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17: 재림주와 제3이스라엘

재림주와 제3이스라엘
1960.10.14 (금), 한국 전본부교회

10-217
재림주와 제3 이스라엘
[말씀 요지]

만물이 우리 인간이 타락됨으로 말미암아 탄식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이것도 복귀해야 한다. 만물을 창조한 후에 인간을 지었기 때문에 만물복귀를 하기 위한 성별을 해야 한다.

우리는 자신과 싸우고 있음은 물론 사탄과 싸우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이 뜻을 판단할 지능이 없을 때에는 무조건 순종해야 한다.

탕감을 하기 위하여는 물건을 조건으로 삼는다. 우리가 십일조를 하늘앞에 바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9수는 타락세계의 수요, 10수는 이것을 벗는 수요, 하늘세계의 수다.

만물의 종자를 타락인간이 먼저 땄다. 고로 이것을 성별(聖別)해야 한다. 이스라엘 민족의 가나안 복귀에 있어서도 3년의 성별기간이 있었다.

모든 식물의 종자 하나 하나도 성별한 것으로 남겨 놓아야 한다. 이 한반도를 우리의 손으로 녹화(綠化)해야 한다. 많은 산이 나무로 푸르러지는 것을 보아 이 녹화는 용이한 것이다. 일생 동안 120주 내지 360주의 나무를 심어야 한다. 인간은 땅 위에 산 인연을 영원히 남겨야 한다. 앞으로 3년간 이런 일을 해야 한다.

예수님도 4천년 역사를 2년 8개월로 탕감하려 하셨다. 예수님이 세 제자를 둔 것은 사랑하는 아들딸을 세우기 위함이었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제1이스라엘의 조상이 되어 제 2 이스라엘을 세우려 하셨다. 제 1이스라엘의 조상이 되려면 그때 12지파를 수습해야 했었다. 고로 제1이스라엘의 대표로 3제자와 12제자를 세우신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예수님과 하나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망한 이스라엘이 되고 말았다. 그리하여 이루려 했던 이 뜻은 연장되어 제 1, 제 2 이스라엘을 찾아 나오고 있다.

예수님 이후에 죽은 전세계의 기독교인들은 영계(靈界)에서 제1이스라엘을 형성했다. 이것이 지상에서 이루어지지 못하고 영적인 세계에서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지상의 기독교 신자는 예수님 당시의 제1이스라엘에 해당한다.

재림주는 제 3이스라엘 뿐만 아니라 제 1, 제 2 이스라엘의 조상으로 와야 한다. 우리 식구는 예수님 당시의 제 1이스라엘이 의심하던 것과 같은 그런 자리를 넘어서서 아버지의 심정을 통하여 아버지의 뱃속에 있는 자녀와 같은 입장에 서야 한다 재림주는 영계를 수습해야 한다. 영계를 수습하고 옴으로써 제1이스라엘을 세운 기대(基臺)위에서 출발해야 한다. 영계(靈界)에 있는 사람들은 참부모와의 인연을 가지고 있지 못하므로 이 과정을 거쳐야 한다. 영계(靈界)에는 12지파형(一二支派型)이 있지만 제 2이스라엘이 되어야 할 기독교는 지파 편성을 할 수 있는 중심을 잃었다. 고로 통일의 이념을 세워 지파편성을 해야 한다.

우리는 40년 광야노정 중 애급에서 태어난 이스라엘 백성들이 세우지 못한 가나안 복귀의 목적을, 여호수아와 갈렙이 담대한 믿음과 용기로 이루었던 것과 같이 굳건한 믿음과 용기로 이루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지파편성을 해야 한다. 고로 기독교를 제2이스라엘의 지파로 세워야 한다. 이것을 이루려면 예수님의 3년 공생애에 방불한 역경의 노정을 뚫고 나아가야 한다.

제 1이스라엘을 영계에 보내고 제2이스라엘을 지상에 세워 그것을 터로 하여 제3이스라엘을 지상에 세워야 한다. 예수님이 찾지 못한 제 2이스라엘을 다시 찾아 세우려는 것이 지난 2천년의 기독교 역사이다. 제 2이스라엘을 찾아 세워야 할 기독교가 책임을 다 못했으니 우리는 제 2이스라엘의 조상이 되어야 한다. 예수님을 자유로이 대할 수 있는 제 2이스라엘을 찾아 세워야 한다. 이제 3년간은 이것을 찾아 세우기 위한 근본복귀를 하는 기간이다. 부모의 심정으로 자녀를 찾아야 한다. 부모가 되려면 자녀를 낳지 않으면 안 된다. 아버지의 뱃속과 어머니의 뱃속을 거쳐 낳은 자녀와 같이 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가인적인 믿음의 자녀를 세워서 그를 아벨적인 친혈족과 같은 입장에 세움으로써 가인 아벨을 복귀한 입장에 서야 한다.

재림주는 제 1, 제 2, 제 3 이스라엘의 심정을 통과해야 한다.

지금까지는 아담 하나를 찾아 나오는 때였기 때문에 모자가 협조를 했지만 이제부터는 부녀가 협조를 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믿음의 자녀를 축복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아야 한다. 아들을 찾아오다 쓰러진 부모의 심정을 붙들고 위로할 수 있는 효자가 되어야 한다.

우리의 인격 기준은 우리가 통곡할 때 아버지께서 어느 정도 눈물을 흘릴 것인가 하는 것으로 결정된다. 6천년을 찾아오신 아버지도 위신을 잃어버리고 통곡할 수 있어야 한다.

타락세계의 부모들도 사랑하는 자식이 죽어갈 때는 하늘땅이 무너져도 이것을 구하려는 심정을 갖거든 사랑의 하나님은 더할 것이다.

모든 것을 다 잊어도 좋다. 그러나 하늘을 감동시킬 수 있고, 형제를 감동시킬 수 있고, 땅을 감동시킬 수 있는 눈물을 흘릴 줄 알아야 한다.

전도는 아버지 대신 잃어버린 자식을 찾는 심정으로 해야 한다. 감옥살이를 하더라도 이것만은 해야 한다. 지옥을 뚫고야 천국을 찾는다. 그러므로 최하에서 최고까지 복귀해야 한다.

선생님이 가더라도 뜻은 기필코 이루어진다. 고로 선하고 지혜로운 싸움을 하려 한다. 양자를 먼저 만들어 놓고야 부모의 자리에까지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이 말을 듣고 한을 남기지 않는 사람이 되자. 3년 동안만이라도 일편단심 변치 말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