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18 to 8-138: 모든 존재물은 아버지를 모시기 위하여 존재한다

모든 존재물은 아버지를 모시기 위하여 존재한다
1959.11.29 (일), 한국 전본부교회

8-118
모든 존재물은 아버지를 모시기 위하여 존재한다
요한복음 14:1-20

오늘 여러분 앞에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모든 존재물은 아버지를 모시기 위하여 존재한다’입니다. ‘모든 존재물은 아버지를 모시기 위하여 존재한다’ 이러한 제목을 가지고 말씀드리겠습니다.

8-118
인간의 본연의 위치와 현재의 위치
우리는 하늘이 있는 것을 알고 땅이 있는 것을 압니다. 하늘과 땅이 있는 가운데 나라는 존재가 있고 인류가 있습니다.

그러면 하늘과 땅과 나의 근본이 무엇이냐? 이 문제를 추구하게 될 때, 아직까지 이 문제를 완전하게 해결하지 못한 채 인류는 허덕여 나오고 있습니다.

만일 하늘과 땅과 나의 주인이 될 수 있는 하나님이 계시다 할진대, 현재 그 하나님은 하늘과 땅과 나와 어떠한 관계를 가지고 계시느냐? 이것이 인생에 있어서 해결되어야 할 중대한 문제입니다. 또한 그 주인이 내마음과 내 몸, 그리고 내 심정과는 어떻게 관계되어 있느냐? 이러한 나를 중심삼고 연(緣)하여 있는 이 세계와 만물과는 어떤 관계에 놓여 있느냐? 이것이 모든 종교와 철학이 찾아 나아가는 궁극적인 목표입니다.

우리는 천지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또한 그분이 에덴동산에 우리의 선조들을 지어 놓았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거기에서 우리의 선조들은 하늘과 영원하고 유일하고 변하지 않아야 할 어떤 인연을 가졌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영원하고 유일하고 불변한 어떤 인연을 중심삼고 지어졌음이 틀림없다면, 어찌하여 우리는 하나님을 모르는 입장에 있게 되었느뇨? 이것을 생각해 볼 때 인간이 타락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이 만물의 주인공으로 인간을 세워 놓으시고 뗄래야 뗄 수 없는 인연을 맺었다면, 인간의 무엇과 인연을 맺었을 것인가? 심정과 인연맺었을 것입니다. 이상적인 본질과 인연맺었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불변하고 유일하고 영원한 생명과, 불변하고 유일하고 영원한 심정을 터치(touch)할 수 있는 오직 하나의 주인은 우리를 지으신 창조주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상식적으로도 짐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인류 앞에는 영원한 어떤 이념이 남아 있고, 찾아 헤메는 불변의 그 무엇이 남아 있고, 유일한 가치를 얻지 못한 그 무엇이 남아 있습니다. 우리 인간을 지으신 영원하고 불변하고 유일한 그 본체(本體)가 주체의 입장에서 우리와 영원한 관계가 이루어졌던들, 하늘이 고통을 받으면 우리도 고통을 느낄 것입니다. 하늘이 기뻐하면 우리도 기뻐할 것이고, 하늘이 행복하면 우리도 행복할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그렇게 되어 있지 못한 것은 타락 때문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무엇을 하기 위해서, 어떤 형태를 만들기 위해서 타락한 인류를 붙들고 지금까지 수고해 나오시는가? 그것은 창조주로서 인류의 조상에게 축복하여 주었던 기준, 심정적인 세계에 있어서, 생명적인 세계에 있어서, 이상적인 본질에 있어서 영원하고 유일하고 불변한 그 기준에 맞추어 놓기 위해서입니다. 만일 하나님이 그러한 섭리를 하지 않는다 할진대, 하나님은 사랑이니 무엇이니 하고 논(論)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류의 조상 아담 해와에게 이 모든 만물을 주관하라고 축복하셨습니다. 주관하는 데는 어떤 자리에서 주관해야 되느냐? 생명이 불안하고 환경이 불안하고 심정이 불안한 자리에서 주관하는 것이 아니라 심정과 생명 전체가 안식할 수 있는 자리에서 주관해야 합니다. 오늘날 이 땅위의 모든 것이 인간에게 주관받고 있지만, 본래 주관받아야 할 자리에서 주관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한 때 청산해야 할 세계라는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인간 조상 아담 해와를 지어 놓고 주인이 되라 하셨습니다. 무슨 주인? 사랑의 주인이 되라, 생명의 주인이 되라, 이념의 주인이 되라, 권한의 주인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인간 조상이 사랑과 생명과 이념과 권한, 이것을 하나님과 인간 조상이 동거(同居)하는 자리에서 성취하였던들, 오늘날 인류는 이같은 한탄스런 세상에서 살고 있지 않을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하나님과 나와는 어떠한 관계인가. 사랑의 주인이요, 생명의 주인이요, 이념의 주인이요, 권한의 주인이신 하나님과 나는 어떤 관계였느냐? 어떠한 입장이었느냐? 부자(父子)의 관계였습니다.

8-120
역사는 무엇을 향해 달음질치고 있느뇨
그분은 우리를 사랑합니다. 사랑하는데 막연하게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떠한 심정을 가지고 사랑하느냐. 유일하고 불변하고 영원하신 부모의 심정을 가지고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타락한 우리 인류가 하늘을 수천 만번 배반했을지라도 하늘은 꾸준히 붙들고 나오고 있습니다. 타락한 우리 인간에게도 죽음을 개의치 않고 자식을 사랑하는 심정이 있는데, 그 심정은 어디서부터 나왔을 것인고? 천적인 심정을 중심삼은 하늘로 말미암아 지음받은 인간이기에 그런 심정이 움직이는 것입니다.

인간의 타락이 무엇이뇨? 사랑을 잃어버린 것이요, 생명을 잃어버린 것이요, 이념을 잃어버린 것이요, 주권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섭리는 무엇이뇨? 인간으로 하여금 이 땅을 주관하게 하기 위한 주권회복운동입니다. 그 다음에는 잃어버린 이념을 회복하기 위한 운동이요, 생명을 회복하기 위한 운동이요, 사랑을 회복하기 위한 운동입니다. 타락한 우리는 복귀의 한을 품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담 해와가 타락한 그날부터 역사는 무엇을 향하여 달음질치고 있느뇨? 아버지를 찾기 위하여 달음질치고 있습니다. 딴 게 아녜요.

