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95 to 6-122: 조심히 살펴야 할 신앙의 길

조심히 살펴야 할 신앙의 길
1959.04.12 (일), 한국 전본부교회

6-95
조심히 살펴야 할 신앙의 길
마태복음 11:1-30

[기 도(Ⅰ)]

불초한 모습들이 아버님의 거룩하신 성상을 그리워하면서 다시 아버지의 존전에 나와서 마음 몸을 굽혔사오니, 긍휼의 은사로써 저희를 대하여 주시옵소서. 사랑하시기를 몇 십만 번 하셨던 아버지였사옵고, 참으시기를 수없이 해 오신 아버지였사옵니다.

저희를 버리시지 않고 새로운 사랑으로써 인도하시기를 쉬지 않으신 아버지시여! 오늘에 나타난 저희의 모습이 뜻 앞에 합당치 못하고 아버지의 마음에 들지 않을지라도 불쌍한 마음을 갖고 대하여 주시옵소서. 그래도 험한 세상을 피하여 아버지의 심정의 세계를 찾아들어가고자 하는 간곡한 마음이 있사오니, 이 마음을 보시사 아버지의 긍휼의 사랑을 가하시어 이 시간 용납하시옵고 찾아 주시옵기를 ,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님의 사랑을 받는 그 한 자리는 지음받은 온 만물이 흠모하는 자리요, 과거의 수많은 인류가 흠모했던 자리이며, 현시대의 인간과 미래의 인간들이 흠모하여야 할 자리이옵니다. 이것을 생각하고 저희들이 아버님의 사랑의 심중에 안기려 하면 할수록 만물이 주목한다는 사실을 이 시간 느끼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저희에게 아버지를 나의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마음, 그 아버지가 나를 위하여 수고하신 아버지이신 것을 아는 마음, 아버지는 나로 인해 서글픔에 잠겨 있는 것을 아는 마음을 주시옵고, 그 마음에 감격되어 아버지라 부르며 아버지를 붙들 수 있는 간곡한 아들의 모습, 딸의 모습으로 나타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간곡한 심정으로 아버님을 찾아나서고, 아버님의 사정을 염려하면서 나타난 자는 아버지께서 버리지 않으신다는 것을 알고 있사오니, 저희의 마음이 아버지의 마음을 향해 달음질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저희의 몸이 아버지의 품에 안기기 위하여 달음질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분하고 서글프고 원통한 죄악사를 박차고 나설 수 있는 움직임이 이 시간 저희의 몸 마음에 충만하게 하여 주시옵고, 저희의 몸 마음을 충동시켜 주시옵기를 ,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는 자신있는 발걸음으로 하늘을 찾아나가지 못하는 연약한 자들인 연고로 아버지께서 신앙의 주인으로 계시길 바라오며, 땅이 험악하여 어려운 환난의 노정이 남아 있사온데, 거기에서 저희들은 지쳤을망정 하늘은 강한 모습으로 나타나기를 바라옵니다.

아버님께서 저희 인간을 찾아오셨다가 낙망하신 일이 많았던 것을 저희는 몰랐사옵고, 인간을 염려하시고 인간을 위하여 수고하시며 소망하시던 바가 저희로 말미암아 이루어지지 않을 때 아버님께서는 또다시 타격을 받고 돌아서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몰랐사옵니다. 저희의 소망보다 아버지의 소망이 크다는 것을 저희들이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께서는 저희가 연약할 때 강하기를 바라셨고, 뜻을 붙들고 섭리하실 때 강한 자를 찾으신다는 것을 저희가 잊지 말게하여 주시옵기를 , 나의 아버님, 진실로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제 저희의 마음은 아버님의 성상이 그립사옵고, 저희의 몸은 아버지의 형상을 바라보고 싶사옵고, 저희의 손은 아버지의 손길을 붙잡고 싶사옵고, 아버지의 몸을 붙들고 싶사옵니다. 그와 같은 참다운 아들 딸, 당신의 사랑을 노래할 수 있는 아들 딸들을 맞고자 하시는 것이 인간을 대한 아버지의 중심 소원임을 알고 있사오니, 저희의 마음만이라도 그와 같은 심정에 사무칠 수 있는 이 시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날 저희는 죄악에 물들어 있사옵고, 흑암 가운데 있사오며, 그 동안 저희의 감각과 저희가 가지고 있는 오관은 아버지의 슬픔과 탄식을 느낄 줄 모르고 아버지의 서러운 심정을 망각한 채 저희 자신의 서러움을 호소하기에 급급하였사옵니다.

아버지 앞에 내놓을 수 있는 어떠한 무엇도 갖추지 못한 저희들, 스스로 슬퍼할 수 있는 마음이라도 가질 수 있게 이끌어 주시옵소서.

과거의 잘못되었던 나를 견책하고, 오늘의 미비한 나를 원망하는 서글픈 심정이 저희의 심중으로부터 폭발되어 아버님을 부를 수 있어야만 아버님께서 저희를 붙들 것이고, 아버님께서 저희를 바라볼 것이며, 아버님께서 저희를 품어 주실 것을 알고 있사오니, 아버님, 그와 같은 심정을 지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와 같은 심정에 사무쳐 부족한 자아를 인식하여 아버님의 존전에 일체를 바칠 수 있는 간절한 마음이 저희에게 나타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이 자리에 모인 부끄러운 자녀들을 긍휼히 보시옵소서. 안다 하던 것도 모를 수 있는 때가 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고, 자기의 입으로 자기를 변명하던 자체를 부인하고 거듭나야 할 시가가 닥쳐왔다는 것도 알고 있사옵니다. 모든 역사적인 서러움은 탕감조건을 통하지 않고는 해원되지 않는 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제 저희에게는 당신의 이념 앞에 가인과 아벨의 입장에 놓여지는 시기가 온다는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개개인의 마음과 몸이 싸워 몸은 마음을 핀잔하고 비난하며 마음이 몸 앞에 굴복하는 때, 역사적인 종말시기가 가까와오면 가까와올수록 개인으로부터 가정, 교회, 사회, 세계에 이르기까지 연결되어서 일어날 수 있는 때가 저희의 눈앞에 다가오는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 때를 알지 못하여 서러움의 역사로 저끄러 놓은 우리의 선조들을 알고 있는 오늘의 저희들도 죄악역사를 꾸며나가는 도구로 이용되기 쉬운 입장에 처하여 있사옵니다. 그러나 저희에게 하늘의 선을 쌓아 나가는 데 이용될 수 있는 요소가 심히도 적다는 것을 알고 있는 저희들, 이제 말하고 싶어도 입을 막을 줄 알게 하여 주시옵고, 보기 싫은 것을 보고도 참을 줄 알게 하여 주시옵고, 듣기 싫은 말이 들릴 때는 귀를 막을 줄 아는 마음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하늘을 향해야 할 마음이 혼란 가운데 방황하고 있고, 몸이 머무를 장소를 찾지 못하는 환경에 처하여 있을지라도 아버님께서는 저희를 버리지 않으시고 은사의 손길로 아버지의 품에 이끄실 줄 알고 있사오니 저희들을 긍휼히 보시어서 아버지 앞에 엎드려 호소할 수 있는 마음을 일으켜 주시옵기를 ,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런 심정이 없어 천추의 한을 돋구는 하늘의 배반자들이 될까봐 두려워 자신을 붙들고 우는 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형제를 놓고 서러워하는 것보다 내 마음을 놓고 더 서러워하고, 이웃 형제가 나와 같이 서러운 입장에 처할까 염려하여 그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이 저희의 심중에서 우러나지 않으면 끝날에 넘어야 할 최후의 고개를 가지 못할 것을 알고 있사오니, 아버님이시여, 이 시간 사랑하는 식구들의 마음을 권고하여 주시옵소서.

이때까지 저희를 찾아 나온 섭리의 목적이 무엇이고, 소망이 무엇인가를 알고 스스로 찾아 세우고자 하는 내용을 마음으로 분석하고, 세우고, 지켜, 아버지 앞에 결단하지 않으면 안 될 이때인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기를 ,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거룩한 이 날, 수많은 인류를 축복하여 주시옵고, 여기에 모인 수많은 당신의 아들 딸들을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하늘을 향하여 아버지라 부르는 아들 딸들이 수없이 많사온데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진정한 아들 딸, 아버지께 내 아들 딸이라 부를 수 있는 진정한 아들 딸들이 심히도 적사옵니다. 이 슬픔을 막아 줄 자가 누구이며 아버지의 이 서러움을 위로할 자가 누구입니까? 땅 위에는 없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이런 이념을 갖춘, 아버님의 심정을 통할 수 있는 참다운 아들 딸들이 당신을 찾아가 당신의 품에 안기고, 만우주를 대신하여 자랑할 수 있는 그 한 순간이 역사적인 종말시기에, 소망의 끝날에 나타나야 할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아버님, 여기에 모인 당신의 아들 딸들, 누구를 위하여 나왔고 누구를 받들기 위하여 나왔으며 누구를 모시기 위하여 나왔는 가를 스스로 반성하여, 외로우신 아버지 앞에 경망한 태도를 버리고 온유겸손한 모습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의 슬픔 중의 슬픔을 느끼고 어려운 심정을 체휼하여 아버지를 위로할 수 있으며, 아버지를 부를 수 있는 이 시간 되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시간도 외로운 식구들이 지방에 널리어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있을 줄 아오니, 그들의 사정을 아시는 아버님, 버리지 마시고 그들의 주관자가 되시옵고 보호자가 되시옵소서. 모든 염려를 아버님께서 같이해 주시고 위로해 주시어 아버지의 영광을 노래할 수 있는 기쁨의 시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옵나이다. 부족한 몸들이 아버지 앞에 엎드려 경배드리고자 하오니 친히 성별하여 주시옵고, 처음부터 끝까지 사탄의 일체를 용납하지 말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며, 모든 말씀 주님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6-99
기 도(Ⅱ)
아버님, 저희의 가는 길이 험하오나 이 길을 가면 하늘의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소원의 한날이 멀지 않은 것을 알게 되오며, 이 길을 가는 저희의 발걸음이 피곤할 때도 있사오나 아버님께서 걸어가신 길이기에 아니 갈 수 없는 인생길인 것을 알았사옵니다.

