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40 to 8-163: 모든 것은 선악의 싸움터를 넘어야 한다

모든 것은 선악의 싸움터를 넘어야 한다
1959.12.06 (일), 한국 전본부교회

8-140
모든 것은 선악의 싸움터를 넘어야 한다
고린도전서 15:20-28

[기 도]

아버님! 저희들을 긍휼히 보시옵소서. 역사노정에 아버님이 원하시는 한 사람이 필요했던 것을 알았사옵고, 한 가정이 필요했던 것도 알았사오며, 한 민족, 한 국가, 한 세계를 목표로 아버님께서는 친히 섭리해 나오신다는 것을 알았사옵나이다. 그러나 이 땅 위에는 아버지의 영원한 사랑을 통할 수 있는 참다운 한 사람이 없사옵고, 가정도 없사오며, 민족도, 국가도, 세계도 없사옵나이다.

이런 것들을 찾기 위하여 지금까지 섭리해 나오신 아버님의 수고 앞에 이 땅은 소원하시던 환경의 터전이 되지 못하고 실적을 갖춘 인류가 못 된 것을 생각할 때, 진정 저희들은 아버지 앞에 얼굴을 들 수 없는 죄악의 후예인 것을 자인하지 않을 수 없사옵나이다.

원하옵건대는, 이 몸 마음이 당신께서 바라시는 한 아들딸로 세워지는 그날이 심히도 그립사옵고, 하나의 가정을 찾으시려는 아버지 앞에 그와 같은 자리에 나아가기를 심히도 원하옵나이다. 저희가 이러하거든 아버지의 마음은 얼마나 더 간절하시겠사옵니까?

아버님께서는 지금까지 바라시는 한 존재가 없는 가운데서 6천년이라는 기나긴 세월 동안 하늘 앞에 염려를 남긴 이 인류를 다시 찾기 위하여 싸워 나오셨사옵니다. 억천만년이 걸리는 한이 있다 할지라도 참다운 아들딸을 찾기 위해 허덕이셔야 할 아버지이심을 알게 될 때, 하늘 앞에 너무나 불충했던 저희들임을 직고(直告)하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아버지, 이런 저희들을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땅 위에는 수많은 인류가 살고 있사오나 당신의 아들이라 할 수 있는 자가 누구이며, 당신의 딸이라고 할 수 있는 자가 누구이옵니까? 당신의 아들 딸을 위하여 지었다 할 수 있는 만물이 있사옵니까? 억울하신 아버지, 몰리고 몰리는 슬프고 외로운 자리에 계신 아버지를 저희들만이라도 알아 드릴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이 여기에 나온 것은 땅 위의 어떤 영광을 바라고 나온 것이 아니라, 슬프신 아버지의 아들 딸이 되기 위함이옵고, 억울한 하늘 가정의 식구가 되기 위함이옵니다. 그런 연고로 저희의 가는 길이 슬프고 억울하고 외로운 길이며, 훼방받는 길, 몰림받는 길이라 할지라도, 아버지께서 역사노정을 그렇게 오셨기에, 이런 길은 아버지의 아들 딸이 되기 위한 입장에 있는 저희들로서는 응당 가야 할 복귀노정인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먼저는 아버지의 것으로 드릴 수 있는 한날, 저희에게 속한 일체를 아버지 것으로 드릴 수 있는 한날, 저희가 살고 있는 이 세계가 아버지의 세계로 바뀔 수 있는 한날을 심히도 그리워하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고, 그 한날까지 저희의 모든 것을 희생하여서라도, 싸우고 또 싸워서라도, 쓰러지고 또 쓰러지더라도 싸움의 대열에 서서 아버지와 더불어 참으며 싸워 나갈 줄 아는 아들딸들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 날 무슨 말씀을 하오리까? 아버님, 저희 자체들로서는 아버지 앞에 드릴 아무 것도 없사옵니다. 아버지를 바라볼 수 있는 그 무엇도 준비하지 못한 염치없는 저희들이오나 저희들의 주위에 원수들이 있는 연고로, 이를 깨물고라도 아버지를 부르지 않으면 안 될 입장에 있사오니, 아버지 긍휼히 보시옵소서. 이 한날 아버지시여, 새로운 말씀을 허락하여 주시옵고 권고의 말씀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이 한날에 허락하신 은사를 붙들고 하늘의 아들 딸의 위신을 세우고, 체면을 세울 줄 아는 저희들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더우기 갈 바를 알지 못하고 허덕이는 수많은 인류를 축복하여 주시옵고, 불쌍한 민족을 축복하여 주시옵고, 불쌍한 교단을 축복하여 주시옵고, 몰림의 길에서 쫓기고 있는 외로운 식구들을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심정을 통하여 아버지의 영광을 노래할 수 있으며, 아버지의 사정을 통하여 사탄과의 싸움터에 나설 수 있는 아들 딸이 이 천지간에 많이 나타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늘도 이 일을 위하여 쉬지 않고 협조하신다는 것을 아오니, 하늘 땅이 보조를 맞추어 승리함으로 말미암아 복귀의 한날을 맞이하여 새 천지를 세울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바라오며, 남아진 모든 것을 주관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제 말씀을 전하고자 하오니 친히 주관하여 주시옵고, 전하는 자의 모든 것과 받는 자의 모든 것이 아버지의 심정을 통하여 얼크러지게 하여 주시옵고, 어떠한 주의 주장, 어떠한 관념, 자기의 어떠한 의식을 중심삼고 하늘 앞에 서지 말게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어린 아이와 같은 마음으로, 본심이 우러나는 심정으로 아버지의 현현하심을 노래하고 나타나시는 아버지를 환영할 수 있는 화동의 심정터가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릴 때, 주님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8-142
말 씀
이 시간에는 ‘모든 것은 선악의 싸움터를 넘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모든 만물은 선악의 싸움터를 넘어서야 한다’ 이러한 제목을 가지고 말씀드리겠습니다.

8-142
타락인간의 실상과 타락권(墮落圈)을 벗어나기 위한 조건
우리들은 타락한 조상의 후손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타락했다는 말을 인정한다면, 자기 자신이 어떤 영광의 조건이나 가치적인 무슨 조건을 갖고 있다 하여도 그것 역시 타락권내에 속한 것임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 자신들이 마음으로 혹은 몸으로 느끼는 행복감, 혹은 희망에 넘치는 소망을 갖고 있다 할지라도 그것 역시 타락권내의 소망이요, 타락권내의 행복이라는 것입니다. 생활을 영위해 나가는 우리들 자체도 역시 타락권내에 머물러 있는 자체인 것을 우리는 부정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생명이 이러하고 우리의 이념과 행복의 요소가 이러한 입장에 처해 있기에, 이 환경에서 그냥 그대로 있어 가지고는 타락의 한을 벗어버렸다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냥 이대로의 나 자체를 가지고 행복된 세계 혹은 이상세계의 ‘나’라고 자처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러기에 인간은 너나할것 없이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방황하고 또 방황하면서 역사를 엮어나오고 있습니다. 때로는 이렇게 몰리고 때로는 저렇게 몰리고, 이렇게 찢기고 저렇게 밟히면서 피로 물들이는 처참한 역사노정을 거쳐오는 것입니다.

