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7 to 8-32: 선물인 줄 아는 우리가 되자

선물인 줄 아는 우리가 되자
1959.10.25 (일), 한국 전본부교회

8-07
선물인 줄 아는 우리가 되자
창세기 1:24-31

[기 도]

저희의 됨됨이가 과연 아버지 앞에 드려질 수 있는지 염려하지 않을 수 없사옵고, 허락하신 아버지의 은사를 받을 수 있는 마음과 몸이 되어 있는지 저희들 스스로를 굽어 살펴볼 때, 민망한 마음으로 머리 숙이지 않을 수 없사오니 긍휼히 여겨 주시옵소서.

지금까지 자기 자신의 갈길을 헤아릴 줄 아는 자를 버리신 적이 없는 아버지요, 슬픔의 자리에서도 자기를 뉘우치면서 살겠다고 발버둥치는 어떠한 개인이나 민족을 버리지 않으시는 아버지이심을 저희들은 아옵니다. 아버지, 비록 저희의 마음과 몸은 아버지와 먼 거리에 있사오나, 아버지께서는 저희의 마음속에 계시기를 고대하시는 줄 알고 있사옵니다. 저희의 몸을 직접 주관하실 수 있는 한날을 바라시는 아버지의 마음이 크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고, 심정과 마음을 통하여 저희와 인연맺기를 고대해 오셨던 역사적인 아버지요, 시대적인 아버지요, 미래에도 저희들을 버리실 수 없는 창조의 인연을 가지신 아버지이신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그런 입장에 놓여 있는 저희들이옵고, 그러한 저희를 대하셔야 할 아버지이옵니다. 이 인연은 무엇으로도 끊을 수 없기에 아버님께서는 슬퍼도 괴로와도 분하여도 이것들을 붙안고 뒤넘이치며 역사노정을 거쳐오셨다는 것을 저희들이 알고 있사옵니다. 이 시간 다시 한번 저희들에게 긍휼을 베풀어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지 앞에 감히 설 자가 누가 있사오며, 아버지 앞에 설 수 있노라고 자신할 자가 누가 있사옵니까? 가면 갈수록, 알면 알수록 살을 에이는 듯한 하늘의 슬픔을 느끼지 않을 자가 없을 줄 알고 있사옵니다. 감히 얼굴을 들 수 없고, 감히 몸 둘 바를 모르게 하는 황공한 아버지의 성상이 계시고 아버지의 심정이 있사오며, 아버지의 수고의 흔적이 있다는 것을 아는 자가 없었사온데, 저희들이 그와 같은 사실을 알 수 있게 키워 주심을 감사하옵니다.

가르침을 받아 알았사옵고, 배워서 알았사옵니다. 이것은 누구로 말미암은 것이었사옵니까. 저희들이 잘나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니었사옵고, 저희가 갖출 바를 갖추어서 그렇게 된 것도 아니었사옵니다. 역사적으로 선을 흠모하던 수많은 선조들이 하늘과 맺은 인연이 저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저희들에게 미쳐져 그렇게 되었음을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오늘의 저희는 오늘의 저희만이 아닌 것을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그 인연을 존중할 줄 알고 그 인연과 더불어 즐길 줄 아는 사람이 되고, 그 인연을 배반하는 자가 되지 말게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그 인연 가운데 스며들어 심중으로 그 인연을 노래하고 아버지를 드러내어 아버지 앞에 영광을 돌릴 줄 아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님, 저희의 마음이 어떠한 위치에 있습니까? 저희의 몸은 무엇을 기다리고 있고, 무엇에 의하여 움직이고 있고, 어디에 처하기를 바라는가 스스로 생각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고요한 가운데에서 아버님은 이 시간도 생명의 가치를 느끼도록 재촉하고 계신다는 것을 저희들이 마음으로 느끼게 하여 주시옵고, 인간들이 자신의 생명만을 붙들고 허덕이는 비참사(悲慘事) 때문에 그를 바라보며 슬퍼하실 수밖에 없는 아버지이심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의 심정이나 마음의 세계를 지배하시는 아버지, 친히 오시어서 이 시간 저희들 전체를 본성적으로 지배하여 주시옵고, 본질적으로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본성의 사람, 본질의 사람과 선을 대하여 즐거워하며 선의 말씀에 화하는 사람이 되어 마음으로 몸으로 아버지와 화할 수 있는 자리에 서게 하여 주시옵고, 저희에게 새로운 말씀을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제 여기에 아버지의 말씀을 나타내고자 하오나 무슨 말씀을 하오리까. 이미 많은 말씀을 하셨사옵니다만 말씀의 가치를 찾아야 할 사명을 오늘 이 시점에 저희들의 마음과 몸을 통하여 알리고자 하시는 것을 알게 될 때, 부족한 것 이루 말할 수 없사옵니다. 그러나 다시 살아야 할 인간이옵기에 같은 말이라도 해서 다시 권고함을 받아야 할 저희들인 것을 알게 되옵니다. 아버지와 끊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생명의 말씀을 받아야 할 저희들, 염치불고한 마음과 부족한 마음 갖고 아버지 앞에 엎드렸사오니, 전하고자 하는 마음과 받고자 하는 마음이 하나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잘난 사람이 어디 있고 못난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심정을 통하여서는 하나인 것을 알고 있사오니, 하늘의 심정에 동하고 정할 수 있으며 화하고 응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아버지의 영광만이 저희 전체의 생명 앞에 나타나시옵고, 아버지의 생명의 은사가 저희의 심중 깊이깊이 스며들게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저희의 마음과 심정을 움직여 주시어서 영원한 생애노정을 개척하고, 복귀의 한을 풀려는 새로운 각오와 결심이 저희의 심중으로부터 폭발되는 이 시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고 원하옵나이다.

이 시간 남한 각지에 널려 있는 외로운 식구들이 민족을 위해 간곡히 기도하고 있을 줄 알고 있사오니, 아버님께서 그들의 친구가 되시옵고, 그들 앞에 은사의 주체가 되시옵소서. 친히 주관하여 주시옵고, 눈물을 흘린다 할진대 아버지를 대신하여 흘릴 수 있고, 한스러운 일이 있다 할진대 먼저 아버지의 한을 생각할 수 있고, 수고를 한다 할진대 아버지를 대신해 수고하여 이 민족 앞에 새로운 피살의 터전을 세우고도 남을 수 있는 아들 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하늘의 은사를 대할 수 있는 축복의 시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 시간 머리 숙인 억조창생 위에도 생명의 권한을 허락해 주시옵고, 천상에 있는 수많은 당신의 아들딸들도 저희와 화합하여 승리적인 영광의 한 터전을 세우는 데 협조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하올 때, 모든 말씀 주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8-10
말 씀
오늘 잠깐 생각하려는 제목은 ‘선물인 줄 아는 우리가 되자’입니다. ‘선물인 줄 아는 우리가 되자’ 이러한 제목을 가지고 말씀드리겠습니다.

8-10
인연권내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인간
여러분은 자기를 몹시 중요하게 여깁니다. 살아도 자기를 중심삼고 살려 하고, 모든 세상이 자기를 중심삼고 되어졌으면 하고 항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제일가는 위치에 있고 싶어하는 것이 우리 자신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만큼 자신이 귀하다면 말할 수 없이 귀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는 인간 자신의 귀한 가치를 알고 자신은 세계를 주고도 바꿀 수 없다고 피력했습니다. 하나님도 우리들 자신이 무한한 가치를 갖추었을 때는 우리의 한 개체를 하나님의 성전으로 만들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생애노정에서 허덕이며 신앙생활을 하는 목적이 어디 있느냐. 내 자체는 전체의 가치와 연하려는 목적관에 의해서 움직이고 있는 것을 우리는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나를 두고 보게 될 때 위로는 하늘이 있고 아래로는 땅이 있습니다. 좌우로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과 가족 그리고 종족이 있고, 전후로는 선조와 후손이 있습니다. 이렇게 상하 전후 좌우를 볼 때, 나라는 존재는 엄연한 인연권내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스스로 느끼며 살아왔지만 이 시간 우리는 그것을 다시 한번 느껴야 되겠습니다.

