인 기반 위에 국가적인 유업을 대신할 수 있는 국가적인 조상을 보내는 것입니다. 이 국가가 세워지면 전세계의 국가는 여기에 굴복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만왕의 왕이라고 했는데 명사뿐만의 왕이 아니라 사실의 왕으로 모셔야 하는 것입니다.

모세와 이스라엘 민족이 단결했더라면 아무리 이적기사를 행했더라도 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틈이 날 때에는 망하지만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산다는 각오만 가졌더라면 아무리 이적행사를 했더라도 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모세와 그 민족이 갈라지게 되니 깨져 나간 것입니다. 예수도 이스라엘 민족과 단결하여 이적기사를 행했더라면 세계의 정복은 문제없었을 것입니다. 문제없이 해낼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모세도 그 민족과 하나 되었더라면 가나안 땅에 복귀했을 것입니다.

모세와 이스라엘 60만 대중도 선민이 되기 위해서 원수의 나라에 가서 싸워 가지고 승리했으니. 이스라엘 민족이 선민으로서 천민(天民)이 되기 위해서는 예수와 이스라엘 민족도 원수의 나라에 들어가, 원수의 품에 들어가서 싸워야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때 이스라엘이 반드시 로마제국의 식민지여야 했던 것입니다. 거기에서 단결하여 로마제국과 싸워 가지고 로마제국으로부터 해방되어야 했습니다. 이것은 필연적인 조건입니다. 이스라엘의 구주로 온 예수가 빌라도의 법정에서 공판을 받다니요? 이는 민족의 실수였습니다. 예수님을 죽인 것은 민란이 일어날까봐 두려웠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예수와 하나로 단결되었다면 못 죽인다는 것입니다.

예수가 온 그날부터 이스라엘 민족은 성전을 대신한 예수, 4천년 만에 성전의 실체로서 나타나신 그 예수를 중심삼고 하나 되어야 했습니다. 예수는 이스라엘을 전부 품을 수 있는 민족의 집으로 등장하신 분입니다, 예수를 축복한 그날부터, 예수를 이 땅에 보낸 그날부터 하늘 유업의 중심적인 대표자로 세웠기 때문에 누구와도 바꿀 수 없다는 것입니다. 수백만 이스라엘 민족을 저버리면 저버렸지 예수님은 절대로 버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죽어갔습니다. 이 땅 위에 우리의 영생의 집이 될 수 있는 중심으로 왔던 예수님은 죽어갔습니다. 그가 죽고 난 후에는 바리 새인을 위시한 유대교가 아무리 성전을 지켰댔자 하나님이 임재할 수 없기 때문에 그건 깨지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거두어서 축복해 준 예수는 세계적인 대표이기 때문에 예수 하나가 쓰러지는 날에는 모든 것이 깨져 버리는 것입니다.

10-345
세계적 가나안 복귀를 위해 가야 할 전세계 기독교인들
그러나 죽어간 예수의 뜻을 따라 믿고 충성을 다하던 마음을 받들어 택함받은 민족을 원수로 삼아 나선 무리가 있었으니, 그 무리가 나사렛 예수당이었습니다. 예수의 무리였습니다. 이들이 민족으로부터 몰리고 로마제국으로부터 몰리면서 쫓기는 무리로서 죽음의 핏줄기를 연하여 세계적으로 확대되어 등장한 것이 기독교입니다. 예수의 이념을 갖추어 잃어버린 이스라엘의 한을 대신 짊어지고 세계적인 형체로 몰아 놓은 것이 오늘의 기독교라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제 1이스라엘을 잃어버린 연고로 이스라엘을 통하여 세계를 수습하려던 예수의 이념과 하나님의 뜻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 2이스라엘을 축복하여 예수와 더불어 하나되어 세계적인 이스라엘 건국운동을 전개해 나온 것이 기독교의 역사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에는 12지파와 70장로가 있었는데, 이들은 모세의 명령에 복종해야 합니다. 오늘날 전세계에 널려 있는 기독교에 수많은 교파가 있을 수 있으되 모두 예수님에게 복종해야 합니다.