인류는 무엇 때문에 역사 과정에서 허덕이고 있고, 곡절의 길을 걸어 나왔느뇨? 참다운 사랑의 아버지, 참다운 생명의 아버지, 참다운 이념의 아버지, 참다운 권한의 아버지를 아는 한 때를 소망하고 그와 인연맺기 위해 허덕여 나왔습니다. 그것이 허덕여 나온 목적입니다.

과거의 선지들이나 성현현철들이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피땀을 흘렸다면, 우리도 그렇게 해야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아버지 대신 존재로서 아버지의 사랑을 받고 아버지의 생명을 받고 아버지의 이념과 아버지의 권한을 받아야 할 존재인데, 사탄으로 말미암아 그것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탄을 쳐부수고, 하나님이 인간에게 허락한 자유의 이상을 회복하고, 자유의 생명을 회복하여 사랑에 취해 살 수 있는 그곳을 찾아가는 것이 섭리노정인 것을 똑똑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게 되지 못한 인간을 그러한 곳으로 끌어올려야 됩니다. 복귀시켜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 먼저 심정적으로 끌어올려 놓고 창조의 법도에 의하여 수습해 나옵니다. 재창조의 역사과정을 거쳐 나온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인간들 앞에 제물, 즉 만물을 중심삼고 관계맺어 나오고, 그 다음에는 말씀을 세워서 아들을 중심삼고 관계맺어 나왔습니다. 다시 말하면, 구약시대는 제물과 더불어 아버지를 향하여 가던 시대요, 신약시대는 아들과 더불어 아버지를 찾아 나가는 시대였습니다. 앞으로 끝날은 어떤 때냐? 아버지가 오는 때요, 아버지를 만나는 때입니다. 잃어버렸던 역사적인 아버지를 찾는 날입니다. 인생의 목표는 이것입니다. 이러한 목표를 향해 가는 역사노정에서 하늘을 근심하게 하고 하늘을 서럽게 한 우리들임을 알아야겠습니다.

8-121
복귀섭리의 단계
아버지를 찾아 나가는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이뇨? 역사적인 아버지를 찾기 위하여 다리를 놓아 나오는데, 어떠한 과정을 거치었느냐? 과거 구약시대는 심부름꾼시대요, 신약시대는 아들이 와서 양자 만드는 기간이었습니다. 거꾸로 올라갑니다. 구약시대에 있어서 아브라함은 심부름꾼이었습니다. 즉, 그 시대는 하늘의 천사들을 보내어 역사하시었고, 신약시대는 아들을 보내어 역사하시었고, 앞으로의 성약시대는 아버지 자신이 오셔서 역사하시고 아들 딸을 사랑하는 시대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늘을 대신하고 역사를 대신하여 천적인 책임을 지고 나섰습니다. 역사적인 아버지를 상봉할 수 있는 그 터를 이루어 놓았습니다. 아브라함의 그 정신은 언제까지 끌고 나가야 되었느냐 하면, 예수님이 오실때까지였습니다. 아브라함이 헌제(獻祭)에서 실수하니 야곱에게까지 연장되었고, 그 다음 민족의 지도자로 모세를 세웠습니다. 아브라함 일대(一代)에 책임을 다 못했으나 아브라함에게 세워 놓은 천적인 기준은 예수님까지 연결되었던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들 앞에 선지자를 보내 가지고 이것을 끌어 올리려다가 실패하고, 또 실패하고 그러면서도 시대에 따라 개인에서 가정으로, 가정에서 민족으로, 민족에서 국가를 중심삼고 주권을 회복하여 세계를 움직일 수 있는 그때까지 섭리하시는 것입니다. 아들딸 복귀보다도 주권복귀를 먼저 해야 합니다.

아브라함 이후 2천년 동안 민족을 거느려 나오면서 하늘은 무한히 수고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을 세우셨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을 중심삼고 무엇을 해야 할 것인고? 싸워야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신 목적이 여러분으로 하여금 믿게 해서 편안하게 해 주자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를 믿어 뭘 해야 할 것이뇨? 사탄세계와 싸워서 결판지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사탄이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사탄을 굴복시켜 가지고 아담 해와에게 만물을 주관하라고 하신 그 축복을 이루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가 목표한 것이 그것입니다. 축복을 이루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가 목표한 그 첫째가 이스라엘 민족을 규합하고 유대교를 규합하여 대로마 제국과 싸우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 싸움이 끝난 다음이라야 천국 이상을 줄 수 있고, 천국 생명을 줄 수 있고, 천국 사랑을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천적인 사랑과 천적인 생명과 천적인 이념을 신봉할 수 있는 땅이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하늘은 주권을 회복하기 위하여 싸움을 전개해 나왔습니다.

역사의 관점에서 볼 때 끝날이 가까와 오고 있습니다. 어떻게 끝날이 가까와 온다고 할 수 있느냐? 하나의 주의가 가까와 오니 끝날입니다. 하나의 이념을 중심삼고 천적인 주권을 회복할 수 있는 때가 눈 앞에 가까와 옵니다. 주권을 회복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 것이냐? 천적인 사랑과 천적인 생명과 천적인 이념을 회복하기 전에는 천적인 주권을 회복할 수 없습니다.

이구동성으로 지금의 때는 끝날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역사도 종교도 철학도 인간의 근본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전세계 인류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이냐? 영원한 이상과 이념의 주체가 필요합니다. 또한 이것을 해결하려면 무엇에서부터 출발해야 되느냐? 하나님의 사랑에서부터, 하나님의 생명과 하나님의 이념을 통한 후에라야만 주권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역사는 거꿀잡이입니다. 그 주권은 심정을 통할 수 있는 아들딸에게 주는 것입니다. 생명이 있는 아들딸, 영원한 하나님의 창조이념을 즐기며 노래할 수 있는 아들딸을 세워 놓고 그 주권을 맡기기 위한 것이 역사의 흐름이요 목적입니다.

이러한 환경에서 우리가 염려해야 할 것이 무엇이뇨? 이러한 원칙 밑에서 섭리한다 할진대는 무엇이 문제뇨? 이 세상 것 가지고는 도저히 처리가 안 됩니다. 처리할 수 있는 완전한 것은 불변의 하나님의 사랑이요, 불변의 하나님의 생명이요, 불변의 하나님의 이념입니다. 이것이 있어야 불변의 주권은 회복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똑똑히 알아야겠습니다.

