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28 to 6-156: 하늘과 같이 깨어 있어야 할 때

하늘과 같이 깨어 있어야 할 때
1959.04.19 (일), 한국 전본부교회

6-128
하늘과 같이 깨어 있어야 할 때
[기 도(Ⅰ)]

아버님을 모셔야 할 본연의 아담 해와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지금까지의 역사는 슬픔의 노정이 되었다는 사실을 저희들은 알고 있사옵니다. 범죄한 아담 해와의 후손된 인간들이 남겨진 죄의 보따리를 짊어진 채 몰리고 쫓기고 시련당하면서 오늘날까지 나온 이 인류역사를 저희들이 분히 여길 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와 같은 자리에 떨어진 인간들을 하늘은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창조주로서의 책임이 있는 연고로 어느 시대, 어느 때를 개의치 않고 이 인간들을 다시 찾기 위해 수고의 역사노정을 거쳐 오셨다는 것을 저희들은 알고 있나이다.

오늘 이런 입장에 처해 있는 저희는 자신들을 놓고 탄식하는 동시에 아버지께서 무한한 수고와 고통의 길을 걸으신 것을 마음 아프게 생각할 줄 아는 모습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를 대해서는 면목없는 자신들이라는 것을 느끼고 역사적인 죄의 혈통을 이어받은 인간들에 대해서는 분히 여길 줄 아는 마음을 갖게 하여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의 마음에는 아직까지 죄악의 근성이 남아 있사오며, 저희의 몸은 아직까지 죄악의 쇠사슬에 매어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사옵니다. 긍휼의 아버지께서 힘과 능(能)으로 나타나 주시기를 고대하고 있사옵고, 참다운 아들 딸이 될 수 있기를 고대하고 있사옵니다. 아버님께서는 죄악의 철망을 끊고, 사무쳐 들어오는 죄악의 인연을 끊고 맞싸우는 모습이 되지 못한 채 실패하고 있는 아들 딸을 바라보시게 될 때 더욱 슬퍼하실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이제 마음 문을 열고 몸의 구속으로부터 벗어나서 새로운 마음, 새로운 몸을 갖추어 본연의 아버지를 내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하나의 모습이 나타나기를 고대하시는 아버지 앞에, ‘아버지, 당신의 뜻을 대신한 자체이오니 받으시옵소서’ 할 수 있는 아들 딸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러한 역사적인 승리자, 원수들과 싸워 승리하고 아버지의 슬픈 마음을 위로해 드릴 수 있는 아들 딸이 나타나는 것이 아버지의 소원인 것을 저희들이 알고 있사옵니다.

이제 저희 자신들이 그와 같은 자리에서 아버지를 내 아버지라 부를 수 있으며, 아버지를 위로해 드릴 수 있는 아들 딸이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것이 저희들의 소원이요 아버지의 소원인 것을 알고 있사오니, 저희들을 격려하시어서 그 자리까지 이끌어 주시옵소서. 이끌어 주신 아버지의 손길을 붙들고 어떠한 역경의 길도 가기를 원하는 간절한 마음을 가진 아들 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아버지, 이날에 저희를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를 찾아 주시옵소서. 저희의 마음과 몸에 사무친 모든 흑암을 제거시키시어서, 광명하신 아버지의 품에 안길 수 있는 이 한날이 되게 하여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이 민족을 축복하여 주시옵고, 이 인류를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특히 이날 외로운 심정을 품고 아버지 앞에 머리 숙인 식구들 위에, 아버지, 긍휼의 손길을 펴 주시어서 승리의 모습을 찾아서 자랑할 수 있게 해주시고, 이들이 드리는 경배와 송영에 하늘 땅이 함께 동하여 기뻐할 수 있는 시간으로 이끌어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일체를 아버지 앞에 맡기오니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주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나이다. 아멘.

6-130
기 도(Ⅱ)
거룩한 날을 맞이하여 준비없이 나온 몸이로되 염치불고하고 아버지의 존전에 나와 머리 숙였사오니, 사랑의 아버님, 긍휼의 아버님, 관용의 아버님이시여! 저희들을 용납하여 주시옵소서.

저희의 마음은 아버지의 마음을 닮고 싶사옵고, 저희의 몸은 아버지의 형상을 닮고 싶사옵니다. 알지 못하여 그 일을 이루지 못한 저희들이오니 마음으로 알려 주시옵고, 몸으로 체휼시켜 주시어서 당신의 성상을 본받은 모습으로 이 한 시간 아버지 앞에 엎드릴 수 있기를 간곡히 바라옵나이다.

아버님의 뜻 앞에 합당하지 못한 아들 딸이 있사올진대 친히 찾아오시어서 훈계하여 주시옵소서. 귀가 어둡고 눈이 어두워 당신의 말씀을 들을 줄 모르고, 당신의 모습을 바라볼 줄 모르는 저희들을 다시 듣게 하셔야 할, 다시 보게 하셔야 할 당신이 저희 이상 슬플 것이요, 저희 이상 애달플 것이며, 저희 이상 답답하시다는 것을 이 시간 마음으로 몸으로 체휼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께서는 저희를 대하여 수 천만 번 손짓을 하셨사오나 거기에 반응할 줄 몰랐던 저희들이옵고, 수 만번 부르셨사오나 들을 줄 몰랐던 저희들이오라, 어찌 아버지 앞에 설 면목이 있사오리까마는 , 그래도 오라 하시는 당신의 음성을 듣고, 그래도 손짓하시며 부르시는 당신이 계심을 알고 부복하였사옵니다. 불쌍한 자 중의 불쌍한 자요, 의지할 곳 없는 자 중의 의지할 곳 없는 자들인 것을 아버지 아실 줄 믿사오니, 추한 모습들이지만 저희들을 찾아오시어서 사랑의 손길로 붙들어 주셔야 되겠사옵니다. 저희들의 눈이 어둡고 저희들의 몸이 상처를 입어 생명의 본체를 알지 못하는 자리에 있을지라도, 아버님, 사랑으로 친히 품어 주시옵소서. 피곤한 발걸음을 멈추시고 상심된 마음을 기쁜 마음으로 돌이키시사 저희들을 위로해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슬픔을 남기고 있으면서도 아버지께 다시 슬픔을 느끼게 하는 것은 타락된 세상이기 때문임을 아옵니다. 사탄이 저희의 갈 길을 막고 있으며 사망의 권세로써 세상을 휩쓸고 있다는 것을 아시기 때문에 저희에게 책임을 맡기시지 않으시고 홀로 책임지시고 원수를 대해 싸워나오신 아버지, 그러하신 아버지를 공경하는 마음이 크면 클수록, 저희의 죄와 저희의 허물을 용서하고 싶으신 마음이 크실 것을 알고 있사오니, 그 심정을 통하여 이 시간 다시 한번 저희들을 찾아 주시옵소서.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참다운 생명의 감정을 갖고 아버님께 경배드리는 모습이 되어야 할 땅위의 인간들이 그와 같은 모습이 되지 못한 것을 용납하여 주시옵고, 아버지를 부르고 싶은 마음, 아버지를 따르고 싶은 마음, 아버지를 위하고 싶은 마음을 가진 저희들이지만 무한히 슬픈 사정이 있음을, 아버지, 알아 주시옵소서.

이제 이 한 시간, 저희들 역사적인 죄상을 염려하고, 시대적인 악을 염려하고, 미래에 남아질 죄악의 조건들을 염려하면서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하여 주시옵고, 부족한 모습들이나마 아버님을 모셔놓고 머리 숙여 경배드릴 수 있게 하여 주시옵길,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죄인된 것을 뉘우치고 눈물지으며, 통분한 심정으로 눈물 흘리며 간곡한 심정으로 회개하는 마음을 갖게 될 때 아버님께서는 6천년간 용납하여 주셨사옵고, 오늘 이 시간도 긍휼의 심정으로 대하고자 하신다는 것을 알고 있사오니, 울고 있는 저희의 마음문을 두드려 주시옵소서. 죄악에 사무친 지금까지의 모든 주의 주장과 관념을 제거시켜 주시어서 저희의 마음과 몸으로 아버지의 생명을 감촉하는 이 시간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지금까지 느끼지 못한 하늘의 사랑의 은사, 하늘의 사랑의 심정, 하늘의 간곡한 곡절의 심정을 체휼하여 저희가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를 수 있고, 아버지께서 저희들을 아들 딸이라 부를 수 있는 인연이 맺어지는 이 시간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아버님, 삼천리 반도에 살고 있는 3천만 민족을 긍휼히 여겨 주시옵소서. 이들을 염려하는 참다운 사람들은 많지 않은 것 같사옵고, 이들을 위하여 눈물 흘리고 땀 흘리는 무리는 심히도 적은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아버님께서 긍휼히 여겨 주시지 않으면 이 민족은 머물 곳이 없사옵고, 의지할 곳이 없사오며, 바라볼 곳도 없사오니, 아버님이시여! 불쌍한 이 민족을 돌보아 주시옵소서. 간절히 바라옵니다.

