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04 to 7-228: 하늘을 알아드리는 자가 되자

하늘을 알아드리는 자가 되자
1959.09.13 (일), 한국 전본부교회

7-204
하늘을 알아드리는 자가 되자
마태복음 10:24-29

[기 도]

봉독한 이 말씀은 진리의 복음을 선포하기 위해 나선 예수께서 자신의 심정 깊이 묻어두었던 사실을 발표하신 말씀인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사옵니다.

아버지, 4천년의 섭리역사를 종결짓고 택한 이스라엘의 수많은 민중을 거느려서, 아버지 앞에 승리의 제단을 갖추고 대제사장의 명분으로 영광의 제단을 쌓아 놓고 모든 것을 복귀해 드려야 할 예수님이었사오나, 지상에서 그러한 역사적인 사명을 종결짓지 못하고 가셨다는 것도 알고 있사옵니다.

아버님, 역사는 예수님 이후 2천년이 지났사오나, 그때의 예수님의 모습을 회상할 수 있는 이 시간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때를 끝날이라 하였사옵니다. 모든 죄악된 요소들을 청산할 수 있는 시기가 가까워 온다는 것을 저희의 생활에서 나타나는 현상을 보아 알고 있습니다.

모든 움직임을 볼 때도 끝날이요, 세상의 모든 현상을 볼 때도 끝날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나타나는 모든 징조가 끝날을 예고하는 이때에 저희들이 가져야 하고, 느껴야 하고, 자랑하여야 할 무엇이 있다 할진대, 그것은 세상의 어떠한 권세도 아니고, 물질적인 어떠한 것도 아니고, 인격적인 그 무엇도 아니옵니다. 오로지 2천년 전에 왔다 가셨던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닮는 사람이 되지 않으면 안 되겠사옵니다. 그의 심정과 그의 소원, 그의 사정을 저희의 것으로 하여, 그의 소원성취의 터전을 저희 자신들이 이루어 놓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들을 저희들이 회상하게 하여주시옵소서.

그 당시의 예수는 겉보기에 미미한 모습이었습니다. 세례 요한보다 더 부족한 모습으로 나타났던 예수였습니다. 새로운 법도인 세례를 받기 위해 몰려드는 이스라엘 민족 앞에 나타난 세례 요한은 유대인들이 보기에 대단히 훌륭해 보였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그를 선지자로까지 추앙했사옵니다.

예수가 이처럼 그 시대 유대인 앞에 세례 요한보다 인격이 못 미치는 사람처럼 나타나게 될 때 대중이 믿지 못하였으며, 그는 머무는 곳곳마다에서 반대를 받았사옵니다. 그를 따르는 자들은 말할 수 없이 연약한 여성들과 세리들이 대부분이었음을 저희들이 생각하게 될 때, 그 시대에 예수를 독생자로 알 수 있으며, 예수를 구세주로 믿을 수 있으며, 예수를 주님으로 모실 수 있는 참다운 하늘의 아들 딸들이 없었던 역사적인 슬픔을 알게 됩니다.

초췌한 예수, 인격적인 면에 있어서나 사회적인 면에 있어서 구비되지 않은 환경 가운데 있었던 예수를 하나님의 독생자로 믿을 수 있고 구세주로 알고 모실 수 있는 사람들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사오니, 이 시간 그 시대의 심정을 통하여 예수 앞에 공손히 머리 숙이고, 아버지께서 친히 사랑해 주시는 가운데서 훈계의 말씀을 받을 줄 아는 아들 딸들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제 아버님의 말씀을 갖고 전하고자 하옵니다. 전하는 자의 마음이나 받는 자의 마음에 간격이 있다면, 이곳은 도리어 사탄의 무대가 될 것이요, 저희의 생명의 문을 막아 버리는 조건이 될 것이옵니다. 그렇게 된다면 차라리 말씀을 듣지 않는 것이 나은 줄 저희들이 알고 있사옵니다.

마음문을 활짝 열어 놓고 자기의 어떠한 주의 주장이나 자기의 관념을 일소하고, 아버지의 생명의 움직임에 자기의 몸과 마음을 맡기어 아버지께서 움직이시는 대로 움직이고 느끼고 체휼할 수 있는 이 시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재창조의 말씀의 권한으로 이들에게 생명의 한 중심을 체휼하게 하여 아버지 뜻 앞에 생명의 자체로서 세워질 수 있는 이 시간이 되게 인도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나이다.

모든 것 맡기오니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사랑하는 식구들도 이 시간 같은 은사의 자리에 머물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7-206
말 씀
이 시간에 여러분들 앞에 드리고자 하는 말씀의 제목은 `하늘을 알아드리는 자가 되자’ 입니다. `하늘을 알아드리는 자가 되자’ 이런 제목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7-206
상대적 관계로 본 인간과 절대자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자는 앞을 보나 좌우를 보나 혹은 뒤를 돌아다보아도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이 없는 자입니다.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이 없는 것 이상 외롭고 슬픈 일을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들은 자기를 아는 것 같지만 냉정히 비판하여 보게 될 때, 자신을 모르고 있음을 부정하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 마음은 더 큰 이념을 향하여 자나 깨나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 나를 어떠한 방향으로 몰아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움직임이 연속되는 역사와 더불어 움직여 나가고자 하는 사실을 느끼면서도 그런 면을 갖고 있는 자신을 해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스스로 느낄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나를 알아 달라고 말하고 싶고 나를 믿어 달라고 말하고 싶을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생각하고 내가 주장하는 모든 것이 그 어떠한 움직임과 인연을 맺기를 바라면서 지금까지 살아 나왔다는 사실도 부정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면 나를 믿어 주고 나를 알아 달라고 요구할 때, 자체를 확정지어 어떠한 천륜의 대목적과 관계맺은 자리에 자신을 세워놓고 그런 요구를 하였느냐 하면, 아닙니다.

이렇게 생각하게 될 때 오늘 나의 가치는 어디에서 결정될 것이뇨. 만상을 움직여 낼 수 있는 주체, 혹은 주동체가 되기를 마음으로 바라고, 생활로 그리고, 행동으로 움직여 이루고자 하는 자신을 다시 한 번 분석해 보고 냉정히 비판하는 과정을 거치기 전에는 대목적을 이룰 수 없습니다. 천륜의 목적을 이루려 하시는 하늘이 있다 할진대 자신이 그런 일을 하지 못하면 하늘 앞에 떳떳이 설 수 없습니다. 천륜 앞에 고개를 들 수 없는 것을 우리는 추리에 의해서나 혹은 논리적인 입장에서 볼 때 부정하지 못할 것입니다.

내 자신의 신앙, 내 자신의 소망, 내 자신의 이상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나를 위한 것 같지만 나와 관계없는 입장에 있습니다. 이런 슬픈 처지에 있는 연고로, 인간은 이상과 소망을 품고 살고 있으나 그 마음속에서는 슬픔이 굽이치는 곡절에 부딪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역사상에 왔다갔던 성현들은 이상과 더불어 즐길 수 있는 나를 찾자, 이상과 더불어 동하고 정하며 살 수 있는 나를 알자 하는 표어를 자기도 모르게 내세웠고, 또 이것을 찾아 세우고자 헤매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성경말씀을 통해서 잘 아는 바입니다. 이같이 헤매었지만 해결짓지 못하였으니 해결짓는 그날이 오기를 우리는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뿐 아니라 세상의 모든 것은 다 상대적으로 되어 있습니다. 하늘이 있으면 땅이 있고, 몸이 있으면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이런 상대적인 세계관을 갖고 생각할 때, 마음의 움직임이 있으면 이 마음을 움직여낼 수 있는 주체적인 어떤 존재도 있어야 합니다. 이것을 절대자라 하든, 하나님이라 하든, 창조주 혹은 신이라 하든 그 명사가 문제되지 않습니다. 그런 무엇이 있어야 된다는 사실만은 부정하지 못할 것입니다.

