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82 to 10-213: 참 가고 싶은 곳

참 가고 싶은 곳
1960.10.02 (일), 한국 전본부교회

10-182
참 가고 싶은 곳
요한계시록 21:1-6

오늘 말씀드리려 하는 제목은 `참 가고 싶은 곳’입니다. `참 가고 싶은 곳’ 이러한 제목을 가지고 잠깐 말씀드리겠습니다.

10-182
더 좋은 곳을 찾아 헤매는 인간과 하나님
땅 위에 살고 있는 수많은 인간들은 이 시간 자기도 알지 못하는 더 좋은 곳을 찾아 헤매고 있습니다. 땅 위에 살고 있는 인간이 그러하듯이 땅을 대하고 계시는 하나님도 역시 그러하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땅이 진정 참 좋은 곳이 못 된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할진대, 그 가운데 살고 있는 우리 개체 역시 참되지 못하다 하는 사실을 자인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참된 세상과 참된 내 자신이 되어 있지 못하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이 세상과 우리들을 대하시는 하나님도 본래의 모습대로 계시지 못하다는 것을 우리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이 인간을 이끌어 나오시는 역사노정에 있어서, 하나님이 인간을 참 것으로 고대하던 존재라고 하면서 불변의 터전 앞에 세워놓을 수 있었더라면, 우리 인간도 참된 그 자리에 설 수 있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하나님께서 그런 자리에 계시지 못하기 때문에 오늘의 우리 인간도 역시 원치 않는 이런 자리에서 살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인간이 불완전한 상태에서 참된 모습을 그리워하는 자리에 있기 때문에, 인간과 끊을 수 없는 인연을 가지신 하나님도 인간과 더불어 불완전한 자리에 계시지 않을 수 없는 억울한 입장이라는 것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하늘과 땅이 그러한 동시에 하늘로부터 연유된 모든 것도 역시 참된 것을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보나 현실적으로 보나 그 무엇을 살펴보더라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참된 곳, 참 가고 싶은 그곳은 현실의 우리들이 그리워할 뿐만 아니라 역사를 엮어 왔던 과거의 선지자들도 그리워했고, 또한 우리의 후손도 그리워하지 않을 수 없는 곳입니다.

진정 하나님이 사랑이요, 모든 것이 중심이 하나님이라 할진대, 하나님은 기필코 참되지 못한 이 인간세계를 개척해야 할 책임이 있고, 땅위에 살고 있는 우리들도 하나님과 공동 목표 아래 함께 움직이면서 그리워하는 참된 그곳을 개척해 놓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선을 지향하는 양심이 있다 할진대 그 양심은 이러한 목적 밑에서 움직여야 하고, 종교단체가 있다 할진대 그것 역시 그러한 목적을 위하여 움직여야 하는 것입니다. 마음으로 즐길 수 있고, 생활로 즐길 수 있고, 사회가 즐길 수 있고, 인류 전체가 즐길 수 있는 `참 가고 싶은 그 곳’을 인생행로에 있어서 상봉하지 못한다면 역사가 지나가고 또 지나간다 할지라도 인류에게 진정한 행복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행복을 주장하는 어떠한 이념도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시는 한 반드시 참 가고 싶은 곳, 기쁨으로 살 수 있는 그곳을 이 땅에서 완결지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완결되지 않는 한 이 땅에서 전쟁은 끝날 수 없는 것이요, 모든 모순된 현상들이 제거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간들을 구하기 위한 구원의 목표를 총체적으로 종교적인 명사를 빌어 말하기를 천국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종교에서 말하고 있는 천국, 그 천국 회복운동이 전개되지 않는 한, 우리는 참 가고 싶은 그 세계에 갈래야 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신다 할진대 그러한 세계를 기필코 이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만일 인간 대하여 약속하신 그 말씀의 목적을 이루지 못하는 하나님이라면 우리에게 그런 하나님은 필요없습니다.

10-184
참 가고 싶은 곳은 어떤 곳이냐
하나님이 계신다 할진대 이 일을 해결지어야 되고, 또 하나님을 따라가는 사람이 있다 할진대 그 사람은 생애노정에서 이 일을 맡아 가지고 해내지 않으면 안 되는 운명길을 가야 합니다. 이렇게 해서 이루어진 세상을 이상세계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만일 인간이 타락하지 않았다면 참으로 가고 싶은 곳이라는 말은 필요 없습니다. 왜냐하면, 타락하지 않았다면 이미 그 자리에 가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세계에서 인간이 살았던들, 복귀섭리, 즉 구원섭리라는 것은 우리에게 필요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그러한 모든 것을 다 잃어버렸습니다. 그러기에 이제까지 왔다 갔던 수많은 영웅열사들도 모두 잃어버린 입장에서 출발했던 것입니다. 과거의 모든 사람들이 참 가고 싶은 그곳을 찾기를 원했고, 지금도 찾고 있으니, 우리는 모든 것을 잃어버린 입장에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인간이 타락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타락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바라는 그 소망의 세계는 상관없는 것이 되었고, 영원한 존재를 향하여 전진해야 할 심적인 이념의 세계는 간 곳이 없어지고 육적인 이념을 이루기에 급급한 세계가 되고 말았습니다. 마음으로 바라고, 마음이 즐거워할 수 있는 이념의 세계, 곧 천국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작용하는 한 기필코 마음이 지향하는 목적의 세계를 이루어 놓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참 가고 싶은 곳이 있다 할진대, 그곳은 어떤 곳이냐?

그곳은 우리가 부르고 있는 하나님을 상봉할 수 있는 곳입니다. 하나님을 상봉할 수 있는 동시에 참부모를 중심삼은 참가정이 있는 세계요, 참형제들이 사는 세계입니다. 더 나아가서 참된 백성과 참된 주권을 중심삼은 참된 나라인 것입니다.

그러나 역사노정에 수많은 사람들이 왔다 갔지만, 하나님의 참모습을 본자가 없었고, 참된 부모를 가진 자가 없었고, 참된 형제를 가진 자가 없었고, 참된 군왕과 참된 주권을 가진 국가가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도 그런 것을 찾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에 우리는 최선의 이념적인 요소를 다 잃어버린 상태에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 자신이 얼마나 불쌍한 존재인가 하는 것을 느낄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런 현실 가운데 살고 있는 내 자신이 얼마나 불쌍한가를 느껴야 한단 말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인생행로를 새로운 방향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 기준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됩니다. 현재 자기가 처해 있는 자리가 제아무리 행복하다고 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 행복이 영원히 계속될 수 있느냐 하면 그렇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땅 위에 살고 있는 모든 인간은 말할 수 없이 불쌍한 자들입니다. 물론 현세에서 불쌍하게 사는 사람도 불쌍하지만 아무리 권력이 많고 위세가 당당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들 역시 불쌍한 존재라는 것을 느끼지 않으면 안 될 때가 되었습니다.

10-185
우리 인간이 처한 현실
오늘날 한국의 실정을 바라보면 모두가 생활에 얽매여 있습니다. 사회적인 사정에 얽매여 있습니다. 해결할래야 해결할 수 없고 어떻게 해볼래야 해볼 수 없는 자리에 얽매여 있습니다. 내일을 향한 소망의 심정은 간절함에도 불구하고 그런 문제를 해결할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사정에 얽매여 있습니다. 이 현실이 나를 영원한 행복의 복지, 참 가고 싶은 그곳으로 끌고 가면 좋겠는데 오히려 그것과 반대방향으로 나를 끌어가고 있습니다. 여기에 싸움이 있고, 고통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러한 환경을 해결하는 데 있어서 친구가 필요함을 느낄 때가 있을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이러한 환경을 개척할 수 있는 지도자가 있기를 바랄 것입니다. 그러나 친구와 지도자가 있다고 해서 모든 것이 해결 된다면 모르지만, 그렇지 못할 때에는 깊은 심정을 통하여 이러한 환경을 해결할 수 있는 참다운 형제가 그리워지는 것입니다. 형제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서 이러한 환경을 책임질 수 있고 나를 품고 사랑해 줄 수 있는 참된 부모를 그리워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여러분이 그 환경에서 대하고 있는 친구가 참된 친구입니까? 여러분이 그 환경에서 대하고 있는 형제가 참된 형제입니까? 여러분이 그 환경에서 대하고 있는 부모가 참된 부모입니까? 아닙니다. 아니라는 거예요.

타락의 인연으로 엉클어진 환경이기 때문에 여기에 있는 모든 친구도 타락의 인연을 벗어나지 못한 친구요, 부모나 형제도 역시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자리에 얽매여 있는 우리입니다.

만일 참 가고 싶은 그곳에서 하나님을 중심삼고, 본연의 부모를 중심삼고, 본연의 형제를 중심삼은 본연의 이상적인 한 가정이 이루어졌다면 그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그러나 그러한 이상적인 제 조건을 모두 잃어버리고 이것을 그리워하며 관념적으로 생각해야 하는 입장의 인간이 되었으니 얼마나 불쌍합니까? 이러한 불쌍한 인간을 구하려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러한 사랑의 하나님이기에 땅 위의 인간들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땅 위의 인간들이 사망권에 얽매여 허덕이는 생활을 하는 동안에, 하나님은 우리의 배후에서 혹은 앞에서 이 길을 개척하기 위하여 무한히 애쓰셨다는 사실을 여러분들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환경이 싫증날 적마다 새로운 무엇을 동경하고, 처하여 있는 위치가 싫어질 적마다 새로운 무엇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것은 여러분 자신만이 생각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럴 적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배후에서 혹은 앞에서 여러분을 본연의 목적세계로 이끌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손길이 여러분과 같이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하겠습니다.

