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67 to 8-189: 우리만이라도 아버지와 함께 있자

우리만이라도 아버지와 함께 있자
1959.12.13 (일), 한국 전본부교회

8-167
우리만이라도 아버지와 함께 있자
로마서 8:31-39

[기 도]

아버님, 싸움은 이미 벌어졌사옵고 그 싸움은 지금도 계속 되고 있나이다. 타락의 보응이 이렇게도 심절히 역사상에 왔다 갔던 선조의 뼈살을 연하여 오늘날 저희의 마음에 미쳐지고 있음을 알겠나이다. 이 몸과 마음, 피와 살이 동할 적마다 하늘이 저희를 그리워하시는 모든 사실이 여실히 느껴지옵니다.

오늘날 저희들이 겪고 있는 것과 같은 이런 몸 마음의 싸움을 놓고 바울도 탄식하였사옵고, 예수님도 이런 싸움을 하고 있는 땅 위의 인간들을 위하여 싸워야 할 노정을 남겨 놓고 탄식하고 있사오며, 하나님 역시 인간을 복귀시키시고자 억만 사탄을 대하여 싸워 나오시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그 과정은 전쟁의 연속이요, 생사가 뒤넘이치는 고통의 연속이요, 피흘리는 제단의 연결인 것을 아옵는데, 아버님, 오늘 저희들은 어떠한 위치에 있사옵니까?

지금까지 인간들은 선의 싸움을 하시는 하늘의 심정을 떠나 악의 싸움권내에서 이용당해 왔사옵고, 오늘도 그런 자리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하늘의 슬픔을 자아내는 대상이 되어 있는 것을 알게 되옵니다. 그러니 역사적인 싸움의 동기가 지난날의 선조가 아니라 오늘의 저희임을 알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머리 숙여 회개할 수 있는 아들 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런 자리에서 역사적인 아버지의 심정을 대하여 눈물지을 줄 아는 아들 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고, 역사를 이끌어 오신 아버지를 대하여 ‘나의 아버지 얼마나 수고하셨습니까’하며 위로해 드릴 줄 아는 아들 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역사를 떠난 현실이 있을 수 없는 것 같이 인연의 역사를 거쳐야 할 현실인 연고로 이 땅 위에도 시대적인 슬픔이 있는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늘의 심정이 이 시대의 슬픔의 싸움터에 남아 있는 것을 알고 무한히 슬퍼할 줄 아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고, 하늘을 위한 갈급한 마음으로 현실의 싸움터에서 상처를 입고 계시는 하늘을 위로할 줄 아는 아들 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께서는 거듭 소망의 심정을 품으시고, 미래의 세계를 향하여 새로운 계획과 새로운 결심을 가지고 몇번이나 인간을 대하여 권고하셨으며, 지금 이 시간도 불쌍한 자들을 세워놓고 내일의 소망을 품고 계시옵니까? 그러나 미래의 심정을 아는 자가 이 땅 위에 없사옵니다. 역사적인 아버지, 시대적인 아버지는 감히 알 수 있었사오나 미래를 통하시는 그 아버지를 알 수 없는 것이 한이옵니다. 싸움은 해야 할 터인데 갈 방향을 알지 못하고 있는 이 땅 위의 인류이옵니다. 그 싸움터에서 승패를 가름하는 한판을 겨루어야 할 때는 가까와오는데, 패배를 거듭하고 있는 하늘의 백성들이오나 이들을 붙들고 최후의 결전지를 향해 진군하라고 명령할 수 있는 아들 딸들이 이 천지간에, 이 민족 앞에 나타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오늘 저희들이 모인 이 자리는 편안한 자리가 아니라 골고다의 길이 연하여 있는 자리임을 알았사옵니다. 또한 저희들이 가야 할 길은 핍박의 길이요 눈물의 길인 것도 알았사옵니다. 이처럼 외로운 길을 걸어온 저희들은 마음으로 아버지를 알았사옵고, 심정으로 아버지를 느꼈사오며, 생활에서 아버님의 증거적인 사실을 보았습니다. 이러한 저희들이 이제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뜻이 무엇인지 알았사오니, 아는 자의 슬픔이 하늘을 대신하여 새겨지게 될 때 그 슬픔은 땅 위의 어떤 사람의 슬픔보다 큰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고, 또 아는 자의 책임이 땅 위의 어떠한 사람의 책임보다 더 크다는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부족한 모습들을 세우시어 크나큰 경륜을 이루려 하시는 하늘 앞에 머리 숙여 자기를 반성하고 하늘만을 의지하고 그리워하는 모습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러한 자들만이 아버지께서 지휘하시는 싸움터에서 패배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아버지의 싸움터에서 싸우다 쓰러지는 한이 있다 할지라도 감사의 눈물을 흘릴 수 있는 효자 효녀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고, 충신 열녀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지, 여기에 나온 저희들은 세상의 영광을 바라고 나온 것이 아니옵니다. 아버지께서 가라 하신 이 길이 험한 길인 줄 아오나 아버님이 가신 길인 것을 알기에 저희들도 이 길을 가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지금 처하여 있는 자리가 편안치 못한 자리이오나 아버님의 보좌가 그러한 자리임을 아는 저희들이기에 이런 자리를 피할 수 없는 운명에 처해 있음을 아오니, 오늘도 내일도 감사의 마음을 길러 나가며 때를 고대하고 준비하는 아들딸들이 되게 인도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저희들이 사도 바울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민족의 반역자로 몰리던 나사렛 예수, 십자가에서 피 흘리며 쓰러지신 예수, 어느 누구 하나 그의 편이 되어 변명해 주지 않던 외로운 예수를 따르며 증거하던 스데반을 죽이는 것을 찬성하던 바울이었지만, 예수를 알고 난 그날부터 바울은 자기의 영광도, 자기의 지위도, 자기의 처지도, 자기가 바라보던 민족도 다 버렸습니다. 그런 후 그는 새로운 결심을 갖고 주의 뜻을 위해 험한 길을 자청하여 찾아들었고, 수많은 싸움의 노정에서 하늘 앞에 충절을 다했던 역사적인 사실을 알았사옵니다. 바울이 걸었던 그러한 길이 오늘 저희들의 목전에 다시 전개되어 있사옵고, 하늘을 대신하여 싸우던 그 싸움이 저희 앞에 벌어졌사오니, 그 모든 것을 상속받아 아버님이 보시기에 늠름하고, 아버님이 보시기에 자랑스럽고, 아버님이 보시기에 멋진 아들 딸들이 되게 인도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제가 무슨 말을 하오리까? 아버님이시여, 지금까지 많은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아버지의 심정이 어떻다는 것도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버지께서 기뻐하실 수 있는, 아버지의 심정을 통할 수 있는 아들 딸이 몇명이나 되옵니까. 한 생명이라도 있사올진대 많은 무리를 보고 말씀하지 마시옵고, 그를 중심삼고 아버지의 은사를 연결시켜 주시옵고, 그로 말미암은 은사를 이 시간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전하는 자의 마음과 받는 자의 마음이 하나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늘과 땅이 움직이는 그 시간에 저희의 마음과 몸도 움직여야 되고, 하늘과 땅이 움직이는 그 자리에서 저희들 전체가 움직여야 됨을 알고 있사오니, 아버지, 하늘과 땅을 대신하여 움직일 수 있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에도 수많은 교단들은 싸움터에서 갈 길을 모르고 허덕이고 있사오며, 수많은 백성들이 도탄 중에서 탄식하고 있사오니, 그들 위에 승리의 영광을 나타내 주시옵소서. 더우기나 이 시간 외로운 자리에서 처참한 모습으로 아버지 앞에 심정을 기울이고 눈물짓는 아들 딸이 있다 할진데, 그들 위에도 같은 은사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하늘이 주고자 하시는 은사는 이 천지에 남아 있사오니, 마음으로 높여 주고 마음으로 위하고 마음으로 돕는 저희 식구들을 아버지의 심정세계 가까이에 길이길이 세워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나이다.