어떠한 절대자가 있다 할진대, 그 절대자는 내 마음과 어떠한 인연을 맺어 시간 시간을 거쳐 역사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그런 연고로 인간들은 참것, 더 좋은 것을 소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떤 하나의 사실을 비판하거나 판단하려 할 때에도 비교할 수 있는 상대적인 조건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됩니다. 추리를 하거나 어떠한 논리를 전개시키게 될 때에도 가설적인 어떠한 상대 조건을 세우지 않고는 그 논법이 성립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를 완전히 알고 나를 해명하기 위해서는 비교하고 판단할 수 있는 상대적인 조건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인간들이 신앙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절대자이신 것입니다. 그 절대자와 내가 관계를 지어 그 차이를 비교하고 논단할 적에 자기가 어떠하다는 것이 해명되는 것입니다. 그런 연고로 내 마음이 있다 할진대 이 마음을 지배하고 움직이는 절대적인 존재 혹은 주체되는 그 무엇이 있다는 사실을 여러분들은 먼저 느껴야만 되겠습니다.

종교나 철학이 찾아야 할 궁극의 목적점도 절대자입니다. 그 절대자를 찾아 내 마음과 영원한 관계를 맺어 내 생활의 이념, 혹은 세계관 우주관이 그의 이념과 같이 움직여, 같이 살고 같이 즐거워할 수 있는 신을 그리워하고 찾아 헤매며 역사를 움직여 나온 자들이 수많은 성현 현철인 것입니다. 나아가 수많은 종교인들인 것입니다. 그들이 목적하고 찾는 것이 그것일 거예요.

7-208
나를 완전히 알기 위해서는
나를 알려면 상대적인 자리에 있는 존재의 가치를 알아야 합니다. 내 마음이 작용하는 것은 내 마음이 스스로 어떠한 이념적인 요소를 창조하면서 움직이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어디든지 내가 상대적인 자체라는 것을 느끼는 자리에 들어가야 됩니다.

하늘은 우리 앞에 찾아오실 때 언제든지 정면으로 나타나십니다. 선이라는 것은 언제나 횡적으로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정면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앎의 기준을 어디에 세울 것이뇨. 정면으로 들어오는 것이 온 만상을 통할 수 있고, 모든 인식을 통할 수 있으며, 양심세계를 움직여 낼 수 있다 할진대, 그것이 나를 해명지어 줄 수 있는 하나의 기준인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사람을 볼 때도 다르게 보입니다.

오늘날 믿는다고 자처하는 수많은 신자들은 스스로 `나는 하늘을 알고 있다, 하늘을 믿고 있다, 하늘을 의지하고 있다’고 자위하고 자신하고 있지만, 알고 있다는 그 앎이 어디서부터 나왔습니까, 믿고 있는 그 믿음이 어떠한 환경에서 믿고 있습니까, 하늘을 믿고 산다는 자체가 어떠한 환경에 있습니까 하고 물어보게 될 때, 그것이 마음과 영원히 상대될 수 있는 자리에서 움직이는 것이 아닐진대, 그것은 전부 다 하늘이 알아줄 수 있는 자리에 서지 못하고, 하늘이 믿어줄 수 있는 자리에 서지 못하고, 하늘이 간섭할 수 있는 자리에 서지 못하였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기억해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을 선민으로 택하였습니다. 많은 민족 가운데에서 하나님만을 사랑하는 민족을 찾아 세운 것입니다. 하늘이 이렇게 민족을 찾아 세울 때 어떻게 하셨습니까. 정면으로 대하셨습니다. 정면으로 대하시면서 이스라엘 민족을 찾아 세웠습니다. 하늘은 정면으로 대하는 거리를 단축시켜서 `너자 나요, 나자 너’라 할 수 있는 환경으로 역사를 몰아내려 오시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이 땅 위에 오셔서 `내가 네 안에 있고 네가 내 안에 있으며, 아버지가 내 안에 있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으니, 아버지는 네 안에도 있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택한 민족을 세워 이끌어오시는 목적은 무엇이뇨. `너와 나는 하나다’라고 할 수 있는 자리까지 가기 위해서입니다. 직선 상에 끌어들여 `내가 너요, 네가 나’라 할 수 있는 조건을 세우기 위해서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앎의 관계를 찾아 나오셨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인간은 타락으로 하나님과 정면으로 대할 수 있는 위치를 떠났습니다. 하나님을 대하는 데 있어서 소망으로나, 사정으로나, 심정으로나 정면으로 대하는 인간이 본래 가치의 인간입니다.

인간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그 소망의 바르지 못하고, 사정이 바르지 못하고, 심정이 바르지 못하여 하늘로부터 추방을 당하였습니다. 추방을 당했어요. 선조로부터 지금까지 역사노정에 왔다 갔던 수많은 인류는 바른 소망과 바른 사정과 바른 심정에 입각한 관을 못 가졌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나는 천상천하에서 하늘을 움직이고, 땅을 움직일 수 있는 자신을 가졌다’ 하는 사람이 역사노정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의 소망은 비껴 있고, 사정은 그릇되어 있고, 심정은 반대방향을 향해 있다는 것을 알아야만 되겠습니다.

우리는 어떠한 후손이냐? 근본적으로 그 출발에서부터 딴 소망과, 딴 사정과, 딴 심정에 엉클어져 번식된 후손입니다. 즉, 하나님이 바라는 소망, 하나님이 바라는 사정, 하나님이 바라는 심정을 가지고 하나님의 정면에 설 수 있는 인간이 못되었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소망과 사정과 심정이 어떠한 곡절에 매어 있고 엉켜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면 자신을 모르는 것입니다.

7-210
타락 인간의 소망과 사정과 심정
이래서 타락한 인류 앞에 하늘은 제시했습니다. 인간이 소원하고 소망할 것은 땅도 아니고, 땅 위의 어떠한 위대한 성인도 아니고, 하나님이라고! 하늘은 인간들이 이 세상의 사정에 엉클어져 살고 있는 것을 거부했습니다. 왜? 거짓 것이니. 그래서 하늘이 여기에 대한 대책을 세워 나오셨습니다. 이 사정을 돌려 천적 사정으로 몰아넣자고 하는 사명을 하나님 대신 역사노정에서 책임 맡고 나오는 것이 종교요, 이 종교는 중심삼고 양심의 노정을 개척해 나온 것이 종교인들의 생활이었습니다.