야곱의 열두 아들도 야곱을 따랐었고 모세의 12지파도 모세 앞에 복종했듯이 오늘날 전세계에 널려 있는 수많은 교단들은 모두 예수 앞에 복종해야 합니다. 무슨 복종? 야곱의 아들 딸은 죽든 살든 뜻 앞에 복종하던 야곱에겐 복종해야 했습니다. 가나안 복귀노정에 있어서 이스라엘 민족은 죽든 살든 모세를 따라야 했습니다. 오늘날 땅 위에 있는 전세계 기독교인들은 자기 교파가 문제가 아닙니다. 세계적 가나안 복귀를 완성하기 위하여 지상천국을 향하여 행군해야 합니다.

이 땅은 바로의 왕국과 같습니다. 사탄세계입니다. 6천년 동안 지지리 사탄의 발판이 된 땅이기에 이 땅에 사는 기독교인들이 죽음의 길을 걷고 걸어 나온 것입니다. 이렇게 죽음을 무릅쓰고 싸워 예수의 발판이 세계적으로 넓혀졌습니다. 기독교가 그래서 세계의 절반 이상 지배할 수 있는 권내에 들어 왔습니다. 이제 사탄세계를 쳐부숴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왜 지금까지 가만히 계셨는지 압니까? 그것은 근본이 끊어졌기 때문입니다.

이제 하늘의 호령이 내릴 때가 왔거늘, 세계에 널려 있는 기독교인들은 종파를 초월하여 주의 나팔소리와 더불어 제 2이스라엘의 방향을 갖추어 새 에덴을 향하여, 새 가나안 나라를 향하여, 새 가나안 천국을 향하여 행군의 나팔을 불어야 합니다. 여기엔 종파가 문제가 아닙니다. 내 교파 네 교파가 문제가 아닙니다. 지금 때는 광야시대입니다. 1차 세계대전 이후 40년은 광야노정에 해당되는 때입니다.

1차, 2차, 3차 40년 노정 동안에는 세계가 뒤넘이치는 것입니다. 더 구체적인 내용은 따로 시간을 내서 이야기할 때가 있을 것입니다. 도탄중에 처해 있는 세계 인류입니다. 여기에서 어떠한 종파나 지파가 문제가 아닙니다. 모세를 따르던 70장로와 이스라엘 민족이 그런 길을 걸었습니다. 그러니 종말시대에 있어 제 2이스라엘도 그런 길을 가야 합니다. 요단강을 건너 새로운 천국, 새로운 가나안 땅을 향하여 넘어가는 데는 3년 고역노정이 있습니다. 3일의 성별기간이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예수님도 부활하여 천국동산에 가기 위해서는 십자가의 3일 고난기간이 있었고 야곱에게도 3일 기간이 있었고, 모세에게도 3일 기간이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세계적인 유업을 계승하여 이루실 실체로 오시는 메시아에게도 그런 기간이 있고, 이스라엘 후손과 전세계 기독교인에게도 반드시 그런 노정이 있습니다. 이 노정을 거쳐야 가나안의 이념세계를 맞이할 수 있는 끝날의 나팔소리가 들려올 것을 알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어떻게 할 것이냐? 기필코 우리는 떠나야 합니다. 아브라함을 대해서도 명령했고, 야곱을 대해서도 명령했습니다. 예수도 민족을 거느리고 세계 유업 복귀의 사명을 완결하기 위해 왔었으나, 그 사명을 완결짓지 못하고 갔기에 다시 온다는 것입니다.