이제 저희가 마음에 사무쳐 아버지를 부를 수 있는 간곡한 마음이 일어나는 그때에는 나보다도 안타깝고 간곡한 심정을 가지고 바라보시는 아버지가 계시다는 것을 알았사옵고, 한 걸음 두 걸음 더듬어 알 수 없는 길을 오라하시는 아버님의 음성을 따라 가는 발걸음도 편치 않은 것을 알았사옵니다.

오늘의 남기신 뜻 앞에 저희가 미급하여 충성의 제물이 되어드리지 못함을 탄식치 않을 수 없사옵고, 고난의 역사를 거두어 하늘 앞에 기쁨을 돌려드리지 못한 서러운 역사를 돌이켜볼 적마다 탄식치 않을 수 없사옵니다. 이러한 모습들이 아버지 앞에 복을 구하였던 과거의 부족함을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 인간들을 바라보시고, 인간들을 찾기 위하여 상심하시는 아버님의 성상을 바라보는 아들 딸이 있다면 아버님 앞에 복을 빌 수 없고, 그 성상 앞에 자기의 주장을 펼 수 없는 것을 아옵니다. 이런 역사적인 서러움이 남아 있는 것을 천번 만번 망각하였던 이 불충불효한 자식들을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심정으로부터 우러나 아버지를 부를 수 있는 , 하늘 땅이 즐거워할 수 있는 , 아버지와 저희가 하나되는 그 한 순간에 새로운 역사는 시작될 것이며 소망이 이루어질 것을 알고 있사오나, 오늘 저희의 마음 바탕이 그와 같은 심정에 사무칠 수 있는 자리에 있지 못한 것을 놓고 낙망하지 않을 수 없고 탄식하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아버님, 여기에 나와 당신을 부르고 있는 이들의 모습을 긍휼히 보시옵소서. 이들이 아버님 앞에 충성한 내용이 있다면 이들을 기억하지 않을 아버님이 아니시옵고, 이들이 아버님을 위하여 남 모르는 억울한 자리에 있다 할진대 그것을 모르는 아버님이 아니심을 아옵니다. 아버님, 저희가 하늘에 염려를 가하는 일을 했을망정 아버님께서는 저희들 앞에 염려를 남기지 않으셨다는 사실을 망각하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땅 위에 슬픔이 있다 할진대, 슬픈 자를 위로하시는 아버님의 슬픔 이상의 슬픔이 어디 있으며, 고통이 있다 할진대 아버님을 배반하고 나가 고통을 당하는 사람을 붙들고 위로하시는 아버님의 고통 이상의 고통이 어디 있사오리까?

아버님께서는 당신의 위신과 체면과 권한을 세우지 못하고 소망을 남긴 채 역사노정을 거쳐오는 동안 수많은 선한 선조들을 붙들고 내 심정을 알아 달라고, 내 사정을 알아 달라고 울부짖으며 간곡히 호소하셨다는 역사적인 말씀을 저희는 들었사옵니다. 하오나 오늘의 저희는 역사를 대변할 수 없으며, 역사적인 실체를 증거하여 선의 자체라고 자랑할 수 있는 그 무엇을 갖지 못한 모습들로서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엎드렸사오니, 면목 없는 자체들임을 이 시간 폭로하고 직고하게 해 주시옵고, 사탄에게 유린당한 자신들임을 깨달을 수 있는 이 시간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남기신 섭리의 뜻 앞에 불충하는 자는 많으나 충성하는 자가 없어 오늘도 염려하시고 내일도 염려하시며 섭리의 뜻과 심정을 털어 놓고 권고하시지 못하는 아버님의 사정을 이 시간 저희들이 알아차릴 수 있게 하여 주시옵기를 ,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 시간 여기에 엎드렸사오니 저희의 마음이 어느 자리에 머물러 있는 가를 생각할 수 있게 하시옵소서.

아버님께서는 하늘의 뜻과 심정의 기반 위에서 움직이기를 바라고 계심에도 불구하고 오늘 저희의 마음이 허공을 향해 달리고 있지 않은가? 목적과 방향을 잃은 채 슬픔의 자리에 머물러 있지는 않은가? 아버지의 염려의 채찍을 받기에 합당한 서러움의 자리에 서 있지는 않은가? 스스로 뉘우치게 하시옵소서.

나는 남기신 선의 동산을 향하여 가는 사람이요, 남기신 사명을 위하여 싸우는 하늘의 용사라 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께서 찾으시는 모습이 자신인 것을 알아, 찾아지기 위해 노력하고 있음을 아버지 앞에 명시할 수 있는 각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스스로 각오하고 스스로 성별할 수 있는 이 시간이 되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흩어진 마음을 수습하여 본향을 그리워할 수 있는 , 재창조의 손길이 가해질 수 있는 이 시간이 되게 해 주시옵고, 아버지의 축복을 상속받기 전에 먼저 아버지의 슬픔을 상속받아 그 슬픔의 주인공이 되어서, 아버지 앞에 장담하며 나서겠다는 각오와 결심을 하는 이 시간이 되기를 ,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오늘 통일의 이념을 갖추어 놓고 남이 아니라고 하는 이 자리에 몰아내신 아버지, 자기가 원치 않는 그 한 곳으로 발걸음으로 재촉하도록 몰아내신 아버지, 선한 일을 시작하신 분도 아버지요 선한 일을 성사하실 분도 아버지이심을 알고 있사옵니다. 아버지의 뜻과 통하지 않고는 부르심과 모으심의 뜻이 성취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사오니, 그 뜻 앞에 물이 되고, 불이 되고, 기름이 될 수 있고, 오늘도 내일도 뜻 앞에 겸손한 제물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악한 세상을 불사를 수 있는 기름이 되고 불이 되어야 하며, 선을 대하여서는 온유겸손하여야 됨을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이러한 법도로 저희를 찾아 나오시는 연고로 예수님께서 높고자 하는 자는 낮아지고 낮고자 하는 자는 높아진다고 말씀하셨으며, 희생과 봉사와 온유겸손으로써 천도를 세워 나가셨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저희도 그 중심에 사무쳐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아버지 앞에 무한히 겸손할 수 있으며, 자기 자신의 일체의 것을 제물로 드릴 수 있는 심정이 각자 각자의 마음과 마음을 통하여 천심까지 미쳐질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날도 때를 알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는 수많은 인간들이 있사오니 그들의 운명을 붙들어 주시옵고, 더우기나 반만년의 역사를 자랑하면서도 불쌍한 처지에 있는 삼천만 민중을 긍휼히 보시옵소서. 이 민족의 역사노정은 피로 물든 노정이었음을 알고 있사오며, 이 민족은 선을 가로막는 존재들과 싸워 나온 불쌍한 민족임을 알고 있사옵니다.

이런 민족을 세워 놓고 하늘은 섭리의 뜻을 예고하셨고, 섭리의 때를 가르쳐 주셨사옵니다. 이들 앞에 하나의 중심을 통고하신 아버님이시여! 이 민족으로 말미암아 가중되어지는 아버님의 슬픔을 덜어드릴 수 있게 하여 주시옵고, 그럴 수 있는 조건이 이 민족에게 없다 할진대, 먼저 뜻을 알고 심정을 안 저희들이 아버지의 심정을 붙들고 그 슬픔을 억제시켜 드릴 수 있게 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제 저희의 마음이 아버지를 향하여 무한히 달릴 수 있게 하여 주시옵고, 아버지가 그리워 붙들고 싶은 마음과 어린아이와 같은 심정을 갖추어 아버지를 무한히 흠모할 수 있는 이 시간이 되고, 죄악에 물든 일체의 주의나 일체의 관념, 일체의 의식이 저희에게서 떠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원하옵건대, 이 시간, 본심이 발로되고 본성이 발로되어 본연의 모습이 나타나게 이끌어 주시옵고, 아버지께서 기뻐하실 수 있고 아버지께서 재차 품을 수 있으며, 만우주와 사탄 앞에 세워 자랑하실 수 있는 저희들이 되게 이 시간 역사하여 주시옵고, 나아가 한 단계를 넘어서 아버지 앞에 머리 숙이는 모습들이 되게 해 주시기를 ,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끝날에 아버님께서 이러한 모습을 찾으실 때에 작고 가냘픈 음성으로나마 ‘만민의 서글픔을 품고 찾아 주신 아버지, 부족한 것이 여기에 있사오니 긍휼히 여겨 주시옵소서’ 할 수 있어야겠사옵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느끼면서 아버지의 부르시는 음성 앞에 대답할 수 없고, 얼굴을 들 수 없는 자신의 부족함을 뉘우치고 다시 반성할 수 있는 아버님의 아들 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님을 대하여는 이와 같은 마음을 갖고, 불의와 악에 대해서는 격분하여 참지 못하는 공분의 심정을 갖고 이 몸이 제단에 오르는 한이 있다 하더라도, 천륜의 개척자의 모습, 세워진 하늘의 정병의 체면을 깎는 모든 것에 대하여 굴함이 없이 싸우는 모습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님을 모실 수 있는 이 시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외로운 심정으로 기도하고 있는 식구들 위에도 일률적인 은사로써 역사하여 주시길 부탁드리옵니다.