여러분의 소원과, 여러분의 사정, 더 나아가서는 여러분의 심정을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 돌렸습니까? 돌리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아신 예수님은 이 세계를 바라보시고 온 인류를 하나님 편으로, 다시 말해 새로운 소망, 새로운 사정, 새로운 심정의 세계로 돌이키고자 하셨습니다. 그런 책임을 지고 이 지상에 오셨기에 그를 소망의 주인공이요, 사정의 주인공이요, 또는 심정의 주인공, 사랑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 앞에서는 누구도 당당하게 나는 이런 소망과 심정을 갖고 있다고 큰소리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소원이 하나님이 가지라는 소원입니까? 그 사정이 하나님이 그렇게 살라고 한 사정입니까? 그 심정이 하나님을 통해 나온 심정입니까 하고 묻게 될 때,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중요한 문제가 무엇이뇨. 인간의 소원이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아야만 나를 알 수 있습니다. 현재 살고 있는 인간의 사정도 알아야 되겠고, 또 심정문제도 어떻게든 알아야 됩니다. 이것을 알기 위해서는 상대적인 기준을 찾아야 합니다. 그런데 막연하나마 이것을 인간 앞에 제시해 나온 것이 종교들이었습니다. 타락한 인간의 후손인 우리들은 하늘 앞에 어떤 종족, 어떤 족속인가. 하늘을 배반한 족속들입니다. 하나님의 소원을 가로막고, 하나님의 사정을 가로막고, 하나님의 심정을 가로막고 배반해 내려온 인간들임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런 입장에 있는 인류이기 때문에 어떤 소망, 어떤 사정, 어떤 심정의 세계에 사는 듯하나, 그 마음속에는 딴 마음이 낀다는 것입니다. 이 둘 사이에서 싸우는 고통을 절실히 느끼는 사람은 죽든지 하나님을 찾든지 둘 중의 하나를 택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지적이고 똑똑하고 심각한 사람은 죽음을 무릅쓰고 이런 길을 찾아나갔던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들은 어떠한 느낌을 느껴야 될 것인가. 하늘을 알고 내자신을 알려면 어떠한 느낌을 느껴야 될 것인가. 우리는 하늘을 배반한 역적의 후손입니다. 누가 이 말에 반대하겠습니까? 천상을 배반한 역적의 후손이예요. 그러나 우리의 마음은 본연의 세계와 연락하고 있습니다. 수시로 연락하는 것이 아니라 주기적으로 연락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몸은 하늘을 배반한 역적의 피와 뼈와 살이 옮겨진 몸들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할 것인고. 이것을 어떻게 할 것인고.

하늘은 우리 인류가 미워서 심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인류를 이렇게 만들어 놓은 사탄, 악을 지배해 나오는 주인공, 하나님을 배반하여 나오는 그 주인공을 쳐서 분립시키는 것이 하나님의 섭리의 목적입니다. 우리 인간들을 잡아다가 죽음의 가마솥에 처넣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인간을 유린하고 이 땅을 어지럽혀 나오는 사탄을 박멸하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길을 떠나라, 이 길을 피하여 나가서 싸워라, 원수시하라고 여러분의 마음에 경고하고 있습니다. 양심을 가진 자에게는 가면 갈수록 너는 여기서 떠나야만 된다고 경고한다는 것입니다. 원수의 마수에 잡힌 포로가 되는 것이 인간이 이 땅 위에 태어난 본위(本位)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한 본래의 목적은 무엇이뇨. 참아들딸, 하나님의 아들딸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나와의 본연의 관계는 사랑을 중심삼고 끊을 수 없는 부자의 관계를 가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연을 맺어야 할 오늘의 인류는 사망과 같은 절망 속에 사로잡힌 채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 자신들이 어떠한 입장에서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도무지 모르고 있습니다.

이런 인간들 앞에 본연의 소망과 사정과 심정의 세계관을 갖고 오셔서 어떻게 어떻게 해서 본향을 찾아가라 가르쳐주는 분이 있다면, 그는 소망의 구주요 사정의 구주요 심정의 구주일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지 않아요. 살아가는 데는 소망과 사정과 심정, 이 세가지 요소가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어떠한 사정, 이런 사정 저런 사정을, 또 어떠한 소망, 이런 소망 저런 소망을, 또 어떤 심정, 이런 심정 저런 심정을 갖고 있습니다. 인간의 생활은 어떻게 보면 소망과 사정과 심정에 목을 매고 사는 놀음입니다.

때문에 이제 인간이 바라는 것은 지금 살고 있는 것이 고통스러우니, 이것을 원수시하고 이것을 박차고 나아가 새로운 소망, 새로운 사정, 새로운 심정의 세계를 찾는 것입니다. 타락한 인간이 원하는 것은 본연의 세계입니다.

7-212
구주는 어떤 분인가
오늘 여러분들 중에 자기를 세워 자랑하는 사람이 있을는지 모릅니다만 돌아들어가 그 자신을 냉정히 비판해야 되겠습니다. 자랑하는 자는 꺾어집니다. 악한 세상이기에 자기 자신을 내세워 자랑하고자 하는 자는 그렇게 됩니다. 그러므로 양심적이어야 합니다. 양심에 따라 움직이려 하는 사람은 악한 자들이 움직이는 환경이 지나간 다음에는, 어느 한날 반드시 세워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작은 사실이지만 역사적인 산 증거입니다. 이러한 일이 세계적으로 하늘 땅에 벌어지는 그때는 악이 물러가고 선의 시대가 오는 때입니다.

하늘은 우리를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인간들은 지금까지 6천년의 기나긴 세월 동안 하늘을 향하여 찾아가고 있습니다. 하늘이 세워준 그 소원이 참소원인 줄 알고, 예수가 우리를 구원한 사정이 완전한 구원인 줄 알고, 예수가 세워준 사랑이 참의 심정을 통할 수 있는 사랑인 줄 알고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예수를 믿은 그날부터 `세상 소망아 멀리 가라’, `세상 사정아 멀리 가라’, `세상 심정아 가거라’ 할 수 있는 자신이 되지 못했습니다. 아직까지 그 한계선을 못 넘어섰다는 것입니다. 이런 죄악의 땅에 예수가 와서 해야 할 일은 무엇이었느냐 하면, 이 죄악된 땅을 혁명하는 것이었습니다. 새로운 소망의 세계, 새로운 사정의 세계, 새로운 심정의 세계인 이상동산을 이뤄 놓아야 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사명을 지니고 오셨던 것입니다.

7-213
고통의 세계에 처한 인간의 실상
인간은 고통의 세계에 살고 있습니다. 몸과 마음의 세계에 있어서 치열한 싸움을 하고 있어요. 몸이 대하는 세계는 실체의 세계니 대하는 전부가 실체적인 자극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마음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 이 실체 세계의 자극 앞에 사로잡히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으로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다고 한탄하였습니다. 그것은 왜입니까? 실체로 느껴지는 감정, 즉 실체를 중심삼고 사방으로 들어오는 자극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마음의 자극은 사방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한 방향으로 흘러 들어옵니다. 한줄기 방향으로 들어오는 이 마음의 자극보다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실체의 자극이 더 강하기 때문에 마음의 자극은 끊기고 밟혀 왔습니다. 이런 것이 오늘 우리의 마음에 뒤넘어치고 있다는 것을 부정하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에 자극이 오는데 그 방향은 사방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뒤나 좌우로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정면으로 찾아옵니다.