이렇게나마 걸어나오는 인류의 행로, 혹은 역사의 이 흐름은 어디로 가기 위해 이렇게 흘러가는고? 한 마디로 타락으로 말미암은 이 한스러운 역사와 세계를 넘어서기 위해서입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행복스럽게 살고 있다고 자부해도 타락권내에 살고 있습니다. 본래의 생명은 그렇게 살기를 원치 않습니다. 그런고로 이 세계에 살고 있는 인간이나 피조만물도 어떻게 하면 이 세계를 넘어설 수 있을 것인고 하며 이 고통권내에서 목숨을 걸고 애쓰면서 뒤넘이쳐 나가고 있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인 것을 우리들은 똑똑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인간에게 행복이 있고 어떤 이상이 있고 참다운 생명의 기쁨이 있다 할진대, 그것은 언제 이루어질 것인고? 오늘날의 이 타락권내의 행복이나 이상, 혹은 기쁨이 아니라 타락권을 밟고 올라서서 ‘나는 과연 하늘과 땅앞에 자신할 수 있는 생명, 영원한 생명을 얻었으며, 영원한 행복의 동산, 영원한 이상동산에 섰다’ 할 수 있는 그 한날을 맞은 후에야 참된 행복, 참된 이상세계가 시작된다고 우리는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타락의 구렁텅이를 메우고 밟고 넘어가야 할 운명에 놓여 있는 인간이기에, 여러분의 마음은 이 시간도 달리고 있습니다. 이 시간 여러분의 가정도 달리고 있고 이 민족도 달리고 있으며,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와 천주까지도 달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디를 향하여 달리고 있는가. 한스러운 타락권을 박차고 넘어서기 위하여 달리고 있는 우리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하나님이 계시다 할진대 하나님의 목적은 무엇이며, 선이 있다 할진대 선의 목적은 무엇이뇨? 역사상의 선한 사람들이 이 땅에 와서 희생을 당하고 간 목적이 무엇이뇨? 달리고 있는 이 인류가 이 고개를 빨리 넘게 하기 위한 것임을 우리들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인간에게 그 고개를 넘게 하려니 하나님께서는 선한 개인을 보내서 선한 환경을 개척하게 하시고, 선한 이념을 세워 선한 국가 형태를 갖추어서 선한 세계로 이끄시는 섭리를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오늘날의 세계는 최후로 하나의 판결을 짓고 넘어가야 할 운명에 처해 있습니다. 세계가 그러하고, 이 나라가 그러하고, 우리의 가정이 그러하며, 우리들 자신이 그러합니다. 또한 이와 더불어 하늘도 다시 넘어가야 할 운명에 있는 때인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넘어가는 데는 어떻게 넘어갈 것인고? 웃고 넘어갈 수는 없습니다. 얼크러진 끈을 끊고야 넘어설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도 한꺼번에 넘어갈 수 없습니다. 한 사람씩 넘어가야 돼요. 그렇게 넘어선 자체들이 모여 무리를 이루어서 하나의 가정을, 하나의 민족을, 하나의 국가형태를, 하나의 세계를 세우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것이 결론입니다.

여기에 나온 여러분들, 자신에게 자랑할 그 무엇이 있습니까? 생명을 걸고 싸울 그 무엇을 갖고 있습니까? 모두 타락권내의 것일진대 자랑할 자신의 가치가 크면 클수록 큰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매인 것이 크면 클수록 크게 걸리는 입장에 선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도의 길을 가는 사람들은 다 끊어버리고 가는 것입니다. 그들의 목적이 나라를 구하고 세계를 구하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어찌하여 개인을 끊어버리고 국가를 끊어버리고 세계를 끊어버리고 가는가. 이것이 도의 길을 가는 사람들의 모순된 행로입니다. 그들은 넘어가야 할 한 때가 있는 것을 알기에, 단지 그 목적을 위해 가는 것입니다.

넘어가는 데는 치고 넘어가야 합니다. 왜? 이 세상은 청산되어야 할 세상이기 때문에 선한 입장에서 쳐야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도의 길은 치고 가는 길입니다.

끝날은 우리의 목전에 다가오고 있습니다. 최후의 심판의 한날이 다가오고 있거늘, 그 한 순간을 맞아야 할 우리들은 어떤 입장에 서야 될 것인고? 인간 세상에서 자랑하는 사랑, 자랑하는 생명, 자랑하는 이념을 대하여 당당히 비웃고 나설 수 없다 할진대, 새로운 승리의 용자로서 사탄의 권세를 박차고 넘어설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역사는 그곳을 향하여 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그것을 넘어가야 되고 우리의 가정도 넘어가야 되고 이 사회, 나라, 이 세계, 천상에 있는 수많은 영인(靈人)들까지도 넘어가야 됩니다. 세상만이 넘어가는 것이 아니고 세상이 넘어가는 동시에 하나님도 넘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8-145
선악의 싸움의 조건이 남아 있는 모든 존재
타락한 인간을 대하여 섭리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고통을 당하면 같이 고통스러워하시고, 인간이 억울함을 당하면 같이 억울해 하십니다. 처지와 입장은 다를지라도 내적 심정은 같은 연고로 하늘도 넘어가야 하고 땅도 넘어가야 됩니다. 이러한 운명에 처해 있는 인류와 하늘이 이것을 넘기 위하여 합동작전으로 허덕여 나오는 것이 오늘날 우리의 신앙노정입니다. 합동작전을 펴기 위한 터전이 오늘날의 종교입니다. 그러니 오늘날의 종교인들은 이 작전에서 승리하여야 할 책임을 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담이 타락한 이후 이 끝날까지는 어떠한 기간이뇨? 이 기간은 우리가 바라는 기간이 아닙니다. 이 기간을 빨리빨리 단축시키고 해결지어야 합니다. 쓸데없는 기간이예요. 그러기에 양심을 가진 자는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참을 바라는 자는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이러한 세상이 어서어서 지나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이 흑암의 세상, 공포에 휩쓸려 고난 가운데서 허덕이는 이 세상이 어서 지나가기를 27억 인류는 너나할 것없이 고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류만이 그런 것이 아니라 하늘도 그렇습니다. 하늘도 고대하고 인류도 고대하고 있기 때문에, 이 세계를 청산하고 넘어가게 하는 것이 도(道)입니다. 빨리 이기고 넘어가게 하는 것이 오늘날 종교가 해야 할 일이며, 여기에 방해되는 무엇이 있다 할진대, 종교인은 이것을 공격하고 무찌르는 일을 단행해야만 할 것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책임을 지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오관(五官)을 통하여 이 세계의 만상(萬象)을 바라보고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현상을 바라보기도 하는데, 그 보여지는 만물을 바라볼 때 우리는 무엇을 느껴야 될 것이뇨? 어떤 존재든 선악의 싸움터라는 것을 느껴야 됩니다. 선과 악의 싸움의 노정을 거쳐야 되는 것을 느껴야 돼요.

하나님은 이 땅과 하늘을 찾기를 원하되 이 땅은 그냥 그대로 찾을 수 없습니다. 왜? 일대 청산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땅의 인류는 하나님 앞으로 한꺼번에 상속되고 싶으되 그냥 그대로는 되지 않습니다. 왜? 더럽혀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청산해야 됩니다. 이 땅에서 자라고 있는 풀 한 포기도 선악의 싸움터였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또한 여러분이 입고 있는 옷 한 벌에도 역사적인 선악의 싸움의 흔적이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보고 듣고 느껴지는 모든 것, 또 이 땅의 조그마한 물건 하나까지도 하나님과 사탄이 대결하는 그날부터 선악의 싸움터에서 소유가 좌우되게 되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구약시대에는 하나님께서 제물을 통하여 물질을 걸어 놓고 싸우셨습니다. 그 물질은 만물을 대신한 것입니다. 만물이 싸움터가 되는 날부터 하나님께서는 그 만물을 붙들고 사탄의 참소를 받지 않을 한날을 소원하셨으나, 아직까지 그날을 맞지 못하셨습니다. 그 다음에 사람을 싸움터로 세우셨는데, 그 대표자가 하나님의 아들 예수였습니다. 예수를 걸어 놓고 하나님은 사탄과 싸우셨던 것입니다. 거기에서 승리하여 예수를 하늘편으로 이끄실 때에 하나님은 사탄의 참소를 받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렇듯 만물로부터 오늘날까지 왔다간 인류 전체는 선악의 싸움터에서 좌우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우리 몸도 그러하고 우리의 마음도 그러하며 우리의 심정도 그렇습니다. 지금 아무리 좋은 무엇을 가졌다 할지라도 거기에는 사탄이 참소할 수 있는 조건이 있습니다. 우리 자신의 몸과 마음이 아무리 귀하다 해도 그것은 아직까지 사탄이 참소할 수 있는 싸움터에 놓여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기에 철두철미한 관(觀)을 세워 놓고 눈에 보이는 만상에는 지금 이 시간에는 선악의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가 잡는 하나의 물건에도 선악의 싸움의 조건이 있어서 지금 이 시간에도 싸우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소원이 무엇을 것인고? 지으신 피조만물 전부가 이러한 싸움의 조건에 걸려 있으니, 이러한 전체를 넘겨 놓고 사탄이 참소하지 못하고 돌아서는 한날을 보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싸워 나오신 목적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아직까지 그날을 보지 못하셨습니다.