이 시간은 하나님이 이런 환경에 있는 불쌍하고 처참한 우리의 마음문을 열고 들어와 우리를 참된 곳으로 가라고 충격을 가하고 계시는 엄숙한 시간입니다. 그러기에 이 시간이야말로 내 일생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시간임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 시간에 받는 새로운 충격과 느낌을 통하여 우리는 지금까지의 생활을 분석하고 자아를 비판하여 새로운 나로서 내일을 향하여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이러한 것은 여러분이 개인생활이나 가정생활을 혹은 사회생활을 통하여 많이 체험할 것입니다.

10-187
선결(先決)해야 할 문제
하나님께서는 지금까지 역사노정에서 고아와 같은 불쌍한 처지에 있는 인간을 구하기 위하여 친구의 입장에서, 혹은 형제의 입장에서, 혹은 부모의 입장에서, 더 나아가서는 스승의 입장에서 섭리해 나오셨습니다. 그래도 안 될 때는 종의 입장에서 섭리해 나오셨다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도 하늘은 구주로서, 혹은 부모로서, 혹은 형제나 친구로서 우리 앞에 나타나고 계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역사적인 성현이나 위인들이 이 땅에 와서 인류역사에 공헌하고 간 것은 자기 스스로가 잘나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람들은, 환경과 악에 대한 적개심을 느껴 시대를 비판하고 대중 앞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게 하기 위하여, 하늘이 보낸 사람들입니다.

역사노정에서 그러한 사람들을 우리의 선조들은 한번도 환영해 본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그들을 핍박했고 나중에는 죽음의 고개로 내몰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뻔뻔스럽게 머리를 들고 다니며 아무리 잘난 모습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면 이는 용납할 수 없는 반역의 족속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몸에는 하늘의 보내심을 입은 사람, 하늘을 경외하고 하늘을 위하여 살았던 그 사람들을 죽인 선조의 피와 살이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옛날 그런 사람들을 죽인 그들만이 역적이 아니요 하늘을 배반했던 그들만이 배반자가 아니라, 그 피와 살이 연하여 있는 오늘 우리 자신도 그런 입장에 있는 것입니다.

하늘은 과거의 역사노정에서만 역사하신 것이 아니라 여러분이 살고 있는 오늘의 현실에서도 역사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모르지만 하늘은 진정한 친구로서 여러분을 찾아오신 때도 있었습니다. 어떤 때는 진정한 형제로서 찾아오셨고, 어떤 때는 부모로서, 스승으로서 여러분을 찾아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하나님을 친구로 모시지 못하였고, 형제로 모시지 못하였고, 부모로 모시지 못하였고 스승으로 모시지 못하였습니다. 이것 이상 더 큰 죄가 어디 있겠습니까?

보내심을 입은 그들은 일개 국가를 대표한 자들이 아닙니다. 천상(天上)으로부터 지상(地上)에 이르기까지 온 피조세계를 대신하여 창조주에 의해 보내어졌던 사람들인데도 불구하고 지상의 인간들은 이런 사람들을 배반하고 핍박하고 쫓아내고 죽이고, 하고 싶은대로 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견지에서 헤아려 볼 때에, 우리는 역사적인 혈통을 통하여 생명을 얻은 존재이기 때문에 너나할것없이 전부가 하늘 앞에 용납받기 어려운 배반자요 죄인들이 아닐 수 없다는 것입니다.

죄가 있는 곳에는 행복이 있을 수 없습니다. 죄가 있는 곳에는 고통이 따르고 고통스런 사정이 부딪치게 됨으로 말미암아 파괴로 끝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땅 위에 살고 있는 수많은 인류들은 마음속 깊이 스며 있는 역사적인 고통을 아직까지도 청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역사적인 비애를 우리의 몸에서 제거시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러한 역사적인 절망, 역사적인 고통, 역사적인 슬픔, 역사적인 사망의 세력을 어떻게 수습할 것이냐? 역사적인 고통을 통하여 찾아들어오는 역사적인 사망의 세력을 어떻게 청산하며, 이 슬픔과 고통을 어떻게 없앨 것인가?

인류는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이것이 이 시대에 처하여 있는 우리들의 절박한 운명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마음을 모으고 정성을 모으고 성심을 다 기울여 수습해야 합니다. 지금은 그럴 때입니다. 환경도 다시 수습하고, 더 나아가서는 마음과 심정까지 다시 수습해야 할 때인 것입니다. 자기를 중심삼고 이러한 생활을 어떻게 수습할 것인가가 문제입니다. 최후에 찾아오는 역사적인 심판의 관문을 향해 나아가는 인류는 이 사망의 세력을 해결짓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한, 참 가고 싶은 곳이 있다 하여도 그곳은 우리와 하등의 관계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전체를 청산해야 됩니다.

10-189
하나님의 가장 큰 분함
우리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도 알고 하나님과 반대되는 사탄이 있다는 것도 압니다. 사탄은 어떠한 존재냐? 역사노정에서 죄인 중에 최고의 죄인입니다. 역사노정에 있어서 최고의 죄인이요 그 괴수입니다. 지금까지 6천년 동안 섭리하여 나오시는 하나님 앞에 사탄은 반대하여 나왔습니다. 6천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반대했고 지금 이 시간도 반대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아무리 악하다 할지라도 마음으로는 하늘을 따르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참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탄은 이러한 인간의 마음까지 파괴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늘의 역사를 반대해 나온 사탄이기에 전세계가 그의 무대가 되어 있는 동시에 여러분 자신까지도 사탄의 무대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사탄을 굴복시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뇨? 지나온 역사상의 죄를 청산하여야 합니다. 역사상에 누적되어 온 고통을 제거해야 합니다. 시대적인 고통이 문제가 아니라 역사적인 고통을 제거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사탄을 내게서 추방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뇨? 역사적인 슬픔에서 내가 해방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될 거 아니예요?

세상에서 무서운 것이 있다 할진대 사탄보다 더 무서운 것이 없습니다. 이 시대가 아무리 무섭다 할지라도 이 시대는 어차피 지나갑니다. 그러나 인간이 타락한 그날부터 인간에게서 떠나지 않는 하나의 원수가 있나니, 그것은 사탄, 마귀, 악신인 것입니다.

우리가 땅 위에 살고 있을 때 어떠한 원수가 있다 할진대, 우리는 그에 대해 원수를 갚을 수 있습니다. 일대(一代)에 갚지 못하면 후대(後代)를 통하여서라도 갚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6천년 동안 하나님을 대신해서 행세한 원수 사탄을 인류는 추방하지 못했고 한번도 그 원수를 갚아 보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분함 중에 가장 큰 분함은 이 원수를 갚지 못한 것입니다.

대심판이란 무엇이냐? 땅 위의 인간들을 전멸시키는 것이 아니라 대원수 사탄을 멸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대심판입니다. 역사적인 원수요, 이 시대의 원수요, 미래에도 원수가 될 수 있는 이 사탄을 다 처단하는 것이 대심판입니다.

이제까지 사탄은 참사람이 되기 위하여 가는 성도의 길을, 참된 양심을 가진 사람들이 가는 길을 이러저리 엉클어 놓았습니다. 예를 들어 이 시대에 어떤 주권 국가가 있다고 합시다. 그 국가의 헌법이나 그 국가의 이념 밑에서 선하게 혹은 양심적으로 살면 의로운 사람이라고 인정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선은 아무리 인정하였다 할지라도 시대가 지나가면 뒤집어집니다. 그렇게 되면 과거에 선이라고 했던 것이 오늘에 와서 선이 될 수 없고, 오늘에 선이라고 하던 것이 내일에는 선이 되지 못합니다. 안 그래요? 동쪽이 서쪽이 될 수 없고 서쪽이 남쪽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선은 절대적인 선이 아닙니다. 일시적인 선은 될 수 없지만 절대적인 선은 될 수 없습니다. 나무에 비유해서 말하면, 그런 선은 잎에 해당하는 선의 행사는 할 수 있으나 줄기나 가지에 해당하는 선의 행사는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시대가 달라짐에 따라 선에 대한 정의도 달라지고 악에 대한 정의도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타락한 후의 세상은 기준이 왔다갔다하기 때문에 말할 수 없이 엉크러진 세상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계신다 할진대 이렇게 엉크러진 세상을 몽땅 선으로 인정하든가, 그렇지 않으면 몽땅 깨뜨려서 다시 만들든가, 몽땅 끊어서 없애든가 셋 중의 하나는 해야 됩니다. 이 셋 중의 어떠한 하나의 방법을 세우지 않고는 이 땅을 도저히 선의 세계로 이끌 수 없는 것입니다.

10-190
끝날의 당면 문제
하나님께서는 땅 위의 사람을 아무런 조건도 없이 선하거니 악하거니 하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물론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의 차이가 있지만 그 차이는 백지장의 차에 불과합니다. 선의 기준은 하나님이요 악의 기준은 사탄이라는 것입니다.