그런고로 여러분들이 악한 세상에 살고 있어도, 자신이 알 수 없는 사이에 `아!’ 하고 무엇이 그리워지는 것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혹은 신앙생활을 하는 자들도 자기가 알 수 없는 사이에 기도하고 싶어집니다. 그것은 마음에 어떤 움직임이 있기 때문입니다. 마음에 문이 있다면, 그때에 맞게 그 문이 열려 가지고 그 문을 통해 하늘의 인연이 움직여 들어올 때, 여러분은 마음에 자극을 느껴 그 세계를 추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악은 사방성을 갖추어 실체로서 나를 공격해 들어오지만, 하늘은 정면에서 한 방향을 통하여, 마음 밑에서부터 나를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러한 하늘을 수없이 유린해 왔습니다. 그러기에 여러분들은 하늘 앞에 설 수 없는 반역자입니다. 그것을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인간은 사탄의 철망권, 즉 사탄주관하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주관하에서 살아야 할, 하늘의 백성이 되어야 할, 천국 백성이 되어야 할 우리가 사탄주관권 하의 포로와 같은 처지에 있습니다. 포로병과 같은 우리들이예요. 우리는 이런 입장에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우리의 마음속 깊이에는 본향의 이념, 본향의 사정, 본향의 심정을 통할 수 있는 어떤 움직임이 있습니다. 이 움직임이 마음에서 폭발되어 몸까지도 자유자재로 움직이게 하고 하늘과 땅의 전부를 굴복시켜기 위해서 하늘은 사람을 지으신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이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기에 실낱같은 마음의 움직임에 따라 선의 방향을 찾아서 그것을 실현시키기 위한 싸움의 생활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사탄은 여기에 삼면공격을 해 들어옵니다. 좋은 물질을 갖고 세상의 어떤 권세를 갖고, 세상의 어떠한 권위를 갖고 삼면공세를 해 들어옵니다. 이것을 끊고 끊고 또 끊으면서 싸워나가는 길이 신앙의 길입니다. 그래서 쉬지 말고 기도하라 하였습니다. 기도의 시간은 싸움의 시간인 것입니다.

예수는 이러한 견지에서 사탄의 포로가 된 인간을 바라보며 사탄주권 세계를 격멸시키고 궤멸시킬 책임을 짊어지고 왔었습니다. 사탄세계를 궤멸시킬 기반을 구축하여 공작하기 위해, 선발대를 악한 세상에 만들어 놓으려 하는 것이 선생님의 생각입니다, 선생님의 생각. 그리고 섭리할 수 있는 선두 공작대를 만들어 하나님이 이 세계를 복귀하시는 데 하나의 발판으로 쓰기 위해 택하여 세운 것이 이스라엘 민족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민족은 몰랐습니다. 그 민족은 몰랐다는 거예요.

7-214
아브라함과 그 가정을 중심한 하나님의 섭리
아브라함 이후 예수때까지 2천년, 하나님은 그동안 이스라엘 민족 앞에 믿음이라는 조건을 세워 놓고, 개인이 믿으면 개인을 넘어 가정을 믿을 수 있는 기대를 개척하고, 가정이 믿으면 가정을 넘어서 민족이 믿을 수 있는 기대를 개척하였고, 민족이 믿으면 민족의 기대를 넘어서 세계가 믿을 수 있는 기대를 개척해 나오셨습니다. 여러분들은 이걸 알아야 하겠습니다.

하늘이 택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어떤 사람이었는가. 개인으로서 하늘과 연락할 수 있는, 사탄세계에 대한 정탐꾼이었습니다. 오늘날의 말로 하면 간첩이었어요. 세상이 사탄의 세상이었으니 어느누구도 환영하는 자가 없었습니다. 전부가 원수였기 때문에 그는 듣는 것도 가려서 들어야 하고 보는 것도 가려서 봐야 했습니다. 생각도 분별해서 해야 하고 행동도 눈치를 봐가면서 해야 했습니다.

밥을 먹어도 눈치밥, 잠을 자도 눈치잠, 사는 것도 눈치생활을 해 나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늘섭리를 받들어 온, 섭리의 뜻을 대하던 우리신앙 선조들이 걸어간 길이었습니다.

하늘은 택한 아브라함을 갈대아 우르에서 끌어내어 그런 자리로 보냈습니다. 황무지와 같은 곳에서 몰아낸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그곳에서 하늘이 세우려던 하늘 주권의 나라가 세워질 한날이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하늘이 축복한 아들 딸들이 바다의 모래알같이,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하여 악의 세상을 칠 수 있는 그날을 고대하면서 우리의 선조들은 고국산천을 버리고 나섰던 사실들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왜? 원수의 나라, 원수의 철망 안에 사로잡혀 있으니 지긋지긋하게 느껴져야 합니다. 몸에 소름이 끼치는 것이 여러분도 느껴져야 됩니다. 이런 것을 느끼지 못한다면 여러분은 하늘 앞에 완전한 신앙자라고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늘이 아브라함을 세운 목적은 무엇인가. 먼 거리에 있는 인간, 적진가운데 있는 인간, 사탄세계에 있는 인간과 연락할 수 있는 하나의 기반으로 삼아, 이것을 토대로 하여 횡적으로 뻗어나가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자칫 잘못하면 하늘과 땅의 관계가 끊어지겠으니 할 수 없이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 하여 직계의 혈통을 통해서 움직여 나오신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걸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삭과 아브라함이 축복을 받을 때에 그들이 가진 것은 무엇이었느냐. 선민이라는 것밖에 없었습니다. `너는 사탄세계와 타협해서는 안 된다. 화합해서는 안 된다. 너는 선민이니 생활도 다르고, 감정도 다르고, 바라는 소망도 다르고, 네가 꿈꾸는 이상도 다르다. 너는 나를 통해서 승리의 한날을 봐야 너의 후손이 살 수 있다’고 하는 관점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축복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도 그런 관점에서 이삭을 축복해야 했고, 이삭도 그런 관점에서 야곱을 축복하여야 했으며, 야곱도 그렇게 그의 후대 앞에 축복하여야 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이 그 전통적인 축복의 인연을 배반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택하여 개인적인 믿음의 환경을 개척한 이후 야곱시대에 들어와서는 가정을 거쳐 70식구를 거느리고 사탄세계인 애급에 들어가게 했습니다. 이 가정을 기반을 토대로 하여 무엇을 했던가. 민족을 형성하기 위해 사탄세계로 몰아냈습니다. 본국이 아니라 사탄세계의 제일 가는 소굴입니다. 그 시대의 이스라엘 민족 앞에 역사적으로 원수인, 사탄세계인 애급으로 쫓아 들여보냈던 것입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이 가정적인 기반을 중심삼고 어떠한 고통, 어떠한 죽음길, 어떠한 분함이 있더라도 참아야 했습니다. 참는 데도 어느 때까지 참아야 되었느냐 하면 민족이 구성될 때까지였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4백년을 유리고객하고 고통의 생활을 하면서도 민족 구성의 소망 밑에서 `하나님, 당신의 분함을 푸시옵소서’ 하는 마음이 사무쳐야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4백년 역사는 지나갔으나 이스라엘 민족은 하늘의 전통적인 소원과 사정과 심정에서 이탈되기만 했습니다. 그렇게 되니 이를 재수습하기 위해 오신 분이 모세였습니다. 이 모세는 60만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였습니다. 민족의 지도자.