모든 것 맡기오니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주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8-170
말 씀
‘우리만이라도 아버지와 함께 있자’ 이러한 제목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개개인으로 말한다면 ‘나만이라도 아버지와 함께 있자’ 이러한 제목이 되겠습니다.

8-170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
여기에 나온 여러분들은 역사적인 곡절의 노정을 거쳐서 이 자리까지 찾아왔습니다. 종족이 다르고 부모가 다르지만 각자의 부모를 중심삼고 더듬어 올라가면 인류역사 6천년이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아는 바입니다. 그러므로 ‘나’라는 한 존재, 여기에 있는 우리들은 전체의 역사를 대신한 존재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마음으로 몸으로 느끼는 감정도 우리들 자신만의 감정이 아닐 것입니다. 그 감정을 들추고 또 들추어서 거슬러 올라가면 오랜 역사에 연하여 있는 것임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각자의 형편이 다르고 사정이 다르고 심정이 다르니만큼, 우리들의 모습도 각양각색이라는 사실을 우리들은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천 사람이 모이면 천 사람이 다르고, 만 사람 혹은 이 세계에 살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 마음과 그 사정들이 각각 다르다는 것 또한 우리는 부인할 수 없습니다. 과연 하늘이 있다면 이와 같이 사정이 다르고 심정이 다른 세계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큰 문제입니다. 자기 자신의 문제 하나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일생을 걸어 놓고 허덕였지만 해결하지 못한 역사적인 실증을 잘 알고 있는 우리들입니다.

자신도 모르는 어떠한 인연적인 세계에 살면서 그 인연을 이끌어 좋은 목적지에 가기를 원하고 있는 우리들, 사정이 다르고 심정이 다르고 처지가 다른 환경에 있는 우리들을 하늘이 계셔서 선의 목적지까지 이끌려고 하신다면, 무한한 수고를 하시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먼저 자신을 두고 생각하고 또 인류를 두고 생각해야 합니다. 한 개인을 참된 선의 모습으로 이 땅 위에 찾아세우기 위해서는 전생애를 바쳐 개척한다 해도 힘들다는 것을 우리들은 잘 아는데 하물며 역사상의 전체 인류를 하나의 선의 목적세계로 옮기려 하시는 하늘의 수고의 큼을 무엇으로 다 형용할 수 있겠습니까? 형용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를 비롯하여 땅 위에 사는 모든 인간들은 알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슬프고 한스러운 자리에서 하늘과 땅을 원망하고 저주하는 사람은 많았지만, 한스러운 나와 한스러운 인류를 끌고 나가시는 하늘의 한을 생각한 사람이 이 땅 위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수천년 기나긴 역사노정에서 이리 끌고 저리 끌어 하나의 목적세계로 몰아내시며 수고해 나오시는 하늘이야말로 어떠한 불쌍한 민족에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불쌍한 자리에 계심을 몰랐다는 것입니다.

그런 하나님은 어떠한 사람을 찾으실 것인고. 많은 사람이 아니라 한 사람을 찾으십니다. 이 세계의 인류를 목적의 세계로 이끌기 위해 자기의 슬픔과 어려움을 잊어버리고 하늘을 대하여 ‘황공하옵니다. 천만번 죽는 한이 있다 할지라도 아버지의 수고에 가담하여 싸우다가 사라지게 하시옵소서. 천만번 배반당할지라도 아버지의 한을 풀어드리기 위해 싸우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는 사람을 찾으십니다. 그런 사람이 있다 할진대 그는 역사적인 인물로 남아질 것입니다.

하늘이 세계 인류를 그런 방향으로 이끄시기에, 그 같은 심정을 갖고 민족을 대신하여 움직이는 자가 있다면 그를 민족을 대표한 충신이라 하며, 부모 앞에 그런 마음을 갖고 움직이는 자를 효자라 하는 것입니다. 땅 위에 그런 사람이 있긴 하였으나 우주적인 대위업을 성취시키기 위하여 움직이시는 하늘 앞에 효자 효녀, 또는 충신 열녀가 되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과연 있습니까?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리, 이러한 생활권내에서 허덕이는 나요, 우리인 것을 똑똑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우리는 현세와 연(連)하여 있습니다. 이 현세를 바라볼 때, 우리는 하늘에 동조하는 사람이 없는 것을 알게 됩니다. 더우기 물질문명이 최고도로 발달된 이 땅 위의 세계 인류는 알면 알수록 하늘을 부인하려 듭니다. 그러니 이 세계에서 하늘을 생각하는 참다운 아들 딸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님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이 하늘을 배반하고 몰아세워도 하늘은 그러한 인간을 버릴 수 없는 입장입니다. 인간들에게 배척받는 한이 있더라도 다시 앞서서 싸워 줘야 할 하늘인 것을 이 시대의 사람들은 모르고 있습니다. 인류가 새로운 방향에서 하나의 소망을 가진다 할진대 무엇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지금은 모든 것이 끝을 바라보는 때입니다. 종교나 철학, 혹은 과학이 세계 인류를 행복의 파라다이스(paradise)로 안내해줄 줄 알지만 불가능이라는 세 글자에 가로막혀 있습니다. 만일에 하늘이 있다면 반드시 가로막아야 합니다. 진정 이 인류를 하나님이 하나의 목적세계로 이끌고자 하신다면 반드시 인류가 나가는 길은 막혀야 된다는 것입니다.

8-172
인간의 창조목적과 타락
그러면 역사적인 종말에 처한 이 시대에 우리는 무엇을 바라보고, 무엇을 느끼며, 무엇을 가져야 할 것인가. 문제는 여기에 걸려 있습니다. 무엇을 가질 것인고. 어떤 사상가들은 세계를 갖겠다고 야단들이며, 어떤 종파주의자들은 그 종주(宗主)가 되겠다고 야단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가질 것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현세의 모든 것은 우리가 목적하는 소유물이 아닙니다. 목적한 것을 가지려면 현재 가진 것을 다 잃어버려야 합니다. 이런 시기를 만들어 놓으시고 하늘은 우리를 바라보고 계십니다.

