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20 to 10-247: 우리를 위하여 당하신 일들

우리를 위하여 당하신 일들
1960.10.16 (일), 한국 전본부교회

10-220
우리를 위하여 당하신 일들
마태복음 3:1-17

[기 도]

아버지, 이제 저희들이 당신의 무릎 앞에 엎드렸사오니 일일이 분부하여 주시옵소서.

어린애와 같은 저희들이옵니다. 더우기나 헐벗고 굶주린 어린애입니다. 저희는 몸에 상처를 입었사오며 굶주려 있사옵니다. 그러나 저희는 당신께서 친아버지로 지금까지 저희를 찾아오신 줄 알기에, 저희의 상처와 저희의 모습이 어떠한가 하는 것도 잊어버리고 아버지의 말씀이 그립고 아버지의 음성이 그리워서 당신을 내 아버지라 부르며 나왔사옵니다.

아버지, 당신의 심정을 대신한 자녀를 찾는 것이 아버지의 소원이옵고, 잃어버린 아버지를 다시 모시는 것이 자녀의 소원인 것을 저희들은 아옵니다. 아버님, 이 시간 불쌍한 저희들을 보시고 아버지께서 눈물을 흘리시며 긍휼히 여길 수 있는 저희가 되게 하여 주시옵고, 저희는 아버지의 긍휼의 품에 품기어 한없이 후회하면서 뉘우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하늘은 잘난 자만 찾지 않는 것을 아옵니다. 또한, 타락한 이 땅 위에는 아버지를 기쁘게 해드릴 그 무엇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나이다. 다만 죄악의 늪에서 허덕이는 자기 자신을 뉘우치고, 아버지의 서글픈 심정에 사무쳐 머리 숙여 눈물을 흘리는 자를 품어 주시고 찾고 계신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아버지, 저희들이 걸어온 발걸음이 그러하고, 저희의 심정이 그러하옵거든, 오늘 저희들을 대하여 주시고 품어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지를 모시고 머리 숙여 경배하는 이 날 이 시간, 하늘과 땅이 하나 될 수 있는 심정의 인연이 높이 드러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의 심장을 통하여 뿜어 나오는 환희에 찬 피가 저희의 동맥에 뻗쳐 흐를 수 있는 이 시간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아버지의 가슴이자 저희의 가슴이요, 아버지의 심정이자 저희의 심정이요, 아버지의 감각이자 저희의 감각이 되어 한스러웠던 아버지의 고통을 저희들이 체험하게 하시고, 슬프셨던 아버지의 사정을 체휼할 수 있는 이 시간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여기에 모인 당신의 아들딸들을 버려 두지 마옵소서. 그리워하셨던 이들의 마음의 문을 열어 주시옵고, 아버지께서 하시고 싶은 그 말씀을 이들의 마음 깊이 느낄 수 있는 이 시간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 아버지의 말씀을 전하고자 하오니, 아버지,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어린애의 심정으로 돌아가 아버지의 그 심정만을 좇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께서 슬프면 저희도 슬픈 심정, 아버지께서 기쁘면 저희도 기쁜 심정, 아버지께서 억울하면 저희도 억울한 심정이 되어 심정을 통하여 말하고, 심정을 통하여 받고, 심정을 통하여 하나 될 수 있는 이시간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그렇지 못할진대, 황무지와 같고 광야와 같고 쓸쓸한 빈 들판과 같은 이 땅에 살고 있는 삼천만 민중의 심정을 녹여내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하늘 앞에 불길처럼 타오르는 뜨거운 심정만이 이 민족 앞에 필요한 것을 아옵니다. 이것을 위해서는 저희들이 눈물의 길을 자진해서 걷지 않으면 안 될 것이며, 십자가의 길과 핍박의 길을 개척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며, 고난과 더불어 죽음과 더불어 싸움의 길을 개척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옵니다. 이러한 책임이 저희에게 있음을 알았사오니, 이를 감당할 수 있도록 힘을 주시옵고 능(能)을 가하여 주시옵소서.

새로운 각오와 결심으로 내일을 위하여 싸울 수 있는 강한 당신의 아들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친히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말씀을 보았사오니 2천년전 예수님에게 세례를 주던 세례 요한의 모습을 그리워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는 30여 년의 생애노정에 있어서 먹을 것을 먹지 못하였고, 입을 것을 입지 못하였습니다. 먹은 것은 석청과 메뚜기였고, 입은 것은 가죽 옷뿐이었습니다. 초조한 심정, 정성들인 그 한 몸에는 하늘의 슬픔의 자국자국이 남아 있었사오나, 슬픔의 그 주인공을 심정으로 대하지 못할 때는 그것이 도리어 화로 변한 것을 알았사오니, 세례 요한이 외치던 그 음성을 오늘 여기에 모인 당신의 아들딸들도 심정으로 느끼게 하여주시옵소서.

세례 요한에게 머리를 숙여 세례를 받던 예수의 모습을 심정으로 모셔들일 수 있는 자가 되지 못하면, 2천년전에 이스라엘 민족이 저끄린 죄상(罪狀)을 거듭 저지르게 된다는 것을 배웠사옵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아버지 앞에 새로운 봉화를 들고 나서는 세례 요한이 되게 하여 주시옵고, 예수의 대신자가 될 수 있는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잠들어 있는 이 땅, 사망의 물결이 짙어가는 이 땅 위에 아버지의 생명과 영광의 흔적을 드높여, 잠든 자들의 마음 골짝골짝을 다시 한 번 깨우쳐 일으켜 세울 수 있는 하늘의 역사가 이 천지에 나타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를 위하여 저희들이 손과 발이 필요하고 몸이 필요한 것을 알았사옵니다. 명령하시는 대로 어느 곳이든지 가겠다고 아버지 앞에 맹세한 바 있사오니, 저희의 모든 것을 몽땅 아버지 것으로 사용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런 뜻을 위하여 이 시간 새로운 각오와 결의를 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 아버지와 아버지의 뜻을 대할 수 있고 영원히 기억될 수 있는 저희들의 모임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올 때, 모든 말씀 주의 이름으로 아뢰었나이다. 아멘

10-222
말 씀
이 시간 여러분에게 `우리를 위하여 당하신 일들’이란 제목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하늘과 땅이 누구의 것이냐 하면, 아버지의 것인 동시에 우리의 것입니다. 이 하늘과 땅은 어떠한 하늘, 어떠한 땅이 되어야 하느냐 하면 선의 하늘과 선의 땅이 되어야 합니다. 선의 땅이기에 그 땅에 존재하는 것은 어떠한 것이라도 선해야 합니다. 선으로 출발하여 선의 목적을 그리면서 하나님 앞에 기쁨의 조건을 제시하는 천지여야 합니다. 그런데 그와는 반대로 고통의 하늘이 되었고, 고통의 땅이 되었으며, 악의 땅이 되었고, 악과 싸워야만 하는 하늘의 입장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들을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

10-223
하나님께 슬픔과 고통의 대상이 된 피조세계
선으로 시작하여 선으로 종결되어야 하며, 또 그 과정의 어떠한 현상도 하나님을 기쁘게 하지 않는 것이 없어야 할 천지였는데, 그 천지는 간 곳이 없고, 대하는 곳곳마다 슬픔이요, 대하는 사람마다 울음이 나오고, 고통을 느껴야 하는 천지가 되었던 것입니다. 이런 슬픔 사정을 대할 수 밖에 없는 것이 하나님의 입장입니다. 그런 입장에 계시면서도 우리들을 다시 품어야 하는 게 하나님의 고통임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슬픔으로 시작되어야 할 세상이 아니었고, 고통으로 출발해야 할 세상이 아니었고, 죽음이나 낙망으로 결실을 맺어야 할 이 땅이 아니었건만 어찌하여 이러한 결과를 초래했고, 어찌하여 이러한 과정적인 역사노정을 거쳐왔는고! 이 곡절의 원인이 하나님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있습니다. 보기에는 지극히 작고 아무것도 아닌 이 한 몸이 동기가 되어 하늘에 대해 슬픔을 저끄러 놓았고, 역사노정에 고통과 죽음을 저끄러 놓은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알고 우리는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볼 수 없고 땅을 바라다볼 수도 없는 죄인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내 눈이 그러하고, 내 손발이 그러하고, 내 몸이 그러하고, 일체의 감정까지도 그러하다는 것을 알아야 할 때가 왔습니다.