10-347
세계적인 유업을 상속받아야 할 우리
이제 우리들은 어떠한 관념을 가져야 될 것이냐? 우리의 목적은 예수입니다 모세를 따르던 이스라엘 민족의 목적은 모세입니다. 동시에 그들은 모세를 발판으로 하여 예수를 붙잡아야 됩니다. 그래야 될 게 아니예요? 그것이 민족적인 사명입니다. 그러면 이 시대에 있어서는, 주님이 오신다 할진대 우리는 세계적인 가나안 복귀를 완성하기 위한 책임자로 오시는 그 주님을 맞이해서 그 앞에 절대 복종해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민족적으로 하나님께 ‘우리에게 명령해 주시옵소서’ 할 수 있는 자리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앞으로, 오시는 주님을 만난 다음에는 무엇을 할 것입니까? 주님을 만나는 목적은 신랑 신부의 모습을 갖추어 하늘의 축복을 받기 위한 것입니다. 주님만 만나면 다 되는 줄 압니까? 천만에. 주님 만나고 나서는 신랑 신부 동반하여 ‘하나님이 에덴 동산에 아담 해와를 지어 놓고 축복하지 못한 그 축복을 우리에게 해주시옵소서’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세계적인 유업을 상속받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끝날에 오시는 주님을 맞이해 가지고는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오시는 주님을 맞아서 하나님을 붙잡아야 됩니다. 왜? 오시는 주님은 땅 때문에 오십니다. 본래 인간이 땅에서 살았기에 땅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고 가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 가는 곳이 천국입니다. 인간이 땅에서 타락했으니 땅에서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합니다. 땅에서 완전히 해결해 놓고 가야 천국을 이룰 수 있는데, 주님은 이걸 해결짓지 못한 채 영계에 가셨으니 다시 오셔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오시는 주님은 땅에 오시는 것입니다. 성경에도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마 16 :19)”고 했습니다. 땅에서 잘못하여 매였으니 땅에서 완전히 풀기 위해 땅에 온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그런 주님을 모셔야 할 때가 되었거늘, 그 주님을 발판으로 하여 하나님을 붙잡아야 합니다. ‘하나님, 당신은 내 아버지입니다’ 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기반으로 해야만 하늘과 땅의 모든 유업을 상속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건 공론이 아닙니다. 사실입니다.

오늘 이 시대에 전세계의 기독교와 대결하고 있는 원수가 있나니 그것이 공산주의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될 것이냐? 지금 때가 그렇거든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되겠느뇨?

역사적인 아브라함, 역사적인 야곱, 역사적인 모세, 역사적인 예수를 상고해 봅시다. 물론 그들은 한 시대의 중심인물이었습니다. 그들은 무엇을 해야 했던고? 사탄으로부터 땅을 빼앗고 영계에서 사탄을 추방하여 ‘하늘과 땅이 아버지의 것입니다’ 할 수 있어야 하늘의 뜻이 종결되는데, 아직까지 그 일이 해결 안 되었습니다. 그때가 되면 ‘아브라함아, 네가 자랑할 것이 무엇이뇨? 천지의 유업을 상속받을 수 있는 준비를 했는고? 하고 심판합니다. 끝날에는 영계에 간 아브라함이나 야곱, 모세, 전부 다 심판받아야 합니다. 책임을 못했기 때문입니다. 축복받을 수 있는 기준, 이스라엘이 민족적인 기준에 있으면 그 심정적인 기준이 목표인 유업의 기준과 결부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끝날에 우리는 성경에 나오는 아브라함이나 천사를 판단할는지 모릅니다. 고린도전서 6장 3절에 그러한 권한이 있습니다. 유업을 상속받은 아들딸이라 할진대 이는 천상세계나 지상세계에 있어서의 승리자입니다. 그것을 위해 전부 접붙이는 것입니다. 뿌리에 곁가지가 돋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하나의 싹이 나와 새로운 나무가 되는 것입니다. 지금이 바로 끝날인 것을 알고 여러분들은 오늘 말씀의 제목과 같이 하나님의 유업을 상속받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새로 오는 때는 어떤 때냐? 아브라함 개인을 불러 세우던 때도 지나갔고, 야곱의 가정을 세워 축복하던 때도 지나갔고, 민족대표로 모세를 불러 세워 축복하던 때도 지나갔고, 세계를 대신한 예수를 땅에 보내 축복하던 때도 지나갔습니다. 이제는 무슨 시대이뇨? 다시 오시는 주님을 맞이하여 하나님 앞에 나아가 직접 ‘나의 하나님’이라고 불러야 할 때입니다. 아무리 하늘 땅의 모든 축복을 다 받았다 해도 하나님이 부인하면 안됩니다, 망합니다. 지금은 이런 때입니다.