인간은 선과 악 사이에서 선에 접할 수도 있고 악에 접할 수도 있는 처지에 있습니다. 그러면 끝날에 가서는 이것을 어떻게 해결지어야 할 것이뇨? 악의 주체인 사탄을 쳐내야 합니다. 그래야 악이 끝난다는 것입니다. 아까 말한 세 가지 방편 중에서 때려부순다는 것은 무엇을 때려부순다는 말이냐? 사람을 때려부순다는 말이 아닙니다. 최고의 선인 하나님과 상반되는 사탄을 때려부순다는 말입니다. 그 사탄만 제거시키면 인간들이 악한 일을 할래야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부모가 선하면 그 자식도 선하게 마련입니다. 유전법칙이 그래요. 부모가 악하면 그 자식도 악하게 마련입니다. 악의 뿌리가 끊어져 작용하지 못하게 되면 자연적으로 악이 해소되는 것입니다.

끝날이 가까와오면 가까와올수록 우리의 세포 하나하나에까지 악이 점령해 들어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에서 제아무리 잘났다고 하는 사람이라도 그 사람의 세포까지 사탄이 점령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는 것도 먹는 것도 전부 사탄에게 주관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권내에서 오늘날 세계가 움직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하나님을 중심한 선이 점령해 나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두 갈래로 나오는 것입니다.

앞으로 하나님편은 최고의 선이요, 사탄편은 최고의 악으로 인정될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지 않아요? 대한민국 사람이라고 전부다 선한 사람입니까? 대한민국 사람은 대한민국 사람을 옳다고 합니다. 우익 사람이면 우익이 하는 것을 옳다고 봅니다. 그렇다고 그 위에서 볼 때도 그것이 옳으냐 이겁니다. 주체와 어떠한 상대적인 관계를 갖고 있다면 전체적인 정의로 인정해 준다는 것입니다. 그 세부적인 것은 조정하면 됩니다. 중심이 어디냐가 문제입니다.

역사노정에 수많은 사람들이 살았고 이 땅 위에 수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으되, 그들이 하나님편이냐 사탄편이냐가 문제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 할진대, 여러분들은 악의 권내에서 도저히 벗어날래야 벗어날 도리가 없습니다. 6천년 동안 엉키고 엉킨 사탄의 철망에서 벗어날 도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의지하여 생사의 결정이 벌어지는 자리에서 `나는 하나님편입니다’ 라고 할 수 있는 신념만 가지면 망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선권내(善圈內)에 넘어가려면 여러분이 어떻게 해야 하느냐? ‘나는 이러이러한 죄인이었습니다’ 라고 직고(直告)해야 합니다. 그냥은 못 넘어간단 말입니다. 청산하고 넘어가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원이라는 명사를 세웠고 용서라는 명사를 세운 것입니다. 그래서 끝날은 크게 용서받을 수 있는 때요, 또 크게 벌받을 수도 있는 때입니다. 그걸 알아야 합니다.

심판날에 인류 앞에 자기가 역사적인 죄인이었다는 것을 직고하는 자는 역사적인 선의 권내로 넘어갈 수 있습니다. 그 자리에서 하나님편이라고 자처할 수 있는 사람들은 천상세계와 지상세계를 주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죄의 소굴에서 해매던 모든 것을 청산했다는 입장에 서야만 사탄을 몰아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죄의 뿌리가 문제인 것입니다. 우리는 아담 해와가 저지른 죄로부터 오늘날의 시대적인 죄까지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은 `하늘이여! 저희들은 섭리의 뜻 가운데서 하늘을 배반한 역사적인 종족이로소이다. 구원섭리의 뜻을 대표하여 시대 시대마다 왔던 선지선열들, 다시 말하면 아담 가정으로부터 노아 가정, 아브라함 가정, 모세 가정, 예수 그리고 앞으로 재림주가 오신다면 그분까지 배반한 역사적인 죄인입니다’라는 조건을 제시해야 한단 말입니다.

10-192
소망을 이루기 위한 요건
사람은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소망을 갖고 있습니다. 소망을 이루기 위하여서는 사정이 통해야 합니다. 사정이 통하려면 심정적인 기준이 서 있어야 됩니다. 안 그렇습니까? 어느 누구도 심정과 사정과 소망, 이 세가지는 빼놓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믿음과 소망과 사랑은 항상 있어야 할 것이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소망은 무엇이뇨? 하나님의 소망은 우리가 참 가고 싶어하는 그곳에 당도해서 더불어 사는 것입니다. 이런 세계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들도 그 소망의 세계, 참 가고 싶은 곳을 향하여 나아가고 있습니다. 또 하나님에게는 소망이 있는 반면 사정이 있습니다. 그 사정은 어떤 사정이냐? 슬픈 사정입니다. 기쁜 사정을 가지고 온 천하가 희희낙락한다면 그 소망의 세계는 기쁜 세계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슬픈 사정에 얽매여 있기 때문에 기쁜 소망이 찾아와도 보따리 싸가지고 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그렇다는 겁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기도를 많이 하고 아무리 은혜를 많이 받았다 할지라도 소망의 때나 소망하는 그 뜻이 죄악과 슬픈 사정권내에 살고 있는 우리를 중심삼고는 영원한 것으로서 행세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아침이 다르고 낮이 다르고 저녁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춘하추동이 변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정이 천태만상으로 변하니 하늘의 은혜가 소망의 터전을 갖고 우리의 생활을 통해서 장구하게 움직여 나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받은 은혜는 일시적인 것밖에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은사를 넘어 하나님은 세계적으로 은사를 주시는 것입니다. 은혜를 주되 한 사람에게만 주지 않습니다. 땅 위에 있는 수많은 성도들에게 줍니다. 그렇게 은사를 줘도 그 가운데서 쓰러지는 자가 더 많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늘은 열 사람 중에서 아홉 사람이 쓰러지고 한사람만 남더라도 그 사람을 표준하여 열 사람을 세운다는 것입니다. 한사람이라도 올바른 형태의 기준을 세우면 그것을 중심삼고 한 단계 올려 세우고 또 올려 세워 나가는 것입니다. 이래 가지고 수많은 종교와 수많은 민족 형태가 벌어져 나온 것입니다.

우리는 소망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환경과 사정이 통하지 않으니 이것을 수습하기 위한 방법을 개척해 나온다는 것입니다. 사랑이라든가 주의를 중심삼아 최후에는 이념 통일을 목표로 하여 생활통일로부터 환경통일을 해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소망과 사정이 선의 소망과 선의 사정으로 완전히 성립되어야 비로소 선의 심정의 동산이 건설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이루고자 하셨던, 또 재림하셔서 이루어야 할 지상천국입니다.

그러면 참된 그곳, 우리가 영원히 살 그곳은 어떤 곳이뇨? 그곳은 내 소망이 상대적인 가치로 나타나는 곳이 아니라 내 심정과 사정과 더불어 사방성의 가치로 나타날 수 있는 곳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입체성으로 나타날 수 있는 곳입니다. 동시에 그곳에서는 모든 것을 잊고 살더라도 불행해질 수 없고 슬퍼질 수 없는 것입니다. 그곳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기쁘고,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감사하고,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내 감정으로는 억제할 수 없는 기쁨이 내 몸에 스며드는 곳입니다. 그렇게만 되면 모든 것이 다 된다는 것입니다.

10-194
하나님이 고대하시는 승리한 아들딸
여러분도 그렇지 않아요? 마음이 지극히 기쁠 때는 모든 사람의 잘못을 다 용서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도 이 땅 위의 수억천만의 죄인들을 용서해 주고 싶다는 것입니다. 죄를 지었지만 그냥 용서해 주고 싶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땅 위에 어느 누가 나와 가지고 `당신은 이러이러한 심정과 이러이러한 소망과 이러이러한 사정을 가지고 인간 대해 수고하면서 구원역사를 해 나오시지 않으셨습니까?’ 하고 위로해 주기를 원하십니다. 역사적인 심정과 사정과 소망, 시대적인 심정과 사정과 소망, 미래적인 심정과 사정과 소망을 붙안고 승리의 모습으로 이 땅 위에 나타나 ‘아버지! 지금까지의 역사적인 슬픔과 한을 풀어 놓으시옵소서’할 수 있는 한 사람이 나와야 합니다. 그건 왜? 역사적인 죄를 용서해 주려니 그렇다는 것입니다.

역사적이고 시대적이고 미래적인 하나님의 사정과 소망과 심정을 통하여 가지고 ‘아버지여!’ 할 수 있는 아들이 나온다 할진대, 하나님은 아주 기뻐하시며 ‘오냐, 내 아들아! 네 소원이 무엇이냐’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아들은 무어라 대답하겠습니까? 그 아들은 사망의 세계를 넘어오기가 무척 힘들었을 것입니다. 사망의 노정을 개척하기에 굉장히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힘든 이 길을 개척해 나온 것이 아버지의 역사요, 이 길을 개척하기 위해 몸부림치고 죽음도 개의치 않고 최후에 승리의 성벽을 건설해 놓아야 하는 것이 인류의 공동운명임을 잘 아는 아들입니다. 그런 아들이 어찌 ‘나를 하늘에 데려가 복을 주고 그저 무한정 살게 해주시옵소서’ 하는 요구를 하겠습니까? ‘당신의 소원이 땅의 죄 많은 인류를 구원하는 것이요, 6천년의 원수 사탄을 굴복시키는 것이니, 제가 그것을 하겠습니다’ 라고 할 것입니다.