오늘 내가 생명을 영위해 나가는 생활노정에 관계되어 있는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기쁨으로 바라볼 수 있는 입장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서 기쁨으로 취할 수 있는 입장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서 소망으로 대할 수 있는 자리에서 시작된 것이 아닙니다. 전부가 반대의 입장에서 시작되어 반대의 노정을 통하여 반대의 결실을 맺은 것임을 우리는 명백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것을 우리가 느끼지 못하고 깨닫지 못할진대, 하늘이 우리를 위하여 어떠한 일을 당하셨다는 사실을 알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눈물을 흘리셨다고 외치는 자가 아무리 많다 할지라도 그 눈물이 나와는 하등의 관계가 없다는 것입니다. 피를 토하며 죽음의 자리에서 하늘의 사랑을 노래하는 자가 아무리 많다 할지라도 그 사랑은 우리와 하등의 관계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타락되어 있는 자신인 것을 인정하고 이 운명의 노정을 개척하며 새로운 소망의 날을 흠모하고 있는 자신임을 인정할진대,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무엇을 알아야 되느뇨? 우리 자신이 이러이러한 참사를 일으킨 장본인이요, 역사적인 슬픔을 쌓아 놓은 장본인이요, 이 시간도 결과적으로 하늘에 대하여 슬픔의 조건을 연결시키고 있는 장본인임을 알고 우리는 그것을 밝혀야 합니다. 그러지 않는다 할진대 역사적인 하나님의 고통이 크고, 시대적인 하나님의 슬픔이 크다 할지라도, 우리는 어떠한 해결점을 지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오늘날 우리들은 하늘땅 앞에 용서 받을 수 없는 역사적인 죄인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오늘날 이 땅 위에 슬픈 사실이 있다 할진대 그것은 내 자신에서 시작된 것이요, 고통스러운 사실이 있다 할진대 그것도 내 자신에서 시작된 것이요. 죽고 쓰러지는 억울한 사실이 있다 할진대 그것도 내 자신으로부터 시작되고 연결된 것이라는 것을 느껴야 되겠습니다. 그래야만 이 사회의 슬프고 고통스러운 사실, 많은 사람이 죽고 쓰러지는 사실을 보면서 그것이 내 자신의 일로 느껴져서 책임지는 입장에 설 수 있는 것입니다

10-224
하나님과 이 세계와 나의 관계의 회복
나 한 개체를 연하여 있는 세상, 즉 대한민국이면 대한민국을 통하여 세계가 연하여 있고, 세계를 통하여 천주(天宙)가 연하여 있다 할진대, 오늘 이 나라에서 되어지는 모든 일들은 그 자체들로 말미암아 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동기는 우리에게 있는 것입니다. 물론 오랜 역사가 흘러 나오는 동기의 인연이 멀리 있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결국 나와는 뗄래야 뗄수 없는 것이며, 그 동기의 원인자로서 가담되어 있는 내 자신이라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이 세상의 슬픈 것을 보고 나의 슬픔으로 느끼고, 고통스러운 것을 보고 나의 고통으로 느끼며, 참혹한 것을 보고 나의 참혹함으로 느낄 줄 아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네 것이 아니라 내 것이요, 이 나라의 것이 아니라 내 것이라고 느끼며, 그것을 생활 무대에서 내가 대신하겠다는 심정이 스며들게 될 때, 거기서부터 비로소 새로운 혁명과 새로운 역사가 내 개인을 통하여 벌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사회를 혁명할 수 있고 국가를 건설할 수 있는 원천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지으실 때의 목적은 타락한 인간을 보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타락한 그날부터 하나님은 타락의 책임이 인간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인간을 지은 자신에게 있다는 마음을 품으셨기에 복귀섭리의 뜻을 세우실 수 있었던 것을 여러분은 알고 있습니다. 복귀의 뜻을 세워 나오신 하나님이 그러하시거든 타락하여 복귀의 사업을 일으키게 한 우리 인간도, 이것이 나로 말미암아 되었다는 것을 느껴야 새로운 길을 발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나 하나를 개혁하는 것은 사회를 개혁하는 것이요, 국가를 개혁하는 것이라고 느껴야 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이 사회, 국가와 인연되어 있는 나 자신의 모든 문제들을 깨끗이 청산한 후에야, 이 땅은 새로운 세계로 발전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사회의 실상에 대하여 밝히 알면 이 사회는 나와 관계를 맺기가 어렵고, 내 심정이 반영되어 접할 수 있는 환경이 되어 있지 못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여기에서 부딪쳐 오는 슬픔과 고통으로 인하여 몸부림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것은 사회와 나와의 관계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라 나아가 하나님과 나와 이 세상이 인연맺어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모든 슬픔의 조건을 만들어 놓은 자기 자신임을 알게 되고, 자신의 일생 일로(一生一路)가 편하지 못한 것을 알게 될 때, 여러분은 영원한 이념을 성취하기 위하여 6천년 동안 복귀섭리노정을 걸어 나오신 하나님의 심정세계에 얼마만한 고통이 뒤따랐는지도 헤아릴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 자신이 그런 입장에 들어가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당하신 일이 어떠했으며, 하나님이 우리를 찾아오시기 위하여 어떠한 싸움의 노정을 거쳐 오셨는지를 회상할 때, 하나님과 내가 하나의 동기와 인연을 갖추어서 새로운 모습을 빚어낼 수 있는 복귀의 이념을 성취해 나가기 시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땅 위에 왔다 간 수많은 선지자들 중에 악한 이 세상을 보고 기쁨을 체휼하고 간 사람이 없었다는 거예요. 위인이나 성현들은 땅이 악하면 악할수록 이 땅을 위하여 눈물과 피와 땀을 흘렸고, 더 나아가서는 생명을 마치고 갔던 것입니다. 그것은 왜냐? 그렇게 된 원인이 바로 자신에게 있었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10-226
하늘땅을 중심한 심신(心身)의 관계
오늘날 우리들은 역사적인 위인을 찾고 있으며, 세계적인 지도자를 찾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역사적인 위인도, 세계적인 지도자도 다 지나갑니다. 문제는 이 시대에서 나를 확실히 찾는 것입니다. 갖가지의 죄상을 가지고 있는 이 세상의 모든 인간을 대신한, 그런 형상을 갖춘 모습임을 알고 스스로 비판을 하고 냉철히 심판할 수 있는 인격을 갖춘 내가 된다 할진데, 이 땅 위에 훌륭한 지도자와 역사적인 성현이 있다 할지라도 그에게 전적으로 신세지지 않아도 된다는 것입니다.

나는 하늘을 대신하고 있습니다. 땅도 대신하고 있습니다. 내 마음은 하늘을 닮았고 내 몸은 땅에 처해 있는 연고로, 비록 내 일신(一身)이 지극히 작다 하더라도 내 일신이 움직이는 것은 천지가 움직이는 것과 같은 것이며, 하늘 땅을 품고 하늘 땅을 대신하여 행동하는 것입니다. 하늘은 아버지요, 땅은 아들이기에 내 마음이 하늘을 대신하고 내 몸이 땅을 대신한다 할진대, 내 마음은 아버지요 내 몸은 아들입니다. 이렇게 내 마음과 몸을 크게 보면 하늘과 땅이요, 작게 보면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늘에 고통이 있고 땅에 고통이 있는 것을 무엇으로 알 수 있느뇨? 내 마음이 편하지 않고 내 몸이 편하지 않으니 하늘과 땅에 고통이 있는 것은 당연지사입니다. 이 마음에 고통이 있기를 원치 아니하고 이몸에 슬픔이 있기를 원치 아니하여도, 거치는 곳곳마다 마음에는 고통이 있게 되고 몸에는 슬픈 일이 부딪히게 됩니다.

하늘과 땅을 대신한 이 마음과 몸의 싸움을 해결하지 못하는 한, 하늘과 땅에 있는 슬픔의 명사를 제거시키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당한 모든 일들은 우리의 몸과 마음에 반영됩니다. 몸이 행동하는 하나 하나마다 마음은 선의 목표를 지향하도록 환경을 단속하며 쉴새없이 노력합니다. 또, 몸이 그 목적과 방향을 잃어버리고 사망의 구렁텅이에 빠지게 될 때, 마음은 몸을 향하여 선한 것을 바라보라고 권고합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생활 속에서 많이 느낄 것입니다. 그러기에 나 자신부터 해결해야 됩니다.