8-123
하늘의 작전법
진정한 종교인들이나 도의 길을 가는 사람들은 지금까지 한번도 출세를 못해 봤습니다. 밟히고 유린당하고 몰리고 쫓기고 고통을 받아 왔습니다. 하늘에 가까운 아들딸들은 역사적인 수난의 길을 걸어 나왔다는 것입니다.

기독교 역사를 보십시오. 순교의 역사입니다. 왜 그러냐? 이 세상을 하나님의 사랑권내로 복귀시키기 위해서 주권을 찾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뇨? 사탄세계로부터 맞는 자입니다. 다시 말해서 어떠한 지역을 차지하려면 반드시 그 지역에 해당하는 만큼 맞고서야 찾아올 수 있습니다. 하늘 작전법이 그래요. 맞고 빼앗아 오는 것입니다. 인류역사를 두고 볼 때 뜻을 품고 왔던 선지선열들이 그 시대에 환영받았습니까? 못 받았어요. 죽은 후에 뭐 어떻고 어떻고 했습니다. 맞는 그가 그 시대를 책임질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알지 못하고 함부로 대해 나온 우리 선조들이었습니다.

이제 종말시대를 맞이한 전세계 인류는 무엇을 해야 하겠습니까? 종래의 수많은 선지선열들은 무엇을 하였습니까? 여러분은 하나님을 대하여 그는 영원한 아버지요, 불변의 아버지요, 유일의 아버지라고 느껴야 되겠습니다. 그렇게 느껴지지 않는 한 하나님의 아들딸이 될 수 없습니다.

아버지의 심정, 그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는 생명력, 태산이 가로막아도 뚫고 나올 수 있는 억제할 수 없는 생명력, 세상에 어떠한 주의 사상이 많다 하더라도 인간은 그 심정과 생명력을 지녀야 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똑똑하고 잘난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소유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8-124
실체(實體)의 아버지와 무형(無形)의 아버지
예수님은 이 땅 위에 어떤 분으로 오셨느냐? 실체의 하나님으로 오셨습니다. 실체의 하나님, 실체의 아버지로 오셨다는 말입니다. 아버지도 실체의 아버지가 계시는 동시에 무형의 아버지가 계십니다. 우리 사랑과 마찬가지입니다. 몸이 있는 동시에 마음이 있습니다. 무형의 하나님의 모양을 닮아 실체를 쓰고 오신 분이 예수님입니다. 내 마음의 실체가 몸인 것과 같습니다.

이 땅 위의 인간에게는 두 개의 ‘나’가 있습니다. 여러분 자신은 하나가 아니예요. 둘입니다. 나는 마음의 나와 몸의 나로 되어 있습니다. 천주(天宙)를 대신한 내가 그런 것을 볼 때 우리의 아버지도 그렇다는 것입니다. 실체의 아버지와 무형의 아버지, 이 둘을 하나로서 사랑해야 할 인류이기 때문에 인류는 참아버아지를 찾아나가는 것입니다. 그 아버지를 찾아 나아가는 데는 참심부름꾼 즉, 참종에서 참양자, 참양자에서 참아들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계에서 책임진 이들은 자신을 ‘하나님의 종’이라고 합니다. 인간의 본래의 자리는 거기에서 머물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니 좋은 말이 아닙니다. 그런 말 하는 사람들 그만 따라 다니십시오.

예수님은 어떠한 분으로 오셨느뇨? 하나님의 아들로 오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로 오셨으니 하나님 대신자요 인류의 참아버지입니다.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참아버지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참아버지 대신 존재로 오신 분이 예수님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아버지를 잃어버렸습니다. 아무리 잘났다고 할지라도 타락한 후손임에 틀림없기 때문에 본연의 참아버지를 잃어버린 자입니다. 고아입니다. 의지할 곳이 없어 허덕이고 발버둥치는 고아입니다. 마음세계에 있어서는 고아와 같으니 허덕일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본향의 아버지, 그 아버지가 계시는 곳은 내 마음의 본향이요, 안식처입니다. 아버지가 계시는 그곳은 영원한 안식의 자리입니다. 그 아버지와 내가 부자의 인연이 맺어진 입장에서 아버지 집에 와 있다고 하면 아버지가 나가라고 하겠어요?

여러분이 세상의 어떠한 환경에 접하더라도 마음은 그곳을 벗어나려고 하는데, 어디로 가야 합니까? 부모의 품으로, 아버지에게로 가야 합니다. 내 마음은 무엇을 바라고 쉴새없이 나오고 있느뇨? 아버지를 모시기 바라면서 나옵니다. 여러분의 선조들은 여러분의 이러한 마음을 통하여 최후의 결판을 지어야 할 때를 재촉해 왔다는 것입니다.

8-125
예수님이 하고자 하신 일
우리는 마음을 중심삼고 몸까지도 아버지를 부를 수 있어야 됩니다. 이는 내 마음의 아버지요, 몸의 아버지요, 하늘 땅을 대신한 역사적인 아버지가 틀림없구나 하는 입장에서 ‘아버지’라 부르면서, 6천년 동안 돌고 돌며서 응어리진 원통함과 복받치는 한을 터쳐내는 통곡의 장면이 있어야 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런 아버지로 오신 예수를 잡아 죽여 놓고 죽으러 오셨다고…? 기독교의 문제점이 여기에 있습니다.

다른 종교는 아버지가 오시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를 모실 수 있는 아들딸을 세우기 위해 협조하는 종교입니다. 심부름꾼 종교가 많다는 것입니다. 수많은 종교가 있으되 기독교는 아버지적 종교요 부모의 종교이기 때문에 사랑을 말했습니다.

아버지로서 사랑을 해야 할텐데 와가지고 대번에 너는 내 아들이요, 딸이라고 하면서 사랑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왜? 복귀해야 할 일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한입니다. 그 한은 역사적인 한이요, 시대적인 한입니다. 또 우리가 잘못하면 미래적인 한으로 남아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먼저 무엇부터 해결해야 했느냐. 역사적인 한부터 해결해야 했습니다.

예수님 자신은 하늘의 몸을 대신하여 왔지만, 그 마음은 아버지와 하나되기 위해서 싸웠습니다. 마음의 아버지, 무형의 아버지와 하나되기 위해서 싸웠어요. 그렇지만 몸을 쓰고 나타나 이 땅을 주관해야 할 책임을 완결짓지 못하셨으므로 예수님은 지금도 이념을 세우고 세계를 주관하기 위하여 싸워 나오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겠습니다.