심정을 걸어 놓고 하나님을 아버지라 못했고, 사정을 걸어 놓고 하나님을 아버지라 못했고, 소망을 걸어 놓고 하나님을 아버지라 못했기 때문에 오늘날 인간이 이렇게 허덕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당장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라 하고, 사탄을 `야, 이놈 사탄아’ 한다고 해서 사탄이 굴복할 리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천상에서 하나님이 세우고자 하셨던 원칙적인 아들딸의 기준이 잡히고, 지상에서도 하나님이 세우고자 하셨던 원칙적인 아들딸의 기준이 잡혀야 되는 것입니다. 그 원칙은 악이 주관할 수 없습니다. 그날에야 비로소 사탄이 굴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역사적인 대승리의 신앙자가 나와서 승리의 기쁨을 만민 앞에 돌려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 자가 나온다면 그로 말미암아 인간은 심판의 고비를 넘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탄만은 용서하지 않습니다. 그런 때가 대심판의 때입니다. 불벼락을 내려 땅을 없애는 것이 심판이 아닙니다. 그런 하나님이라면 어떻게 사랑의 하나님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세상에서도 그렇지 않습니까? 잃어버린 자식을 찾거나 혹은 결혼식을 하거나 기쁜 일이 있을 때는 과거의 원수도 용서하고 과거의 슬픈 일도 전부 잊어버립니다. 하나님도 땅 위에 있는 수많은 죄인들을 기쁨을 조건으로 하여 용서하고 싶은데, 인간을 용서할 수 있는 기쁨의 자극을 일으켜 줄 수 있는 아들딸이 없다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예수도 영광스러운 승리자의 모습으로서 ‘아버지, 당신의 심정은 이렇고 당신의 사정은 이렇고 당신의 소망은 이러했습니다. 하나님이여! 당신이 소원하신 바를 성취하였사오니 나를 보고 기뻐하십시오’ 라고 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슬픈 자리에서 인간들을 용서해주셨습니다. 슬픔의 권내에서 용서해 나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용서하여도 사탄이 또 달려든다는 것입니다. 슬픔의 터전이 사라지기 전에는 용서받고도 또 죄를 짓고 또 죄를 짓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기쁨의 한 날을 맞이하여 하늘땅, 온 우주 앞에 `하늘이여! 땅이여! 내 아들을 높일지어다. 오늘의 이 기쁨을 천추만대에 길이길이 남길어지다’라고 할 수 있는 인간을 바라고 계시는 것입니다.

오늘의 대한민국도 보십시오. 제2공화국이 들어서니까 그전에 사건에 걸렸던 사람들을 기쁨의 조건을 내걸고 사면해 주지 않습니까? 영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러한 것을 생각할 때에, 여러분은 이 땅이 악하다고 슬퍼할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해결점을 찾지 못한 것에 대하여 슬퍼해야 합니다. 내 자신이 그것을 해결하지 못한다면 하나님은 기필코 그 목적을 이룰 수 있는 실체를 세워서라도 역사하실 것임에 틀림없을 것이거늘, 그러한 자가 어디 나오지 않나 하고 눈을 크게 뜨고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찾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10-196
예수를 친구로 삼을 수 있는 내용을 가지고 있습니까
여러분을 영원한 사망의 구렁텅이로 몰아넣기 위하여 사탄은 밤낮없이 싸웁니다. 여러분을 지옥으로 끌고 가려고 사탄이 밤이나 낮이나 쉬지 않고 싸웁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먹고 싶은 것 다 먹고 하고 싶은것 다 합니다. 이래서 되겠습니까? 이래서는 안 되겠습니다. 비록 몸은 편한 생활을 할지라도 심정에 있어서는 밤낮없이 싸워야 되겠습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고 합니다. 그는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을 모신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그와 같은 정성을 다하여 심정의 인연을 연결지은 심정적인 자식을 요구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브라함은 진정한 자식은 아브라함이 낳은 자식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심정을 따라 하나님을 아브라함이 부르던 하나님으로 부를 줄 아는 사람입니다. 그가 바로 아브라함의 자식입니다. 또 예수의 심정을 따라 예수가 부르던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줄 아는 사람이 예수의 형제가 되는것입니다.

구주라는 것은 죄악의 세상에서 필요한 것입니다. 구원을 받은 다음에는 구주가 필요없습니다. 그 때에는 친구가 되는 것입니다. 친구만이 아니라 형제도 되는 것입니다. 형제. 여러분이 배포를 갖고 `예수님은 내 형님이야’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지옥에 안 갑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예수의 친구라 할 수 있는 조건을 가지고 있습니까? 역사적인 예수, 시대적인 예수, 미래적인 예수를 친구로 삼을 수 있는 내용을 가지고 있습니까? 그것만 있으면 문제가 없습니다. 그것만 있다면 여러분들은 복잡한 환경과 사정에 엉크러진 이 세계가 어떻게 선의 세계가 되겠는가 하는 것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좌우가 대립하고 있는 긴박한 세상에 있어서 오늘 여러분들은 바른발은 우익을 밟고 왼발은 좌익을 밟고 있습니다. 바른손은 우익을 붙들고 왼손은 좌익을 붙들고 있습니다. 이것들이 서로 싸우게 됩니다. 싸우게 될 때에는 가슴을 치는 것이 아니고 머리를 칩니다. 이럴 때에 이념도 없이 하나님도 없이 싸우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세상을 바라보는 우리는 그 싸움을 목적을 해명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인간이 싸우고 싶어서 싸우는 것이 아닙니다. 누가 돌리는지도 모르면서 콤파스의 다리는 돌아갑니다. 콤파스의 머리는 다른 곳에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금이 그어지는 것만 바라보고 있을 뿐입니다.

어떤 사람이든지 망하고 싶어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여러분, 명동거리에 가 보십시오. 눈이 시퍼래 가지고 단돈 십원도 손해보지 않으려고 합니다. 모두가 십원이라도 이익을 보려고 다닙니다. 그건 누가 그렇게 만드느냐? 자기가 그렇게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원해도 원하는 대로 되지 않습니다. 뜻하는 대로 되지 않는 이유는 제일 원인이 자기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은 천지운세로 말미암아 그 시대의 사방성에 의해 전부 다 복잡하게 벌어지는 것입니다.

10-197
하나님을 아버지라 할 수 있는 자가 되어야
오늘날 유엔 총회를 중심삼고 비동맹국가의 거두들이 모여서 회의를 난장판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중대사는 인간끼리 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끼리 하게 되면 결론을 내릴 때도 부딪쳐서 결론을 내야 하고 합할 때도 서로 부딪쳐서 합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끝날에는 그러한 일이 자꾸 벌어집니다. 그러나 여기서 하나님이 계신다면 우리는 안심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면 불안합니다. 만약 모든 것을 조정하는 하나님이 계신다면 어떠한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어떤 해결점을 만들기 위하여 거기에 맞게끔 이끌어 가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안심할래야 안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없다면 걱정이 되지만 하나님이 계신다면 좀 생각할 여유가 있습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이 해결짓는다 할진대 반드시 사람을 통하여 해결짓습니다. 하나님 혼자 뜻을 세우고 하나님 혼자 해결한다면 인간을 지을 필요가 없단 말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반드시 상대적인 관계, 즉 상대적인 입장에 있는 인간을 통하여 이 땅과 연결이 되게 되어 있지 하나님 혼자서는 안 됩니다. 직접 할 수 있게 안 되어 있습니다. 법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계시는 한 세계적인 종말시기에는 하나님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 인간을 필요로 하게 될 것이거늘,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이어야 할 것이냐? 지선(至善)하신 하나님이 계시고 최악의 사탄이 있는데, 이것을 어떻게 해결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 역사적인 사탄을 어떻게 해서든지 처단해 버리고 역사적인 하나님을 내 아버지라 할 수 있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아까 말한 바와 같이 하나님이 참아들딸로 맞을 수 있는, 과거 현재 미래의 심정을 통한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지 않습니까?

아무리 효도를 하고 싶어도 부모를 모르면 효도를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몇 십년 전에 갈라진 아버지를 만나 가지고 대번에 효도할 수 있어요? 그렇게 안 된다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얼굴을 자세히 보아 내가 아버지를 닮았는지 생활감정이 통하는지를 알고, 또한 어느만큼의 심정의 기준까지 맞춰 들어가야 효도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대번에 못한다는 것입니다. 인간과 하나님 사이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이 타락하지 않았다면 영원히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잃어버렸고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종을 세워서 내가 네 아버지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종을 시키고 천사를 시켜서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러한 시대가 구약시대입니다. 다음에는 아들을 시켜서 역사하였습니다. 그 시대가 신약시대입니다. 그다음에는 성신을 시켜서 역사해 나오셨습니다.

여러분, 성신이 무슨 신인지 압니까? 어머니 신입니다. 어머니 신을 세워서 역사하였던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아버지를 세워 역사하십니다. 종을 시켜서 역사하였고, 아들을 시켜서 역사하셨고, 성신을 시켜서 역사하였습니다. 이제 끝날에는 아버지를 세워서 역사하신다는 것입니다.