우리의 마음이 하늘을 대신한다 할진대 마음이 바라는 목표와 하늘이 바라는 목표가 일치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 마음이 중심이라 할진대, 그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목표와 우리의 마음이 바라는 목표가 일치되어야 합니다. 또, 몸과 마음이 하나 되기 위해서 몸은 이 땅의 이상적인 기준과 일치되어야 하고 마음은 하나님이 목표하는 방향과 일치되어야 합니다. 또,몸과 마음이 하나 되기 위해서 몸은 이 땅의 이상적인 기준과 일치되어야 하고 합니다. 역사적인 최후의 종말시대, 선의 이상세계가 기필코 올 것이거늘, 내 몸이 생활에서 선의 이념세계와 접할 수 있는 인연을 갖고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마음의 기준이 하나님의 기준과 갈라지게 될 때 고충이 생기게 되고, 몸의 생활 기준이 세계적인 이념과 상충될 때 또한 고충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것을 어디서부터 시정(是正)할 것이뇨? 우리의 마음과 몸을 목적의 이념세계, 새로운 이념세계로 어떻게 시정할 것이뇨? 시정의 방법은 상대방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자신에게 있습니다. 그러기에 선을 지향해 나가는 사람들은 양심을 부르짖고 있습니다. 그들은 마음속에 어떠한 것이 옳다고 인정되면 그것을 근거로 삼아 그 원칙 밑에서 움직여 나갑니다. 그러기에 그들의 마음과 몸과 생활을 그런 방향으로 움직여 나간 것입니다.

그러면 어떠한 사람이 선한 사람일 것이냐? 하나님의 뜻과 내 뜻이 같은 사람이요, 하나님의 생활과 내 생활이 같은 사람이 선한 사람입니다. 타락의 인연으로부터 벗어난 사람이 선한 사람입니다. 이러한 사람이 되는 것이 하나님이 바라는 최후의 목적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여러분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자기의 생활이 어디를 향하여 가고 있는지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의 이념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습니다. 자기의 마음의 중심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 모르고 있습니다. 이렇게 혼돈되고 혼란된 위치에 처해 있는 우리 자신임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니 가다 보면 서로 부딪칩니다. 천 갈래 만 갈래로 갈라져 천태만상으로 행동을 하니 행동할 때마다 부딪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인류 역사를 섭리해 나오시는 하나님 앞에 좋은 열매를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슬픔과 고통의 열매로 나타납니다. 인간들은 말할 수 없이 얼크러져 있습니다

10-228
하나님이 닦아 나오신 길과 그 목적
하나님이 계신다 할진대 하나님은 반드시 이렇게 얼크러진 인간들을 수습하고 구원해야 합니다. 수습하는 데는 인류 앞에 무엇을 제시하실 것이뇨? 천지에는 중심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거기에는 이 중심을 대할 수 있는 목적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지으셨으니 우리가 하나님의 목적이 될 수 있고, 동시에 하나님이 우리의 목적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과 우리는 원인과 결과의 관계이지만, 이 원인과 결과의 관계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여기에 상대적인 조건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는 소망이 있고, 새로운 창조적인 목적이 있고, 새로운 뜻이 있는 연고로 하나님과 우리는 하나가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래야 할 뜻이 있다는 거예요.

아무리 내 몸과 마음이 하나되어 있더라도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몸과 마음이 하나 된 내 자신이 선의 이념세계와 화할 수 있도록 생활권내에서 전체적인 가치와 더불어 즐길 수 있느냐 없느냐가 문제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신 것은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에서 뿐만이 아니라 사람을 중심으로 하여 온 천주를 품고 즐거워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신 목적은 온 하늘땅과 화하여 하나가 되기 위해서라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타락하여 천 갈래 만 갈래로 갈라져 수습할래야 수습할 수 없을 정도로 얼크러진 이 인류의 역사노정을, 혼돈된 이 세상을 수습하기 위하여 어느 한 곳에서부터 손을 대어 길을 닦아 나오신 것입니다. 그러면 어떠한 길을 닦아 나오셨느뇨? 참는 길을 닦아 나오신 것입니다. 여러분, 종교의 길은 참는 길입니다. 참고 희생하고 죽을 때까지 가는 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을 추구해 나오는 사람 중에는 참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참지 않으면 선한 목적을 달성할 수가 없습니다. 봉사와 희생을 목표로 삼지 않고는 선의 터전을 넓힐 수 없습니다. 이같이 하나님께서는 복잡하고 얼크러진 이 땅 위에 참는 길, 희생하는 길, 죽는 길을 닦아 나오신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목적이 아닌 과정적인 현상입니다.

그러면 목적은 무엇이겠는가? 기쁨과 만족을 느끼는 행복한 세계입니다. 그 세계는 봉사 대신에 높임을 받을 수 있고, 희생 대신에 소생할 수 있는 곳입니다. 이러한 세계를 향하여 하늘은 이끌어 나오신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노정을 개척하여 나오시는 하나님이라 할진대, 앞으로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민족은 어떤 민족일 것이뇨? 참는 민족, 봉사하는 민족, 선을 위해 죽을 수 있는 민족입니다. 이 세계의 역사노정에서 참아 나오는 민족이 있으면 하늘은 붙들 것입니다. 희생하는 민족, 죽음의 자리까지도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하게 나갈 수 있는 민족을 하늘은 붙들 것입니다.

그것은 무엇 때문이뇨? 하나님께서 목적을 이루시기 위하여 그러한 노정을 거쳐 오셨기에 하나님과 같은 목적으로 따라 나오는 사람도 필시 그러한 길을 걷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기에 개인을 찾기 위해서는 개인적인 고통, 민족을 찾기 위해서는 민족적인 고통, 국가를 찾기 위해 서는 국가적인 고통, 세계를 찾기 위해서는 세계적인 고통이 따르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대는 말할 수 없는 고통의 시대입니다. 마음의 방향이 어디로 가야 할지 알지 못하고 어디를 가더라도 마음을 의지할 수 없는 혼란과 혼돈의 시대입니다. 이것 가지고도 안 되고 저것 가지고도 안 됩니다. `아, 나는 되었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그 마음속에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의 물결이 뒤넘어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고통을 참고 견디어 낼 수 있는 사람, 이런 복잡한 과정에서도 끝까지 참으면서 희생하고 봉사할 수 있는 사람, 어떠한 위험과 공포가 휘몰아친다 할지라도 넘어갈 수 있고 죽음의 고개까지도 넘어갈 수 있는 사람, 이런 사람들이 있다 할진대 하늘은 반드시 그 무리를 통하여 새로운 시대를 형성해 나갈 것입니다.

10-230
하나님의 백성이 가야 할 길
지금까지의 기독교 역사는 소망의 한 때를 바라보고 참아 나오고, 희생해 나오고, 죽는 자리까지도 자진하여 나온 역사였습니다. 지금까지 가정을 대신할 수 있는 시대, 민족을 대신할 수 있는 시대, 국가를 대신할 수 있는 시대로 나오는 데 있어서도 그러한 길을 걸었거든, 이제 세계를 대신한 시대로 넘어가야 할 이 때에 있어서는 세계적인 고통, 세계적인 희생, 세계적인 죽음의 고개를 넘어야 됩니다. 이러한 각오와 신념을 가진 신앙자, 이런 이념을 품은 자가 있다 할진대, 그는 절대로 망하지 않습니다. 이제까지의 역사노정이 모두 그러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섭리노정에서 시대가 바뀔 때마다 하늘의 뜻을 대하게 하기 위하여 어떠한 민족을 택하여 고통의 자리에 몰아넣었습니다. 또한 제물의 자리, 희생의 자리, 피를 뿌리는 자리에 몰아넣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타락한 그날부터 인간에게 속죄의 조건을 세워 주시기 위하여 제물을 바치도록 하셨는데, 거기에는 양으로부터 예수까지도 제물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들은 예수를 대할 수 있는 민족, 그 민족을 대할 수 있는 국가, 그 국가를 대할 수 있는 세계로 거쳐 나아가야 됩니다. 이것이 복귀섭리입니다. 양을 제물로 바치다가 양 대신 예수가 만민을 대신하여 제물이 되어 피를 흘렸습니다. 그런데, 그 피를 받은 민족은 민족적인 제물이 되어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앞으로 끝날은 세계적인 제물시대입니다. 전세계에 널려 있는 기독교를 위시하여 수많은 종교들은 세계적인 제물이 되어 나아가야 하나니, 그 때가 바로 대심판 때인 것입니다.

그러면 역사적인 종말시대에 있어서 우리들은 어떠한 민족이 되어야 될 것이뇨? 호화 찬란하게 입고 배불리 먹고 사는 민족이 아니라, 역사를 대신하여 참고 봉사하는 민족이 되어야 합니다. 거꿀잡이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공평합니다. 주권을 가지고 남의 생명을 빼앗아 나오던 어떠한 이념과도 반대의 입장에 서야 합니다. 그런 때가 와야만 됩니다. 필연적으로 이러한 과정을 거쳐야 할 역사노정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길이 막힙니다.