우리의 처지가 그렇다는 것을 알고, ‘우리만이라도 아버님과 함께 있자’는 제목으로 돌아와서 다시 한번 생각해 봅시다. 이러한 때에 이러한 처지에 있는 오늘날 우리 개개인들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되겠습니까? 하늘과 함께 있고 싶어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세계가 끝날에 처하여 갈팡질팡하며 갈 바를 알지 못하고 있는 이때에 우리는 하늘과 같이 있어야 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무한히 행복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하늘의 입장을 다시 한번 생각해 봅시다. 천지만물을 지어 놓으시고 에덴의 모든 것을 맡기기 위하여 우리의 선조 아담 해와를 지으셨습니다. 그러니 아담 해와는 지음받은 그 순간부터 하나님과 같이 있어야 했습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하나님과 같이 있어야 할 아담 해와 였습니다. 또 하나님을 중심삼고 아담을 의지하여야 할 만물이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이념권내에서 영원히 동고동락(同苦同樂)하여야 할 인간이 어찌하여 같이 있을 수 없게 되었는가. 타락하였기 때문인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우리 조상 아담 해와를 지으시고 어떠한 기준에 두고 싶어하셨는가. 하나님께서 본연의 인간을 지으신 목적은 인간을 슬픔 가운데, 고통 가운데, 불행 가운데 두고자 하신 것이 절대 아닙니다. 하나님의 일터로, 하나님의 마음의 자리로,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으로 지으셨습니다. 아담 해와는 하나님의 일터요, 마음의 집이요, 사랑의 대상이었다는 것입니다. 선하신 하나님이 지으신 창조의 세계 또한 선한 연고로 아담 해와가 움직이던 그 생활환경도 선해야만 되었습니다. 그것이 창조 당시 하나님의 목적이요 이념이었습니다. 그런데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인간은 하나님의 일터가 되지 못하고 마음의 집이 되지 못하고 사랑의 대상이 되지 못한 것입니다.

모든 만상과 화동(和動)하여 기쁨과 영광, 자유와 행복의 동산, 하나님이 축복해 주신 무한한 기쁨의 세계, 무한한 행복의 동산에서 살아야 할 인간이었는데, 아직까지 행복과 기쁨이라는 명사를 어느누구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하나님은 인간이 느끼지 못하는 슬픔을 느끼셨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만 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행복스럽다 해도 그것은 사탄 세계의 행복입니다. 하나님이 찾아 세우고자 하시는 것은 영원한 참인 연고로 그 세계에서 그리는 사랑, 그 세계에서 누릴 수 있는 자유와 행복은 영원무궁토록 하나님의 것이요, 우리 인간의 것이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그런 감정도 잃어버렸으며 그런 사정도 모르는 연고로 타락한 사실을 두고 슬퍼했을지 모르지만, 하늘은 타락한 인간을 놓고 인간이 느끼지 못하는 행복을 잃어버린 슬픔을 느끼셨습니다. 자유와 평화를 잃어버린 억울함을 품은 하늘이예요. 분하다면 이 이상 더 분한 일이 없을 것입니다.

8-174
인간타락 이후의 하나님의 입장과 인간이 머물러야 할 곳
그러한 하나님, 그러한 하늘은 인간이 타락한 그날부터 어떻게 되었던가. 영광과 행복과 이념의 생활이 변하여 공통과 슬픔의 생활로 들어가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었습니다. 거기에서 비애의 역사는 시작되었던것입니다.

인간의 타락 이후 하나님이 하신 일은 무엇인가. 하나님은 어떠한 입장에 계시는가. 안식하셔야 할 하나님이 안식하지 못하시고, 잃어버린 인류를 다시 찾기 위해 이 땅 위의 인류를 붙들고 나오는 입장에 계십니다. 하나님의 일은 영광을 높일 수 있는 일이요 인간을 사랑할 수 있는 일이요 인간과 더불어 행복스럽게 살아야 할 것이었는데, 싸우는 것이 하나님의 일로 변했다는 것입니다.

하늘의 슬픔이 무엇이뇨. 본래 하나님의 일은 행복과 자유와 평화가 깃든 자리에서 온 피조물이 화동하여 창조하신 하나님의 솜씨를 찬양하고 즐기는 것을 보며 사는 것이었는데, 인간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싸우는 입장으로 떨어진 것이 슬픔입니다. 기쁨과 만족과 이상의 자리에 계셔야 할 하나님이 슬픔과 불행을 느끼고 낙망할 수밖에 없는 자리로 떨어지게 됐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하나님과 함께 있어야 할 우리입니다. 타락한 인류 앞에 하나님은 싸우는 입장에 계십니다. 그러니 우리는 ‘나는 원합니다. 아버님과 함께 있기를 원합니다. 행복한 자리에 있을 수 없는 운명이요, 역사적인 하나님은 싸움의 하나님이심을 알았사오니, 그런 하나님의 일터에 있기를 원합니다’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그런 일터에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머물러야 할 곳은 행복스런 자리가 아닙니다. 그렇다고 환경이 좋지 않은 자리도 아닙니다. 역사노정에 있어서 이 인류를 붙들고 나오시는 하나님의 싸움터입니다. 하나님의 전쟁터에 있지 않는 자는 하나님과 같이 있는 자가 아닙니다. 타락한 인간의 한이 무엇입니까? 우리의 한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일터에 있지 못한 것입니다. 자유의 일터를 잃어버리고 불행의 일터에 계시는 하늘은 자유의 일터를 찾기 전에 불행의 일터에서 책임을 다해야 자유의 일터가 벌어질 수 있다고 하십니다.

전세계의 타락한 인류는 소망의 한날을 고대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예수를 믿는 기독교인들은 재림의 한날, 심판의 한날을 고대하고 있습니다. 그날이 자유의 일터가 벌어지는 날이요, 자유의 일터에서 아버지를 모시고 즐길 수 있는 날입니다. 그런 날을 맞이하려면 인류는 먼저 어떻게 해야 될것인가? 싸움터에서 승리의 개가를 부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는 한 그 한날을 맞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땅 위의 인류 가운데 하나님을 믿는 자가 있다 할진대, 그의 소원이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과 함께 있는 것일 것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있기를 소원하는 자는 먼저 하나님의 일터에 함께 있어야 합니다. 그러지 못하는 자는 하나님과 더불어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선한 사람은 반드시 승리해 나옵니다. 역사를 보면 개인으로부터 가정을 거쳐 민족을 거쳐 세계까지 나오는 데 있어 선이 악을 청산해 나왔습니다. 역사적인 실증을 보아 우리는 이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참된 선은 둘이 없을 것이기에 하나의 목적세계로 움직여 나가는 것은 필연적입니다. 그러기에 지금까지의 역사노정에서 우리의 양심, 우리의 마음은 ‘선하라’고 제창해 왔습니다. 선한 데서 그칠 것이 아니라 ‘선을 중심삼고 악과 싸우라’고 합니다.