10-199
주님은 무엇하러 오시는가
지금까지 이 천지에는 하나님의 참다운 효자가 없었습니다. 물론 예수님은 만민의 메시아요 하늘의 독생자로 왔었지만, 이 땅 위에서 하나님 앞에 효성을 다 못하고 갔습니다. 마음으로는 간절했으나 환경이 갖추어지지 않아 효자 노릇을 다 못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예수를 이스라엘 민족앞에 세운 목적은 이스라엘 민족을 거느려 가지고 세계 앞에 하늘이 택한 민족이 사탄세계의 어떠한 민족과 국가보다도 더 놀랍다는 사실을 인식시키고, 또 그로부터 인정을 받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는 인정받은 자리에서 하나님 앞에 효도해 보지 못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과 땅을 대신하여 이 땅 위에서 참다운 효성을 다하는 분이 오셔야 하는 것입니다. 그분이 재림주입니다. 다시 오시는 주님이 무엇하러 오시는지 아십니까? 예수님이 땅 위에 오셔서 이스라엘 민족을 거느리고 하나님 앞에 효성을 다 드리지 못하였으니, 이것을 하기 위하여 오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한 때를 바라보면서 6천년 역사노정을 가져오셨습니다. 수천년의 역사노정을 뒤넘어쳐 오면서 아버지의 심정을 가르쳐 오셨습니다. 나는 네 아버지이고, 너는 어떻게 자랐고, 네 죄가 무엇이고, 네가 어떻게 되어 있고, 어떤 원수가 너를 끌고 갔다는 것들을 가르쳐 오셨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사탄이 무엇인지 알아야 되겠습니다. 사탄이 어떻게 해서 원수가 되었는지를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이놈, 사탄아! 너는 과거에 하늘 앞에 용납받을 수 없는 죄를 지었지? 우리 인간에게 용납받지 못할 죄를 저질렀지?’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사탄의 죄를 알아야 되겠습니다. 사탄은 6천년 동안 하늘 아버지의 역사를 반대해 나온 원수임을…. 여러분! 자신이 있어요? 사탄을 대하여 `지금까지는 네가 이 세계를 통치해 나왔지만, 이제 너는 내 앞에서 물러갈지어다’ 라고 할 수 있습니까? 그렇게 할 수 있는 승리자가 나와야 합니다.

여러분은 다 성경을 붙들고 있습니다. 성경만 붙든다고 다 될 것 같아요? 기성교회에서는 문 아무개가 성경대로 안 한다고 비난합니다. 성경의 문자대로 살지 말고, 성경의 내용대로, 성경에 흐르는 심정대로 살아야 합니다. 말이 문제가 아닙니다. 마음은 이렇지만 말은 이렇게 할 수도 있고 저렇게 할 수도 있습니다. 기술자와 이야기한다면 그 사람에게 알맞는 적당한 말을 할 게 아니겠어요? 때와 장소와 수준에 따라서 달리 표현한다는 것입니다. 말에서는 내용을, 내용에서는 심정을 찾아야 합니다.

사탄은 하나님의 말을 조건삼아 가지고 역사합니다. 심정을 통하지 않은 말은 암만 해주더라도 사탄이 반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은혜받았다는 사람들을 보면 정말 은혜받은 사람인지 미치광이나 정신병자인지를 대번에 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심정을 통하느냐 통하지 않느냐가 문제입니다. 성경을 많이 아느냐 모르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말씀 뒤에 숨어 있는 하나님의 심정과 통하고 있느냐가 문제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정을 통한 자리에서 `이놈아’ 하게 되면 사탄도 어찌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10-200
여러분은 하나님의 용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예수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아무리 예수의 얼굴을 만져보고, 아무리 예수와 같이 다니고, 아무리 예수와 같이 살았다 하더라도 심정이 통하지 않으면 모두 소용이 없습니다. 심정을 통하여 만지고, 심정을 통하여 같이 살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성경의 중심은 예수요, 예수의 중심은 신랑 신부입니다. 그러면 신랑 신부의 중심은 무엇이뇨? 신부입니다, 신부. 신부가 말만 가지고 되겠어요? 이 말씀 가운데는 하나님의 눈물 자국이 있습니다. 이 말씀 가운데는 하나님의 피가 어려 있습니다. 이 말씀 가운데는 하나님이 땀방울이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눈물과 피와 땀…그것뿐이 아닙니다. 그것으로 안 되기 때문에 죽음의 고개까지 연결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눈물을 흘리는 장면마다 사탄과 일대 격전을 벌였습니다. 피를 흘리는 장면마다 대원수와 격전을 벌였습니다. 죽음의 고비를 넘을 적마다 사탄과 대결을 하셨던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알아요?

역사를 아무리 알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역사를 통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지요. 안 그렇습니까? 이제 여러분은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의 눈물을 찾아야 되겠습니다.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의 땀방울을 찾아야 되겠습니다.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의 피를 찾아야 되겠습니다. 성경을 통하여 죽어가던 예수의 심정을 찾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용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사탄은 몇 천만번 하나님 앞에 대적했습니다. 그때마다 하나님이 흘리신 원한의 눈물과 억울하고 분하셨던 고비 고비를 해원해 드려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사탄아, 너는 우리 아버지의 원수로구나. 이분은 우리 아버지이시다. 이 땅은 내 땅이다. 너는 내 종인 동시에 원수다’ 라고 할 수 있어야 한단 말입니다. 오늘날 수많은 도가 있고 수많은 종교가 있지만,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한, 이 세상에는 평화가 오지 못합니다. 올 수 없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에 우리 한국 민요는 참 놀라운 것입니다. `달아달아 밝은 달아 이 태백의 놀던 달아…… 양친 부모 모셔다가 천년 만년 살고지고’ 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양친 부모를 모셔다가 천년 만년 살고 싶다니…. 우리 민족은 지금까지 효도를 주장해 나왔고, 효자와 열녀와 충신을 높여 왔습니다. 수백년 동안 이러한 민족정기를 지니고 나온 여러분인 것입니다. 이제는 이것이 어느 한 때에 결실되느냐 못 되느냐 하는 것만 남았습니다. 무엇과 더불어? 하늘과 더불어 결실하느냐 못하느냐 하는 것이 경각에 달려 있습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을 위하여 얼마나 죽었습니까? 그것이 이때에 결실되느냐 못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성경을 많이 안다고 자랑하지 마십시오. 학박사가 되었다고 자랑하지 마십시오. 울고 있는 하나님이 계시는 것을 알고 같이 울 줄 아는 아들딸이 되어야 합니다. 하늘이 얼마나 바빠하고 얼마나 긴장하는지를 알고 안타까워 몸둘바를 모르는 여러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아버지는 아파서 죽겠다고 야단하고 고통스럽다고 야단하는데 자식이 잠만 자요? 그런 자식은 원수입니다.

신앙에 있어서 가장 귀한 것은 체휼입니다. 체휼해서 나 자신도 알 수 없는 눈물을 한없이 흘려야 합니다. 여러분은 의식을 초월하여 눈에서 눈물이 떨어지는 것을 느껴 보았습니까? 누구한테 욕을 먹었다고 해서 분하고 서러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도 알 수 없는 비장한 심정이 감돌아 하염없는 눈물이 떨어져야 합니다. 신앙자의 본질적인 생활상은 그래야 하는 것입니다. 자신도 모르는 고통이 사무쳐 들어와야 합니다. 가슴이 메어지고 몸둘 바를 모를 정도까지 사무쳐 들어와야 합니다. 내 마음이 그런 것은, 알고 보면 하늘이 그렇기 때문입니다.

10-202
신앙에 있어서 가장 귀한 것
그렇게 되어야 하나님의 아들딸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라고 소리치고 계시는데, 의식적으로 안 들으려 하고 꿈만 꾸고 있는 것이 아들딸입니까? 인류역사 6천년 동안 하늘은 얼마나 안타까와 하셨으며 얼마나 많은 죽음의 고비를 겪으셨겠습니까? 그러한 고비를 겪을 때 우리의 선조 중에 `아버지여, 얼마나 서러우십니까?’ 하고 위로한 사람이 있었습니까? 눈물의 동참자가 없었다는 거예요. 땀을 흘리는 자리에서 동참자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다 지나간 다음에 울고불고 야단입니다. 예수의 생전에 그 제자들은 예수가 흘린 눈물을 몰랐습니다. 예수가 흘린 땀과 쏟은 피의 가치를 몰랐습니다. 죽고 난 후에야 알았습니다.

종말시대에 하나님이 인간을 찾아오신다면 어떠한 자를 찾아오실 것이냐? 말씀드린 바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가슴에는 눈물의 성전과 애달픈 사정이 남아 있습니다. 피땀의 성전과 죽음의 고개가 남아 있습니다. 여러분이 그 역사노정에 동참은 못하였을망정 아프고 안타까운 그 심정은 느껴야 되겠습니다. 노아의 수고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고, 모세의 억울함과 안타까움을 생각하면 자신의 일같이 안타깝고, 예수의 적적함과 외로움을 생각하면 몸둘 곳을 몰라해야 되겠습니다. 역사는 지났을망정 그 당시 그들의 애달픈 심정을 체휼하고 울 수 있는 친구의 자리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내가 모세의 시대와는 역사적인 거리를 두고 있지만, 심정에 있어서는 이스라엘 민족을 바라볼 적마다 애달픈 마음이 사무쳐 눈물짓던 모세와 같이 눈물지을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그런 사람이 진짜 이스라엘 입니다. 역사적인 비참사, 역사적인 서러운 사실을 듣게 될 때 뼈살에 사무치는 무엇을 느끼고 이 시대의 처참함과 더불어 같은 눈물을 흘리며 아버지를 부를 수 있어야 역사적인 사탄을 대하여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어림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까지 몰랐던 이러한 사실들을 누가 가르쳐 주느냐? 하나님께서는 심판문을 여실 때에 반드시 당신의 심정을 대신하여 알려 줄 수 있는 사람을 세우십니다. 그러기에 이 땅 위에 그런 사명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나와야 합니다. 여러분, 외형적으로 호화찬란하고 수천명이 모이는 교회가 그런 사명을 할 것 같습니까? 아닙니다. 왜?