8-147
하나님의 소원과 복귀의 원칙
여러분은 땅 위에서 하늘을 대신한 책임을 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책임을 짊어진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될 것인고? 선악의 조건에 걸려 있는 만물을 끌어다가 사탄의 요소를 몰아내고 하나님 앞에 돌려 놓아야 합니다. 인간 복귀를 하기 전에 만물 복귀부터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지으시기에 앞서 먼저 만물을 지으셨습니다. 그러므로 내 한 자체가 나서기 전에 내게 있는 전부를 사탄 앞에 내 놓고 싸워 승리하여, 취한 만물을 하나님 앞에 세워 놓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는 물질을 갖고 싸워 나오고 있습니다.

오늘날 도를 믿고 기독교를 위주로 한 모든 민주진영은 사탄과 싸워 이 세계의 모든 경제력을 하늘편으로 돌려 놓아야 합니다. 원칙이 그렇습니다. 하늘편으로 돌려 놓아야 해요. 그러지 못하면 사탄에게 들이 맞습니다. 사탄에게 끌려갑니다. 그러면 경제력을 하늘편으로 돌려 놓고는 무얼 할 것이냐. 선한 사람에게 분배해야 되는 것입니다.

물질을 하나님편으로 돌려 놓으려면 사탄이 관계될 수 있는 모든 조건을 끊어 놓아야 됩니다. 그런 다음에는 내 몸을 돌려야 하는데, 이 몸은 마음을 위주로 하여야만 돌릴 수 있습니다. 이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을 닮아가지고 본연의 심정을 통할 수 있는 기준에 서지 않으면 몸을 돌려 놓을 수 없는 것입니다. 사탄이 몸을 붙들고 있기 때문에, 마음을 중심삼고 이 몸을 돌려 놓을 수 있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지금, 사람들은 이념을 중심삼고 사람을 빼앗기 위한 싸움, 몸뚱이를 빼앗기 위한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이 이념은 정신을 상징하는 것이요 마음의 세계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는 온 세계를 품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이런 마음, 즉 이념을 중심삼고 사람 빼앗기 싸움을 하고 있어요.

이러한 때 우리가 사탄으로부터 몸을 빼앗아 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이뇨? 사탄이 갖지 못한 이념을 갖고 나타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변하는 과정에서는 어디까지나 사탄이 침범할 수 있습니다. 변화 발전하여 다른 형태를 갖추려 하는 것은 변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사탄이 간섭할 수 있는 것입니다. 변해 나가는 과정에서는 어떠한 것도 사탄의 침범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오늘날 사회에서 어떠한 선악의 기준을 정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선악의 기준은 각 국가나 민족마다 다릅니다. 그래서 이 선악의 기준은 영원히 변치 않는 주권시대를 맞이하기 위해 자꾸 변해 가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 인간이 사탄세계에 있는 몸을 빼앗아 하늘 앞에 드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변할래야 변할 수 없고 동요될래야 동요될 수 없는 영원한 하나의 이념을 붙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악한 세계에 그 이념을 세워 놓고 사람을 빼앗아 올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세계에는 변할 수 없는 하나의 이념이 없습니다. 그런고로 변할 수 있는 마음의 바탕을, 움직이는 이 마음을 변할 수 없는 이념에 접붙이기 전에는 이 몸뚱이가 돌려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왜? 이 몸뚱이를 사탄이 지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탄이 침범하는 자리는 변할 가능성이 있는 자리입니다. 변할 수 있는 자리에 사탄이 침범할 조건이 있다는 것입니다.

만일에 양심이 사모하는 이념이 하늘 땅이 변해도 변할 수 없는 이념이라면 마음은 돌아갑니다. 마음은 돌아가요.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날 인류가 물질을 하늘편으로 끌어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민주진영에 변할 수 없는 이념이 있어서, 세계가 그 이념을 중심삼고 돌아가야 가능합니다. 그럴 때 우리의 몸뚱이도 하늘 앞에 찾아질 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인류는 물질을 걸어 놓고 싸워왔습니다. 몸뚱이를 걸어 놓고는 하늘 땅을 대신한 양심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싸웠습니다. 그런데 다음에는 변하지 않는 마음을 중심삼고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심정을 통할수 있는 심정을 소유해야 최후의 결판이 납니다.

물질을 찾고 몸을 찾고 마음을 찾고 그 다음에 심정을 찾아야 이 땅은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잘났다고 해도 그러한 조건에 걸려 있습니다. 틀림없이.

그렇기 때문에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주의가 나와 있다 해도, 인간들이 그 주의를 중심삼고 죽음의 자리를 체휼할 수 있고 마음 세계까지 좌우하는 이념도 지배할 수 없는, 심정이 응결된 한 장소를 갖춰 놓지 않는 한, 싸움은 끝나지 않습니다. 선악의 싸움은 끝나지 않아요. 또한, 우리가 사탄으로부터 물질을 빼앗아 하나님 앞에 돌려드리고 몸을 빼앗아 돌려드리고 마음을 빼앗아 돌려드려야 하는데, 이 마음을 돌려드리기 위해서는 아무리 변하지 않는 이념이 있다 해도 그저 좋아해서만은 안 됩니다. 그 이념 깊이 스며있는 심정문제에 들어가 심정이 통하는 자리에 서야, 하나님이자 나요 나자 하나님이요, 하나님의 것이자 내 것이요 내 것이자 하나님의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심정을 연결시킬 때에 지금까지 드려온 물질 몸 마음 전부가 하나로 통일되어 하나님 앞에 최고의 것으로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제물을 드리는 것입니다.

8-149
나의 원수는 무엇이며 선악은 어떻게 구별하는가
여러분은 원수를 갖고 있습니다. 여러분 앞에 보여지는 물질이 원수요, 여러분의 몸이 원수입니다. 이것들이 사탄의 제물이 될 수 있는 조건이예요.

죄가 무엇입니까? 사탄이 침범할 수 있는 조건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왔다 갔다 하는 것도 원수입니다. 한 번 선이면 선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악한 자리에 들어간 사람은 마음이 자꾸 돌아섭니다. 가야 할텐데 가야 할텐데 하면서도 하루에 몇 번씩 변해요.

선과 악의 구별은 단번에 할 수 있습니다. 악한 자리에 있으면 마음이 자꾸 그 자리를 떠나려고 합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변하는 것은 악이예요. 변하지 않는 것이 선입니다. 변하는 세계에서 그래도 덜 변하는 것이 하늘 앞에 가까운 것입니다. 그러니 변하는 이 마음, 이 원수를 물리쳐야 됩니다. 변할 수 있는 이념이 나오면 그 이념도 쳐부숴야 됩니다.

어떠한 종족을 중심삼고, 어떠한 민족을 중심삼고, 어떠한 종교를 중심삼고 나왔든지 그것이 본연의 양심과 심정을 규합하여 나온 천륜, 혹은 자연의 궤도에 의해 변하지 않는 형태로 움직일 수 있는 그때에야 비로소 인류는 이상세계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물질이 원수입니다. 이 몸뚱이가 원수요, 이 마음이 원수요, 이 심정이 원수입니다. 왜 자식이 부모를 좋아하는가. 자식을 대하는 부모의 마음이 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죽어도 변하지 않기 때문에 좋아하는 것입니다. 하늘을 왜 좋아하느냐. 어떠한 곡절에도 하늘은 변하지 않기에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변하지 않는 것을 최고로서 나타납니다. 보물도 그렇지 않아요? 그러니 변할 수 없는 것, 변하지 않는 자체가 나타나야 됩니다.