예수님이 살아 생전 싸워 완결지어야 할 것인데 완결짓지 못함으로 인하여 영계(靈界)에 가서도 2천년 동안이나 싸워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이 싸움이 끝나는 그때 가서는 무엇을 할 것이뇨? 불변의 사랑, 불변의 생명, 불변의 이념을 가지고 우리를 찾아와 안식의 보금자리를 허락하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재림천국입니다. 뭐 재림이 어떻다고들 하지만 목적은 여기에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땅 위에 와가지고 ‘너는 과연 아버지의 생명을 가진 자로구나, 너는 과연 아버지의 이념을 가진 자로구나, 너는 아버지의 사랑을 가진 자로구나, 오, 나의 아들 딸아’ 하시며 품고 사랑해 봤습니까? 못해 봤습니다.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 헤매던 막달라 마리아가 부활한 예수님을 바라보고 ‘오, 주여’ 할 때 ‘너와 나는 아직까지 거리가 남아 있는 것을 모르느냐, 민족에게 다시 권고하여야겠구나’라고 하신 곡절이 어디 있느뇨? 하늘의 실체로서 하늘 대신 품고 사랑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늘 주권을 대신할 자요, 하늘의 이념과 하늘의 생명을 대신할 자이지만 그런 자리에는 못 갔습니다. 예수님 자신이 그런 자리에 서지 못하였습니다. 왜? 만물을 주관하라던 권한을 땅 위에서 가지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 위에 왔다 갔으되 한을 남기고 갔습니다. 한은 무슨 한? 역사적인 한, 시대적인 한, 미래적인 한을 우리에게 남기고 갔습니다.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이 골고다 산정에 끌려가 십자가에 죽음으로써 모든 것을 다 이루었는 줄 알지만, 가야 할 길이 남아 있습니다. 죽어서도 가야할 길이 남아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죽지 않고는 왜 넘을 수없었던고? 역사를 대신하고 시대를 대신할 수 있는 기반을 못 가졌기 때문입니다.

4천년 역사를 가진 유대교와 택해 세운 이스라엘 민족이 불신했습니다. 과거와 현재가 없이는 미래가 있을 수 없기 때문에 과거의 심정, 시대적인 심정, 미래적인 심정을 해원하지 못하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다시 넘어야 할 예수의 입장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영계에 가서까지도 기도한다는 거예요. 마음이 편안해서 기도해요? 갈 길이 남아 있기 때문에 기도합니다. 아담 해와가 잃어버린 본연의 주권을 회복하고 불변의 사랑과 불변의 생명과 불변의 이념을 갖추지 못하였기 때문에, 예수는 그 목표를 이루는 한 때를 고대하며 2천년 동안 싸워 나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8-127
하나님과 예수님을 대한 믿음의 방법과 목적
우리는 십자가에 돌아가신 예수님을 믿고 있습니다. 십자가에 돌아가신 예수님을 알고 있습니다. 그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역사를 대신했던 예수님, 시대를 대신했던 예수님, 미래를 대신했던 예수님임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는 이러한 예수님에 대한 내용은 안 나와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되 역사적인 하나님, 시대적인 하나님, 미래적인 하나님을 믿어야 되겠습니다. 그런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왔다 가신 이후 2천년 역사가 지났지만 역사적인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누구뇨? 시간을 연하여 역사를 만들어 왔지만 역사적인 하나님을 믿고 그 하나님을 위로할 자가 없습니다. 시대적인 하나님의 심정을 알고 위로할 자가 없고 미래적인 하나님의 심정을 알고 위로할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이 땅에 오셔서 ‘나는 역사적인 하나님의 심정을 위로하기 위하여 왔다’고 해명하고 싶었으나 그러한 해명을 하지 못했습니다. 역사적인 하나님의 심정을 해명하여 현실에 나타내야 되는데, 그것을 나타낼 수 있는 환경이 못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역사적인 하나님의 심정을 알았지만 구약을 믿고 있는 유대교인들에게 가르쳐 주지 못하고 가셨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적이요, 시대적이요, 미래적인 예수님을 믿고, 더 나아가서는 역사적인 하나님의 심정, 시대적인 하나님의 심정, 미래적인 하나님의 심정을 통할 수 있는 자가 땅 위에 제차 나타나지 않는다면 이 땅은 멸망할 것입니다.

오늘날의 외적인 주권 형태를 회복하기 위해서도 6천년이 걸렸거든,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이념을 찾아 세우기 위한 싸움이 몇 천년 걸릴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생명을 찾기 위한 싸움이 몇 천년 걸릴지 모르고 심정을 찾기 위한 싸움이 몇 천년 걸릴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고맙게도 예수님이 이 땅 위에 오셔서 최고의 문제를 해결해 주었습니다.

아버지의 사랑과 인연을 맺으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타락한 인간은 거꿀잡이로 올라가야 됩니다. 떨어졌으니 거꿀잡이로 올라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못 받고 타락의 혈통을 받아 떨어져 버렸으니 거꿀잡이로 올라가야 되는 것입니다. 복귀는 반대의 경로를 밟아갑니다.

여러분이 처음 은혜를 받으면 어떠합니까? 복중에 있던 어린애가 세상에 나오는 것과 마찬가지로 미지의 세계가 보이고 광명한 새 천지를 보게 되니 기뻐합니다. 그런 역사를 지난 후에는 예수를 신랑으로 삼아야 됩니다. 예수님이 보고 싶고 그리워서 눈물을 흘릴 수 있어야 됩니다.

구약시대를 통하여 약속을 해 놓았기 때문에 예수님이 이 땅 위에 오셨습니다. 무엇을 가지고? 사랑을 가지고. 예수님은 하나님의 외아들로 오셨습니다. 하나님의 독생자로 오셔서 이 온 세상을 마음대로 주관하셔야 했는데 그렇게 못하고 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신세가 이렇게 되었습니다. 독생자의 권한이 어디 있습니까? 독생자의 권한을 가지고도 행사해 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아들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뇨? 신랑 신부를 갖추어 가지고 ‘아버지 축복해 주시옵소서’ 할 수 있어야 됩니다. 에덴동산의 타락하지 않은 아담 해와의 입장에서 완성한 기준, 하늘이 기쁨으로 너는 내 아들 딸이라고 축복할 수 있는 그 기준을 복귀해야 된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실 수 있는 자리에 못 갔다는 거예요. 처음 온 사람은 이해가 잘 안 갈 거예요. 아버지의 직접적인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자리에 못 들어갔다는 것입니다. 왜? 신랑 신부를 갖추고 나타나야만 하나님을 대할 수 있게끔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때를 바라보고 2천년 동안 기도하고 계십니다. 무슨 기도를 하시느뇨? ‘하늘이 나와 더불어 축복해 줄 수 있는 신부를 세워 주소서’ 하는 기도를 하신다는 거예요.