하나님이 가는 길, 하나님의 아들딸이 가는 길, 하나님의 백성이 가는 길은 어떤 길이뇨? 참고, 봉사하고, 희생하며 나아가는 길입니다. 여러분들, 참는 데 맹목적이어서는 안 됩니다. 구주를 위하여? 하나님을 위하여, 참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참아야 합니다. 한 때가 있겠거늘, 그 때를 위하여 참읍시다, 이거 아니예요? 그렇기 때문에 재림사상이 없는 도(道)가 없습니다.

한 때가 온다고 하는데, 그 때는 어떠한 때냐? 마음의 주체이신 하나님께서 마음의 목적을 달성하는 때입니다. 인간은 마음의 주체이신 하나님의 뜻을 본받아 싸우며 그 때를 위해 찾아 나아가야 할 역사적인 운명에 처해 있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본받고 하나님의 목표를 향하여 나가는 데는 싸움의 노정이 없을 수 없으니, 이러한 곡절을 기록하고 있는 것이 역사입니다.

그 싸움은 어떠한 싸움인가? 참는 자가 먼저 맞는 싸움이요, 희생하는 자가 지배받는 싸움이요, 새로운 이념과 새로운 소망을 가지고 나가는 사람들이 죽임을 당하는 싸움입니다. 그런 싸움의 역사노정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땅 위에 선을 부르짖고 나왔던 사람은 어느누구나 고통의 노정을 참지 않으면 안 되었고, 민족을 대신하여 희생하지 않으면 안 되었고, 자기 신념을 굽히지 않기 위하여 죽음의 자리에 나가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입니다.

10-231
최후에 남아지는 주의
역사가 이러한 곡절로 출발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원치 않는 방향으로 걸어 나왔고, 하늘도 우리 인간 이상 어려운 입장에서 원치 않는 길을 개척해 나오셨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의 고통스러운 모든 것들을 홀로 지시고 이 역사노정에서 길을 닦아 나오셨다는 사실을 우리는 몰라서는 안됩니다.

여러분, 그걸 생각해 봤어요? 백만장자의 아들이 자기의 호화찬란한 생활의 이면에 부모의 엄청난 고통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이 사회 환경에서 자기 자신의 근거를 명시(明示) 하지 못한 채 오늘에 만족하고 도취되어 살고 있습니다. 이러한 몰랐던 사실을 온 역사를 걸어 놓고 밝혀야 할 때가 올 것이거늘,그 때가 끝날이요 대심판의 날인 것입니다.

오늘날 이 땅 위에는 수많은 민족과 국가가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수많은 국가 가운데 어떠한 국가를 찾아오실 것이뇨? 미국? 소련? 아닙니다. 민주주의? 아닙니다. 공산주의? 아닙니다. 최후에는 무슨 주의? 심정주의가 되어야 합니다. 죽어도 뜻 때문에 죽고, 그것을 본받다 죽고, 그것의 명령따라 죽고 산다는 이런 주의만이 최후에 남아지는 것입니다.

그 뜻, 그 주의는 하나님주의입니다. 이 하나님주의가 나의 주의요, 하나님의 뜻이 나의 뜻이라 할 수 있고, 그 주의와 나와 심정적으로 인연되어 그 인연을 세상의 어떠한 부귀영화와 바꿀 수 없고, 그 인연을 끊을래야 끊을 수 없게 될 때 최후의 종착점이 도래한다는 거예요.

그러한 한 때를 맞이해야 할 끝날의 우리들은 시야를 넓혀 세계를 냉철히 비판해야 됩니다. 이제까지 우리가 배워온 역사관(歷史觀)을 가지고는 안됩니다. 방향이 다릅니다. 역사가 무턱대고 흘러가는 것 같지만 흘러가는 데는 어떤 동기가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위에서 혹은 먼 거리에서 이 세계를 돌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왜 그러느냐? 어떤 나라에 어떠한 주권자가 있다면 그 주권자가 스스로 망하고 싶어합니까? 어느 국가의 주권자도 망하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어떤 주권자든지 주권을 갖고 세계를 제패하고 만민을 자기 손아귀에 넣고 통치하고 싶은 마음이 다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원하는 대로 되지 않습니다. 그렇잖아요? 그 주권자들은 그러한 민족과 국가를 바라고 있는데 죽음의 고비는 왜 오고 망함의 고비는 왜 옵니까? 소원하지 않았던 일이 벌어지게 되는 것이 역사노정의 비참사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자체가 동기와 해결점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 동기와 해결점은 다른 데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류는 그 동기의 세계와 결과의 세계를 찾아 헤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동기와 결과는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 인간으로 말미암은 동기가 아니라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동기가 되어야 하고, 인간으로 말미암은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결과가 되어야 합니다. 참이라 할진대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고 끝나야 됩니다. 그렇게 되면 문제는 간단한데 거꿀잡이가 된 것입니다. 인간이 동기가 되었고 인간이 결과가 되었으니, 이 동기와 결과는 말할 수 없이 엉클어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인간의 동기와 결과를 제해 놓지 않고서는 새로운 동기와 결과를 옮겨 놓을 수 없습니다. 이것을 옮기기 위하여 하나님은 무한한 수고를 해 나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날 인간 세상에 죽음의 길이 있다 할진대 그 이상의 자리에 서야 되었고, 고통의 길이 있다 할진대 그보다 더 심한 고통의 길을 걸으셔야 했던 것입니다. 그래야 될 게 아니예요. 인간이 사망이 구렁텅이에 굴러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그보다 몇 배의 힘이 필요한 것입니다. 안 그래요? 굴러 들어가는 그 정도의 힘 가지고 되겠어요? 그보다 몇 배의 힘이 필요합니다. 이 땅을 살리기 위한 하늘의 뜻이 있다 할진대 부패하여 썩어진 곳을 해부해 도려내야 합니다. 이것을 위해 오늘 내가 당하는 고통보다 몇십 배, 몇백 배의 심한 고통을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가 당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알게 하자는 것이 종교의 목적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원섭리를 하신다 할진대 그 이유가 어디에 있느냐 하면, 이러한 사실을 알게 하여 구원섭리를 하시려는 하나님의 마음과 우리 인간의 마음이 한 방향이 되도록 하려는 데 있습니다.

10-233
하늘과 땅의 반영체인 개인
여러분에게 처음 말씀드렸듯이, 이 사회와 시대의 슬픔과 고통은 나에게서 인연된 것이고 반영되어진 것이거늘, 여러분의 마음과 몸에 스며드는 슬픔과 고통의 구렁텅이를 메우지 않는 한, 여러분과 관계된 이 세계의 비운의 곡절을 제거시킬 도리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도 이 땅에 와서 어떠한 상대적인 곳에 천국이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천국은 네 마음에 있다고 말했습니다. 마음에 천국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다른 어떠한 곳에 천국이 이루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가 아무리 악하다 할지라도 낙심해서는 안 됩니다. 이 세계는 내 자신과 인연되고 내 자신이 반영된 세계임을 알고, 내 자신이 하나되지 못하고 미완성된 것을 발견하고 완성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탄식하고 저주할 일이 있거든 자기 자신을 저주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그 자리에서부터 소생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됩니다.

개인 개인이 모여서 형성된 것이 세계요 인류입니다. 그러니 종말시대에 있어서 전세계의 인류는 한 사람과 같습니다. 전세계에서 벌어지는 사실들은 한 사람의 생활 무대에서 벌어지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을 한 사람의 마음의 반영이요 몸의 반영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끝날에 어떻게 해야 승리할 수 있는가? 마음을 수습하여 몸과 하나가 되어야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것과 마찬가지로 전세계에 있는 인류의 마음을 수습하여 인류의 몸적인 생활 무대와 하나 되게 만들 수 있는 무엇이 나와야 합니다.

개인은 천주의 모방이요, 하늘과 땅의 반영체이며, 하늘과 땅을 대신한 존재입니다. 그러기에 나 하나는 가정의 주인도 될 수 있고, 사회의 주인도 될 수 있고, 국가의 주인도 될 수 있고, 세계의 주인도 될 수 있고, 하늘과 땅의 주인도 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나’가 되어야 합니다. 하늘과 땅을 대신하고 하늘과 땅의 반영체인 마음과 몸이 실체의 마음과 몸의 세계와 완전 일치, 완전 자동, 완전 자주하게 될 때, 온 우주는 그 사람으로 말미암아 좌우되는 것입니다. 원칙이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그러한 나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그러한 나를 회복해야 합니다. 찾아야 합니다. 찾는 데 있어서 어떠한 민족주의시대의 나를 찾게 된다면, 하늘과 땅을 대신한 마음과 몸의 가치가 그 시대의 지도자밖에 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역사적인 끝날에 하늘과 땅을 대신하여 마음과 몸이 하나가 되어, 새로운 영광과 새로운 이념을 대신할 수 있는 인격을 갖춘 하나의 모습을 세우고자 하는 것이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이러한 인격을 갖추고 나타나시는 분이 오시는 주님입니다. 오시는 주님은 하늘과 땅을 대신한 분이기에 마음으로는 하늘을 움직일 수 있고, 몸으로는 땅을 움직일 수 있는 존재입니다.