하나에서 끝까지 아버지께서 주관하여 주시옵고, 천천만 성도와 천군천사들이 옹위하는 가운데 계신 아버님의 심히 깊고 넓고 높으신 성상을 체휼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저희의 눈으로 아버지를 바라보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저희의 귀로 아버지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이 시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오며, 하늘의 성령이 실체로서 나타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부탁드릴 때, 모든 것을 주님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6-103
기 도(Ⅲ)
가슴에 못자국을 남긴 슬픔이 어떠하다는 것을 저희는 말씀을 통하여 배웠사옵니다. 아버님! 이 말씀을 읽으니 황공하고 이 말씀을 하시던 예수님의 초조한 모습이 그리워집니다. 심정을 붙들고 통곡해 주는 친구 한 사람도 없었던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의 슬픈 사정을 동정하는 저희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인간적인 생활에서 벗어나지 못한 제자들과 하늘의 슬픔을 아는 인간세상의 서글픈 실상을 바라보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체휼한 자가 없었음을 알고 있사옵니다.

아버님, 30여년 동안 광야에서 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며 수도하던 세례요한이 품은 소원은 무엇이었나요? 그의 소원 전체는 , 그의 마음 중심의 하나는 오시는 메시아를 맞는 것이었음을 알고 있사옵니다.

메시아를 증거한 그는 메시아와 하나 되지 않으면 안 될 천륜의 인연이 있으나, 그가 내 마음에 있고 내가 그 안에 있으며, 그의 것이 내 것이요, 그의 심정이 내 심정이요, 그의 생애가 내 생애라고 하는 , 즉 예수의 모든 것이 세례요한의 심중에 반영되어 일체를 이루었어야 했는 데, 그는 그러지를 못했사옵니다.

요단강가의 많은 무리 앞에서 손을 들어 하늘의 아들이라고 증거한 기억을 갖고 있던 세례 요한은 슬프고 외로운 모습으로 철창에 갇혀, 자신의 서글픈 신세를 탄식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에서, 자기가 증거했던 메시아, 하늘이 증거하시고 세워 주신 메시아에게 제자들을 보내어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마 11:3)”하고 반문했던 장면은 역사적인 슬픈 장면이요, 하늘이 넘기 어려운 서러운 장면이었음을 저희들은 알았사옵니다.

역사의 흐름 속에 세례 요한의 노정은 그대로 남아 있사옵니다. 새로운 이념을 찾기 위해 허덕이고 있는 우리, 새로운 역사를 고대하면서 준비한다는 우리들이 이제 세례 요한과 자신을 바꾸어 생각할 줄 아는 자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하늘의 백성들이 하늘 뜻을 배척한 사실을 역사를 통하여 알았사오니, 오늘날 저희는 그러한 역사적인 전철을 다시 밟는 자들이 되지 말게 주관하여 주시옵고, 광야에서 단장시키고 준비시키셨던 그 뜻을 잃는 자들이 되지 말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오늘 당신의 사랑하는 아들 딸들이 많이 모였사오니, 이제 그 마음과 마음을 터놓고 그 몸과 마음이 아버지 앞에 면목이 없음을 깨닫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 권고하시는 말씀을 들을 수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슬픈 심정을 인계받을 수 있게 하여 주시옵고, 천적인 슬픈 심정을 안고 인간들이 알지 못하는 새로운 이념의 주인공을 맞을 수 있는 마음과 몸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 시대를 지켜 나갈 주인공은 누구이며, 이 시대에 남아질 수 있는 민족은 어떠한 민족일 것인가를 염려하며 그러한 모습을 그리워하며 슬픈 심정에 사무칠 수 있는 이 한시간이 되게 해 주시기를 ,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들려오는 말씀과 들려오는 음성에 귀를 기울여 거기에 동조하고 반응하는 생활을 하는 저희들, 이제 저희가 걸어온 길을 돌이켜보고 새로이 각성하여야 할 때가 되었사옵니다.

혼란과 혼돈 가운데 놓여가지고 생사를 결판해야 할 입장에 있는 자기 자신을 염려하는 입장에서 우리가 벗어날 수 있게 해 주시옵소서. 믿을 수 없는 사회요 믿을 수 없는 세계인 것을 알고 있사옵고, 믿을 수 있는 이념의 세계에 잠기고, 그 이념의 세계와 인연맺을 수 있도록 스스로 각성하고, 자아를 인식하여 하늘을 붙들어야 할 때가 되었고, 마음의 변혁을 일으키지 않으면 안 될 때가 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이러한 환경에 처해 있는 자신임을 명심하여 새로운 나를 추구할 수 있게 인도하여 주시옵고, 원한에 사무친 슬픔의 고개를 넘고 넘어 환희의 모습을 맞이할 수 있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고, 그 모습을 그리워하며 그 세계에 이끌리고 그 세계와 화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이 사회 환경이 자유롭지 못하고 슬픔에 사무쳐 있는 것을 비통히 여겨 이것을 가로막고 싸울 수 있는 힘과 용맹을 주시옵소서. 영원하시며 절대적이신 하늘이 있다 할진대, 죄악의 일체를 밀어낼 수 있는 능력을 가하여 주시옵기를 부탁하옵고 간구하옵니다.

미디안 광야에서 양을 모는 목자였던 모세, 비록 그의 손에는 지팡이가 들렸을망정 그는 이스라엘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 새로운 각오와 새로운 소망과 새로운 이념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고 있사옵니다. 또 이러한 소망과 이념을 품고 미디안광야에서 40년을 살았던 모세의 절개심을 저희들이 알고 있사옵니다.

이제 저희들은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자리에 있사옵고, 소망하였던 그 분을 만날 수가 있사온데, 소망하였던 그분 앞에 나타나는 저희의 모습은 새로운 모습이 되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아버지께서 ‘내가 네 안에 있고, 네가 내 안에 있다’고 하신 말씀을 저희는 알고 있사옵니다. 이것을 아는 저희들, ‘일체를 맡기었사오니 재창조하여 주시옵고, 아버님의 기쁘심의 뜻대로, 원하시는 제물로 이용해 주시옵소서’ 할 수 있는 이 시간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지, 아무 말 하고 싶지 않사옵니다만 허락하신 이 시간, 이제 말씀을 해야 할 시간인 고로 입을 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여기에 나온 당신의 아들 딸들이 당신의 형상을 보고 싶은 마음, 당신이 계신 곳에 가고 싶은 간절한 마음, 당신과 더불어 살고 싶은 사무친 심정, 흠모의 마음에 사무쳐서 사랑의 심정만이 이 분위기를 감싸, 재창조의 영광이 나타날 수 있는 시간이 되게 해 주시기를 ,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하나로 시작하여 하나로 끝을 맺을 수 있도록 하나의 주도적인 역사가 전체 위에 나타나게 해 주시기를 부탁하옵고, 사탄이 틈타는 시간이 되지 말게 하여 주시옵기를 바라면서, 모든 말씀 주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6-106
말 씀
오늘날 우리는 마음에 이끌려 움직이든가, 사정에 이끌려 움직이든가, 그렇지 않으면 어떠한 소망에 이끌려 살고 있습니다. 세상사는 것도 그러하거니와 하늘 길을 걸어가는 것도 그러하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입장을 떠날 수 없는 우리요, 나라는 것을 인정한다 할진대, 나의 삶이라는 것은 필시 내 한 자체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님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사회적인 환경이나 신앙노정도 역시 어떤 전체적인 계획 밑에서 어떤 목적을 향하여 나아가며 그 모양이 점점 변해간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6-106
타락인간의 삶의 실상
이런 것을 헤아려 볼 때 오늘날 인생행로에서 승리하였다고 장담할 수 있고 자랑할 수 있으며, 혹은 섭리의 뜻 앞에 당당하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 할진대, 그는 엉클어져 있는 이 세상에서 사는 사람이 아니라고 단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한 자체가 아직까지 역사노정에 나타나지 못하였고, 그러한 자체가 역사를 지배하지 못하였다는 것을 부정하지 못할진대, 우리는 그러한 나를 마음으로 그리워하고, 주의와 사상과 혹은 생활과정을 통하여 추구하고 또 추구해 나가는 것은, 그러한 나를 찾기 위함이라는 것을 알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그러한 개인을 중심삼은 가정이 되고, 그러한 가정을 중심삼고 하늘을 높이고 증거할 수 있는 사회가 되고, 그러한 사회를 중심삼고 하늘을 높이고 증거할 수 있는 국가, 더 나아가서는 그러한 세계가 되어야 합니다. 하늘 앞에 나타나서 자신있게 ‘아버지시여, 저를 보시옵소서. 아버지시여, 저를 붙드시옵소서. 저를 보시고 역사적인 모든 슬픔을 잊으시옵소서’ 할 수 있는 개인을 찾아서 역사는 흘러왔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소망의 내가 되지 못하고 원치 않는 탄식과 절망 가운데에서, 미지의 행로에서 허덕이고 있습니다. 나아가 그러한 나를 재촉하여 내가 살고 있는 사회와 국가와 세계를 재촉해 낼 수 있는 무엇이 없는 가 하고 우리는 슬퍼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소망의 나와 소망을 이루지 못한 나를 붙들고, 최후의 결단을 내려 오래 전부터 찾던 그 나를 찾아 온 피조만상 앞에 자랑하며 만물의 영장이라고 자처할 수 있는 그 순간을 위해 인간들은 오늘도 싸우고 있고, 내일도 그리고 이 해도, 앞으로 수년 후도 싸워나가리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런 운명에 처한 우리 자신임을 생각하게 될 때, 오늘날 우리는 얼마나 큰 책임을 진 입장에 있는 가를 알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에덴동산의 아담 해와가 하나님의 품에서 자랄 때에는 나타나는 모든 것에 대하여 자신을 갖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허락하지 않은, 천륜의 법도를 어긴 후부터 그들의 마음에는 자기를 내세울 수 있는 자신이 사라졌습니다. 여기에 비운이 있고 여기에 곡절이 있다는 것을 우리들은 다시 한번 생각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인간을 포기할 수 없는 하나님께서는 창조하신 책임이 있는 연고로 이를 다시 회복시키기 위한 운동을 제시하셨는 데, 이것이 인간들을 이끌어 나온 종교운동이라는 것입니다.