한 국가를 중심삼고 보더라도 충신이 있다 할진대 그 충신은 어느 때에 나옵니까? 그리고 효자는 어느 때에 나오며, 열녀는 어느 때에 나옵니까? 민족이 존망(存亡)의 기로(岐路)에 놓였을 때, 가정 사정이 어려울 때 나옵니다. 민족이나 가정의 생사를 좌우하는 판가리 싸움터에서 승리의 개가를 부를 수 있는 자를 세워 충신이라 하고 효자 열녀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역사적인 인물은 싸움터를 거치지 않은 존재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찾아보십시오, 있는지.

그러면 어찌하여 역사적인 인물들은 이처럼 싸움의 고비를 거쳐야만 되었는고. 대우주의 목적을 지향하는 하늘이 싸움터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런고로 자기를 넘어 더 큰 선을 위하여 싸워 나가는 사람들은 반드시 세움을 받습니다. 그러기에 하늘은 우리 인간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싸우고 싸우라고. 사랑하는 아들 딸들에게 평화롭고 행복스럽게 살라고 가르치지 않으셨습니다. 먼저는 ‘네 마음을 중심삼고 몸을 정복시켜라’하신 것입니다. 그 후에는 ‘가정과 민족, 세계까지, 더 나아가서는 무형세계(無形世界)에까지 나아가서 사탄과 싸워라’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하늘의 가르침이고 역사의 방향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싸움의 역사노정에서 허덕여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8-176
하나님의 일터와 하늘의 정병
하나님의 일터는 어떠한 곳인가. 천국 가기 위해 꿈꾸며 즐기는 자리가 아닙니다. 여러분, 민족을 사랑하는 사람, 민족을 위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민족이 추구하는 이념을 위하여 사는 자와 더불어 싸우는 자입니다. 그런 자는 꺾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하늘이 계시기에 남아집니다. 이것은 철칙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하늘은 사랑하는 기독교인들을 세워 놓고, 믿는 자들을 세워 놓고 ‘너희들은 세상 나라와 더불어 싸우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싸움의 역사를 해 나오시면서 왜 싸우지 못하게 하셨는가. 하늘은 최고의 목적을 중심삼고 섭리하시기 때문입니다. 과거에 싸움을 책임지시던 하나님이 자신을 대신하여 싸움노정에 내세운 자는 제일 불쌍한 신자들이었습니다. 싸우지 말라 하셨어도 그토록 치열한 고난과 역경의 노정을 걸어왔거늘, 싸우라 했다면 오늘날까지의 개인으로부터 가정, 사회, 국가, 세계까지에 이르는 그 전체의 치열한 싸움을 도맡아 해야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늘은 자신이 사랑하는 자들은 일정한 곳에 따로 모아 놓고, 세계의 나머지 사람들을 동원하시어 보다 선한 민족과 보다 악한민족으로 나누고 서로 싸우게 하여, 보다 선한 민족이 승리하게 해 나오시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최후의 승리의 결판을 내야 할 그때에 가서한 번만 싸우게 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작전법이예요.

이러한 하늘의 원칙을 모르던 과거에는 하늘을 원망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늘은 인간을 지극히 사랑하시어 세계에서 승패의 판국이 기울어진 그 한때에 가서 사랑하는 자들을 내세워 싸우게 하려 하십니다. 그 한날이 기독교에서 말하는 심판날이라는 것을 똑똑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는 참았습니다. 우리는 내일의 소망을 바라보고 하나님이 뜻하시는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참아나왔습니다. 그렇지만 한때가 오는데, 그때를 위하여 준비하는 자가 나오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는 것이 하늘이 제시한 요구조건입니다. 우리를 이와 같은 자리에 세워 놓고 싸우게 하시는 일면, 역사노정의 곡절을 거쳐서 오늘날과 같은 2대주의 세계를 이루기까지의 수고를 생각하게 될 때, 이것은 어떤 일개 민족이나 일개 국가가 수고해서 되어진 것 같지만 아니라는 거입니다. 오늘날의 미국과 같은 나라가 수고해서 된 것 같지만 절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주의와 이념을 제창한 어떠한 민족, 국가, 사상가 이상 가는 입장에서 수고하시면서 싸움을 도맡아 나오신 분이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알았습니다. 우리를 이런 자리에 세워 놓으시고 어떤 충신열사보다 외로운 자리에서, 역사노정의 배후에서 싸움을 홀로 책임지고 뒤넘이쳐 나오시는 하나님이 그리워서 ‘나는 아버지의 일터에 있고 싶소이다’ 하며 하나님의 일터에 나서고 싶어하는 하늘의 아들 딸들이 몇 명이나 됩니까? 여러분, 하나님과 함께 있고 싶어하는 마음이 있습니까? 죽어도 같이 있어야 할 우리이기에 끝날이 오기 전 한 때만이라도 아버지의 싸움터에 가담하였다는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만나야 할 아버지는 6천년 동안 싸움에 지치신 아버지이십니다. 그 아버지의 아들 딸이 되겠다는 우리가 역사적인 체면을 살리기 위해서는 최후의 한날, 그 한때에 사탄을 박멸하고 모든 원한을 해원하기 위해 세계 앞에 싸움의 용자로 나설 수 있는 하늘의 정병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터를 지켜줄 수 있는 정병, 하나님 대신 사탄과 싸울 수 있는 정병, 하나님 대신 온 인류를 복귀시킬 수 있는 아들 딸을 하늘은 찾고 계신 것입니다.

여러분은 책임없는 생활을 해 나왔습니다. 오늘 이렇게 살다가도 내일은 달리 변경할 수 있는 그런 생활을 했습니다. 역사도 그런 방향으로 흘러 나왔습니다. 시대 시대를 거치면서 혁명을 해 왔습니다. 이렇게 저렇게 몰아왔습니다. 과정에서는 그와 같이 이래도 저래도 통했지만 마지막 한때에 가서는 그것이 통하지 않습니다.

마지막 싸움의 날이 오거늘, 그날은 어떠한 날일 것인가. 영적으로나 육적으로나 싸움이 벌어지는 때인 것입니다. 그때에 하늘 앞에 설 수 있는 자는 하늘의 일을 도맡아 하겠다는 심정을 가진 사람입니다. 여기서 싸움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8-178
하나님의 동역자(同役者)가 될 수 있는 사람
하나님과 더불어 싸우되 패배하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일을 맡아 ‘하나님 아버지, 이것이 당신의 소원이었지요?’해야 합니다. 마지막 싸움만은 하나님께 맡기면 안 된다는 겁니다. 우리 인간이 아무리 영광되고 잘났다 해도 인간 때문에 싸움이 일어났고, 그런 우리 인간을 목적지까지 끌어주시기 위하여 하늘이 지금까지 수고해 나오셨으니, 그 싸움을 책임질 수 있는 아들 딸이 되어야만 하늘의 유업을 상속받을 수 있습니다.

