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8 to 6-56: 소망을 품고 지나가야 할 인생길

소망을 품고 지나가야 할 인생길
1959.03.22 (일), 한국 전본부교회

6-38
소망을 품고 지나가야 할 인생길
로마서 8:18-21

[기 도(Ⅰ)]

저희를 사랑하시어 선의 조상들을 이 땅에 보내시고, 죽음의 자리에까지도 내모신 아버지의 심정을 이 시간 저희들이 체휼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불충스런 인간 조상이 타락한 이후 오늘날까지 하늘과 땅은 기쁨의 한날을 맞이하지 못한 채 슬픔의 역사, 싸움의 역사가 계속되어 왔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아버지시여, 이와 같이 곡절이 많은 이 땅 위에서 언제나 저희들이 아버지께서 기뻐하실 수 있는 효자의 모습이 되어 아버지를 찬양할 수 있사오리까. 그럴 수 있는 한날이 오기를 저희들은 고대하고 있사옵니다.

이날 부족한 저희들이 아버지 앞에 모였사오니 긍휼히 보시옵소서. 연약한 저희들을 강하게 하시어 남아진 싸움터에서 승리의 깃발을 들 수 있게 하시고, 아버지의 아들 딸이 된 자신의 모습을 자랑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님, 일주일의 생활 가운데 아버지 앞에 옳지 못한 것이 많았을 줄 알고 있사오니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부족한 몸 마음을 다 바치고자 이 시간 아버지 앞에 엎드렸사오니, 옳지 못한 모든 것을 제하여 주시옵고, 당신이 취하실 수 있는 것만 저희의 몸 마음에 우러나게 허락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들을 끔찍이나 사랑하시어서 이 시간 이 자리에 모아 주신 것이 아버지의 은사인 줄을 알고 있사오니, 그 은사에 보답하여 간곡한 심정을 아버지 앞에 바칠 수 있는 이 시간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뜻, 아버지께서 소망하시는 그 한 목표를 향하여 모든 것을 참으면서 끝까지 싸워나갈 수 있는 아들 딸들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날은 거룩한 날이오니 만민을 축복하여 주시옵고, 불쌍한 이 민족을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더우기나 외로운 자리에서 당신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식구들도 있사오니 그들을 축복하여 주시옵고, 일률적인 보호의 은사와 가호의 손길을 그들의 머리에서 떼지 마시옵고, 아버지의 영원한 한날을 맞이할 때까지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시옵고, 보호하여 주시옵고, 인도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시간 저희들, 아버지 앞에 나왔사오니 저희의 몸 마음 다 바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세상의 모든 관념을 다 제거하여 아버지의 참된 아들 딸의 심정을 갖고 아버지를 대할 수 있는 이 시간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시간 오직 아버지께서 친히 주관하여 주시옵고, 사탄이 틈타는 시간이 되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 아버지시여,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허락하신 은사의 손길로 저희를 영원히 붙들어 주시고, 아버지의 생명의 동산에까지 저희를 옮겨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오면서, 모든 말씀 주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6-39
기 도(Ⅱ)
이 한 날을 거룩한 날로 축복하시옵소서. 이 한 시간을 성별해 주시옵소서. 이 한 무리를 거룩한 무리로 인정해 주시옵소서. 이 한 청중에게 오로지 아버님의 심정에 어릴 수 있는 간곡한 마음을 가지도록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저희의 마음대로 느끼는 이 시간 되지 말게 주관하여 주시옵고, 아버지 심정에 화하고, 아버지의 성상(聖像)을 대하고 싶은 간곡한 심정이 넘쳐 흐르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지금까지 자기를 중심삼고 생각했던 일체(一切)의 주의 주장이나 관념을 제거하여 주시옵고, 오직 아버님과 인연될 수 있는 것만이 저희의 심중으로부터 우러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은 당신이 원하시는 하나의 이념과 하나의 목적을 흠모하는 마음, 아버지의 뜻을 위하는 마음만이 간절할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 아버지,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제까지 당신의 뜻을 위하여 왔다 간 사람들이 많았사옵는 데 보잘것없는 저희들을 불러 이 한 자리에 모이게 하심은 당신의 크나큰 은사인 줄 알고 있사오며, 당신이 저희들을 모으신 것은 분부하시려는 뜻이 있어서인 줄 알고 있사옵나이다. 아버지시여! 이 시간 개개인의 심령 위에 당신의 생명의 말씀과 은혜를 내려 주시옵기를 ,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저희들은 오늘도 내일도 소망의 동산을 바라보면서 싸움의 일로를 개척하지 않으면 안 될 싸움터가 남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사오니, 이 시간 저희 몸 마음이 강하고 담대하여 사망의 물결을 휩쓸어 몰아낼 수 있게 인도하여 주시옵고, 생명의 권한을 갖고 부활의 은사를 자랑할 수 있는 당신의 아들 딸들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님, 이 시간 당신의 아들 딸에게 허락하실 것은 허락하여 주시고, 아버지께서 원치 않으시는 모든 것은 제거하여 주시어서, 당신의 마음과 저희의 마음이 하나되게 허락하여 주시고, 당신의 성상(聖像)과 저희의 몸이 하나되어서, 남겨진 일체가 아버지 것이 아닌 것은 하나도 없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나이다.