6-107
재림기에 처한 인간의 바른 삶의 태도
인간은 비록 타락하여 떨어졌을 망정 하나님께서 창조이념으로 세워 놓은 하나의 법도와 본성의 나를 자랑할 수 있는 자유의 이념은 창조 전부터 창조 이후 지금까지 변치 않고 하나님의 심중에 그대로 사무쳐 있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아직까지 하나님의 마음은 이러이러하다고 해명한 자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이념은 이런 것이라고 주장한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늘은 인간을 위하여 계시고 하늘을 위하여 인간을 지었다 할진대, 하나님과 본연의 인간이 살 수 있는 이념의 세계, 하나님의 심중에 감추어져 있는 본연의 세계는 필연적으로 나타나야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까지 하나님께서는 정상적인 길을 걸어온 것이 아니었고, 타락한 인간을 붙들고 곡절의 노정을 거쳐오셨음을 역사를 통해 잘 알고 있습니다.

성서를 중심한 역사를 더듬어보면, 가인 아벨로부터 지금까지 하늘을 불신하는 인간들을 이끌고 곡절의 노정을 거쳐오셨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역사의 흐름은 최후에는 하나의 이념세계를 향하여 달릴 것이고, 하늘은 그 이념세계를 향해 오늘도 내일도 허덕이며 가야 한다고 재촉한다는 것도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이것을 아무도 부정하지 못할 것입니다. 하늘이 세우고자 하시는 이념과 우리가 찾는 이념이 상봉하는 순간이 인간의 소망의 순간이요, 하늘이 이끌어 오신 섭리의 목적임을 우리들은 재인식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하늘은 신앙의 길을 찾아 나가는 종교인들 특히 기독교인들에게 끝날을 예고하셨습니다. 그날이 재림의 날이요, 그날의 주인공이 재림주라고 예고하셨습니다. 따라서 그 한날이 하나님의 소망의 종착점이요, 인류의 소원 성취의 종착점인 것을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그날을 맞이해야 할 우리는 어떤 모습이 되어야 할 것인고. 문제는 여기에 귀착됩니다. 어떠한 모습이 되어야 할 것인가? 이제까지는 진정으로 이것을 깨우쳐 줄 수 있는 논리도 없었고, 종교도 없었고, 심정을 수습해 주는 친구도 없었습니다. 이런 자리에 처해 있는 인간들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시시각각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사회생활의 형태가 변하고 있고, 주의와 사상도 장소와 시기에 따라 변해 가고 있습니다.

절대적인 나, 전체의 이념을 대신하여 나설 수 있는 나, 변치 않는 나를 찾아가는 것이 신앙의 길이라 할진대, 우여곡절의 길을 가야 하는 천차만별의 지상세계에서 우리가 취해야 할 심정은 무엇이뇨, 어떤 행로를 걸어가야 할 것인고, 우리가 수습하여 세울 것은 무엇인가 하는 것들은 너나할것없이 염려하지 않으면 안 될 중요한 문제입니다.

이러한 것을 알게 될 때 끝날을 바라보는 우리들, 내가 기다리는 태양이 어느 곳에서 솟을지 알 수 없는 이때, 여러분의 눈은 어디를 향하고 있는 가, 어디를 살필 것인가? 이것이 문제입니다. 조심조심 온 정력을 기울여 동방의 해 뜨는 곳을 향해 자신의 마음과 몸의 방향을 맞추도록 해야 합니다.

인류의 운명이 이런 길로 종결되어야 하는 연고로, 또 이 인연을 벗어나지 못하고 이 권내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우리인 연고로 조심성 있게 살피면서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앞에 말씀드리고자 하는 제목은 ‘조심히 살펴야 할 신앙의 길’입니다.

6-109
절대적으로 부정해야 할 나
여러분은 지금 자신을 갖고 있습니까? 스스로 장담하고 있습니까? 자신이 있다면 그 자신은 누구를 통한 자신입니까? 개인을 통하고 환경을 통과할 수 있습니까? 사회, 국가, 세계를 통과할 수 있습니까? 더 나아가서 천륜이 있다면 천륜을 통과할 수 있습니까? 이런 문제에 대해 자신을 갖지 못하는 한 여러분은 자신을 절대적으로 부정해야 됩니다.

이러한 입장에 처해 있는 인간이기 때문에, 여러분은 항시 천륜이 지향하고 움직이는 방향은 어디며 그 종착점은 어떤 형태로 나타날 것인가 하고 찾아 헤매야 합니다. 여러분이 자신있게 주장하고 자랑하는 무엇보다도 그런 마음이 간절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것을 알지 못하고 자기를 내세워 자랑하고 자기를 중심삼고 움직이는 범위가 크면 클수록 끝날에 역사적인 배반자로 등장하게 된다는 것을 우리는 생각해야 됩니다.

우리는 부족한 자들입니다. 우리는 몰리고 있고 사정에 휩쓸리고 있습니다. 이러한 우리가 ‘천륜아 나를 밀어다오’ 할 자신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없습니다. 못 가집니다. 우리의 선조들도 자신을 갖자 못한 걸음으로 하늘을 찾아 나왔습니다. 그러기에 하늘이 명령하는 곳으로 갈 때마다 한 걸음도 조심하고 두 걸음도 조심하고, 한 날의 생활도 조심하고 한 밤의 잠결에서까지도 조심하여 나왔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

그런고로 이런 생활을 하지 못하는 자라면 뜻을 받든다 할지라도 최후에는 하늘 뜻에서 이탈하고, 하늘 뜻을 사탄세계에 돌리는 데 공헌한 자로 종결될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자신없는 가정이요, 자신없는 민족이요, 자신을 갖지 못한 국가요, 자신을 갖지 못한 세계이기 때문에, 이 세계의 어떤 무엇, 어느 누구도 천륜앞에 불변의 것이라고 주장할 수 없습니다. 이런 입장에 처하여 있는 우리인 연고로 우리는 하루의 생활을 조심하고, 일년의 생활을 조심하고, 일생을 조심해야 합니다. 이렇게 조심하며 가는 것이 선을 바라보고 나아가는 걸음걸이임을 알고 우리들은 걸어야 되겠습니다.

역사는 발전해 나오고 있습니다. 개인으로부터 씨족을 거쳐 부족으로, 나아가 민족을 거쳐 국가, 세계로까지 발전해 나왔습니다. 과거의 수많은 씨족들은 자기들의 이념과 자기들의 주장을 가지고 있었으나 시대의 흐름에 의해 씨족시대에서 민족시대로 이행될 때에는 씨족시대의 모든 사조(思潮)들이 민족시대의 사조에 휩쓸려 들어갔고, 또 민족시대의 사조는 국가시대의 사조에 휩쓸려 들어갔고, 국가시대의 사조는 세계시대의 사조에 휩쓸렸고, 세계시대의 사조는 앞으로 천륜에 휩쓸릴 것입니다. 역사는 이렇게 하나의 귀일점을 향하여 흡수되어 나왔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역사적인 사실을 부정하지 못할진대, 오늘의 나는 어떠한 자리에서 살고 있고, 움직이고 있고, 서있는 나인가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살고 있는 그 자리가 마지막 종착점이라면 문제는 간단하지만, 여기에서 또 변혁되어야 하는 역사가 남아 있다면, 여러분은 역사 이념시대, 혹은 섭리 이념시대, 혹은 신앙 이념시대의 목적지에 당도하지 못하고 중간에서 머무는 자밖에 되지 못할 것입니다.

6-110
하나님의 이념세계를 건설할 수 있는 최후의 무리
하늘은 인간과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는 연고로 인류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인류를 붙들고 역사노정을 움직여 나오셨습니다.