본래 인간은 본연의 실체로서 하늘땅을 움직여 낼 수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할 것이었는데,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계로 떨어졌습니다. 이러한 인간을 깨우쳐 민족적인 대표로 세웠고, 국가적인 대표로 세웠고, 세계적인 대표로 세웠습니다. 인간과 하늘과 땅을 하나로 화하게 하는 것이 창조원칙이므로, 인간을 세계적인 하나의 중심존재로 세우기 위한 것이 구원섭리의 목적입니다.

10-235
주님이 겪어야 할 노정
그러면 그런 중심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야곱을 중심삼고 볼 때, 그는 하늘이 인정하는 가정적 중심 존재가 되기 위해서, 그 일대에 있어서 고통의 길과 희생의 길과 죽음을 각오하는 노정을 거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가정적인 환경의 모든 어려움을 넘어야 했습니다. 마음으로는 모든 이념을 품고, 몸으로는 환경적인 핍박을 이겨야만이 자기에 대한 중심 사명을 완결지을 수 있는 것입니다. 안 그래요? 모세도 마찬가지입니다. 모세가 새로운 이념을 품고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가나안 땅을 향하여 나가는 노정에서, 고통과 희생과 곡절이 부딪치는 환경을 참고 넘어야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었는데, 그러지 못하고 쓰러졌습니다. 민족적인 시련에 부딪쳐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가정을 지나고, 민족을 지나고, 국가를 지나고, 세계를 향하여 나아가야 한다 할진대, 구주로 오신 예수도 이 땅에 와서 편안한 자리에 서는 구주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만일 이스라엘 민족이 예수를 죽이지 않고 예수와 하나가 되었더라도, 이 세계를 하나님의 나라로 이루어 나아가는 데 있어서 고통의 싸움, 곡절의 노정을 거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개인에서부터 가정, 민족, 국가, 세계를 거쳐 나오는 역사적인 섭리노정도 모두 그러하다는 거예요. 그러기에 전세계 기독교인들도 어떠한 길을 거쳐야 하느냐 하면, 제1이스라엘인 이스라엘 민족이 예수를 십자가에 죽임으로 말미암아 망하였으니, 제2이스라엘인 전세계 기독교인들도 새로운 주권국가의 백성이 되기 위하여, 죽음과 핍박과 고통과 인내의 노정을 개척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끝날에 주님이 오신다 하더라도 영광 가운데 나타나서 역사적인 슬픈 사정이 엉켜 있는 이 땅을 향해 대번에 호령할 수 없습니다. 역사를 지배할 자는 역사를 통하여 나와야 됩니다. 세계를 지배할 자는 세계를 통하여 나와야 하고, 하늘땅을 움직일 자는 하늘땅을 통하여 나와야 됩니다. 여러분들, 그렇지 않아요?

역사적인 종말시대, 세계적인 종말시대, 혹은 섭리적인 종말시대인 이때에 이 세상을 지배할 수 있는 주님이 오신다 하더라도, 역사와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고 볼 때, 그분도 역사적인 인연의 시기를 통과해야 됩니다. 그러지 않고는 이 세계를 지배하지 못한다는 거예요. 그분은 슬픔과 고통과 죽음과 비애의 곡절이 사무쳐 있는 이 땅의 역사적인 현실에서 승리한 자라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모순입니다. 역사적인 환란을 통과해야 하고, 섭리노정에서 승리하신 분이어야 합니다. 이 섭리노정에는 보이는 이 땅만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무형(無形)의 사탄도 있다는 것입니다. 즉 원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 원수와 싸워 승리해야 됩니다. 하나님을 찾아나가는 노정에서 뿐만 아니라 원수와 싸우는 역사노정에서도 승리해야 합니다. 원수까지도 승리한 자라고 공인할 수 있어야 합니다

10-236
이 땅에 필요한 구주
또, 다음에는 끝날에 가서 이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주인은 어떠한 승리자가 되어야 하느뇨? 하나님의 심정의 바탕에서 승리한 자라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시고 자녀로 세우셨기에 그를 지극히 사랑하고 싶은 것이 아버지의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그 마음을 채워 드리지 못하였으니, 인간이 타락하기 전에 하나님의 마음 깊이 스며 있던 심정, 그 사랑의 심정을 채워 드리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대번에 될 수 있겠습니까? 인간이 타락한 그날부터 하나님께서는 슬픔을 동반하게 된 것입니다. 타락 이후 아담가정으로부터 노아, 모세, 예수, 그리고 예수 이후 지금까지 2천년 역사노정에서 예수와 성신이 싸워 나왔던 심정적인 역사의 기반을 통하지 않고서는 안 됩니다. 앞으로 오시는 주님은 바로 그런 분이어야 합니다. 그런 주님이 우리에게 필요하고 이 땅에 필요합니다. 그런 분이어야 원수의 세력을 꺾고 승리할수 있고, 하나님 앞에서 모든 것을 마음대로 주관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승리하셨습니까? 못했습니다. 섭리노정을 걸으시다가 사탄에 의해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셨습니다. 예수님은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라는 비애의 인연을 남기고 가셨습니다. 이렇게 된 것은 아버지도 고충이요, 아들도 고충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선을 중심삼고 아들딸을 자유로이 품에 품고 사랑할 수 있는 인연의 터전을 이루지 못하고 예수님은 가셨습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가신 주님이 그냥 오시면 되겠습니까?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끝날에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새로운 이념을 향하여 나아가려는 무리가 있다 할진대, 역사적인 인연과 섭리적인 인연과 천정적(天情的)인 인연을 통과해야 된다는 거예요. 인정(人情)이 아닌 천정(天情)의 인연을 통과해야 합니다. 역사가 공인할 수 있고, 섭리가 공인할 수 있고, 아버지께서 심정으로 사랑하고 `너는 진정한 충신이요, 효자요, 열녀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내용을 가지고 오지 않으면안 됩니다 그러면, 다시 오시는 주님이 천상세계에서 그런 내용을 갖추고 오실 것이냐? 그러면 구주가 될 수 없습니다. 악한 자의 구주가 되려면 악한자 이상 내용을 갖어야 하고, 죄인의 구주가 되기 위해서는 살인 강도 이상의 곡절의 심정을 통해야 됩니다. 그러지 않고는 그들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오시는 주님은 어떠한 마음 바탕을 갖고 오실 것이뇨? 그분은 역사의 곡절이 아무리 많고 크다 하더라도 그 모든 곡절을 내 것으로 갖고 오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구주가 되는 것입니다. 죽음의 자리에 들어가서도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그러면, 주님이 이 땅 위에 오시기 전에 어떠한 일이 벌어져야 되느냐? 이 땅 위의 악한 모든 것이 모두 나 때문이라고 할 수 있는 무리들이 나와야 됩니다. 이렇게 된 것도 내 책임이요, 저렇게 된것도 내 책임이라고 하는, 모든 것에 대하여 책임지겠다는 무리가 나와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주님이 오실 수가 없습니다. 내가 알기에는 그래요.

이렇게 볼 때 오늘날 이 세계에서 원수로부터 맞든가 칭찬받든가 하는 민족이 있어야 합니다. 판결은 어디서 벌어지느냐? 내 편과 남의 편이 부딪친 자리에서 벌어집니다. 그리고 맞는 데 있어서도 억울하게 맞느냐 당연히 맞느냐가 문제입니다. 고통을 당하는 데 있어서도 억울하게 당하느냐 당연히 당하느냐가 문제입니다.

10-238
모든 일을 하나님 위주로 할 때
나는 혹시 여러분이 고통당할 일이 있다면, 당연하게 당하는 자가 되지 말고 억울하게 당하는 자가 되길 바랍니다. 그러한 여러분이 되어야 합니다. 아시겠어요? 이것은 삼천만 민족 앞에 외치고 싶은 내용입니다. 지금까지 한민족이 당연한 고통을 당하고 당연한 슬픔에 부딪쳤느냐, 아니면 억울한 고통을 당하고 억울한 슬픔에 부딪쳤느냐 하는 것을 헤아려볼 때에 언제나 억울하게 당해왔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민족은 망하지 않습니다.