7-216
이스라엘 나라가 망하게 된 동기
그러면 하나님은 이 민족을 기반으로 무엇을 하려고 하셨느뇨. 민족을 기반으로 하여 세계무대로 나가고자 하신 것입니다. 때문에 택한 민족 앞에, 하늘은 이 민족을 거느려 새로운 왕국을 건설할 수 있는, 만왕의 왕이 될 수 있는 메시아를 보내 주마고 약속하셨습니다. 민족을 기반으로 약속을 하셨습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을 기반으로 한 것이 아니요, 야곱을 기반으로 한 것이 아니요, 모세 이후 민족을 기반으로 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와 같이 민족을 기반으로 하여 세계의 사탄주권을 때려 치우고 하늘의 승리의 기반을 닦기 위해 세계적인 대왕자로서 보내셨던 분이 메시아임을 그 민족은 몰랐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어떠한 관점에서 메시아를 고대했습니까. 메시아가 나타나면 민족 전체가 단결하여 세계무대를 개척하고 사탄세계를 정복해야 할 하늘 섭리 앞에 선민이라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사탄세상에 사는 것을 통분하고 통분하게 느꼈던들, 그들이 예수를 잡아 죽일 리 만무하다는 것입니다.

이 땅 위에 예수는 오셨었습니다. 그의 소원은 무엇이었느뇨. 개인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12제자가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70문도가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예수가 문제시한 기준은 이스라엘 민족 전체였던 것입니다. 택한 민족을 통치하여 결속시켜 가지고 새로운 가나안복지를 건설하기 위한, 세계 가나안복지를 향한 행군나팔을 불어야 할 예수가 민족의 대표자리에서 몰려나던 그 원한에 사무친 일은 역사노정에서 이스라엘이 망하는 동기가 되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지금까지는 죽으러 온 예수로 알았습니다. 이런 말을 왜 합니까? 알고 보니 그렇지 않기 때문입니다. 천륜을 위하여 싸울 용자가 필요합니다. 이치가 그렇지 않아요.

4천년이란 기나긴 역사를 거쳐서 하늘이 사탄세계에 연락할 수 있는 정보기관 같고 군사기지와 같은 것을 만들어 놓았는데, 이것들이 다 자빠졌단 말입니다. 4천년 공들인 민족의 기반에 예수를 보냈지만 그들이 예수를 불신했습니다. 그래서 민족의 기반이 무너지니 백성 없는 왕이 있을수 있습니까? 그러니 사탄 세상에서 그를 잡아다가 마음대로 한 것이 십자가의 죽음입니다. 왕자의 비참한 사형입니다. 그러나 그 민족은 예수의 십자가 죽음이 이스라엘나라 왕자의 비참한 사형인 것을 몰랐습니다.

어디에서 죽음을 당했느냐. 사탄 주권 하에서 죽음을 당했습니다. 여러분들, 여기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더 알고 싶거들랑 나중에 시간이 있으면 나를 만나러 오세요. 그렇게 돼 있어요. 그러니 하나님은 분하다는 것입니다. 예수는 내가 와서 죽기는 죽을 것이로되, 죽기 전에 하늘의 통첩을, 비밀 약속의 문서를 너희에게 주마 하셨습니다. 이것이 신약복음입니다. 이 비밀 문서가 신약복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나를 믿으라. 나를 믿고 따라와야 산다. 나를 믿으면 어디로 가느냐. 해방의 곳으로… 나를 믿어야 산다. 믿으라. 내가 너희들 때문에 왔다가 죽으니, 나를 믿고 내가 한 말을 믿으라 이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가 살 수 있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성경 말씀은 암호입니다. 하늘이 사탄세계에 와서 연락할 수 있는 암호예요. 비유와 상징으로 쓴 것입니다. 그러니 성경은 아무리 읽어도 모릅니다. 이 암호를 풀 날이 있을 것이어늘, 그러려면 충성을 다하고 정성을 다해야 합니다. 예수가 바라던 것이 무엇이었느냐. 민족을 기반으로 하여 세계 복귀의 이념을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세계의 어떠한 사조나 주의 주장이 그것을 해명할 수가 없으니 어느 한때에 이 비밀문서를 해명하여 우리들이 가야 할 방향과 목적지를 제시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7-218
각성해야 할 제2 이스라엘
오늘날 기독교 신자들은 사라진 이스라엘의 제2의 기반입니다. 오늘날 세계에 있는 기독교 신자들은 2천년 전 세계 가나안복지로 진격하기 위해 세우려 했던 선민, 제2이스라엘임을 각성해야 됩니다.

여러분, 그런 말이나 들어보았어요? 제2이스라엘의 아들딸임을 알고 각성해야 됩니다. 그렇게 되면 지금 내가 여기에서 고통받고 진저리나는 고난을 받고 있지만, 어느 한날이 올 것이어늘, 그날에는 하늘의 권세 앞에 늠름한 모습을 자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소망하는 재림의 날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이 세계에 있는 제2이스라엘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를 거쳐 나갈 때, 반열 편성이 있었습니다. 제2이스라엘인 여러분은 어느 반열에 속해 있습니까?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자신이 어느 반열에 속해 있는지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천상에는 열 두 진주문이 있는데, 그 열 두 진주문의 한 문 한 문에는 사도의 명패가 붙어 있습니다. 그러니 어느 교파, 혹은 장로교면 그 장로교가 무슨 지파에 속해 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지파를 잃어버린 제2이스라엘입니다. 지금이 바로 광야에서 허덕이는 그 때와 같습니다. 바로 그런 때예요. 그러니 여러분 앞에는 아말렉과 같은 족속이 공격해 오는 때가 있습니다. 그 때는 생사의 판가리를 지어야 할 때입니다. 2대진영이 대결하고 있는데 한 편에서 공격, 진격을 하고 있습니다. 하늘은 먼저 치지 않고, 몸적으로 치고, 생활적으로 치게 됩니다. 근본과는 반대방향에서부터 우리를 향해 진격해 들어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각성해야 합니다. 전세계의 제2이스라엘은 규합해야 합니다. 예수의 열 두 사도와 같이 나는 어떤 사도다, 나는 어떤 반열이다 하며 싸우면 망해요. 그런 시대가 온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애급에서 모세를 중심삼고 열 두 지파로 분파를 조성해 민족관념을 강하게 가졌던 것과 같이, 그 열 두 지파들이 모세를 대하고 하늘 뜻을 대하던 것과 같이, 예수님 당시에도 메시아를 모시기 위해 반열의 조직을 만들어 단결하였던들, 예수는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반열을 잃어버린 민족이 되고 보니 모두 각각이 되어 버렸습니다. 제가끔 끼리끼리, 자기들 멋대로, 제갈래끼리의 놀음을 하다가는 망하는 겁니다. 이치가 그렇지 않습니까?

7-219
선지선열을 통해 찾아오신 하나님과 찾아가야 할 나
하늘은 우리를 찾아와서 이렇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개인을 대해서도 나는 너의 아버지요, 가정을 대해서도 아버지요, 민족을 대해서도 아버지요, 세계를 대해서도 아버지라고. 민족이 아버지를 갖고 있는 한, 네 아버지요 내 아버지입니다. 세계가 그 아버지를 갖고 있는 한, 네 아버지는 내 아버지라는 것입니다. 하늘은 그렇게 되기를 바라십니다.