그리고 시대시대가 변할 때마다 새로운 이념을 주셨습니다. 씨족에서 부족으로 넘어가게 될 때에는 부족시대로 넘어갈 수 있는 이념을 주셨습니다. 씨족에게 부족권을 넘어선 먼 거리의 이념을 주면 이들이 따라갈 수 없기에 양심과 연락될 수 있는 정도에서 한 단계 앞의 이념을 세워 주셨던 것입니다. 이렇게 씨족시대에는 부족의 이념을, 부족시대에는 민족의 이념을, 민족시대에는 세계의 이념을 주어 연결지어 나오셨다는 것을 우리들은 신앙역사를 보더라도, 인류역사를 보더라도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역사노정에 남아질 수 있는 민족, 역사노정에 남아질 수 있는 종족은 어떤 민족과 종족일 것인가? 예컨대 씨족시대에서 부족시대로 넘어갈 때 천륜을 붙들고 넘어갈 수 있는 종족입니다. 그리고 천륜이 부족을 지나 국가의 이념을 갖기를 바라면 국가의 이념을 향하여 나설 수 있는 무리, 혹은 그 국가 앞에 세계의 이념이 남아 있다 할진대 국가를 지나 세계의 이념을 향해 나설 수 있는 무리입니다. 이런 무리가 최후에 남아질 수 있는 무리인 동시에 세계를 건설할 수 있는 무리일 것이요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무리일 것입니다. 이러한 씨족, 부족, 민족, 국가, 세계를 완성해야 역사적 승리의 민족, 승리의 국가로 설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이러한 이념을 찾아 나가는 종족이 있어야 되고, 이러한 섭리의 뜻을 받들어 나가는 종족이 있어야 됩니다. 나아가 이러한 섭리의 뜻을 받들기 위하여 투쟁의 노정을 거쳐 나가는 민족이 있어야 됩니다. 그래서 기독교가 등장하고, 이스라엘민족이 등장하였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의 통일된 가정, 통일된 국가, 통일된 이념을 주장하셨던 원인이 여기에 있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그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가? 그는 본연의 주인공이요, 맨 처음으로 하늘의 이념을 갖춘 실체, 하늘과 영원히 동거할 수 있는 이념을 완성한 실체로서 나타나셨던 분입니다. 그 분은 인류를 전체적으로 대할 때에는 지도자이시고, 우리 개인 개인을 대할 때에는 아버지이시며, 본래의 창조이념세계를 찾아가는 입장에서는 신랑이십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결론지어 놓고 가셨습니다.

그러면 앞으로 하나의 세계, 하나의 이념 동산, 하나의 이념 국가가 이루어지는 때의 이념은 어떠한 이념일 것인고. 그것은 역사의 변화나 혁명에도 변하지 않는 이념일 것입니다. 예컨대 부모의 사랑과 같이 변하지 않는 사랑의 이념일 것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대하는 심정은 변함이 없습니다. 변하지 않는 하늘의 사랑을 중심삼고 엉클어지는 세계, 대하는 곳곳마다 사랑의 감정이 앞서는 그 사회, 그 국가, 그 세계에서는 혁명이라는 명사가 성립되지 않습니다. 그 세계는 하나님의 심정이 개인의 생활을 통하여 나타나는 세계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만민을 자녀로 생각하시는 심정을 모두가 체휼하는 세계입니다. 그래서 서로 형제라고 생각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는 심정의 세계일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이러한 세계가 인간이 찾아가야 할 마지막 종착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을 아버지라 하였고, 자신을 신랑이라 하였고, 또 우리를 한 단계 추켜세워 형제라 하였습니다. 참으로 고마운 은사의 말씀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일신의 인연을 통하여 이 땅에 나타나신 분이 아닙니다. 4천년 역사를 거쳐오는 동안 하늘이 수많은 선지선열을 통하여 보내마 보내마 하신 분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천륜의 배경을 갖추고, 섭리역사의 뜻을 기반으로 하여 인류 역사를 수습하기 위하여 나타나신 분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세계는 예수님을 중심삼고 오늘날까지 나왔고 그의 이름은 지금까지 남아 있습니다.

6-112
이 시대에 나와야 할 역사의 주인공
오늘날 이 시대는 어떤 시대인가. 선과 악이 교차되는 시대이고 선으로 합류해 들어가는 시대입니다. 이러한 시대에 처해 있는 우리는 어떻게 될 것인고. 선악이 교차되어 합류된 후에는 어떠한 세계가 될 것인고. 이세계가 흘러가면 어떠한 세계가 올 것인고? 궁금한 문제입니다. 오늘날 뜻을 가진 청년 남녀들이 있다 할진대 가던 발걸음을 멈추어 하늘이 있는 것을 알아야 하고, 땅에 있는 만물의 소망을 알아야 하며, 그 소망의 폭발지가 교차점에 머물러 있는 이 세계가 아니라 바로 자신들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지금까지 섭리해 오셨습니다. 만일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하나님 앞에 죄를 짓지 않았다면, 타락의 서러운 노정을 가지 않았었다면, 아담은 6천년이 지난 지금까지 하나님의 뜻을 대해 나왔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생각해 보았습니까? 아담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하나님의 뜻을 받들고, 하나님의 섭리를 책임지며, 하나님과 동거하였다면, 수많은 선지선열들과 수많은 우리의 조상들, 뜻을 품고 왔던 수많은 선한 사람들이 죽음을 당하는 참사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가 소원하고 고대하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가 소망하고 찾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타락하지 않은 모습, 역사에 영원히 남아질 수 있는 모습, 변천하는 역사를 수습할 수 있는 모습, 선의 이념을 세울 수 있는 모습입니다. 그러한 모습이 이 끝날에 나타나면 우리들은 탄식하지 않을 것입니다. 절망의 자리에 있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탄식하고 절망해야 할 사실인가. 뜻 앞에 설 수 있는 역사적인 주인공이 없는 것이 탄식하고 절망해야 할 사실이요 슬픔입니다. 이 역사적인 주인공을 찾아나온 것이 역사의 흐름인 연고로, 우리 인간들은 이리 쓰러지고 저리 쓰러지면서도 발걸음을 멈추지 못한 채 이 시간도 걷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전세계 인류가 다시 호소해야 할 것이 있다 할진대 그것은 ‘역사적이요 시대적이요 미래적인 주인공이 어디에 있습니까? ‘하는 것입니다. 이 주인공을 간절히 고대하고 고대해야 할 때는 왔습니다. 역사는 이미 지나갔는 데 주인공은 언제 오실 것이냐? 천륜이 없다면 그 주인공은 인류 앞에 오시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천륜이 있기에 이 시대적인 주인공은 언젠가는 반드시 인류 앞에 오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그 주인공이 어떤 모양으로 오실 것인가 하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왜냐하면, 과거에도 새로운 주인공이 왔으나 그 주인공을 몰라 보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에도 하늘의 뜻을 종결짓기 위한 하늘의 섭리가 남아 있다는 것을 아는 한, 여러분은 이 시대적인 주인공이 누구일 것인가를 생각해야 됩니다. 여러분 자신이 그 주인공이 될 자신이 없다면, 머리를 숙이고 그 주인공을 찾으려는 각오와 행동이라도 할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들이 요구하는 최후의 주인공은 이 시대만의 주인공이 아니라 미래의 주인공까지 될 수 있는 분입니다. 그러기에 오늘날 기독교사상 가운데서 고마운 것은 재림주사상입니다. 4천년 역사를 대신하여 역사적인 지도자로 오셨던 예수님, 그 시대를 대신하여 오셨던 예수님께서 미래의 주인공으로 오실 것이기 때문에 그 예수님이 우리 인류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인류는 이제 다시 오실 예수님을 필요로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오실 예수님이 그러한 주인공으로서 책임을 질 수 있기에, 그 예수님의 이름이 인류에게 필요하기에, 오늘날 인류는 다시 오실 주님 앞으로 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아무도 부정 못할 것입니다. 부정 못해요.

그러면 끝날에 당도한 여러분은 이 때에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여러분 자신이 이 시대의 주인공이 되어야 되겠고, 미래의 주인공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런 준비를 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이것이 하늘을 바라보고 나가는 사람들이 필히 염려하여야 할 최후의 문제요 중심문제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 자신이 그러한 것을 해명할 수 없고 그러한 이념을 주장할 수 없다면 여러분들은 어떤 휩쓸림에 휩쓸려 버릴 것입니다. 이 휩쓸림을 막고 나서 새로운 무엇을 고대할 자신이 없는 한 최후의 심판대 앞에서 후퇴해야 할 망국의 종족이 되고 만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지 않겠어요?

6-114
변하는 세계에서 변치 않는 자신이 되려면
오늘의 세계는 또 다시 변해야 할 세계입니다. 지금까지 세계가 이러이러하게 변해 왔으니 오늘날은 다시 크게 변해야 합니다. 이런 세계에 살고 있는 여러분은 변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변하는 세계, 변하는 사조 속에서 변치 않는 자신이 되어야 하는 데, 그러기 위해서 여러분은 어떻게 해야 하는 가? 이것을 해결해 주어야 할 것이 종교요 진리일 것입니다.

역사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 변함없이 흘러왔고, 현재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나 인심은 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은 하루의 생활에서도 몇 번씩 변합니다. 여러분이 주장하는 주의도 일생에 몇 번씩 변합니다. 이런 사특한 인간이요 에덴에서 하늘을 배반한 타락의 후손들이라는 것을 우리들은 생활에서 느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을 막아줄 수 있는 종교는 없겠는 가, 이것을 막아줄 수 있는 지도자는 없겠는 가, 이것을 막아줄 수 있는 책임자는 없겠는 가 하면서 가슴을 헤쳐 놓고 우주의 슬픔과 비애를 탄식하며 아우성쳐야 할 때가 왔다는 것입니다.

역사는 시기 시기, 혹은 세기 세기마다 변해 왔습니다. 하나님의 6천년 섭리역사를 회고해 볼 때 여기에는 제물시대가 있었고, 율법시대가 있었고, 신앙시대가 있었습니다. 또한 구약시대가 있었고, 신약시대가 있었고, 앞으로 성약시대가 온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제 새로운 이념의 세계가 와야 하는 데, 이 세계가 변하기 전에는 그 이념의 세계가 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하루에도 천번 만번 변하면서도 태연히 잠을 자고 있는 역사적인 슬픔의 열매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무리, 제 아무리 자기의 주의를 도도하게 자랑한다 하더라도, 자기 일신을 변명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변할 자랑이요 변할 변명입니다.