오늘날 기독교 신자들은 끝날이 오면 영광받을 줄 알고, 그때는 자유천지, 천국이 될 줄 알지만 그것은 싸움을 이긴 후에, 심판이 끝난 후에 찾아지는 것입니다. 싸움의 과정을 거쳐야 할 하늘의 곡절이 있는데, 오셨던 예수님도 그 싸움터에서 완전한 승리를 하지 못하고 가셨으며, 하나님도 그 싸움터에서 인간의 배반으로 인하여 실패를 거듭해 오셨습니다. 이런 역사노정에서 모든 것을 하늘이 해줄 줄 알고 기다리고만 있으면 저나라에 가서 영광받을 것 같아요? 영광은 무슨 영광 어림없는 일입니다. 알고 보면 마지막 한번의 싸움에서 6천년 동안의 억울함을 풀 수 있는 싸움의 용자를 찾으시는 것입니다.

심판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하나님의 마음을 통해서, 6천년 동안 한이 맺힌 심정을 통해서 합니다. 심판이 뭡니까? 싸움을 말합니다. 싸움. 그렇기 때문에 끝날에는 7년 대환난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6천년 역사를 지나 안식의 날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6천년 동안 준비한 하늘의 정병은 기치를 높이 들고 7년 대환난시기의 싸움에서 승리해야 합니다.

기독교인들이 왜 몰렸는지 알아요? 선을 향하여 나가는 사람들은 언제나 몰립니다. 하늘의 아들 딸이 무능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때가 안 되었으니 기다려라 기다려라’하며 6천년이 지났으니, 여러분의 마음에 사무친 분함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그러니 싸우러 나가야 된다는 겁니다. 싸우러 나가는 데 있어서는 6천년 동안 맺힌 한스러운 하나님의 마음을 더듬어 살피고, 이 시대의 분통한 사실들을 용납할 수 없다는 의분심이 어느 정도 불타고 있는가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역사적인 싸움이라 하였거늘 여러분이 그와 함께 있기를 원한다 할진대, 하나님의 일터에서 선봉자로 서서 역사적인 원한과 시대적인 원한과 미래적인 한까지 풀기 위하여 가로막는 모든 것을 물리치고 행군할 수 있는 하나님의 아들 딸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인간의 체면을 세울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가정을 희생시키고 민족을 희생시키고 국가를 망하게 해서라도 선한 것을 세워 나왔지만, 이제 마지막 싸움엔 우리가 가담하여야 합니다. 그리하여 사탄세계를 정복해야 합니다. 그 싸움의 시기는 멀지 않다는 것입니다. 거기서 이겨야 돼요. 그 싸움에서 이기지 못하면 오늘날까지 싸우다 죽은 충신들 앞에 얼굴도 들 수 없습니다. ‘네가 이땅에서 공헌한 것이 무엇이냐?’라고 반문하면 뭐라고 대답하겠습니까? 하늘앞에 설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오늘날 전세계 기독교인들이 동원되어 하나님의 심정을 통하는 세기말적인 십자군이 결성되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이 땅을 농락하는 자들을 용납하지 않고 칠 수 있는 움직임이 나와야만 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지상의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싸우시는데 그 싸움을 책임지고 나서는 민족이나 국가가 있다 할진대 그 민족이나 국가에게 벌을 주겠습니까? 이스라엘 민족도 가나안 칠족을 치라 할 때 치지 못했기 때문에 벌을 받았던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워합시다. 하나님의 일터에 서기를 간절히 고대합시다. 하나님의 일을 책임지고자 합시다. 마지막 싸움터에서 일선장병이 되어 복귀해 오시는 하나님의 일을 책임진 주인으로서 싸워 이기면, 하늘의 영광이 여러분의 것이 될 것입니다. 그러기 전에는 아무것도 안 됩니다. 여러분 자신이 행복이니 뭐니 하는 것 모두 이루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이 땅에는 타락 이후부터 사랑하는 아들 딸을 찾으려 하시는 하나님과 그것을 막는 사탄 사이에 싸움이 벌어졌는데, 하나님은 최후의 승패를 결정짓는 싸움터에서 인간이 역사적인 모든 원한을 풀고 승리의 영광을 갖추어 나타나기를 고대하시는 것입니다. 역사의 종말, 땅 위의 전쟁과 투쟁의 역사노정에서 종말시대를 고대하시는 하나님의 소원은 무엇이뇨. 여러분을 세워서 6천년의 원한을 갚는 것입니다. 승리의 군대로서 하늘 앞에 세워질 수 있고 또 설 수 있는 무리를 하나님은 찾아 나오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러한 무리가 되지 못한다 할진대, 여러분은 하나님의 일터에서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없습니다.

8-180
하나님의 마음에 기억되는 사람
하나님의 일터는 땅만이 아닙니다. 하늘과 땅이라는 거예요. 그런데 그 하늘과 땅의 싸움이 오늘날의 전쟁이라는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싸움의 자리에서 책임을 지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6천년 동안 싸워 나온 싸움의 역사를 대신했다는 영광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승리하면 6천년 역사의 최후의 승리를 얻게 되고, 역사상의 싸움에서 희생당한 수많은 선한 무리들은 우리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되어 천상의 높은 자리에 있을 수 있게 됩니다. 거꿀잡이예요.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일터에 함께 있어야 하며, 동시에 하나님의 마음에 같이 있어야 되겠습니다. 하늘의 일터에서 기억되는 사람이 되는 동시에 하나님의 마음속에 기억되는 여러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창조 전부터 타락 이후 6천년 역사노정에도 있었고, 오늘 이 시대에도 있으며 미래에도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온 세계에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마음은 어떠하뇨. 온 세계를 품고자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은 내려가기를 원치 않습니다. 안 그래요? 내려가기를 원치 않아요. 왜? 하나님의 마음을 본으로 지은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의 마음은 크고 넓기를 고대합니다. 이 땅만이 아니라 온 피조물까지,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까지도 품으려 합니다. 이렇게 되어 있어요.