위를 바라보나 아래를 바라보나 전후를 바라보나 좌우를 바라보나 그 모든 것이 나와 인연되어 있습니다. 또한 이 인연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생명을 가지고 가는 생애노정, 즉 일생 동안의 인연인 것입니다. 아니 더 나아가서는 역사 이래 지금까지 인연되어 왔고, 오늘의 나를 지나서 천추만대의 후손까지 인연되어야 할 그러한 인연의 제단 위에 올라가 있는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우리는 생각해야 될 것입니다.

이러한 내가 깨어지는 날에는 나를 중심삼은 하늘의 인연이 깨어질 것이고, 땅의 인연이 깨어질 것이고, 세계 혹은 종족과 가정의 모든 인연이 깨어질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을 두고 하늘과 땅을 대신한 소우주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내 마음은 하늘을 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내 몸은 땅덩이를 차지하고 싶어합니다. 또한 나는 천지의 그 무엇으로도 막아낼 수 없는 주권자, 대표자의 심정에 의해 움직이고자 합니다. 이러한 나, 이러한 인연을 가진 우리를 깊이 해부해 들어가면 무한히 가치 있는 존재요, 무한히 큰 존재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우리는 왜 태어났느냐. 목적 없이 태어나지는 않았습니다. 여러분이 아침에 일어나 무심코 떠먹는 밥 한술도 목적 없이 먹혀지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하루의 생활을 영위하고 활동하는 것도 그런 심각한 견지에서 보게 되면 중차대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움직이고 있는 것입니다.

내 개체를 중심삼고 봐도 그렇거든, 위로는 하늘이 있고 아래로는 땅이 있고 세상만사가 있는데, 그 모든 것이 어떤 목적과 이념을 가지고 움직이지 않는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이 모든 움직임은 우리 인간 즉, 내 자체를 걸어놓고 판가리를 하고 있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 자신들은 하늘 땅, 전세계 앞에 판가리할 수 있는 대표적인 제물의 입장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여러분이 제물로서의 책임을 다하면 하늘과 땅이 선의 권내에 들어갈 수 있는 길을 열어 줄 것이로되, 만일 그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날에는 하늘 땅 앞에 배반자의 입장에 서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심정을 느끼고 나타나 책임을 지고 움직였던 사람들이 역사적인 인물임에 틀림없습니다.

8-11
하늘의 선물로 보내심을 입은 인간
여러분들은 이 땅 위에 보내심을 입었습니다. 부모의 혈육을 통하여 태어났습니다. 이러한 ‘나’라는 자체는 천지가 옹호하여 하나의 승리의 모습으로 세우기 위해 이 땅 위에 보낸 지극히 숭고한 선물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천주적인 견지에서 종족을 대표하든가 민족을 대표하든가 국가를 대표하든가 간에 하늘의 선물로 보내심을 입은 자가 바로 여러분 자신이라는 것을 생각하여 보십시오.

내 몸, 내 마음, 내 이념, 내 심정 이 모든 것이 내 것에서부터 시작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나 한 자체를 파고 들어가면 선조가 연결돼 나오게 되고 이 인연을 파고 들어가면 오늘날까지의 인류역사가 딸려 나옵니다. 이 인연에 이끌려 들어가 뒤넘이치는 입장에 있는 나 자신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자신을 소홀히 생각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내 자신은 내 것 같으면서도 내 것이 아닙니다. 이 민족 앞에는 민족을 위하여 보내진 선물이요, 가정 앞에는 가정을 위하여 보내진 선물이요, 부부에 있어서는 상대를 위하여 보내진 선물이요, 하늘 땅, 전세계에 있어서는 각기 그것들을 위해 보내진 하나의 선물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개인에 있어서 자신을 보십시오. 사람들은 말하기를 마음은 하늘을 상징하고 몸은 땅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그러면 오늘 하늘과 땅, 이 천주는 무엇을 중심삼고 움직일 것이뇨. 이념입니다. 그 이념은 생활하는 데 있어서의 관(觀)입니다. 이 생활관은 나를 중심한 생활관이 아니라 하늘 땅을 중심한 생활권이어야 되는 것입니다. 즉 하늘 땅을 중심한 생활이어야만 된다는 것입니다.

본래의 내 한 개체는 하늘 땅을 대신하여 빚어졌음을 알아야 됩니다. 나는 무의미하게 걷고, 무의미하게 움직이고 있으되, 나 하나를 빚어내기 위해서 하늘 땅 전체가 동원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우리에게는 부모가 셋이 있습니다. 첫째는 이 땅이 우리의 부모입니다. 몸뚱이를 빚어주고 낳아서 기를 수 있는 터전이 땅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라면 나라, 세계면 세계가 땅을 향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음에는 나의 육신을 낳아준 부모가 있습니다. 또 그 다음에는 내 마음의 부모가 있습니다. 내 마음의 부모. 이 세 부모를 망각해서는 안 될 인간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내 몸은 땅을 상징하고 내 마음은 하늘을 상징하거늘, 이 마음과 몸은 어떻게 되어야 하느냐. 영원히 일체를 이루어 서로 품고 나가야 됩니다. 마음은 주체요 몸은 대상이며, 하늘은 주체요 땅은 대상이니, 하늘과 땅이 서로 품고 화하여 나아가야 되는 것이 창조의 원칙입니다.

천지를 창조한 창조주가 있다 할진대, 그 창조주는 만상을 왜 지었을 것이고. 그냥 동떨어지게 내버려 두고 구경이나 하려고 지은 것이 아닙니다. 그 지으신 만상을 상대적인 입장에 놓고 함께 영원히 주고 받으며 화하기 위하여, 영원히 움직이기 위하여 지으신 세계인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하늘과 땅에 의해 빚어진 몸과 마음이 영원히 품고 즐길 수 있는 그 하나의 모습은 어디 있을 것인가를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무리 똑똑하고 아무리 어떠한 권한을 갖추었다고 자랑하는 사람이 있다 할지라도 그 몸과 마음이 상충된 경지에 있다 할진대, 이는 창조이념으로 부여된 천적인 선물을 유린한 자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는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는 내 안에 있고 나는 아버지 안에 있으며 나는 너희 안에 있고 너희는 내 안에 있다’고. 이것은 무엇을 중심하고 그렇게 될 수 있느냐. 몸을 중심하고 그렇게 될 수 있느냐. 아닙니다. 그러면 이념을 중심하고 그렇게 될 수 있느냐. 아니예 요. 우리의 마음과 심정의 세계를 중심하고 그렇게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또 말씀하시기를 ‘천국은 네 마음에 있다’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마음 세계는 무한의 인연을 노래하고, 우리의 심정은 무한한 감미와 무한한 충족을 자랑할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 연고로 오늘의 우리들은 하늘 땅을 대신하여 보내심을 입은 귀한 선물입니다. 귀한 선물이 자신임을 여러분은 생각해 보았습니까? 선물된 자신을 생각해 보았습니가?

무슨 종교도 좋고, 무슨 이념도 좋고, 무슨 주의도 좋지만 그 목적이 어디 있느냐를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천지를 대신하여 선물로 보내진 자신의 가치를 생각해 보았습니까? 하늘이 즐겨 받고 땅이 즐겨 받을 수 있는 모습이 되기 위해서 보내심을 입었다는 것을, 자신은 그러한 모습이 되기 위해 허덕이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생각해 봤습니까?