이 민족 앞에 새로운 약속을 예고하시어서 생명의 움직임을 일으키려 하시는 아버지의 수고가 있다는 것을 이 시간 모인 저희들은 알고 있나이다. 오늘까지 이 민족을 살리기 위한 천적인 섭리를 받들어 나온 저희 자신들의 부족함을 이 시간 아버지 앞에 아뢰지 않을 수 없사오니, 부족한 저희들을 권고하여 주시옵소서. 새로운 생명의 움직임을 일으키고 새로운 소망의 동산을 건설하는 책임을 맡기고도 남을 수 있는 하늘의 아들 딸이 되게, 아버지, 격려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니다.

저희 자신들이 부족하여 사망의 그늘에서 신음하고 사탄의 철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할진대, 아버지께서 은혜의 손길을 펴시어서 저희를 이끌어 주시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 시간 수많은 인류가 당신의 품이 그리워 경배드리고 있는 줄 알고 있사오니 그들 앞에 아버지, 모든 것을 보이시옵소서. 섭리의 뜻을 예고시켜 주시옵고, 그 뜻을 이룰 수 있게 하여 주시옵길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 시간 수많은 외로운 아들 딸들이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호소하고 있는 줄 아오니, 그런 심정으로 아버지께 간구하는 곳곳마다 사랑의 손길을 펴 주시고, 아버지, 현현하심의 영광을 그들 앞에 보여 주시옵길 간절히 부탁하옵니다.

남은 시간 아버지 앞에 맡기오니, 아버지로 시작하여 아버지로 끝을 맺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의 생명의 기쁨을 이 시간 체휼하여 아버지 앞에 영광을 돌릴 수 있게 친히 주관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말씀 주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니다. 아멘.

6-132
기 도(Ⅲ)
아버님! 고요히 아버지로부터 그에 속한 모든 것들에 대해 가르침 받던 그 시간이 그립사옵고, 그의 영광을 황홀하게 바라보면서 땅에 머물기를 원치 않았던 때가 그립사옵니다. 깊은 사랑에 잠기어 아버님의 심정을 체휼할 때 하늘 땅이 환희하던 그 시간도 그립사옵니다.

아버님께서는 고요한 가운데 현현하시기를 즐겨하셨사옵고, 어려운 가운데에 나타나시기를 개의치 않으셨사옵니다. 싸움터에서도 친히 저희들과 같이 싸워 주셨사옵고, 낙망의 자리에서도 저희들과 함께 하여 주신 역사성을 띤 아버지이셨음을 저희들이 다시 깨닫게 될 때에, 언제나 저희와 함께 계셨사옵고, 언제나 저희와 같이 싸워 주셨고, 언제나 저희와 더불어 살기를 고대하시던 아버지이심을 이 시간 생각하게 될 때에, 땅에 살면서도 땅을 배척하고 거부하기를 즐기던 지난 날의 신앙노정을 뉘우치게 하여 주시옵소서.

초연한 자리에서 즐겨 모시던 아버지는 영광의 아버지셨사오나, 땅 위에 나타나신 아버님은 불쌍하고, 초췌하고, 서글픈 아버지이신 것을 알았사옵니다. 또 그러한 모습으로 저희를 대하여 오신 것을 역사과정을 통하여 배워 알았사옵니다.

이제 저희들, 영광 가운데 나타나신 아버지를 모시고 즐거워 할 것이 아니라, 땅 위에 상처 입으시고 어려움에 시달리시며 참다운 아들을 찾기에 허덕이신 그 아버지를 모시고 즐거워 할 수 있는 그런 영광의 자리에 서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그러한 자리에서 아버님을 모시고자 원할진대 먼저 눈물의 길을 가야할 것이요, 가시밭길을 걸어야 할 것이요, 십자가의 고난길을 넘어야 된다는 것을 아옵니다. 그래야만 아버지가 계신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을 아옵니다. 저희에게 이런 서글픈 신앙노정이 남아 있는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사랑하는 아버님! 사랑하는 아버님! 이 시간 저희가 자탄하는 자리에 있사옵니까? 자기를 붙들고 슬퍼하는 자리에 머물러 있사옵니까? 혹은 민족을 붙들고 슬퍼하는 자리에 있사옵니까? 혹은 세계와 하늘을 붙들고 슬퍼하는 자리에 머물러 있사옵니까?

이제 저희들은 자기 정체를 명시하여, 바라보고 계시는 곳이 어디인가를 스스로 깨닫고 하늘의 소원이 무엇인가 염려하면서 머리 숙일 줄 아는 아들 딸들이 되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알고 있사오니, 이제 아버지 앞에 서기에 자신이 없거든 마음으로라도 회개하고, 아버지 앞에 나서기에 부족함이 있다 할진대 스스로 정결히 하는 모습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이시여! 이와 같은 무리를 다시 재촉하시어 천성의 길을 예고시키지 않으면 안 될 당신의 사정이 남아 있는 것을 땅 위에 인간들은 모르고 있사옵니다. 나타날래야 나타날 수 없는 환경을 대하셔야 하는 아버지이시옵고, 아버지의 심정 앞에 이끌릴래야 이끌릴 수 없는 이 땅의 환경이 오나, 인간을 세우셔서 이끌 수 없는 환경을 이끌어야 할 책임을 지고 계신 당신의 사정을 알았사옵니다.

지금까지 이런 사명을 갖고 나타난 수많은 선지자들을 마음대로 쫓아버리고, 마음대로 몰아내고, 마음대로 핍박하고, 마음대로 죽여버리던 죄악의 혈통을 이어받은 저희들이 이제 어떠한 천적인 책임을 감당하고자 어떤 결심을 갖고 있는 가 스스로 뉘우치게 하여 주시오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하늘은 예고하시기를 지금은 자다가 깰 때라고 하셨습니다. 어두운 밤에 광명한 등불을 들어야 할 때라는 것을 예고하셨사온데, 저희의 마음이 어두움에 잠겨 있사옵니까? 저희의 몸이 사망의 철망에 매여 있사옵니까? 이것을 끊고 헤치고 나서서, 하늘을 향하여 달음질칠 수 있으며, 하늘을 대신하여 싸울 수 있으며, 하늘을 대신하여 책임질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아버지라 부를 수 있고, 아버지께서 오시기를 고대하는 아들 딸이 되지 않으면 안될 것을 알고 있사오니, 아버지 뜻앞에 서기에 부족한 자들이 있사올진대, 아버지, 이 시간 격려해 주시옵소서.

때와 시기가 촉박한 것을 알게 해 주시고, 사망의 그늘에 휩쓸려 심판받는 자들이 되지 말고, 생명의 부르심에 이끌려 아버지 품을 찾아서, 자유의 동산을 향하여 그 몸이 찢기는 한이 있다 할지라도, 죽는 한이 있다 할지라도 달음질쳐 갈 줄 아는 아들 딸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천성을 바라보게 될 때에 슬픈 일이 너무도 많은 것을 알고 땅 위의 저희들은 슬퍼하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아버님, 저희가 가야 할 남아진 길이 피눈물로 연속되는 길인 것을 알 때, 저희들, 주저하고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사오나, 이런 환경에 처한 저희를 오라 하시는 아버지의 마음은 더 슬프고 안타까운 것을 알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이날은 부활주일을 지난 첫날이오니 이제 마음의 등불을 켜게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의 몸과 마음에 아버님의 영원한 생명의 진액을 받지 않으면 안 되겠사오니, 아버님이시여! 새로운 이 한 시간에 생명의 역사를 일으켜 주시옵고, 재창조의 역사를 일으켜 주시옵소서.

사망권에 휩쓸려 자탄하는 자들이 있사옵니까? 아버님의 부르짖으시는 음성에 스스로 회개하는 마음을 일으켜 존엄하신 아버지 앞에 자복할 수 있게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사망의 쓴 뿌리가 몸 마음에 남아 있어서 아버님을 배반하려는 심정을 갖고 있는 자가 있사올진대 이것을 제거시켜 주시옵고, 부활의 권한, 생명의 권한으로 역사하여 주시옵기를 ,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여러 모양의 사람들이 모였사오니 하나의 마음이 되게 하여 주시옵고, 하나의 심정으로 화할 수 있는 이 시간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새로운 마음으로 활동할 수 있는 이 시간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억만 사탄들은 이 시간도 저희들을 노리고 있사오니 사탄이 일체 침범하지 못하게 하여 주시옵고, 천상에 있는 천천만 성도들을 동원시키고 참다운 심정을 갖고 하늘을 향해 호소하는 지상의 성도들을 움직여 낼 수 있는 예배가 되게 해주시고, 하늘 땅의 인연을 소개할 수 있는 이 시간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 아버님, 간절히 부탁하고 원하옵니다.