10-203
끝날에 되어지는 현상
끝날에는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밀실에 들어가 기도하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의 말을 들어서는 안 됩니다. 사람의 말을 들어서는 안 될 때입니다. 신랑의 말만 들어야 할 때입니다. 목사도, 신앙의 동지도 최후의 고개에 가서는 내 후원자가 못 됩니다. 나는 천당에 가고 그는 지옥에 가게 된다면 지옥에 가는 그 사람이 나를 붙듭니다. 사랑하는 친구가 물에 빠졌을 때 구하려고 물에 들어가면 그 친구가 붙드는 것과 마찬가집니다. 그때는 동정해 줄 수 없는 때입니다. 어떤 지도자도 나의 생명을 구해 주지 못합니다. 그럴 때가 옵니다.

그러한 때를 먼저 맞이한 지역, 국가, 교단, 사회에서는 혼란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서로가 믿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목사가 장로를 못 믿고, 장로가 목사를 못 믿고, 평신도가 당회를 못 믿고, 교파는 교파끼리 못 믿고, 사회나 정당도 서로 못 믿습니다. 국민이 대통령을 못 믿고, 대통령이 국민을 못 믿고, 백성이 나라를 못 믿는 가운데, 뒤넘이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엇이냐? 사방을 바라봐야 믿을 수 없는 혼란한 세상입니다. 그속에서 자기가 자기를 믿고, 하늘이 인정할 수 있는 믿음의 자리를 찾으라는 것입니다.

자기의 아버지 어머니도 믿을 수 없습니다. 다 갈라진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민주주의입니다. 다 갈라지고 다 잃고 나면 고독과 부딪치게 됩니다. 고독한 자리에서 하늘의 심정에 접촉시킨다는 것입니다. 그런 자는 지극히 없는 자 같지만 지극히 많은 자요, 지극히 외로운 자 같지만 지극히 행복한 자라는 것입니다. 다 잃고 보다 크고 참된 모습과 부딪치는 자리에서만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세상을 바라보게 될 때, 더우기나 한국의 실정을 바라보게 될 때, 여러분들이 대학을 다니고 대학원을 다녀요? 무슨 학박사가 되어요? 마음을 팔아먹고 심정을 팔아먹고 선을 유린한 여러분입니다. 지금 한민족은 이스라엘 민족이 모세에게 이끌려 광야에 나갔던 때와 같은 시대에 처해 있습니다. 광야에서 모세가 쓰러졌을 때 여호수아와 갈렙과 같은 새로운 지도자가 나온 것처럼 이 땅에도 새로운 지도자가 나와야 할 단계에 와 있습니다.

그러면 이 시대에 필요한 것은 무엇이뇨? 이 민족이 살길은 무엇이뇨? 이 민족의 청년 남녀들이 어떠한 국가적인 이념, 더 나아가서 천적인 이념을 심정을 기반으로 하여 무장하는 것입니다. 그렇게만 한다면 이 민족은 세계를 지도할 수 있게 됩니다. 지금 한국이 고통을 받고 고충을 겪는 것이 이 민족에게는 나쁜 것 같지만, 이것은 하늘이 하나의 중심을 세우기 위하여 그렇게 움직여 나오시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반드시 한국 청년들을 움직일 수 있는 새로운 무엇이 나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무엇이 나오려니 싸워야 하는 것입니다. 기독교, 불교, 유교 할 것 없이 전부 싸우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마음이 참 가고 싶어 하는 그곳을 찾아 가려면 지금까지 인연되어 있는 것을 모두 끊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보십시오. 도의 길을 가려면 모든 것을 청산하고 나서라고 했습니다. 모든 것을 청산하고 출발하라고 했습니다.

한국은 남북으로 갈라져 있습니다. 부모와 자식이 갈라지고 남편과 아내가 갈라지고 다 갈라졌습니다. 교회는 교회대로, 사회는 사회대로 갈라져 있습니다. 이것에 대한 방침이 세워지지 않는다면 이 민족은 망합니다. 여러분, 문예부흥시대를 아시지요? 역사를 상고하여 역사적인 심정을 탐지해 들어가 보면 그 시대적인 사조에 새로운 충격을 가한 것이 문예부흥입니다. 중세의 봉건사회를 걸어 놓고 문예부흥을 일으킨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정은 역사의 저변을 통하여 지금 우리의 생활 밑창을 흐르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가던 발걸음을 돌이켜 타락하기 전의 인간조상을 대하시던 하나님의 심정을 찾아야 합니다. 타락한 우리의 선조를 대하시던 하나님이 아니라 타락하기 전의 우리의 선조를 애지중지하며 대하시던 하나님의 심정, 지으신 아들딸을 만물 앞에, 혹은 천상세계와 지상세계 앞에 자랑하고 싶고, 품고 사랑해 주고 싶어하시던 하나님의 심정을 찾아야만 합니다. 이제는 그게 필요합니다. 아담이 타락한 후의 하나님의 심정은 아무도 모릅니다. 알고 보면 눈물 바가지요, 고통 바가지요, 슬픔 바가지라는 것입니다. 그걸 알면 통곡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담이 타락하던 장면을 여러분이 체휼해 보게 되면 십년을 울어도 다 끝낼 수 없는 그런 북받쳐 오르는 하나님의 사정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10-205
끝날을 대비하여 갖춰야 할 것
이제 이러한 슬픔의 역사, 고통의 역사는 다 지나가야 합니다. 이런 모든 비애의 근원이 사탄과 더불어 이루어졌다 할진대, 이것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먼저 아버지의 심정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성경 해설자도 많았고 신학박사도 많았습니다. 이러한 것은 다 지나가야 합니다. 신학이란 말도 들어 보지 못하던 태초의 아담 해와와 같이 순진무구한 어린아이의 심정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성경에서도 어린아이와 같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죄를 짓기 전의 아담 해와와 같은 입장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만일 아담 해와가 아버지 품에 안겨서 아버지의 뺨을 긁든가 쥐어박든가 어떠한 행동을 하더라도 그 행동 모두를 선이라고 공인받을 수 있는 입장이 되었다면, 우리는 이같은 처참한 자리에 있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선조 때부터 그러한 한 때를 갖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만일 인간이 참된 자식이 되었다면 아무리 원망을 해도 죄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수고스러운 자리에 나가게 되더라도 원망할 수 없는 인연의 세계가 선의 세계입니다.

여러분, 성경도 필요하고, 교회도 필요하고, 동지도 필요하고, 스승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이 천지가 황무지가 되었거늘, 교회가 없어서 황무지가 된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이 흉년이 들었거늘 무엇이 없어서 흉년이 든 게 아닙니다. 참다운 사람이 없으니 황무지요, 참다운 심정의 발판이 없으니 메마른 땅이 되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10-206
큰 계명의 의미
이제 우리들의 제단을 앞에 놓고 하늘 앞에 요구하여야 할 것은 무엇이뇨? 성경에도 `네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고 하였습니다. 교회를 사랑하라고 하였습니까? 정성을 다하여 자식을 사랑하라고 하였습니까? 아닙니다. 수많은 교회나 교파 종파를 막론하고 본질적으로 틀려 먹었다는 것입니다. 정성을 들이는 것도 내 아들 때문이고, 내 남편 때문이고, 내 아내 때문입니다. 그런 법이 어디 있어요? 만일 그렇다면 성경에 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말 대신 네 아들 딸을 더 사랑하라고 해야지요. 안 그렇습니까?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을 더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역사적인 고통을 넘어서야 되겠습니다. 역사적인 고통과 역사적인 슬픔과 역사적인 사망권을 청산해 버려야 하겠습니다. 여기서 청산해야만 됩니다. 역사적인 고통과 슬픔과 사망권이 내 마음을 얽매고 내 심정까지도 얽매고 있습니다. 내 생활과 내 몸과 내 마음과 내 심정까지 얽어맨 철천지 원수의 발길을 물리쳐야 합니다. 자기의 몸을 쳐서라도 물리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원수는 상대방이 아닙니다. 여러분 자신의 마음에 대해서는 몸이 원수요, 몸에 대해서는 생활환경이 원수입니다.