여러분이 갖고 있는 모든 것은 원수세계의 이용도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도인들은 물질을 치고, 몸뚱이를 치고, 자기의 욕망을 치고, 자기의 심정을 치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면서도 어느 한 때에 더 큰 선한 물건, 더 큰 선한 몸뚱이, 더 큰 선한 양심, 더 큰 선한 심정을 찾아야겠다는 목적이 있기 때문에 도인들은 그것을 향해 달려나가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탕감복귀역사라고 합니다.

8-150
인류가 해야 할 최후의 일
그러면 최후의 날, 끝날이라고 하는 이때에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이뇨? 청산할 곳으로 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물질아, 내 앞에 나타나 네 권한을 자랑해 보아라, 나하고 싸우자’하며 일시에 쳐버릴 수 있는 자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몸을 복귀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 몸이 머물수 있어요. 이 몸뚱이가 하늘 땅이 변해도 변할 수 없는 이념에 사무쳐 마음 앞에 굴복할 수 있어야 됩니다. 하나님의 심정과 인류가 가진 근본적인 심정이 통할 수 있는 변치 않는 심정의 한 핵심이 벌어져야 사탄은 보따리를 싸가지고 갑니다. 보따리를 싸가지고 간다는 것입니다.

사실 지금 정적인 출발지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본연의 심정은 하늘에 있고 혈통은 사탄 것이기 때문에, 이 사탄의 혈통을 끊기 위해 하늘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어디 가서 귀결될 것인가. 심정에 들어가서 귀결됩니다. 이념이 최고로 추구하는 목적은 무엇이뇨. 이념을 세운 목적이 무엇이뇨.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이 오늘날 전세계에 널려 있는 양심을 가진 사람이나 신앙을 하는 사람들이 걸어나가야 할 최후의 판가리 길입니다.

이런 견지에서 하나님을 바라볼 때 하나님은 가련합니다. 6천년 동안 싸워나왔지만 오늘날 하나님의 심정을 넘어설 수 있는 한 사람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하나님은 참으로 불쌍하십니다. 6천년 동안 한 몸뚱이를 찾아 나오셨으나 하나님의 심정을 넘어선 몸뚱이가 어디 있습니까? 하나님은 불쌍해요. 이념을 세우기 위하여 수고하셨지만 하나님의 심정을 중심삼은 이념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이 세계가 요 모양 요 꼴입니다.

이념과 우리 몸뚱이와 만물이 하나님의 심정에 접붙여져 가지고 정리되는 그 순간에 본연의 위치는 결정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물질을 바라볼 때, ‘역사적인 수많은 선한 사람들의 피를 농락한 이 물질아’하며 원통한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자신의 몸뚱이를 바라볼 때는 ‘하늘의 신음을 자아낸 이 몸뚱이야’ 마음의 움직임을 살펴볼 때는 ‘하나님의 심정을 외면한 마음아’하는 한스러움을 느껴야 됩니다. 지금이 그래야 할 때입니다. 이럴 수 있는 곳이 하나님의 최후의 목적지이기 때문에 여기서는 두 주인을 섬길 수 없습니다.

이런 것을 우리가 인정한다 할진대, 어떤 이념권내에 들어간다고 할 때에는 물질도 문제될 수 없고 죽는 것도 문제될 수 없다고 하는 이념권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러한 이념이 참이념인 것입니다. 어떠한 이상주의가 있다 할진대, 그 주의를 위해서라면 ‘물질이 문제가 아니요, 억천만 금은보화가 문제가 아니다. 이 몸뚱이 하나 죽은 것쯤은 문제도 안 된다’고 할 수 있는 주의라야 합니다.

그 이념 때문에 죽는다고 해서 억울해 하고 분해 할 것이 아니라 기뻐하면서 ‘당연히 그래야지’ 할 수 있는 이념, 이러한 이념이 이 땅 위에 나와야 해요. 기독교가 놀라운 것은 그 때문입니다. 그들이 예수를 붙든 순간에는 오직 예수뿐입니다. 아무것도 개의치 않습니다. 예수를 붙들고 가는 길에서는 죽음도 개의치 않습니다. 문제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세워 놓으신 이상은 양심의 이념입니다. 이제는 이 양심의 이념을 넘어서 심정의 기준을 세워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께서는 ‘나는 신랑이요, 너희는 신부라’ 하시고 양심의 다리를 놓아가지고 심정의 세계에까지 연결시키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끝날은 어떤 때이뇨? 하나님의 아들 예수와 인간의 심정이 연결되는 때입니다. 그러니 온 세계 인류는 예수의 심정에 접붙여져야 됩니다. 그렇게 되면 예수께서 ‘너희는 하나님의 아들이요 나는 너희의 신랑이요 너희는 나의 신부다’ 하실 수 있습니다. 왜 그런가. 신부를 찾는 때에는 그것이 세계의 그 어떤 것보다 낫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이념은 세계를 품기 위한 것이로되 심정은 하나님과 전체를 품기 위한 것입니다. 이념이라는 것은 대상세계를 품기 위한 것이요 심정은 주체와 대상을 품는 것입니다. 그러니 심정세계에서 비로소 통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오늘날 우리는 도를 종결짓고 넘어가야 됩니다. 역사의 흐름을 보아 논리적인 추리를 하여 보면 반드시 그래야 되는데, 그러한 입장에서 전체를 대표하여 나타난 것이 기독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는 세계적인 종교입니다. 그러나 이 기독교에 한 단계 다시 혁명해야 할 문제가 있습니다. 기독교가 양심적인 이념의 기준에서만 허덕인다면 망합니다. 깨져나가요. 기독교가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심정을 표방하고 움직이지 못하면 오늘날 민주진영이 갈 길을 잃어버리고 말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통일교회는 그러한 면을 지향해 나가는 것입니다.

심정을 통하는 자리에서는 하나님 앞에 전체가 자녀요, 전체가 신랑 신부요, 전체가 형제자매입니다. 그러한 권내에 들어가게 될 때 우리는 식구라는 명사를 세울 수 있습니다. 그러한 한 식구에게는 억천만금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가치가 있음을 알아야 되겠고, 또 그 가치를 귀하게 여길 줄 알아야 합니다. 오늘날의 어떠한 주의나 금은보화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가치로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그러한 가치를 아는 사람이 그리워서 도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그러한 가치를 알고 그리워하며 살 수 있는 동산을 만들기 위해 수고해 오셨는데 이것이 6천년 복귀역사입니다.

우리는 탄식하여야 되겠습니다. 우리는 하늘을 대하여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주고 싶어하신 만물을 주시옵소서, 아버지께서 주고 싶어하신 몸을 주시옵소서, 아버지께서 주고 싶어하신 마음을 주시옵소서, 아버지만을 대할 수 있는 심정을 주시옵소서’하고 기도를 하는데, 생각해 보면

아버지께서는 주셨는데 우리가 잃어버리고 또 잃어버려 왔습니다. 이것이 타락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선의 물질을 회복해야 되겠고, 선의 이념을 회복해야 되겠고, 선의 심정을 회복해야 되겠습니다. 이것이 인류가 해야 할 최후의 일인 것입니다. 역사는 선의 물질, 선의 이념, 선의 심정이 있는 곳을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수많은 민족이 찢기고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민족을 넘고 국가를 넘어서 그곳으로 흘러갑니다.