아버님이시여! 오로지 당신의 뜻을 중심삼고 예배드리는 이 시간이 되게 인도하여 주시옵고, 저희의 마음 몸이 아버지의 뜻을 위하는 간곡한 심정을 지니고 당신의 거룩한 성호를 노래할 수 있으며, 당신의 아름다운 심정을 찬양할 수 있는 이 시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사랑하는 아버님! 이 삼천만 민족을 긍휼히 보시옵소서. 이 민족을 대표하여 모이는 수많은 교단을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특히 외로운 가운데 당신 앞에 무릎을 꿇고 간곡히 기도하고 있는 식구들에게도, 아버지, 축복의 은사를 내려 주시옵소서. 일률적인 은사의 손길로써 그들을 보호하여 주시옵고, 일률적인 역사로써 그들을 권고해 주시어서, 남겨진 싸움터에서, 사탄과의 최후의 일격전에서 패배하는 자들이 되지 말게 보호하여 주시옵고, 영광의 개가를 높이 부르며 아버지의 아들 딸이라고 자랑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수많은 무리가 당신의 소망을 바라고 있사오되, 당신의 진정한 사랑의 심중을 헤치고 당신을 위로하고자 하는 아들 딸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하오나 이 시간 이 자리에 모인 이 무리는 당신의 심정을 붙안고 위로할 수 있는 아들 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아버지의 심정과 일치하는 경배를 드릴 수 있는 아들 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많은 무리가 아버님을 위하여 노력하였으나 끝까지 참고 이기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그 노력과 수고가 결실되지 못한 사실을 알고 있사오니, 아버님이시여, 끝까지 참고 끝까지 노력하여 아버지 앞에 최후의 결실을 이루어 드릴 때까지, 오늘도 내일도, 아니 일생을 건 어떠한 싸움도 개의치 않고 나아갈 수 있는 아들 딸들 되게 허락하여 주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저희들을 모아 놓으신 데에는 아버지의 각별한 은사가 있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그 은사에 대한 막중한 책임을 짊어져야 할 저희들이오니, 이제 그 책임을 감당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아들 딸들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 한 시간 부족한 마음 몸을 모아서 아버지 앞에 경배드리고자 하오니 일체를 주관하여 주시옵고, 사탄이 틈타는 시간이 되지 말게 주관하여 주시옵기를 , 아버님,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오면서, 모든 말씀 주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6-41
기 도(Ⅲ)
아버지시여, 저희들을 긍휼히 보시옵소서. 아버님의 은사가 아니면 죽을 수 밖에 없는 불쌍한 저희들이옵니다. 아버지, 이 시간 저희들을 버려두지 마시옵고, 당신의 크신 사랑의 품에 품어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지금까지 수고의 길도 어렵다 생각하지 아니하고 따라나온 당신의 아들딸들, 당신의 사랑이 아니면 방황할 수밖에 없사오니, 긍휼히 보시옵고, 당신의 크신 사랑으로 품으셔서 당신이 허락하시는 영광의 은사를 체휼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인간을 중심삼은 모든 것은 끝이 있으되 아버지를 중심삼고 움직이는 모든 것은 영원토록 계속되는 것을 알고 있사오니, 인간을 중심한 모든 것을 제거하여 주시옵고, 오직 당신을 중심한 것만이 저희의 마음동산에서 부터 나타나게 하여 주시옵기를 ,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님을 찾아 헤매는 간곡한 마음이 있으면 있을수록, 당신의 성상을 그리면 그릴수록, 당신의 마음 앞에 가까이 가기를 원하면 원할수록 아버님의 크신 사랑은 저희들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같이하신다는 사실을 저희들은 잊어버리는 때가 많사옵니다. 아버님은 저희가 바쁠 때나 급할 때를 막론하고 언제나 저희와 같이하신다는 사실을 잊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여기에 모인 당신의 아들 딸들 긍휼히 보시옵소서. 이들의 생명을 책임져 주시옵고, 이들의 소망을 책임져 주시옵소서. 당신의 소망을 저희들에게 허락하셨을진대 그 소망의 동산을 차지할 때까지 아버님과 더불어 싸워 나갈 수 있는 힘을 저희들에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원수와의 싸움에서 지치지 말게 보호하여 주시옵기를 , 사랑하는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제 여기 모인 당신의 아들 딸들을 긍휼히 보시옵소서. 사망의 세계를 헤쳐나오는 동안 저희의 손발은 상처를 입었사오니, 아버님이시여, 이 시간 품으시어 저희의 손길을 붙들어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님께서 저희를 모른다 하시면 저희와 같이 불쌍한 자가 없는 줄 알고 있사오니, 아버님, 이 시간 저희들 붙드시옵고 위로해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님의 명령이 아니고서는 생명조차도 포기할 수 없는 저희들 참다운 길이라 하옵기에 분부하시는 명령을 받들어 나왔사오니, 아버지, 버리지 마시옵고 이 시간 품어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모인 아들 딸들을 긍휼히 보시옵소서. 모든 것이 아버지가 아니면 안되고, 아버지의 뜻이 아니면 안 되고, 아버지의 역사가 아니면 안 된다는 것을 이들이 뼈살에 사무치게 느끼도록 하여 주시옵소서.