우리의 마음은 천성을 따르라고 명령하고 몸은 이 땅을 대하여 투쟁하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두 갈래의 상충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마음과 몸은 역사적인 최종단계에서 하나로 화합해야 되는데 화합할 수 있는 무엇이 없다 할진대, 종교니 창조주니 무슨 이상이니 하는 것, 다 소용없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이 땅 위에 선물로 보내어진 우리야말로 귀하다면 무한히 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선물된 자신을 무시한 자는 천륜의 법도 앞에 설 수 없을 것입니다.

사람은 땅과 하늘에 화하게 되어 있습니다. 인륜은 천륜에 화하게 되어 있습니다. 주체 앞에 대상, 혹은 주체 앞에 객체는 반드시 화하게 되어 있습니다. 객체는 대상의 입장이기 때문에 주체를 향한 방향성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 연고로 우리는 왜인지는 모르면서도 양심을 중심삼고 생활하려 합니다. 양심의 명령을 벗어나서 살려고 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천륜 따로 있고 인륜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 마음과 몸이 화하여 움직이면 천륜과 인륜이 화하여 통일성을 갖출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륜이 있고 천륜이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이냐. 인간들이 천륜에 따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시 천륜에 따르는 생활을 하기 위해 허덕이는 것이 타락한 세상의 인간들의 생활 실상입니다.

8-14
우리를 이 땅 위에 선물로 보내신 목적
여러분은 어쩌다가 이 땅 위에 선물로 보내졌습니다. 그러면 여러분 개인을 이 땅위에 선물로 보내신 목적이 무엇이뇨? 개인을 세운 목적은 어디 있느뇨. 개인을 세워 무엇을 하고자 하시느뇨. 개인을 세워 상대를 품게 하여 부부를 이루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면 부부를 세워서는 무엇을 할 것이뇨. 자녀를 품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것이 가정입니다. 가정을 세워서는 무엇을 할 것이뇨. 종족을 품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종족을 세워서는 무엇을 할 것이뇨. 씨족, 부족, 더 나아가서는 민족을 품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민족을 세워서는 무엇을 할 것이뇨. 국가를 품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국가를 세워서는 무엇을 할 것이뇨. 세계를 품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세계를 세워서는 무엇을 할 것이뇨. 여기에 오늘의 역사가 걸려 있습니다.

인간을 이 땅 위에 선물로 보냈는데 그 선물은 개인에서 그쳐서는 안됩니다. 몸은 비록 하나의 몸이로되 마음의 세계, 심정의 세계는 무한한 천주를 품고 노래하며 살고 싶어합니다. 창조주가 있다 할진대 어떻게 우리를 지배할 것인고. 심정의 세계를 통하고 이념의 세계를 통하여 지배합니다. 거기에서 우리를 향하여 ‘오라, 오라, 오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양심을 통해 재촉해 들어오는 것입니다. 양심은 무엇인지 알 수 없는 힘의 작용입니다.

개인은 개인을 귀하게 생각해야 됩니다. 개인을 귀하게 여길 줄 아는 사람은 반드시 가정을 귀하게 여길 줄도 알아야 됩니다. 가정을 귀하게 여기는 것에서 그쳐서는 안됩니다.

원시시대는 가정단위의 시대였습니다. 그러나 가정단위시대는 지나갑니다. 넘어가야 합니다. 왜? 우리 인간은 천주를 품음으로써 천주적인 선물의 입장을 완결짓고 선물된 인연의 가치를 노래해야 할 책임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연고로 역사는 발전해 나옵니다. 자기 끼리끼리 사랑하고, 자기 가정만 사랑하는 시대는 지나가고 가정을 넘어 씨족, 씨족을 넘어 부족, 부족을 넘어 민족으로 가는 것입니다. 민족에 그치는 것만도 아닙니다. 다음엔 국가를 일으켜야 하는데 그 국가에만 머물러서 되는 것도 아닙니다. 국가를 넘어서 세계형태까지 나아가야 됩니다. 이제 남아진 것은 무엇이냐. 우리를 이 땅 위에 보내신 목적은 내 마음과 몸이 세계를 품고 세계와 화할 수 있기를 바라고 보내신 것임에 틀림없을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하늘은 아담 해와를 창조해 놓고 축복하셨습니다. 아담에게는 해와가 있었고 해와에게는 아담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둘이로되 하나를 표준한 하늘의 선물이었습니다. 그래서 둘이 하나가 되어 온 피조만물을 주관하라고 하늘은 축복하셨습니다. 해와는 몸의 상징이요 땅의 상징이며 아담은 마음의 상징이요 하늘의 상징이니 거기에는 전체가 들어 있습니다. 그러면 이 둘은 어떻게 되어야 할 것이뇨.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 일체입니다. 이것이 천지의 원칙입니다.

몸은 둘이로되 하나, 일체라고 했습니다. 둘이 일체가 되어 가지고 무엇을 하라 하셨느냐. 만우주를 주관하라고 하셨습니다. 주관하라 하신 목적은 무엇이냐. 만상과 관계를 맺기 위함입니다. 창조주는 개인의 창조주가 아니라 온 천주의 창조주이기 때문에 온 천주와 인연을 맺으려고 인간에게 만물을 주관할 수 있는 권한까지 허락하셨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류역사는 인간이 온 세계를 주관할 수 있는 기준을 향해 흘러가고 있습니다. 몸 마음이 화하듯이 이 세계는 마음과 화하고 몸과 화할 수 있는 세계를 향하여 뒤넘이치고 있는 것입니다.

8-16
우리는 무엇을 품어야 할 것인가
지금 때는 바야흐로 끝날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이구동성으로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교단이나 어떠한 주의 사상으로도 해결하기 어려운 시대가 왔습니다. 오늘날까지 인간 앞에 제시된 주의 주장으로는 우리의 마음의 세계를 포괄할 수 없고, 심정의 세계를 안식시킬 수 없는 것입니다. 철학도, 종교도, 과학도 스스로 항복하여야 할 단계에 들어와 있음을 여러분이 알아야 하겠습니다.

여기서 알아야 할 문제는 무엇이뇨. 그것은 이 세계는 무엇을 품어야 하느냐. 무엇을 품어야 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마음세계를 넘어서, 천주를 넘어서 무한한 것을 품어야 합니다. 이 세계가 품고 있는 이상의 그 무엇을 품고 그것의 가치를 노래하는 것이 지상의 어떠한 것보다 귀하다는 것을 느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이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것입니다.