신랑 신부를 세워 가지고 무엇을 할 것이뇨? 그 신랑 신부가 하나님을 ‘아버지여’ 하고 부르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은 신랑의 아버지도 되고 신부의 아버지도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신랑으로 나타났으나 신부가 없었습니다. 그러니 신부가 나타나야 됩니다. 요한계시록 22장 17절에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신부의 말씀이 나와야 된다는 뜻입니다.

이 땅 위의 인간들은 신랑되신 예수를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신부와 함께 아버지를 모시지 못하였기 때문에 필시 그럴 수 있는 신부가 나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신랑과 신부가 합하여 둘이 머리를 숙이고 ‘아버님, 잃어버린 아들 딸 대신 찾아진 모습이오니 축복해 주시옵소서’라고 해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런 말 들었어요? 여러분은 예수님을 믿는데,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을 만난 후 그 다음의 목적은 무엇이뇨? 예수님 붙들고 잘 사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예수님을 만난 후에는 그와 더불어 아버지의 축복을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다 해줄 줄 알아요? 예수님은 지금까지 사랑의 권한을 행사해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신랑 신부의 권한은 끝날의 것으로 남아 있기 때문에 그 조건을 갖추기 전에는 신랑 신부로서 하나님 앞에 사랑을 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신랑 신부가 불리울 수 있는 사람이 아직까지 인간 사회에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은 다 아버지를 못 모신 자식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이 양자인지 심부름꾼인지 종인지 알아요? 종이라도 그 주인이 슬퍼하면 눈물을 흘립니다. 양자라도 양부모가 억울하고 분한 일이 있으면 같이 울 것입니다. 신랑 신부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이 예수님이 어떠한 입장인지 알지 못하고, 하나님이 슬퍼하시는지 기뻐하시는지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아버지라 부르는 것은 천만부당한 일입니다. 심정을 통해야 됩니다.

역사를 지배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뇨? 어떤 진리가 아닙니다. 어떤 사상이 아니예요. 심정입니다. 역사의 배후에는 하늘의 6천년 심정이 들어 있습니다. 이것이 이 땅 위에 실체와 더불어, 말씀과 더불어 나타날 때는 역사적인 모든 문제는 해결될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럴 게 아니예요.

예수님을 믿는 목적은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시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로 모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와서 신랑 신부의 과정을 거쳐 가지고 무엇을 해야 합니까. 잃어버렸던 참부모를 복귀해야 합니다. 인류의 참아버지 노릇을 해야 됩니다. 거꿀잡이로 갖다 맞추어야 합니다. 복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복귀.

8-130
하나님을 모시는 방법
예수님도 하나님을 모시는데 있어서는 신부와 더불어 모셔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똑똑히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영계에 가셔서 아버지를 모시고 같이 살고 의논하는 입장에 서지 못하고 지금까지 기도한다고 했습니다. 이 기도의 담을 헐어버리고 영원한 천국에서 하나님과 더불어 하나의 천국 가정에서 안식하려면 예수님은 신부를 갖추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는 천적인 사명을 종결지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의 섭리의 뜻과 사정은 통할 수 있었으되 영원한 생명을 통할 수 있는 사랑은 통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섭리의 뜻과 사정은 통할 수 있었으되 심정을 통할 수 있는 경지에는 못 들어갔습니다. 왜? 심정을 통하려면 신랑 신부가 결정돼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그 분야는 모른다고 했습니다. 모를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하나님을 영원한 생명을 중심삼고, 사랑을 중심삼고, 이념을 중심삼고 아버지로 모시지 못하였습니다. 사실이 그렇잖아요. 여러분, 그런 관점에서 성경을 자세히 보세요. 신랑 신부를 갖추지 못하면 영계에서도 빠집니다. 이 사람의 말이 그럴 것 같다가 아니라 그렇다는 것입니다. 사실이 그래요.

우리는 예수님과 하나님에게 맺혀진 한을 풀어드려야 할 책임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까지 6천년 동안 하늘 땅에 곡절을 사무치게 한 것이 우리의 선조들이요, 우리들이니, 끝날의 우리들은 이것을 해원해 드리기 위해서 나서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이 하늘과 땅은 내 것이야’ 할 수 있는 무엇을 가져야 합니다.

아무리 사탄 장군이 와서 아니라고 우겨도 ‘이러이러하기 때문에 하늘 땅은 내 것이야’ 하고 증명할 수 있는 자료를 가져야 됩니다. 이것을 갖지 못하는 한 하늘의 주권시대가 올 수 없습니다.

지금의 때는 세계적인 때입니다. 하나의 세계를 지향해 나가고 있는데, ‘하늘 땅은 영원히 내 것이야’ 하고 주장할 수 있는 자가 나와야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주장을 가지고 오시는 분이 재림 예수님이라는 것입니다. 그를 모셔야 됩니다.

그러면 그 재림 예수님을 만나 가지고는 무엇을 할 것이뇨? 이 하늘 땅만 내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사랑과 아버지의 생명과 아버지의 이념이 내 것이야’ 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즉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생명과 하나님의 이념이 내 것이 된 후에라야만 세계는 자리잡고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내가 예수 믿습니다’ 한다고 해서 6천년 동안 하나님과 예수님을 대하여 싸우던 사탄이 부들부들 떨면서 도망갈 것 같애요? 천만부당한 생각입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을 대해 싸우고 있는 사탄이 여러분이 예수 믿는다고 해서 도망갈 것 같습니까? 예수님의 심정을 통하고 하나님의 심정을 통해야 도망간다는 것입니다. 암만 예수를 믿는다고 해도 소용없습니다.