천륜은 이러한 방향으로 찾아오거늘, 이 민족 가운데에서 억울한 자를 규합하여야 할 때가 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억울하게 고통받고, 억울하게 몰리고, 억울하게 쫓김받는 무리를 통하여 새시대의 문이 열립니다. 쫓김받는 무리가 시대를 혁명해 나왔습니다. 억울한 자들이 시대를 혁명해 나왔습니다. 당연한 사실이 아닌 자리, 즉 그 시대의 원칙이 아닌 자리에서 혁명해 나왔습니다.

여러분, 이 한민족에 있어서 특히 청년 남녀들은 알아야 합니다. 분한 일이 있으면 이 분함이 누구를 위한 분함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나 때문에 분하거든 참아야 됩니다. 도의 길은 나를 중심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를 중심하는 것은 선이 아닙니다.

선이란 나 이외의 상대적인 세계를 위하는 것이며, 그 위함이 크고 작으냐에 따라 그 가치도 크고 작아지는 것입니다. 참이라는 것은 나 위주가 아니라 하늘 위주인 것입니다. 그러니 큰 하늘을 위주하기 위해서는 큰 세계를 내 것으로 알고 큰 하늘 앞에 가까이 나아가야 되겠습니다. 세계를 자기 마음에 품고 나아가자는 것이 하늘의 생각입니다.

여러분 자신이 슬프고 어렵고 분하더라도 그것으로 끝나야 합니다. 여러분 개인이 천만 번 분하다 하더라도 이 민족은 분한 자리에 서지 않아야 합니다. 이 민족이 아무리 분한 자리에 선다 하더라도 이 세계가 분한 자리에 서서는 안 됩니다. 더 나아가 이 세계가 아무리 분한 자리에 선다 하더라도 하나님이 분한 자리에 서면 안 됩니다. 더 큰 것이 분한 자리에 서서는 안됩니다. 선은 나를 기반으로 하여 더 큰 것으로 뻗어 나가는 것입니다.

가정을 위하여 봉사를 하고 피와 땀을 흘리고 죽음을 각오한 자는 그 가정의 주인이 됩니다. 사회를 위하여 고통을 당하고 봉사를 하고 죽음을 각오한 사람은 그 사회의 책임자가 되는 것입니다. 나라를 위한 충신도 그러하고, 하늘을 위하여 싸워 나가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6천년 동안 섭리해 나오시면서 하나님을 믿는 기독교인들에게 가장 좋은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세상을 위하지도 말고, 세계를 위하지도 말고, 자기 나라를 위하지도 말고, 자기 가정을 위하지도 말고, 이 땅 위의 그 누구를 위하지도 말고 하나님 자신만을 위하라고 하셨습니다. 큰사람이 되라고 그러신 것입니다.

가정을 위하여 세워 놓으면 국가가 때려 부숩니다. 국가를 위하여 세워놓으면 세계가 때려 부수고, 세계를 위하여 세워 놓으면 하나님이 때려 부숩니다. 그러면 맞지 않을 수 있는 제일 중심이 무엇이냐? 하나님을 위하는 것입니다.

10-239
하나님의 한을 해원할 효자 효녀
하나님의 복귀섭리 역사노정을 거쳐 나오는 동안 우리의 선조들은 피를 흘리며 죽음의 고개를 넘어왔습니다. 이제 민족주의시대가 지나가고 세계주의시대도 지나서 새로운 통일의 이념을 갖추어 하늘을 중심삼을 수 있는 시대가 기필코 옵니다. 그 때에는 역사노정에서 참상을 당하던 무리들이 해방을 받습니다. 그 해방의 시대가 오늘날 기독교의 명사로 말하면 `천년왕국시대’입니다.

여러분, 이제 우리는 다시 한번 살펴야 되겠습니다. 지금 이 세상에서 억울하게 맞는 대한민국은 불쌍한 나라입니다. 세상에서도 억울하게 맞으면 동조해 주고 협조해 줍니다. 억울하게 맞는 사람에게는 편이 생깁니다. 이 한민족도 억울하게 맞았기 때문에 편이 많습니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 처하여도 이제는 굶어 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이 민족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이뇨? 하나님을 붙들어야 됩니다. 하나님을 붙들어야만 돼요. 하나님은 억울하고 분할 때 그 억울하고 분함을 누구에게도 호소한 적이 없었습니다. 인간에게 호소한 적이 없었습니다. 양심적인 사람들도 억울하게 죽음의 자리에 나가게 될 때에 이 나라를 대해 자신을 알아주기를 바라지 않았습니다. 하나님만이 알아주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개인이 그러하거든 가정도 그러하고, 민족도 그러하고, 국가도 그러해야 합니다. 그러니 억울한 국가의 입장에 선 이 나라의 삼천만 민족은 마음을 한데 모아 `하나님, 저희들을 알아주십시오’ 하는 운동을 벌여야 합니다. 그러면 망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다시 한번 생각해 봅시다. 우리가 `하나님, 저희들을 알아주십시오’ 할 때 하나님의 입장은 어떠하실 것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만 억울하고 분한 것이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보다 더 억울하고 더 분한 입장, 더 불쌍한 입장에 처해 계십니다. 왜 그러냐?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아들딸, 선한 편이 불쌍하게 몰리고 맞는 것을 보실때, `오, 잘했다’ 하시겠습니까? 가슴이 터지고 녹아지는 아픔을 느끼실 것입니다. 우리가 당하는 슬픔보다 더 큰 슬픔을 당하시며 우리를 바라보시는 하나님입니다.

이 민족이 하나님의 마음만 아는 날에는 이 민족은 하늘땅을 지배하게 될 것입니다. 어째서 그런가? 수많은 자식이 있고, 수많은 백성이 있다 하더라도 최고의 효자, 효녀, 충신은 한 사람입니다. 타락한 인간의 부모도 같은 자식이라 하더라도 억울하게 맞고 있는 자식을 더 생각하는 것이 상정(常情)이거늘, 하물며 하나님이 안 그러시겠습니까?

그러니 우리는 이 때에 우리 민족이 고통당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호소할 것이 아니라 `이 민족을 바라보시는 아버지의 마음은 어떠하시옵니까? 부디 저희들의 고통으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 고통받지 않으시길 바라옵니다. 저희가 고통받는 그 길을 자진해서 가겠습니다. 죽음의 길 때문에 고통받지 마십시오. 저희가 그 길을 가겠습니다’라고 하는 굳은 각오를 가져야만 됩니다. 그래야 최후의 충신을 결정하는 고비에서 하늘 땅이 공인할 수 있는 최고의 충신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무엇을 찾으시느뇨? 하나님은 어떠한 백성을 찾으시는 것이 아니라, 제일 사랑하는 효자 효녀를 찾으십니다. 효자 효녀를 찾아 세워 그 백성에게 자랑하고 싶어하십니다. 세계를 수습하여 한 민족을 찾고, 이스라엘을 세워 여기서 하나의 혈족을 찾고, 하나의 혈족을 수습하여 하나의 가정을 찾고, 하나의 가정을 수습하여 한 사람을 찾는 것입니다. 그 한 사람을 찾는 것이 세계를 찾는 것이기에, 그 한 사람은 하나님의 모든 역사적인 한을 풀어 드릴 수 있는 마음을 소유한 효자이어야 합니다. 그런 효자가 나와야만 그로 말미암아 악한 사람들이 속죄함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억울한 자리에 있으면 하늘은 더 억울해 하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새로운 시대를 향하여 넘어가는 데는 역사적인 인연과 섭리적인 인연과, 심정적인 인연의 과정을 통과해야 합니다. 그러한 노정을 통과하는 데 있어서 민족이 억울하게 맞고 있는 것을 보고 그저 바라보고만 있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이것을 바라보시는 아버지의 마음은 더 고통스럽거늘, `저희가 기쁜 마음으로 그 자리에 서겠사옵니다. 저희를 보시고 민족을 용서하시고, 세계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된다면 틀림없이 하나님이 사랑하는 아들딸이 되는 것이요, 하늘땅의 유업을 상속받을 것이요, 온 민족이 그 앞에 머리 숙일 것입니다. 나는 이것을 확신합니다. 역사는 그렇게 흘러 나온다는 거예요.