개인을 세운 것은 가정을 품게 하기 위하여, 가정을 세운 것은 사회를 품게 하기 위하여, 사회를 세운 것은 국가를, 국가는 세계를 품게 하기 위하여 세운 것입니다. 과거에도 주의나 주장이 많았지만 세계를 위한 것이 세계적인 주의가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주의를 갖고 나섰다 할진대 세계를 품을 수 있는 발판을 세움으로써 그 주의는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씨족적인 관념은 다 깨져 나갑니다. 민족적인 관념도 다 깨집니다. 이것은 창조이념이 그렇게 안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은 세계주의시대입니다. 두 진영이 대결하여 세계를 나누는 때입니다. 이것이 싸움으로 끝나서는 안 됩니다. 어느 것이 마음을 상징하고 어느 것이 몸을 상징한다는 내용의 기준을 세워 놓고 해결하지 않는 한 이 세계는 혼란이 벌어져 자멸의 길을 피할 수 없게 됩니다. 그러면 창조원칙으로 보게 될 때, 세기말적인 종단(終端)에 서 있는 현재의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될 것이냐. 창조이념이 이렇다 할진대, 이 우주를 품고도 남을 수 있는 절대자 하나님이 있다 할진대, 인간이 하나님도 품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마음은 하나님을 품을 수 있는 경지까지 달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네 안에 있다’고 하였습니다. 얼마나 고마운 일입니까? 그렇지만 하나님이 여러분의 몸뚱이 안에 들어가 있겠어요? 마음의 세계는 무한대입니다. 심정의 세계도 무한합니다. 마음이 그러한 본질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 마음을 중심삼고 움직일 수 있고, 또 같이 계실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그렇잖아요? 그렇게 되지 않았다면 어떠한 사람이 이 세계를 자유자재로 지배할 수 있게 되었다 하더라도 그 마음이 소망하는 기준을 채울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무한한 세계와 천륜을 벗어나 가지고는 심정으로 노래하게 하고 그 마음을 안식시킬 수 있는 것이 땅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작용을 하고 그런 느낌을 일으킬 수 있는 주체가 있다면 그 주체와 관계를 맺기 전에는 이런 소망은 해결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늘 앞에 황공해 해야 합니다. 지지리 못나고 저주받아 마땅한 타락의 후손을 여기까지 끌고 나오신 하늘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 말씀의 저자 요한은 우리 인간을 대해 이미 죽었다고 말했습니다.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계 3:1)”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산 것 같으나 사망권에서 고통을 당하며 신음하고 있는 인간입니다. 이러한 인간을 수습하여 어떠하든지간에 세계의 형태까지 끌고 나왔습니다. 수많은 주의를 통해서 끌고 나왔습니다. 개인보다도 민족을 사랑하는 주의는 민족을 움직였고, 민족보다 국가를 사랑하는 주의는 국가를 움직였고, 국가보다 세계를 사랑하는 주의가 나와서 세계를 움직였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세계만이 아니라 하늘 땅을 사랑할 수 있는 주의, 그런 주의가 나오면 이 하늘 땅을 점령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수많은 투쟁역사를 거쳐서 불쌍한 인류를 끌고 나와 오늘날 이런 세계를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오늘날 이 땅은 세계형이 되었는데 정말 하나님의 마음을 닮은 세계가 있느냐. 몸의 형태, 즉 외적인 면은 모두 갖추어졌는데, 이 몸이 땅을 상징하였다면 끝날에 하나님의 마음과 연락할 수 있는 하나의 터전이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8-18
역사를 지배해 나오는 것
오늘 이 시대에 세계적으로 나타나는 모든 현상들은 천륜에 의해 움직이는 역사노정의 선물인 것을 우리들은 잘 모르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많은 혁명과정에서 자기의 주관을 갖고 그것들을 반대하였다면 그들은 천륜의 역적이라는 것입니다. 오늘의 이 시대는 새로운 시대로 넘어가려 하고 있습니다. 하늘이 이 시대를 새로운 마음의 세계로 끌어가려 할 때,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이 반기를 들면 그들도 정죄받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예수 앞에 유대교가 그러했고 예수 앞에 이스라엘 민족이 그러했습니다.

이제 세계주의시대가 지나가고 새로운 천주주의 이념시대가 찾아 들어올 때에 쌍수를 들고 환영하며 그 시대의 중심 앞에 전체가 굴복하지 못하면 모두 깨집니다. 이것이 왈 대심판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도탄 중에서도 자기의 역사적인 관념과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모세 앞에 머리 숙이고 하늘이 같이하시는 모세를 붙들고 나갈 때는 앞에 가로막힌 홍해도 무난히 건널 수 있었고, 바로 밑에서의 역경과 고통스런 환경도 무난히 넘길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모세와 갈라지게 되자 60만 대중은 광야에서 다 쓰러졌습니다. 왜 그랬겠습니까?

역사를 지배해 나오는 것은 무엇이뇨? 그때 당시의 사람들을 이끌어가는 사조나 주의가 아닙니다. 더 높은 곳을 향하여 이끌어 주는 마음인 것입니다. 그 더 높은 곳이 어디냐.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그래서 역사는 최후에 하나님의 마음과 연락될 수 있는 길을 닦아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역사를 지배해 나오는 것은 그 시대의 어떠한 주권이나 조직이나 기관이 아니라 그 조직을 이끌 수 있는 높은 이념입니다. 그 이념에 사무치고 그 이념에 단결되어 나갈 때 그 나라는 흥하였고 그렇지 않을 때는 망했습니다.

그러한 이념을 세우시기 위한 하나님의 뜻이 있어서 그 이념을 중심삼고 세계적인 형태로 내몰아 끝날까지 이끌어 나왔다면, 이제 이 세계에는 어떠한 형태가 나와야 될 것이뇨. 이 역사의 마음이 될 수 있는 천적인 내용이 인류 앞에 나타나지 않는다 할진대, 하나님의 사랑이니 뭐니 하는 말은 다 거짓말이 됩니다. 세계사에 종교를 세워 나오는 것도 그것 때문입니다. 새로운 무엇이 나와야 한다는 거예요.

노아 할아버지는 가정적인 시대에 새로운 그 무엇을 바라보며 하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날을 그리워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축복하실 때 ‘네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바닷가의 모래와 같이 번성하게 될 것이라’하는 소망의 한 조건을 세워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바로의 압제하에서 뛰쳐나올 때에는 가나안 복지를 선물로 주시마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예수를 이 땅에 보내실 때에는 무엇을 그리워하게 했겠습니까? 소망의 실체인 메시아를 고대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가신 이후 2천년 동안은 무엇을 소망하게 하셨느뇨. 새로운 한날, 끝날을 소망해 나오게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 소망의 기준을 잃어버리는 민족은 꺾어집니다.

우리의 몸은 천적으로 부여된 하나의 선물인데 타락으로 말미암아 아직까지 선물될 수 있는 몸이 되지 못하였습니다. 또한 우리는 완전히 마음의 본향을 못 찾았습니다. 하늘과 더불어 땅과 더불어 즐길 수 있는 영원한 본향을 못 찾았습니다. 몸의 본향과 마음의 본향을 찾아서 심정을 중심삼고 하늘과 더불어 살 수 있는 생활의 본향을 못 찾았습니다.

인류역사는 재창조역사라 했고, 사람 하나를 완성시키기 위해 움직인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래서 외적인 면으로 몸의 본향을 세계 무대에 올려 놓기 위하여 이끌어 나왔습니다. 여기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마음의 본향입니다. 마음의 본향. 이 세계가 아무리 외적으로 천국형을 갖추었다 하더라도 마음의 본향을 갖추지 못하면 인간은 불행합니다. 20세기 문명이 제아무리 고도로 발달되었다고 자랑하며 인류 앞에 공헌했노라고 큰소리 친다 해도 인간이 편안한 잠을 이룰 수 있고 모든 것을 잊어버릴 수 있는 마음의 안식처를 부여하지 못하는 한 이 역사는 어느 한때 깨져나가고 말 것입니다.

인간은 타락하였다고 합니다. 타락이 죽은 것이라 한다면 인간이 타락했으니 세계도 죽었습니다. 세계가 죽은 입장에 있기 때문에 인류는 그로인한 고통을 겪어 나오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죽음 가운데서 부활하려니 고통을 겪어 나온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부활의 고통입니다.

8-20
인간 최고의 욕망과 가장 큰 선물은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실 때 마음을 먼저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몸을 먼저 창조하셨습니다. 그런 고로 우리가 부활하는데도 먼저 외적인 세계부터 갖추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원리에서 배워서 알겠지만 이 외적인 세계에 있어서도 선의 형태와 악의 형태가 있는데, 그것이 오늘날의 두 진영입니다. 이것이 상충하고 최후의 격전을 벌이고 있습니다. 어차피 이것은 하나를 중심삼고 움직여야 되는데 그렇게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될 것이뇨. 외적인 몸과 더불어 즐길 수 있는 하나의 이념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없다 할진대 인류역사는 비참하게 될 것입니다.

인류는 아직까지도 몸의 본향을 못 찾았습니다. 우리의 몸이 공포를 느끼는 세계에 놓여 있는 것을 볼 때, 몸의 본향을 찾지 못하고 있음을 알수 있습니다. 아무리 위험하고 아무리 어려운 입장에 있다 할지라도 자식이 부모의 품에 안겼을 때는 공포를 느끼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몸의 본향이 찾아졌다 할진대, 현실 생활에서 마음으로나 몸으로 기쁨을 느껴야 할 터인데 이 땅 위에서는 시간이 가면 갈수록 공포에 사로잡혀 들어가고 있습니다.