우리는 역사적인 비애가 되었던 모든 것을 청산해 버리고 타락 전 아담해와를 대하시던 하나님의 기쁜 모습을 맞이하여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대해 타락한 아들딸이라는 감정을 해소할 수 있는 날을 학수고대하고 계십니다. 만일 아들딸을 구해 하나님 앞에 세워 놓았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그들을 대하실 때 너희는 죄악세계에서 죄를 범한 후손들이고, 그런 혈통을 받은 자식들이라는 감정을 잊어버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자라야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모실 수 있는 것입니다. 죄의 감정이 남아 있으면 안 된다는 말입니다. 죄의 감정을 초월하여 아버지 앞에 나가면 부끄러움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 자가 있다 할진대 그 사람은 사탄이 침범하지 못합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교회를 찾습니다. 좋습니다. 교회에 와서는 `역사적인 하나님의 심정이 이랬구나, 시대적인 하나님의 심정이 이렇구나, 다시 오시는 아버지의 심정이 이렇겠구나’ 하는 것을 알아 가지고 자기도 모르게 눈물을 흘릴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 놈의 원수를 갚고 굴복시키고야 말겠다고 영원을 걸어 놓고 맹세할 수 있는 여러분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역사적인 모든 것을 밟고 넘어설 수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들이 소망하고, 온 천주가 바라고 찾고 있는 `참 가고 싶은곳’으로 가야 합니다. 여러분, 그것에 대하여 더러 생각 안해 봅니까? 죄를 짓기 전 하나님의 뒤를 좇으며 하나님의 보호 아래서 자라던 아담을 그리워해야 합니다. 제아무리 잘 생기고 제아무리 잘났다고 할지라도 그들은 모두 타락의 종족이요, 타락의 혈통을 벗어나지 못한 인간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죄짓기 전 본연의 아담의 성상을 보고 즐거워 할 수 있고, 그 성상을 통하여 하나님을 노래할 수 있는 그런 존재를 찾아야 됩니다. 그런 심정을 가진 자를 찾아야만 심판으로 불살라 버릴 이세상을 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원칙적인 관에서 바라보게 될 때,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 역사노정에 없었습니다. 어떠한 영웅, 어떠한 성인, 어떠한 성현들도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이제는 지금까지 믿었던 도를 버려야 할 때입니다. 불교를 믿던 사람들은 불교를 버려야 합니다. 석가모니 자신이 그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어떠한 도(道)도 근본문제를 해결하여 하나님의 심정과 인연을 맺어 주지 못하였기 때문에, 이것을 다시 맺어 주기 위하여 오시는 분이 재림주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그분이 구름을 타고 오실 줄 알고 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심정과 본연의 아담의 심정이 인류의 심정에 스며들 수 있는 길을 터놓기 위한 역사적인 사명을 띤 분이 나타나야 할 것인거늘, 그분이 불교에서 말하는 미륵불이요, 유교에서 말하는 진인이요, 기독교에서 말하는 재림 예수입니다. 이는 이름만 다를 뿐 결국은 한 사람입니다.

10-208
천국에는 어떤 사람이 들어가느냐
천국에는 어떠한 사람이 들어가느냐? 어린 아이와 같은 사람이 들어갑니다. 그러려면 하나님이 아담 해와를 지어 놓으시고 기뻐하시던 그 심정의 인연을 다시 회복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천지만물을 지어 놓으시고, 죄짓기 전의 아담 해와를 바라보시며 기뻐하시던 그 기쁨의 감정을 어떻게 회복시키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것을 회복시켜 놓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본연의 심정을 갖추어 역사적인 한을 다 제거하고 사탄을 굴복시켜야 합니다. 그렇게 하여야 ‘야 천사장아!’ 하면 ‘예이’ 하게 되는 것입니다.

본래는 종이었던 천사장이 사탄이 된 것입니다. 이놈이 심부름꾼 주제에 주인의 아들딸을 유린했습니다. 그런고로 인간은 그 종과의 인연을 끊고 하나님과 심정적인 인연을 맺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곳에 못 들어갑니다.

우리는 문을 열어야 합니다. 무슨 문을? 진리의 문, 인격의 문, 심정의 문을 열어야 합니다. 성경을 중심삼고 근본문제를 완전히 해명해야 합니다. 이 문제를 해결한 후에 완전한 인격의 문을 통과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통과한 후에는 완전한 심정의 기준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는 아직까지 멀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믿는다는 사람들을 보면 자기 딴에 잘난 척 떡 버티고 서서는 `나는 진단(眞端)이고 너희는 이단(異端)이다’라고 합니다. 어떻게 그런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까? 과거를 보십시오. 처음엔 구교가 신교에게 이놈들 했는데 어떻게 됐습니까? 시간이 지나면서 오히려 구교가 신교에게 몰렸습니다. 모든 것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지금은 세상은 수준이 높아지는 반면에 교회는 내려갑니다. 세상이 올라가기 전에는 교회가 올라갔습니다. 올라갔는데 하나님 이상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세상을 올라가게 하고 교회를 내려가게 했습니다. 그리하여 중세 기독교 봉건사회는 깨지게 됐습니다. 어느 교회나 교파든지 한번은 득세합니다. 그러다가는 내려갑니다. 내려갈 때는 자리잡으라는 것이 아니라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에 있어서 기독교가 이 정권하에서 전부를 움직여 나왔지요? 그러나 이제는 내려가야 할 때가 됐습니다. 내려가면 얼굴을 못 들고 엎드려서 기도나 해야 합니다. 죄인이라고 해야 합니다. 그러면 소망이 있을 것이로되, 그러지 않고 뻘떡대다가는 다칩니다. 세상 사람들이, 제삼자들이 들어친다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놈들 때려잡아라’ 하는 일들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이번에 남한 각지를 쭉 돌아보고 왔는데 가는 곳곳마다 예수 믿는 사람을 전부 다 원수라고 합디다. 여기에 누군가 불만 붙여 놓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러니 갈 길을 바로 가지 못할 때에는 악한 원수를 불러들여 칩니다. 이스라엘 역사를 보십시오.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 통일교회는 고맙게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는 가만 있는데 세상에서 자꾸 쳐주니 고맙다는 것입니다.

10-209
하나님을 바라보며 가야 할 이 길
여러분들은 교회가 무너지고, 신앙하는 데 있어서 중심을 잡지 못하고 허덕이는 자리에 있다 할지라도 낙망하지 마십시오. 낙망은 왜 하게 되느냐? 사람을 보니까 그렇습니다. 사람을 바라보아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눈은 하늘을 바라보고 있어야 합니다. 만일 인간이 타락하지 않고 근본적으로 잘 되었다면 90도 이하를 바라보면서 살 수 있는 것인데 타락하였기 때문에 눈은 하늘을 바라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신앙자들에게는 90도 이하를 바라보는 것이 용납되지 않습니다. 하늘을 바라보아야 됩니다. 그런데 땅을 바라보고 가다가는 망합니다. 나를 중심삼고 가다가는 망합니다.

이제 이 시대에 있어서 우리는 모든 것을 다 수습해야 합니다. 생활에서부터 몸, 마음, 심정에 이르기까지 전부 수습해야 합니다. 그러면 그 심정의 기반은 어디에 두어야 할 것이뇨? 신령한 목사에 두지 마십시오. 신령한 교파에도 두지 말란 말입니다. 통일교회에도 두지 말란 말입니다. 심정의 기반은 역사노정에 두는 것이 아니라 타락하기 전 아담 해와의 심정에 두어야 합니다. 그래야 됩니다. 그래 가지고 그 심정을 통하여 하늘과 더불어 오늘의 생활감정과 시대적인 모든 사조를 소화시키고, 하늘과 더불어 해결짓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러한 아들딸들이 이 땅위에 나와야 합니다.

여러분들 생각해 보십시오. 성경의 창세기 1장도 해결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심정의 동산에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창세기 2장의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부터 해결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근본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알아야 무엇을 하지 무지해 가지고는 완성할 수 없습니다. 그냥 믿기만 하면 될 것 같아요? 믿고 될 것 같으면 여기서 말하는 사람이 이렇게 핍박을 안 받을 것입니다. 이렇게 욕을 안 먹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남이 모르는 핍박의 길을 자진하여 찾아왔습니다. 출발한 길이 망하는 길이면 모르거니와, 그렇지 않다 할진대 이 길을 처음 나선 그날의 결심을 버리지 마십시오. 그날의 결심을….

이 길을 가는 데는 폭풍우가 거세게 몰아치고 가시밭길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바라보고 나가는 그 길에는 하늘의 핏자국이 어려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가는 길은 결코 여러분 자신만이 가는 길이 아닙니다. 여러분 자신은 처음으로 가는 길이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길을 몇 천만번이나 걸으셨습니다. 그 길에는 그분이 걸으시면서 흘린 핏자국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아브라함도 그 길을 갔고, 노아도 그 길을 갔고, 모세도 그 길을 갔고, 예수도 그 길을 갔고, 예수 이후에 수많은 성도들도 그 길을 갔거늘, 여러분은 그 길 가기가 싫습니까? 그러면 천상(天上)에 가서 벌을 받아야 됩니다. 그 길을 가려면 천적인 정통을 세운다는 심정이 있어야 합니다. 한 발자국 내디딜 때마다 선조의 피가 끓는다는 것을 느끼고, 가시가 내 몸을 스칠 때에는 선조의 피살을 찢던 그 가시가 내 몸을 찢는다는 것을 느껴야 되겠습니다.