이제 많은 말씀을 원치 않사옵니다. 허락하시기를 더디하시는 아버지의 심정을 알았사옵고, 주저하시는 아버지의 마음을 알았사오니, 아버님, 이제 저희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전하고자 하는 마음을 알아 주시옵고 받기를 고대하는 아들 딸들의 마음을 알아 주셔서, 모든 것이 아버님으로부터 연유하여 전하는 자의 마음이나 받는 자의 마음이 하나되어, 이 한 시간 아버님의 영광으로 모실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고 원하면서, 모든 말씀 주의 이름으로 아뢰었나이다. 아멘.

6-135
말 씀
“그런 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고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마 25:13)”는 말씀을 중심해서 지금부터 드리려는 말씀의 제목은 ‘하늘과 같이 깨어 있어야 할 때’ 입니다. ‘하늘과 같이 깨어 있어야 할 때’ 이러한 제목으로 잠깐 동안 말씀드리겠습니다.

여러분 자신을 이 시간 아버지 앞에 내놓고 여러분의 마음과 몸 가운데 깨어 있는 부분이 어느 만큼인가 하는 것을 생각하면서, 또 아버지께서 여러분을 깨우치시기 위해 어떠한 심정과 어떠한 사정을 가지고 계실 것인가 하는 것을 마음으로 느끼면서 이 시간 말씀을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6-136
깨어 계신 하나님
가정이면 가정, 또 사회면 사회, 혹은 어떤 민족이나 국가의 흥망사를 살펴 볼 때 깨어 있지 못한 사회나, 민족이나, 국가는 망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인간에게 지극히 귀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깨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을 바라며 깨어 있어야 할 것인가. 살고 있는 현실을 바라보며 깨어 있을 것이 아니라 앞으로 올 때를 바라보며 깨어 있어야 됩니다. 즉, 갈급히 소망하는 심정을 가진 사람이 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되는 날에는 소망의 사람, 혹은 소망의 나라의 사람으로서 남아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과거 역사에서 나라를 사랑했던 사람은 그 나라가 어두움 가운데 잠기고 사망권내로 휩쓸려 들어갈 때 국민들에게 미래의 한 때를 바라보며 깨어 있으라고 외쳤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늘은 우리를 위하여 얼마만큼 수고하셨으며, 우리를 위하여 얼마만큼 깨어 계셨던가? 그것에 대해 우리가 아는 범위는 자기가 수고한 만큼, 자기가 깨어나 있었던 만큼밖에는 알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하늘이 여러분이 알고 있는 만큼 깨어서 인간을 대해 역사하셨느냐 하면 아닙니다. 하늘은 아담 해와를 창조하신 이후 지금까지 창조이념에 대한 소망을 잊으신 적이 없었습니다. 어느 한 날도 쉬는 날이 없었고, 조는 시간이 없었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에덴동산에 아담 해와를 지어 놓고 그들이 자라는 것을 바라보시는 것으로써 하늘은 만족하지 않으셨습니다. 아담 해와의 내일, 즉 미래를 염려하시며 깨어 있는 입장에서 자라는 아담 해와를 바라보셨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늘은 아담 해와로부터 지금까지 역사상의 후손들에 대해서도 미래의 입장에서, 깨어 있는 입장에서 그들을 바라보셨다는 것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그러면 무엇이 타락이었던가? 깨어 계신 하늘의 심정을 모르고 하늘의 사정을 모르고 하늘의 소원을 모른 것이 타락이었습니다. 깨어 계시는 하늘의 심정! 깨어 계셔서 자신들과 인연을 맺고자 하시는 하늘의 심정! 미래의 자신들과 함께 영광을 누리시려는 하늘의 그 소원! 그 소망을 잃어버린 것이 타락이었습니다. 그래서 타락한 인간은 하나님께서 바라셨던 소망의 한 날을 보지 못하게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또 하나님의 깊은 사정과 인연을 맺지 못했고, 더 나아가 지금까지 우리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의 품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하늘은 당신 품을 떠나게 된 인간들을 염려하시고 다시 찾으시기 위해 섭리를 해 오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구원섭리입니다. 하늘의 심정과 하늘의 사정과 하늘의 소원과 아무런 관계를 갖지 못하고 있는 오늘의 나 한 자체를 들어 다시 한번 회상해 볼 때, 아버지의 심정과 아버지의 사정과 아버지의 소원 앞에 보답해 들리 수 있는 어떠한 무엇도 가지고 있지 못한 우리들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담 해와가 떨어질까봐 염려하시던 하늘은 떨어져버린 그들을 대해 다시 염려하는 심정을 품으셨습니다. 그리고 사탄 품, 곧 사망권에 떨어진 그들을 다시 구원하려 하신 하늘이었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떨어질까봐 염려하셨고, 떨어지자 떨어진 인간을 염려하셨고, 죽음의 자리에 있는 아담 해와를 다시 살려주시고 싶은 심정을 가하시어 6천년이란 기나긴 세월을 한시도 조는 일 없이 하루같이 우리 인간을 찾아오셨다는 사실을 이 한 시간 마음으로 느낄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6-137
새로운 소망과 심정적 충격을 고대하는 인류
인간의 욕망은 무엇인가? 자기의 가정을 넘어, 민족을 넘어, 국가를 넘어 세계를 제패하고 싶은 욕망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그러한 자기의 욕망을 성취하였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심정과 하나님의 사정과 하나님의 소원과 일치되는 자리에 서지 못한다면, 하나님의 심정과 사정과 하나님의 소원을 소유하는 자리에 들어가지 못한다면 하늘 앞에 설 수 없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역사노정을 헤아려 보면 개인, 가정, 국가, 세계는 땅덩어리 하나를 놓고 소망을 찾기 위하여 허덕여 왔습니다. 지금도 그 무엇인지 모르게 새로운 소망을 찾아 허덕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자신이 지금까지 살아온 것으로는 새로운 소망을 찾을 수 없습니다. 즉 역사적인 인연을 통한 일체의 관념이나 주의를 가지고는 새로운 소망을 찾아 나갈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예상해야 되겠습니다.

그래도 인간들은 소망을 품고 천륜과 인륜이 같은 입장에서 인연맺어질 수 있는 하나의 사정을 찾고 있는 것입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모든 사람이 하나의 심정을 근거로 새로운 이념 세계를 건설하는 사정을 찾고 있는 데, 그런 사정은 아직까지 인류 역사상에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종족을 초월하고, 동서문화를 초월하여 심정적으로 느끼고 생활적으로 얼크러지고, 공평하고 일률적인 사정으로 얼크러져야 하는 데, 그러한 사정을 인간은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들은 무엇인지 모르게 마음이 클클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무엇인지 모르는 자극적인 충격을 고대하고 있습니다. 무엇인지 모르는 심정의 새로운 충격을 고대하고 있으나 아직까지 어떠한 충격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소망을 찾고 사랑을 통한 인연을 맺었다 할지라도 심정적인 합일점을 찾지 못한다 할진대 어느 때인가는 분산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인류의 역사노정은 무엇을 나타내는 것이냐 하면 하늘이 인간시조를 대하시던 그 천적인 내용입니다. 이것을 인류 앞에 보여주시기 위한 것이 역사의 실상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지금을 끝날이라고 이구동성으로 말을 하고 있는 데, 지금까지 인간들이 소망했던 그 소망은 물러가야 할 것이며, 지금까지의 인간들의 사정도 영원히 인연맺을 수 없는 것이기에 물러가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할 때가 온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심정을 중심삼은 가정적인 기반이나 사회적인 기반 혹은 국가적인 기반이나 세계적인 기반이 변할래야 변할 수 없는 하나의 천주적인 중심, 어느 누구도 움직여 낼 수 없는 하나의 반석과 같은 중심이 못 되는 연고로 그것들은 어차피 무너지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마음들이 동요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인간의 마음의 동요가 크면 클수록, 조급함을 느끼면 느낄수록 더 큰 심정의 때는 올 것이고, 그때가 오면 인류에게 소망이 있을 것입니다.