남기신 그 사업, 남기신 그 뜻, 남기신 그 소망을 일신에 지니고 끝까지 싸워 아버지의 아들 딸의 늠름한 모습을 나타낼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제 모인 당신의 아들 딸들 긍휼히 보시옵고, 저희의 일체를 맡겼사오니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허락하신 이 시간에 말씀을 전하겠사오니 당신의 뜻 가운데에서 전하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일체의 사탄 것은 제거하여 주시옵고, 당신의 심정에 동감하는 , 당신의 심정에 얽히는 , 당신의 심정에 화하는 이 한 시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지, 전하는 자의 마음이나 받는 자의 마음이 하나되어 이 한 시간만이라도 아버지의 사랑에 사무친 심정으로 아버지 앞에 경배드릴 수 있으며, 아버지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시간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나이다.

아버지, 이 시간도 외로운 식구들이 지방에 널리어 아버지 앞에 호소하고 있는 줄 알고 있사오니, 일률적인 역사로 보호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하올 때, 모든 말씀 주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6-43
말 씀
여러분들에게 잠깐 동안 말씀드리려 하는 제목은 ‘소망을 품고 지나가야 할 인생길’입니다. 이러한 제목을 가지고 잠깐 동안 말씀 드리겠습니다.

6-43
소망을 잃어버린 인간
인간이 타락한 연고로 하늘의 참다운 소망을 이루지 못하고, 하늘이 허락하셨던 그 소망을 잃어버린 채 지금까지 살아왔다는 것을 우리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어차피 태어난 그날부터 죽는 날까지 참다운 소망의 한길을 찾아서 가지 않으면 안 될 운명에 놓여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타락 전, 아담 해와에게 ‘땅에 충만하여 모든 만물을 주관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아담 해와에게 소망의 한 기준을 허락하신 것이었는 데, 인간시조 아담 해와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늘이 허락하였던 그 소망의 기준도 잃어버리고, 더 나아가서는 아담 해와가 완성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며 영원히 살 수 있는 행복의 동산, 즉 전체적인 이념의 세계까지도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참다운 소망의 길을 잃어버린 인간들은, 이 땅에 태어난 이후 잃어버린 그 소망의 길을 다시 찾기 위하여 온갖 곡절의 노정, 싸움의 일로를 걸어나오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우리들은 뼈저리게 체험하고 있는 바입니다.

세상에 태어나고 보니 소망이 없는 인간이 되어 있다는 사실을 지금까지 인간들은 알지 못하고 있었는 데, 하나님의 긍휼하신 은사로 말미암아 인간들에게 하나의 소망의 약속이 세워졌습니다. 이것은 인간들 앞에 그 무엇보다도 다행한 일이요, 복이라면 이 이상 더 복된 일이 없을 정도의 복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시기 전까지 우리 인간은 영원하신 하늘을 중심삼고 무한한 소망권내에서 영원한 생명을 구가하며 사는 존재가 되지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늘은 인간들이 그런 소망권내에서 살지 못하는 것을 긍휼히 보시고, 인간으로 하여금 비참한 생활 환경을 넘어서서 소망의 한길을 개척해 나갈 수 있도록 해 주시기 위해 무한히 애쓰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이 땅 위에 태어난 인간들 가운데는 소망을 갖고 사는 사람들이 있고, 소망을 갖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소망은 인간을 중심삼은 소망과 하늘을 중심삼은 소망의 두 가지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태어난 그날부터 어머니 품속이 그 무엇보다도 자기에게 제일 좋은 것으로 알고 자라나지만 자라면서 어머니의 품을 떠나게 되고, 다음에는 친구들을 사귀어 친구들이 제일 좋은 것으로 알고 지내지만 친구들과도 헤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들은 점점 자라면서 사랑하는 부모도 자기 소망의 전체가 못 되고, 사랑하는 부부도 자기의 소망의 전체가 못 되고, 더 나아가서는 사랑하는 자녀도 자기 소망의 전체가 못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인간들이 많은 것을 소망하지만 소망하는 그 마음이 사라지고 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가정에 대한 소망, 혹은 국가에 대한 소망, 더 나아가서는 세계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있지만 연령이 많아짐에 따라 그 소망하는 마음이 점점 약해져가는 것이 사실입니다. 땅 위에 살고 있는 인간들중에는 그 소망을 자기의 전체 소망으로서 자랑하고, 자기의 생명을 잃는 한이 있더라도 그것을 떠나서는 살 수 없다는 확고한 신념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인간은 그렇게 살다가 최후에는 죽음과 싸워서 넘어가지 않으면 안 되는 운명에 봉착하게 됩니다.

6-45
죽음을 이길 수 있는 소망
인간은 일생 동안 온갖 소망을 품고 살지만 나중에는 죽음에 부딪쳐 자기가 품었던 소망의 전부를 다 버린 채 가고 만다는 것입니다. 오늘도 살기를 바라고 내일도 살기를 바라며 새로운 소망을 찾아 헤매고 있으나, 죽음에 부딪치게 될 때에는 소망을 갖지 못한 채 절망하면서 최후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우리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인간이 자기를 중심삼고 볼 때는 소망을 가진 듯하나 죽음의 고개를 넘을 수 있는 소망을 갖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 소망을 갖지 못한 채 사라지고 있습니다. 이것을 일생의 본으로 알고 죽어갈 것이냐? 그렇지 않으면 죽음도 비웃고 넘어설 수 있는 하나의 소망을 찾아 그 소망을 즐기면서 갈 것이냐? 이것이 오늘날 땅 위에 살고 있는 인간들이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될 중요한 문제라고 봅니다.