그렇게 간 사람은 시대적인 개인이로되 한 시대에 그치는 인물이 아닙니다. 6천년 동안 아버지와 함께 간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여러분, 이 길을 가다가 쇠고랑에 얽매여 영어의 몸이 된다 할지라도, 황공함의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당신이 찾으시던 이 길, 이 자리에 불초하고 멸망할 수밖에 없는 죄인의 후손인 이 몸이 이런 영광된 자리에 참석할 수 있다니, 황공하옵니다. 수많은 순교자들이 거룩한 피를 흘린 이 터전 위에 더러운 이 몸이 발을 들여 놓을 수 있다니 황공하옵니다’ 해야 합니다.

10-211
우리들은 기필코 이 길을 가야 하겠습니다
통일의 용사 여러분! 여러분들은 최후의 길인 이 길을 가야 합니다. 참 가고 싶은 그 한 곳이 있기 때문에 수많은 선지자들이 그런 길을 갔고, 참 가야 할 길이기에 우리는 기필코 이 길을 가야 하겠습니다. 이 길을 따라가다가 몸이 찢겨 눈물을 흘리게 될 때에 그것은 나홀로 흘리는 눈물이 아닙니다. 그런 길을 걸으며 찢김당한 수많은 선지들이 같이 울어주는 눈물입니다. 그래서 지상에서 그런 길을 가는 사람을 역사적인 산 실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 모습으로 하나님을 상봉하여 `아버지’ 하고 붙드는 그 순간에는 천지가 아득해지는 것 같은 감격을 느낄 것입니다.

누구한테 억울한 사정을 한마디도 말하지 못하고 마음에 못이 박힌 하늘입니다. 그 못은 사탄이 박았습니다. 그러나 사랑의 못은 죄악까지도 수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려면 상대적 관계가 벌어져야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딸이 있다 할진대 그들을 통하여 사탄까지도 용서해 주고 싶은 것이 하나님의 사랑의 마음입니다. 이제까지 반대하던 사탄이 하나님의 아들딸 앞에 경배하는 날에는 그 사탄을 무조건 용서하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의 못은 죄악도 수습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랑할 수 있는 아들을 대하여 사탄까지도 동정하고 그리워하게 되면 치질 못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심판을 안 받는 것은, 예수를 사랑하고 예수를 위하여 피흘린 흔적을 갖고 있으며 예수가 남긴 심정적 인연을 붙들고 몸부림친 사랑의 인연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도 이 사랑의 인연을 가진 존재는 칠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드린 것 다 잊어도 좋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개체는 역사의 선물입니다. 비록 눈먼 봉사요, 언청이요, 병신일지라도 그들에게는 선조의 유업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도 하늘이 보낸 귀중한 선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몸이 악담을 할 때에는 역사가 슬퍼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몸이 비관을 할 때에는 심정을 통해 천성에서까지 비관을 하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 몸이 낙망할 때에는 하늘나라의 수천만 사람들이 낙망하여 서글픔에 사무치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이 이러한 사실을 실감적으로 느낀다 할진대, 백 번 죽는 한이 있더라도 하늘을 원망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가면 갈수록 알면 알수록 머리를 숙이고, 나중에는 손 하나도 조심스럽게 움직일 수 있는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그러한 심정에 사무쳐 일년을 지내 보았습니까? 그렇게 지냈다면 그 일년은 여러분 앞에 영원히 남아지는 것입니다. 만일 그러한 기준이 여러분에게서 사라지게 되면 그 일년은 천상에 가서 말할 수 없이 큰 참소의 조건이 됩니다.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 그 기준을 잃어버리며 망합니다. 망해도 깨깨 망합니다.

그러기에 하늘 앞에 충성을 했다 하더라도 했다고 생각하지 말고, 자기것이라고 생각하지 말란 말입니다. 내가 몸이 찢기면서도 달려나가는 그 힘은 내 자체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의 힘입니다. 아버지의 힘을 동맥을 통하여 나에게 주었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주관을 해주었기 때문에 그 힘이 나온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내가 찢기는 것은 아버지가 찢기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렇게 걸어왔다고 자랑할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자랑할 것이 없어요.

여러분은 그런 노정을 통해서 하나님의 역사적인 슬픔과 사정을 알고, 또 하나님이 겪으시는 모든 고통을 체험하면서 새로운 식구가 연결되고 연결되어서 아버지 앞에 부름을 받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하나의 민족을 세우고 하나의 국가를 형성하여 세계적인 새로운 주권의 세계를 복귀하는 것이, 하나님이 이 땅의 인간을 대하여 섭리하시는 최후의 목적입니다. 그 중심은 무엇이뇨? 타락 전 아담 해와의 심정적인 기준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타락한 아담 해와는 몰랐지만 우리는 사탄의 모든 사실을 다 해명하여 다시는 사탄의 침범을 받지 않는 심정적인 기준을 갖추어 역사적인 사탄까지도 주관할 수 있는 자리에 서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의 심정을 통하여 하늘과 땅을 호령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하나님의 직계 아들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내 아들아 딸아, 이제는 네 때요 네 날이다. 이제는 네 마음대로 할 수 있다’ 라고 축복을 받는 그 날까지 나아가야만 비로소 참 바라던 그 곳, 참 가고 싶은 그 곳에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역사적인 죄상을 청산하고 역사적인 사망의 울타리를 청산하여 하나님의 창조이상을 이룰 수 있는 심정을 갖추어야 합니다. 역사적인 사망의 권세를 역사적인 생명의 권세로, 역사적인 죄를 청산하여 역사적인 선으로 복귀해야 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는 역사적인 하늘의 심정을 세울 줄 아는 여러분이 되어야 비로소 참 가고 싶었던 본연의 세계에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이후 여러분들은 이러한 관점에서 자신들이 어떠한 위치에 있는가를 스스로 알고 성별하는데 있어서 무자비한 투쟁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명심하기 바랍니다.

10-213
기 도
아버님, 저희들은 큰 것을 잃어버린 것을 알지 못하였사옵니다. 이러저러한 곡절과 역사적인 슬픔을 안고 사라져 갔던 우리 선조의 사정을 회고하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모든 죄악을 청산해야 할 마지막 때이기에, 오늘 저희들의 마음은 심히 초조함을 느끼고 있사옵니다. 이 땅에는 고통의 신음이 꽉 차 있사옵니다. 여기에 하늘의 옥동자를 출생시키시어 역사적인 고통과 죄상을 청산할 수 있게 함으로써 창조 당시의 아버지의 심정을 새롭게 꽃피울 수 있는 한 날이 오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승리적인 새로운 동산이 그로 말미암아 출발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그 때는 내가 아버지와 직접 상대할 수 있는 시대이기 때문에, 각자의 몸에서 사탄이 물러가고 아버지께서 내 마음에 깃들어 영원한 부자의 인연을 노래하고 동시에 만우주도 함께 송영을 드릴 수 있는 자유의 세상인 줄 아옵니다. 그런 세상이 되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사오니 현실적인 고통을 견딜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가야 할 길에는 아직도 피의 고비 고비가 남아 있고, 멀고 힘든 험산준령이 가로놓여 있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그러나 이 길은 저희만이 가는 길이 아니옵니다. 아버지께서 저희들보다 먼저 수십 번, 수천 번, 수만 번 왕래하신 길이옵니다.

이제 이 어려운 길을 아버지가 닦을 것이 아니라 인간들이 닦아 나가야 한다는 사실도 알았사옵니다. 험한 길을 오시느라 수고하신 아버지를 위하여 저희들이 최후의 한걸음을 옮길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가야할 길이 남아 있사오니, 가다가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아버지께서 걸어가신 그 발자국을 밟고, 아버지께서 남기신 핏자국을 본받으면서 갈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찢기고 상처입은 이 몸을 아버지 앞에 산 제물로 바치게 될 때, 아버지께서 만천하에 자녀의 명분을 세워 주시며 축복해 주신다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그러한 자리까지 가야 한다는 것을 알았사오니 그곳에 갈때까지 지치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지칠 때마다 아버지께서는 저희들을 부축해 주셨고, 낙망하고 외로워할 적마다 하늘은 저희를 재촉하여 주셨으며, 저희가 수고하기 전에 이미 아버지께서는 몇 백 번, 몇 천 번 저희를 위해 수고하신 사실을 잊어버리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무형의 존재로서 실체를 가진 인간과 인연을 맺어 자극을 주고 깨우쳐 주기가 얼마나 힘들다는 것을 저희들은 배웠사옵나이다.

이 길을 쉴 새 없이 개척해 오신 아버지였사옵니다. 쉬지 않고 반대해나오는 사탄이 있기에 이 길을 개척하기 위해 쉴 새 없이 수고의 역사를 해 나오시고, 내 한 개체의 생명을 위해서 지칠 줄 모르고 싸워 나오신 아버지이심을 알고 황공한 마음으로 아버지를 붙잡고 싶은 마음이 사무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애달픈 마음이 사무쳐 미칠듯이 아버지를 부르는 안타까운 심정이 저희 각자의 마음에 폭발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러한 자를 아버지께서 위로하여 주시고, 그러한 자를 수습하시어 새로운 약속의 세계, 천적인 위업을 약속해 주시는 것을 알고 있사오니, 그자리를 확정할 때까지 끝까지 참아 승리의 영광과 승리의 개가를 온 천주앞에 높이 올릴 수 있는 아들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오면서, 주의 이름으로 기도하였사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