만일 그런 때가 찾아오지 않는 다 할진대, 인류는 절망으로 시작하여 절망으로 종말을 고할 것입니다. 그러나 인류에 대한 하늘의 뜻이 있다 할진대 그것은 소망으로 출발하여 소망으로 종말지어야 할 뜻이고, 또 하늘에게는 그 뜻을 이루어야 할 책임이 있는 연고로 기필코 역사의 목적이 이루어지는 때가 오고야 말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인간들은 모든 동기가 인간으로부터 시작된 줄 알고 있지만 아니올시다. 오늘의 사회와 국가 혹은 세계도 어떠한 역사적인 인연을 기반으로 하여 되어진 줄 알고 있지만 그것이 아닙니다. 역사적인 인연이라는 것은 인간으로부터 시작된 인연이 아닙니다. 그것은 더 고차적인 인연과 더 고차적인 소망이 이루어질 때까지 움직여 나오는 역사의 궤도에 보조를 맞추어 나온 것에 지나지 않는 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6-139
역사를 대하는 바른 자세
이제 잠에서 깰 때라고 하였는 데, 밤에 자다 깨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시대 시대마다 예고하는 말입니다. 그리고 끝날에 이루어야 할 어떠한 이념적인 세계가 있다 할진대, 그 세계를 찾아가는 인간들 앞에 시대 시대마다 예고하는 말씀입니다.

지금 여러분에게는 자기를 내세우고 자기를 주장하고 전체를 통솔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그 마음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 가?

여러분은 잠 가운데 빠져 있습니다. 오늘날 인류는 잠 가운데 빠져 있습니다. 개인도 그렇고, 가정도 그렇고, 사회, 국가, 세계 더 나아가서는 영계까지도 소망의 한 때를 맞지 못한 채 깊은 잠 가운데 빠져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적인 인연이 이 시대에서 이대로 종결되어질 것이 아니라, 다시 한 단계를 넘어서 새로운 무엇으로 종결되어야 한다는 것을 어느 누구나 공통적으로 느낀다 할진대는 그 새로운 무엇이 문제일 것입니다.

그런데 과거의 역사를 살펴볼 때 전통적인 습관만을 절대적으로 주장하던 민족은 역사에서 밀려 나갔습니다. 우리는 옛날 골동품같은 시대에 가졌던 생각들을 버려야 되겠습니다. 오늘날 인간들은 복귀노정을 걷고 있는 연고로 역사노정의 유물을 중요시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 말은, 인간 세상에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마음이 반영되어 나타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현실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골동품적인 옛 사상으로 만족할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하여 본연의 이념에 대한 귀한 가치를 알고 자극을 받아 그 귀한 이념에 자기 일신을 맡기고자 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그런 자만이 태초부터 하나님의 심정 속에 감추어져 있던 이상을 회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끝날에 당도한 우리들은 역사를 돌아보며 무엇을 찾을 것이 아니라 역사를 결산하여 하나님 속에 숨겨져 있는 전체이념을 자신을 통해 재현시켜 새로운 것으로 보여질 수 있는 , 그 한 시간을 찾아야 하겠습니다. 그 한 시간이야말로 하나님도 깨는 시간이요, 땅 위의 인간들도 깨는 시간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복귀의 시대가 다 지나간 때에는 새것을 찾아 나서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시대가 끝날이라 할진대, 이 시대에 살고 있는 청년 남녀들은 사람들이 지금까지 귀하다고 했던 모든 것들을 일소해 버리고 새로운 것을 찾아 허덕이는 간곡한 마음이 싹터야만 깨어난 새 시대의 역군들이 될 수 있습니다. 이 끝날에 새것을 찾아 눈을 뜨고 허덕이는 무리, 그런 무리에게는 미래의 소망과 접할 수 있는 길이 가까워 올 것이요, 미래의 사정과 인연맺을 수 있을 것이요, 역사적인 종말시대에 나타나는 천적인 심정과 인연을 맺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나는 어떠한 자리에 서 있는 가 하는 것입니다.

타락한 세상, 사망의 권세가 휩쓰는 땅, 선의 피를 빨아먹는 땅, 민족이 민족을 잡아먹고, 국가가 국가를 잡아먹는 역사적인 인연을 지니고 있는 땅에 서 있는 것은 아닌가? 그렇다면 새로운 소망의 심정세계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너는 너 갈 데로 가고 나는 내 갈 길을 가야 되겠다는 확실한 하나의 한계점이 여러분 자신에게 설정되지 않는 다 할진대는 , 사망의 물결에 휩쓸려 나오던 역사의 흐름이 여러분으로 하여금 새로운 시대와 인연맺지 못하게 하고 사망세계로 몰아낼 것입니다. 따라서 지금까지는 이러한 역사의 흐름을 붙들고 나와야 했지만 끝날의 심판대 앞에서는 이것을 넘어서야 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예수께서 30여년의 생애를 마치고 십자가에 돌아가신 후에 부활의 승리를 맞이하게 될 때에, 예수 자신이 30여 년의 생활을 분히 여겼다거나 혹은 자신을 가지고 있었다거나 자기 자신을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여겼던들, 하늘이 부활시키려 하셨어도 부활하실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부활하실 수 있었던 것은 당시까지 살아온 생애노정의 일체를 미련없이 청산하고 새로운 소망에 불탔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의 심정과 사정과 소원이 땅의 것이 아닌 하늘 것으로 교체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순간 부활의 은사를 입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여러분들도 이제 그러한 교체 시기를 맞을 것인데, 그날을 가까이 바라보고 있는 여러분들은 확실한 심적 각오를 갖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어떠한 모임에 가담했다 하더라도 그 모임의 대표자를 근거로 해서 그런 각오를 가질 것이 아니라, 그 모임을 통하여 여러분 자신들이 심정적 기준을 갖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자라야만 깰 수 있는 자연적인 환경을 가진 자라고 볼 수 있습니다.

6-141
우리가 청산해야 할 것
그러면 이제 여러분이 그러한 입장에 나아가야 할텐데, 오늘의 여러분들이 그러한 입장에 나갈래야 나갈 도리가 없는 입장에 서 있는 것을 자인한다 할진대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여기에서 무엇을 청산해야 할 것인가. 우선 여러분은 인간 끼리끼리의 인연과, 인간 끼리끼리의 사정과, 인간 끼리끼리의 소원을 근거로 하여 가지고는 도저히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무엇과 인연을 맺어서 넘어가야 될 것인가. 슬픈 인류역사를 논의만 해서는 안 됩니다. 섭리역사의 슬픔과 하늘의 슬픔을 청산해야 합니다. 그러기 전에는 이 모든 것을 청산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오늘까지의 인류역사는 하늘이 소망을 두시고 맞추어 놓으셨던 뜻의 프로 앞에 억천만번 배반한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피살에 사무치게 느낄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런 마음이 있어야 죄악의 현실을 증오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지고 슬픈 인류역사를 끊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자신의 행동을 놓고 오늘 나의 이 행동은 타락한 인류역사의 그 무엇을 증거하는 행동인가 하는 것을 생각할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내가 취한 이 행동이 천적인 프로를 세워 가지고 섭리해 나오시는 하늘의 행동과 얼마만큼 배치되는 가 하는 것을 생각해 볼 줄 알아야 하고, 이 차이에서 오는 충격을 느낄 줄 알아야 겠습니다.

나의 이 행동이 하나님의 심정과, 하나님의 사정과, 하나님의 소원을 배반하는 것이요, 하늘의 심중에 피눈물을 가중시킨 행동이라는 것을 느낄 때 비로소 하늘을 대하는 자신의 심정이 땅을 대하는 심정보다 몇 백만배 크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사망세계에 대한 일체의 미련은 끊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창세 이후 타락의 역사를 봐 오신 하늘은 우리가 보지 못한 꼴을 보셨을 것이요, 우리가 당하지 못한 일을 당하셨을 것이요, 우리가 헤아릴 수 없는 슬픔과 분함과 원통함을 느끼셨을 것입니다.

때로는 참다운 아들 딸들을 보내셨으나 그들을 죽이는 인간들을 바라보면서도 참으신 아버지! 그 아버지는 어느 한 날도 쉬지 못하시고 깨어 우리를 바라보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들은 느낄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이 그러한 심정에 어리어 산다 할진대, 여러분은 심판의 자리에 나가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의 한 몸은 지극히 작은 몸이로되 역사는 이 한 몸을 향하여 호소하고 있습니다. 시대는 이 한 자체를 향하여 호소하고 있습니다.

세계는 이 한 자체를 향하여 호소하고 있습니다. 하늘은 이 한 자체를 향하여 오라고 부르짖고 계십니다.