10-349
하나님의 역사적인 심정 위해 정성 들일 때
그러면 우리는 무엇으로 하나님을 붙들 수 있느뇨? 정성입니다. 지금은 신앙의 자유가 있으니 핍박이 없습니다. 순교를 할래도 못합니다. 지금 누가 이단적인 말을 한다고 해서 목을 매달아 죽입니까? 언론, 집회, 결사, 신앙의 자유를 향유할 수 있는 민주주의를 만들어 놓은 것은 끝날의 한 때를 위해서입니다. 신앙을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것은 다 뜻이 있어서 그랬다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 시대에 있어서는 아무리 하늘을 위해 수고하고 목을 내놓고 충성해도 핍박받지 않습니다. 그런 때는 지나갔습니다.

그러면 무엇을 가져야 하느냐? 심정을 가져야 합니다. 역사적인 하나님의 심정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은 시대적인 하나님이 아니라 역사적인 하나님입니다. 역사노정에서 수많은 선지자들을 세워 애쓰시던 하나님입니다. 역사적인 하나님입니다. 여러분을 살려 놓기 위해서 역사노정에서 수많은 사람을 핍박의 길, 순교의 길을 걷게 하여 오늘날까지 나오셨습니다. 그러니 역사적인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과거의 선지자들은 몰랐습니다. 아브라함도 2천년 동안 역사하신 하나님의 역사적인 심정을 몰랐습니다. 야곱도 몰랐고 모세도 몰랐습니다. 어떻게 나왔는지 몰랐습니다. 역사적인 하나님을 몰랐습니다. 예수도 할말을 다 못한 채 갔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때에 무엇을 해야 될 것이뇨? 우리에게는 핍박시대도 지나갔고 순교할 때도 지나갔습니다. 역사적인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역사적인 하나님의 심정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을 보아 가지고는 모릅니다. 그러기에 끝날에는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밀실에 들어가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도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역사적인 심정을 알아야 되고 시대적인 심정을 알아야 되고 미래적인 심정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어찌하여 6천년 동안 싸워 나왔으며, 현실은 왜 이렇게 되어 있으며,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날 세계에 널려 있는 기독교인들, 제 2이스라엘은 제 3이스라엘로 넘어가야 합니다, 오늘 여기 처음 나온 사람들, 이런 말 처음 들을 것입니다. 제3이스라엘 주권의 이념 동산을 향하여 넘어가야 됩니다. 거기에는 내 본연의 하나님이 계시고, 내 본연의 부모가 계시고, 내 본연의 처자가 있고, 또 거기에는 내 본연의 민족, 내 본연의 나라, 내 본연의 세계가 있습니다. 그곳은 내 본연의 하늘 땅이라고 하면서 얼싸안고 춤출 수 있는 곳입니다. 여러분이 암만 잘났다 해도 본연의 하나님을 만나 보았습니까? 역사노정에 피땀을 흘리며 피투성이가 된 하나님은 만나 볼 수 있고 십자가에 달려 피흘리는 예수는 만나 볼 수 있으되, 천군 천사가 옹위하는 호화찬란한 영광 중에 하늘 땅을 주도하는 예수는 만나 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제 끝날이 왔으니 이제 우리는 하늘이 어떤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냥 믿을 때는 지나갔습니다. 다 믿었단 말입니다. 2천년 아니 6천년 동안 믿어서도 해결하지 못했는데 언제까지 믿고 있느냐 말입니다. 그러니 이제는 믿은 기반 위에서 알아야 합니다. 무엇을 알아야 하느냐? 역사적인 하나님의 심정을 똑똑히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과연 나를 어떻게 사랑하고 민족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역사적인 심정의 하나님은 서러웠습니다, 6천년 동안 서러웠습니다. 불신한 우리 선조들을 대하여 억울하였습니다. 이제 우리는 억울하고 서러우신 하나님을 위로해 드리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지금 세계에 널려 있는 제2이스라엘을 대하는 하나님의 심정은 서글픕니다. 그 아버지의 소맷자락을 붙들고 ‘아버지, 어찌하여 당신의 심정이 이렇게 딱하고 억울하옵니까? 할 때 그 손을 붙들고 ‘오냐, 내 아들아 내 딸아’ 하실 수 있는 무리가 나와야 합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부활한 주님을 만나 반가와 붙들려고 할 때 예수는 거절했습니다. 주님을 찾아 밤새껏 헤매던 막달라 마리아 앞에 부활하신 주님은 나타나 ‘오냐, 내 딸아 얼마나 수고했느냐’ 하며 칭찬하지 않고 막아 세우던 하늘의 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 여러분들은 막달라 마리아 이상이 되어야 주님의 신부니 무엇이니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같은 환경, 지금 여러분이 갖고 있는 심정 가지고 신부가 되었댔자 사탄이 대번에 참소합니다.