하늘은 우리를 찾아오셨습니다. 하늘은 사탄 주권의 포로가 된 우리 인간 개개인을 대하여 찾아오셨습니다. 그런데 개인적인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을 세우셔서도 하고 싶은 말을 못다 하셨습니다. 가정을 세우셨으나 하고 싶은 말을 못다 하셨습니다. 민족적으로 모세를 세우셨으나 하고 싶은 말을 못다 하셨습니다. 예수는 세우셨으나 그 때 역시 하고 싶은 말을 못다 하셨습니다. 못다 했어요. 성경에 엄연히 나와 있어요. 말을 다 못했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예수님은 세계적인 하나님이요 천주적인 하나님을 대표하고 하늘 땅 전체를 대신한 분으로 오셨기 때문에, 그러한 발판이 없이는 일을 성사하실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는 끝날에 다시 오겠다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자신을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 자신은 역사적인 빚을 지고 있습니다.

하늘은 여러분에게 알려 주고 가르쳐 주기 위해서 수십 번 수천만 번을 여러분의 종족, 혹은 여러분의 선지들을 찾아오셨습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알고 있습니까?

그러면 예수님은 무엇을 갖고 오셨습니까? 예수는 아버지를 중심삼고 만왕의 왕으로서 만민을 하늘의 자녀로 세워 사탄세계를 심판해 버리고, 행복의 동산을 이루시려는 이념을 갖고 오셨던 것입니다. 그런 소망을 갖고, 그런 사정을 갖고, 그런 사랑의 심정을 갖고 오셨어요. 그런데 오늘날 여러분, 그러한 소망을 가져 보았습니까? 그런 사정을 통해 보았습니까? 그런 심정을 느껴 보았습니까? 못해 봤으면 심판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모세와 역대의 선지, 4대 선지와 12소선지가 부르던 아버지, 혹은 예수가 부르던 그 아버지시여!’ 이렇게 부르짖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아브라함의 힘의 하나님이시여, 야곱의 하나님이시여, 모세의 하나님이시여, 예수의 하나님이시여! 나의 하나님이 되시옵소서’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남의 하나님이면 안 되겠습니다. 나의 하나님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그렇게 해야만 됩니다.

역사적인 하나님을 부를 때는 지나갔습니다. 그러니 시대적인 하나님이 나와 관계가 없어서는 안 되고 미래적인 하나님이 나와 관계가 없어서 안되는 것입니다. `역사적인 하나님이시여! 사정이 이렇지 않습니까? 시대적인 하나님이시여! 사정이 이렇지 않습니까? 미래적인 하나님이시여, 사정이 이렇지 않습니까? 소원이 이렇지 않습니까? ‘ 라고 했을 때 하나님이 `오냐’ 할 수 있는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들은 먼저 사탄세계에 처해 있음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사탄의 후손들입니다. 하나님편이 아닌 사탄의 포로가 된 포로병들입니다. 그런 여러분들을 빼앗아오기 위한 세계적인 연락의 대표가 구주입니다. 구주, 구해 준다는 말입니다. 구주는 포로병들을 구하기 위한 사명을 띠고 왔던 사람입니다. 마음을 격려해 가지고 행동으로 싸우게 했습니다. 때문에 예수는 내가 세상을 화평케 하러 온 것이 아니라 병기를 주어 분쟁을 일으키려 왔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분쟁이 이루어지고 있습니까.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까. 한번 보십시오.

7-221
사탄세계를 복귀하시는 하늘의 작전법
우리는 하나님 앞에 찾아가야 할 백성이요, 하늘의 아들 딸이요, 하늘의 식구요, 하늘의 부부요, 하늘의 참다운 형제입니다. 그런데 이게 웬말입니까? 우리는 형제도 잃어버렸습니다. 부모도 없고, 가정도 없고, 백성도 없고 상대도 없는 불쌍한 사람입니다. 그러니 이것을 다시 복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찾아야만 돼요.

이것을 찾는 데는 마음으로 찾아야 합니다. 하늘은 마음을 통해 찾아 들어옵니다. 마음문을 두르려 열고 들어옵니다. 그리하여 `내가 이래선 안된다. 이 세계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느낌을 주입시켜서 그 환경과 싸움을 하게 섭리해 오신 것이 6천년 역사입니다. 선을 대표한 사람과 악을 대표한 사람들의 싸움이 반복된 것이 6천년 전쟁사입니다. 인류역사가 전쟁사라는 거예요.

처음에는 악한 사람들이 선한 한 사람을 쳐서 이긴 것 같지만, 그 선한 한 사람을 치고 나면 또 번식됩니다. 죽으면 번식된다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 맞으면 세 사람 이상을 찾을 수 있는 천적인 조건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는 어느 국가에서든지 먼저 맞습니다. 하나님의 작전법은 사랑하는 아들 딸을 사탄세계에 보내어 그들로부터 맞고 죽임을 당하게 하여, 그 값으로 그만큼 사탄세계에서 빼앗아오는 것입니다. 선한 사람이 먼저 치는 법이 없습니다. 먼저 맞고 맞은 그 대가만큼 사탄세계에 손해배상을 해서 찾아옵니다. 하늘의 작전법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까지의 기독교 역사는 순교의 역사요, 피의 역사입니다.

그래서 역사노정을 보아도 친 자가 항상 집니다. 세계대전을 보십시오. 1차 전쟁에서도 친 편이, 2차 전쟁에서도 친 편이 졌습니다. 3차전쟁에서도 친 편이 집니다. 개인 생활에서도 참아라, 참는 자에게 복이 있으니, 맞고 참아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참으면 세워질 날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억울함을 참고 계시고, 6천년 동안 사탄 앞에 참소받으며 억울하고 분한 것도 분풀이를 못하고 계시니 `너도 억울하지. 오냐, 너는 내편이로구나’ 하실 날이 올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신앙세계에서 참으라 하고 있습니다. 믿고 참으라는 것입니다. 순종, 복종, 희생이라는 것입니다. 왜? 그러다 보면 세워질 한 날이 오기 때문입니다.

하늘의 작전법이 먼저 맞고 빼앗아오는 것이기 때문에, 예수도 맞으면서 기도해 주었습니다. 사탄세계의 법에도 걸리지 않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원수시했다가는 사탄세계의 법에 걸립니다. 그런 작전법을 세워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알아야만 되겠습니다. 그리고 오늘 여기에 참석한 여러분 개체 개체는 역사노정에서 몇 번씩이나 찾아준 하나님의 아들 딸이라는 것, 하늘나라의 백성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늘나라의 식구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늘나라의 형제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의 직계의 아들 딸들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아들 딸, 이런 식구, 이런 인간, 이런 백성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오늘날 우리 인간들은 하나님을 몰랐습니다. 역사적인 하나님이 나를 위해서, 시대적인 하나님이 나를 위해서, 미래적인 하나님이 나를 위해서 찾아 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참다운 아들 딸이 되도록 나를 찾아주신 하나님인 것을 몰랐습니다. 불쌍한 하나님이십니다. 보십시오, 이렇게 나를 찾아준 하나님인 것을 알았습니까?

알고 보니. 우리는 그 아버지에 대한 책임이 있습니다. 6천년 동안 하나님은 이 땅 위에서 일해 나오셨지만 아들이라고 영원히 사탄 앞에 자랑할 수 있고 사탄세계에 침범받지 않을 수 있는 자가 있느냐? 없습니다. `이 가정이 내 가정이로구나’ 할 수 있는 가정이 없습니다. `이 민족은 내 민족이다’ 하여 사탄이 침범할 수 없는 민족이 없습니다. `오냐, 이 땅은 내 땅이다’ 할 수 있는 땅도 없습니다.