오늘날 세상만사는 다 지나가 버리고 맙니다. 가정도 지나가고 국가도 지나가고 세계 혹은 어떤 주의도 다 지나가고 마는 데, 최후에 남아져야 할 것은 무엇이냐 하면, 죽음과 싸워 승리할 수 있는 하나의 소망일 것입니다. 우리에게 그런 소망이 없다면 우리는 인생의 패배자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있는 반면에, 태어나면서부터 세상 사람들이 바라는 일체의 소망을 거부하고, 생활하면서 인간적인 것 일체를 거부하고, 인간 세상의 소망이 아닌 새로운 하늘의 소망, 영원한 소망을 품고 사는 무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늘은 인간적인 소망을 중심삼고 살고 있는 지상의 인간으로 하여금 새로운 소망을 갖고 죽음의 고대도 넘을 수 있고, 영원한 세계를 흠모하면서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무한히 애쓰셨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땅 위의 어떤 소망을 품고 살 것이 아니라 죽음까지도 넘어설 수 있는 소망을 품고 영원한 소망의 세계를 꿈꾸며 생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위하여 우리들도 지금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6-46
예수께서 온갖 고난과 죽음을 이기실 수 있었던 이유
예수님은 인간들이 품고 있는 지상의 소망 일체를 어렸을 때부터 다 버리고 사신 분이었습니다. 어렸을 적부터 자기 가정도 버리고, 자기의 환경도 버리고, 또 자기의 교단도 버리고, 더 나아가서 자기의 국가까지 버릴 수 있는 소망, 어느 누가 움직일래야 움직일 수 없는 하늘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소망을 갖고 살았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어린 마음에 품었던 그 소망은 어떠한 어려운 환경에 부딪칠지라도 그것을 넘어설 수 있는 철두철미한 불변의 소망이었던 연고로, 꾸준히 자기 갈길을 달려갔다는 것을 우리들은 다시 한번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열 두 살 되던 해에 부모와 함께 예루살렘 성전에 갔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부모는 먼저 돌아오고 예수님만 그곳에 혼자 남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그의 부모가 예수님을 찾으려 왔을 때에, 예수님은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눅 2:49)”하고 도리어 부모를 책망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오직 아버지에 대한 소망만을 품었었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예수님께서 철이 들면 들수록 주위환경을 정리하기 위하여 무한히 애쓰셨다는 것을 알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하늘을 위한 신념을 가지셨습니다. 예수님이 가진 그 신념은 어느 누구도 갖지 못한 신념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새로운 소망의 왕국을, 새로운 소망의 세계를 건설하겠다는 신념을 가졌기 때문에 그의 나아가는 길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것들이 그가 품고 있던 소망을 제거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생에 기간에 요셉가정에서 목수의 일을 하셨는 데, 자유롭지 못한 환경, 내적으로 고충을 느끼는 환경에도 불구하고 물러서지 않고 그 자리를 극복해 나갔습니다. 하늘을 위하는 마음, 간곡한 소망을 품고 싸워 나가셨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30살이 되매 뜻을 품고, 새로운 각오와 결의를 하고, 모험의 길로 나서게 될 때에 주위 사람들은 예수님의 가는 길을 옹호하지 않았습니다. 가정은 가정대로 핍박하고, 교회는 교회대로 핍박하고, 사회는 사회대로 핍박했습니다. 어느 누구도 예수님을 돌아보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낙망하실 수밖에 없는 자리에서도 그 어려움을 뚫고 나온 것은, 어느 누구도 가지지 못한 신념, 즉 하나의 소망을 가지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러한 소망과 신념을 품고 어떠한 어려움도 극복하면서 모든 환경을 정리하셨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열 두 제자를 세웠으나 이리 몰리고 저리 몰리는 것은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나 이리 몰리고 저리 몰리면 몰릴수록, 어느 누구도 그의 심정을 알아주지 못하면 못할수록 그가 더 간절히 생각한 것은 무엇이뇨. 그것은 아버지의 나라였습니다. 아버지의 심정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많은 싸움과 어려움에 부딪쳤지만 그것들이 한번 품은 예수님의 그 소망의 심정을 물리쳐낼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면서부터 소망을 붙들고 끝까지 싸워 나갔습니다. 교단과 민족이 예수님을 배반하고 제자들까지도 배반했지만 소망을 버리지 않았고, 더 나아가서는 자신이 십자가에 달릴 것을 알면서도 소망을 붙들고 후퇴하지 않았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물론 살아 생전의 생명도 귀하지만 죽음 후의 영원한 생명에 대한 소망의 마음이 더 컸기에 십자가의 길도 늠름히 넘어갈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죽음을 통하여 하늘과 땅 앞에 소망의 전체를 실제적으로 증거하였던 것을 우리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마지막 십자가 도상에서 “할만 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 26:39)”라고 기도하신 예수께서는 그 마음에 죽음의 공포가 휩쓸면 휩쓸수록 소망의 날이 가까와온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철저히 느껴셨던 것입니다.