이 하늘 땅은 내 것이라는 신념을 일으켜 줄 수 있는 그 무엇을 없다 할진대는 또 가야 됩니다. 통일교회에 없으면 또 찾아야 돼요. 어떤 교단에서 그런 신념을 일으켜 주지 못하고 확실한 기준을 세워주지 못하는 한 그 교단 혹은 그런 자리를 박차고 넘어가야 됩니다. 원칙이 그렇습니다. 하늘 땅을 내 것이야 할 수 있는 내용을 가진 하늘의 아들딸들이 있어야만 이 세상이 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참소하던 사탄, 아브라함을 유린하던 사탄, 모세를 중심삼은 60만 대중을 몰살시킨 사탄, 예수 이후 지금까지 기독교인들을 학살시킨 사탄을 하나님 앞에 끌고 가서 심판을 해야 됩니다. 사탄이한테 끌려 가 하나님 앞에 심판받지 말고 사탄이를 끌어다가 ‘하나님, 왜 이 사탄이를 지금까지 살려 놓았습니까? 이놈을 인류역사에서 뽑아 버립시다’ 하는 아들딸이 나오면 하나님은 통곡하면서 ‘오냐, 내 아들 딸아’ 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 선조들이 사탄에게 참소받아 가지고 유린당하고 학살의 제물이 되어 나온 한을 풀어야 하는 것이 기독교 신도요, 도의 길을 가는 사람이라 할진대, 그들은 이 사탄의 정체를 해명하여야 되고, 역사적인 하나님의 심정과 시대적인 하나님의 심정, 미래를 걱정하시는 하나님의 심정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눈물 흘리시며 ‘오! 내 아들 딸아’ 할수 있어야만 이 세상은 돌아간다는 거예요.

8-132
하나님이 찾으시는 인간
그런 입장에서 세상은 내 것이다, 우리 것이다 할 수 있는 무리가 어디 있느뇨? 사람이 언제 한번 하늘 땅을 주관해 보았어요? 끝날이 가까와 하나의 세계를 지향하니, 아담 해와에게 축복했던 그 뜻을 실현할 때가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둘이 싸웁니다. 이는 최고의 시대가 왔기 때문입니다. 이제 모든 것을 해결지어 넘어가야 할 때가 앞으로 올 새시대입니다. 그때는 싸움이 없는 시대입니다.

그러면 이 하늘 땅도 내 것이고, 이 모든 산천도 내 것이기 때문에 풀한 포기도 내 것으로 사랑할 줄 알아야 됩니다. 나무 한 그루도 사랑할 줄 알아야 되고, 흙 한 줌을 대하여도 얼마나 슬퍼했느냐고 하며 사랑할 줄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은 얼마나 불쌍합니까? 또 이 인류는 얼마나 불쌍합니까? 하늘 땅의 모든 존재를 규합시켜 가지고 온 천주를 대신하여 하나님을 위로해 드릴 수 있는 자가 아니고는 예수님이 찾고 있는 신부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하늘 땅만이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생명 하나님의 이념까지도 내 것이라고 할 수 있는 자리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그래야만 이 땅을 찾기 위하여 수많은 고생을 했던 하나님의 마음을 살필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이 나오면 이 땅의 주인을 복귀하기 위하여 이념에 굶주리고 심정에 굶주리고 생명에 상처를 입은 하나님도 기뻐하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한 사람을 잃어버렸으니 한 사람을 찾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역사적인 새로운 주의가 여러 사람이 종합해서 나온 것입니까? 역사가 그래요? 여러 사람이 합동으로 ‘우리 이러이러한 주의를 만들자’ 해 가지고 세운 주장이 역사를 지배한 적이 있어요? 새로운 주의는 한 사람에서부터 출발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소원은 무엇이뇨? 에덴에 우리의 조상을 만물의 주인으로 세우고, 하나의 심정, 하나의 사랑, 하나의 이념과 하나의 생명을 갖춘 하나님의 불변의 대상으로 세우려 했던 것입니다. 그것이 창조목적인 것을 여러분이 알고 있습니다.

그런 한분을 택하게 되니 독생자입니다. 독생자는 둘이 있을 수 없어요. 우리 인류의 조상이 그런 하나의 대상이 못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마음을 갈래갈래 찢어 놓았던 것입니다. 이것을 다 수습하고 이것을 종합해 가지고 ‘아버지, 역사적인 아버지의 모든 심정을 다 알았고 내가 이러한 위치에 섰습니다’ 할 수 있는 아버지의 대신 존재가 나와야 합니다. 잃어버릴 때도 하나에서부터였으니 찾을 때도 하나로부터 찾는 것입니다. 이것이 역사입니다.

8-133
하나님을 모실 수 있는 존재
그렇기 때문에 끝날에 처해 있는 우리들은 이런 관점에서 세계를 관찰하고 역사의 흐름을 관찰해야 됩니다. 역사를 보면, 과거는 국가주의시대요, 땅주의 시대였습니다. 일개 국가나 민족이 국토를 중심삼고 싸운 시대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시대는 사상주의 시대입니다. 앞으로는 심정주의 시대입니다. 역사는 그렇게 진전되고 있어요.

복귀의 역사이기 때문에 과거에는 땅 빼앗기 즉, 몸 빼앗기 싸움을 했고, 지금은 마음 빼앗기 위한 싸움의 시대이고 사상주의 시대와 정신주의 시대입니다. 그 다음에는 마음과 몸이 하나되어 한꺼번에 부딪칠 수 있는 심정주의 시대입니다. 역사는 그 시대를 향해 가고 있습니다.

도를 믿는 사람들은 아직까지 세계적인 운동에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국가가 동원되고 모든 사상 주의가 동원되어 직접 세계를 움직이고 있으되 아직까지 도의 세계 사람들은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도의 세계 사람들이 등장할 때가 오나니 그때 하나님의 심정을 붙들고 등장한다는 것입니다. 심정을 붙들고 운행할 때가 와요. 마음은 왔다 갔다 하지요. 마음은 왔다 갔다 하기 때문에 좌우주의입니다. 그러나 심정은 둘이 아니고 하나입니다. 그 하나의 심정을 상대로 하여 역사하시는 하나님이니 사랑을 다리 놓지 않고는 하나님에게 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연결시키기 위한 사람이 도인이요, 도인 중에서도 예수님이란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나는 독생자요, 신랑이요, 너희는 신부,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말씀하신 뜻이 다른 데 있는 게 아닙니다.

우리는 내 마음이 왔다 갔다 하는 모순권내에서 빠져 나갈래야 나갈 수 없고 움직일래야 움직일 수 없는 처지에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역사를 대신하여 시대를 대신하여 미래를 대신하여 사탄을 참소할 수 있는 검사(檢事)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한을 푸시옵소서’ 할 수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찾아나온 하나님을 모실 수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모실 수 있는 존재.