하늘은 인간을 망하게 하기 위해서 세계에 있는 모든 것을 지으신 것이 아닙니다. 다시 말해 독약이 든 선물처럼 만물을 지으신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부활되는 과정을 기필코 거쳐야 하는 것이 타락한 인간들의 운명입니다. 역사적인 죄의 보따리가 우리에게 있으니 이것을 청산해야 할 최종단계, 이 죄의 보따리를 청산해 버리고 새로운 세계를 향해 넘어가야 할 시대에 봉착했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이 몸이 다시 태어나서 안식할 수 있어야 됩니다. 이 고개를 지나가야 됩니다. 오늘날 세계는 이 고개에서 신음하고 있습니다. 해산의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부모의 품에 안기기 위해서, 몸의 안식처, 몸의 복지를 찾기 위해서 입니다.

몸은 땅을 상징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몸이 안식하고 살 수 있는 복지를 향하여 가고자 한다면 다시 태어나는 고통을 겪어야 합니다. 그러니 시간이 가면 갈수록 점점 불안과 공포에 사로잡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고개를 넘고 나면 기쁨이 있습니다. 그렇잖아요? 임신한 부인들이 해산의 기한이 가까워질수록 고통이 점점 더해 갑니다만 그 고통을 넘고 나면 그 고통에 반(伴)하는 기쁨이 있듯이 그러한 고비가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인간을 사랑하시는 하늘은 인간을 지어 놓고 축복하시기를 ‘내 몸은 땅을 지배할 것이요 네 마음은 하늘을 지배할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창조원리를 배웠지요? 우리의 몸은 땅을 지배하고 우리의 마음은 하늘을 지배해야 할 것입니다.

인간의 욕망 중에 최고의 욕망이 무엇이뇨, 요놈의 땅덩어리? 아닙니다. 땅은 이 몸으로 지배할 수 있는 동시에 마음으로는 영계를 지배하고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까지도 내 것 만들고 싶은 것입니다. 그래야 여러분이 편안해요. 최고의 것을 여러분의 것으로 만드는 그날까지 안심해서는 안 돼요. 그렇지 않으면 성경 말씀은 다 헛것입니다. 헛것이예요.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신 목적은 무엇이뇨. 그것은 인간에게 지극히 좋은 선물로 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흙덩어리로 빚어진 이 몸, 그 이상의 선물이 어디 있겠어요? 이 몸뚱이에 영생할 수 있는 생명을 불어넣어 준 것 이상 큰 선물이 어디에 있겠어요?

하나님은 자신의 마음이 깃들 수 있는 터전을 세우기 위해 6천년 동안 피 흘리는 투쟁의 역사를 거쳐왔습니다. 지금까지 인간을 붙들고 희생에 희생과 고통에 고통을 겪어 오시면서 천륜의 책임자로서, 천정(天情)의 책임자로서 불러 세우고 택해 세운 무리들이 종교인입니다.

어차피 한 때는 가고 새로운 한 때가 올 것이거늘 해산할 수 있는 한 때, 몸의 세계가 안식할 수 있는 때가 반드시 올 것입니다. 그때 새로운 마음의 기반을 닦기 위한 내용을 가르쳐 주는 것이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이것입니다. 오늘날 사탄이 뒤넘이쳐 들어오는 것은 땅 위에 안식의 세계가 오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언젠가 한번은 선물의 가치를 판정받을 때가 올 것입니다. 하늘이 세우고자 하시는 역사적인 몸, 하늘이 찾아 세우고자 하시는 천주적인 마음이 되었는가 하고 절대적인 기준으로 재어 볼 때가 올 것인데, 그 때가 심판날입니다. 그 때가 심판날이예요.

8-22
하나님이 세우시려는 인간의 가치
몸은 만물을 지배하라고 했으니 이 몸뚱이는 만물 앞에 어엿이 나타날 수 있어야 합니다. 만물이 그 몸뚱이를 보고 ‘옳소이다. 내 주인이오’하며 숭배할 수 있는 몸뚱이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고로 인류역사는 창조주가 축복하신 주관의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흘러나왔습니다.

과거에 인간이 세계를 몰랐을 때는 세계가 무한히 멀었지만 문명이 발달됨에 따라 오늘날 세계는 하나의 생활권에 들어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계주의와 더불어 살아야 합니다. 그 터전 위에 우리의 마음과 몸이 세계주의의 인연을 넘어서 천주와 인연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늘은 그럴 수 있는 한날을 바라면서 나오셨습니다. 그것을 접촉시키기 위하여 인간 대표로 오시는 분이 메시아입니다. 허무맹랑하게 되어 있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섭리는 질서적인 법도와 내용을 가지고 기준을 세워서 해 나오고 있어요.

오늘 우리 자신은 한 민족 속의 개인이요, 한 가정 속의 개인입니다. 그렇지만 ‘나’라는 한 존재는 우주사적인 책임을 지고 있고, ‘나’라는 한 존재는 하늘 땅 앞에 보내진 최대의 선물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런 여러분 자신의 몸을 귀하게 여길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내 몸은 6천년 동안 하늘 땅이 총동원하여 찾으려 한 귀한 몸이구나, 귀한 역사적인 선물이구나’하며 머리 숙일 줄 아는 사람은 틀림없이 하늘의 아들딸들이 될 것입니다. 틀림없이 천국 갑니다.

내 몸뚱이 하나를 완결시키기 위하여 하나님은 역사에 피비린내 나는 자국을 남기셨습니다. 눈물의 길, 피 흘리는 길, 고통의 길, 억울한 길을 걸어오신 것은 나 하나를 선물로 세우려 하신 것임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여 세워진 내 한 몸인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내 자신이 은혜를 배반한 입장이 되지 않았나 살펴보고 천주의 이념을 위하여 움직여야 할 하늘의 선물인 내 모습은 어떤 자리에 있는지 알아봐야 되겠습니다. 그 몸이 미급하고 부족하다 할진대 스스로 머리 숙일 줄 알아야 됩니다. 그런 사람,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틀림없이 하나님의 아들 딸이 됩니다. 그런 사람은 틀림없이 천국 가요.

그런 것을 느끼고, 또 자기 가정에서 부부끼리 혹은 자녀를 대할 때도 이런 입장에 서고 자신이 그런 이념을 위하여 보내진 선물이며, 만상을 대할 때도 역시 대우주의 선물의 목적을 완결시키기 위하여 보내진 자신임을 느끼는 사람, 그 사람에게 양심은 빼놓고 그런 관념만 서 있더라도 그는 우주적인 인간이 안 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 몸은 역사적이요, 우주사적인 선물인 것을 알아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몸을 가지고 자기 마음대로 하다 보니 위로는 하늘, 아래로는 땅, 전후 좌우에 있는 전부를 유린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런 녀석들을 천국에 보내주겠습니까? 당장에 지옥에 집어 넣지. 그렇지 않겠어요?

이제는 알았습니다. 처음에는 몰랐을지라도. 이 몸은 하나님이 엿새 동안 창조하신 피조물 가운데 최고의 정력과 솜씨와 최고의 심혈을 기울여 만드신 실체인 것을 알아야만 합니다. 이것을 바라보시며 세계를 꿈꾸고, 이것을 통해서 세계를 치리하고자 하신 하나님이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귀한 선물인 몸을 인간은 잃어버렸습니다. 이 몸, 이 자체를 회복하려 하셨기에 예수는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막 8:36)”하신 것입니다. 선물된 자신을 유린하고, 선물된 자신을 배반하는 자는 망합니다. 개인이 그러하면 개인이 망하고, 가정이 그러하면 가정이 망하고, 국가가 그러하면 국가가 망하고, 세계가 그러하면 세계가 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역사적인 종말인 오늘날 혼란된 사조는 우리의 주위를 휩쓸어 들어오고 있으나, 여기에서 깨져나가지 않고 천륜 앞에 선물된 내 몸의 가치를 노래할 수 있는 늠름한 모습은 없겠느냐? ‘하늘이 6천년 동안 이 땅을 대해 하나의 사람을 고대하셨다면, 내 몸은 아버지가 주신 선물이오니 이 몸을 선물로 드리겠습니다’ 할 때, ‘오냐’ 하는 대답을 들을 수 있는 그런 몸은 없겠느냐? 이것이 오늘날 신부의 이념을 찾아 나가는 기독교의 최고 목표입니다.