그러면 사람도 변하고 역사도 변하고 이 땅도 변하는 데, 이것을 수습할 수 있는 심정적인 자세는 어떤 것이뇨. 이것은 조심하는 것밖에 없습니다. 조심성 있게 살피는 것밖에 없습니다. 여기에 와도 마음 졸이며 조심하고 저기에 가도 마음 졸이며 조심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변하는 시대를 넘어 가려면 새로운 세계를 흠모하고 그리워하고, 변하는 것을 피해 조심스럽게 나아가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야 됩니다.

과거의 선지자들도 하늘이 부르실 때는 용맹스럽게 나타났습니다. 하늘앞에 불리움 받을 때는 용맹스럽게 나타났으나 사탄에게 보내졌을 때는 다 패했습니다. 그렇지 않아요? 하늘이 불러줄 때는 좋아서 출발했지만 하늘이 부르신 목적을 해원하기 위해 사탄을 향해 진격했을 때는 다 쓰러져 버렸습니다. 이런 패배의 발자취를 갖고 있는 역사를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6-115
무엇을 조심히 살펴야 할 것인가
그러면 이제 우리가 무엇을 조심히 살펴야 할 것인고. 사망권내에 있는 천만 번 죽어 마땅한 인간을 찾아오시는 하늘의 수고가 있음을 조심히 살필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하늘이 사망권내에 있는 우리를 찾아 주실 때에는 세상의 무엇보다 귀한 것을 갖고 찾아 주시고, 사망권내에 있는 우리를 구원해 주실 때에는 염려하는 마음과 애달픈 심정을 갖고 구원해 주신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하늘이 우리를 사망권에서 빼앗아 오실 때에는 갖고 있는 모든 것을 희생할 각오를 하고 빼앗아 오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찾아 주신 그 수고를 알아야 하겠고, 찾아 주신 그 사랑의 심정을 알아야 하겠고, 찾아 주신 그 싸움의 행로를 알아야 되겠습니다. 본래 아버지와 나는 하나입니다. 따라서 아버지의 마음이 내 마음이요, 아버지의 목적이 내 목적이니 가라 하시는 그 곳에 가야 하겠습니다. 책임지겠다는 심정에 사무쳐 가야 하겠습니다. 억천만 고난의 길이 있고 어떠한 십자가의 장벽이 있다 하더라도 넘어갈 수 있다는 신념을 갖고 가야 되겠습니다. 이런 신념과 아버지의 심정을 바탕으로 역사적인 모든 것을 밟고 올라서겠다는 각오를 가진 사람이 있다 할진대 그는 필시 승리하고야 말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그런 솟구쳐 오르는 심정이 있어야 변하는 세상을 박찰 수 있습니다. 섭리의 뜻, 역사적인 싸움이 종결되기를 바라시는 아버지의 심정을 붙들고 나설 수 있는 마음이 신앙자인 여러분의 심중에서 사라진다면 여러분은 역사와 더불어 변할 사람입니다.

계시록에서는 첫사랑을 잃어버리지 말라 하였습니다. 첫사랑은 생명을 주고도 바꿀 수 없습니다. 하늘이 처음으로 주신 그것을 여러분 일생의 가장 귀한 것으로 여겨야 합니다. 그것을 여러분이 갖고 있는 이상의 가치, 여러분의 관념 이상의 가치로 느껴야 하겠습니다. 이 은사는 세상의 어떤 무엇을 가지고도 바꿀 수 없는 은사요, 죽음이 천만 배 이상 가중되어도 바꿀 수 없는 은사라고 느낀 사람은 필시 하나님의 심정 가운데 있는 사람이요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있는 사람이니 하나님의 위업을 소유할 수 있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조심히 살펴야 하는 데 무엇을 조심히 살펴야 할 것인고? 하늘은 어느 때에 우리에게 귀중하고 값비싼 그 선물을 주셨던가. 역사를 회고하여 보면 우리의 선조들이 역사적인 선물이었고, 2천년 전에 오신 예수님이 인류 앞에 사랑의 선물이었습니다. 이 고마움의 역사를 회고하여 통곡하는 그 순간, 우리의 마음은 하늘과 통할 수 있으며, 그 심정을 바탕으로 하늘의 재창조의 역사가 시작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이런 심정에 불타는 모습, 이 벅찬 가슴을 억제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자신을 가진 모습만이 역사적인 실천노정에서 최대의 승리자로 등장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런 분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역사노정에서 수없이 우리를 찾아 주셨고 우리를 위하여 희생하셨습니다. 우리가 갚을래야 갚을 수 없는 은사를 여러분은 생각이나 해 보았습니까? 우리는 역사적인 배반자임을 자인해야 되겠습니다. 천적인 선물을 갖고 역사를 섭리해 나오시는 하늘 앞에 배반자임을 자인하고, 죄인임을 자탄하고, 회개라도 해야 할 우리입니다.

통일교회 신도인 여러분은 남들이 아니라 하는 길을 가기 위해 이 자리에 왔습니다. 그런 여러분에게 나는 묻고 싶습니다. 무엇 때문에 왔느냐고. 일생의 모든 것을 사탄이 빼앗아 간다 할지라도 선조들을 대신하여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현실의 모든 것을 희생하는 한이 있더라도, 죽음의 자리에 나가게 될지라도, 나를 ‘지켜 주시고 나의 일을 염려해 주시는 하늘의 은사만은 잊지 못하겠나이다’ 할 수 있는 마음, 그런 불변의 심정이 있어야만 통일이념을 성취하는 그날까지 남아지는 우리가 될 것입니다.

이러한 심정이 여러분의 가슴에 싹트지 않고, 이러한 이념의 세계에 대한 감정이 여러분의 마음에서 움직이지 않는 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될 것이냐? 방황, 방황, 방황하다가 최후의 순간에는 자기 자신을 변명하지도 못한 채 죽음의 함정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이런 것을 모르는 사람이 있다 할진대, 눈을 감고, 귀를 막고, 입을 막고, 코를 막고라도 다시 한번 살피는 마음이 있어야 됩니다. 훌륭한 신앙자의 태도는 대인(對人)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로 조심히 살피는 태도입니다. 이런 살피는 마음, 조심스런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마음이 없는 사람은 무책임한 사람입니다.

역사는 책임자를 구하고 있는 데 어떠한 책임자를 구하느냐 하면, 역사적이고 시대적이며 미래적인 책임자를 구합니다. 그런 책임자를 구하고 있어요. 옛날의 성인들 혹은 역사적인 우리의 선조들은 모두 그 시대에 역사적인 책임을 호소한 분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의 종말시대인 오늘날까지 그분들의 말씀은 우리의 가슴을 울리고 있는 것입니다. 또 그분들의 행동은 우리의 심정을 격동시키고 그분들의 생애는 우리 생애에 방향을 제시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6-118
역사가 요구하는 사람
이제 여러분은 한마디 말을 하는 데 있어서도, 듣는 데 있어서도, 보는 데 있어서도, 느끼는 데 있어서도 살피고 조심해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역사적인 책임을 다하기 위하여 얼마나 애써 봤습니까? 어려움도 개의치 않고, 분함도 개의치 않고, 몰림과 쫓김도 개의치 않고, 굶주림도 개의치 않고, 죽음도 개의치 않으며 역사적인 책임을 다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박차고 나서 보았습니까? 얼마나 조심스런 마음을 가졌습니까?

혹시 나의 환경에 나를 이끌고자 하는 어떤 섭리적인 천륜의 손길은 미쳐져 있지 않은가 하고 살피면서 책임감에 불타는 심정, 그것을 찾고 싶어하는 심정이 일신에 감돌아 지금까지의 자기의 입장을 부정하고 새로운 생각을 하는 시간을 여러분은 얼마나 가져 봤습니까? 못 가져 봤으면 여러분은 얼굴을 들 수 없음을 느껴야 할 것입니다.

에덴 동산에는 먼저 지음받은 천사장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새로 아담해와가 나타나자 이미 환경을 지배하고 있던 천사장은 공격자가 되었습니다, 공격자. 이것이 역사의 출발이었습니다. 습관적인 역사, 혹은 전통적인 역사를 주장하던 인간들은 언제나 하나님께서 가시는 길을 반대하였습니다. 어느 한 때에도 협조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조상이 그렇기 때문에 후손도 그렇다는 거예요. 역사노정에서 몰림받던 자들이 싸우면서 역사를 이끌어 나왔다는 것입니다.

하늘을 대하던 노아도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당시 사회의 전통을 주장하는 무리들 앞에 그는 광자로 밖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광자, 엉터리, 바보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는 거예요. 아브라함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백세에 하늘이 축복해 주심으로 낳았던 독자 이삭을 죽이려 했습니다. 모세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이와 같이 뜻을 품고 나선 사람들을 모함하고 배반하고 몰아내자고 선동한 자들은 누구였던고. 역사적인 전통을 고수하는 무리였습니다. 하늘이 있다 할진대 그런 자들은 심판받아야 됩니다.

지금까지의 역사적인 것에 대한 모든 미련을 한꺼번에 끊어 버리고, 과거의 낡은 옷을 벗어 버리고 새로운 동산에서 새 아침을 맞이하여 흰옷을 입고 새로운 소망을 가지고 나타나고자 하는 것이 복귀의 이념입니다.

이러한 역사과정을 거쳐온 타락한 인간인 연고로 새로운 학설이 나타나도 때렸습니다. 새로운 무엇을 주장하면 얻어맞았습니다. 그런데 가정적으로 맞으면 그것은 가정적인 사명을 대신한 것이요, 민족적으로 맞으면 그것은 민족적인 사명을 대신한 것이요, 국가적으로 맞으면 그것은 국가적인 사명을 대신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시대의 그 국가의 백성들로부터 맞으면 그것은 그 시대와 국가와 백성들의 이념적인 사명을 대신한 것입니다.