육신의 죽음을 넘고 난 후에는 새로운 소망의 세계가 그 앞에 전개될 것을 느끼며 그 세계를 동경하였다는 것입니다. 육신의 죽음 이후에 영원한 자유의 몸으로 부활하기를 소망하고 동경하였기 때문에, 죽은 후에 부활의 영광을 입을 수 있었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

6-48
소망에 대한 자각과 신념
이와 마찬가지로 오늘날 믿는 신도들은 땅 위에 남아질 수 있는 어떤 소망을 붙들고 사는 것보다도 영원한 세계에 남아질 수 있는 소망을 붙들고 사는 것이 얼마나 더 귀한가 하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기독교 신도들은 신앙생활을 통하여 중요시해야 할 그 영원한 소망을 중요시하지 않을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영원한 세계와 연결될 수 있는 소망을 붙들고 그 소망으로 인해 모든 것을 희생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야만 참다운 최후의 승리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뿐만이 아니라 과거의 모든 선지선열들도 죽음의 길을 개의치 않고 그 길을 갔습니다. 모든 사람이 비웃는 것도 개의치 않고 갔습니다. 핍박도 개의치 않고 갔습니다. 이와 같이 그들이 그 모든 어려움의 길을 걸어간 것은 그들이 어느 무엇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영원한 소망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세상적인 소망이 아니라 영원한 하늘을 통하여 자기 심중에 연결되어 들어오는 간절한 소망을 가졌던 연고로, 죽음의 길 핍박의 길 고난의 길을 개의치 않고 갔었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 믿는 신자들은 소망에 불타는 마음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죽은 후에 이루어질 소망만을 갖고 믿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 소망을 현실로 끌어들여 현실 생활권내에서 죽음을 각오하고 싸워 승리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러한 사람이 있다 할진대 그는 진정으로 승리한 신앙자라고 볼 수 있으며, 땅 위의 어떤 소망을 가진 자가 아니라 영원한 소망을 가진 자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만일 이런 소망이 거짓이라면, 수천 년 동안 하늘이 인간들에게 하늘 대한 소망을 가지라고 강조하였던 이 모든 사실들이 거짓이라면, 하늘은 말할 수 없이 거짓된 존재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인간을 기만하여도 이 이상 더 기만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인간들은 지금까지 마음으로 선한 것을 동경하고 더 좋은 것을 동경해 나왔습니다. 오랜 역사과정을 거쳐오면서 하늘을 잊지 못하고 그 마음으로 사모하며 몸으로 노력해 나왔습니다. 하늘은 누구나 다 동경해야 하는 것이요, 모든 인간이 지향해야 할 하나의 목표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수많은 인류들이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여 하늘을 소망의 기준으로 대하여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여러분에게는 하늘을 소망하는 사무친 마음이 환경을 뚫고 나가도록 충격을 주고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 하는 이것이 문제가 됩니다. 여러분 자신에게 주는 이런 충격의 횟수가 줄어든다 할진대, 여러분은 죽음에 봉착하여 쓰러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는 세상적인 모든 소망을 다 저버리고 영원하신 하늘의 소망을 붙들고 나아가야 되겠습니다. 세상을 중심한 일체의 소망을 밀어낼 수 있는 확고한 신념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그런 신념이 없다 할진대 여러분의 신앙생활은 정상적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고통의 길, 핍박의 길, 혹은 죽음의 길을 걷지 않는 다고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영원한 소망을 찾아 나서는 데 있어서, 내적 외적으로 어떠한 어려움이 부딪쳐 오더라도 이 소망과 바꿀 수 없다는 확고한 신념을 갖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어렸을 때 품은 뜻을, 싸우는 중에도, 싸우다가 쓰러지는 그자리에서도, 쓰러졌다가 부활한 후에도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가졌던 소망을 일생 동안 저버리지 않고 하늘을 붙들고 싸웠던 연고로, 예수님은 만민이 살 수 있는 소망의 길을 개척하게 되었고, 만민이 의지할 수 있는 소망의 중심존재로 세워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여러분들은 무엇을 소망해야 되겠습니까? 죽음의 고개를 넘어 부활의 영광을 차지하고 싶은 소망, 부활의 영광을 차지한 후에는 하나님의 참다운 아들 딸이 되고 싶은 소망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그 다음에는 하나님과 영원히 동거하고, 영원히 하나님을 위하여 살고, 하나님의 참다운 사랑을 찾고 싶은 소망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이런 소망이 이루어질 때까지는 무한한 십자가의 길이 있을지라도, 무한한 고통이 여러분을 휩쓸지라도 무한한 어려움의 고비고비가 있을지라도 거기에서 후퇴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당연히 이런 고통을 당할 것을 알고 그것을 몸으로 밀고 나갈 수 있는 확고한 소망을 가진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런 여러분이 되지 않는 다 할진대 여러분은 최후의 승리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6-50
소망과 실천생활
예수님께서 왔다 가신 이후 열 두 사도들도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로마에 들어가 무한한 학대를 받았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혔고, 톱에 쓸려 죽었으며, 혹은 기름가마에 넣어져 죽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소망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소망은 죽음보다 더 강했고, 어떠한 고난보다 더 강하였으며, 어떠한 무기보다 더 강했습니다. 어떠한 권세보다 더 강하였고, 세상에서 자랑하는 그 무엇보다도 강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무엇보다 강한 소망을 품고 걸어간 그 터전 위에서 기독교가 세워졌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도 새로운 소망을 품고, 뜻을 세계적으로 세워 나가지 않으면 안 될 입장에 처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자인한다 할진대, 여러분들은 자신들이 품고 있는 그 소망은 어떠한 힘보다도 강한 위력을 갖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될 것입니다. 죽음이 온다 할지라도 이것을 넘어설 수 있고, 전체가 사라지는 한이 있다 할지라도 이걸 넘어설 수 있는 위력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이런 변치 않는 소망의 주인공이 되어야 만이 여러분은 하늘 앞에 설 수 있으리라고 보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잘 믿는 다고 자기 자신을 자랑하는 사람들이 많았으나 그렇게 자랑하던 사람들도 일시에 사라져버리는 것을 왕왕 보아 왔습니다. 아무리 잘 믿는 다고 자랑한다 할지라도 최후의 죽음의 고개를 넘어 승리한 소망의 한 중심존재로 서지 못한다 할진대, 그는 결국 인생의 패배자가 되고 만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들이 자신의 모든 것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소망, 단 하나인 내 생명보다도 더 귀한 소망을 품고 하늘을 위하여 충성하는 모습들이 되어 교회를 이루고 민족을 이루었다 할진대, 소망이 없는 이 땅 위에서 그 교회와 민족을 통하여 새로운 소망을 찾는 일이 벌어질 것이며, 소망을 찾지 못하여 헤매던 만민이 그들로 말미암아 새로운 소망을 찾게 되리라는 것을 생각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길을 찾아나선 여러분 각자 각자의 심중에는 어느누구에게 자랑하지 않으면 안 될 소망, 만민 앞에 자랑하지 않으면 안될 소망, 어떠한 공포와 죽음 앞에서도 자랑하지 않으면 안 될 영원불변의 소망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런 소망을 가지고 있다는 신념 밑에서 어떠한 어려운 환경에 부딪친다 할지라도 그것을 늠름히, 기쁨으로써 넘어갈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런 사람이 된다 할진대, 여러분은 세상의 기쁨을 차지하는 사람이 아니라 영원한 하늘의 기쁨을 차지하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 찾아진 생명은 이 세상에서 살다가 죽는 생명이 아니라 영원히 살 수 있는 사람일 것입니다. 또한 그러한 소망을 찾은 사람이 되었다 할진대, 그는 영원하신 아버지의 아들 딸로서 만민 앞에 서기에 부족함이 없는 자격자라고 보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는 땅 위의 소망이 아닌, 죽음의 고개에 막혀지는 소망이 아니라 죽음의 고개를 박차고 넘어설 수 있는 소망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이런 소망을 우리 자체가 갖지 못한다 할진대, 죽음의 고개를 넘어 우리를 찾아오신 하늘의 섭리역사는 실패로 끝나고 말 것입니다.