성신은 예수가 가심으로 말미암아 땅에 왔습니다. 예수는 신랑이기 때문에 하늘에서, 성신은 신부의 신이기 때문에 땅에서 활동하십니다. 신부의 신이 강림하여 2천년 동안 허덕이며 하는 일이 무엇이뇨. 선물될 수 있는 몸이 되게하기 위한 것입니다. 선물이 완성될 수 있는 제단을 쌓으려는 것이 성신제단, 즉, 2천년 기독교사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이 종결되기 전에는 신랑은 올 수 없습니다.

그러면 신랑은 어떠한 분으로 올 것이뇨. 마음의 복지 건설, 심정의 복지 건설의 주인공으로 오십니다. 마음의 복지, 마음의 안식처, 심정의 안식처를 품고 대우주관을 갖고 오시는 분이 주님이예요. 그래야 역사적인 주님이 됩니다. 그래야 역사적인 하나님이 되고, 그래야 우리도 역사적인 승리의 아들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옛날의 그 꼴 그 모양으로 있으면 되긴 뭣이 돼요?

8-24
신앙의 선조들이 세운 전통과 우리
하늘은 사망의 꼬리를 물고 사망권으로 들어가는 인류 전체를 붙들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나 그럴 수 없기에 한 사람을 붙들기 위해 수고하신 것입니다. 그리하여 타락 이후 1,600년 만에 찾아 세운 것이 노아 할아버지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망할 인간들은 하늘이 있는지 없는지 알지 못해요. 그러나 하늘은 이런 인간들과 심정의 인연을 맺으시고 그것을 소망으로 하시고 몸뚱이를 쳐서 굴복시키는 일을 해오셨습니다. 그 뜻에 우리는 절대 복종해야 합니다. 복종하는 데는 어떠한 복종을 해야되느냐. 세계사적인 이념을 대신하여 출발하는 개체에게는 세계사적인 고통을 준다는 것을 알고 거기에 감사해야 합니다. 끝날의 심판을 면하고자 하는 자들은 오늘 이 순간에 심판을 넘어갈 수 있는 고통을 겪어야만 됩니다.

하늘은 세계사적인 내용을 가지고 섭리하시는 연고로 우리 선조들이 천적인 사명을 갖고 나타나게 될 때, 형태는 작고 고통의 시간은 짧지만 거기에는 세계사적인 고통의 내용을 내재시켜 가지고 모든 조건을 다 걸어놓고 역사해 나오셨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노아의 가정을 풀면 성경 66권이 다 풀립니다.

아담의 가정을 풀면 이 세계사가 다 풀립니다. 왜? 비록 개인이로되 그들에게는 세계적인 내용을 상징적으로 내포시키고 역사의 모든 책임을 지웠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도 그렇고 유대민족도 그렇습니다.

끝날에는 기필코 마음의 본향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하늘이 허락한 선물을 받을 수 있는 때가 틀림없이 올 것입니다. 그 때를 맞이해서 그것을 받을 수 있는 준비를 하기 위하여 6천년 동안 개인으로부터, 가정, 씨족, 민족, 국가 형태를 거쳐 가지고 지금 세계 형태까지 나왔다는 것을 여러분은 똑똑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것은 오늘 여기서 말하는 사람이 지나가는 말로서 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이 그렇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우리는 역대의 신앙 선조들이 세운 전통을 존중해야 합니다. 하늘의 혈통을 존중해야 합니다. 그럴 때가 왔습니다.

노아 할아버지가 120년 동안 하늘을 위하여 충성한 그 정신,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를 떠나 이방의 황무지를 돌아다니던 그 정신, 야곱이 가나안 땅을 버리고 애급으로 들어가던 그 정신, 이스라엘 민족이 원수의 땅 애급을 버리고 광야를 거쳐 가나안 땅을 향하여 총진군하던 그 정신,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이스라엘 민족을 수습하여 새로운 가나안복지, 새로운 에덴복지를 향하여 달리려던 그 정신은 어디로 갔습니까? 여러분은 전통을 통하여 이러한 정신을 계승해야 되겠습니다.

노아 할아버지는 주위로부터 핍박을 받고 억울함을 당할 적마다 심중으로는 무엇을 소망했느뇨. 하나님이 축복하실 한날을 소망했습니다. 분하면 분할수록 하나님이 약속하신 심판의 한날을 바라보고 참고 또 참았습니다. 아브라함도 그러했고, 모세도 그러했습니다.

바로궁중에서 공주의 아들로 자라던 모세는 개인적으로 무엇 하나 부러울 것이 없는 행복스런 환경에서도 심중으로는 ‘이곳은 내가 있을 곳이 아니고 내가 살 곳도 아니다! 내가 누릴 복지가 아니다. 하늘이 축복하신 이스라엘 민족이 살 곳도 아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가나안 칠족이 점령한 그 땅을 바로궁중에서 40년 동안 눈을 감으나 뜨나 그리면서 ‘아버지, 우리 택한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땅을 주관하라 하신 약속을 이루게 하여 주시옵소서’라는 숨은 기도를 하였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이렇듯 애급에서 고역받는 60만 대중 이상 불타는 마음이 사무쳐 있었기 때문에 이스라엘 민족은 모세를 지도자로 세웠던 것입니다.

8-26
예수와 나
여러분은 예수를 어린양과 같은 모습으로 알고 있으나 본래의 모습은 그것이 아닙니다. 내가 알고 있는 예수는 그런 예수가 아닙니다. 무한한 천주적인 기준을 갖고 있었으나 어린양과 같이 되지 않으면 안 되었기 때문에 어린양이 되셨던 것입니다. 하늘의 황태자요 만민의 구세주로서 피조만물을 대하여 호령할 수 있는 위신과 권한이 있었으나 그 당시는 그럴 수 있는 때가 아니었습니다. 그야말로 난시(亂時)요 사탄이 준동(蠢動)하는 때였습니다. 그러니 거지와 같은 불쌍한 신세가 되어야 했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그 예수를 배우고 있습니다.

만일 예수가 선조로부터 4천년 동안 전통적으로 고대해 온 소망의 한 날을 이루어 당시에 실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면, 오늘날 이 세계는 벌써 선한 세계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는 그 권한을 한번도 행사해 보지 못한 채 한을 품고 가셨습니다. 예수가 하늘로부터 선물로 받은 것이 무엇이뇨. 원수들과 대결하여 원수들을 머리 숙이게 하고 항복시키는 것입니다. 딴것이 아닙니다. 예수에게 하늘이 주신 선물이 있다 할진대 그것은 새로운 동산, 새로운 가나안 땅의 건설을 반대하는 원수를 박멸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보다 더 귀한 선물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이 하늘이 예수 앞에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었는데, 예수는 그 선물을 받아 감당하지 못하고 갔습니다.

하늘은 우리의 마음과 인연 맺고자 선물을 주시는 것입니다. 천지에는 아직까지 마음의 복지가 없어서 불안합니다. 가는 곳곳마다 마음이 침범을 받는 불안한 상태입니다. 그렇잖아요? 외적으로 불안한 세계, 이런 세계가 청산되어야 내적으로도 안식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 몸으로 공포가 들어오는 한이 있다 할지라도 마음으로는 천국을 노래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끝날에 남아질 것입니다.