8-153
끝날에 지녀야 할 인생관, 생활관, 우주관
현세를 바라보면 두 이념이 부딪치고 있는데, 여기에서 하나가 깨지는 날에는 어떻게 될 것인가? ‘이 물질이 내 것이다. 이 세계, 인류가 내 것이다. 이 이념이 내 것이다. 이 심정이 내 것이다’ 할 수 있는 주인공이 나와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을 자기 것으로 차지할 수 있는 자격자, 인류를 농락하던 사탄, 우리의 양심과 우리의 몸과 우리의 물질을 농락하던 사탄을 대하여 ‘이놈’하고 호령하며 심판할 수 있는 사람이 나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어떠한 사람이냐? 기독교에서 말하는 재림시대에 심판의 자리를 피할 수 있는 사람이요, 첫째부활에 참여하는 영광을 차지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그런 배짱들 있어요? 여기서의 배짱은 주먹 가지고 말하는 배짱이 아닙니다. 역사와 더불어 과거 현재 미래를 통하는 섭리노정에서 사탄이 참소하는 모든 조건을 걷어차고 나설 수 있는 권한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땅 위에서 ‘사탄을 대해 모든 물질을 내놔라’ 할 수 있는 아들 딸이 나오기를 6천년 동안 고대하고 계십니다. ‘미래세계는 우리 것이야, 내 것이야’ 할 수 있는 무리가 나와야 합니다. 이것은 어떤 인간의 욕망이 아니라 하나님의 소원입니다. 만물을 지은 것은 ‘이것은 내 것이다’할 수 있는 관(觀)이 선 참아들딸을 위해서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우주관이 있어야 합니다. 생활관이 필요한 동시에 우주관이 필요합니다. 세계관이 필요해요. 이 세계관은 무엇이냐? ‘이 세계가 내 세계다’하는 관입니다. 본래의 인간은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인간들은 전부 세계주의자들입니다. 못나나 잘나나 모두 ‘내 세계다’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내 세계라고 주장할 수 있는 조건을 갖지 못했기 때문에 못 찾지, 그 조건을 갖고 천상에 가서 호소하면 얼마든지 찾을 수 있습니다. 이 하늘 땅을 내 것이라 할 수 있는 그 주의가 여러분이 가져야 할 주의입니다. 그 다음에는 이 세계에 널려 있는 모든 인류는 한 형제라는 관(觀)이 있어야 합니다. 한 형제라는 관이 있어야 해요. 그래야 하나님이 아버지 노릇을 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형제, 이 형제라는 관념을 가지고 ‘이 땅 위의 이념은 우리 집의 이념이야, 우리의 심정은 부모의 심정이야’ 할 수 있으면 세계는 하나됩니다. 종족을 초월하여 하나됩니다. 이러한 세계를 세우지 못하면, 어떠한 정치 어떤 이념도 다 소용없습니다. 끝날인 이때에 모두 깨져 나갑니다.

오늘날 미국이 아무리 경제력을 자랑하고 있지만, 보십시오. 그들이 보따리 싸 가지고 전인류에게 나누어 줘야 합니다. 천운이 그렇게 움직여 나가는 것을 그 사람들은 모르고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미국이 그거 안 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 대신 창고에 있는 것을 나누어 줘야 된단 말입니다. 그러한 마음 갖지 않고는 욕먹습니다. 미국이 지금 그래요.

이러한 견지에서 오늘날 우리들이 세상을 바라 볼 때 이 세상은 둘로 갈라져서 진행돼 나오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날은 어떠한 양상을 나타내고 있는가. 인간 세상에서 귀하다는 가정기준이 깨뜨려져 나가고 있는데, 선진국가들이 더욱 심합니다. 먼저 들이맞는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부모를 압니까, 형제를 압니까, 부부를 압니까, 자식을 아니까? 다 깨뜨려 놓는다는 말입니다. 천운이 그렇게 나가는 것입니다. 그것을 그냥 붙들고는 못 떠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것을 볼 때 세상은 끝입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이 세상이 망해버리고 말 것인가. 아닙니다. 여기에서 새로운 과정을 거쳐 수습하는 한 곳이 나와야 됩니다. 그래야 생존할 수 있습니다. 그 세계는 물질을 넘고 종족을 넘고 오색인종을 초월하여 ‘내 것인 동시에 네 것이다’ 하는 세계입니다. 이러한 이념의 움직임이 벌어져야만 세계는 한 곳으로 수습되어 들어갑니다. 그러한 세계에서 우리는 한 형제요, 한 아버지를 중심삼은 부자의 관계를 이룰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인간이 그러한 관계에서 하나님 것이자 내 것이요, 내 것이자 하나님 것이요, 하나님의 기뻐하심이 내 기쁨이 될 수 있는 때가 이 지상에 벌어지기 전에는, 물질에 대한 싸움도, 몸뚱이의 싸움도, 주의의 싸움도, 허덕이는 심정의 싸움도 해결지을 수 없습니다.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다시 한번 과거를 돌아보십시오. 우리가 무엇을 중심삼고 살아 나왔는가. 그것이 물질이라면 물질이 맞는 날에는 맞을 준비를 해야 됩니다. 그것이 이 몸뚱이라면 이 몸뚱이가 배척받는 날 배척받아야 됩니다. 우리가 이 땅위의 어떠한 이념을 갖고 있다 할진대 그 이념이 꺾이는 날 우리도 꺾여야 됩니다. 일본을 보십시오. 제국주의가 꺾이고 나니 전부가 꺾였습니다. 오늘날 인간에게 있어서 사랑이 꺾이는 때에는 모든 것이 다 꺾이고, 다 잃어버리고 허덕이는 인간이 되고 맙니다.

불쌍한 사람이 누구냐 하면,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내 것’을 갖지 못하고 허덕이는 사람입니다. 본래 사람들은 온 천주를 ‘내 것’이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만물도 잃어버리고 이 땅도 잃어버려, 그것들을 ‘내 것’이라 할 수 있고, 심정세계나 그 이념도 ‘내 것’이라 할 수 있는 위치를 잃어버린 사람이 불쌍한 사람인 것입니다. 거지들은 왜 불쌍한가? 자기가 의지할 곳 없고 자기 것을 남길 수 없기 때문에 불쌍합니다.

8-155
우리의 욕망과 하나님의 사랑
오늘날 우리 인간들은 어떠한 욕망을 품고 운명적인 복귀의 길을 가고 있느뇨. 모든 것을 내 것 만들기 위하여 가고 있습니다. ‘이 천지가 내 것이야. 이 하늘 땅에 있는 인류가 나의 형제야, 땅 위의 이념이 바로 내 이념이야, 어떤 주권자나 기업주의 것이 아니라 내 것이야’. 그 다음에는 ‘하나님도 내 것이야’ 할 수 있는 자리로 가고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욕망은 어디까지 가야 그칠 것이뇨. 하나님도 내 것인데 하나님만 붙들고 무엇 할 것이냐. 하나님 심중의 사랑도 ‘내 것이야’ 할 수 있는 자리까지 가야 모든 것이 끝납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사랑이 어떤 것인지 아세요? 말도 그럴 듯하지만 사실도 그렇습니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 될 수 있는 권한이 무엇입니까? ‘하나님 어서 오십시오’ 할 때에 ‘오냐, 가마’ 하시며 오실 수 있도록, 하나님을 불러 낼 수 있는 주인공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심정을 내 것이라 하게 되면 가능합니다. ‘하나님 갑시다’ 할 때 ‘오냐 가자’ 할 수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여러분 그렇잖아요. 심정이 하나되어 서로 그리워할 때는 오지 말라고 해도 따라옵니다. 하나님께서도 인간을 그러한 표준에서 대하시고 찾아 나오십니다. ‘땅 위에 살고 있는 인간들아, 수천년 전부터 허덕인 이 한을 너희들이 풀어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이겠느냐. 내 심정 전체를 너희가 차지하여 만물의 주인될 수 있는 모습이 될 때, 나에게 맺힌 한을 모두 잊을 수 있겠다’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성경에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있고, 너희가 내 안에 있고 내가 너희 안에 있다’는 말씀은 무슨 뜻인가. 인간의 욕망이라는 것은 이 땅 덩어리를 마음대로 해 봐도 만족하지 않는 것입니다. 오늘날 흐루시초프니 아이젠하워 대통령이니 하는 사람들이 이세상을 자기들 무릎 아래 두고 ‘야 너희들 이것 하여라’ 할 때 ‘예 하겠습니다’ 하게끔 만들어 놓았다면 편안할 것 같아요? 편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최후에 하나님께서 ‘잘 싸웠다 이렇게 해라’ 하셔야만 기뻐하게끔 지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왕자가 되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거기에서 만사는 해결됩니다. 우리가 그 자리에 들어가 6천년 한스러운 하늘을 대해 ‘아버지’하고 부르는 한 마디에 하나님의 6천년간 맺혔던 모든 한이 다 풀려 나간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기독교는 새로운 차원으로 비약하게 됩니다. 2천년 전에 오셨던 예수께서 너희는 물질을 붙들고 싸워라 몸을 붙들고 싸워라 그러지 않았습니다. 그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나를 믿으라고 하셨습니다. 너희가 나 예수의 신부된 것을 믿으라 하신 것은 고마운 일입니다. 정적인 심정의 인연을 맺고 있으라 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다시 찾아오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또한 하나님도 인류를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찾아가는 데 있어서 어떻게 하는 사람이 선한 사람인가. 큰 것을 생각하며 가는 사람입니다. 애국자라면 자기의 가정을 버리고 자기 몸뚱이를 희생하더라도 삼천만 민족을 생각해야 합니다. 삼천만 민족을 자기 몸뚱이나 자기에게 속한 무엇보다도 더 생각하는 사람이 애국자요 충신입니다. 심정적으로 그렇게 생각해야 돼요. 충신 열녀 효자 효녀가 전부 이 코스를 거쳐야 됩니다.