역사는 흘러 오늘날은 민주주의와 공산주의가 대적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앞으로 반드시 공격전 혹은 수비전, 즉 격투가 벌어질 것입니다. 이것이 역사적인 전체의 종결점이 되고 이것으로써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면 모르지만, 그렇지 못한다면 여기에 새로운 무엇이 나타나야 되는 것입니다.

그 새로운 것은 어떻게 될 것이뇨. 종교를 갖고 나오면 종교인들에게 맞을 것이요, 어떠한 책임을 갖고 나오면 사회 환경에서 배척받을 것이요, 어떤 이념을 갖고 나오면 세계의 주의로부터 배척받을 것입니다. 나중에는 민주주의로부터 배척받고 공산주의로부터 배척받을 것입니다.

오늘날 이 세계는 그런 과정을 거쳐 나가야 할 타락세계인 고로 배척받고 몰림받으면서도 거기에 굴하지 않는 어떤 무엇이 나와야만 이 세계는 새로운 세계로 넘어설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무엇이 필시 나올 것을 알고 있습니다. 또 우리는 그런 이념을 소개하기 위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 목적을 성취하기 위하여 우리는 핍박을 개의치 않고 오늘도 내일도 나아가기 위해서 모였습니다.

여기에서 여러분은 어떤 각오를 어떻게 해야 되겠는 가? 역사적인 각오가 아닙니다. 시대적인 각오가 아닙니다. 한 때의 순간적인 각오도 아닙니다. 천주적인 각오, 천주적인 각오를 해야 합니다. 천주를 주재하시는 하늘은 반드시 그런 각오를 가진 무리를 모으실텐데, 천주의 이념에 불타는 포부를 품고 몰리는 무리에 가담하는 용자들이 있어, 시대에 꺾이지 않고 남아진다 할진대 그들은 후대의 역사를 움직일 수 있을 것입니다.

6-120
새로운 종교가 나와야 할 때
오늘날까지 종교는 제창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억조창생을 구하자’고 말씀하셨습니다. 선의 이념권내로 인류를 인도하고 하나의 목적세계를 소개하기 위하여 제창하였습니다.

이제 새로운 종교이념이 나온다면 그것은 지상의 인류만이 아니라 지금까지 왔다갔던 수많은 선지선열과 뜻을 배반하여 지옥에 간 영인들까지 구해야 할 것입니다. 새로운 이념을 갖춘 주의라면, 그런 종교라면 지상의 억조창생을 구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천상에 가 있는 영인들 혹은 지옥에 가 있는 수많은 죄인들과 하늘을 배반한 사탄까지도 구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 종교가 반드시 나와야만 됩니다. 그런 종교의 이념이 나와서 모든 종교를 통일하고 모든 종교인들의 마음에 불을 던지고, 평화와 기쁨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평화와 기쁨을 주고, 새로운 이념권내로 돌진할 수 있는 각오와 맹세를 할 수 있게 해야 됩니다. 이 땅 위에 그런 각오, 그런 맹세를 하게 할 수 있는 새로운 움직임이 나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런 것을 생각해 보았습니까? 찾아 보았습니까? 상상이라도 해 보았습니까? 그 이념의 목적은 모든 것을 통일하는 것입니다. 지상도 통일하고, 영계가 있다면 영계도 통일하고, 원한에 사무쳐 있는 지옥까지도 해방시키는 것입니다. 직접 못하면 이념이라도 갖춘 종교가 나와야 됩니다. 그런 이념을 갖춘 종교가 나와야만 우리가 사모하는 세계, 즉 선의 세계와 악의 세계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것입니다.

현 시대를 말세라고 하는 여러분은 무엇을 찾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생명문제와 연관되는 이념은 지극히 작은 한 마디에서부터, 하나의 손길로부터, 하나의 발자취로부터, 하나의 상징적인 암시로부터 여러분에게 접촉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오늘날 인간들은 다 잊어버리고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세계를 바라볼 때는 원수가 없습니다. 악과 부딪친다 하더라도 악이 나의 나아갈 길을 재촉해 주는 것이 될 수 있는 것이요, 선도 역시 나를 재촉시키는 것이 됩니다. 이런 견지에서 우리는 무엇인가를 찾고 조심성 있게 살피는 생활을 해야할 것입니다.

6-121
모든 것을 이긴 하나님의 자녀가 되려면
오늘도 내일도 하늘에 대한 소망을 가져야 하겠고, 죄악의 현실, 엉클어져 있는 세상에 대한 미련을 끊고 움직일 수 있는 심적인 충격을 받아야 하겠습니다. 그 충격이 하루, 일년 나아가 일생 동안 계속 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여러분이 사모하는 그 목적지까지 가느냐 못 가느냐 하는 문제가 결정된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 충격이 없다 할진대는 말할 수 없이 초조할 것입니다. 오늘날 이 시대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이 초조하고 공포의 분위기에 휩쓸리는 것을 인식할 수 있는 때입니다. 조그마한 양심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무엇인지 모르게 초조하고 불안한 환경으로 자신을 몰아넣고 있는 감촉을 느낄 거예요. 여러 청년 남녀들이 이러한 것을 느끼더라도 초조함을 해결할 수 있고 공포를 해결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싹튼다면, 그것으로 말미암아 인간의 소망의 터전을 점령하고 있던 공포와 초조가 물러가고 양심적인 것이 움직일 수 있는 세계가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초조와 공포심을 넘어 조심성 있게 그것을 찾는 마음이 여러분의 걸음을 재촉하고 여러분의 몸을 이끌어간다면 지금도 절대 늦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최후의 귀일점은 어떠한 물질적인 이념이나 인간적인 어떠한 이념이 찾아주는 것이 아니요, 내 마음에 폭발되어 오는 간곡한 심정이기 때문입니다. 최후에 남아지는 이념의 한곳을 향하여 움직여 나가게 하는 것은 심정입니다. 심정이 최후의 나의 전체를 결정지어 준다는 것입니다.

이 심정 하나만을 붙들고 조심성 있게 찾는 자가, 들려주는 말씀을 들을 수 있고, 보여주는 환상을 볼 수 있으며, 생활에서의 모든 실정을 분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책임을 느끼며 초조한 심정과 불안한 마음을 억제하면서 새로운 이념을 찾고 움직이는 청년 남녀들이 있고, 그들의 울부짖는 음성이 들리는 그런 심정의 움직임이 있다 할진대는 , 여러분은 그들의 심정을 통하여 역사적인 모든 것과 오랫동안 느껴오던 모든 것을 한꺼번에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심정을 느끼고 자기를 각성하여 ‘하늘이 찾던 이념의 주체가 이것이었구나! 세계가 찾던 참된 모습이 이것이었구나! 하늘 땅 앞에 세워서 자랑할 수 있는 모습이 이것이었구나!’하고 자기도 모르게 부르짖는 순간을 갖는 자만이 역사적인 주인이요, 섭리적인 주인이요, 천륜적인 주인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여러분들은 홀로 살 수 없는 자신임을 부정 못할 것입니다. 관계와 인연의 세계에서 책임을 다하고 실적을 남겨야 할 인생행로를 가고 있는 우리인 것을 부정 못할 것입니다.

책임을 다하고 실적을 남기면 어떻게 될 것이냐, 자기를 자랑할 수 있고, 본연의 인간을 대신한 승자의 모습이 나였구나 하는 각성이 생길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순간에 세계는 여러분의 것이 될 것이며, 이 우주도 여러분의 것이 될 것입니다. 또한 오늘날까지 섭리해 나오신 하나님도 여러분의 하나님이 될 것이며, 여러분은 그 하나님의 위업을 상속받을 수 있는 직계의 자녀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찾아 나가는 데 있어서 제일 중요한 것은 무엇이냐 하면 조심히 살피는 것입니다. 그러는 가운데에서 이런 일이 이루어질 수 있고 찾아질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명심해 주시기 바랍니다.

6-122
기 도
변화산상에서 판가리 싸움을 하던 예수의 마음은 슬픔에 잠겨 있었사온데 베드로, 야곱, 요한은 ‘선생님이여,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저희가 여기에 장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님을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짓겠나이다’ 하던 제자들의 심정을 저희들이 감히 짐작하겠나이다.

땅 위에서 이념의 흔적도 느끼지 못하고 이념세계의 실정도 알지 못한 무지몽매한 그들, 온 우주를 주관하고 포괄하고도 남을 수 있는 이념적인 환경이 벌어지는 그 자리에서 그런 말을 하지 않을 자가 있겠사오리까? 과연 그리던 그 한 장면이요, 살고 싶었던 그 한 장면인 것을 마음으로는 알았으나 현실적인 과정을 거친 후에야 이루어진다는 것을 그때의 베드로, 야곱, 요한은 몰랐었사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오늘날 세계에 널려 있는 기독교인들은 마음으로 천국을 고대하고 그리워하고 있으나 천국을 찾는 데에 싸움의 행로가 남아 있다는 것은 망각하고 있사옵니다. 이러한 기독교인들을 각성시켜야 할 책임이 저희에게 있사옵니다. 더우기나 끝날인 오늘날에는 역사도 변하고 있고, 신앙도 변하고 있고, 인심도 변하고 있고, 전통도 변하고 있고, 주의도 변하고 있고, 이것 아니면 죽는 다던 사랑의 심정도 변하고 있는 이때, 변하지 않는 이념, 변하지 않는 모습, 변할래야 변할 수 없는 자체, 그것, 그 동산, 그 세계, 그 주권, 그 지도자, 그 음성, 그 생활, 그 환경이 그립사옵니다.