10-351
천적인 유업의 실체자인 예수를 잃어버린 이스라엘 민족
우리는 회개해야 합니다. 오늘 이 세계에는 수많은 사람, 수많은 민족이 살고 있으되 진정 하나님을 위로하는 무리가 없습니다. 역사적인 하나님의 심정을 위로하기 위해 선조를 대신하여 회개하는 그러한 민족이 있다 할진대 그 민족은 세계를 지배할 것입니다. ‘아버지! 당신은 아담 가정에서부터 시작된 일로 해서 말할 수 없이 애달픈 심정과 안타까운 심정이 있었고, 노아를 거치고 아브라함을 거쳐 지금에 이르기까지 6천년 동안 말할 수 없이 애달픈 곡절의 심정을 가지셨습니다. 슬프옵니다. 역사의 아버지여, 우리의 선조들이 당신을 모시지 못한 것을 오늘의 나를 보시고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할 수 있는 최후의 역사적인 회개의 왕자가 나와야 됩니다.

예수는 30여 년 동안 이것을 위해 기도하였습니다. 그는 4천년의 역사적인 하나님의 유업을 상속받을 수 있는 심정의 본질을 갖추고 난 후에 메시아로서 등장한 것입니다. 안 그렇겠어요? 그렇지 않다면 사랑의 하나님이라고 할 수 없다고 봅니다.

사랑이라고 하는 것은 인연의 동기로부터 시작해 인연의 과정과 인연의 목적까지 통해서 흘러 나오는 것입니다. 맹목적이 아니란 말입니다. 원수의 자식도 ‘아, 내가 잘못했습니다’ 하면 심정적으로 사랑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영원한 사랑의 주인이신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습니다.

상처입은 그 심정을 위로해 줄 수 있는 하나님의 왕자를 보내시기 위하여 4천년 동안 천신만고하여 민족을 세우고 그 위에 세계적인 유업의 상속자로서, 이스라엘 국가를 대신한 천적인 유업의 실체로서 이 땅 위에 보내셨는데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민족은 그 실체를 배신하였습니다. 그에게는 하나님의 4천년의 심정이 얽혀져 있고, 2천년 전 그 당시의 사정이 얽혀져 있고, 이거 잘하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잘못하면 이루어지지 못하는 미래의 현상까지도 얽혀 있는 것을 그들은 몰랐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역사상의 누구보다도 예수를 잘 모셔야 했습니다. 수많은 인간들이 있어도 그들을 다 제쳐 놓고 예수만이 제일이라며 모셔야 했습니다. 과거에도 제일이요, 현재에도 제일이오, 미래에도 제일인 예수를 모시지 못한 이스라엘 민족이었기 때문에 과거의 예수을 잃어버렸고, 현실의 예수도 잃어버렸으며, 미래의 예수도 잃어버렸습니다.