최후에 이 모든 사탄세계의 조건까지도 청산할 수 있는 하나의 기준이 무엇이냐. 어떤 잘난 사람도 아니요 인격자도 아닙니다. 어떠한 권세를 가진 주권자도 그 기준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도 꼼짝 못하는 사랑입니다. 그 사랑을 지닌 사람이 전체의 중심이요 전시대사(全時代史)의 중심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8-157
주님이 맞이할 수 있는 자
오늘날 우리는 적으나 적은 삼천만 민족이라고 한하지 맙시다. 백만 신도에 지나지 않는 기독교인을 가졌다고 한하지 맙시다. 세계에 수많은 기독교인이 있고 하늘을 사랑하는 사람이 많은데 통일교인은 많지 않다고 한하지 맙시다.

하늘이 바라는 역사적인 심정을 가지고 모든 사탄의 요소들을 처단할 수 있는 인격자가 먼저 되어야 됩니다. 그리하여 심판의 기준을 세워 놓고 그것 외에는 용서할 수 없다고 나서는 자가 되어야만 6천년 동안 싸워 오신 하나님 대신 이 땅 위의 일을 처리하는 대표자로 세울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 잃어 보셨습니다. 만물도 잃어 보셨고 사랑하는 아들딸도 잃어 보셨고 애달픈 사랑의 심정도 밟혀 보셨습니다. 하나님이 그러셨거늘, 인간이 어찌 그런 길을 가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여기서는 누가 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쳐야 됩니다. ‘하늘을 배반한 이 몸 버려도 싸다’하며 과감하게 끊을 수 있는 존재라야만 원수권내에 인연되어진 모든 한스러운 것을 밟고 넘어설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못하는 사람은 주님을 맞이하느니 어쩌느니 할 수 없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사람의 말이 틀리지 않습니다. 사실이 그렇단 말입니다.

그러한 심정을 갖고 나서는 사람들에게는 마음과 몸뚱이와 물질이 자동적으로 따라 들어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심정을 가진 나라가 있고 민족이 있다 할진대, 세계의 물질은 모두 그들로 말미암아 요리됩니다. 세계의 인류는 그들로 말미암아 좌우되고 세계의 주의도 그들로 말미암아 판결될 것이며, 세계의 사랑도 그들로 말미암아 좌우됩니다. 사실이 그렇다면 한번 해볼 만하지요? 여기에 서서 말하는 사람도 그런 것을 알기 때문에 이런 놀음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 방법에 들어가서는 어떻게 할 것이냐? 이것이 우리들의 할 일입니다. 우리는 사탄의 조건물에 놀아나던 자신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가 지갑에 수천만원의 큰 돈을 넣고 있더라도, 이것이 사탄이 따라 다닐 수 있는 미끼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이제 우리는 단결해야 됩니다. 단결해야 돼요.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아들 딸의 손을 거쳐 모든 것이 나타나기를 소원하실 것입니다. 내 생각엔 그래요.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그럴 것 같다 이겁니다. 오해하면 안 돼요. 사탄한테 농락받는 만물을 노아의 방주를 통하여 하나님이 사랑하실 수 있는 성별된 물질로 번식시키고자 하신 것이 하나님의 마음이었을 거예요.

그러니 우리는 하나님의 것으로서 하나님의 정(情)을 통할 수 있는 물질을 만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정이 통할 수 있는 만물의 기반을 만들어 놓아야 해요. 타락한 사람의 탄식이 무엇입니까? 만물의 탄식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정적인 감정을 느낄 수 없는 단계에 처해 있는 연고로 탄식하는 것입니다. 이 몸뚱이가 지금 사탄 세계에 처해 있는 연고로 하나님의 정적인 느낌에 따라 움직이지 못하고 있어요. 마음도 그렇고 전부 다 그래요.

8-158
물질의 할례, 몸의 할례, 마음의 할례, 심정의 할례
그렇기 때문에 저는 이런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어떤 음식을 먹으라고 갖다 주어도 함부로 먹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모르지요. 거기에는 반드시 어떤 이유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 만물 할례를 하였고 몸의 할례를 하였고 마음의 할례를 하였습니다. 물질의 할례, 몸의 할례, 마음의 할례를 했는데, 나는 거기다가 심정의 할례까지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날 인간 세상의 사랑이 다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찾아나가는 데에 필요한 것을 용단을 가지고 실행할 수 없으면 주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절대 못 만나요. 아들 딸이니 무어니 무어니 하는 것까지도 자기 손으로 끊어버리고 움직일 수 있어야만 그 뒤에 하나님의 사랑이 연결되어 들어오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여러분의 마음이 그렇게 움직이는 곳이 있으면 가서 붙들어야 합니다. 목을 빼내도 떨어져서는 안 됩니다. 떨어지면 자기만 희생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필히 그런 각오를 가지고 움직여야 됩니다. 끝날인 이때, 이 시대에 그러한 움직임이 이 지구상에, 세계상에 나타나야 된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이것을 모방한 움직임이 나타나기 전에 하나님을 중심삼고, 이념을 중심삼고 식구라는 명사를 세워야 됩니다. 통일교회의 식구라는 말이 거기서 나온 것입니다. 알겠어요? 여기에서 물질을 가지고 식구의 위신을 농락하면 안 됩니다. 자기 일개 가정의 어떤 사정을 중심삼고 우리 식구의 인연을 유린하는 사람은 불합격자요, 어떠한 이념이나 사상관념, 어떠한 신앙관념을 중심삼고 우리 이념을 재는 사람도 불합격자입니다. 어떠한 정적인 감정을 중심삼고 실천하기를 주저하는 사람도 불합격자입니다. 이 말이 맞나 안 맞나 보십시오.

타락한 이후 우리 인간에게는 한스러운 운명의 길이 있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사랑하는 식구를 만나기 위해서는 수천만금을 일조일석에 다 날려버린다 하더라도 ‘너를 만나니 얼마나 좋으냐’하는 이런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이 몸뚱이가 시달리고 고통을 당하는 일이 있다 할지라도 ‘사랑하는 형제 하나를 찾기 위하여서는 어떤 곳이라도 개의치 않고 가야지’하는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이러한 이념을 품고, 예수와 같이 땅 위에서 뜻을 성취하지 못하고 가는 한이 있어도 이 이념만을 위해서 가겠다는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의 사랑을 접하게 됩니다.