이러한 기로에 서 있는 여러분의 한 자체! 기필코 바른 방향을 잡아가야 할 때가 왔고 흑암에 싸인 환경을 정리하고 나서야 할 때가 왔는 데, 여러분은 가야 할 방향이 어디이며 흑암의 환경을 정리해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한 여러분 자체들을 바라보고 계시는 하늘의 심정은, 옛날 에덴 동산에서 아담 해와가 타락할까봐 염려하시던 그 마음보다, 타락한 아담 해와를 바라보시던 그 마음보다, 타락한 인간을 살리기 위해 6천년 동안 수고해 나오신 그 마음보다 더 안타까우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여러분 한 자체가 하늘을 배반하는 날에는 하늘 땅에 슬픔을 가중시킨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6-143
인간들을 깨우치려 했던 선조들의 수고
이제 우리는 깨어나야 되겠습니다. 깨어나야만 되겠습니다. 잠자던 눈을 떠야 되겠습니다. 움직이던 우리의 행동을 돌이켜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이러한 입장에 있는 우리가 깨어나기 위해서는 무엇을 중심삼고 움직여야 깨어날 수 있는 가. 여러분의 생애노정에 쌓은 어떠한 공적이 아닙니다. 그것 가지고는 역사적인 인연에서 벗어날 수 없어요. 지금까지의 역사는 타락한 인간의 역사요, 심판받을 인연세계에 머물러 있는 역사인 연고로 이 땅 위에 남겨진 인연을 가지고 혹은 어떤 실적을 가지고는 돌이킬 수 없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어떤 권세를 가지고 돌이킬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소유했던 일체, 어떤 영광의 조건을 가지고도 돌이킬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처지에 우리는 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돌이키기 위해서는 새로운 각성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새로운 각성을 하고 나서려면 인간들이 갖고 있는 마음이나 인간들이 갖고 있는 심정, 혹은 인간들의 인연, 인간들의 소원으로만은 안 됩니다.

그러면 가져야 될 그 하나의 마음은 무엇인가?

우리 것 이외의 역사, 즉 우리가 살아온 역사 이외의 역사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 말이 무슨 말이냐 하면, 오늘날 인류가 알고 있는 역사 이외의 역사가 있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모르는 역사가 있었으니 우리가 모르는 역사적인 심정도 있었고, 우리가 모르는 역사적인 사정도 있었고, 우리가 모르는 역사적인 소원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6천년 전에도 그러한 내용이 있었고, 4천년 전에도 그런 내용이 있었고, 2천년전 예수 당시에도 그런 내용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늘을 대신하여 왔다 갔던 사람들, 그 시대를 깨우치기 위해 왔다 갔던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뇨. 노아를 두고 말하면, 노아는 타락이후 1, 600년 동안 흘러온 인간들의 역사적인 심정 말고, 인간들의 역사적인 사정 말고, 인간들이 바라던 역사적인 소원 말고, 다른 역사적인 심정과 다른 역사적인 사정과 다른 역사적인 소원을 품고 소망을 모르는 인간 앞에 소망을 알게 해야 했고, 사정을 모르는 인간 앞에 사정을 알게 해야 했고, 심정을 모르는 인간 앞에 심정을 알게 해야 했습니다. 이것이 노아의 홍수 심판의 목적이었습니다.

예수님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어떤 분이었던가.

역사적인 심정과 역사적인 사정과 역사적인 소원을 소개하기 위하여 오신 분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이미 다 소개되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러한 역사 말고 인류가 알지 못하는 천적인 소원과 천적인 심정과 천적인 사정을 갖고 오셨습니다. 그 소원을 기반으로 하여 심정을 깨우치기 위해 오셨던 것이요, 사정의 인연을 맺기 위해 오셨던 것이요, 소망의 중심이 되기 위해 오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시대 인류가 그를 배척하고 나니 역사노정에는 하늘이 바라는 소원의 기준은 간 곳이 없어지고, 사정의 기준도, 심정의 기준도 간 곳이 없어지고, 하늘의 역사 그 자체만으로 열매를 맺고 예수는 갔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은 이것을 다시 연장시켜 6천년 역사의 종말을 향하여 인간 역사가 아닌 천적인 역사의 프로를 진행시켜 나오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천적인 역사와 이 땅의 역사의 진행기준을 맞추어 가지고 위로는 하늘을 붙들고 아래로는 인류 역사를 붙들고 자신있게 나설 수 있는 모습이 되어야겠습니다. 오늘날 인류는 그래야 할 것입니다. 하늘도 그러기를 바라실 것입니다.

그러면 그 하나의 모습은 어떤 모습인가. 그는 6천년 섭리역사, 인간역사 말고 천적인 섭리역사의 심정을 붙든 자요, 천적인 소원과 천적인 사정을 붙든 자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인류 역사 과정에는 두 흐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인류는 땅의 역사의 내용은 해명할 줄 알지만 천륜이 움직여 나온 그 역사의 내용은 해명할래야 해명할 수 없었습니다.

6-145
인간의 슬픔과 하늘의 분함은 무엇인가
무엇이 인간의 슬픔인가. 역사의 일체를 모르는 것이 슬픔이 아니요, 역사와 인연맺지 못한 것이 슬픔이 아닙니다. 인간의 슬픔은 천적인 역사노정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천적인 역사의 소망이 무엇이며, 사정이 무엇이며, 심정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모르는 것입니다.

끝날 뜻 있는 청년 남녀에게 이런 것을 알려주고 그들의 가슴 가슴에 충격을 일으켜 주는 때가 오지 않는 다 할진대 이 세계는 역사와 더불어 망할 것입니다.

이런 견지에서 바라보게 될 때에 잠자고 있는 오늘날 우리들은 깨어야만 되겠습니다. 우리 인류는 선조들이 자던 잠을 계속하여 또 자고 있습니다. 선조 때부터 수천 만년의 역사노정을 거쳐 왔으나 하늘과 인간과의 역사적인 규합점을 세워 자신있게 하늘을 향해 부르짖은 자가 아직까지 없습니다. 천륜 앞에 자신있게 책임한 사람이 아직까지 한 사람도 없다는 것입니다.

하늘이 슬퍼하는 일이 무엇일 것인고. 그 한 규합점이 맺어지지 않는 것이 슬픔입니다. 그러면 인류가 슬퍼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 인류 중에 한 사람이 나타나서 그러한 인연을 종결짓지 못한 것을 슬퍼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역사의 흐름, 혹은 천륜의 흐름인데, 이 두 방향의 흐름은 우리의 마음과 몸을 갈라 가지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마음은 ‘천륜을 향하여 가라’ 하고 몸은 ‘역사적인 인연을 떠나지 말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싸움에 부딪쳐 신음할 줄 아는 청년 남녀들이 많아야 할 것인데, 이 싸움의 고통을 느낄 줄 아는 자가 없으니…….

그런 경지에서 바울은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롬 7:24)”라고 자탄했던 것입니다. 마음의 법과 몸의 법이 있어 그 두 법이 싸운다고도 했습니다. 이런 것은 역사의 전체성을 폭로시킨 것입니다.

섭리적인 소망의 기준을 먼 거리에 두고 있는 인간을 역사적인 거리를 넘어 그 흑암권세는 지배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오늘의 나를 지배하고 있는 흑암권세와 공포를 뚫고 나설 수 있는 자극을 스스로 일으키지 못한다 할진대 구원섭리는 완성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천국이념은 허사라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마음에서 즐기고, 마음에서 살고, 마음에서 노래할 줄 아는 그런 나를 그리워하며 찾아가는 것이 종교인들의 행로였습니다.

여러분은 마음을 가다듬어 과거의 인연을 회상하고, 현재의 인연을 생각하고, 미래의 인연을 그리면서 마음의 그 나! 그 나를 찾아 헤매기에 얼마나 급급했었는 가, 반성해 보아야 되겠습니다.

하늘은 때와 시기는 변할지라도 우리의 마음을 통하여 수시로 연락하고 계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적인 그런 심정을 체휼하지 못하고 있다 할진대, 여러분은 일개 국가를 배반한 역적을 넘어 온 천주를 배반한 반역자일 것입니다.

이런 것을 모르고 사는 인간이 되어 버렸으니 참다운 심정, 변치않는 심정이 크면 클수록, 그 사정이 크면 클수록, 그 소원이 크면 클수록 역사과정을 섭리해 나오시는 하나님의 분함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하나님의 서글픔이 얼마나 컸으며, 하나님의 애절한 곡절이 얼마나 많았을 것인가? 이러한 심정이 반응되어 그 하나님을 붙들고 자기도 모르게 눈물지을 수 있는 감격된 마음을 가진 자, 그는 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이제 그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천적인 인연이 있다는 것을 알고, 천적인 심정을 그리며 천적인 행로를 바라보아야 되겠습니다. 자신도 알 수 없게 간곡한 하늘의 사정이 그리워지고 하늘의 사정이 체휼되는 그러한 자리에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어야 합니다. 만일 그러한 사람이 있다 할진대 역사노정을 더듬어 나오신 아버지께서는 비로소 그의 손을 붙들어 주실 것입니다.