10-352
하나님과 동고동락할 수 있는 아들딸이 돼야 할 우리
끝날에 있어서 여러분이 알아야 할 것은 천적인 상속을 기필코 이어받겠다고 하는 민족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맹목적인 하나님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기도할 때 역사적인 하나님을 붙들고 기도해야 하고 역사적인 조상의 죄를 회개하며 내 눈물과 더불어 하나님의 눈물을 뿌려야 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6천년 동안 뜻을 위해 살다 죽어갔다고 하지만, 그들은 역사적인 하나님의 심정을 알아 하나님의 눈물을 씻어 드리려는 심정에 사무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끝날인 이 시대에 우리들은 역사적인 하나님을 붙들고 기도할 때, 아담 가정으로부터 수천년을 지내오면서도 선조들이 몰랐던 하나님의 심정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당신은 이러이러한 곡절의 역사노정을 거쳐오셨습니다’ 하며 슬픈 심정을 갖고 하나님의 친구가 되어서, 아들딸이 되어서, 종이 되어서 ‘당신의 마음이 이렇게 슬프니 저의 마음도 슬프옵니다’ 라고 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역사적으로 눈물을 흘리고 역사적으로 피와 땀을 흘리신 하나님의 슬픔을 풀어 줄 수 있는 하나님의 아들딸, 하나의 주인공이 나와야 합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이 시대를 대신하여 ‘아버지! 이제는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할 때, 하나님께서 ‘오냐, 네가 눈물 흘릴 때 나도 눈물 흘린다. 내가 이 자리를 떠날지언정 나는 네 것이다’라고 하실 수 있는 아들이 나와야 합니다. 과거에 슬퍼하신 아버지, 눈물지으신 아버지를 기쁘게 해드리고 ‘이 시대를 대한 슬픈 심정을 풀지 못한 아버지의 한을 내가 책임지고, 이 시대를 내가 책임지고, 이 시대의 원수를 내가 책임지겠사오니, 아버지, 안심하시옵소서’ 할 수 있는,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오냐, 땅도 네 땅이요, 하늘도 네 하늘이다. 하늘과 땅이 다 네것이니 이것을 지은 나도 네 것이다’라고 하실 수 있는 아들딸이 나와야 합니다. 영원무궁도록 축복할 수 있는, 과거 현재 미래를 통할 수 있는 심정적인 기반을 그 자체에 있어서 완전히 종결지어 6천년 동안 하나님께 항의하던 사탄이 참소조건을 세울 수 없게 하여 민망함을 느끼게 하는 아들딸이 나타나야 세계는 거기서부터 수습되어 나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역사적인 심정을 붙들고 회개의 눈물을 흘릴 때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여러분의 손을 붙잡고 위로해 주는 그 위로를 받고, 여러분이 시대적인 심정을 붙들고 눈물을 흘릴 때 하나님이 위로해 주는 그 위로를 받아야 됩니다. 하나님이 ‘네가 눈물지으매 나도 눈물짓고, 네가 웃으매 나도 웃고, 네가 억울함을 당하매 나도 억울함을 당한다’고 하실 수 있는 일체적인 감정으로 뒤넘이칠 수 있는, 하늘이자 땅이요, 땅이자 하늘이 될 수 있는 승리적인 기준을 갖추어 가지고 하나님이 ‘나는 네 아버지요 너는내 아들이다’라고 하실 수 있는 축복의 기준이 이 땅 위에 벌어져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들이 넘어야 할 고비입니다. 그렇게 될 때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과거에 개인적인 유업상속의 대상으로 세웠던 아브라함 대신 행동을 문제없이 해야 되고, 야곱 대신 행동도 문제없이 해야 되고, 모세 대신 행동도 문제없이 해야 되고, 예수 대신 행동도 문제없이 해야 됩니다. 당장 생명을 잃는 한이 있더라도 해야 됩니다. 여러 분이 전부 다 그래야 된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오시는 주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실 것인고? 무지몽매한 이 땅의 사람들에게 역사적인 하나님의 심정을 가르쳐 줄 것입니다, 시대적인 하나님의 심정을 가르쳐 줄 것이며 미래적인 하나님의 심정을 가르쳐 줄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6천년의 슬픔을 일시에 체득하여 오시는 주님을 붙들고 눈물지으면 그것으로써 하늘을 대해 눈물 흘렸다는 기준으로 탕감복귀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까지 이러한 내용을 몰랐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마음의 준비를 해야 됩니다. 과거의 우리 선조들은 개인적으로 혹은 가정적으로 민족적으로 무한히 배반하고 예수까지 죽여 버렸지만, 우리만은 오시는 주님 앞에 배반의 종족이 되지 않겠다고 단단히 각오를 해야 합니다. 우리만은 역사적인 배반자가 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해야 합니다.