하늘은 우리 인간이 죽음의 고개를 넘고 난 후에야 영원한 소망, 영원한 행복, 영원한 이념이 있다고 강조하십니다. 실상 하늘은 이 죽음의 고개를 통하여 우리를 찾아나오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죽음을 박차고 넘어설 수 있는 소망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이런 소망이 없으면 우리들은 이 길을 넘어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롬 8:18)”는 말을 하였던 것입니다. 바울도 역시 그 누구도 갖지 못한 철저한 소망의 심정에 사무쳐 어려운 환경을 홀로 책임지고 싸워 나갔던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들이 알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하늘도 인간들에게 이 소망을 찾아 주기 위하여 수천 년 동안 수많은 죽음의 고개를 개의치 않고 찾아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는 천적인 소망을 품고 죽음의 고개를 넘을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런 사람이 되지 못하면 영원한 하늘의 소망을 차지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 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세상 사람들이 한 말이 아니라 하늘을 대신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이것은 모순된 말씀 같으나 인간에게는 모순된 환경을 타개하고 나가야 할 생명의 노정이 남아 있는 연고로 예수는 이러한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6-52
최후로 남은 문제
이 말씀은 인간 세상의 소망을 소망으로 삼지 말고 영원한 소망을 소망으로 삼으라는 부탁의 말씀인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은 친히 그 길을 가셨습니다. 소망없는 이 땅 위에 소망을 세우고, 생명이 없던 이 땅 위에 생명의 길을 개척하고, 부활이 없던 이 땅 위에 부활의 길을 개척하신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그 소망을 어느 때까지 붙들고 나가야 하느뇨. 죽음의 길, 부활의 고개를 넘어서 아버지의 보좌 앞에 나아가 아버지의 참다운 사랑을 받을 때까지입니다. 여러분이 그때까지 그 소망을 붙들고 나갈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소망을 품고 그 소망을 바라보면서 결심하기는 쉬우나 소망을 붙들고 싸우기는 어려운 것입니다. 어떤 소망을 품기는 쉬우나 그 소망을 가지고 끝까지 살고, 만민이 그 소망을 갖고 살도록 그 소망의 일로를 개척하기 위하여 자신이 선두에 서서 죽는 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길을 늠름히 가셨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최후의 부활의 한날, 소망의 한날을 바라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바라고 있는 그 소망의 때는 만민이 즐길 수 있는 소망의 때로되 그 때는 쉽사리 다가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 소망은 죽음을 이긴 자만이 소유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소망은 하나님과 더불어 사탄과 싸운 자만이 차지할 것입니다. 그 소망은 하늘을 위하여, 하나님과 더불어 핍박을 받은 자라야만이 차지할 것입니다. 이런 때가 우리 앞에 온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에 이 생활환경을 넘어서고, 죽음의 공포까지도 넘어설 수 있는 간절한 마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그런 간절한 마음이 여러분에게서 우러나지 않는 다 할진대, 그 소망의 한날을 여러분의 생활권내에 끌어들여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다운 생활을 한다는 사람은 ‘내가 어떠한 모습으로 죽을 것인고’ 하는 것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7, 80년 살다가 죽는 그 시간에야 ‘나는 어떠한 모습으로 최후의 한날을 장식할 것이냐’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는 죽음의 자리에 가서 ‘다 이루었다’ ‘아버지여, 내 영을 받아 주시옵소서’라고 했습니다. 과연 그는 인생 행로에 있어서 승리하신 분이었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앞으로 어느 한날에 죽음을 당하게 되고, 죽음을 앞에 놓고 지난날을 회고해 보게 될 텐데, 그때 어떠한 한 마디의 말을 남기고 갈 것이냐 하는 것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이 길은 친구도 없는 길입니다. 사랑하는 부모도 없는 길이요, 사랑하는 형제도 없는 길이요, 사랑하는 부부, 사랑하는 자녀도 없는 길입니다. 오로지 혼자 가야 하는 길입니다. 다시 가볼 수도 없고, 갔다가 올 수도 없는 길, 한번 가면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길인데, 이 길을 가게 될 때에 여러분은 어떠한 마음을 갖고 갈 것인가. 여러분이 죽음에 봉착하는 그 순간에 그 죽음을 넘어설 수 있는 소망이 없다 할진대는 거기에서 마지막입니다.