온 피조만물이 바라는 것은 이러한 주인이 나오면 그 주인을 중심삼고 하나님과 종적인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그 종적인 관계를 중심삼고 하나님의 생명이 연결되고, 하나님의 이념이 연결되고, 하나님의 사랑이 연결된 천적인 통일우주가 되면 사탄이 주관하던 세계는 끝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더불어 심정의 안식처를 갖고, 하나님과 더불어 생명의 안식처를 갖고, 하나님과 더불어 이념의 안식처를 갖고 하나님을 위해서 권한을 행사해야 할 피조물인 연고로, 모든 만물은 그날을 향하여 움직여 나온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모든 존재물은 하나님을 모시기 위하여 달려 나왔다는 것입니다.

과거로부터 달려나온 그것을 이어받아 가지고 달리는 어떠한 선지자가 있으면 박수를 치면서 잘 달려 주기를 고대하고 있는 것이 영계(靈界)입니다. 과거에 아브라함이 다 뛰었느냐? 아닙니다. 아브라함이 뛰다가 남은 부분을 우리 자신이 뛰어야 합니다. 아버지를 향해 뛰어야 합니다. 뛰는 데는 원수들에 의해 쓰러질 수도 있습니다. 그렇잖아요, 여러분? 그런 놀음이예요.

더 나아가 이것을 이어받은 사람에게 잘 뛰라고 박수를 쳐야 할 것입니다. 영계에 가 있는 수많은 선한 사람들은 그곳을 간절히 바라고 있고, 여러분의 마음도 그곳을 향해서 움직이기 때문에 ‘선의 세계가 오면 얼마나 좋을고’하는 마음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8-135
최후의 종착점을 향하여 뛰어야 할 우리
4천년 동안 달려오다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 뛰었습니다. 뛰는데 그 백성들이 ‘잘 뛰시오, 잘 뛰시오’ 했습니까? 영계에 있는 수많은 선지들은 잘 뛰시오 하고 권하고 있는데, 지상에 있는 택한 선민들이 창을 들고서 달리고 있는 예수님의 옆구리를 찔렀습니다. 그래 놓고도 잘 했다고 합니다. 예수님이 죽으러 왔다고요.

그리하여 쓰러진 예수님은 자기 대신 성신을 보내가지고 ‘내 대신 달려 주소’ 하는 것입니다. 역대의 선지선열들과 하나님도 ‘성신이 책임을 지고 달려 주소’합니다. 언제까지? 아버지 만날 때까지. 달리는 성신의 뒤를 바라보면서 한탄하고 있는 예수입니다.

만반의 준비를 다하여 무한히 달릴 수 있는 하늘의 아들 딸들이 나와야 할 때가 끝날입니다. 여러분은 성신의 그 음성을 붙들고 목표를 향해 달릴 수 있는 신념이 서 있느냐, 문제는 여기에 있습니다. 어때요? ‘아버지, 어떤 일이 있더라도 달려가겠습니다’ 해야 합니다. 알고 보니 이 판국이라는 것입니다. 이 길을 나선 사람이 뭐 바라볼 것이 있어요? 다리가 부러지든지 어떻든간에 그 기준을 향하여 달려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연결지어 가지고 역사적인 뜀뛰기노정을 종결짓는 것이 하늘 땅의 소원입니다.

기독교가 2천년 동안 수고한 것은 고마운 일인데, 기독교를 대신하여 성신을 대신하여 뛸 자는 어디 있느뇨? 성신이 불쌍하잖아요? 예수를 대신하여 뛸 자는 어디 있느뇨? 하나님 대신하여 뛸 자는 어디 있느뇨? 그러한 자가 나왔다 할진대, 하나님이 ‘야, 이놈아, 이 망령된 자식아’ 라고 하실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성신 대신, 예수님 대신 뛰어 주고, 역사와 시대와 미래를 대신하여 뜀뛰기해 줄 수 있는 하늘의 정병이 나오기를 하나님이 얼마나 고대하고 계시는가를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는 최후의 종착점을 향하여 달려야 할 무리들입니다. 한국 백성이 비록 천하고 불쌍한 자리에 있을 망정, 하늘의 심정을 통하고 하늘을 대신하여 달려나오는 예수와 성신의 심정을 받들고 일선에 나서서 달린다 할진대, 그로 말미암아 세계를 지배할 수 있을 것입니다. 틀림없습니다.

많고 적고가 문제가 아닙니다. 구경하는 사람이 문제가 아니예요. 경기장에 구경하는 수억만 군중이 있어도 그걸 안 봐요. 자기편에서 달리고 있는 그 한 사람만 바라본다는 거예요.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영계에서 구경하는 수많은 사람들보다도 땅 위에서 달리는 한 사람을 바라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많은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구경꾼이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여러분, 구경꾼 같은 신자가 많습니다. 그것은 다 흩어져요. 안식처와 관계없고 복이나 상과 하등의 관계가 없습니다. 한분을 위하여 심정을 기울이고 마음 졸이고 피살이 약동하는 그러한 무리를 찾으십니다. 하늘은 그가 기뻐하면 같이 기뻐합니다. 세상에서도 그렇잖아요?

역사의 흐름에 있어서 종교적인 올림픽대회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진리나 말씀은 얼마든지 하늘에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마음 속에 진리가 없어서 걱정하는 줄 알아요? 진리는 무궁무진해요. 하나의 실체(實體)가 없어서 걱정이예요. 하나님의 심정을 가진 하나의 실체가 나와 ‘아버지’ 할 때 ‘오냐, 내 아들 딸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역사의 한(恨)을 대신하여 슬퍼하고 새나라의 출발을 기뻐하며 ‘아버지 수고하셨습니다’ 할 때 ‘오냐 수고하였구나’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지상에 나타나지 않는 한 이 땅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양심적이요, 도를 믿는 사람들이 이런 무리를 옹호하고 협력합니까? 원수의 편에서는 그런 무리를 총검으로 찌르려고 할 것이고, 어떤 사람이라도 거꾸러뜨리려고 할 것입니다. 서글프고 외로운 하늘의 경주에 이 지상에서는 한 사람밖에 안 뛰었습니다. 사탄의 경주에는 수억만 군중이 달렸으되 하늘 경주에 달린 사람은 한 사람이었습니다. 한 사람. 동지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발길에 차이고 쓰러지는 경주마당에서 한 사람이 달렸습니다. 이것을 바라보는 영계는 분해하고 원통해 했습니다. 땅 위에 사무친 이 한을 풀고 원수들의 모진 화살을 받아가면서도 이 길을 달리어 하나님을 중심삼고 골인할 수 있는 하나의 주인공이 나와야 된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그를 통하여 하나님의 본연의 사랑, 하나님의 본연의 생명, 하나님의 본연의 이념, 하나님의 본연의 주권이 이 지상에 자리를 잡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이 땅을 내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까? 생각하지 못했다면 여러분은 하늘의 역적입니다. 이 땅은 민주주의의 것도 아니요, 공산주의의 것도 아닙니다. 내 것입니다. 내 아버지 것이예요.