이념을 중심삼고 물질을 버리는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몸뚱이를 차지할 수 있는 권한을 얻고, 몸뚱이를 차지할 수 있는 이념이라도 땅을 중심삼은 이념이라면 버리고 가는 사람은 하나님의 심정이 기다립니다. 이처럼 한 단계 한 단계 연결되어 올라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만왕의 왕으로 이땅에 오셨다가 이념도 버리고 목숨까지도 다 버리고 가셨으나 그 위에 심정이 있음을 아셨기에 하나님을 대하여 ‘아버지’하고 부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는 이제 판결을 지어야 되겠습니다. 내가 어떠한 자리에 서 있으며, 나는 어떠한 존재이며, 얼마만한 가치적인 자리에 설 것이냐? 자명한 사실입니다. 여러분 자신들이 이 길을 가는데 있어서 어떤 세상의 물질을 놓고 주저한다든가 혹은 자기 가정이나 자기의 국가적인 입장에서 주저한다든가 지금까지의 주의나 이념, 혹은 신앙적인 관념 때문에 주저한다든가 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더 나아가서 사랑문제, 즉 정적인 문제까지도 자신있게 이겨 나가야 합니다 멋지게 넘어설 수 있는 충격적인 것을 끝날에는 반드시 찾아야 합니다. 그러지 못하면 못 넘어갑니다. 사실이 그래요.

8-160
선악의 싸움터를 넘어서려면
역사의 흐름은 불의를 용납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도(道)는 양심을 통해 선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선은 명령하기를 ‘네 몸을 희생하고 너의 모든 것을 남에게 주어라, 머리 숙여 남을 받들라, 민족을 받들고 세계 인류를 받들고 하나님을 받들라, 그리고 네 몸을 하나님께 맡기라’고 합니다. 그렇게 하면 어떻게 될 것인가. 맨 나중에는 어떻게 될 것인가. 하나님의 사랑을 네게 주겠다는 것입니다. 선이 목적 없이 명령을 하겠어요? 그렇게 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네게 주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아는 자, 이것을 느끼는 자가 되어야겠습니다.

세상에서 아무리 반기를 들고 나선다 해도 하나님의 사랑은 침범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세계는 침범할 자리가 없습니다. 사탄세계는 침범할 수 있으나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은 곳은 침범할 수 없습니다. 그곳이 마지막이요 영원이요 변치 않는 기준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기준 위에서 출발할 수 있는 참다운 아들 딸, 참다운 가정, 참다운 사회, 참다운 세계, 참다운 세계의 만물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온 세계는 선악의 싸움터를 넘어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런 자리에 못 나간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우리가 보는 데도 선과 악이 싸우고, 듣는 데도 먹는 데도 말하는 데도 움직이는 데도 전부 선악이 대립하여 싸우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선악을 가려서 ‘나는 이렇게 가야 된다’ 하나님의 심정에 입각하여, 하나님의 변치 않는 이념을 통하여 볼 때, ‘이렇게 가야 된다’는 관(觀)을 세워야 됩니다. 그런 우주관을 세워서 심정을 통하여 좌우를 헤치고 갈 수 있게 될 때 여러분은 그 싸움터를 넘어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도 하나님의 사랑이 사무친 십자가를 받들고 가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 여러분, 고향을 찾아가는 사람이 부모와 싸우러 간다면 좋겠어요? 부모의 사랑이 그리워 가는 사람은 희열이 넘치고 소망이 넘칩니다. 예수가 십자가 상에서 누구를 원망하고 안타까와하며 갔어요? 아버지의 사랑의 품으로 가는 자리이니 예수는 원수를 대하여 복을 빌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은 이러한 자리를 되찾아가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타락한 인류는 복귀의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러한 조건들을 청산해야 하는데 그럴 수 있는 자신이 되어 있는지 자문자답해 보십시오.

8-161
우리의 책임과 축복의 기준
하나님의 소원은 무엇이냐. 우리 인간이 아버지께서 염려하지 않는 자리에서 아버지 것으로서 귀히 여길 수 있는 물질을 만들고, 아버님께서 사랑할 수 있는 몸뚱이를 만들고, 아버님께서 사랑할 수 있는 이념을 가지는 것입니다. 물질을 복귀하고 몸뚱이를 복귀하고 이념을 복귀하여 하늘 앞에 나서기만 하면 하나님께서는 취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류는 이념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나는 신랑이요 너희는 신부라는 이념을 중심삼고 생사지경을 넘어설 수 있었으니, 그분과 같이 모든 것을 버리고 죽음의 고개를 넘어설 각오를 한 자가 있으면, 그 앞에 주님은 사랑의 주인공으로 나타나실 것입니다.

끝날에는 그 곳이 그립고 또 그립고, 보고 싶고 또 보고 싶으며, 가고 싶고 또 가고 싶어해야 됩니다. 억천만금이 있다 해도 그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지금 땅 위에서 아무리 부귀영화를 누린다 해도 그것을 박차고 털고 나설 수 있도록 이끌어내는 교단을 오늘날 인류는 맞아야만 됩니다. 만약 통일교회가 그 노정을 못 가면 또 다른 데서라도 가야 됩니다. 여기가 마지막이 아닙니다. 보따리 싸 가지고 또 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인간들이 자신을 농락하는 물질의 권한을 비웃을 수 있고, 자신을 치려 하는 육체적인 모든 조건을 비웃을 수 있으며, 자신을 얽어매려 하는 모든 조건을 심정 앞에 굴복시키는 한 자체가 되지 않으면 이 고개를 못 넘습니다. 넘지 못해요. 절대로 못 넘습니다. ‘나는 누구 때문에 교회에 간다, 나는 내 사랑하는 아들 딸 때문에 교회에 간다, 혹은 사랑하는 남편 때문에 아내 때문에 교회에 간다’ 하는 자들은 다 못넘어 갑니다. 누구 때문에 가느냐 하면 하나님 때문에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내 것으로 소유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내 사랑으로 찾기 위하여 교회에 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에는 절개를 지키라고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 앞에 축복을 받는 과정을 거치고 나면 그 다음에는 무사태평입니다. 그때는 이 천지에 사탄이 꽉찬다 해도 그런 사람은 지배할 수 없습니다. 그럴 때가 옵니다. 외적으로 그런 시대가 오면 거기에 내적으로 맞추어야 할 시대가 반드시 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오늘날 우리들은 이제 한스럽던 과거를 다시 한번 비웃고 이 시대를 박차고 하나님께서 사랑하실 수 있는 땅 덩어리, 하나님께서 품고 사랑하실 수 있는 만물, 하나님께서 사랑하실 수 있는 형제자매, 하나님의 사랑을 노래하는 아들딸을 품을 수 있는 그 한 곳을 향하여 달려가야 됩니다. 그곳까지 우리가 가지 않는 한 이 땅의 비참한 역사는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이 싸움의 세계가 어서 지나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인류는 이 싸움의 세계가 지나가고 평화의 세계, 사랑의 세계, 선의 세계가 오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 하나의 세계가 지향하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니 그 때가 눈 앞에 다가오는 이 때에, 우리가 이념적인 모든 것을 일대에 청산하고 내적 준비를 갖추어서 넘어설 수 있는 자가 되지 않으면 심판주이신 하나님의 아들로 설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심판 때가 오기전에 심판을 받아 가지고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는 자격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심판 때가 되면 하나님 대신 행사를 해야 합니다. 이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축복의 기준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가는 길은 그런 길입니다. 하나님을 우리 것 만들고, 하나님의 심정을 우리의 심정으로 하여 이 땅과 우주를 우리 것으로 만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하늘 땅의 심정을 배신하였으니, 먹을 것을 잊어버리고 어느 때 어느 곳에서도 그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책임지고 나설수 있는 심정에 사무친 사람이 되어야만 이 모든 한스러운 선악의 싸움터를 넘어설 수 있습니다. 그런 자가 이 한스러운 싸움터를 먼저 넘을 수 있는 자격자가 되는 것입니다.

8-163
기 도
아버지! 역사의 흐름이 어떻다는 것을 저희들은 몰랐습니다. 아버지와 저희가 이러한 곡절의 길을 걸어오는 데 있어서 아버지의 수고가 컸음을 알게 되었사옵니다. 아벨이 제물 준비를 할 때, 아벨 자신이 준비한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친히 하셨사옵고, 노아가 120년 동안 배척받으면서도 참아 나온 것 또한 노아 자신이 참은 것이 아니라 인간 대신 아버지께서 참아 나오셨음을 알았사옵나이다.