오늘날까지 하나님의 뜻을 받들고 하나님의 뜻을 세워나온 수많은 사람들은 어떠한 사람들이었느냐 하면, 죽음의 길 앞에서 후퇴한 자들이 아니라 죽음을 비웃고 죽음을 늠름히 넘어선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한 사람들이 하늘의 길을 세워나왔다는 사실을 우리는 역사를 통하여 잘 아는 바입니다.

여러분은 각자 각자가 죽음에 봉착하게 되더라도 이것을 넘어설 수 있는 소망을 품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 길을 넘고 나면 나는 하늘 앞에 떳떳이 서게 될 것이라는 소망과, 마음으로 동경하던 세계 그 본향을 향해 기쁨으로 달음질 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이상세계를 소망하는 마음이 간절하여야만 죽음을 이길 수 있는 존재가 된다는 것을 여러분은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세상만사는 다 지나가버리고 맙니다. 사랑하는 부모, 사랑하는 아내, 사랑하는 모든 것은 다 지나가고 나중에는 죽음 앞에 봉착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 죽음까지도 지나가버리게 하는 승리적인 소망을 가진 자라야만이 하늘 앞에 설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땅 위에 살고 있는 인간들은 고통의 길이나 슬픔의 길을 원하지 않습니다. 어떤 기쁨의 장면이 있으면 그 기쁨의 장면이 지나가는 것을 애석하게 생각하고, 기쁜 사실이 있었다 할진대 그때를 그리는 것이 인간의 심성입니다.

6-54
소망을 성취한 하나님의 아들 딸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은 슬픔과 기쁨이 뒤넘이치고 있는 세상입니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이 모든 기쁨은 죽음과 더불어 사라지는 기쁨, 즉 죽음을 넘어서 남아질 수 있는 기쁨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고있습니다.

그러면 슬픔이 죽음과 더불어 사라지고, 즐거움도 죽음과 더불어 사라진다면, 인간이 기쁨을 찾고 더 좋은 것을 바라며 영원한 세계를 동경하는 그 마음도 죽음과 더불어 끝날 것이냐, 아닙니다. 마음이 그런 방향으로 움직이고 심정이 그런 방향으로 움직인다는 것은 그런 세계가 실제로 있다는 증거입니다.

인간은 영물인 고로 그 생명이 영원합니다. 사람들이 하늘 앞에 충성을 다하고, 하늘을 위하여 죽음의 길도 가고, 많은 사람이 싫다 하는 길도 소망을 품고 간 것은 보통사람들이 느끼지 못하는 것을 느꼈고, 보통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가치를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랬기에 죽음의 길도 갈 수 있었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동경하는 마음이 현실 생활에서 부딪치는 어떠한 역경과 어려움과 슬픔 혹은 죽음보다도 더 강하지 못하다 할진대, 여러분들은 죽음 앞에서 후회할 자요, 슬픔과 고통 앞에서 후퇴할 자밖에 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죽음의 고개를 넘어 영원한 세계를 가셨기에, 부활의 세계를 건설하였기에 오늘날 우리들도 어차피 죽음의 고개를 넘어가야 할 운명에 놓여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늘의 소망을 품고 사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뇨? 인간이 슬퍼하는 죽음의 고개도 기쁨으로 넘어설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하늘의 소망을 품는 자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죽음을 앞에 놓고 세상만사를 원망하고 탄식하는 사람이 되지 말고 기뻐하고 하늘 앞에 서서 자기의 죽음의 가치를 자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하늘은 이러한 소망의 아들 딸들을 찾고 계시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런 자리에 서서 하늘의 기쁨을 느낀 사람이 있다 할진대 그는 하나님이 사랑하지 않을래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서 하늘을 대하여 울부짖는 무리가 있다 할진대 하늘이 그 울부짖음에 응답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 자신은 그러한 심각한 자리에서 오늘날까지 어느 누구도 갖지 못했던 소망을 갖고 하늘 앞에 울부짖으며 호소한 때가 있었느냐?