그러면 그 사람을 중심삼고 억천 만민 모두가 손을 붙들어야 할 것이었는 데, 택해 세운 과거의 선지선열들은 자기들이 붙들었던 손을 놓기가 일쑤였습니다. 하늘은 우리 선조들을 붙들었던 그 손을 끝날까지 붙들고 나오시고 싶었으나, 아니, 세계 인류 모두를 붙들고 나오고 싶었으나 우리 선조들은 그 손을 뿌리치고 배반하기를 일삼았던 것입니다.

그럴 때마다 그런 선조들을 잃어버리고 또 다시 깨우치시고, 잃어버리고 다시 일으키신 하늘의 그 심정과 다시 일으킴 받아야 할 입장에 있는 여러분의 심정과는 큰 간격이 있는 것입니다. 체휼할래야 체휼할 수 없는 슬픔이 있다 할진대 무한한 슬픔의 고개가 남아 있을 것이고, 통분한 십자가의 길이 남아 있고 무한한 십자가의 장벽이 가로막혀 있을 것입니다.

6-147
새로운 소망과 각오와 결심이 필요할 때
그러므로 이것을 터쳐내야 할 빚을 지고 있는 오늘 우리들은 마음을 붙들고 울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마음을 붙들고 울되 무엇을 염려하면서 울 것인가. 마음을 붙들고 울되 내 마음을 붙들려 하시는 하늘을 염려하면서 울어야 되겠습니다. 몸을 붙들고 울되 그 몸을 붙들려 하시는 하늘을 염려하면서 울어야 되겠습니다.

‘오늘의 슬픔보다도 내일의 슬픔이 더 심절하고, 오늘의 억울함보다도 내일의 억울함이 더 심절하고, 오늘의 고통보다도 내일의 고통이 더 심절하더라도 가겠나이다’ 하늘 대하여 ‘죽더라도 가겠나이다’라고 맹세할 수 있는 심정을 갖고 자신을 찾았다 하는 자리에 서지 않으면 여러분은 깰 수 있는 자리에 서지 못하게 될 것을 알아야겠습니다. 그렇지 않겠어요.

세상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실패자가 성공을 하려면 그 마음에 새로운 소망과, 새로운 각오와, 새로운 결심을 가져야 합니다. 자기가 낙망했던 것보다, 자기가 실패했던 것보다 더 강한 마음의 충격이 일어나야만 실패한 기준을 넘어설 수 있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지금까지의 역사적인 일체의 모든 것보다도, 인간들이 심적으로 고통받던 그 모든 것보다도 더 강한 충격을 받지 않는 한 오늘의 인류는 살 길이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이 6천년 역사의 종말이라 할진대, 하늘은 인류를 대하여 6천년간 심절한 심정으로 부르짖으시던 그 이상 이 시간 우리를 대하여 부르짖으실 겁니다. 인륜을 대하여 부르짖으실 것입니다. 하늘이 6천년 역사의 어느 시대에 인륜을 대하여 가졌던 심정보다도, 품으셨던 소망보다도 이 시대의 우리에 대하여 품으신 소망이 더 클 것입니다. 소망이 그렇거니와 사정도 그렇고, 심정도 그러할 것입니다.

그러면 자신을 깨우쳐 일어나야 할 이 때에 여러분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여러분이 자신을 일으키려면 천적인 심정을 느껴야 합니다. 그리고 여러분 자신이 스스로 이러한 일을 책임지지 않는 다 할진대 책임진 어떤 존재가 땅 위에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늘은 그렇게 역사하십니다. 하늘은 노아 때는 노아를 세웠고, 아브라함 때는 아브라함을 세웠고, 모세 때는 모세를 세웠고, 예수 때는 예수를 세우셨습니다. 그러니 끝날에 세울 수 있는 하나의 인물이 나타나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나타나는 그 모습을 지금까지의 전통적인 역사와 환경은 알아줄 줄 몰랐습니다. 그러니 행동으로부터 시작해서 사는 것, 움직이는 모든 것을 여러분이 헤아려 가지고 그 새 모습을 중심삼고 과거의 모든 것을 버리고 그것 대신 중심인물을 세워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그 분 앞에 절대 순응할 수 있고, 절대 복종할 수 있고, 절대 화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은 깰래야 깰 수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때는 자기도 모르게 초조감이 드는 때입니다. 인류를 새로운 시대에 소망의 존재로 내세우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인간 자신들도 모르게 초조감과 공포에 휩싸이고 협박받는 것을 허용하고 계신 것입니다.

앞으로 여러분은 최후의 철퇴를 맞기 전에 철퇴가 여러분의 이마를 치는 감을 느낄 것입니다. 그러한 감이 여러분의 환경을 휩쓸매 공포의 마음을 느낄 것입니다. 그럴 때가 옵니다. 하늘이 치는 동시에 인류가 칩니다. 인류가 치는 동시에 사탄까지 칩니다. 그것이 대 심판입니다.

6-149
심판의 의의
오늘날까지 인간들은 서로 싸웠습니다. 사탄과도 싸웠습니다. 하늘은 또 여러분을 쳤습니다. 이렇게 삼면에서 인간들을 쳤습니다. 땅에도 그렇잖아요. 육군이니, 공군이니, 또는 해군이니 하는 것이 있지 않아요. 종말시대에는 인간 하나를 중심삼고 이런 세가지 형태로 습격해 들어올 것입니다.

육군과 같은 인간들의 습격이 있을 것이요, 해군과 같은 사탄세계의 습격이 있을 것이요, 공군과 같은 하늘 세계의 습격이 있을 것입니다. 이런 모양으로 습격해 올 것입니다.

그런 대 심판의 시대가 오는 데, 이러한 공포의 시대가 휩쓸려 들어오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망하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악을 쳐 가지고 역사노정에 눌렸던 마음을 회생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이러한 숨은 뜻이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습니다.

인간을 죽이려는 하늘이 아니라 살리려는 하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이 우리를 밀어내는 것은 올라가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를 위협하는 것은 어떤 면을 개방하기 위한 힘의 작용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위협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공포의 시기가 되었다고 낙망하지 마십시오. 공포와 싸워야 됩니다. 정면으로는 공포가 나타나지만 그 후면에는 새로운 안식의 터전이 있습니다. 이것을 사람들은 모르고 있습니다.

이제 막혀진 모든 공포의 세계를 물리치고 새것을 돌려 잡아야 할 때가 옵니다. 그렇습니다. 인류를 지배하는 것은 사탄입니다. 그 사탄은 우리의 코를 끌고, 손을 끌고, 일신의 모든 것을 잡아 끌어 종말에는 공포와 죽음의 자리로 이끌고 있습니다. 거기에 인류는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와 같이 사탄에게 끌려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인류는 그와 같이 끌려가고 있지만 하늘은 우리의 뒤를 따라 나오고 계십니다.

여러분의 마음은 여러분의 행동을 수습해서 결정지어 나오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아요? 여러분이 행동을 먼저 해도 모든 결과적인 책임은 양심이 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것을 증거하는 실증입니다. 이것이 역사적인 전체의 증거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여러분은 끌려가고 있습니다. 사망의 함정으로 끌려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이끌려가는 처지에서도 그 모든 공포를 물리칠 수 있는 심적인 충격을 받는 다 할진대는 돌아설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러한 한 때를 가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처해 있는 자리가 깨어 있는 자리가 아니고 어둠의 자리, 사망의 자리이니 이것을 돌이켜 깰 수 있는 그 한 순간을 가져야겠다는 것입니다. 그 순간이 역사의 종말인 말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내적인 모든 것이 복잡해지면 복잡해질수록, 혼란해지면 혼란해질수록, 공포의 세계가 밀고 들어오면 들어올수록 삶의 날이 목적에 당도하고 있다는 것을 느껴야 되겠습니다. 생명선이 사망선 위에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느껴야 되겠습니다. 그렇지 않아요?