아버님, 맺혔던 가슴을 여시옵소서. 이제 오늘의 내 한 자체가 이렇게 초조하고 이렇게 좁은 자신임을 알았사옵고, 오늘의 나를 넘어 내일의 나를 추구하기에 급급할 수 있는 내가 그립사옵니다.

통일신도들이 가는 걸음에 핍박이 있다 하더라도 그 핍박을 내가 가는 길을 막는 악의 요소로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나를 하늘의 심정으로 더 가까이 몰아내주는 자극적인 작용으로서 이용할 수 있는 성도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 핍박은 핍박이 아니라 심정을 연결시키기 위한 아버지의 역사임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앞에 합장하고 머리 숙여, 천상의 법도는 역사노정과 모순됨이 없다 할 수 있는 자리에서 승리의 개가를 아버지 앞에 돌려드림으로써 아버지께서 과연 내 아들이라 할 수 있는 모습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께서 기뻐하심에 같이 기뻐할 수 있고, 내가 기뻐함에 사탄까지도 부끄러운 얼굴로 웃지 않을 수 없는 심정을 일으킬 수 있는 아들 딸의 모습을 하늘은 요구하신다는 것을 알았사오니, 그런 나를 찾아 헤매는 세계의 기독교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러한 나를 재촉시킬 수 있는 선발대로 나서는 통일신도가 되게 허락해 주시옵기를 ,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들이 바라던 것은 너무나 적었사옵니다. 저희들이 귀중하게 여기고 존중시하던 것, 그것으로 끝인 줄 알았는 데 그것을 넘어 무한한 사랑과 무한한 은사가 있다는 것을 알았사옵니다.

아버님의 은사 앞에 길을 막는 자신이었음을 탄식하는 마음이 이 시간 식구 식구에게 우러나게 하시옵소서. 이제 심정의 자극을 받고 사명감에 불타, 오라 하실 때에 기쁘게 오고, 가라 하실 때에 기쁘게 갈 줄 아는 사람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부르시는 음성을 고마와했거든 명령하시는 음성도 고마와하며 원수들의 진영을 향하여 돌진할 수 있는 하늘의 용자들이 되고, 하늘 세계의 주인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여기에는 화살을 맞아 쓰러지는 자도 있을 것을 알고 있사오니, 이런 마당에서도 패배하여 후퇴하는 자들이 되지 말게 인도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행복에 잠겨 아버지와 의논하는 순간이 있는 반면에 싸움터에서 피눈물을 뿌리고 하늘의 원한을 호소하며 쓰러지는 순간이 이 아들 딸들에게 있다는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기쁨도 책임지고 슬픔도 책임지고 싸움도 책임지고 억울함도 책임지고, 끝날의 심판대 앞에서 역사적인 것을 거부하고 ‘아버지시여, 손을 들어 저희를 축복해 주시옵소서. 아버지시여, 저를 보고 분함을 참으시옵소서, 아버지시여, 저를 보고 고통과 억울함을 참으시옵소서. 아버지시여, 저를 보고 수고를 거두시옵소서’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런 아들 딸들이 나타나기를 바라기를 6천년, 조심스럽게 찾아오시기를 6천년이셨으니, 아버지, 황공하고 망극하옵나이다. 찾으시는 그 시선, 찾으시는 그 모습, 조심스러운 그 발자취를 저희가 망각하였나이다.

오늘 들었사옵고, 이 시간 알았사옵니다. 조심스럽게 찾아오라고 하셨음을 아옵니다. 조심스럽게 찾아오신 아버지, 저희들을 붙들려 하신 그 손길을 몇 번이나 배반한 저희들이, 아버님의 체면을 망각하였던 자신들임을 알았사옵니다.

이제 저희가 아버지 앞에 서고, 아버지와 인연된 생활을 하고, 아버지를 대신하여 조심히 찾아가야 할 길을 가게 해 주시옵소서. 이 길을 다 간 후에, 이 길을 모르는 다른 사람들에게 조심스럽게 찾아갈 수 있는 방향을 가르쳐 주어야 할 저희들이온데, 그런 천적인 명령을 받은 저희들이 온데, 여기에서 슬픈 눈물을 흘리며 후퇴하는 자들이 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배반하는 무리들을 사랑하고 배반하는 무리들을 축복해 주시려 하셨던 아버지의 심정이 분함으로 남아 있는 것을 아옵니다. 이제 끝날에 엘리야가 기도하던 이상의 기도를 아버님께 드리며 나타나는 한분의 슬픔을 위로할 자가 없는 것을 알고 슬픈 조건을 넘어서, 그분을 권고할 수 있는 간곡한 마음을 갖게 하여 주시옵기를 ,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찾아 헤매는 발걸음이 피곤하여 쓰러지고, 조심성 있게 찾아 헤매는 걸음이 기진맥진하여 쓰러질 때마다 아버님께서 ‘내가 있다, 내가 가는 길로 오너라’ 하시던 그 때가 그립사옵니다. 아버지께서는 인간을 믿고 일할 수 없었던 것을 알았사옵고, 인간과 의논하면 하늘의 일이 지연에 지연을 거듭했던 것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오늘날 이때는 많은 무리가 필요치 않음을 아옵니다. 이때는 넘고 가야할 때요, 이때는 청산하고 가야할 때요, 이때는 모든 것을 맺고 넘어가야 할 때요, 이때는 있는 그대로 나타나야 할 때입니다. 이 길은 불평하는 자 못 갈 길이요, 스스로 변명하는 자 못 갈 길이요, 스스로 자기를 세우는 자 후퇴할 길인 것을 알았사옵니다. 이 길은 예수님이 피흘리며 가신 십자가의 길, 연장된 골고다의 길인 것을 알았기에 변명할 몸이로되 변명할 줄 모르고, 자기 자신을 세워 자랑하고 싶으나 자랑할 줄 모르고, 분함을 알면서도 밟히며 가야 할 길임을 알았사옵니다. 6천년 섭리노정에서 이런 길을 걸어간 하늘의 성도들을 생각할 때 원통하옵나이다.

그러나 그보다는 아버지의 심정이 더 원통하다는 것을 알게 될 때에 회개해야 할 저희들이옵니다. 슬픔 중의 슬픔이요, 말할 수 없이 후회해야 할 사정인 줄 아옵니다. 저희 일체의 소원이 아버지 것이요, 저희의 일체가 아버지의 소유요, 저희의 심정과 사랑의 중심이 아버지시온데, 이러한 것을 느끼지 못하는 자가 있다면 그는 불쌍한 자임을 아옵니다. 예수님도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면서도 그런 아버지를 알고 붙드셨기에 죽음도 두렵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오히려 원수를 대하여 복을 빌던 그 늠름하고 여유 있는 인격이 그립사옵니다. 그 걸음이 그립사옵니다. 오늘도 내일도 역사의 변함과 생활의 변함과 자기 일신의 변함을 비웃을 수 있는 승리의 왕자는 어디에 있사옵니까. 아버지, 그립고 그립습니다.

역사적인 주인공, 시대적인 주인공, 미래적인 주인공이 갈라질 것이 아니라 하나의 실체로 나타나고 당신의 심정을 인간들에게 옮겨 줄 수 있는 그때, 그 세계, 그 동산이 그립사옵니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무리가 나와야 되겠고 교단이 나와야 되겠사옵니다.

모든 것을 잊고 그것을 찾기에 준비하고 성심을 기울여 책임을 다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모든 것을 탕감하고 아버지 앞에 서기 위해 어떤 희생도 개의치 않고 달음질칠 수 있는 아들 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님, 이 삼천만 민족을 어이 하겠사옵니까. 이 땅 위에 널려 있는 27억 인류를 어이 하겠사옵니까? 민족의 운명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사옵고, 인류의 종말이 비운의 흑막에 싸여 있음을 바라보게 될 때 비통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느끼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는 아버지의 역사적인 슬픈 심정을 아는 연고로 무지한 인간들 앞에 이런 마음을 전함으로 말미암아, 이런 마음을 일으키지 않으면 안 되겠기에 이런 말을 하였사오니,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불충한 인간들로 하여금 불충의 자리를 피하게 하기 위해 이런 애절하고 비통한 심정을 전하오니 용납하여 주시옵고, 이런 기도를 용납하여 주시옵기를 , 사랑의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십자가에 돌아가신 예수님의 서글픔이 역사적인 서글픔인 것을 알고 있사옵고, 갈보리 산정에서 피눈물을 흘리시던 예수님이 그립사옵니다. 이제 그의 대신자, 아버지의 실체로서 역사를 비웃고 역사를 책망할 수 있는 하나의 모습이 나타나기를 인류는 고대하고 있사옵니다. 하늘도 고대하고 계심을 아옵니다. 그러한 자체가 그리워 오늘도 내일도 찾아 헤매는 아들 딸들이 되게 해 주시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갈 길을 다 가지 못하고 슬퍼하는 자들 되지 말게 허락해 주시옵고, 갈 길을 다 간 후에도 또 가고 싶어하고, 갈 길을 다 간 후에 찾아지는 기쁨을 마음에 품기 위하여 허덕이는 무리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래야만 놀랍고 크신 섭리의 뜻 앞에 하나의 주춧돌이 된다는 것을 저희들은 배워 알았사오니, 오늘도 내일도 이 뜻을 위하여 동원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의 세계도 이 뜻을 위하여 저희의 후손도 이 뜻을 위하여 동원되어야 하는 운세에 있사오니, 명령하여 주시옵고 이끌어 주시옵소서. 저희들은 가겠나이다.

아버님! 아뢰고 싶은 저희의 모든 심정을 아시옵고, 기도하는 바를 이루어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남아진 험한 길도 지켜 주시옵소서. 주님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