10-241
새시대의 역군이란
오늘 여기에 모인 여러분에게 말씀을 전했습니다. 앞으로 나아가자고. 한많은 이 민족, 이제 우리는 이 민족의 한의 원인이 어느 주권자에게 있다고 말하지 맙시다. `내 책임이요, 우리의 책임입니다. 그들은 우리를 대신한 자입니다’라고 합시다. 그들이 서러워할 때 우리도 서러워하고, 그들이 고통을 받을 때 우리도 고통받아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갈 길입니다. 이 나라의 운명을 바라보고, 이제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은 이 길뿐입니다. 이것이 내 일이다, 나라에 슬픔이 있으면 그것이 내 슬픔이라고 할 수 있고 `만민이여! 너희의 슬픔을 하나님께 고하지 말고 우리에게 고하라’고 할 수 있는 아들딸이 되기를 바랍니다. 아시겠어요?

우리들에게 슬픔이 있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슬픔을 아는 우리는 그것을 한하지 맙시다. 민족 앞에 나서서 너희의 모든 슬픔을 우리에게 고하라고 하며, 그들의 슬픔을 책임지고 죽음과 희생과 인내로써 막아내겠다고 나서는 무리가 있다면, 그 무리는 하나님의 뜻을 대신한 산 실체(實體)들로서 이 땅 위의 선과 악을 심판할 수 있는 주인들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느 민족, 어느 교파에서 그러한 무리들이 나타날까 하고 6천년 동안 고대해 나오셨습니다. 우리 이상의 고통을 당하고, 우리 이상의 죽음의 고비를 넘고, 우리 이상이 애통한 곡절의 심정을 품고 안식의 터전을 찾지 못한 채 허덕이며 찾아 나오셨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아버지의 모습을 알아드려야 되겠습니다.

아버지의 이러한 모습을 알고, 아버지가 역사노정에서 수고하신 것도 나 때문이요, 이 시대의 섭리의 뜻을 위해 수고하신 것도 나 때문이요, 미래의 소망을 위하여 수고하실 것도 나 때문이니, 나를 위하여 수고하신 아버지 앞에 효자가 되어야 할 인연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만민을 대신하여 책임지겠다고 나설 수 있는 자들만이 새시대의 역군이 되고 새시대의 하늘의 일을 맡아 처리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끝날에 오시는 주님은 구름을 타고 안 오십니다. 구름타고 와서는 안 됩니다. 그분은 고통의 왕자요, 핍박받는 왕자요, 인내의 왕자입니다. 최고의 핍박도 받고 최고의 원한이 사무치고 비통한 심정을 품고서도 세계를 품고, `아버지, 이러한 것은 제가 응당 받아야 할 인간적인 세상 일이오니, 저를 대하여 섭섭해 하지 마시고 고통스러워하지 마시고, 가슴 아프게 생각지 마소서. 이것은 이제 제가 해야 할 책임입니다’하며 내가 인류의 고통과 사망권에 있는 전부를 일신에 짊어지고, 아버지의 책임을 이 땅 위에서 완수하겠다고 나서는 자라야 구세주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 인격체(人格體)를 세우시기 위하여 하나님은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이런 것이 아까 여러분에게 말씀드린 제목입니다.

하늘은 우리를 위하여 무엇을 당하셨느뇨? 우리는 우리를 위하여 당하신 하나님의 그 고통의 내정을 알지 않으면 안 됩니다. 사람들은 7,80년의 짧은 생애를 살면서 원수가 많고 뭐가 어떻고 하면서 마음 편안한 환경이 못 된다고 합니다. 하늘의 반영이요 땅의 반영인 개인이 그러할진대, 그러한 개인의 주체요, 땅의 주체로 계시는 하나님은 어떠하셨겠습니까? 6천년 동안 하루도 하나님의 눈물은 마른 날이 없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무슨 눈물을 흘리시겠느냐고 하겠지요. 여러분의 눈물은 어디서부터 시작이 되었습니까? 하나님께서도 정지의(情知意)를 가지고 계십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지음을 받은 인간에게 정지의가 있을진대 하나님에게 있어서는 말할 것도 없다는 거예요.

10-243
사탄은 6천년의 대원수
비록 이 땅 위의 인류가 타락의 후손이지만 하나님 자신의 혈족이요, 직계의 아들딸이기 때문에 잃어버린 아들딸을 찾는 부모의 심정, 그 이상의 심정을 가지고 오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이 땅을 대하여 눈물을 흘리고 죽음과 고통으로 쓰러지고 비애에 사무쳐 서러워하는 장면이 바로 하나님의 슬픔과 서러움이 반영된 장면 장면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한 사람을 업신여기고, 선한 사람을 핍박하고, 선한 사람을 죽인 개인, 가정, 민족은 오래 못 갑니다. 왜? 하나님께서 그것을 기억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자신의 눈물이 떨어질 때마다 하늘의 눈물의 떨어지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원수를 대하여 분하고 절통(切痛)한 마음이 우러날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용서의 눈물을 흘리신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원수를 갚고 나서도 `야, 이놈 너 잘 죽었구나’하는 그런 하나님이 아닙니다. 사람을 원수로 여겨 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원수가 아닙니다. 6천년의 대원수가 있다 할진대 그것은 사람이 아니라 사람을 꾀어 나오는 사탄입니다. 사탄이 원수입니다.

훌륭한 법관이라면, 어떤 죄수에게 최고의 형(刑)을 내렸다 할진대, 그를 위해 눈물을 흘릴 줄 알아야 합니다. 인간 개체는 지극히 선한 것입니다. 이목구비를 갖춘 그 실체(實體)는 만우주를 대신한 거룩한 성체(聖體)입니다. 그런 성체의 마음을 움직이는 악이 나쁘기 때문에 그 악을 심판할 권한은 있지만, 그 몸을 심판할 권한은 없다고 하며 눈물지을수 있는 법관이라야 천상(天上)에 가서 걸리지 않습니다. 만약 이러한 마음이 아닌 비법도적(非法度的)인 마음을 가지고 하늘 앞에 한번 가보십시오. 어떻게 되나.

하늘은 멸망하는 민족을 저주하는 민족을 칩니다. 심판받아 쓰러지는 그 민족을 보며 비웃는 사람을 칩니다. 우리 한민족은 역대에 걸쳐 수많은 민족의 피압박 국가로서 이리 밟히고 저리 밟혀 나왔지만, 이 민족은 다른 민족에 대한 원한이 없습니다. 침략을 모르는 민족입니다. 내가 보건대는 고마운 일입니다. 맞는 자리에서 눈물지으며 자탄할 줄 알지만 남을 원망할 줄 모르는 민족성을 가지고 있어요. 이것을 볼 때, 이 민족에게는 소망이 있다는 것을 저는 느낍니다.

여러분, 여러분 앞에 철천지 원수의 사람이 있습니까? 그 사람이 원수가 아닙니다. 민족과 대결하고 이념과 대결해 나오는 반역자는 인간이 아니라 바로 대원수 사탄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10-244
인류의 고충을 홀로 책임져 주신 하나님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이 하나 되기를 얼마나 원하셨는지 아십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 선조가 에덴 동산에서 쫓겨난 그 순간부터 하나님과 우리 인간이 부자지간(父子之間)의 심정을 통하여 하나 되기를 고대하셨습니다. 만일에 인간이 타락하지 않고 하늘을 배반하지 않아 원수가 생겨나지 않았던들, 우리는 벌써 이상세계를 맞이했을 것입니다.오늘날 20세기와 같은 과학 문명은 벌써 몇 천년 전에 이룩되었을 것입니다. 현대 문명은 문예부흥 이후 400년이란 세월을 통하여 이루어진 것입니다. 오늘날 이 문명을 400년 동안에 건설했다고 자랑하고 있지만, 만일 하나님께서 직접 간섭하셨다면 40년, 아니 일대(一代)에 이런 문명의 세계를 건설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곡절이 벌어졌으니 하나님은 여기에 하나의 이념을 세우고 하나되게 하기 위한 고충의 역사를 홀로 책임지고 나오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민족을 대해, 국가를 대해 나오시는 동안 이 천지에 당신의 발자국을 남기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선한 자가 쓰러질 때마다 거기에는 하나님의 눈물이 떨어졌습니다. 선한 혈족은 망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딸이 핍박받고 몰림받는 그 자리에는 하나님의 땀방울이 떨어집니다. 그 하나님의 눈물과 땀을 점령할 자가 없습니다. 사탄도 못 합니다.

악이라는 것은 이용하는 것이 본질이고, 선이라는 것은 이용당하는 것이 본질입니다. 이용하는 본질을 가진 사탄이 이용당하는 본질을 지배할 수 없습니다. 지배하려면 자기도 그렇게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도의 길은 위하는 것이 본성이며 본질입니다. 위하는 본질을 높이기 위하여 쓰러져 간 자들이 흘린 눈물은 하나님의 눈물이요, 그들의 피땀은 하나님의 피땀입니다.