오늘날 인류는 그러한 사실을 모르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살아 있지만 그 뒤에는 사망선과 연결되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생명선이 사망선에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인류는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인간들은 역사적인 방향과 더불어 마음의 방향을 찾아 헤매었습니다. 역사적인 방향과 더불어 소망을 바라보았고, 어떠한 인연과 심정 혹은 사정에 있어서도 그것을 역사적인 방향과 더불어 바라보고 나왔습니다. 따라서 이런 억측적인 움직임으로 그것을 박차고 돌아설 수 있는 그 한때서부터 새로운 세계, 새로운 우주는 전개될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 가고 있는 우리의 방향을 돌이켜야 하는 데,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이냐. 사망의 물결이 소용돌이치고 있는 이 마당에서 돌아서려면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여러분은 3점을 기반으로한 한 점을 찾아야 됩니다. 여러분 자신은 역사적인 흐름과 휩쓸리는 소용돌이 속에서 벗어날래야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그 반대적인 입장에 있는 하늘의 한점을 찾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6-151
공포와 사망의 휩쓸림에서 박차고 나오려면
공포와 사망의 웅덩이로 휩쓸려 들어가는 입장에서 박차고 나오려면 여러분은 천적인 팻말이나 3점의 기반을 둔 1점을 취해야 합니다. 그리고 또 모험을 해야 합니다. 모험, 모험을 해야 돼요. 그 흐름을 박참과 동시에 옆에 있는 새로운 무엇이라도 붙들려는 각오를 해야 삽니다. 그렇지 않으면 역사와 더불어 심판의 제물이 되지 않는 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은 내가 흐르고 있는 방향을 주시해야 됩니다. 그리고 주시하되 자기 감정으로 주시할 것이 아닙니다. 종말이 가까워 오매 여러분은 공포와 불안과 사망의 절박감이 느껴지면 느껴질수록 자신의 방향을 바른 쪽으로 돌리든지 다른 일면을 보아서 어떤 생명의 구조선이 있는 가 찾아봐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나의 세계관, 내가 느끼는 심정의 모든 인연을 박차고 나아가 다른 무엇이 없는 가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깨여날래야 깨어날 수 없습니다.

만일 여러분의 심중으로부터 여러분 개체의 감촉을 통하여 느껴지는 무엇이 있다 할진대 그것은 죽는 자리보다 나을 것이어늘, 그것을 붙들고 모험을 하기 위해 모든 것을 박차고 나서야 되겠습니다. 그 순간에 사망의 인연이 끊어진다는 것입니다. 과거 역사를 돌이켜 봐도 그렇습니다.

노아 할아버지가 지은 방주는 역사적인 흐름에는 배치되는 하나의 표지였으나 그 방주는 하늘이 세워 주신, 우리 인간이 살 수 있는 하나의 표지였던 것입니다. 이스라엘민족이 애급에서 말할 수 없는 고역을 당하고 있을 때에 나타난 모세라는 존재도 민족의 흐름에는 배치되는 표지였던 반면에 민족이 살 수 있는 하나의 표지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4천년 죄악 역사를 돌이킬 수 있는 , 죽음의 길을 살 길로 돌이킬 수 있는 하늘의 표지였습니다.

우리가 마음으로 성현 현철들을 그리워하는 것은, 우리가 복귀될 수 있는 표지를 찾아 소망의 곳, 사정의 곳, 심정의 곳인 이념의 그 세계를 무한히 그리워하여 움직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돌아가려 하고 있습니다. 역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하늘 땅의 흐름의 일체, 역사의 모든 것, 다시말해 6천년 역사를 종결지을 수 있는 불변의 한중심이 서지 않는 한 이 세계는 파멸입니다. 파멸이에요.

그것을 세우지 못하는 하나님이라 할진대 그런 하나님은 필요없습니다. 그것을 세우지 못하는 하나님이라면, 인류 앞에 ‘나를 믿으라’는 신앙의 표어를 세워 놓은 것은 모두 가식이요 외식이 됩니다. 인류를 주관받게 하시려는 하나님밖에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절박한 순간, 사망의 자리에 생명의 구조선으로 나타나십니다.

이제 여러분은 새로운 각오를 하고, 새로운 소망, 새로운 심정, 새로운 사정을 갖고서 역사적인 소망의 때, 천적인 소망의 때, 모든 존재세계의 소망의 때가 박두해서는 자기의 일체를 박차고 부활한 모습으로서 모험을 각오하고 하나의 중심을 붙잡고 나설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그런 마음이라야 역사노정, 혹은 섭리노정에서 비로소 깨어날 수 있는 마음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먼저 소망을 갖고 사망이 물결치는 상황에서도 끝까지 견디겠다는 각오를 해야만 되겠습니다.

6-152
심판때에 있어서의 자기 책임
오늘날 한국 청년 남녀들을 바라보면 그들은 전부다 부평초와 같이 방향없이 흘러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물결치는 대로 흘러서 어디로 갈 것인가! 이 물결을 거슬러 올라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는 움직임은 없는 가! 깨어날 수 있는 길은 없는 가! 오늘날은 자기가 처해 있는 환경을 무한히 미워하고 분히 여기는 공분의 심정에 사무쳐서 그런 길이 있다 할진대, 악의 역사와 악의 세계를 밀어내기 위해 이제까지 충성한 어떠한 사람보다 더 나은 충신 효자 효녀가 되겠다는 각오를 가지고 일대 모험을 할 줄 아는 시대적인 왕자가 필요한 시대인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들이 많아야만 이 민족 앞에 소망의 날이 가까와질 것입니다. 또 이 세계 앞에 우리가 바라던 소망의 때는 열려져 올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일을 하늘이 해 주시지 않습니다. 이것은 하늘이 할 일이 아니라 우리들이 해야 할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현재 처해 있는 자리에서 만족할 것이 아닙니다 하늘의 간곡한 심정을 품고 사망권에 있는 인간들의 죽음을 염려하여 인간들을 깨우기 위해 부르짖는 사람은 없을 것인가 하고 찾아야 하고 그 부르짖는 소리를 들을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 소리를 듣고는 부르짖는 사람의 모습을 바라볼 줄 알아야 되겠고, 그 다음에는 듣고 바라봤으니 행동을 개시할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 들을 줄 아는 귀를 가졌습니까? 바라볼 줄 알아야 되겠고, 그 다음에는 듣고 바라봤으니 행동할 수 있는 몸의 장비를 갖추고 있습니까? 이것이 문제입니다. 여기서의 듣고, 보고, 행동하는 것은 역사적인 모험의 행동이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역사적인 사망권을 박차고 나설 수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어떤 음성을 들었으며, 어떠한 모습을 보았으며, 어떠한 행동을 했습니까? 자기도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행동할 것을 알지 못하니, 그렇게 할 수 없다고 할 사람이 많겠기에 하늘은 그렇게 보여 주고, 그렇게 들려 주고, 그렇게 행동하는 사람들을 내세워 역사해 나오고 계시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생사의 기로에서 자신의 행동을 결정짓고 나서야만이 죽든지 살든지 그 판가리를 할 수 있습니다. 심판은 하늘이 먼저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자신이 먼저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먼저 가기 스스로 심판해서 승리하여 남아지는 자리에 서야 하늘의 심판을 받는 자리에 나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 스스로 심판하여 남아지는 모습도 되지 못했는 데 하늘의 심판은 무슨 심판입니까?

여러분들은 자신의 일체의 죄상을 중지시키고, 자신의 일체의 감정을 중지시키고, 자신의 일체의 생활을 다시 한번 정리하여 돌아설 수 있습니까? 그것이 문제입니다. 역사적인 선지자들은 그런 길을 갔습니다. 노아도 그런 길을 갔습니다. 하늘이 노아에게 ‘돌아서라’고 하셨습니다. ‘내가 살던 모든 환경을 박차고 돌아서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 명령을 받들어 개시해야 할 행동은 노아 자신도 지금까지 상상할 수 없는 행동이었습니다. 배를 산 꼭대기에 지으라……. 배는 물 위에라야 뜰텐데 산 꼭대기에 지으라고 하셨으니……. 그런 억지가 어디 있어요? 그러나 노아는 순종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늘이 ‘갈대아 우르를 떠나라’ 하셨을 때도 ‘예’ 했었고, ‘이삭을 번제 드리라’ 하셨을 때도 ‘예’ 했던 것입니다.

모세도 민족의 고통을 염려하면서 이제까지의 흐름을 막고 애급 사람을 쳤습니다. 그것을 보고 민족이라도 좋다고 했으며 그래도…….

그 다음에 예수께서도 ‘모든 것을 버리고 나를 따르라’ 했습니다.

역사는 이렇게 흘러나왔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선지자들의 부르짖음을 들을 줄 아는 사람, 그들의 모습을 볼 줄 아는 사람, 그들의 생활을 동경할 줄 아는 사람은 역사노정에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이것이 하늘의 슬픔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슬픔은 골고다 산상에서 죽어가는 예수의 모습을 바라보고 슬퍼하셨던 것 외에, 돌아가시는 예수님을 바라보고 하늘의 심정을 염려하고 그를 동정하여 눈물 흘리고, 죽음의 자리도 개의치 않고 나서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더 서러우셨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늘은 우리가 나아갈 길을 시대 시대마다 하나의 표지로서 세워 주셨는 데, 끝날에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사망의 공포가 밀려들면 밀려들수록 그것을 박차고 나설 수 있는 심적인 절박감을 느껴야 합니다.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항상 초조감을 느껴야 됩니다. 잠이 문제가 아니요, 먹는 것이 문제가 아니요, 사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고 해야 합니다. 이런 절박한 심정을 느끼고 마음에 충격을 받아 모험을 각오하고 미련없이 나설 수 있는 역사적인 새로운 움직임이 나와야만 이 세계는 살 길이 열릴 것입니다.