하늘이 이러한 입장에 계십니다. 그러면 이 일을 누가 해야 되겠습니까? 인간이 타락했으니 인간이 그 일을 해야만 됩니다. `아버지시여, 내 집은 아버지의 집이오니, 이 집에서는 사탄을 절대 용납치 않습니다. 영원히 용납할 수 없습니다’라고 해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집이 있어요?

7-223
하늘 앞에 충신이 되려면
역사적으로 찾아오신 하나님, 시대적으로 찾아오신 하나님, 민족적으로 국가적으로 찾아오신 하나님, 나아가서 세계적으로 찾아오신 하나님 앞에 배반자가 될 것이냐, 그렇지 않으면 충신이 될 것이냐, 둘 중의 하나만을 선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기에 면양과 산양을 가른다고 하였습니다. 충신이 되려면 분함과 원통함을 알아야 됩니다. `내 아버지가 과거에는 이렇게 분하셨구나. 오늘의 아버지가 이렇게 분하시구나. 미래의 아버지가 이런 입장에 계시는구나!’그 아버지의 분함을 알아야 됩니다.

이제 우리는 단결해야겠습니다. 하늘 백성을 찾으시는 하늘 앞에 하늘 백성이 없으니 우리는 깃발을 높이 들고 죽음을 무릅쓰며 하늘 백성을 모아야 되겠습니다.

하늘의 민족, 하늘의 종족, 더 나아가 하늘 가정, 하늘의 아들 딸, 하늘의 부모를 못 가진 하나님을 생각하게 될 때에, 우리들은 머리를 들 수 없습니다. 하늘 앞에 머리를 들 수 없는 인간들입니다. 오늘 여러분들이 여기에 와서 알아야 할 것은 하늘 앞에 머리를 들 수 없는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내 집에 누워 있는 형제가 내 형제인 줄 알았더니, 아닙니다. 내가 살고 있는 이 천지가 내가 살 나라인 줄 알았더니, 아니예요. 내가 연락하고 있는 이들이 내 친구인 줄 알았더니, 아니더란 말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생각해 볼 때, 과연 예수께서 하신 말씀은 지당한 말씀입니다. 그는 인간 앞에 할 수 있는 말을 다하고 갔습니다. 할 수 있는 말은 다 했는데, 그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는 무리를 바라보고 예수는 통곡하였던 것입니다. 사람을 위하여 왔던 예수, 민족을 위하여 왔던 예수가 민족을 버리고, 반대하는 무리를 뒤에 두고 산중에 들어가 하늘 앞에 눈물짓는 기도의 생활을 했던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하겠습니다.

몸에서부터 마음에서부터 뜻에 대한 소망을 품고 `아버님’하고 정면으로 달음질쳐 들어가는, 다시 말해 백성 대신, 민족 대신, 종족 대신, 형제 대신, 자녀 대신 달음질쳐 들어가는 아들 딸이 있다 할진대, 하나님은 그 아들 딸들을 붙들고 통곡을 하실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를 막달라 마리아가 붙들려할 때에, 이런 원칙적인 내용을 통하지 못했기 때문에 `나를 붙들지 말라’ 하셨습니다.

역사상의 인류는 아직까지 하나님을 향하여 정면으로 달음질쳐 나가지 못했습니다. 민족과 종족, 형제의 입장을 지나 자녀의 입장에 서서 아버지를 대하여 아버지라 할 수 있는 자리에 나간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역사노정에서 예수는 이런 책임을 했기 때문에 구주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가 `아버지’할 때 하나님이 `오냐, 이제는 승리했구나’라고 할 수 없는 처지에서 예수는 죽어갔습니다. 그러니 예수는 온 우주와 천상천하의 사탄 대한 승리의 목적을 종결짓기 위해서 이 땅에 다시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구름 타고 와서 되겠어요?

이제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나를 알아야 되겠습니다. 겹겹이 가로막힌 포로수용소에 있는 내 몸이예요. 그러므로 해방된 자유의 천지, 우리 백성이 살고 있고, 우리 형제가 살고 있고, 우리의 부모가 살고 있고, 우리 아들 딸이 살고 있는 곳을 하나님은 얼마나 그리워하셨겠습니까?

하나님은 6천년 동안 하루 한 시간도 그와 같은 심정의 세계를 잊어본적이 없이 인류를 대하여 나오고 계십니다. 우리는 이것을 몰랐습니다. 하지만 이젠 알아야겠습니다. 알고 나서는 하늘을 향하여 정면으로 달음질쳐 가야 되겠습니다. 천상의 모든 것과 땅의 모든 것이 환희하며 축복해 줄 수 있는 그 한날을 향해 개인으로서 인류를 대표하여 그러한 책임을 지고 달음질칠 수 있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나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 목표는 그것입니다. 그저 믿고 천당가겠다고? 천당가겠다고 해서 갈 수 있습니까? 어느 관청에 가서 수속 하나 하는데 있어서 글자 하나만 틀려도 다시 하는데 천당문을 그냥 슬쩍 넘어갈 수 있을 것 같애요? 천만 부당한 말입니다. 어떠한 사정적인 조건 가지고는 못 들어갑니다. 천국은 심정관을 통해야 들어갈 수 있는 겁니다. 심정의 세계는 공간과 시간을 시간을 초월할 수 있기에, 거기에는 진보도 없고 퇴보도 없습니다. 일정한 관(觀)도 없고 형(型)도 없습니다. 거기서만은 알파이자 오메가요, 시작이자 영원인 것입니다.

7-225
하나님의 소원과 사랑
사랑의 하나님은 사랑을 걸어 놓고 움직여 나오시는데,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됩니까. 백성된 나를 느낄 줄 알고 하늘 백성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늘 민족을 사랑할 줄 아는 내가 되어야 합니다. 하늘 형제를 사랑할 줄 아는 내가 되어야 합니다. 하늘 식구를 사랑할 줄 아는 내가 되어야 합니다. 하늘 자녀를 내 몸같이 사랑할 줄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소원과 사정은 지나가도 사랑은 남아집니다. 이런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늘의 소원은 무엇이뇨. 그저 뭐 예수 잘 믿는 사람을 천당 보내서 면류관을 한 백개쯤 씌워 주는 것이 하나님의 소원인 줄 아십니까? 아닙니다. 마음을 터놓고 가슴을 헤쳐 놓고 사랑하고 싶은 것입니다. `내가 많은 수고를 하였지만 너 하나를 만난 기쁨 때문에 그 모든 수고를 다 잊어버릴 수 있다. 소망하였던 모든 것이 이루어졌으니, 천상천하의 모든 존재들도 내 아들 딸을 보고 기뻐하는 나를 따라 기뻐하라’할 수 있는 그때, 천지는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런 날을 가졌습니까? 가졌다면 사탄으로 인한 공포가 어디 있으며, 사탄의 참소가 어디 있으며, 사탄의 간계에 걸릴 두려움이 어디 있겠습니까. 다 잊어버리고 쌍수로 환영하여 그를 붙들고 기쁨의 울음, 슬픔의 울음을 울 수 있으며, `사탄아 내 아들을 보아라. 네가 안뺏기겠다던 내 아들이 찾아왔노라. 만민아, 내 아들을 보아라. 너희들이 반대하고 핍박하던 내 아들이니라’고 자랑하실 때, 사탄도 만물도 `예’ 할 수 있는 하나의 아들을 찾으려 하시는 아버지라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하늘과 상대적인 관계를 가져야 합니다. 아버님과 사랑의 인연을 맺어, 거기에서는 어떤 위신도 체면도 처지도 잊어버리고, 아버지가 나요, 내가 아버지라 할 수 있는, 아버님이 난지 내가 아버님인지 모르는 자리입니다. 그런 자리에서 슬픔을 청산하여 기쁨의 심정을 가질 수 있고, 천상의 새로운 법도를 갖추어야 이 땅 위에 이상세계가 온다는 겁니다.