아브라함 이후 예수님께서 왔다 가신 것도 이 일을 종결짓기 위함이었음을 알았사옵나이다. 이 땅에 오셨던 예수님은 불쌍한 분이었사옵니다. 그분은 진정 하늘의 심정을 통하는 자리에 있었으나 땅 위에서 하나의 동지를 만나지 못하였사옵고, 하나의 신부를 그리워하셨사오나 만나지 못하셨음을 알았사옵나이다. 그분은 이 땅이 그립고 이 땅의 만물과 만민이 그리웠으나, 만물을 대하여 ‘너희들이 그리워 찾아왔노라’고 말할 수 없는 입장이었고, 만민을 위해 찾아 오셨으나 만민을 대하여 ‘너희가 그리워 찾아왔노라’하고 심정을 털어놓지 못하셨사옵니다.

이토록 서글픈 한을 남기고 가신 예수님의 노정을 걸어온 수많은 성도들은 예수님과 같이 이 땅에 피를 뿌리며 한스럽게 살다가 이슬처럼 사라진 것을 저희들이 알고 있사옵니다. 끝날에 처한 저희들은 어떠한 입장에 있사옵나이까? 마음을 헤치고 심정에 사무쳐 6천년의 한을 놓고 통곡하여야 할 저희들이오나, 하늘을 배반하기를 일삼았사옵고 변하기를 일삼았던 저희들이옵나이다.

그러나 변치 않는 심정, 변치 않는 모습으로 사랑하는 아들 딸을 그리워하며 눈물 지으시는 아버지인 것을 알았사옵나이다. 배척하는 무리들의 뒤를 따라오시면서 눈물지으시고 갖은 매를 맞으신 하늘의 사정을 알았사오니, 이제 저희들은 이 길을 가겠노라고 맹세하옵나이다. 모든 것을 빼앗기고 잃어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가겠사옵니다. 피살을 뿌리며 길거리에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가야 되겠습니다. 이것은 저희를 위함이 아니옵고 아버지를 위함이옵나이다. 저희를 위한 욕망이 아니라 대우주의 주인이신 당신의 영광을 위함이옵니다. 아버지께서 이렇게 싸워 나오셨고 아버지를 대하는 도인들도 이렇게 싸워 나왔거늘, 여기에 모인 저희들이 무엇을 자랑하겠사옵나이까? 썩어질 어떤 물건을 붙들고 귀히 여기겠사옵나이까? 그것들로 말미암아 아버지의 한을 가중시키는 자리에 서지 말게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저희가 자랑할 수 있는 것은 아버님을 위하는 마음과 아버님을 사랑하고 싶은 마음과 아버님을 그리워하는 마음이오니,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그 마음을 붙들고 허덕이고, 아버지를 위로해 드릴 수 있는 간절한 심정만이 저희에게 사무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저희의 가는 길이 아버지께서 따르시지 않을 수 없는 길이 되게 하여 주시옵고, 아버지께서 가시는 길을 저희의 피살이 떨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가겠다는 심정을 지니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런 자리에서 아버지를 중심삼고 서로 식구라 하는 모임을 갖출 수 있는 교회를 얼마나 그리워하셨사옵나이까? 아버지, 그러한 민족을 얼마나 그리워하셨으며, 그러한 세계의 인류가 되어 주기를 얼마나 고대하셨사옵나이까? 그러나 아직까지 서글픈 장벽 앞에서 한줄기의 소망도 갖지 못한 땅위의 인간을 대해 한을 품고 계시는 아버지의 사정을 저희가 아오니, 불효막심하였던 선조들을 용납하여 주시옵고, 미비하고 불충스러웠던 사실들을 용납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그렇게도 사랑하고자 하신 아버지시옵고, 그렇게도 영광의 자리에 세우고자 하신 아버지이심을 몰랐사옵나이다. 이제 알았사오니 남아진 모든 것을 스스로 청산하여 승리의 모습을 갖출 수 있게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변할 수 있는 것을 가지고는 하늘의 뜻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알았사옵나이다. 하늘은 저희가 마음으로 몸으로 심정으로 변치 않는 기준을 세우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여기에서 외치고 싶은 저 자신도 그날을 고대하고, 그런 모습을 고대하옵니다. 이제 저희들이 그 길을 가야겠사온데, 가야 할 그 길이 핍박의 길이요, 슬픔의 길이요, 억울한 길인 것을 알았사옵니다. 그 길을 따라가는 저희들이 변하고 나서 탄식하고, 저버리고 나서 원망하게 되는 것을 알았사오니, 백번 천번 만번을 죽더라도 변할 줄 모르는 심정을 갖추어 쓰러질지라도 아버지의 손을 붙들고 쓰러질 수 있고, 아버지의 한을 붙들고 사라질 수 있게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그렇지 않는 한 선악의 싸움터를 넘어설 수 없다는 것을 알았사옵나이다.

이제 저희 앞에 원수가 남아 있다면 그것이 아버지를 향한 저희의 심정을 가로막는 물질입니까? 몸뚱이입니까? 땅 위의 어떠한 욕망입니까? 아버지를 향한 저희의 심정을 가로막는 것은 어떤 것이든 일체를 용납치 않는 저희가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를 향해 일편단심 불타는 충절의 마음은 천지가 사라지는 한이 있더라도 남아진다는 것을, 또 이것이 천추에 영원히 빛날 아버지의 영광의 터전임을 알고, 이것을 중심삼고 아버지와 인연 맺고 영광의 모습으로 나타나 만물을 품고 만민을 품고 하늘을 높이고 하늘을 자랑하고 하늘을 위할 수 있는 자들이 되기를 아버지께서는 지금까지 고대하고 계시는 것을 아옵니다.

그러나 땅은 그것을 원치 않고 있사옵나이다. 땅은 그것을 반대하고 훼방하고, 일편단심의 충절과 선한 절개의 마음을 빼앗는 자가 있다 할지라도, 죽음의 산이 가로막히는 한이 있다 할지라도 이 땅에서 신념을 갖고 오늘도 내일도 손길을 연하여 서로 붙들고 넘고 넘어갈 수 있는 동지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형제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옵나이다.

이날 외로운 심정을 품고 하늘을 위하여 눈물짓는 당신의 사랑하는 식구들이 많은 것을 알고 있사옵나이다. 당신의 뒤를 따라 나선 그들은 불쌍한 자들이오니 아버지께서 위로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나이다. 한많은 이 땅을 대하시는 하늘의 심정에는 막을 수 없을 정도의 한이 사무쳐 있는 것을 알고 있사옵나이다. 이러한 것을 거두어 지고 가야 할 길이요 책임을 지고 가야 할 길인 것을 알고 아버님의 심정세계에 가까이 서서 아버님을 위안해 드릴 수 있으며, 영광의 자리에 서서 아버지를 위로해 드릴 수 있는 한 날이 오는 것은 땅이 변할지라도 변할 수 없는 사실인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하오니 그날까지, 오늘도 내일도, 1년도 10년도 피살이 썩어 땅에 들어갈지라도 ‘한을 남긴 이 땅에 대한 책임을 다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 할 수 있는 천주적인 투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고, 아버지의 충신 효자 열녀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 일을 위하여 지금까지 외쳤사옵고, 이러한 목적을 위하여 지금까지 싸웠사오니, 이들이 자신들의 목적으로 세우고 자진하여 싸움을 맡아 승리하여 하늘의 영광을 높이고 하늘을 대할 수 있는 아들 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모든 것을 맡아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부터 새로운 각오를 가지지 않으면 안 될 것을 느끼게 하여 주시옵고, 심판의 날이 오기 전에 먼저 심판할 수 있는 자체가 되어야 한다는 이 한 사실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심판을 하는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앞을 가로막는 것이 있음을 각자가 알고, 그것을 스스로 해결지을 수 있는 신념을 갖고 ‘아버지 됐습니까 안 됐습니까’ 하고 당당하게 물을 수 있는 아들 딸들이 되게 인도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릴 때, 모든 말씀 주님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