그러므로 오늘날 이런 싸움을 책임지는 데는 하나님의 마음과 더불어 있지 않으면 승리할 도리가 없습니다. 그 싸움터에 섰다 할지라도 나만을 위해 싸우고 자기 민족만을 위해 싸운다면, 전체의 싸움에서 승리한 영광의 자리에 갈 수 없는 것입니다. 싸우는 데는 하나님의 마음속에 기억되는 자리에서 싸워야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움직이는 가운데서 싸워야 된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어떠한 마음이냐? 온 우주를 품고자 하시는 마음입니다. 우리가 싸움의 자리에, 혹은 고통의 자리에 들어가는 것도 우주를 품기 위함이어야지 나 하나가 승리하기 위함이어서는 안 됩니다. 자신은 비록 싸움에서 쓰러지는 한이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계시는 한 이 우주가 내 품에 안길 날이 기필코 있으리라’는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그런 마음을 품고 하늘을 위하여 싸우는 자는 천국주의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찾아 나오고 있습니다. 마음의 세계, 이념의 세계를. 그 이념이 나로 말미암아 움직일 수 있는 그 자리를 말입니다. 이념을 세워 움직여 나오는 중심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인간이 그 이념의 세계를 움직이는 중심에 서고자 하는 목적은 하나님의 마음속에 있기 위한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오늘날까지 세계는 주의를 찾아 나왔습니다. 그리하여 오늘날 민주주의와 공산주의로 갈라졌으니, 이제 통일주의 천주주의를 거쳐 천주 그 자체를 보고 좋아하는 세계가 되어야 합니다. 무슨 논리를 통해서 나온 주의를 보고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 땅을 보면 마음이 그저 좋아지는 자리까지 나아가야 된다는 겁니다. 여러분, 그런 자리까지 나아가야 해요. 종교의 목적도 그 자리입니다. 뭘 보고 듣고 좋아하는 게 아닙니다. 하늘 땅을 바라보고 좋아할 수 있는 자리입니다. 주의라는 것은 지팡이입니다. 싸움의 대상이 남아 있는 동안 필요한 것입니다. 하늘 땅을 바라보고 좋아할 수있는 사람, 그런 사람들이 사는 세계 또는 하늘 땅이 주의의 최고 목적이예요.

주의라는 논리적인 것 말고 하늘 땅을 보고 즐길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어떠한 논리적인 주의권내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절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지으신 만물 가운데에 있습니다. 지으신 만물 가운데에 있어요. 아무리 미물의 풀 한 포기라 해도 하나님의 마음은 거기 있습니다. 여러분이 주장하는 주의 주장은 사라지고 주의를 부르짖던 사람은 죽어도, 만물은 하나님의 마음속에 남아지는 것입니다.

우리의 선조들은 싸우면서도 주의나 이념세계를 차지하지 못했지만 초목들은 싸우지 않고도 주의세계에 가담할 수 있습니다. 왜? 타락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인간은 안 됩니다. 싸워서 승리해야 됩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하나님의 말씀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지으신 만물 속에도 있는 것입니다. 하늘 땅 어디를 가든지 거기에 하나님의 마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은 계시지 않은 곳이 없다, 즉 무소부재(無所不在)하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속에 있기를 원할진대, 여러분이 바라보는 물건 가운데 하나님의 마음이 있으니 그 물건을 내 것으로, 천지의 모든 존재물을 내 것으로 품고자 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것이 하늘의 마음입니다. 최고의 도(道)를 통한 사람이 있다 할진대 하나님의 마음에 소유된 사람입니다. 날으는 새 한 마리나 향기를 풍기는 꽃 한 포기를 보고도 마음으로 영원히 노래할 수 있는 경지에 들어간 마음이 사람은 만물 가운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 가운데에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어떠한 시간적인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는 함께 있기를 고대합니다. 누구와 함께 있고자 하는가. 여러분의 가정입니까? 나라입니까? 이 땅 덩어리입니까? 아닙니다. 우리의 마음은 이 민족을 넘고, 이 세계를 넘고, 피조만물을 넘어 하나님과 같이 있고 싶어합니다. 하나님까지도 내 것이라 할 수 있는 자리까지 가기를 이 마음은 고대하고 있습니다. 그런 마음을 가진 자는 하나님과 같이 있는 자입니다. 그런 마음을 가진 자는 하나님과 같이 있는 자입니다. 그런 마음을 가진 자는 비록 오늘에 살고 있지만 6천년 전의 하나님의 아들이요, 하나님과 같이 있는 자이기 때문에 역사노정의 모든 것은 그로 말미암아 다 승리의 조건으로 인정받을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마음기준을 세우지 못하게 하기 위해 사탄은 역사 노정을 통해 치열한 싸움을 벌여 나왔지만, 오늘날 그런 천주적인 심정을 가진 자 앞에서는 사탄이 쟁취했던 모든 것도 승리적인 것으로 나타나지 못하고 패자의 입장에서 항복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8-183
하나님과 함께 있고자 하는 자의 생활태도
그러므로 아버님의 마음을 가진 자나 아버님의 마음속에 있는 것을 상속받고자 하는 자는 역사노정의 어떠한 자도 그를 지배하지 못했습니다. 고통스러운 자리에도 하나님의 마음이 있는 것을 알고 그런 자리를 기뻐하며 가고, 만물 하나를 보더라도 귀중히 여기며, 어떠한 어려운 곡절에 부딪쳐도 거기에 하나님의 마음이 있는 것을 느끼는 사람은 하나님이 절대 모른다 하지 않으십니다. 그 사람은 하나님의 마음속에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 주의, 그런 이념이 천국의 이념입니다. 마음의 이념, 하늘의 이념이라는 겁니다.

우리는 싸우되 하나님의 마음을 중심삼고 싸워야 합니다. 어떠한 고통과 역경에 처해도 그 가운데서 기쁨을 느끼고 만물이 소원하는 해방을 위하여 싸워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러한 각오를 하고 나선다 할진대 하나님의 마음을 점령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점령한다면, 하나님의 이념세계도 점령할 수 있습니다. 이 땅 위에서 혹 뜻을 이루지 못하고 간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마음을 점령한다면, 그 이념세계가 이루어지는 날 동반할 수 있는 가치를 부여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똑똑히 알아야 합니다.

지금 이 시대는 어떠한 세계적인 이념, 혹은 우주적인 이념이 필요할 때입니다. 그러니 싸우는 데 있어서 자기를 위해 싸워서는 안 됩니다. 하늘과 땅과 만물 모두를 위해 싸워야 합니다. 그들이 모두 탄식권내에 있으며, 인간의 마음 터전에서 지내고자 하는 만물까지도 탄식하고 있으니, 이 탄식권에서 인류와 만물을 해방하는 해방군으로 나서서 싸워 이겨야 합니다. 그래야 최후의 싸움에서 승리자가 됩니다. 그것이 우리의 목표입니다. 그렇게 되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일터에 같이 있는 자요, 하나님의 마음속에 기억되는 자입니다.하나님의 일터와 하나님의 마음, 이 둘 중 어느 한 곳에라도 있지 못하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의 자리에 참석할 수 없습니다.

최후의 목적이 그런 이념에서 즐기는 것이 될는지 모르지만, 그 목적을 찾아나가서는 어떻게 할 것이뇨. 그 목적의 세계를 지배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자로 설 수 있을 것입니다. 아까 말한 바와 같이 우리의 몸은 하나님의 일터요, 우리의 마음은 하나님의 마음이 임재할 수 있는 터전입니다.그러니 우리의 몸과 마음은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최고 목적입니다.