그런 자리에서 사망의 권한을 물리치고, 승리의 기쁨을 느끼고, 영광을 하늘앞에 돌린 때가 있었느냐? 그러한 일을 이 육신이 죽기 전에 땅 위에서 체험하지 않는 다 할진대, 그는 하늘 앞에 설 수 있는 영원한 소망을 가진 자라고 볼 수 없을 것입니다.

예수는 그런 심정에 사무쳐 있었습니다. 그래서 뭇사람이 배척하는 자리, 원수들에 의해 죽음을 당하는 자리, 즉 세상에서 더 이상 말할 수 없는 불쌍한 처지에 봉착했을지라도 자신의 불쌍한 처지에 대한 안타까움이 아니라 하늘의 소망의 심정에 사무쳐서 원수를 대하여 복 빌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들은 깨닫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따라서 여러분들도 자신이 갖고 있는 소망은 억천만금을 주고도, 이 땅위의 어떠한 귀한 것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것이요, 내 생명을 희생시키고서라도 이루지 않으면 안 될 귀한 소망이라는 불타는 마음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이런 마음이 확실히 자리잡지 않는 다 할진대 하늘은 여러분을 믿어줄 수 없다는 것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런 심정이 되어 있지 않는 한 하늘은 여러분을 믿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늘은 세상만사는 다 버리면서까지 하늘의 소망을 붙들고자 하는 아들딸, 하늘이 믿고 영원히 사랑할 수 있는 아들 딸들을 수천 년 동안 찾아 나오셨습니다. 여러분들은 이것을 깨달으시고 이제 소망을 가지고 살고, 소망을 세우기 위하여 싸우고, 소망을 성취하기 위하여 죽음도 개의치 않고 나서는 사람들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6-56
기 도
아버님,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참을 아신 그날부터 가진 그의 소망은, 철이 들면 들수록 가정을 넘어 민족을 넘어 국가를 넘어 세계를 넘어 무한한 영계까지 넘어서 아버지와 일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고, 또 모든 것의 시작도 끝도 아버지와 더불어 움직여야 된다는 것을 아시고, 어려운 길, 슬픈 길, 십자가의 길을 개의치 않고 가셨다는 것을 저희들은 잘 알고 있사옵니다.

아버님,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어차피 지나가는 인생길을 걷고 있습니다. 저희의 눈 앞에 보이는 모든 것이 아름다운 것 같으되, 그것들은 한낱 저희와 더불어 지나가는 현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저희들이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저희가 좋다 하고, 저희가 믿고, 저희가 의지하던 세상의 일체는 저희 마음의 세계와 영원한 소망의 세계에는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사오니, 아버님이시여! 이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오직 아버님을 중심삼은 소망이 저희 생명의 전체가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고, 생애의 전부가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님을 위하고 아버님을 향한 소망이 저희의 어떠한 것보다도 더 귀중하고, 저희의 생명보다도 더 귀중하기에 그것을 붙들고 싸워나가는 자가 되지 아니하면 아버지의 아들 딸들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저희들은 알고 있사옵니다. 죽음의 고개까지도 비웃고 넘어설 수 있는 강한 소망을 저희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것이 소망으로서만 끝날 것이 아니라 이 소망에 불타는 충격의 마음이 더욱 강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그 마음과 몸이 이 길을 향하여 달음질칠 수 있는 아들 딸들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님을 위하려는 소망의 일념이 강한 자가 아니고는 , 죽음의 길까지 넘을 수 있는 소망을 가진 자가 아니고는 , 당신이 믿을 수 없다는 사실을 저희들이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저희들의 소망은 몇 년 동안 붙들고 나갈 소망이 아니라 영원토록 붙들고 나가야 할 소망인 것을 알고, 나아가 그 소망이 없으면 살 보람이 없다는 것을 아는 아들 딸들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님이시여! 저희가 아버지를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아버지가 그리워지는 소망의 심정, 아버님의 생명을 그리워하는 소망의 심정, 아버님의 사랑을 그리워하는 소망의 심정을 갖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그리하여 아버지의 약속과 더불어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아들 딸로 세워질 때까지 간절한 소망의 마음을 저희의 생애 노정에서, 생활에서 빼앗기지 말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수많은 사탄들은 이것을 빼앗기 위하여 저희들을 침범하고 있음을 알고 있사오니, 당신이 허락하신 소망의 마음을 끝까지 붙들고 싸워서 아버지 앞에 영광을 돌려드릴 수 있는 아들 딸들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최후에 남겨진 싸움터에서 아버님의 소망을 붙들고 사탄과 싸워 승리하여, 아버지 앞에 영광을 돌려 드릴 수 있는 아들 딸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면서, 모든 말씀 주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