10-354
천주적인 시대에 주시는 참부모
여러분, 지금은 어떤 때입니까? 세계적인 때입니다. 가정보다도 나를 더 사랑해서는 안 됩니다. 사회보다 가정을 더 사랑해서는 안 되고, 국가보다 사회를 더 사랑해서는 안 됩니다. 세계보다 자기 나라를 더 사랑해서는 안 됩니다. 지금은 세계주의시대로 넘어가는 때입니다. 경제전쟁시대를 지나 주의전쟁시대입니다. 물질을 빼앗기 위해 싸우는 시대를 지나 지금은 주의전쟁시대, 즉 사람을 빼앗기 위해 싸우는 시대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물질을 뺏기 위해, 땅덩어리를 빼앗기 위해 싸우다가 이제는 사람을 빼앗기 위해 싸우고 있습니다. 그 다음엔 하나님을 빼앗기 위한 싸움이 벌어질 것입니다. 이제는 종교 투쟁시대로 들어갑니다. 이 종교의 투쟁시기는 혼란의 시기입니다. 영적인 현상이 부딪쳐 들어옵니다. 맞부딪쳐 들어옵니다, 아무리 잘났다 하는 사람도 수습할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사탄이 들어오는 것을 막으려고 예수의 이름으로 아무리 쫓아도 안 갑니다. 사탄이 도망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로 들어 간다는 것입니다. 세계적인 주권시대, 세계적인 이념권내에 있을 때에는 도망갔지만, 하늘과 땅이 통합되는 천주적인 시대로 넘어가면 안 됩니다. 이제는 그런 시대로 넘어갑니다.

그런 시대로 넘어가는 이때에 있는 여러분들은 눈물을 지어야 합니다. 피와 땀을 흘려야 됩니다. 나보다도 이 민족을 위하여, 나보다도 이 세계를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들은 기도할 때 땅만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이 땅만을 위해 기도할 것이 아니라 영계에 있는 영인들을 위해서도 기도해야 합니다. 천상세계에 가 있는 영인들은 허락은 받았으나 축복은 받지 못하였기에 땅에 있는 우리가 아니면 그들은 축복을 받지 못합니다. 저나라 영계에 가 있는 영인들, 불쌍합니다. 땅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오늘 이 시대에 있어서는 땅도 우리의 것이요, 하늘도 우리의 것인 동시에 땅의 모든 인류와 천상에 가 있는 천천만 성도가 모두 우리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오시는 주님은 하늘과 땅을 품을 수 있는 집이요, 하나님까지 품을 수 있는 집입니다.

하늘과 땅을 품은 기준을 가지고 모든 것을 완결지어야만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자신을 한번 보십시오. 여러분은 하나님을 압니까? 모릅니다. 하나님이 찾아 세우려 했던 인류의 참조상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인류의 참조상이 없었으니 참가정이 없고, 참가정이 없으니 참형제가 없고, 참형제가 없으니 참종족과 참민족과 참국가와 참주권의 세계가 없습니다 있어요? 없습니다.