8-184
우리는 어떤 곳에 있고자 하는가
그러면 우리는 어떤 곳에서 하나님과 같이 있기를 바라는고. 싸움의 세계가 아닙니다. 싸움이 끝난 후에 나타나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고로 아직까지 인류 앞에 천적인 사랑은 부여되지 않았습니다. 목적의 세계를 찾아나가는 싸움의 역사는 부여되었고 이념은 부여되었으나, 하나님의 영원불변의 사랑의 세계는 부여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를 신랑이라 하고 인류를 신부라 하여 그날을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탄식의 조건이 남아 있는 자리에서 사랑하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창조목적이 그렇게 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탄이 참소하는 자리에서 ‘오! 너희는 내 아들 딸이다’라고 하게끔 되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6천년 동안 고이고이 간직한 하나님의 사랑, 이것은 인류와 종교의 최고의 목표요 인간이 간절히 소망하는 심정의 본향이지만, 아직까지 인류 앞에 부여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부여받기 위해서 고대하는 것이 오늘날 주님을 만나 가지고 신랑 시부의 자리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어린양잔치예요.

이제 우리들은 원해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의 일터에 같이 있고 하나님의 마음 가운데 있는 동시에 하나님 가정의 식구로서 사랑을 중심삼고 살수 있기를 원해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을 중심삼고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고 나는 하나님을 사랑한다’ 할 수 있는 자리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지정의(知情意)를 겸비(兼備)하신 분이라 할진대 심정이 있을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6천년의 쓰라린 심정을 잊어버리고 환희의 심정으로 즐거워하며 사랑할 수 있는 한 사람을 고대하시고 싸워 나오십니다. 하나님이 무슨 이상을 걸어 놓고 싸운다면 하나님 자격이 없습니다.

이 세계가 아무리 이상세계가 되었다 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사막입니다. 그건 이상세계가 아니예요. 하나님은 인류의 마음을 고쳐서 하나님의 사랑의 자리까지 동참시키고자 하십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목적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이제 여러분은 이 싸움에서 최후의 승리를 거두어 하나님의 사랑권내에까지 나아가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님의 심정에, 하나님의 그 사랑의 마음에 있지 않는 한 천국은 여러분의 것이 될 수 없고 하나님도 여러분의 아버지가 될 수 없습니다. 또 예수와 성신도 여러분과 하등의 관계가 없게 돼요. 예수를 신랑이라 하고 우리를 신부라 하였거늘, 우리는 그 자리까지 나아가야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심정을 느끼며 이 싸움에서 만물을 품고 싶어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모든 고통을 참고 어떠한 역경도 참고 나가는 것은, 거기에 우리를 찾아오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붙들고 나설 때 하나님은 내 것이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 되시는 겁니다. 또 그 사랑을 중심삼고 여러분은 하나님의 것이 됩니다. 이리하여 인간을 중심삼은 사랑의 인연이 맺어지지 않는 한 하나님은 역사적인 한을 풀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럴 게 아니예요.

하나님께서 갖은 곡절을 거치시면서도 싸워 나오시는 목적은 무엇인가. 잃어버린 아들 딸을 찾아 세워 사탄 앞에 자랑하기 위해서입니다. 천사장 루시엘이 인간 앞에 자연굴복하여 그들의 심부름을 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인간이 천사장 루시엘에게 유린당하는 입장에 처해 있으니, 하나님은 그러한 인간들이 하나님의 사랑에 접하는 순간 사탄 마귀의 대장인 루시엘도 손을 들어 ‘영원한 승리의 왕자로다’ 하면서 인간에게 머리 숙여 항복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하시는 것입니다.

8-186
역사노정에서 유린당해 나오신 하나님
본래 인간은 하나님의 사랑 속에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 앞에 그러한 입장까지 부여하시고 싶었는데 아직까지 그러한 입장에 처한 아들 딸이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오늘날 세계가 갈 방향을 찾지 못하는 이 천지간에 하나님의 마음속에 기억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류를 이끌 수 있는 어떤 주의나 이념이 아직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고로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이 없는 동시에 하나님의 싸움을 책임질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슬픔입니다. 타락한 인류가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의 심정을 품고,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하나님의 일을 책임질 수 있는 자를 하나님이 찾으신다는 것입니다. 거꿀잡이입니다. 과거에는 물질을 제물로 하여 찾아 나오셨고 그 다음엔 아들을 제물로 하여 찾아 나오셨으나 그 다음엔 사랑을 통하여 찾아오십니다. 그때는 제물이 아닙니다. 그때는 마주 붙들고 우는 것입니다. 우리는 감사하며 눈물 흘릴 수 있는 그 시간을 맞아야 된다는 겁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은 우리 조상 아담을 대하실 때도 심정을 6천년 후로 제쳐놓고 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걸 알아야 합니다. 가인과 아벨로 하여금 제물을 드리게 한 때에도 심정을 제쳐놓은 후에 드리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노아 때로부터 모세 때, 예수 때를 거쳐 지금까지 하나님은 맺힌 심정을 앞에 내놓고, 그 마음을 앞에 내놓고 맨 뒤에서 싸워 나오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리워하십니다. 마음의 세계를, 또 심정의 세계를 그리워하십니다. 그래서 그 심정을, 그 마음을 앞에 내놓고 인류를 대해 나오시는 것입니다. 하늘은 이렇게 아무도 알지 못하는 때에 심정을 앞에 놓고, 마음을 앞에 놓고 나오셨으나 인간은 그것을 몰랐습니다.

그러면 인간이 하늘의 한을 해원하는 날은 어떠한 날이냐. 우리가 ‘하나님이시여, 이 전쟁 마당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알았습니다. 전쟁 마당에서 하나님이 저희를 사랑해 주신 것을 알았습니다’하며 하나님의 마음을 붙들고 싸움터에서 원수를 굴복시켜 승리하는 날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모습이 나타나기를 고대하시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이 나타나지 않으면 사탄이 조롱합니다. 하나님이 6천년 동안 마음과 심정을 다 기울인 이 싸움판에서 승리할 수 없어요. ‘하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나오지 않았는데 당신이 어떻게 승리할 수 있습니까?’하고 사탄이 참소한다는 것입니다. 마음을 다 기울이시고 심정을 다해 나오시는 하나님은 이와 같이 인류역사의 전쟁노정 위에서 엉클어지고 유린당해 나오셨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나 어느 누구에게 사정할 수 없고 가르쳐 줄 수도 없는 사정에 처한 하나님의 곡절을 어느 한날 땅 위의 인간들이 알아야만 영계의 싸움이 지상에서 종결되는 것입니다. 만일 그러한 하늘의 작전을 모르고 땅도 하늘 것이요 심정도 하늘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땅이 어떻게 하늘과 연결될 수있겠습니까? 없습니다. 그런데 인간 자신은 모르지만 인간의 심정과 마음이 변하지 않는 기준에 서 있기 때문에 그 변하지 않는 심정과 마음을 중심삼고 싸움터에 나서서 승리하는 자가 있다 할진대, 그는 하나님이 이기지 못한 싸움에서 이겼다는 영광을 얻을 것이며, 하나님은 그에게 ‘내게 있는 하늘과 땅의 모든 것, 내 사랑, 내 모든 것까지도 네게 주겠다’ 하실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소원이요 인간들의 소원입니다. 그날을 맞이하게 될 때 우리에게는 영원한 행복이 옵니다. 그날에야 비로소 영원한 자유와 영원한 평화를 누릴 수 있습니다. 사랑에는 두 주인이 있을 수 없습니다. 인간만이 점령할 수 있는 기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사랑을 중심삼고 자유의 노래를 부르는 자에게는 억천만 사탄도 참소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있어야 합니다. 원래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계셨습니다. 우리의 마음과 같이 계셨습니다. 또한 우리의 심정과 함께 계셨습니다. 그러나 인류는 하나님의 일터에서 하나님 마음, 하나님의 심정을 배반했습니다. 그러나 하늘은 그러한 인간의 후손들을 버리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심정을 알아줄 날을 고대하시며 무지한 인간들을 끌고 끌어 갈 길을 찾게 하기 위해 몰아내고 계십니다.