이와 같은 일을 제시할 수 있는 움직임이 이 땅 위에 나와야 하나님이 역사적인 섭리에서 승리의 발판을 잡을 수 있지, 그렇지 못하면 하나님은 실패하신 하나님이 되고 맙니다.

바울은 말하였습니다. 믿음과 소망과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으되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

그러면 하나님은 사랑은 무엇이뇨. 공중에 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외국에 가서 자기 동포가 매를 맞고 핍박을 받고 있으면 자기가 당하는 것처럼 분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사탄세계의 포로수용소에 들어가 있는 백성을 바라볼 때 `이 백성들이 우리 백성이다, 우리 백성이 그렇게 유린당하고 있구나, 우리 민족이 사탄의 철망에 갇혀 신음하고 있구나’하며 가슴을 쳐야 할 것입니다. 그 철망을 터치기 위하여, 하늘 앞에 `아버지, 힘을 주시옵소서. 아버지 같이하여 주시옵소서. 나는 아버지의 백성이요, 아버지의 혈족이요, 아버지의 식구요, 아버지의 아들 딸입니다’ 라고 할 수 있는 자를 하늘은 찾고 계십니다. 이런 아들 딸을 찾는 것이 하늘의 소원입니다. 하늘의 소원은 딴 게 아니고 이것이란 말입니다.

이런 아들 딸들을 만나는 것이 하나님의 소원입니다. 그런 아들 딸과 함께 자신의 사정을 나누고자 하십니다. 이런 아들 딸을 사탄의 참소를 받지 않고 영원히 사랑하고 싶은 것이 하나님의 심정인 것입니다. 하늘의 심정이 딴 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늘의 심정은 바로 우리 인간에게 있습니다. 그런 나를 알게 될 때, 아브라함을 세우심도 나 때문이요, 모세를 세우심도 나 때문이요, 이스라엘 민족이 처참한 환경에 부딪치게 된것도 나 때문이요, 예수가 왔던 것도 나 때문이요 우리 때문이요, 다시 와야 하는 것도 나 때문이요 우리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공동이념, 공동목표 아래 있는 우리들, 형제가 만나게 될 때, 서로 얼마나 수고하였고 얼마나 힘들었는가 하면 눈물지을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그렇게 반가운 식구를 만나 봤습니까?

8.15해방 후 우리 삼천만 민중에게는 먹을 것이 없던 어려운 때에도, 우리에겐 물질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굶주려 있으면 서로 먹여 주려 하고 서로 붙잡고 좋아했습니다. 기뻐하시는 하늘을 모셔 놓고 이 세계의 기독교 신자들이 서로가 붙안고, `오! 해방이요. 해방이요’ 하며 노래할 수 있는 한날을 맞이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소원입니다.

7-227
우리는 무엇을 알아야 할 것인가
하늘의 백성이 나요, 하늘의 식구가 우리요, 우리는 하나의 형제요, 하나의 인류라고 하며 서로 권고하고 서로 앞장서서 어려움을 담당하려 하는 움직임이 기독교 안에 나타나지 않는 한, 기독교는 망합니다. 유대교와 같이 됩니다. 광야에 나온 이스라엘 민족이 거기서 쓰러졌던 것과 같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면 민족적인 섭리의 뜻을 누가 받들 것이냐. 기독교가 알지 못하면 이방나라 사람들, 딴 종교의 사람들이 받아서 기독교의 축복을 이룰 날이 필연코 올 것입니다. 그러므로 역사적인 섭리가 자아도취하여 자위 자신하는 무리에게 찾아가서 이렇게 하라고 충고하지 않습니다. 인간이 섭리를 따라 움직이게 되어 있지, 섭리가 인간에 의해 인간을 따라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있는 정성을 다하고 있는 힘을 다하여, 서로 서로가 하늘 백성, 민족, 혹은 식구, 형제인 것을 알고, 하늘의 주권자 하늘의 통치자를 갈망해야겠습니다. 그럴 때가 이때입니다. 하늘의 소원은 그것입니다. 하늘이 사정을 통하고자 하는 나라는 그런 나라예요. 하나님이 사랑하고자 하는 이 세상세계는 그런 세계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다는 모르더라도 하늘의 백성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늘의 종족, 혹은 식구임을 알아야 합니다. 늠름한 아들 딸을 여러분은 만나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아는 자는 땅 위에서 하늘을 아는 자입니다. 예수께서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안다 하는 자는 나도 하늘 앞에서 저를 안다 하리라’하셨습니다. 그러지 않았어요?

여기 온 여러분은 무엇을 알려고 합니까? 하늘의 소원과 목적을 알고 하늘 백성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사탄세계의 포로가 되어 있는 것을 떨쳐내기 위해 안타까와하시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예수께서 죽음을 무릅쓰고, 어려움을 무릅쓰고 십자가의 철망을 뛰어넘은것 같이, 그렇게 하는 자는 그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땅 위에서 그와 같이 실천하는 민족이 있다 할진대, 새 시대의 왕국을 건설할 민족이 될 것입니다. 또 그러한 여러분이 된다면 하늘이 알아주는 자들이 된다는 것을 똑똑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7-228
기 도
아버님, 하늘의 소원이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옵고, 하늘의 사정이 하나님께 있는 것이 아니옵고, 하늘의 심정이 하나님 것이 아닌 것을 알았사옵니다. 역사와 더불어, 시대와 더불어, 미래와 더불어 하늘의 소원이 있기를, 하늘의 사정이 있기를, 하늘의 심정이 있기를 얼마나 고대하셨사옵나이까? 이것을 알아 드리지 못한 저희들은 배반자요, 반역자들인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사탄의 철망에 생포되어 있는 자신들임을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여기에 분한 마음을 품고 아버지를 부르는 부르짖음이 천지에 나타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모여 있는 이들의 가슴 가슴에 아버지의 심정이 와 닿게 하여 주시옵기를,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것이 이 민족 앞에, 이 세계와 이 인류 앞에 이루어지는 날, 그 즐거움은 온 천지간에 가득할 것을 아옵니다. 백성을 그리워하고, 민족을 그리워하고, 형제를 그리워하고 식구를 그리워하고 자녀를 그리워하면서 서로 서로 십자가를 지고 싸워나가는 저희들이 되지 않으면 이런 이상세계를 건설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사탄세계에 대하여 무한한 적개심을 갖고 오늘도 내일도 싸워 나갈 줄 아는 아들 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오늘 주신 당신의 말씀을 통하여 자신이 처하여 있는 그 위치를 해명하여 이제 어디로 갈 것인가를 알고, 하늘이 알아주는 아들 딸이 되고, 하늘을 아는 아들 딸들이 되게 인도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하올 때, 주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