여러분들은 타락의 종족들입니다. 여러분들은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를 몰랐습니다. 참가정, 참사회, 참국가, 참주권이 어떻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이제부터 어떻게 해야 될 것이뇨? 우리는 이제 인간이 타락한 이후 6천년 동안 수없이 눈물지어 나오시며 사탄과 싸우는 하나님말고 영광의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2천년 동안 싸워온 예수와 성신말고 영광의 예수와 성신을 알아야 됩니다. 싸우는 천상세계의 천천만 성도말고 영광 가운데 살고 영광을 누리는 천천만 성도들을 알아야 합니다. 땅 위에 있어서 핍박받고 고통받는 성도들 말고 영광 가운데 있는 성도들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성도들을 보았습니까? 못 보았을 겁니다. 아브라함도 야곱도 모세도 예수도 영광의 하나님을 소개하기 위해 왔다가 죽어갔습니다. 영광의 참부모를 소개하고 영광의 참아들딸을 소개하고 영광의 참백성과 참천민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했습니다. 여러분, 그런 사람이 될 자신이 있습니까? 그런 사람들을 보았습니까? 모셔 봤습니까?

천적인 유업을 이 땅의 여러분에게 주나니, 하늘과 땅과 하나님을 주는 동시에 잃어버렸던 참부모를 주겠다는 것입니다. 잃어버렸던 하나님을 찾아, 잃어버렸던 하늘을 찾아, 잃어버렸던 땅을 찾아 가지고 무엇을 할 것이냐? 하나님이 축복할 수 있는 잃어버렸던 참부모를 주겠다는 것입니다. 참부모를 주어 가지고는 무얼 할 것이뇨? 참형제를 주겠다는 것입니다. 참형제를 주어서 참종족을, 참종족을 주어서 참민족을, 참민족을 주어서 참국가를, 참국가를 주어서 참세계를, 참세계를 주어서 참하늘땅을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걸 알아요? 땅 위에 남아질 하나의 유업이 있나니 땅을 받는 것도 좋고 하늘을 받는 것도 좋지만, 심정적인 인연을 거쳐 가지고 직계의 인연을 통할 수 있는, 내 집을 기반으로 하여 세계를 품고 사랑할 수 있는 그런 나라의 백성이 되어야 됩니다. 지금 그래요?

하나님의 유업을 상속받기 위해 최후에 넘어야 할 조건은 무엇이뇨? 하나님을 갖고, 참부모를 갖고, 참형제를 갖고, 참백성 참나라 참세계를 가져야 합니다. 온 인류가 내 형제요, 너와 나는 영원불변이라고 할 수 있는, 나눠질 수 없는 형제의 심정을 통하여 천적인 가정의 식구로 살 줄 아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이 땅은 우리의 것, 하늘은 우리의 것, 아버지는 우리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참다운 가정을 중심삼고 이 땅 위에 참다운 나라를 이룰 수 있는, 하늘의 유업을 상속받을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보십시오. 이스라엘 민족을 찾아 세우기 위해서 천상세계의 천사들이 와서 일했습니다. 종이 와서 일했습니다. 그 다음에는 아들이 와서 일했습니다. 이제는 아버지가 옵니다. 여러분, 오시는 주님은 아버지로 오십니다. 참부모로 오셔서 참자녀를 거느리고 사랑할 것이거늘, 그때에는 어떻게 될 것이뇨? 여러분 한 사람을 붙들고 밤을 지새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 한 사람을 타락한 세계의 인류보다 더 사랑하시고, 모세 한 사람을 온 인류보다 더 사랑하시고, 예수 한 사람을 온 인류보다 더 사랑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아들딸 한 사람이 얼마나 귀한가를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하는 녹음중단으로 생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