이 민족은 지금 혼란한 상태에 처해 있습니다. 청년 남녀 여러분, 우리에겐 피와 살이 있습니다. 우리의 심정에는 정(情)이 흐르고 있습니다. 심장이 고동칠 때마다 동맥과 정맥을 통하여 피가 약동하고 있습니다. 뼈와 살과 피를 통하여 흘리는 땀과 눈물이 있습니다. 누구를 위하여 이것을 흘립니까? 민족을 위하여 쓰러지는 것도 좋습니다. 어떠한 주의 사상을 위하여 쓰러지는 것도 좋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붙들고 쓰러져야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망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보십시오. 그들은 예수가 왔다 간 이후 2천년 동안 유리고객하는 민족이 되었었습니다. 어느 사회에 가든지 그 사회로부터 몰림을 받았으나, 오늘날 세계의 경제는 그들이 좌우하고 있고, 신문화도 그들의 터전으로 이루어져 나왔습니다. 그들은 채찍을 맞을 때에 이를 악물고 눈물로 하나님을 불렀습니다. 이러한 역사노정이 남아 있는 한 하나님은 슬플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10-245
통일용사의 갈 길과 책임
오늘 여러분은 이 통일교회에 와서 무릎을 꿇고 있습니다. 이 통일교회의 사람들은 몰림을 받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사람도 마찬가지로 분하고 원통한 사정이 있고 억울한 심정이 있습니다. 나에게는 원수가 없습니다. 내 한 존재를 몰아세워서 이 민족이 복받을 수 있다면 그렇게 하기를 바라는 사람입니다.

통일 식구 여러분, 우리의 가슴에는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지백체를 통하여 흐르는 피가 멈추는 날에는 죽습니다. 여러분은 아버지가 있음을 잊지 말고 죽는 순간까지 이 뜻을 위하여 땀을 흘리십시오. 이 뜻을 결코 후대에까지 연장시키지 않고 자기가 기필코 이루고야 말겠다는 굳은 마음을 가지고 몸부림치면 여러분은 망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자식이 매맞는 것을 볼 때, 하나님은 때리는 민족을 짓밟아 버리고 싶은 생각이 얼마나 간절했겠습니까? 그러나 원수를 망하게 하는 것이 목적이지, 사람을 망하게 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기에 그러지 못하신 것입니다. 원수는 미워하지만 사람은 사랑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우리가 하늘땅을 원망하고 저주한다면 하늘은 슬퍼하고 사탄은 좋아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기에 원수를 갚았다 하더라도 사람을 위해서는 눈물지어야 됩니다. 그래야 돼요.

통일 용사 여러분, 우리의 앞 길에는 싸움의 길이 첩첩히 놓여 있습니다.험한 가시밭길이 남아 있습니다. 이것이 이 민족의 어떠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서 끝나는 게 아니라 세계를 넘어 천상(天上)의 세계까지 나아가야 할 길이 남아 있습니다. 이 길을 가는 여러분의 눈물의 6천년 전의 아버지의 심정의 맨 밑바닥이 동기가 된 눈물이고, 천만년 동안 하나님이 기쁨의 동산에서 춤출 수 있는 그 세계를 위해 흘리는 눈물입니다. 그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여러분은 쓰러질 줄 모르고 힘차게 돌진하여야 되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여기에서부터 하나님이 당한 사정은 풀려 나갑니다. 이렇게 되어야 하나님은 `오냐, 사랑하는 아들딸아, 땅 위에 수많은 사람이 살고 있었지만 내 심정을 대신하여 싸웠던 사람이 없었는데, 이제는 네가 나와 같은 자리에 서서 싸우는구나’하시며 위안받으시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모습들이 몰림받고 있는 통일의 무리입니다. 좁은 길을 가야 하는 우리에게 곡절이 있는 이 마당에서도 우리는 자탄할 수 있는 환경을 극복하고, 이 민족의 한을 자기 일신에 지고 세계적인 몰림을 책임지겠다고 해야 됩니다. `아버지, 이 모든 것을 제가 책임지겠사오니, 오늘 제가 맞는 것으로 세계가 맞는 것을 대신할 수 있고, 제가 통곡하는 것을 후세의 통곡으로 받아 주시옵소서’라고 할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는 망하지 않습니다.

선생님은 지금까지 여러분 앞에 이제부터 가야 하는 데 있어서 눈물을 흘리자고 했습니다. 피와 땀을 흘리자고 했습니다. 여기에 서 있는 사람은 그렇게 싸워 왔습니다. 변명하고 피하려는 자가 결코 아닙니다. 여러분이 눈물을 흘리면 나는 피를 흘리기를 개의치 않으며, 여러분이 땀을 흘리면 눈물을 흘리기를 개의치 않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지 않고서는 민족의 갈 길을 돌려 잡을 수 없습니다.

오늘 여러분께 드린 이 스승의 권고를 말로 듣는 것만으로 끝내서는 아니 되겠습니다. 하늘이 우리를 위하여 당하신 고비고비의 역사를 알아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어떠한 무엇을 당한들 하늘이 당하신 고비에 비할 수 없고, 아무리 억울한들 하나님의 억울한 심정에 비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역사적인 죄악의 종족입니다. 부디 원컨대,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한 여러분들, 왔다가 그저 돌아가는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

심정의 억울함과 분함을 품고 있는 인류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한을 도려내는 동시에 하나님을 모셔야 하고, 사탄과의 싸움을 책임져야 할 입장이요, 더 나아가 불쌍한 사람을 품고 사랑해야 할 입장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찾아 세워 주신 것은 당신의 일들을 맡기기 위한 뜻이 있음을 알고 이러한 책임을 질 수 있는 여러분이 되기를 부탁하는 바입니다

10-247
기 도
아버님, 말씀을 전하다 보니 심히 부족함을 느끼옵니다. 얼마나 외치고 싶으셨고, 얼마나 통곡하고 싶으셨으며, 얼마나 발을 동동구르고 싶으셨사옵니까? 천적인 위신과 아버지의 체면이 있는 연고로 울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도 울지 못하시는 아버지의 사정을 알았사옵니다.

아버지, 역사노정을 거쳐 나온 저희들이 자신의 반영을 세계로 돌리고 세계의 반영을 내 일신에 지녀, 이 세계를 움직이시는 아버지를 모실 수 있는 효자, 효녀, 충신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것이 아버지의 소원임을 알았고, 원수를 아버지 앞에 서게 하지 말고 저희가 책임져야 함도 알았사옵니다. 저희들 이제부터라도 뜻을 위해 희생하겠다는 새로운 각오 아래 하늘 뜻 앞에 늠름히 설 수 있는 아들딸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 앞에 험한 길이 찾아 들고 핍박이 연할지라도 아버지를 생각하고, 외로움에 눈물이 솟구칠지라도 아버지를 생각하고, 비애의 곡절에 사무쳐 몸둘 바를 모를 때에도 아버지를 생각하며, 이 길은 내가 가야 할 길, 일생의 일로 삼아야 할 길이라고 생각하여 감사히 여기며 갈 줄 아는 아들딸이 된다면 저희들은 망하지 않을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그러한 저희들을 통하여 이 민족은 새로운 방향을 알 때가 올 것이고, 세계 인류의 새로운 문화의 기준, 새로운 시점을 세울 때가 올 것을 아오니, 저희들, 인정의 기준을 넘어 천정의 인연을 갖추고, 천적인 심정의 동산을 건설하기 위한 나팔을 드높이 불며 행군하는 용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사탄의 종말을 보기 위해서 원수의 적진을 향해 총진군하는 당신의 아들딸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하늘이 잃어버린 인간들을 찾아 하늘의 품으로 돌려보내고 승리의 개선가를 부르고도 남을 수 있는 아들딸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 시간, 남한 각지에서 외로운 자의 뒤를 따르며 외로운 심정을 품고 눈물짓고 있는 아들딸들에게도 당신의 심정의 인연으로 이때를 알고 천상의 심정을 상속받아 책임을 다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불쌍한 만민을 자기의 자녀같이 품을 줄 알고, 사탄을 대하여 책임지고 싸울 줄 알고, 더 나아가서 아버지를 모시고 효성을 다할 줄 아는 아들딸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늘이 맡기시려는 시대적인 위업, 세계적인 위업, 더 나아가서 천주적인 위업을 맡기에 부족함이 없도록 아버지께서 품어 주시옵고, 연단시켜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오면서, 모든 말씀을 주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니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