이런 것을 알았을진대, 우리가 대천지를 바라볼 때에도 먼저 지금까지 역사노정에서 유린당하신 하나님의 마음을 불러 일으켜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역사노정에서 유린당하신 하나님의 심정을 불러 일으켜야 되겠습니다.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의 한스런 싸움의 노정에서 우리 선조들이 믿지 못하고 뜻을 감당하지 못하여 실패한 원한을 불러 일으켜 우리 일신이 책임지고 나서서 ‘하나님, 저의 전체를 내세워서 사탄과 싸워 승리하겠나이다. 하나님의 일에 있어서, 하나님의 마음에 있어서, 하나님의 심정에 있어서 유린당한 모든 것을 저로 말미암아 탕감하시옵소서’하게 될 때에 우리는 비록 역사적인 종말기에 세워졌을지언정 역사 전체와 시대 전체를 대표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몇 천년 전 아담보다도 노아보다도 아브라함이나 모세보다도 그리고 예수보다도 더한 승리의 모습으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8-188
인생의 마지막 자리
오늘 몰리고 몰려 이 자리에 나온 여러분, 무엇하러 왔습니까? 우리에게 단 하나 소원이 있다 할진대 그것은 아버님과 함께 있는 것입니다. 세계는 바야흐로 혼란한 가운데 방향을 잃어버리고 중심까지 잃어버린 판국에 우리만이라도 하나님의 일터에, 하나님의 마음에, 하나님의 심정에 같이 있고자 하여 이 자리에 찾아온 것입니다. 그러한 것을 느낄 수 있고, 그러한 각오를 할 수 있고, 그런 심정으로 세계를 바라볼 수 있는 자리를 찾는 인간이 되어 있다 할진대, 더 무엇을 생각하겠습니까? 그것이 인생에 있어서 마지막 자리라는 것입니다. 그 자리는 하나님도 슬픔의 눈물을 거두시고 기쁨의 눈물을 흘리실 수 있는 장소요, 인류역사에서 흘려온 비애의 눈물을 거두시고 환희의 눈물, 승리의 눈물, 영광의 눈물을 떨어뜨릴 수 있는 자리입니다.

여러분과 내가 그러한 자리를 그리워하며, 한스러운 눈물 말고 환희와 기쁨의 눈물을 흘리고, 아버지의 심정과 아버지의 마음을 노래할 수 있는 승리의 아들 딸이 되어야겠습니다. 그리하여 ‘이제 내가 승리했으니 아버님은 내 것이야! 사탄이 관여할 수 없어. 아버지의 사랑도 내 것이야! 사탄도 방해할 수 없어. 아버지의 일도 나의 일이야! 사탄도 꼼짝 못해’할 수 있는 자가 되어야만, 천지에 싸움이 끝나고 행복의 문이 열릴 것이며 자유와 평화의 동산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똑똑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8-189
기 도
오라 하신 한스러운 복귀의 노정이 슬픈 노정임을 알았사옵고, 심정에 사무친 눈물을 그칠 수 없는 눈물의 경지임을 알았사옵니다. 핍박과 외로움에 몰리어 몸 둘 곳이 없는 처참한 자리에서도 자기를 변명할 수 없는 인간임을 알았사옵니다.

슬픈 역사, 슬픈 아버지의 심정, 슬픈 아버지의 마음을 통할 수 있는 역사적인 기쁨의 한날은 언제나 오겠나이까? 그날이 오기까지에는 많은 사람이 필요한 것이 아니오라, 한 사람, 즉 나로부터 그리고 여기에 모인 이들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세계는 깊은 잠 가운데 파묻혀 있사오며 사망의 물결에 휩쓸리고 있사옵니다. 그것을 보는 저희들이 밤이 세든 날이 가든 개의치 않고, 먹거나 굶거나 개의치 않고, 어려운 환경이나 염치에 개의치 않고, 그러한 세계를 위하여 오늘도 내일도 하늘의 정열을 퍼붓는 투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정병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우리만이라도 이 길을 사수하지 않으면 안 되겠사오니, 적탄이 비오듯 쏟아지는 싸움터에서 몸부림치다 쓰러지는 한이 있다 할지라도, 그 정열로 마음을 세워 하늘과 인연맺고 나갈 수 있는 아들 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고, 오늘 이 자리에 모인 당신의 아들 딸들만이라도, 우리만이라도 아버지와 함께 있고 싶어하는 간절한 마음을 갖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들이 6천년 동안 아버님과 더불어 싸워 나온 아담의 모습을 갖춘 싸움의 대표자가 되게 하여 주시옵고, 아버님의 마음과 아버님의 심정을 통하여 하늘과 인연을 맺고 ‘하늘이 내 것이야, 아버지가 내 것이야, 천지의 모든 것이 다 내 것이야’하며 ‘아버지, 기뻐하십시오’ 하고 위로할 수 있고 스스로도 기뻐할 수 있는 그 한 자리까지 저희들을 이끌어 주시옵소서.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저희들은 그러한 자리에 있고 싶어하오니 그 자리까지 이끌어 주시옵소서. 그 자리까지 나아가는 과정이 어렵다 할지라도 그 나아가는 과정에서 쓰러지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승리의 한날이 기필코 있을 것이오니 그날을 바라보고 변치 않는 영광의 세계, 심정의 세계를 향하여 가는 그 목적과 이념권내로 자기를 흡수시킬 줄 아는 당신의 아들 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민족과 세계를 책임지고 그 자리까지 끌고 갈 줄 아는 아버지의 아들 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이러한 자는 역사적인 아버님, 시대적인 아버님, 미래적인 아버님과 더불어 있을 수 있는 아들 딸임을 알고 있사오니, 그런 마음을 가지고 싸움에 있어서 승리자가 되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아버지,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옵나이다. 영원한 아버지, 축복의 손길을 거두지 마시옵소서.

주의 이름으로 기도하였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