6천년 동안 우리의 선조들은 선물을 받아왔습니다. 선물의 목적은 무엇이뇨. 천주 제단에 드릴 수 있는, 하늘 땅이 노래할 수 있는 선물로서 최대의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그 선물의 열매를 보고, 탄식하던 만물도 기쁨으로 노래하고 원한이 사무친 하늘도 환대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자신이 그렇게 되어야 해요. 그래야 하나님의 아들 딸입니다. 천국? 내가 알고 있는 천국은 다릅니다.

하늘은 외적으로는 사탄과 인간과 뒤넘이치는 싸움을 전개시키고 내적으로는 사람의 마음과 하나님이 뒤넘이치는 안팎의 섭리를 하십니다. 알겠어요? 외적으로는 타락한 천사장이 인간의 몸뚱이와 뒤넘이치고 있고 내적으로는 하나님이 인간의 마음을 중심삼고 뒤넘이칩니다. 이렇게 마음을 조종하여 외적인 세계를 조종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늘이 원하는 끝날이 오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될 것이냐. 마음의 기준이 잡힐 수 있는 환경이 지상에 나타나기 전에는 그러한 끝날이 올 수 없습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주님이 이땅 위에 오셔서 마음이 쉴 수 있는, 안식의 터전이라 할 수 있는 무리가 나타나기 전에는 안 된다는 거예요.

오늘날 우리의 마음과 몸은 하나님과 사탄의 침범을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몸과 마음이 하나님쪽으로 한꺼번에 기울어지면 하나님의 싸움은 끝납니다. 사탄이 지배하겠다 할 수 없습니다. 끝난다는 것입니다. 또 우리 몸을 중심삼고 몸이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으면 그 싸움도 끝납니다. 하나님이 그 사람을 구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와 같은 두 싸움의 교차점에 있는 우리입니다. 이것을 안다 할진대 여러분들, 이 몸을 활동무대로 삼고 있는 사탄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몸은 사탄을 향하여 달리고 마음은 하늘을 향하여 달리고 있습니다. 이제 이 외적인 세계를 마음의 권한을 갖고 쳐서 굴복시키고 나아가서 사탄을 굴복시키는 승리자가 나타나야 합니다. 그 승리의 권한을 갖고 오신 분이 예수입니다. 그렇다고 여러분, 언제나 예수만 믿고 살겠습니까. 언제까지나 주님만 모시고 살겠습니까? 예수를 믿는 동시에 예수가 하던 일을 해야지요.

하늘은 역사노정을 거쳐오는 동안 우리의 선조와 더불어 슬픔과 고통과 억울함을 당하셨습니다. 그러면서 4천년을 경과한 후 역사적인 종말시대인 제2종말시대에-노아 때가 제1종말시대라면 예수 때는 제2종말시대입니다-하늘의 심정과 하늘의 마음을 갖고 오셨던 분이 누구냐 하면 예수입니다. 하나님이 4천년의 선물로 보내 주신 인간 대표, 천성이나 땅을 대신하여 최고의 권한을 갖고 오셨던 분이 예수입니다. 이런 예수를 쫓아 버렸으니 다시 오셔야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주여! 오시옵소서’하는 겁니다.

8-28
주님을 맞이할 수 있고 천국에 갈 수 있는 자
이제는 몸의 복지를 넘어서 마음의 복지를 찾아야 할 때가 왔습니다. 마음의 복지. 아무리 내적인 공포가 밀려들고 험한 사망의 물결이 휩쓸려 들어온다 할지라도 그것을 늠름히 넘어설 수 있는 자, 마음의 복지를 가진 자, 이는 천국 백성입니다. 사망의 물결이 휩쓸지라도 그것을 웃으면서 넘어갔던 과거의 순교열사들은 하늘 백성입니다.

수많은 배반자를 앞에 놓고 십자가에 달려 피 흘리던 예수, 불쌍하고 처참한 죽음을 당하면서도 도리어 늠름하게 원수를 위하여 기도하시던 예수의 그 모습은 사나이다운 기백을 지닌 모습이었습니다. 그의 몸은 비록 유린당하여 죽었을망정 마음 세계의 복지를 세워 놓고 가셨습니다. 마음 세계의 복지는 유린당할 수 없기에 예수의 몸이 부활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완전한 플러스(+)가 있으면 완전한 마이너스(-)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때 부활의 권한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시는 재림주를 고대하는 것도 좋습니다. 그렇지만 그것보다도 자신의 몸이 완전한 마이너스가 되어야 합니다. 완전한 마이너스가 있으면 완전한 플러스는 찾아오는 거예요.

생전에 주님을 신랑과 같이 모시지 못하고, 스스로 신부와 같이 살지 못하고 죽는 사람은 천국 못 갑니다. 개인적인 천국도, 가정적인 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도 살아 생전에 개인적인 인격의 예수, 가정적인 인격의 예수, 종족적인 인격의 예수, 사회적인 인격의 예수, 국가적인 인격의 예수, 세계적인 인격의 예수, 이렇게 나가야 했습니다. 여러분은 예수가 한번에 덜커덕 세계적인 인격의 예수로 된 줄 알고 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으면 죽지 않아요. 개인적인 인격의 예수로부터, 가정적인 인격의 예수, 민족적인 인격의 예수, 이스라엘 나라, 즉 국가적인 예수,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예수가 되지 못하였습니다. 그와 같이 다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죽을 수밖에 더 있겠어요?

오늘날 우리 믿는 성도들은 30평생 민족을 위했던 예수의 인격, 민족적인 인격을 가지셨던 예수를 모실 줄 알아야 됩니다. 또 여러분이 민족적인 인격을 갖추어 신랑되신 예수를 모시는 승리적인 발판을 세워야만 참다운 크리스찬입니다. 그래야만 세계적인 인격의 예수로 오실 주님이 품어줄 수 있는 것입니다.

국가를 세운 것은 세계를 품게 하기 위함이요, 세계를 세운 것은 하늘 땅을 품게 하기 위함이라고 말하였습니다. 2천년 전에 이상적인 실체로서 우리들이 바라는 몸과 마음의 안식의 기준을 세워 놓아야 했던 분을 쫓아 버린 것 이상 큰 범죄가 없습니다. 이 슬픔을 무엇에 비할 수 있겠습니까? 이 얼마나 불행한 일입니까?

예수는 2천년 전 우리의 몸의 안식처, 마음의 안식처, 더 나아가서 신랑 신부의 이념을 세우셨으며 ‘내가 너희를 사랑한다’하시며 사랑이라는 명사를 남기셨습니다. 몸의 안식처와 마음의 안식처가 세워진 후에는 하늘 땅을 품는 동시에 하나님을 품을 수 있는 사랑까지 선물로 주려 하셨으나 그 일은 다 깨져 버렸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다시 돌아가 허덕이고 있습니다.

예수가 죽고난 후 예수를 위하여 세웠던 유대교는 어디 갔으며 이스라엘 민족은 어디 갔는고. 옛날의 제사장과 바리새 교인은 어디 갔는고. 그들은 예수의 대원수입니다. 예수를 위하여 4천년 동안 준비한 발판은 산산이 부서져 나갔습니다. 예수가 발을 들여놓을 수 있는 교회가 있었으며 예수가 몸을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있었느냐.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4천년 동안 개인적인 선물을 보냈고 민족적인 선물을 보냈으며, 국가 혹은 교단적인 선물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전체를 지배할수 있는 예수, 천적인 선물인 예수를 품지 못하고 배반함으로 말미암아 비참하게 되었습니다. 영광과 축복의 날을 고대해 나온 택함받은 선민이 고통에 고통을 당하고, 유리(流離)에 유리를 하며 나온 것이 오늘날까지의 이스라엘 역사입니다. 이것은 예수를 죽인 죄의 대가입니다.