6-154
깨어 일어나 충절과 분별의 생활로 하늘과 인연맺으라
하나님께서 이제까지 과거의 역사노정에서 그렇게 해 나오셨거늘, 끝날에도 필연코 그렇게 하실 것입니다. 이러한 움직임이 있다 할진대 지금까지 자기가 믿고 나온 과거의 신앙이나, 과거의 어떤 주의나, 혹은 과거의 어떤 인연이 문제되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살게 되는 것입니다.

보세요. 성경에 보면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의인이라고 했습니다. 동정녀로서 예수를 잉태한, 이것은 역사적인 억지였습니다. 그러나 하늘이 천사를 시켜 예고하시고 마리아를 세우려 할 때 마리아는 서슴치 않고 이에 순응했던 것입니다.

역사상의 충신, 효자, 열녀들이 남긴 지조가 무엇입니까? 악당들이 반대하는 그 흐름에서도 서슴치 않고 생명을 걸고 모험을 했던 선조들인 것을 여러분은 몰랐을 것입니다. 하늘의 뜻을 받들었던 어느 한 사람도 그런 길을 가지 않은 사람이 없고, 생사를 결판지어 최후의 영광을 바라보며, 천국 백성, 아니 하늘의 아들 딸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은 당연히 그런 길을 가야 되겠습니다.

여러분 그러한 각오를 , 결심을, 맹세를 한 일이 있습니까? 없다 할진대 여러분은 역사적인 섭리를 대한 모독자 중의 모독자요, 배반자 중의 배반자입니다. 때가 오기 전에 여러분은 이러한 각오를 가져야만 새로운 자기를 찾게 됩니다. 이 행동을 개시하는 그 순간이 잠에서 헤매던 6천년 역사노정을 박차고 비로소 깨어나는 순간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여러분이 깨고 보면 나만이 있는 것이 아니고 부모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깨서나서 그 부모를 붙들고 눈물지을 수 있는 그날을 왈 재림의 날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눈을 뜨고 나면 내 앞에는 인류가 6천년 동안 슬퍼한 슬픔을 대신하여 슬퍼하신 참부모님이 계셨다는 것, 나를 찾아 6천년을 헤매이신 참다운 부모님이 계셨다는 것, 내가 슬퍼하기 전에 나를 대하여 슬퍼하신 하늘이 계셨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역사적인 심정에 사무쳤던 모든 사실이 한날에 전개될 때에, 비로소 나는 하늘을 대하여 아버지라 할 수 있고 하늘은 나를 대하여 아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날이 바로 최후의 깨는 날인 것입니다.

그때는 역사적인 소망의 심정과 그 외의 일체가 내 일신의 가슴 속으로 찾아 드는 때입니다. 그러므로 그 때의 기쁨은 하나님의 전체 목적이 이루어졌을 때에 느끼는 기쁨이요, 그 때의 감정은 인류가 타락하지 않고 완성했을 때 느낄 수 있는 감정인 것입니다.

그리고 인류가 느낀 그 많은 역사적인 슬픔과 인류가 당한 그 많은 역사적인 고통에 비례하는 기쁨을 느껴 사탄 앞에 늠름히 나타나 자랑할 수 있는 모습으로 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경지까지 나가야 할 우리인 고로 그런 입장에 서지 못했다 할진대, 우리는 돌이킬 수 있는 방향을 향하여 마음과 몸과 환경을 단속하여야 되겠고, 들려오는 말과 나타나는 현상을 보고 정신을 가다듬고 생명을 각오하여 돌아서야 되겠습니다. 그런 행동을 할 수 없다 할진대 우리는 깰래야 깰 수 없을 것입니다. 깰래야 깰 수가 없다는 거예요.

외적인 환경이 위협해 들어오면 들어올수록 그에 비례하여 내적 결심은 더 커야 되겠습니다. 절망과 낙망이 우리 사회를 휩쓴다 할진대 우리의 내적 심정에 있어서는 더욱 굳은 각오를 하고 소망의 한 때를 그리워 하는 마음이 싹터야 되겠습니다. 그래야만 우리는 소망의 한 날, 혹은 사정의 한 때에, 심정의 한 모습으로서 우리를 찾아 오시는 하늘과의 인연을 맺고 슬픔의 역사를 박차고 승리의 재출발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여러 분이 명심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6-156
기 도
아버님! 저희가 새 일을 생각하고자 할 때 지금까지의 움직임이 계속되는 자리에서는 생각조차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사옵고, 역사의 흐름을 정지시켜 놓고 자신을 생각할 수 있는 순간을 갖기 전에는 깰래야 깰 수 없음을 알았사옵니다. 잠들어 있는 이 한 모습이 새로운 자극을 받지 않고는 깨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사오니, 아버님이시여! 저희들에게 역사적인 인연을 벗어날 수 있는 새로운 충격을 연속적으로 가해 주시옵소서.

자극적인 마음이 없다 할진대는 깰 수 없다는 것을 알았사오니, 그런 마음을 찾아 흠모할 줄 아는 존재가 되지 않으면 안 되겠사옵니다.

아버님께서는 시대 시대마다 깨워줄 수 있는 책임자들을 보내셨습니다. 아버지께서 타락한 인간을 바라보시고, 슬퍼하신 당신의 심정을 붙들고 살다 가게 하셨기에 노아가 그렇게 살다 갔고, 모세도, 예수도 그러하였사옵니다.

아버님이시여! 저희의 마음 바탕에 새로운 느낌의 충격을 가해 주시옵고, 저희 일신을 넘어 아버지의 슬픔을 체휼하며 사망세계에 휩쓸려 들어가는 민족을 염려할 수 있는 마음을 주시옵소서.

이런 마음을 가진 자가 있다 할진대 그는 민족적인 해방을 받을 수 있는 자요, 더 나아가 세계를 붙들고 염려하는 마음이 있는 자가 있다 할진대 그는 세계적인 해방의 은사를 받을 자요, 더 나아가 천주적인 해방을 염려하여 울 줄 아는 자가 있다 할진대, 그는 역사와 더불어 망하지 않고 새로운 역사 세계에 남아질 인물인 것을 알았사오니, 오늘 자신의 감정을 들추어 자신을 붙들고 우는 자가 되지 말게 하여 주시옵소서. 전체가 바라는 선을 행하고, 저희를 바라보시는 아버지의 간곡한 심정을 대신할 수 있는 저희가 되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니다.

저희들이 따라 나오지 않을까 마음 졸이시던 그 마음, 인간이 타락할까봐 가슴 졸이시던 아버지의 마음을 대신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고, 따라 나오는 자들이 떨어질까봐 염려하시고, 또한 떨어진 자들이 쓰러져 죽을까 염려하시던 아버지의 마음을 본받아 민족을 바라볼 줄 알고, 세계를 바라볼 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님을 바라보며 ‘아버지, 제가 있사오니, 아버지의 심정을 제가 맡았사오니 안식하시옵소서’ 할 수 있는 아들 딸이 있다 할진대, 이런 모습을 통하여 역사는 새로운 방향으로 흐른다는 것을 알고 있사옵니다.

그런 방향으로 출발해야 할 저희들, 잠에서 깨어야 할 저희들, 역사적인 비운의 아우성 소리가 나타남에 따라 마음 깊이 새로운 결심과 각오와 맹세를 하고 새로운 방향을 향해 출발할 수 있는 만반의 준비를 갖추어 나설 줄 아는 자들이 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러한 자리로 이끌어 주기 위하여 눈물 흘리며 싸우던 자를 대신하여 천적인 심정을 갖고 싸우는 자가 있어야만 하늘은 그로 말미암아 안식하실 것이며 땅에는 새로운 기쁨의 동산이 건설될 것을 알고 있사오니, 저희들이 그런 책임의 자리에 서기에 부족함이 없도록, 아버지, 권고하여 주시옵소서. 저희의 걸음이 더디거든 채찍을 들어 쳐서라도 그런 자리로 몰아 주시옵기를 , 아버지,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하늘이 깨어 계시는 것과 같이 깨어 있어서 천륜과 더불어, 역사와 더불어 슬퍼하고, 기뻐할 줄 아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간절히 부탁드릴 때 주의 이름으로 아뢰었사옵니다. 아멘.