세계 인류의 마음은 행복의 동산을 향해 움직여 나가고 있습니다. 그 마음은 사랑을 중심삼고 안식하고, 생명을 중심삼고 안식하고, 이념을 중심삼고 안식하고, 주권을 중심삼고 안식하고 싶어합니다. 그런데 지금 그런 것을 중심삼고 안식해요? 어느 때, 어느 누가 그것을 빼앗아 갈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내 생명을 어느 누가 빼앗아갈지 모르기 때문에 기도해야 하고……. 우리는 그렇게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8-137
아버지께서 안식하시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아무리 잘났다고 해도 권한에 대한 공포, 이념에 대한 공포, 생명에 대한 공포, 심정에 대한 공포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타락의 선물입니다. 이것을 걷어 치우고 하늘의 심정과 생명과 이념을 중심삼은 주권시대가 올 것입니다. 그 시대가 오기 전에 우리는 이 시대에 그런 기준을 갖추어야 되겠습니다. 그래야만 그 시대를 맞을 수 있지, 준비하지 않고 맞을 수 있겠어요? 하나님이 준비해 놓았다고 해서 맞을 것 같습니까?

이제 끝날이 되어 오매, 그런 무리가 땅 위의 어느 한 곳에라도 있을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고 있는 사람도 그런 것을 알았기 때문에 욕을 먹고 쫓김을 받고 별의별 일을 다 겪으면서도 나오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지극히 불쌍한 자들입니다. 그러기에 때로는 ‘분함을 참고 나가라, 하나님이 분하다. 억울함을 당해라’ 합니다. 입이 있어도 말을 못해요. 말할 수 있는 입이 없고 마음이 없어서 그러는 게 아니예요. 기필코 한 때가 옵니다. 이 땅과 이 주의를, 이 생명과 심정을 처리할 때가 있거늘, ‘아버님 그 한날까지 참아 주시옵소서’ 하고 하늘을 억제시켜 나가는 아들 딸들이 땅 위에 많이 나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끝날에 모여야만 하늘 땅이 비로소 하나님 모시고 안식의 자리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8-138
기 도
어찌 하오리까. 불신의 땅을 위하여 얼마나 수고하셨습니까? 불신의 땅을 향하여 얼마나 한탄하셨으며, 배반의 종족을 대할 때마다 얼마나 억울하셨습니까? 감히 알만 하나이다.

하늘의 깊은 성상(性相)을 바라보지 못하는 저희들이 밟히고 피눈물이 어리는 행로를 걸을지언정 한스러울 것이 어디 있겠나이까?

죄라면 아버지를 안 죄였고, 남 모르는 가운데 아버지와 인연되어 있다는 것이 죄일 것입니다. 하늘이 좋다 하는 길이기에 낙심할 수도 없는 것이요, 분히 여길 수도 없는 사정임을, 아버지, 잘 아옵니다. 역사노정이 그러하였다는 사실을 알기에 감사하옵니다. 역사적인 아버지가 그렇다는 것을 알려 주시니 감사하옵니다. 시대적인 아버지가 이렇다는 것을 알게 되니 감사하옵니다. 미래를 위하여 염려하신 아버지에 대해 감사하옵니다.

아버지를 모시기 위한 역사의 노정이옵고, 아버지를 모시기 위한 피조만물임을 인간들은 모르고 있습니다. 아버지를 모셔 놓고, 유일한 아버지의 사랑과 더불어, 불변한 아버지의 사랑과 더불어 영원한 아버지의 생명과 이념과 주권을 노래할 수 있는 한날이 천지간에 오기를 얼마나 고대하였습니까?

저도 이 길을 알았기에 이 길을 가고 있사온데, 이 길을 가는 자의 뒤를 따르고 있는 이들은 불쌍한 자들이옵니다. 이러한 저희들을 누가 위안하여 주며, 누가 권고하여 주겠습니까? 주위 사람 중에 저희들의 편이 될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의롭다면 저희와 같이 외로운 자가 어디 있으며, 하늘이 없고 아버지가 없다면 저희와 같이 억울한 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말할 것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고, 분하여도 분한 것을 표시 못하는 하늘의 심정을 알고, 오늘 이때까지 나온 저희들을 때와 시기는 무시하고 영원히 버려두지 않을 것을 알고 있습니다.

오늘 이 길을 가는 사람들 가운데 지친 자기 있사옵니까? 조금 남은 때를 힘차게 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허덕이는 자가 있사옵니까? 멀지 않은 장래에 아버지의 음성이 들려옴을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은 과거에 아버지 앞에 너무나 불충하였습니다. 하나님을 붙들고 울다가 죽은들 어찌 한이 되겠습니까? 뜻을 위해 밟히고 피와 살을 에이고 피눈물을 흘린다 할지라도 어찌 분함이 있겠습니까? 이미 작정한 몸이었사오니 아버지 뜻을 이룬다 할진대는 못할 일이 어디 있사오며, 못 갈 길이 어디 있겠습니까?

오늘 여기에 모인 당신의 아들 딸들, 이 하나의 소원 성취를 위하여 죽든지 살든지 그 자신을 제물로 바치겠다 하고, 아버지께 생명을 돌려드리겠나이다 하는 하늘의 참다운 아들 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가짜들이 많습니다. 참 것이 없는 이 땅에 참다운 아들 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남겨 놓은 십자가의 고개를 넘기에 힘이 부족하거든 아버지를 앞에 세우고 달음질칠 수 있는 하늘의 정병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은 갈 길을 이미 알았사옵고, 하늘의 참사랑과 생명과 이념과 주권이 저희를 위하여 오고 간 것을 알았사옵니다. 그것을 향한 길이 인류가 사는 길이요, 역사적인 우리의 선조들이 간 길이요, 시대적인 우리의 동지들이 가야 할 길이요, 미래의 우리의 후손들이 가야 할 길이옵니다. 그 길을 가는 것이 복의 원천이라 할진대, 사탄 대하여 늠름하고 자신 있게 진군할 줄 아는 아버지의 아들 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올 때, 모든 말씀 주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