그래도 축복을 해 주셨기 때문에 밟히고 억울함을 당하면서도 세계 앞에 나서게 된 것입니다. 영광으로 나서야 할 민족이 서글픈 고난의 역사를 거쳐 나오는 것은 예수를 죽인 죄 때문이라는 거예요.

역사를 변증해 보아도 부정할 수 없는 내용인데도 불구하고 예수가 죽으러 왔다고 믿어요? 그렇게 안 되어 있습니다.

8-30
하나님을 소유할 수 있는 자격자
우리는 몸을 가다듬어 역사적인 범죄를 회개할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브라함이나 모세는 잘못을 저질렀어도 회개하면 다 용서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들은 심부름꾼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아들을 죽인 민족을 어떻게 할 것 같애요?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 여러분이 아들 딸을 사랑하는 기준과 하나님이 예수를 사랑하는 기준을 생각할 때 어떤 것이 높을 것 같애요?

예수가 죽을 때 세 시간동안 하늘 땅이 캄캄했습니다. 그럴 게 아녜요? 하나님이 4천년 역사 동안 수고해 나오신 모든 공적이 순식간에 깨져 버리고 사랑하는 아들은 사탄의 올가미에 말려 십자가에 달리는 그 순간, 하나님이 ‘오호, 구원역사 완성하는구나, 오호 승리했구나’ 하셨겠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은 참을 수 없는 비통함을 느끼셨을 것입니다. 이러한 하늘의 심정을 알고 예수는 죽어갔습니다. 우리들은 이러한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과거 아브라함이나 우리의 선조들에게 저지른 잘못은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선조들이 메시아를 십자가에 매달아 피 흘리게 한 죄는 어떻게 해야 될 것인고. 하늘의 몸이요 승리적인 성전이 되고 ‘나는 네 안에 있고 너는 내 안에 있으며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있다’고 말씀하신 것처럼 인류를 대표하여 몸이 안식할 수 있는 복지가 되고 마음이 안식할 수 있는 터전이 되어야 할 그 예수, 천주를 동원하여 하늘을 중심삼고 승리의 터전을 닦으려 하신 그 예수를 죽인 역사적인 죄는 어떻게 할 것인고.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하고 예수를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2천년 역사가 지난 오늘 우리는 다시 허덕이면서 마음과 심정세계의 선물을 고대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그 선물을 받을 수 있느냐 하는 것이 이제 앞으로의 세계에 있어서의 과제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과거에 하나님께서 해 오셨던 일을 알아야 됩니다. 왜 이렇게 나왔는가를 알아야 됩니다. 또 이 시대에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알아야 됩니다. 나아가서는 미래에 하나님께서 하시려는 일을 알아야 됩니다. 즉 때를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밤인지 낮인지, 아침인지 저녁인지를 잘 분간할 줄 알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보십시오. 여러분, 지금은 역사적으로 볼 때 가을절기입니다. 지금의 20세기는 가을절기의 문명시대입니다. 과거의 고대문명시대는 여름절기, 열대권 문명시대였으며, 오늘날은 가을절기, 온대권 문명시대입니다. 가을절기 문명시대가 지나면, 겨울절기 한대권적인 문명시대가 다가올 것이며, 그 후에는 삼동(三冬)을 지나 봄절기 문명시대가 오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새시대입니다.

인간이 타락한 이후 봄절기 문명시대를 못 맞았습니다. 마음이 즐기고 몸이 즐기고, 하늘을 노래하고, 땅을 노래하고, 하늘 땅의 움직이는 모든 것이 하늘을 즐겁게 할 수 있는 그 세계를 못 맞았다는 것입니다. 그 세계를 맞으려면 여러분들이 역사적인 하나님을 알아야 됩니다. 역사적인 하나님을 아는 동시에 시대적인 하나님을 알고 미래적인 하나님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전체의 가치를 결정짓기 위한 하나의 선물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이제 우리는 마음의 복지를 이룰 수 있는 한 중심을 세우고, 심정의 복지를 이룰 수 있는 한 중심을 세워서 심정과 마음과 몸이 통할 수 있는 하나의 기준을 찾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몸과 마음이 하나된 후에는 세계를 품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이 시대에는 세계주의보다 더 큰 천주주의 이념이 나와야 됩니다. 하나님주의가 나와야 돼요. 그리하여 인간이 이 땅에서 생활하는데 있어서 그 하나님주의를 중심삼고 몸과 마음이 하늘의 심정을 통할 수 있는 확고한 기준을 세우지 않는다면 우리는 행복하게 살 수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생활권내에서 그 이념을 중심삼고 마음과 몸이 안식하고 즐길 수 있는 동시에 그 이념을 통하여 역사적인 하나님의 심정, 시대적인 하나님의 심정, 미래적인 하나님의 심정을 체휼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세계 앞에 우주사적인 마지막 선물로서 서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선물의 최후의 목적은 무엇이뇨. 그것은 땅을 지배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계를 기반으로 하여 무한한 세계를 품고 나중에는 하나님을 품는 것입니다. 이것이 최후의 목적입니다. 하나님을 품는 것, 하나님을 내 것 만드는 것입니다. 이러한 목적 밑에서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대하여 복귀섭리를 해 오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인간 앞에 마음세계의 모든 것, 심정세계의 모든 것 주고 나중에는 하나님 자신까지도 주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늘이 인간에게 주실 큰 선물이요, 이제부터 우리에게 주실 남아진 선물입니다. 역사적이요, 시대적이요, 미래적인 하나님을 알기 전에는 그 선물을 못 받습니다. 하나님은 자신까지 인류 앞에 주겠다는 것입니다. 아들을 주셨고 나중에는 하나님 자신이 오셔서 인간과 더불어 살겠다는 것입니다. ‘네가 나요 내가 너이며, 내가 네 아버지요, 네가 내 아들 내 딸이다’하는 자리에서 살겠다는 것입니다. 마음의 복지에서 사랑을 중심삼고 하나님을 모시고 살 수 있는 것이 인간으로서 받을 수 있는 최대의 선물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그러한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하늘은 지금까지 무한히 애써 나오시는 것입니다.

개인으로 볼 때, 몸은 땅을 대신한 선물이요, 마음은 하늘을 대신한 선물이요, 이념은 온 우주를 품을 수 있는 선물입니다. 이것만도 황공하온데 나중에는 하나님 자신까지도 여러분에게 선물로 주겠다 하시는 이 고마운 뜻 앞에 여러분이 설 수 있는 자격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8-32
기 도
아버님, 저희들이 말씀을 들었사옵니다. 저희 자신들이 이렇게 어마어마한 선물이라는 것을 몰랐사옵고, 고귀한 전체 가치의 인연을 위하여 시간 시간 생활을 절제시키고 마음을 명령하던 것이 그러한 선물을 주시기 위함인 것을 몰랐사옵니다.

불의의 입장에 설 때에도 마음이 몸 앞에 찾아주는 선물을 고이고이 받들 줄 아는 저희가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또 마음을 끄는 이념을 고이 받들 줄 아는 사람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심정이 나의 이념과 나의 마음과 나의 몸에 통하여 하나님이 자신을 선물로 주시고자 할 때, 부끄럼없이 나설 수 있는 아들 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런 입체적인 인연에 의하여 저희들이 생을 살아가고 있는 것을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생활적인 모든 부분에서 선과 악을 분립하여 악을 청산하고 선의 실적을 세우기 위한 싸움의 노정에 있는 저희들임을 알았사옵니다. 이제 역사가 지나 남아진 새로운 천주시대에 아버님을 선물로 받고, 아버님의 사랑과 아버님의 이념과 아버님의 마음을 선물로 받기에 부족함이 없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선물을 알아 모시는 하늘의 아들 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고, 아버지께서 축복하여 주시고, 자랑하여 주시옵소서. 만천하의 책임과 유업을 맡기시기에 부족함이 없는 아들 딸들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빌면서, 주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